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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로 건강찾자!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운명할 때까지 말을 하고 살아가는데 신체에도 큰 영향을 미쳐서 크고 작은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기의 말이 자기를 98% 이상 지배한다는 이야기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대리언 리더와 데이비드 코필드 박사는 <우리는 왜 아플까?>의 저서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였다. 어떤 병에 잘 걸리는 이유는 바로 그 사람 말을 들어보면 안다는 것이다. 관절염에 걸리는 사람들은 관절염의 말을 자주 하고 암에 걸리는 사람은 암을 유발하는 말과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말의 성격, 생활의 습관에 따라서 그 육신의 병들도 다르다는 연구다. 다도가로 유명한 김의정 씨는 ‘마음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책에서 “입 속의 도끼를 버려라. 태어날 때부터 입 안에 무서운 도끼를 물고 있다”고 지적하였는데 그 도끼로 스스로의 몸을 찍어댈 뿐만 아니라 세상을 더럽히는데 그것은 입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쁜 말 때문이라는 것이다. 말은 그 말에 해당하는 것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고, 특히 병을 낫게도 하고 병에 걸리게도 한다. 우리는 과거에 말한 대로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것이고 오늘 이 시간에 어떤 말을 하느냐가 미래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자주 하는 말이 나의 행동과 삶을 지배한다. 안 되는 조직은 안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잘 되는 기업은 잘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실험의 내용을 보면 “사람들이 화를 낼 때 내뱉는 숨을 담은 봉지에 모기를 넣으면 얼마안가 죽어버리고, 반대로 웃을 때 뱉는 숨에서는 훨씬 오래 산다고 한다. 또한, 일본의 다케다제과의 경영주 다케다 회장은 과자, 빵을 만들 때 직원들에게 과자를 향해 ”감사합니다“라고 외치게 한다고 한다. 그리고, 녹음한 테이프를 작업 시간 내내 틀어놓는다고 한다. 그 결과 ”다케다제과“는 일본에서 성공한 기업이 되었다는 것이다. 농사의 명인이 벼가 모판에서 자랄 때 매일매일 논에 가서 ”잘 자라야 한다, 쑥쑥 튼튼하게 자라라“ 말을 하였더니 모통 100알 열리면 말과 정성으로 더 많은 400알을 만들었다는 실험도 있다. 존 바그 미국 예일대학교(사회심리학) 교수는 대학생을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부정적인 단어 쓰게 하고 한 그룹은 긍정적이고 고운 말을 사용하게 하였더니 부정적인 단어 문장 사용한 그룹은 신체능력이 떨어지고 긍정적인 단어나 감사 문장을 사용을 한 그룹의 학생들은 뇌에 긍정적 영향과 신체에 예의 바른 행동을 촉진하고 건설적인 인생으로 이끌어 주었다고 발표했다. 연세대학교 김재엽(사회복지학) 교수의 연구를 보면 부부 사이에 평소 주고받은 긍정적이고 따뜻한 말이 암 예방과 노화 방지에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노인 남성 30명을 대상으로 배우자에게 매일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표현을 한 그룹 사람들이 스트레스 지표가 50% 감소하였다고 한다. 우리들의 말 한 마디가 암 예방, 노화방지, 스트레스 감소의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의 저자 에모토 마사루 박사의 유명한 실험에서 말이 물의 결정체 모양을 변화시킨다는 실험을 이미 발표하여 알고 있듯이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물도, 모든 사물도, 동식물도, 사람도 이렇게 큰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 한 마디가 나는 물론, 가족, 친구, 동료들에게 직간접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오늘부터 말과 행동을 긍정적이고 따뜻한 말로 바꿔가는 노력을 할 때면 건강한 삶! 즐거운 삶! 행복한 삶! 성공한 삶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양옥(우석대 평생교육원 전담교수.한국스피치 웅변협회 전북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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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22 16:57

조선왕조실록 보호로 바라본 온고지신의 정보보호 실천

역사의 핵심은 기록이고, 기록은 바로 과거 데이터이다. 우리 역사에서 조선시대를 기록한 대표적인 데이터가 조선왕조실록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긴 단일왕조를 기록한 큰 규모의 역사서이며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은 전주와 인연을 떼려야 뗄 수 없는 보존의 역사를 같이하고 있다.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때에 우리 조상들의 목숨을 바친 항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선조가 전란을 피해 평안도 의주로 피난하는 등 혼란 속의 처참한 현장이었다. 이러한 전란 속에서 조선왕조실록도 많은 문화재와 함께 전쟁의 참화를 비켜 갈 수 없었으며 한양의 춘추관 사고 등 다른 곳은 모두 소실되었다. 천만다행히도 우리의 전주사고 실록만은 온전히 지켜졌다. 하지만 전란의 위기 속에서 전주사고 실록도 신줏단지 모시듯이 한자리에 고이 모셔두고 간수해서 저절로 보존된 것은 아니다. 역사 기록물의 중요성을 인식한 정읍지역 선비 손홍록, 안의를 비롯한 여러 백성들이 혼신을 다해 우리 기록유산을 지키려는 노력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한양까지 왜군 수중으로 들어가자 두 유생은 1,300여 권 60궤짝이 넘는 조선왕조실록 등을 내장산으로 옮긴 후 안전하게 보존하는 일에 앞장섰다. 이때 옮기지 않았다면 정유재란 당시 전주성 함락과 함께 여지없이 불타버렸을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러한 지혜로운 노력으로 임진왜란이 끝난 후까지 무사히 보존되어 오늘날 세계에 자랑스러운 기록문화 유산으로 남아있다. 조선왕조실록을 현대에 비추어 보면 바로 한자로 기록된 국가 데이터이다. 외부 침략자 왜군들의 위협으로부터 실록을 무사히 보존했듯이 국민의 소중한 병역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병무청도 안전하고 신뢰성 있게 보호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악의적인 사이버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병무청은 ‘사이버안전센터’를 10년 전부터 운영하며 범국가적으로 관계기관과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하고 있다. 또한 보안 전문인력이 통합관제시스템을 활용하여 병무행정시스템에 대한 실시간 보안관제를 365일 연중 철저히 수행하고 있다. 병역의무자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병역자료를 분산 보관함은 물론이고, 각종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대용량 로그분석 시스템과 개인정보의 노출이나 유출 방지를 위한 통합 감시시스템, 개인정보 접근통제시스템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노후화된 보안 관제시스템을 재구축하고 지능형 보안관제 및 대응체계를 운영하는 등 최신 보안 위협에 선제적으로 조치할 수 있도록 정보보호 체계 고도화를 지속해 추진하고 있다. 또한 실질적 정보보호를 위해 해킹에 대한 모의훈련, 악성코드 이메일 대응 절차 숙달 등의 활동을 하며, 일상 속의 정보보호가 실천되도록 각종 이벤트 행사 등도 병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보안활동으로 지난 5년간 7,000여 외부 사이버 공격을 받았으나 해킹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병무청은 선조들의 투철한 역사의식과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이어받아 끊임없이 공격해오는 악의적 사이버 위협으로부터 소중한 병역자료를 보호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병역을 성실하게 이행한 우리 국민의 자료가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김성준 전북지방병무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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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22 16:57

