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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정읍에서 30년 넘게 예술적 여정을 묵묵히 꾸려온 정운광 화가가 여정의 봇짐을 풀어놓는다. 정 작가의 개인전 오지게 핀 서정성이 오는 15일까지 정읍 연지아트홀에서 열린다. 삶의 중심에 그림 그리는 일을 위치시키고, 항상 붓을 들고 사는 미술가. 그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알차게 다져서 선보이는 자리다. 그는 지난 1991년 전주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서구 현대미술의 흐름을 익혔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고향에 닻을 내리고 정착했다. 그때부터 30여 년 간 아름다운 정읍의 산과 들, 일상에서 대면한 정물 속에서 자연의 미감을 탐구해왔다. 그는 구상과 추상을 경계 없이 넘나든다. 찐득한 물감을 나이프로 쌓고 긁어내는 기법으로 시간과 공간을 담는다. 그리고 그 위에 암시적인 기호와 모호한 형상들을 숨긴다. 이를 두고 문리 미술평론가는 정운광의 회화는 지극히 감각적이면서도 절대 가볍지 않은 울림을 준다. 거듭 쓴 양피지처럼 끊임없이 감각을 절제하면서 색채와 이미지들을 중첩하기 때문이라며 팔레트 위의 모든 색을 변주한 풍성한 색채는 시각에 호소하고, 물질적 현존의 공간으로 바꾸어서 구축한 질감은 촉각을 건드린다고 평했다. 정 작가는 전주대 사범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경희대 교육대학원과 파리 그랑쇼미에르에서 수학했다. 현재 서영여고 미술교사로 있다.
문화재청이 최근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로 김수연(72) 명창을, 적벽가 보유자로 김일구(80) 명창을 인정 예고하면서 소리 고장 전북이 자존심을 높게 세웠다. 김수연 명창과 김일구 명창은 기쁘고 영광스럽지만, 너무 늦은 나이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선정돼 시간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후계자 양성 등 자신들의 문화재를 전수할 시간이 부족해서다. 평생 소리 외길을 걸어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판소리와의 운명적인 만남 김수연 명창 이번에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로 인정예고 된 김수연 명창은 군산 출신이다. 어린 시절 김 명창의 놀이터는 국악원이었다. 마을에 놀이터가 없어 뛰어놀 공간이 부족했던 그는 국악원 연습실을 헤집고 다녔다. 그곳에서 매일 같이 소리를 듣다 보니 소리에 귀가 트기 시작했고, 어깨너머로 본 소리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당시 군산국악원장이었던 김재경 명창은 어린 김수연 명창의 소리에 빠져들었다. 김재경 명창은 김수연 명창의 어머니를 찾아가 수연이가 소리에 소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소리를 전공할 수 있도록 직접 가르쳐보고 싶다고 제안했다.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주변에서 어린 나이에 한이 있다는 극찬을 받았다. 최고의 칭찬이었다. 김재경 명창이 떠난 후 김수연 명창은 이리(현재 익산)에서 배움을 이어나갔고, 21살 무렵 박초월 명창을 찾아 서울로 상경했다. 당시 박 명창은 소리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박 명창은 돈도 없고, 연고지도 없던 그에게 숙식을 제공해주는 등 큰 힘이 됐다. 김 명창은 정말 어려웠던 시절 선생님(박초월 명창)께서 베풀어 주신 정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박 명창에게 흥보가와 수궁가를 배운 그는 춘향가와 심청가를 배우기 위해 성우향 전 보유자를 찾아가 전수받았다. 스승의 은혜를 잊지 않아서일까. 김 명창은 현재 서울에서 학원을 운영하며 스승의 가르침대로 어려운 제자들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박초월 선생님 밑에서 공부할 때 선생님의 가족이 우리가 죽이라도 같이 먹고 살자고 했던 따뜻한 마음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면서 스승의 가르침대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제자들을 위해 도움을 주려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가난이 선물한 소리 김일구 명창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김일구 명창이 소리를 시작한 직접적 동기는 가난이었다. 소리를 좋아하는 어른들로부터 소리꾼들이 용돈을 받는 등 경제적인 도움을 받는 모습을 본 그는 소리만 배우면 대우를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김 명창은 평소 소리를 즐겨하신 아버지를 통해 소리에 입문한다. 지독하고 혹독했던 가난이 그를 소리의 길로 인도한 셈이다. 20살이 된 김 명창은 1960년 광주 호남국악원에 활동하고 있던 공대일 명창을 찾아가 흥보가를 배웠다. 이후 박봉술 전 보유자에게 적벽가 등을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변성기가 찾아왔다. 무리해서 소리를 하다간 목이 꺾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그는 악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22살이 되던 해인 1962년 목포 유달국악원에서 활동하고 있던 장월중선 명창을 찾아가 아쟁산조를 배웠고, 1968년에는 부산에서 활동 중이던 원옥화 명인으로부터 가야금을 배우며 전통악기의 대가로 성장하게 된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많은 공연을 한 그는 예향의 도시 전주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특히 판소리의 고장인 전북에 있는 전주대사습놀이와 전주세계소리축제가 펼쳐진다는 점에 더욱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 서울 생활을 청산한 그는 2001년부터 예향의 도시 전주에 정착해 한옥마을에 온고을 소리청을 개관했다. 