기억은 그리움과 함께 온다

며칠간 시간을 내어 부산과 통영을 다녀오게 되었다. 이왕 나선 김에 울산을 거쳐 가는 길이니 세계문화유산 통도사에도 가보고 싶었다. 이 사찰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고 있어 불보사찰이라고도 부른다 하여 오래 전부터 마음에 점을 찍어 놓고 있었다. 천년고찰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경내에는 “백중기도”라고 쓴 직사각형의 흰 종이가 간격을 두고 벽에 붙어 있었는데 불교에서 중요시 여기는 의식 중의 하나로 여겨졌다. 천왕문 앞 양 옆으로 활짝 핀 배롱나무 두 그루에서 떨어진 연분홍 꽃잎이 8월에 내린 분홍 빛 눈 같아 밟으면 왠지 뽀드득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자장암으로 오르는 산자락에 붉게 핀 배롱꽃은 멀리서 바라보니 화사한 꽃다발이다. 산사로 접어드는 계단 옆으로 때 늦은 수국 몇 송이가 사랑스럽기 그지없고, 꽃들도 우리 사람들과 같이 다양한 피부색과 제 빛깔에 어울리는 향기와 이름을 가졌다는 것이 신기하다. 추녀를 살짝 들어 올린 곡선을 배경으로 하얗게 핀 배롱나무와 푸른 하늘은 뛰어나게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번 여름은 이상하게 가는 곳마다 배롱나무만 눈에 들어오니 여럿이 섞여 있어도, 홀로 있어도, 저만치 있어도, 가까이 있어도, 어디를 가나 마주치는 꽃 고깔을 쓴 배롱나무를 보면 웬일인지 흥분이 되었다. 나는 딸이 다섯, 아들이 둘인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막내 동생이 두 살 때 하늘나라로 떠나셨으므로 아버지와의 그 어떤 일도 음미하고 기억할 게 없었다. 그러나 딸이 다섯이나 되는데도 딸들을 굉장히 예뻐하셨다는 딸 바보 아버지의 사랑을 당숙 할머니께 전해들은 이후엔 몰래 아버지를 그려보기도 하고 은근히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어머니는 군대 간 오빠 대신 큰언니를 데리고 하숙집을 하셨는데 어머니를 닮아 음식 솜씨가 좋고 얼굴이 예뻤던 큰언니는 하숙생이었던 형부와 눈이 맞아 일찍 결혼을 해 아기를 연년생으로 낳았다. 형부의 발령에 따라 거처를 옮겨야 했던 큰언니는 날 데리고 가고 싶어 했다. 어머니와 잠시라도 헤어지는 건 싫었지만 귀여운 조카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점은 살짝 설레었다. 내 나이 열두 살 때의 일이다. 나의 도움에도 육아로 인한 큰언니의 체력적인 부담은 좀체 줄지 않았는지 언니는 우울증으로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면서 나를 외롭고 힘들게 했다. 큰언니가 화를 내는 날엔 괜히 서럽고 속상해서 구석으로 숨어들어가 한없이 울었다.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면 처음엔 나를 달래주시던 형부도 나중엔 큰언니 입장에서 변호하거나 묵인했다. 소심하고 외로움을 많이 탔던 나는 사택 한쪽에 있는 배롱나무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울음을 토해내곤 하였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내 마음의 오래된 수장고에는 그 옛날 나의 위로자로 동무로 나의 눈물을 닦아주던 배롱나무가 있었고, 그 앞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며 그리워하며 눈물짓던 열두 살 어린 아이가 있었다. 이번 여행은 의도치 않게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한편 고인이 된 어머니와 큰언니를 만나는 아름다운 해후의 시간이기도 하였으니 큰언니는 마흔을 갓 넘기고 배롱나무 꽃보다 더 짧은 생을 살다가 꽃잎처럼 덧없이 지고 말았다. 모두가 다 지나고 보면 외로움도 오해도 사랑도 여과되어 잠재된 기억 속에서 애틋한 그리움으로 피어나는가 보다. 아, 그립다! 어머니, 그리고 큰언니...... 차창 밖으로 배롱나무 가지마다 무량한 꽃잎들 피고 진다. 한없이 지고 핀다. 그리 무섭던 여름도 언제부터인지 한복판을 벗어 나 기가 꺾여 가고 있다. △최윤옥 시인은 계간 문예지 '자유문학'과 '시조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전북시인협회, 전라시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시집 '이만 사랑을 잠재우고 싶다', '흔들릴 때 더욱 푸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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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19 18:20

한가위 정치 토크

가족 모임에서도 정치 얘기가 나오면 서로 얼굴 붉히고 서먹서먹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만큼 정치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성향이나 인물 선호도가 다르다 보니 감정을 자극하기 일쑤다. 그런 와중에도 공통점은 정치인 평가가 최악이라는 점이다. 국민 통합에 앞장서고 지역 발전에 헌신하겠다는 선거 유세 다짐은 금배지 이후 권력 중심에 서며 퇴색하기 마련이다. 출사표를 던질 때 신인으로서의 참신하고 정의로운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고 노회한 정치인의 모습만 연상케 한다. 추석 연휴 사람들이 모이면 풀어 놓는 정치인 뒷 담화의 내용도 알고 보면 여과없이 드러난 바닥 민심이다. 정치인 스스로 뼈저린 반성을 통해 초심을 잃지 않도록 자기 관리에 철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엇보다 가장 발끈하고 분노 조절이 쉽지 않은 건 생뚱 맞은 국회의원 명절 휴가비다. 추석을 닷새 앞둔 지난 12일 의원 300명에게 휴가비 4백24만원씩 지급됐다는 뉴스다. 설날까지 합치면 연간 8백49만원이나 된다. 해마다 세비로 받는 1억5700만원과는 별개로 지급되는 떡값이다. 5급 이상 일반 공무원들은 별도로 명절 상여금이 없다. 직장인도 요즘 경기가 어려워 희망 퇴직설이 나오는 가운데 상여금은 아예 꿈도 못꾼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은 억대 연봉 외에 명절 상여금까지 꼬박꼬박 챙긴 것이다. 툭하면 개점 휴업 상태인 국회 모습을 보면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국회의원에게도 적용하라는 비난이 쇄도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편 가르기와 진영 논리로 인해 국민 통합이 절실한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의 팬덤 귀성 인사가 도마에 올랐다. 한동훈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지도부는 13일 대구 부산 지역의 경부선 출발지인 서울역에서 귀성객들을 만났다. 반면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지도부는 호남 전라선 용산역에서 귀성 인사를 진행했다. 비록 한가위 이벤트이지만 정당의 텃밭이라고 자처한 강성 지지층 지역에만 편중돼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이날 참석자 가슴 띠에 적힌 '희망가득 한가위' '모두의 힘 모두의 한가위' 등의 글귀를 무색케 했다. 호남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재보궐 혈투가 볼 만하다. 전북 정치권도 이 영향권에서 비껴갈 수 없어 관심을 끌고 있다. 차기 지방선거 가늠자 역할과 동시에 지역 맹주 자리도 연계된 만큼 선거전 양상이 전면전을 띠고 있다. 지난 4월 총선 성적표를 보면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호남 28석을 모두 휩쓴 민주당과 비례대표 득표율 호남 1위를 차지한 조국혁신당의 존재감 때문이다. 하지만 전남 영광과 곡성 군수를 뽑는 지역 단체장 선거인데도 전국 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당이 '몰빵' 전략에 나선 걸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현재 직면한 정치권내 위상을 대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얘기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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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곤
  • 2024.09.19 17:16