그의 목소리에 반한 당시 김완주 전주시장은 전주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명창은 청년 시절부터 전주에서 언젠가는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면서 생각만으로 쉽지 않았지만 당시 김완주 시장의 도움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주는 명예를 안겨주고 제자 양성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세우도록 한 도시라면서 앞으로 전통 판소리를 전승계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년)는 쇠퇴한 고려를 바꾸기 위해 당시 권문세도가에 밀린 신진사대부들과 손을 잡고 역성혁명에 성공한다. 1392년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오르면서 국호를 조선이라 칭하고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가 시작된다. 전주는 태조의 본향으로 그 선대가 살았던 곳이다. 그의 아들 태종 이방원은 이를 기념해 1410년(태종 10) 전주에 경기전을 건립하고 태조어진을 봉안했다. 이후 1872년(고종9) 구본이 낡자, 이를 세초해 땅에 묻고 박기준, 조중묵, 백은배 등 8인의 화사가 태조어진을 새로 모사해 경기전에 모셨다. 당시 모사한 경기전 태조어진은 현존하는 유일한 조선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다. 평상시 집무복인 익선관과 청룡포 차림으로, 백옥대와 흑화를 착용한 전신상이다. 태조는 키가 크고 몸이 곧바르며, 귀가 아주 컸다고 한다. 이런 태조어진 진본을 전주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어진박물관은 개관 10주년을 맞이해 국보 제317호인 조선태조어진 진본을 6일부터 이달 30일까지 3주간 특별 공개한다. 경기전 경내에 위치하고 있는 어진박물관은 평소에는 태조어진 모사본을 전시하지만, 매년 개관일에 맞춘 시기에 진본을 전시한다. 또 조선의 왕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도(도유형문화재 224호)와 올해 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의장물 용선과 봉선(도유형문화재 271호)도 함께 전시한다. 경기전 일월오봉도는 태조어진 뒤에 펼쳐져 있던 것이다. 1872년 태조어진을 새로 모사해 경기전에 봉안할 때 제작 한 것으로, 다른 일월오봉도와 달리 특이하게 산 양편에 폭포 그림이 없다. 어진 뒤에 펼쳐진 일월오봉 병풍은 경기전의 것이 유일하다. 용선, 봉선은 왕의 위엄을 높이기 위한 의식구로, 각각 양면에 황룡과 봉황이 그려져 있다. 태조어진 거둥 시, 의장대가 들고 어진의 뒤를 따랐으며, 평상시에는 경기전 정전 내에 도열해 두었다. 경기전 용선 봉선은 조선왕실의 의식구로 유일하게 남아있어 그 가치가 높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2020년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온라인으로 옮겨갔다. 이미 많은 공연과 축제들이 취소된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전주의 가을 하늘 아래서 마주했을 공연을 컴퓨터 모니터와 스피커로 만날 때, 야외에서 즐겼던 전주세계소리축제를 그리워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축제를 이어가기 위해 애쓴 스태프들 덕분에 공연은 녹화공연을 편집해 보여주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영상은 현장에 있는 듯 가까웠고, 사운드는 생생했다. 올 6월 26일부터 8월 21일까지 KBS1에서 방송한 <한국인의 노래>는 9번의 방송을 통해, 음악을 버리지 않은 보통사람의 삶과 꿈을 보여주었다. <한국인의 노래>는 충분히 많은 전문가들 틈바구니에서 삶에 깃든 음악과 음악에 스민 삶으로 카메라와 마이크를 옮겼다. 모든 출연자들이 비전업/아마츄어 음악인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언제 음악을 만나고, 어떻게 음악에 사로잡혔는지 보여주고, 삶에 밀려 음악과 거리를 둔 채 살아가면서도 음악을 놓을 수 없는 진심을 토로할 때, <한국인의 노래>는 음악의 보편성과 힘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로 빛났다. 사실 음악조차 자신이 누군가의 삶에 이렇게 깊숙이 뿌리내릴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인의 노래>는 음악이 필연이 되어버린 이들의 목소리를 빌어 음악의 의미와 가치를 묻고 답했다. 전업 뮤지션이거나 전업 뮤지션에 육박하는 실력을 갖춘 이들의 솜씨는 이미 수준급이었다. 게다가 진심을 다한 노래가 마음을 흔들지 않을 리 없었다. 2020년 전주세계소리축제 무대에서 를 올린 것도 음악의 가치와 매력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김준수, 김은혜, 윤준, 임수현, 손세운, 김도연, 임철호, 정보권으로 이어진 출연진들은 두 곡의 노래만 불렀지만, 프로그램을 본 이들은 노래에 배어 있는 열정을 알고 있었다. 프로그램의 음악감독으로 함께 한 뮤지션 하광훈 역시 그들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모든 이들을 따뜻하게 맞고 다정하게 소개했다. 돌고 돌아 가는 길로 시작한 공연이 신라의 달밤으로 이어지는 동안 16곡의 노래는 대부분 잘 알려진 한국인의 노래였다. 사실 출연진에 따라 노래의 완급과 소화력에서 차이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공연은 누가 더 잘하는지 겨루는 장이 아니었다. 자신의 삶만큼 노래하면 족했다. 음악의 빈 틈은 하광훈이 이끄는 밴드가 채웠다. 하광훈은 특유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터치로 군더더기 없고 트렌디한 사운드를 결합시켰다. 다만 또 다른 기회가 있다면 더 다양한 한국인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도 좋지 않을까. 