도시를 걷는 법

“뭔가를 지도로 만드는 것은 대개 좋은 일이다. 세상의 구석구석에 햇빛을 비추는 일이니까.” 데니스 우드, <모든 것은 노래한다>(2011, 프로파간다) 지역재생의 활동으로 자주 거론되는 단어는 ‘아카이빙’ 또는 ‘매핑(mapping)’이다. 도시와 동네를 함께 걸거나 공간에 대한 지역민의 미시사를 이야기 나누고 그것을 기록하며 의미화한다. 아카이빙이라는 것은 현재 존재하는 것에 애정을 가지며 그것의 현재를 기록함에 목적이 있지만 어찌 보면 그 대상이 변화하거나 사라질 때 의미를 가지는 아이러니함도 있다. 변화가 당연한 시대 속에서 아카이빙과 매핑은 도시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앞서 인용한 데니스 우드는 기존 지도의 객관성을 믿지 않고 누군가의 주관적 시선이 반영된 것으로 생각했다. 하여 그는 ‘짖는 개’, ‘나무의 나이’, ‘건물 자국’, ‘일광의 리듬’ 등의 여러 요소를 통해 공간을 탐구하고 기록했고, “서정적이며 개인적인 임무(아이라 글래스)”로 책을 ‘지도’를 완성해 냈다. 그의 방식은 내가 군산에 정착하며 단순히 경제적 활동을 해내고 주거가 있는 공간이 아니라, 삶의 터전으로 인식한 과정과 유사하다. 군산의 첫인상을 한 단어로 정의하면 ‘틈’이다. 깨진 벽 사이에서 자라는 나무들, 동네 골목에서 쉽게 발견되는 버려진 욕조를 대용화분으로 쓰며 키우는 식물들, 과거와 현재가 섞여 있는 낮고 고른 건물의 선들. 천천히 자신만의 시선으로 발견할 때 도시는 내 것이 된다. 모든 애정은 관찰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어딘가 부족해도 사랑하게 되는 공간들. 그냥 지나치면 스쳐 지나가면 그저 풍경으로 끝나버리는 동네의 모습을 ‘아, 이곳에 이런 게 있었네.’, ‘이 시간엔 늘 저 고양이가 있네.’라는 생각으로 산책하고 걷고 관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동네와 지역에 애정이 생긴다. 그렇게 자신만의 동네 지도가 완성된다. 수저가 깨끗한지 확인하며 놓고, 테이블이 끈적여서 친구와 대화하는 내내 식탁을 닦아야 할지라도 어딘가 편안하고 그곳에서만큼은 진실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술집처럼. 자신만의 동네 지도가 완성되면, 나의 마음과 상태에 따라 발길을 편안하게 닿는 나만의 아지트가 생기는 것이다. 오래된 간판의 디자인이 남아있는 구도심, 곳곳에 놓인 화분과 의자로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주택가의 골목, 노을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아름다운 빛을 만들어내는 동네, 마음이 번잡할 때 훌쩍 달려가 복잡함을 털어놓고 올 수 있는 해변. 군산에서 숨 쉬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나의 군산 풍경들이다. 다시 돌아온, 기후 위기의 무서운 경고장인 지난한 여름도 이번 주면 끝이라는 일기예보가 있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엔 동네를 걸어보며 내가 발 딛고 있는 풍경을 관찰하는 건 어떨까. 겨울에 두릅나물을 먹고, 초봄에 냉이가 들어간 된장을 먹으며 식탁에 내려앉은 계절을 느끼는 것처럼, 지금 이 시기에만 내려앉는 햇볕과 지금 존재하는 건물과 사람들 그리고 동네의 여러 새와 동물을 보다 보면 매년 같이 느껴지는 시간과 공간, 계절과 일상이 조금은 특별해질 것이다. 애정 하는 우만의 동료(김다희)가 과거 『우만플러그, 군산』(2021, 우만컴퍼니)의 마지막에 쓴 글을 마지막으로 글의 마침표를 찍는다. “‘지역’이란 게 사람이 아닌데 그에겐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현재를 생동하며 살고 있는 것까지. 어쩌면 생명체인 나보다 살아있는 존재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그 움직이는 것 안에 있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움직이며 살게 되는 게 아닐까?” /김나은 여성주의 문화 기획사·출판사 우만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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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19 15:53

모집병에 합격하였으나 갑자기 사정이 생겨 입영이 곤란한 상황인데, 연기 또는 취소가 가능한가요?

모집병에 합격한 사람이 질병 등 부득이한 사유로 지정된 입영일자에 입영할 수 없는 사람은 연기가 가능합니다. 1회만 가능하며, 입영일 5일 전까지 연기신청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 선발 당시 모집 분야의 소요가 있는 경우에 입영일로부터 3개월 범위내에서 연기가 가능하며 입영일자 연기 기간이 통틀어 2년이 초과되는 사람은 연기가 제한됩니다. 연기신청 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질병 또는 심신장애로 2주이상의 치유기간이 필요하다고 인정되거나 잠복결핵 치료 중인 사람이 치료를 원하는 경우. 둘째, 본인의 직계 존·비속, 배우자, 형제자매 또는 세대구성원의 위독·사망 등으로 본인이 아니면 가사 정리가 어렵다고 인정되는 경우. 셋째,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른 자연재난·사회재난과 천재지변(재난)으로 인하여 일부 또는 광범위하게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쳐 본인이 아니면 이를 처리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경우. 넷째, 입영판정검사 결과 서류보완 또는 정밀검사대상으로 입영일까지 병역 처분이 확정되지 아니한 경우. 다섯째, 동반입대병으로 선발된 사람이 입영일자가 연기되어 동반자가 연기된 입영일자에 입영하기를 원하는 경우. 그 밖에 부득이한 사유로 지정된 일자에 입영하기 어렵다고 지방청장이 인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취업맞춤 특기병 지원자 중 기술훈련을 마치고 고용보험 적용사업장에 통상근로자로 취업한 사람은 취업사유로 24세까지 취업맞춤특기병 입영일자를 연기 할 수 있습니다. 취소신청 사유는 연기 사유 첫째, 둘째, 셋째와 동일하며 그 외 사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최종선발자 발표일 전날까지 각 군에서 모집하는 장교·부사관·병에 지원하여 수험결과를 기다리고 있거나 선발시험에 합격한 경우 또는 상근예비역에 선발된 경우. 둘째, 취업맞춤특기병 선발자로서 기술훈련을 계속할 수 없거나 입영할 수 없어 그 선발의 취소를 원하는 경우. 셋째, 18세 현역병지원 신체검사 결과 신체등급 4급으로 판정된 사람으로서 현역병으로 최종 선발된 이후에 신체등급 4급 판정 사유로 그 선발의 취소를 원하는 경우 1회에 한하여 신청할 수 있습니다. 모집병 연기 및 취소신청은 '병무청누리집→병무민원→군지원→선발취소 및 입영연기 등 민원'에서 가능합니다. /전북지방병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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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19 15:53

산전수전(山戰水戰)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장군은 애초부터 지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륜과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으로 촉발된 의료계 파행은 이제 시간이 지날수록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추석 기간에는 ‘중추가절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인사 대신에 아프지 말라는 인사가 유행하였다. 지금 겪고 있는 의료계 파행이 해결된다고 해도 그 시간 동안 고통받는 사람은 국민이다. 애초부터 산전수전 다 겪은 능숙하고 유능한 장군이 나서서 이 문제를 지휘했어야 했다. ‘산전(山戰)에서는 내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기동하여 상대를 압도해야 한다. 수전(水戰)에서는 상대가 물을 건널 때 기습하여 승기를 잡아야 한다. 택전(澤戰)에서는 내가 가진 무기와 군장을 포기하더라도 늪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육전(陸戰)에서는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는 후퇴 경로를 확보해야 한다.’ <손자병법> <행군(行軍)> 편에 나오는 ‘산전수전택전육전(山戰水戰澤戰陸戰)’을 모두 겪은 장군의 군대 운영에 관한 내용이다. 산전(山戰)의 핵심은 나의 의도와 생각을 드러내지 말라는 것이다. 높은 산악지역을 이동할 때는 적에게 노출되기가 쉽다. 나의 실체를 숨기기 위해서 능선을 피하고 계곡(谷)으로 이동로를 선택해야 한다. 의사 정원을 늘려 국민 의료 복지 수준을 높인다는 목표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정부의 의도를 모두 드러내고 노출한 데 있다. 상대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나의 명분만 강조한 것은 결코 현명한 정책이 아니다. 2000명이란 선언적 숫자까지 정해 놓고 전투에 임한 관계기관은 산전을 겪어보지 못한 리더라고 할 수밖에 없다. 수전(水戰)의 핵심은 상대의 빈틈을 찾아 공격하라는 것이다. 상대가 강물을 건너는 데 집중하고 있을 때를 놓치지 않고 기습하여 승기를 잡아야 한다. 강물을 반쯤 건넜을 때 기습하면(半濟而擊之, 반제이격지) 쉽게 이길 수 있다. 상대가 전열을 정비하여 정식으로 싸우기 전에 이미 싸움은 끝났어야 한다. 전쟁은 싸워서 이기러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승리의 조건을 만들어 놓고 확인하러 들어가는 것이다. 수전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상대와 정면 승부에 집착한다. 택전(澤戰)의 핵심은 전투에서 곤경에 빠졌을 때 명분을 버리고 빨리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늪에 빠지는데도 불구하고 명분 찾고 자존심을 찾는다면 생존은 점점 더 멀어진다. 줄 것은 주고 버릴 것은 버려야 늪에서 나올 수 있다. 전쟁의 목적은 승리이지 자존심이 아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응급실 기능이 마비되고 의료가 파행되었다면 늪에 빠진 것이다. 늪에 빠진 상황에서 내가 포기할 것은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의료 개혁 정책에 대해 의사들에게 사과하고 처음부터 다시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며 자존심과 명분만 세우다가 결국 환자들의 고통은 배가되고 의료체계는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육전(陸戰)의 핵심은 출구전략이다. 평지에서 싸울 때는 불리할 때 언제든지 빠질 수 있는 탈출 경로가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들어가는 일보다 빠지는 일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주식과 부동산을 투자할 때 과감하게 손절하고 빠지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다. 전쟁에서 승패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패배를 인정하는 일도 전략이다, 훗날을 도모하는 권토중래의 용기가 필요하다. 지도자는 외골수나 한 분야에만 정통한 전문가가 아니다. 산전수전택전육전 모두 겪어보고, 공중전까지 겪어본 사람이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 명분, 자존심, 뚝심, 고집이란 덫에서 벗어나야 국민이 행복하다. 진격과 후퇴의 결정은 오로지 국민의 안정(保民, 보민)과 국가의 안위(保國, 보국)가 우선이다. 그래야 국민이 믿고 지지할 것이다. /박재희 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 원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9.19 15:53

세금 안내는 사람 보호할 가치 전혀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2장 3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세금은 국가활동의 기초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과하는 모든 경제적 부담을 의미하는데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각자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부과해야 한다는 '조세공평주의'가 과세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세금을 회피한다면 그 공동체는 존립 기반이 한꺼번에 무너지게 된다. 기업활동을 하다가 파산하거나 경제적 능력을 상실함으로써 일거에 세금을 납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 극단적인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고액체납자나 치고 성실한 이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악의적으로 세금을 내지않는 사람은 보호해선 안된다. 최근 3년간 전북특별자치도 지방세 고액 체납자와 체납액이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한병도 국회의원(민주당 익산을)이 행정안전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북자치도의 1000만원 이상 지방세 고액 체납자는 2021년 778명에서 2022년 921명, 2023년(잠정) 1137명으로 매년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체납액을 보면 2021년 274억원에서 2022년 315억원, 2023년 434억원으로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다. 1000명 남짓한 고액 체납자의 체납액 비율은 2021년 29.4%에서 2023년 39.3%로 커졌다. 체납자 상위 0.5%가 전체 체납액의 40% 나 된다. 결국 미꾸라지 몇마리가 방죽을 흐리는 격이다. 사회 공동체는 일정한 의무를 다한 구성원에 대해서는 응분의 보상과 보호를 해야하지만, 이를 악의적으로 회피한 이는 어떤 형태의 시혜도 베풀어선 안된다. 아주 작은 모임에서도 회비를 내지 않은 사람은 회원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는게 사회상규다. 하물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존립근거가 될 수 있는 세금을 회피하는 이가 그 공동체에서 보호받아야 할 이유는 전혀없다. 전북특별자치도는 지방세 고액·상습 체납자의 명단을 오는 11월 20일 공개한다고 밝힌 바 있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고액·상습 체납자 383명 중 사유가 있는 46명을 제외한 337명에게 9월까지 소명 기회를 부여하고, 이에 응하지 않은 체납자를 공개할 방침이다. 세금도 안낸 사람이 해외여행을 다니고 값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니거나 고급 골프장을 드나드는 경우가 있다면 이는 조세정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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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4.09.19 14:44

전북특별법 특례사업 더 철저히 준비해야

개정된 ‘전북특별법’(전북특별자치도 설치 및 글로벌 생명경제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 오는 12월 27일 본격 시행된다. 이제 1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전북은 올초 전북특별자치도가 됐다. 추가 재정지원과 각종 규제완화, 행정특례 등을 통해 지역발전에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지난해 말 ‘전북특별자치도 설치 및 글로벌 생명경제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온통 장밋빛 청사진이었다. ‘글로벌 생명경제도시’라는 비전을 내걸고, 기존 법률을 전부 개정해 지역의 특성과 강점을 반영한 131개 조문 333개 특례를 담아냈다. 그리고 도민의 관심을 모은 이 특별법이 올 연말 본격 시행된다. 하지만 특별자치도가 됐다고 해서, 특별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새로운 시대, 특별한 기회가 곧바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만들고 열어야 한다. 지자체와 지역 정치권의 노력으로 담아낸 특별법의 각종 특례가 실질적인 지역발전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 전북자치도는 특별법에 규정된 ‘특례’를 활용해 농업, 청정에너지, 전통문화, 산림, 새만금 등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농생명산업, 문화관광산업, 고령친화산업, 미래첨단산업 등 333개의 특례 조항을 75개 사업으로 체계화하고, 사업별 특례 실행 추진계획을 확정했다. 전북특별자치도는 75건의 특례사업 중 47건은 특별법 시행일에 맞춰 즉시 시행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2025년에는 22건, 2026년 이후에 6건이 순차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분석했다. 전북도민들은 특별자치도로의 전환이 단순한 명칭 변경을 넘어, 지역 발전의 새로운 기회를 여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같은 도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행정, 경제,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특별법에 규정된 각종 특례를 제대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전북특별법에 담아낸 각종 특례가 당초 기대한대로 ‘더 특별한 전북’의 동력이 될 수 있도록 전북자치도의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아울러 재정권을 포함한 새로운 특례 발굴과 이를 추가 반영하는 특별법 2차 개정을 위한 행정과 정치권의 지속적인 노력도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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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4.09.19 13:48

전북 정치권 분발하라는 추석 민심

추석 연휴가 끝나고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닷새동안 이어진 연휴 동안 도민들은 성묘를 하고 국내외 여행을 다녀 오는 등 긴 휴식을 취했다. 이번 추석 연휴는 폭염이 계속되는 한 여름 날씨였다. 추(秋)석이 아니라 하(夏)석이라 불러야 할 정도였다. 한가위에 열대야가 나타난 것은 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그 만큼 기후 위기가 심각함을 보여주었다. 올해 추석 연휴는 고물가와 의료대란으로 불안하게 출발했다. 반면 조금씩 활기를 찾는 전북 정치권에 대한 기대가 컸다. 우선 올 추석은 바닥 경기가 나쁜데다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가 크게 올랐다. 사과 배 등 과일값은 어느 정도 통제가 되었지만 채소값은 천정부지였다. 무 한 개에 4000원, 배추 한 포기에 1만원까지 올라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들은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했다. 염려했던 응급실 붕괴사태는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하지만 길거리에 “추석 때 아프지 마세요”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고 국민들은 건강을 스스로 챙겨야 하는 명절이었다. 의정 갈등이 7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정부는 땜질식 처방만 내놓고 있어 국민들의 불안감은 계속될 전망이다. 정부와 여당이 의료계에 제안한 여야의정협의체도 불발돼 더욱 그러하다. 그래도 도민들이 희망인 것은 점차 살아나는 전북의 정치력에 대한 기대다. 지난 4월 치러진 22대 총선에서 중진 의원들이 다수 당선되면서 무기력했던 21대 국회에 비해 다소 활력을 띠고 있어 고무적이다. 대정부 질문이나 상임위 활동 등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이들이 원팀이 되어 과연 전북몫을 얼마나 찾아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2025년 국가예산을 챙기고 전북 홀대의 상징인 대광법(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부터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국가예산은 지난해 9개 광역도 가운데 유일하게 줄어드는 불이익을 당했다. 이에 앞서 전북은 지난해 8월 열린 새만금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 파행으로 예산과 각종 사업에서 배제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올해는 지난 해 깎인 국가예산까지 찾아올 수 있도록 고군분투해 주길 기대한다. 추석 이후 전북정치권은 그동안 추락한 경제력을 회복하고 자긍심을 살려 도민들이 당당히 어깨를 펼 수 있도록 한층 더 분발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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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4.09.18 17:08