이제는 토종 한국인만 한국인이 아니고, 한국인의 노래가 트로트와 성인 가요, 전통음악만은 아닐 테니까. 그때는 진행자가 젊은 출연진에게 은근하게 말을 놓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작품설명 아름다운 정읍의 산과 들, 일상에서 대면한 정물 속에서 자연의 미감을 탐구하고 추상적 조형성을 포획한 화가이다. 지극히 감각적이면서도 절대 가볍지 않은 울림을 준다. 거듭 쓴 양피지처럼 끊임없이 감각을 절제하면서 색채와 이미지들을 중첩하기 때문이다. 찐득한 물감을 나이프로 쌓고 긁어내는 기법으로 시간과 공간을 담는다. 그 위에 암시적인 기호와 모호한 형상들을 숨겨서 추상성을 숙성시킨 것이다. 미술가 약력 정운광은 전주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졸업.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및 파리 그랑쇼미에르에서 수학했다. /작품해설=문리(미술학 박사, 미술평론가)
전라감영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3년 가까이 진행된 복원 과정을 생생히 기록한 책이 나왔다. 손상국 작가의 <전라감영 이야기>(신아출판사). 현재 프리랜서 PD로 활동하는 작가가 쓴 책답게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이야기 전개와 생생한 사진들이 인상적이다. 특히 저자가 2년 7개월간 전라감영 복원 현장에 상주하며 찍은 사진들은 복원 역사를 말해주는 소중한 기록이기도 하다. 책은 다섯 개의 소주제로 나뉘어 있다. 1장은 옛 전라북도 도청 부지의 역사적 상징성을 부각한다. 옛 도청 부지에는 전라감영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관청 유구와 후백제 동고산성에서 나온 관(官) 자가 새겨진 와편과 흡사한 기와 조각이 발굴됐다. 이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이곳에 중요한 관청이 자리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1884년(고종 21) 전라감영을 방문했던 미국 임시 대리공사 조지 클레이튼 포크의 일기도 소개하고 있다. 포크의 일기에는 당시 전라감영의 모습과 그가 겪었던 일이 소상하게 기록돼 있다. 그가 전라감영에서 촬영한 두 장의 사진도 실었는데 일기와 사진 모두 흥미롭다. 34장은 전라감영의 역사와 감사들이 했던 일을 비롯해 전라감영이 맛과 멋, 풍류로 상징되는 전라도 문화에 끼친 영향 등을 소개한다. 5장은 전라감영 복원 기록이다. 작가가 촬영한 복원 현장 사진 가운데 100여 장을 엄선해 실었다. 손 작가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교육방송과 JTV 전주방송에서 PD로 근무했다. 저서로 <심춘순례> <최치원을 추억하다-고현내 사람들과 최치원 영정 이야기>가 있다.
그린다는 것은 바람에 스치는 향기를 모아 영토를 돋우는 일, 빛과 그늘 사이 퍼지는 색깔, 그 색깔을 모아 궁전을 짓는 일, 서툰 목수처럼 지었다 헐고 헐었다가 다시 짓네 (시 캔버스에 세우는 나라 중) 시는 청춘의 장르라는 말이 있다. 그 편견 아닌 편견을 넘어 60년 가까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향아(82) 시인. 이 시인은 1960년대 초반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시적 공백기라고 할 만한 시기가 없을 정도로 꾸준하게 창작 생활을 이어왔다. 동시에 수필가이자 시 이론가로서 적지 않은 책을 발간했다. 그런 그가 이번엔 시집 <캔버스에 세우는 나라>와 한영대조시집 <저녁 강가에서>를 내놓았다. 시인에겐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을 것만 같다. 시집 <캔버스에 세우는 나라>에서는 인생의 무대에 대한 그의 겸허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세속적 가치를 비판하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려는 시심이 빈도 높게 드러난다. 이 시인은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 인간적정신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를 숭배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견지한다. 그러면서 자연과 고요의 세계를 지향한다. 이 마음은 현실의 대안 세계는 찾는 일이다. 이형권 문학평론가는 시 해설을 통해 이 시집의 시편들은 높고 원숙한 삶의 정신에 도달한 시인이 그동안 살아온 시간에 대한 성찰의 언어로 채워져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평생을 외워도 익숙하지 않은, 한순간도 그물에서 헤어날 수 있는, 혹은 소소하고 혹은 거대한 그게 모두 슬픔이요 껍데기라 하면서도, 가쁜 숨 몰아쉬며 끌어안는 이름들, 그것이 사랑인 걸 여태 몰랐다 (시 모르고 살았다 중) 시집에는 탈속을 추구하는 시뿐만 아니라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깨달음의 시, 노년을 맞이해 느끼는 상념을 노래한 시 등도 담겼다. 이에 대해 이 평론가는 시집에 나타나는 세상에 대한 비판, 세상 너머의 세계를 꿈꾸는 일 모두 세상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분석했다. 이 사랑의 힘이 시인이 평생 시를 써온 에너지, 즉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다는 것이다. 한영대조시집 <저녁 강가에서>는 이 시인의 시 50편을 선별해 한글과 영시를 함께 실었다. 따뜻한 시선으로 삶을 관조하는 시인의 태도가 읽힌다. 특히 시의적절하게 사용된 시어들, 토속적인 아름다운 말들을 시인의 의도에 맞게 번역한 영시는 또 하나의 작품과도 같다. 영어 번역은 제1회 창조문예번역상 수상자인 이정호 번역가(서편탐약품 회장)가 맡았다. 이 시인은 1963~66년 <현대문학> 3회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경희대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수십 권의 시집, 수필집, 문학이론서, 평론집 등을 발간했다. 현재 국제펜클럽한국본부 고문, 문학의집서울 이사, 호남대 명예교수 등을 맡고 있다.
알맹이로만 또글또글 살아있는 시어를 만나면 시집을 마구 쓰다듬어주고 싶다. 영혼의 창문이 열린 듯하고 열린 창문으로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가슴이 콩닥거리기도 한다. 그 시어를 품어 내 살을 채우고 싶기도 하고, 시가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살에 몸을 맡기며 위로를 받기도 한다. 지난 여름에 만난 시선집이 그랬다. 나혜경의 시, 김동현의 사진으로 구성된 시선집, <파리에서 비를 만나면>이다. 사라질 것만 찍고 싶다는 사진가와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만 찍고 싶다는 시인처럼이라는 표현이 차례를 읽기도 전에 내 마음을 흔들었다. 파리의 풍경 한 점과 시 한 수가 마주 보는 시선집. 나지막하게 말을 건네는 파리의 사진 50편과 절제된 언어 뒤로 숨겨놓은 마음이 담긴 시 50편으로 구성됐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마치 파리의 풍경 속에서 시를 읽고 있는 느낌이 든다. 여유로움과 낯선 감흥에 젖는 시선집이다. 뒤엉킨 기억의 조각들을 바로 맞춰주는 저장소인 사진. 그 사진에서 풀어낸 언어들을 농축시켜 건져 올린 시어. 시인에게는 신이 허락한 언어의 축복이 있다고 했다. 미주알고주알 얘기하지 않아도 살며시 밀어낸 시어에서 쏟아져 내리는 생각들이 경이롭다. 한 발 나아갈 수 없을 땐/제자리에서 저렇게 깊어지는 겁니다 (나혜경 시 나무 홀로 푸르다 전문) 짧은 두 행으로 완성되는 삶의 진리. 달려오다가, 달려갈 길이 아직 남았는데 길이 뚝 끊겨버렸을 때. 괜한 헛손질로 기력이 쇠잔하여졌을 때. 특히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젖은날개를 접어야할 때. 그 자리에서 어둠을 두려워하지 말고 더 깊숙이 뿌리를 내려야 함을, 그것이 인생임을 깨닫게 한다. 안으로 창을 내고 깊이를 재정비할 때라며 나직한 함성으로 격려한다. 소망을 잃은 듯, 뺏긴 듯 무심한 오늘, 그리고 또 내일을 견디어내려면 침잠하라 한다. 거기서 새로운 도근점을 찾으라 한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마음 놓을 만한 문장을 찾아내어/ 음악처럼 듣고 또 듣는다 (나혜경 시 안녕을 빌 만한 문장 중) 해결해야 할 일에 짓눌려 앞이 안 보일 때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또는 한층 위로 솟구쳐 올라서 그것도 아니면 한 길 아래로 내려가서 이 시구를 곱씹어 볼 일이다. 혜안을 얻을 수 있는 시구는 다시 일어설 힘을 풀무질할 것이다. 간단한 식사를 학습하는 동안 아무도 모르게/ 흩어진 이름을 간절히 부르기도 하는 비/ 마술사처럼 나는 낭만을 귓바퀴에 올려놓고 만지작거리고 있다/ 쏟아지지 않게/ 조심조심하며 (나혜경 파리에서 비를 만나면 중) 비가 오거나, 바람이 소슬하게 불어올 때, 눈이 내리고 다시 진달래가 피어날 때.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을 대할 때든 혼자여서 설움이 짙어질 때든지 어느 때나 그리움이 묻어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제 조심조심 그리움을 부르며 더불어 징검다리를 건너보자. 라일락에게서 꽃 한 가지 얻어와 유리병에 꽂고/ 배추꽃 몇 송이 얻어와 비빔밥 위에 얹고/ 목련에게서 꽃 한 송이 얻어와 뜨거운 물에 우리고/ 단풍 한 잎 얻어와 책갈피에 끼워 놓고 홀쭉한 맘 다독이는/ 살아가는 일은,/ 얻어, 먹는, 일 (나혜경 시 걸식 전문) 우리네 삶, 하루하루는 자연에게서 조금씩 빌려 쓰고 돌려주는 것이란다. 아직 얻어 쓸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감사할 가을이다. 평화동 사거리에서 용흥 중학교로 가는 길에 은행잎이 노란 불을 켜서 이 가을을 익히고 있다. 가을향의 맑은 소리를 얻어 들으며 시 한 구절 펼쳐놓고 거닐어 볼 만하겠다. *이진숙 수필가는 전직 고교 국어교사, 2010년부터 최명희문학관에서 혼불 완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1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됐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점점 사람들은 번잡한 도시와 실내공간을 떠나 바이러스 안전지대인 농어촌으로 떠나고 있다. 현실은 어떨까. 과거 서울에서 삶을 살다가 완주군 고산면으로 귀농을 결심한 한 마을 전문가가 귀농의 현실을 설명한 <이제, 시골>(소일)을 발간했다. 이 책은 도시를 떠나 지역생활에 눈을 돌리는 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귀농귀촌 생활 가이드북이다. 책 속에 소개된 많은 관련 사례를 접하면 지역에 대한 저자의 사랑과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또 귀농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 일자리 지원금을 놓고 쉽게 이야기하는 농촌 공무원들을 향해서 귀농의 냉정한 현실을 이야기한다. 저자인 임경수씨는 현재 완주군 고산면에 협동조합 이장을 설립해 주민자치와 지역자산화사업에 힘을 쓰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마을 만들기 전문가인 저자는 귀농과 귀촌의 차이는 사실상 애매하다며 귀향(歸鄕)이라는 단어를 소환한다. 성공적인 농촌 안착을 위해 각자에게 주어진 상황에 맞춰 귀향을 디자인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농사만 짓는 삶이 아니라 농사와 더불어 스스로를 이곳에 안착시킬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임 작가는 이 책을 농촌과 지역에 관심이있는 청년, 농촌과 지역에서 일하는 공무원, 인생의 2막을 준비하는 세대가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을만들기, 마을교육 전문가로 알려진 그는 2010년 완주군으로 이사하면서 사회적기업 이장의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2011년에 퍼머컬처대학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전주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의 센터장직을 맡았다. 2020년 현재는 완주군 고산면에 협동조합 이장을 새롭게 설립, 주민자치와 지역자산화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어머니. 누구든 이 단어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죄송함이 따른다. 장수출신 고강영 작가는 삶의 모든 것이라 표현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삶을 살아가며 가족과 이웃, 친구 등 다양한 사람과 만나고 생각해보게 된다. 자신이 누군가를 만나 경험하고 느낀 마음을 그대로 담은 <그분>(장수문협)을 펴냈다. 작가는 100세에 하늘나라로 떠난 울 엄마가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과 문학은 어머니로 물들어졌다고 표현할 정도다. 6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고 작가의 어머니는 자신을 기도로 키웠고 배고프던 시절 기죽지 않도록 자존심을 세워줬다고 한다. 이 책에서 그 분은 어머니 외에도 다른 사람들도 칭한다. 우리 주변에 있는 이웃, 부인, 자녀, 자신을 가르쳐준 선생님 등 다양한 인물을 지칭한다. 고 작가가 어린시절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느끼고 생각했던 에피소드를 풀어냈는데 순수한 문장 그 자체다. 고 작가는 글을 쓴다는 것이 어렵고, 때론 생각이 열리지 않아 한계를 절감했다면서도 늦게나마 수필을 만나 일상의 삶 속에서 나의 삶과 삶의 본질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다고 설명했다. 장수출신인 고 작가는 장수초등학교와 장수중학교, 전주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일 장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1974년부터 2001년까지 농협중앙회 장수군지부 차장,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장수농협장을 역임했다. 2006년 대한문학 수필에 당선돼 등단했다.