지자체장 공약이행 평가, 신뢰성 확보부터

선거에서 후보자의 공약은 소속 정당과 함께 유권자들에게 선택의 주요 기준이 된다. 그런 만큼 당선된 지자체장이 유권자들과의 약속을 얼마나 지켰는지를 보여주는 공약 이행 평가는 주민 알권리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각 지자체에서는 자체적으로 공약평가단을 구성‧운영하면서, 공약 이행률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아전인수식의 잣대를 들이대 이행률을 터무니없이 부풀려 놓고, 이를 홍보하는 경우가 많아 주민들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단체장의 치적을 부풀려 홍보하기 위한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많다. 이런 가운데 전주시가 공약 이행 평가 방식을 개선, 보완한다는 취지로 주민배심원제도를 도입해 지난 12일 첫 회의를 열었다. 주민배심원제는 주민이 직접 공약이행 평가 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제시하는 공약 점검 방식 중 하나다. 전주시는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해 지역에 거주하는 18세 이상 주민을 대상으로 무작위 방식의 음성응답시스템(ARS)과 전화면접 등을 거쳐 성별과 연령, 거주지역 등을 고려해 35명의 배심원을 선발했다. 이에 앞서 전주시의회에서 ‘공약평가단의 평가 결과가 시민들의 의견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약평가단의 평가 결과를 보면 대부분의 항목에서 '매우 우수' 또는 '우수'로 평가됐고, ‘미흡’은 단 1건으로 나타났지만 온라인 플랫폼에 올라온 시민의견을 분석해보면 부정적 의견이 53%에 달해 괴리가 크다는 것이다. 주민배심원제는 일단 공약사업 추진 상황을 좀 더 촘촘하게 관리하겠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무작위로 선정된 주민배심원들이 지자체의 정책과 공약사업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지 않거나 그럴 의지조차 없다면 역시 집행부의 입맛대로 움직이는 거수기 노릇만 할 가능성이 높다.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기대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지자체에서 발표하는 공약 이행률이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공약평가단이 단체장의 공약 이행 상황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집행부에서 객관적인 자료를 투명하게 제공해야 한다. 또 평가단과 배심원들도 주민 알권리에 기여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공약 이행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아울러 평가 결과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지역사회 전문가들의 엄격한 검증 절차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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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4.09.18 17:07

어른들의 대화, 상상의 보고(寶庫)

지금은 불쑥 남의 집에 가면 실례이지만, 어렸을 적 우리 집에는 초대와 무관한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친가, 외가, 진외가 등 부모님을 중심으로 이어진 친인척들과 촌수를 따지기도 뭣한 먼 일가들이 명절이나 집안 제사, 하다못해 장날 특별한 용건 없이 드나들었다. 그들이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어린 나로서는 대부분 이해할 수 없어 생각나지 않지만, 그 광경은 생생하다. 울 정도로 배꼽 잡고 웃다가 허기지면 자주 돌아오는 생일 떡이나 국수를 끓여 먹기도 했다. 버스 시간에 누군가는 떠나고 다른 이가 그 자리를 채워도 대화는 탈 없이 이어졌으니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땐 왜 그렇게 심심했던지, 학교를 파하고 놀다가 집에 왔어도 저녁 식사 때까지 하루가 참 길었다. 일없이 곤충을 잡아 빈 병에 넣어 관찰하기도 했으니 손님으로 집안이 북적이면 싫지 않았다. 구석에 엎드려 숙제하는 것처럼 뭔가를 끄적거렸지만, 실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TV가 없던 시절 그들의 만담은 내게 연속극 재방송 같았는데, 왜 어른들은 비슷한 이야기에도 매번 재미있어할까 의아했다. 평교, 주산, 동진, 성내, 소성, 이평 등지에서 온 착하디착한 사람들, 그들의 자손은 지금 전주나 서울, 그리고 그 주변 어딘가 아파트에 살고 있을 것이다. 하도 많이 들어 귀에 못 박힌 군대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훈련은 고된데 부식이 형편없던 시절, 중대장이 애지중지 키우던 토끼 한 마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끝내 범인이 나타나지 않자, 중대원들 전부 연병장에 집합시켜 놓고 “토끼가 왜 죽었나”라는 구호로 토끼뜀을 시켰다는 이야기다. 기억이 부실한 탓도 있지만 옮겨 쓰고 보니 별 시답지도 않다. 누군가의 뱃속에서 이미 소화가 돼버렸을 토끼로 화난 사람은 중대장 한 사람이었을 뿐, 부대원들 모두 전우애로 똘똘 뭉쳐 그 기상천외한 구호를 외치며 뛰었을 상황은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된다. 화자도 어쩌면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군대 이야기에 으레 들어가는 과장은 당연하고, 앞뒤로 높으신 중대장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장치가 들어가면 한 편의 완벽한 소극이 된다. 다음번 장날에 새로운 청중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야기는 재현됐을 것이니 볕이 잘든 우리 집 마루는 일종의 소극장이었던 셈이다. 나는 논문이나 책을 저술할 때 비유를 즐겨 쓴다. 내용보다는 저술 중에 나온 비유가 좋다는 말을 간혹 듣는다. 그리고 대화나 강연 중에 ‘예를 들어’나 ‘비유컨대’로 새로 시작할 때가 많다. 그 말투는 단언컨대 장날 우리 집 손님들의 대화에서 익힌 것이리라. 그들은 자기 말에 집중케 하려고 월남전, 농사, 하다못해 소, 돼지, 닭까지 소품으로 썼다. 그 과정에서 비유와 우화, 메타포가 등장했고, 어린 나는 이런 문화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사회과 부도에서 본 나라와 광주, 부산 등 대도시, 어른이 되어야 가는 군대를 그려볼 수 있었다. 상상력이란 근육이 있다면 그때 부쩍 자랐을 것이다. 주교황청 한국대사를 지냈던 성염 교수가 번역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비록 내륙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소싯적부터 조그만 잔에 담긴 물을 보고도 나는 바다를 상상할 수 있었다.” 감히 이에 견줄 바 못 되지만, 장날과 명절 어른들의 대화는 내게 재미있는 이야기책이자 상상의 세계였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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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18 17:07

‘불 밝히기 운동’으로 세계한상대회 손님을 맞이하자

1988년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올림픽 당시, 서울시는 참여하는 선수와 경기를 관람하는 외국인들에게 활기찬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고, 전 시민의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해 질때부터 뜰 때까지 대대적인 시가지 ‘불밝히기 운동’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고층건물, 공공건물, 상가, 백화점, 음식점, 호텔, 문화재 등을 불 밝히기 대상으로 정하고 건물소유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올림픽을 성공시키는데 ‘불밝히기 운동’이 크게 일조했다. 전주, 전북대학교에서 10월 22일부터 24일까지 3일간 열리는 세계 한인 비즈니스 대회는 한민족의 경제적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 중요한 국제적 행사이다. 이러한 행사에 많은 국내외 참가자들이 모여드는 이 행사로 인해, 전주가 세계인들에게 비춰지는 모습과 느낌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이번 대회가 열리는 장소와 연계되는 전주 팔달로와 기린로는 전주 시내의 중심 도로로,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곳 중 하나이다. 그러나 저녁 시간대에 이 지역의 조명이 충분하지 않아 어둡다는 지적이 있어, 관광객들의 안전과 도시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전주의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해서는 도로 주변의 조명을 개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특히, 세계 한인 비즈니스 대회와 같은 국제적인 행사가 열리는 시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 대회는 단순히 전북대학교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전주시 전체가 대회를 맞이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팔달로와 기린로는 전주의 주요 상권이 위치한 곳으로, 상인들은 한상대회에 참여하는 국내외 비즈니스맨들에게 첫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지역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대회 기간 동안 거리를 밝히고 환영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전주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잊지 못할 인상을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조명을 밝히는 것은 단순히 밝고 어두움을 떠나, 전주의 따뜻한 환영과 정겨움을 표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도로 주변의 건물과 가게들이 밝은 조명을 켜고, 길거리를 환하게 비춘다면 전주가 얼마나 활기차고 환영하는 도시인지 잘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창문을 통해 밝은 조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각 상점마다 작은 플래카드나 현수막을 걸어“세계 한인 비즈니스 대회 환영”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면, 방문객들에게 더 큰 환영의 느낌을 줄 수 있다. 이를 통해 방문객들은 단순히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넘어서, 전주 시민들의 따뜻한 환영을 직접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관광은 단순히 명소를 둘러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지역의 사람들과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조명을 밝히고, 상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불 밝히기 운동’ 환영 행사를 통해 전주는 ‘환대하는 도시’로서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 팔달로와 기린로를 비롯한 주요 도로의 조명을 밝히는 것은 작은 시작일 수 있지만, 이는 전주가 세계인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인 도시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한 걸음이 될 것이다. 따라서, 지역 상인들과 건물주들이 이번 세계 한인 비즈니스 대회를 맞아 조명을 밝히고, 방문객들에게 따뜻한 환영의 인사를 전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며, 이러한 노력이 모여 전주는 국제 무대에서 더욱 빛나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민관이 힘을 합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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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18 17:07

괴담 선동 정치, 국민이 직접 회초리를 들어야

지난달 김병주, 김민석 최고위원의 연이은 계엄령 음모론에 이어 지난 1일 여야 대표 회담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계엄, 완벽한 독재국가’를 발언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계엄은 실현 불가능한 괴담이다.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계엄령을 발동한다 한들 군이 따를 리 만무할 것이며, 설령 발동했다 하더라도 우리 헌법상 국회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은 해제할 수 있어 170석을 가진 민주당 단독으로 즉각 해제할 수 있다. 계엄령 해제를 막으려는 야당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려고 해도 국회 동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계엄을 시도할 이유도 실익도 없다. 무엇보다 계엄설 발언자들은 명확한 근거나 문건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실체가 유언비어다 보니 근거가 있을 리 만무하다. 직전 독도지우기 괴담도 마찬가지이다. 서울 지하철역과 전쟁기념관의 독도 조형물은 설치한 지 10년이 넘어 각각 ‘독도의 날’과 ‘기념관 개관 30주년’을 맞아 새롭게 단장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대표 지시로 민주당은 독도지우기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했다. 우리 국민은 물론 많은 외국인들까지 보는 독도 조형물이 낡고 탈색된 채로 방치되는 것이 민주당에게는 ‘독도 지키기’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국민은 한일 문제에 있어 이미 성숙해 있지만 민주당은 여전히 반일팔이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반일팔이에 공포심을 더한 작품이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이다. 재작년 민주당은 ‘7개월이면 제주 앞바다에 오염수’, ‘똥물’, ‘오염된 바다’라고 하더니, 작년 이재명 대표는 ‘핵 폐수’, ‘우물에 독극물’, ‘제2의 태평양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말들로 공포 분위기를 조장했다. 하지만 5만 여건의 방사능 검사 결과 안전 기준을 벗어난 사례는 한 건도 없었고, 괴담에 대처하는 비용으로만 혈세 1조6000억원이 쓰였다. 1조6000억원이 사회적 약자 계층에 쓰였다면 어땠을까. 작년 노인일자리 창출 예산은 1조5000억원, 방문간호·요양 서비스 같은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은 1조7000억원이었고, 올 한 해 고립·은둔 청년 지원 예산이 1조4000억원이다. 민주당 괴담에 노인·청년·장애인 지원 사업 중 하나를 포기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큰 국가적 손실인지 모른다. 민주당의 괴담·선동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이벤트가 아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 좌초설, 기뢰설 등 갖은 괴담이 난무하던 중 민주당은 ‘함장이 부하들을 수장 시킨 것’이라는 어불성설을 외친 바 있다. 2016년 사드 배치 당시에는 전자파가 기준치의 0.007%에 불과함에도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 대표가 “인체에 치명적 영향,성주 참외를 오염시킨다”라며 민심을 선동했고, 민주당 의원들도 “내 몸이 전자파에 튀겨질 것 같다”고 노래했다. 문제는 괴담과 선동이 현재진행형이란 점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괴담과 선동에 따른 처벌이 없고 지지층만 좋아해도 절대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책임과 처벌이 없기 때문에 공포를 조장하고, 국민을 선동해, 국론을 분열시켜 정치적 이익만 챙기면 그만이다. 공당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공신력과 책임이 막중하다. 하지만 민주당에 있어 괴담의 무게는 깃털이고 책임은 없다. 하늘이 먹구름으로 잠시 탁해진다 한들 결국은 맑은 하늘로 돌아가듯, 이성과 진실은 마침내 괴담과 선동을 밀어낸다. 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과 사회적 비용을 치른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면책특권 뒤에 숨은 그들에게 국민이 직접 회초리를 들어 괴담 선동에는 뼈아픈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조배숙 국회의원(국민의힘 전북도당위원장·비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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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18 17:03

전북대병원장 임용에 쏠린 눈

요즘 전북대 안팎에선 종종 “누가 신임 전북대학교병원장으로 임명되느냐”는 말이 회자된다. 전북대병원장 임기가 끝난지 두달이 지났으나 아직 후임자가 결정되지 않은 때문이다. 결론은 대학의 자율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대학병원 이사회의 뜻이 강하게 실린 후보를 임명하면 되는 것인데 핵심은 머뭇거리지 말고 조속히 결론을 내라는 것이다. 대학이나 병원의 의중과 달리 외부의 보이지 않는 힘을 빌어서 병원장이 될 경우, 대학병원 운영과정에서 총장과의 불협화음은 불문가지다. 중요한 것은 교육부나 대통령실에서 빨리 결정하라는 것이다. 장고끝에 악수둔다는 말처럼 시간을 끌어봐야 잡음만 날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권이나 관가 안팎에서 로비설과 잡음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전북대병원은 지난 7월 17일 제22대 전북대학교병원장 임용 후보자로 양종철(55)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정영범(54) 비뇨의학과 교수를 최종 선정했다.교육부 심사와 대통령실의 인사검증 등을 거쳐 교육부 장관이 임명하면 새 병원장은 향후 3년간 재직하게 된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차기 병원장 후보를 추천한지 두 달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유희철 병원장은 지난 7월 29일 임기가 종료됐으나 앞으로 언제까지 업무대리를 맡을지 알 수 없다. 문제는 임명이 계속 늦춰지면서 대학이나 병원 안팎에서 각종 잡음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력한 중앙 정관계 인사의 힘을 등에 업고 전북대병원장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말도 들리고, 각종 지연, 학연을 동원한 로비설도 확산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대학병원이나 총동창회 안팎에서도 갈등과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이사회에서는 특정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힘을 실어주면서 1위로 추천했다고 한다. 검증 과정에서 그 후보가 결정적인 자격미달 사유가 있다면 2순위를 임명하면 되고, 만일 그게 아니라면 1위를 조속히 임명하면 된다. 전북대병원 이사회는 이사장인 전북대학교 총장을 비롯해 당연직인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소속 공무원 등을 포함한 11명의 이사로 구성돼 있다. 이들의 뜻을 존중하면 되는 것이지 이사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제3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병원장이 임명된다면 향후 전북대병원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불문가지다. 교육부는 올초 전국의 10개 국립대병원, 4개 치과병원 등 19개 기관을 대상으로 한 서면 평가·현장실사를 거쳐 결과를 발표했는데 전북대병원은 강원대병원, 부산대병원, 제주대병원, 충북대병원과 함께 B 등급에 머물렀고, 나머지 5개 국립대병원은 A 등급을 받았다. 교육부는 개별 병원의 세부 점수를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전북대병원은 B 등급의 병원 중에서도 가장 낮은 점수를 얻었다고 한다. 전국 평가 대상 국립대병원 중 최하위권인 전북대병원은 과연 탈꼴찌가 가능할까. 누가 새 조타수가 되는가에 따라 명운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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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4.09.18 11:32