예술의 세계는 끝이 없다. 권윤희 작가는 예술은 보는 이의 가슴 속에 전해져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문인 예술은 깊은 철학과 학문이 전제돼 성립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방법과 접근이 없으면 진정에 다다르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아름다운 것은 추사에 대한 인품과 학식에 대한 천착이 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배경을 알고 있어야 세한도에 담긴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인화가이자, 철학박사인 권윤희 작가가 선인들의 문화예술 중심인 문인화에 초점을 두고 오랜기간 연구한 결과물을 책으로 발간했다. <마음으로 읽어내는 명문인화1>(유니랩). 이 책은 미학코드로 보다라는 부제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예술의 세계를 보다 가치있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길러준다. 책에는 표암 강세황,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공재 윤두서, 호생관 최북 등의 대표작과 함께 이들의 일대기와 그림에 담긴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권 작가는 코로나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고, 한 치 앞도 분간을 못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다시 생각할 때가 되었다며 원초에서 뒤돌아보고 스스로 우리의 삶을 열어야 한다. 전 세계가 여러 분야에서 한류의 열풍에 있다. 이젠 우리의 인문학도 한류로 승화시켜야 한다. 이는 곧 한류 인문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성균관대에서 철학박사를 받은 후 성균관대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외국어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또 한국외국어대 철학문화연구소 초빙연구원, 한국서예협회 평론분과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문인화의 개념, 가치, 심미를 주요 연구 주제로 삼고 있으며,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조선 문인의 예술을 연구하고 있다. 풍죽 문인화가로서 문인화로 두 번의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저서로 <강암의 풍죽>과 도록 <파란 댓잎 소리가 들리네> 등이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노동조합(위원장 김신명)이 특정 출판단체 중심으로 구성된 현 진흥원의 이사회를 지적하고 다양한 분야의 이사진 구성을 재차 요구하고 나섰다. 3일 진흥원 등에 따르면 진흥원은 오는 10일까지 비상임이사 4명과 비상임감사 1명 등 임원 5명을 공모한다. 임기는 각 2년이다. 앞서 지난해 7월 진흥원 노조는 이사진 3명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다양한 분야의 이사진 구성을 요구한 바 있다. 원장과 당연직 이사 2명을 뺀 7명 중 5명이 일부 출판단체 인사 위주로 구성돼 있어 출판문화산업 전반에 걸친 의견을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진흥원 이사진 구성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사진 3명이 대한출판문화협회(2명), 한국출판인회의(1명) 등 특정 출판단체 중심으로 똑같이 채워진 것이다. 현재 진흥원 이사회는 김수영 원장과 당연직인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정책국장 외에 대한출판문화협회 3명, 한국출판인회의 2명, 한국출판학회 1명, 한국서점조합연합회 1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돼 있다. 진흥원 김신명 노조위원장은 진흥원 이사회가 특정 출판단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로 전락했다며 문체부와 이사회는 특정 출판단체에 한정하지 말고 독서유통인문인쇄출판저작권소비자단체(모임)1인출판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이사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노조는 현재와 같은 이사진 구성이 유지될 경우 내년 예정된 원장과 사무처장 선출에도 특정 출판단체의 입김이 작용할 것을 우려했다. 원장과 사무처장은 임원추천위원회의 공모 절차를 거쳐 선임되는데, 이 임원추천위는 정관에 따라 절반 이상이 기존 이사진으로 꾸려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출판진흥원 관계자는 문체부와 임원추천위 등에 노조의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며 이를 감안해 심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행촌수필문학회(회장 양영아)가 주관하는 제13회 행촌문학상에 윤철 작가와 이금영 작가가 선정됐다. 소재호김영김경희 심사위원은 심사평을 통해 윤철 작가는 작품 속에서 인간주의 또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족의 의미를 다양하게 변주해 피력했다. 교훈적이지만 수필다운 문학성 함양에 소홀함이 없다며 문장 또한 유연하고 문맥이 물 흐르듯 쾌쾌하다고 밝혔다. 또 이금영 작가는 모정의 세월을 회상하며 어머니에 대한 모정과 잘 모시지 못했던 회한을 형상화하듯 그림 그리고 있다며 회상 시제와 현재진행형 시제가 교차하며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구성해 가는 재주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김제 출신인 윤 작가는 2013년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진안군 부군수를 역임했고, 현재 전북수필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수필집 <칸트에게 보내는 편지>와 <당신 가족은 안녕한가요>를 엮었다. 이 작가는 김제 출신으로 2010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했다. 현재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감사, 가톨릭전북문우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으로는 <행복을 담다>가 있다. 행촌수필문학상 시상식은 다음 달 18일 개최된다.