설렘 가득한 한가위

엄마가 급하게 흔들어 대자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어스름 새벽에 신작로 건너편 방앗간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길게 늘어선 줄에 서 있던 누님하고 바통터치한 뒤 김이 모락모락한 뿌연 공간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운 좋게 갓 만들어 낸 떡을 나눠 먹기라도 하면 마치 큰 선물을 받은 양 즐거워 했다. 왁자지껄한 그 분위기에서 함께 한 동네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시절은 으레 그랬던 것처럼 떡 하나를 만들어도 온갖 불편을 감내하며 가족의 정성이 배어 있었다. 1970년 무렵 필자가 겪었던 분주한 한가위 풍경이다. 오늘따라 유독 그 때의 훈훈함이 아련하고 애틋하게 다가오는 건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추석 연휴를 앞두고 '가을 폭염' 이 맹위를 떨치면서 사람들을 지치고 힘들게 한다. 역대급 무더위 기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사과, 포도 등이 제 색깔을 못내고 당도 마저 떨어져 최대 성수기인 한가위 출하 시기를 놓쳐 농가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그런데다 경기 침체까지 장기간 이어지면서 '명절 대목' 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전통 시장과 골목 상권의 발길이 뜸한 편이다. 심지어는 백화점, 대형마트도 온라인 쇼핑의 폭발적 증가세에 밀려 고전하는 양상이다. 설상가상으로 경제 지표마저 미래 전망을 어둡게 내다보며 서민 가계를 옥죄고 있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일시적인 게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명절 풍속도 또한 각박한 세태를 반영해 과거와 180도 달라지고 있다. 제삿상 영정 사진으로 조상을 추모하던 때와 달리 생전 모습 그대로 AI 영상을 통해 생생하게 소통하는 시대가 됐다. 전통적 명절 증후군 요인으로 꼽혔던 음식 등 제사 준비도 집에서 굳이 만들기 보다는 주문하면 척척 배달이 된다. 벌초도 마찬가지로 대행 서비스가 크게 성업 중이다. 뿐만 아니라 대가족 중심의 가부장 문화가 핵 가족 추세로 급속히 바뀌면서 친인척끼리 모여 시끌벅적했던 명절은 옛말이 되고 있다. 가족 단위 해외 여행객이 명절 연휴 부쩍 늘어난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갈수록 편리함만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자손으로서 도리가 소홀한 것은 아닌지 숙연해질 때가 있다. 부모 떠나 타향살이에 지친 심신을 위로해준 것도 어쩌면 명절에 모인 가족의 힘이었다.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서로간의 끈끈한 사랑을 확인하던 그런 분위기가 그리워진다. 이와 함께 명절이 다가오면 더욱 절실한 문제 중 하나가 초고령화 사회 늘어나는 노인 빈곤층과 함께 사회 안전망 역할이다. 늘 부족하고 궁핍했던 시절 형제가 많아 툭하면 티격태격하던 그 때 그 시절의 빛바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 건 가족 때문일까. 이젠 풍족한 세상이 됐지만 역설적으로 가족 사랑 만큼은 더욱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고 있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았으면…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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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곤
  • 2024.09.12 16:12

평범해서 찬란한 000의 삶

고백하자면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는 끝 삼재라 몸과 마음이 이렇게 힘든가 싶은 일의 연속이었다. ‘그런 거 믿지 않는다’라고 하면서도, 뒤돌아서면 ‘진짜 삼재라는 게 있나?’ 싶었다. 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귀촌을 했으니 건강하게 살 것 같지만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고 또 다른 고민과 걱정이 이어졌다. 퇴사 후 나를 설명할 수단이 없어진 것 같았다. 시간이 많아졌지만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사실 그건 내가 몽골에 살든, 캐나다에 살든 어디에 살아도 겪을 힘듦인데 그것들이 어느 날은 큰 고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귀촌이 대다수 청년의 선택지는 아니었기에 평균의 범주 안에서 살던 내게 귀촌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특별했다. 평범한 내가 한 특별한 선택,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하는 일로 증명해 보이고 싶어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올해 초 퇴사와 함께 여러 관계가 정리되며 진짜 내게 남은 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됐다. 귀촌 두 글자가 주는 특별한 마법은 사라진 것이다. 평범한 나, 무기력함에 초조함을 느낄 때면 그것을 잊으려 정리를 한다며 집을 뒤집어놓거나 유튜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최근 중독에 대해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중독에 빠지는 주된 이유가 바로 고통으로부터 회피라고 했다. 강사님은 마약을 예시로 중독과 고통을 이야기 해주셨는데 코카인과 헤로인, 두 가지 약은 인체에 작동하는 기제가 다르다고 한다. 코카인은 감각들을 활성화해서 쾌락으로 고통을 잊게 하고 헤로인은 모든 감각을 느끼지 못하게 차단해서 고통으로부터 외면하게 하는데 공통점은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고통으로부터 해방감을 원했겠지만, 특히 헤로인을 하는 순간 즐거움과 행복조차 느끼지 못하는 생기 없는 삶을 살게 된다. 피하고 싶은 것만 선택해서 느끼지 못하게 할 순 없는 것이다. 결국, 고통은 삶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을 생각지 못한 중독 강의에서 배우게 되었다. 머리로는 삶에서 고통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며 살았지만 정작 내가 고통스러울 땐 제발 고통을 없애 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피고름을 바늘 찔러 빼야 하듯, 강의를 통해 고통을 도구로 생각해보니 내가 이 도구를 삶에서 어떻게 사용했나 돌아보게 됐다. 평범하고 중간인 삶은 종종 고통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평범함을 긍정하기 쉽지 않은 사회다. 나의 특별함을 찾아보려다 평범하기만 한 나를 마주하면, 온갖 이유로 자신을 고통에 몰아넣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실수임을 알고 있어도 반복하는 실수다. 그렇지만 동시에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중독을 단계별로 치료하듯 실수하고 바로잡는 과정에서 평범함의 아름다움과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도 점차 성숙해질 거라 믿는다. 오늘 하루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원고를 쓰며 막힐 때 때마침 전화 온 친구 덕에 환기했다. 곧 쉴 수 있는 명분 가득한 명절이 있다. 그 속에 친척들의 눈치와 질문 폭탄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도 평범하게 잘 살아온 것 자체로 내가 나를 기특해하려 한다. 그래서 나처럼 제목의 000에는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분들이 자신의 이름을 넣어 스스로 한 번 응원해줬으면 한다. /조아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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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12 16:11

나누고 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사장님, 저건 뭐예요?” 예약실 안쪽 벽을 가리키며 손님이 물었다. ‘송광백련 나비채 음악회’를 알리는 현수막을 걸어 놓았던 것이다. 종종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마다 가까운 절을 찾던 인연에 소식을 접하고 음악회를 여는 취지에 공감하며 나서 걸어놓은 것이었다. 폭염에 시달리던 긴 여름 끝, 풍요로운 가을을 고대하며 호젓한 산사에서 음악을 즐긴다는 것이 퍽 낭만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현수막을 걸어놓은 이후 여러 손님들이 비슷한 즈음에 자신들과 관련된 행사도 열린다며 소식을 알려주기도 했다. 특히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열린 ‘가을날의 뜨락음악회’는 ‘송광백련 나비채 음악회’와 일시가 겹쳐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했다. 나비채 음악회가 열리던 날, 조금 일찍 길을 나섰다. 본행사뿐 아니라 준비하는 모습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송광사 입구에서부터 당황했다. 이미 주차장은 만원이고 인근 도로가에도 차가 즐비했다. 경내로 들어서며 깜짝 놀랐다. 평소 고즈넉했던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 관객들과 손님들로 이미 꽉 차 있었다. 경내를 둘러보며 반가운 얼굴들을 여럿 만났다. 인사를 주고받으며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몇 번쯤 비슷한 느낌을 받아 의아하던 차에 이유를 알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인사 나눈 분은 신부님, 조금 전 뵌 분은 목사님, 또 수녀님. 종교의 경계를 넘어선 어울림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오신 스님들 또한, 아침에 가게에서 국밥을 드셨다는 이유로 반갑게 아는 체 해주셨다. 무대에 서지 못해 아쉽다던 판소리 명창, 다음 해 나비채 음악회에는 꼭 출연할 거라는 국악 연주자,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나비처럼 걷던 무용가도 음악회 전의 흥겨움을 함께 즐기고 있었다. 이날만큼은 부처님께 고요히 기도하는 도량이 아니라 멋진 공연장이 된 듯했다. 국내 유일이라는 십자형 전각이 신비로워 구경하다가 뜻밖의 손에 이끌려 공양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행사 두 시간 전인데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공양밥 먹는 즐거움을 포기할까 잠깐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공양간은 물론이고 곳곳에서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고 웃으며 봉사하는 분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어떤 행사든, 관객보다 준비하는 이들이 첫 번째 손님이지 않을까 싶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봉사자들의 손을 잡은 어르신들이 경내로 들어섰다. 이어 장애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인근 지역의 사회적 약자들과 부녀회장님들이야말로 제일 먼저 모시고 싶은 이날의 VIP라던 주지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종교가 기도와 말씀뿐 아니라 문화예술을 비롯한 다양한 방법으로 이웃과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거름부터 밤까지 이어진 산사음악회는 폭염에 지친 몸과 마음에 위로와 휴식이 되었다. 팔작지붕을 타고 흐르는 오케스트라의 선율은 선선한 가을바람처럼, 바리톤의 목소리는 촉촉한 단비처럼 느껴졌다. 기회가 닿는다면 국밥집에만 갇혀있지 말고 음악회나 전시회 등 문화예술 현장에도 자주 찾아가야겠다 싶었다. 생업에만 매여 사느라 그간 이런 감동을 몰랐던 자신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여러 손님들이 연휴기간 펼쳐지는 행사 소식을 전해주었다. 경기전과 전라감영, 한옥마을, 국립전주박물관 등에서 무료로 열리는 공연과 체험행사가 많다. 추석에는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온 손님들이 반가운 얼굴을 비추며 국밥집 아주머니를 찾기에 자리를 비우기 쉽지 않지만,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행사 한두 개쯤은 좀 욕심을 내어보아도 되지 않을까. 그곳에서 또 어떤 인연을 만나고 깨달음을 얻을지 기대된다. /유대성 전주왱이콩나물국밥전문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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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12 14:49

가족간의 매매거래를 인정할까

우리 헌법과 민법은 계약 자유 원칙을 선언하고 있으며 일부 제한을 가하고 있지만 부모와 자녀간의 매매계약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족간 거래의 경우 세법은 그 거래를 매매가 아닌 증여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 증여로 추정합니다. 세법이 가족간 거래에 대하여 증여로 추정하는 규정을 둔 취지는 가족 간 매매는 실제 유상거래보다는 증여일 개연성이 높을 뿐 아니라 가족간 거래는 그 내용을 은폐하기가 쉬워 세무공무원이 실질 내용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가를 지급하고 정상적으로 양도받은 사실이 명백하게 입증되는 경우라면 매매라고 볼 여지가 있기 때문에 만약 실제 유상거래라면 거래사실을 명백히 입증할 뿐아니라 자금출처 및 사후관리까지 준비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매매로 인정받으면 끝일까요? 부모가 자녀에게 부동산을 매매하려면 매매가액을 결정해야합니다. 부모와 자녀간의 거래이기 때문에 3자와의 거래가액으로 거래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양 당사자의 사정으로 인하여 시가보다 높은가격으로 거래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가보다 낮은 가액으로 거래되기를 원할것입니다. 만약 시가보다 낮은가액으로 거래한다면 매수하는 사람이 이익을 보게 되어 그 거래로 인해 이익을 얻는 자에게는 증여세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보면 시가 판단을 하는게 우선이며 특수관계자의 경우 시가보다 70% 미만의 거래가액으로 매수를 하게 된다면 매매거래라 할지라도 증여로 바라볼 것입니다. 부모의 재산을 넘겨오면서 세금을 가장 적게 내는 방법을 모색하다 보면 증여보다 양도가 유리하는 판단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자녀로부터 대가를 받는 것이 부담스러워 매매계약서상에 대가를 추후에 지급하거나 지급하고 나중에 돌려받는 것을 계획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가족간 매매거래자체를 증여로 추정하는 법률 규정이 있기 때문에 매매계약서의 작성과 대가의 자금출처 및 지급에 대한 증빙을 잘 준비해야만 합니다. /조정권세무회계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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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12 14:49

가을의 숲길에서

달궈진 오븐 속 같던 여름의 열기가 사라지니, 입맛을 찾고 숙면을 취한다. 아침마다 한결 쾌적한 공기 속에서 기지개를 켜면 가슴에 밝은 기분과 낙관적인 희망이 깃든다. 교하의 가로수인 벚나무 잎은 벌써 반쯤 단풍이 들었다. 요즘 교하도서관 뒤편에서 중앙공원을 잇는 숲길을 걷다가 빽빽한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들 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만날 때 홀로 큰 감동을 받는다. 숲길 바닥에는 도토리가 뒹굴고, 내 부주의한 발밑에서 밟힌 도토리는 여지없이 으깨진다. 여름이 끝나자 빛과 그림자의 존재감은 옅어진다.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의 발 아래 그림자가 지고, 땅에 단단한 몸통으로 서 있는 나무 아래에도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들이 암시하고 일러주는 철학적 진실은 무엇인가? 낙엽이 활엽수의 그림자라면 재는 장작불의 그림자가 아닐까? 그림자란 음의 세계가 빚은 빛의 주검이고 잔류물! 그림자와 실체의 운명은 늘 하나로 움직인다. 그렇다면 죽음은 생명이 제 안에 드리운 그림자일 것이다. 나무들은 빛으로 광합성을 하며 성장한다. 빛이 없다면 나무는 자랄 수 없다. 나무들이 태양의 열기를 차단하는 까닭에 숲속 공기는 바깥보다 시원하다. 숲속에서 공생하는 나무들은 사회화된 존재다. 나무는 수직으로 서고 땅속 뿌리는 복잡하게 엉켜 있다. 나무들은 뿌리는 뿌리대로, 줄기와 가지는 그것대로 엮이고 얽힌 채로 공생한다. 숨 쉬고 바스락거리며 수런거리는 나무들. 우리는 나무들이 잎맥과 미립자를 가진, 호흡하고 제 나름의 신경계를 가진 생명 개체라는 엄연한 사실을 자주 잊는다. 따져보면 인류는 숲의 자식들이다. 우리 선조는 숲의 열매와 씨앗, 뿌리를 채취해 식량으로 삼고, 숲에서 안전한 잠자리를 마련했다. 숲은 우리 삶의 터전이고, 의문의 여지없이 우리 운명의 강략한 원소 중 하나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인류는 숲의 부양을 통해 제 생명의 필요와 욕망을 충족하며 공생하는 지혜를 발휘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인류가 숲의 피부양 가족의 일원이란 점에서 우리는 한 형제인 것이다. 인류학자 팀 잉골드는 ‘조응’이란 책에서 ‘인간 몸의 상당 부분은 나무 형상의 공기다. 따라서 이 나무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우리 모습을 보여준다. 뻗어나간 나뭇가지의 구조는 폐, 둥글게 얽힌 뿌리는 입, 우거진 숲 지붕의 형태는 숨이다’라고 쓴다. 나무들은 사람에게 신호를 보내고 말을 건넨다. 하지만 우리는 그걸 듣지 못한다. 나무는 인간을 속속들이 알지만 우리는 나무를 알지 못한다. 인간의 무지몽매함 탓에 제 형제를 베고 제재소에서 몸통을 자르며 쓸모가 덜한 뿌리와 잔가지를 불태운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인간은 숲을 토벌하고 빈 땅을 공동 거주지나 경작지로 바꾸었다. 그 과정에서 제 양육자인 어머니 숲을 살해한 사태는 인간의 무분별한 탐욕과 무지로 빚어진 잔혹한 일이다. 인간은 한 점의 죄의식도 없이 지구 자원을 마구 퍼 쓰고, 다른 동물의 피해를 끼치며 지구 생태계를 망가뜨렸다. 펜데믹 초기 엄격한 봉쇄 조치와 이동을 제한하자 자연은 놀라운 회복력을 보였다. 대기와 물이 깨끗해지고, 야생동물이 자주 도심에 출몰했다. 인간이 활동을 멈추자 자연 생태계와 동물 서식지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인간이 지구 생태계의 유해종이라는 낙인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이 오명을 벗으려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동료 인간에게 더 두터운 이타적 우정을 쌓고, 숲과 우리가 생명 공동체 안에서 공존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오늘도 고즈넉하고 조용한 숲속 오솔길을 걸으며 디지털 기기의 소음과 번잡함에서 풀려나며 홀가분한 자유를 만끽하며 사색에 몰입한다. 산책하는 내내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은 잦아들고 대신 고요와 기쁨이 찾아든다. 고요가 빚은 사색 속에서 우리의 무의식에 각인된 정체성이 수목 인간이라는 걸 말하는 게 아닐까 라고, 나는 혼자 생각해 보는 것이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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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1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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