뿌리가 드러났습니다. 무성할 땐 몰랐는데 맨땅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스르르 자꾸만 풀리는 손, 바윗돌을 움켜쥐고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한여름 내내 내어주던 그늘이 가지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살랑거리던 바람이 잎새의 일만이 아니었습니다. 비탈에 선 나무, 잎이 지니 비로소 뿌리가 보입니다. 비탈도 힘에 부쳤을 터, 폭우에 흙이 다 쓸려 서 있기가 죽기 살기였겠습니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세 곶 됴코 여름 하나니, 그래요 꽃과 열매가 다 뿌리의 일입니다. 꽃병의 꽃은 뿌리가 없기에 금시 피고 금시 진다고 하지요. 나무는 가지의 바깥 부분을 연결한 원까지 뿌리를 뻗는다고 하지요. 그 길이만큼 뿌리를 내린다고 하지요. 보이는 건 가지와 잎이지만 나무의 근본은 보이지 않는 뿌리입니다. 세월인 듯이 이끼가 푸르고 시립니다. 셋 잘리고도 여섯 가지를 뻗었던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여섯 가지와 흔들리는 무수한 잎을 견딘, 지금은 쓰러지고 없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의 뿌리도 땅속 집채만 한 바위를 꽉 움켜쥐고 있었을 터입니다.
전북대학교(총장 김동원) 신문방송사와 혼불기념사업회최명희문학관(관장 최기우)는 2020 가람이병기청년시문학상최명희청년소설문학상 수상자 4명을 선정했다고 3일 밝혔다. 가람 이병기청년시문학상 대학 부문에는 마당에 묶여 있던 개가 죽고 를 쓴 이아영 씨(단국대문창3년)가, 고등 부문에는 시 터널 오승현(대신고3년) 군이 선정됐다. 최명희 청년소설문학상 대학 부문에는 검은 피 캠프를 쓴 황지원(명지대문창2년) 씨가, 고등 부문에는 타는 목마름으로 를 쓴 이해솔(안양예고2년) 양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마당에 묶여 있던 개가 죽고 는 감각적인 언어 사용으로 체험의 깊이와 생생함을 선보여 높은 점수를 얻었다. 터널 은 비유적 정황을 포착하는 능력이 탁월하며 시상을 잘 정돈해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가는 집중력이 뛰어나 수상이 결정됐다. 소설 대학부 당선작 검은 피 캠프는 할아버지의 병세가 손녀의 드센 기 때문이라고 믿는 부모에 의해 낙주기센터라는 사이비 종교단체의 캠프에 다녀오게 된 이야기를 다소 특이한 문체로 서술해 응모작 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으로 꼽혔다. 고등부 당선작 타는 목마름으로 는 10대 화자가 한국과 타이완의 전직 운동가의 삶과 운동을 목격하고, 그들을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접근하는 방식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평가됐다. 이번 문학상에는 267명이 603편의 작품이 응모했다. 시 부문에는 144명이 469편을, 소설 부문에는 123명이 134편을 출품해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시 부문 심사는 김성규윤석정안현미최지인 위원이, 소설 부문 심사는 백가흠고영직임정균최기우 위원이 맡았다. 김동원 총장은 전북대만의 문화적 자산인 가람이병기 시인과 최명희 소설가의 이름으로 발굴육성되는 문재들이 세계적인 문인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며 어려운 시기 귀한 작품을 보내준 전국의 학생에게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 대회는 1955년 전북대신문 창간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시와 논문을 공모했던 학생작품 현상모집이 모태가 됐다. 전북대 신문방송사는 지난 2017년 개교 70주년을 맞아 1955년부터의 문학상 수상작을 정리, 총 5권의 전북대학교신문방송사 문학상 당선작 전집 을 발간하기도 했다.
속보=정부가 도서정가제를 큰 틀에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오는 20일, 도서정가제 3년 주기 재검토 시한을 앞두고 도서정가제 개정 방향을 결정했다고 3일 밝혔다. 이번 개정 방향의 가장 큰 특징은 제도의 큰 틀은 유지하되 세부사항을 정비하는 한편, 소비자 후생을 고려해 정가변경 허용기준을 통한 정가 인하 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도서정가제는 출판사가 판매 목적의 간행물에 정가를 표시(정가 표시 의무)하도록 하고, 판매자는 출판사가 표시한 정가대로 판매(정가 판매 의무)하도록 하는 제도다. 다만, 독서 진흥과 소비자 보호를 위해 정가의 15% 이내에서 가격 할인과 경제상의 이익을 자유롭게 조합해 판매할 수 있다. 도서정가제는 2003년 2월 처음 시행된 이래, 여러 번 개정을 거쳐 지난 2014년 할인율을 조정하고 적용 범위를 확대한 이후 현행과 같이 운영되고 있다. 또 정가변경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가변경 허용기준을 현행 18개월에서 12개월로 완화한다. 향후에는 출판사들이 쉽게 정가를 변경할 수 있도록 출판유통통합전산망과도 연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출판사들은 시장 수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공공도서관이 책을 구입할 때에는 물품, 마일리지 등 별도의 경제상 이익 없이 정가 10%까지의 가격할인만 제공하도록 한다.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할인 여력이 적어 경제상 이익을 제공하기 어려운 지역서점도 공공입찰 시에 대형온라인 서점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또 정가 판매 의무의 위반 횟수에 따라서 과태료를 차등적으로 부과한다. 기존에는 위반 횟수에 관계없이 동일한 금액의 과태료가 부과됐으나, 계속 위반하는 경우에는 더 높은 차수의 과태료를 부과하여 반복 위반행위를 근절하는 등 제도 실효성을 확보한다. 이지선 전주책방네트워크 대표는 일단 도서정가제를 사수했다는 점에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면서 하지만 도서정가제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할인율을 더욱 낮추고, 공공기관이 책을 구입할 때는 할인을 적용시키면 안된다. 그래야만 동네책방과 소비자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1388년에 신설된 도관찰출척사제는 조선건국 직전인 1392년 공양왕 4년 4월에 다시 안렴사제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이원이 전라도안렴사로 부임하여 조선건국직후까지 재임하였으며, 이어 김희선이 조선건국후 전라도안렴사로 처음 부임하였다. 태조 2년에 도관찰출척사제가 회복되어 조선건국후 첫 번째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한 인물이 안경공이다. △전라도안렴사 이원과 김희선 이원(李原)은 어려서 매부인 권근에 배웠으며 정몽주에게서도 배웠다. 17세 어린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조선건국 직전인 공양왕 4년 5월에 25세의 젊은 나이로 전라도안렴사에 임용되었다. 그해 7월에 태조 이성계가 즉위하였으나 각 지방의 수령들은 그대로 근무하라는 명이 내려 이원도 10월까지 재임하였다. 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을 도와 좌명공신 4등에 책봉되었으며, 태종 17년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올랐으며 세종 3년 좌의정에 임용되었다. 세종 8년 많은 노비를 불법으로 차지했다는 혐의와 함께 부자 상인 내은달(內隱達)의 딸을 첩으로 들이려고 홍여방과 다투다가 발각 되어 여산으로 유배되었다가 배소에서 죽었다. 김희선(金希善)은 조선건국후 처음 임용된 인물로 가선대부 형조전서로 전라도안렴사를 겸하여 태조 원년(1392) 10월에 부임하였다. 문신으로 의학을 집대성하여 조선초 의학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전라도안렴사로 있으면서 태조 2년 도평의사사에 청하여, 각도에 의학교수를 보내어 계수관마다 하나의 의원을 설치하게 하였다. 태조 6년 제생원 설치 일을 맡았고, 정종 원년에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을 완성하여 강원도관찰사 재임시 출간하였다. 이 의약서는 총 30권으로 일부가 지금까지 전해져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대사헌. 경상도관찰사, 형조ㆍ호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건국 후 첫 번째 전라감사 안경공(安景恭, 1347~1421)은 태조 2년 안렴사를 혁파하고 다시 도관찰출척사를 설치함에 따라 조선건국 후 전라도관찰사로 처음 임용된 인물이다. 그는 태조 2년(1393) 10월에 전라감사로 부임하였으며, 이듬해 3월 부친상을 당해 이임하였다. 본관은 순흥. 자는 손보(遜甫). 조부는 문정공 안축, 아버지는 문간공 안종원이다. 할아버지 안축은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과 3종(8촌)간으로 문과에 급제한 후 원나라 과거에도 급제하였고, 벼슬이 첨의찬성사에 올랐으며, 안향과 함께 소수서원 배향되었다. 아버지 안종원도 문과급제자이며 강릉부사 때 은덕을 베풀어 부민들이 생사당(生祠堂)을 지어 모셨다. 안종원의 네아들 중온, 경량, 경공, 경검 등도 모두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의 집안은 고려말 신흥명문가로 전라도와 인연이 깊다. 아버지 안종원이 전주사록과 남원부사를 지낸 것을 비롯해 아우 안경검은 우왕대에 전라도안렴사를 지냈으며, 손자 안숭효는 조선 건국 후 세조대에 전라감사를 역임하였다. △승지로 조선건국에 참여한 개국공신 안경공은 고려말에 문과에 급제한후 경상도안렴사를 지내고, 전법판서로 있으면서 윤이이초 옥사에 연루된 사람들을 두둔한 정몽주를 탄핵하였다가 오히려 좌천되었다. 이듬해 1392년 조선건국 한달 전쯤인 6월 19일에 좌승지에 제수되어 태조 이성계를 추대하고 개국공신 3등에 책봉되었다. 태조가 7월 17일 즉위하고 28일 즉위교서를 반포하는데, 당시 안경공이 도승지로서 이 교서를 읽었다. 조선건국후 좌승지에서 도승지로 승진된 것이 아닌가 한다. 승정원 도승지는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장과 같은 자리이다. 그 도승지 아래가 좌승지이다. 그가 고려말 국왕의 근신으로서 태조를 추대하고 공신에 책봉되었다는 것은 내밀한 곳에서 조선 창업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조선건국직후부터 이듬해 2월 대사헌으로 옮길 때까지 도승지를 역임하였다는 것도 주목된다. 그는 태조 2년 대사헌을 지내고 전라감사에 임용되었다. <태조실록> 3년 3월조에 그가 전라감사로서 수군첨절제사 김빈길 등이 왜선 3척을 섬멸하였다고 보고한 것으로 보아 조선초 전라도에 왜구출몰이 여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라감사 시절 행적은 <세종실록> 세종 3년 그의 졸기에, 일찍이 경상전라황해도의 안찰사가 되어 너그럽고 간명(簡明)하여 까다롭게 굴지 아니하였다라고 평해 놓고 있다. 태종 6년 판한성부사(현 서울시장) 등을 지냈다. △정도전 등의 감형을 청하다 태종 11년 8월 안경공은 정탁ㆍ유창ㆍ조견ㆍ한상경ㆍ조온 등 개국 공신들과 더불어 1차 왕자의 난 때 주살된 정도전ㆍ남은의 죄를 감해 줄 것을 청하였다, 만일 이 무리가 없었다면 태조가 누구와 더불어 개국하였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 일로 인해 안경공 등 개국공신 일행은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 다음 달 9월에 태종이 탄핵 받은 공신들을 직사에 나오라고 명하여 풀렸으나, 이후 태종 16년에 대제학에 특별 임용된 것 말고는 이렇다 할 벼슬을 하지 못하였다. 안경공은 태조의 측근이었지 태종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태종대에 1차 왕자의 난 때 주살된 정도전 등의 죄를 감해달라는 개국공신들의 요청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안경공은 이 일로 태종의 미움을 받고 더 이상의 요직에 오르지 못하였던 것 같다. <세종실록> 세종 3년 그의 졸기에, 사람됨이 단정하고 근엄하다라고 하였고, 그의 시호는 양도공(良度公)인데, 이에 대해서도 온순하고 착하고 좋아하고 즐겨하는 것이 양(良)이고, 마음이 능히 의로운 일을 좇는 것이 도(度)이다라고 하였다. /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
내년 2월 퇴직을 앞둔 중진 서예가 김병기 전북대학교 교수가 축원평화오유라는 주제로 한 서예전을 전북대학교박물관에서 25일까지 연다. 서예는 문장을 쓰는 예술이기에 어떤 예술보다도 구체적인 뜻이 담긴 간절한 축원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김 교수가 이번 전시에 결혼, 수연, 출산, 이사, 개업 등을 축원하는 명언을 쓴 서예작품을 내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성공을 축원하는 뜻을 담아 지어준 이름과 호에 얽힌 이야기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서예를 통해 분노와 원망을 해소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는 여러 사례와 함께 그럴 때마다 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김 교수는 코로나 이전이 외적 발산 위주의 생활이었다면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내적 수렴과 수양을 생각하게 됐다며 서예를 통해 내적 성찰을 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고, 조용하지만 강한 오유를 하며, 아름답고 뜻깊은 말을 써줌으로써 남이 잘 되기를 축원을 할 수 있다면 서예는 코로나를 극복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년시절부터 부친 김형운 선생으로부터 한문과 서예를 배웠고, 강암 송성용 선생의 문하에서 서예가로 성장했다.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서예가이자 서예학을 토대로 일제에 의한 광개토태왕비의 변조를 증명한 권위 있는 서예학자이기도 하다.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권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 국제서예행사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제1회 원곡서예학술상을 수상했다.
교동미술관이 2011년부터 2019년까지 교동미술상(옛 젊은미술전)을 수상한 작가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전시를 마련했다. 교동미술상 수상작가 교류전 교동, 톺아보다 Remind. 오는 15일까지 교동미술관 본관 1전시실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이호철(2011조각), 이보영(2011한국화), 황유진(2012조각), 서완호(2013회화), 김성수(2014조각), 정소라(2015회화), 이주원(2016한국화), 김판묵(2018한국화), 임희성(2019회화) 등 교동미술상 수상작가 총 9명이 함께한다. 수상 이후 그동안 작업해 온 작가들의 작품 30여 점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올해 10년째로 접어든 교동미술상은 젊은미술전-이 작가를 주목하라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지역 내 전업작가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후원해 창작 동기를 부여하고, 지역 미술의 독창적인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왔다. 교동미술관 김완순 관장은 미술에 있어 젊음이란, 작가의 수치적인 나이보다는 자신의 틀에 머물지 않으면서 창작 열정을 불사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교동미술관은 앞으로도 청년 미술가들의 앞날을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내가 좋아하는 백석의 시 중에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백석을 사랑했던 김자야의 글을 보면 그들의 청진동 시절, 모처럼 같이 외출을 하여 명동의 제일다방을 들러 백석이 문학하는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사이 김자야가 슬그머니 나와서 문예춘추와 여원을 사서 나오다가 문득 한 가게의 쇼윈도에 걸린 넥타이 하나가 눈에 띄어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 백석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 사서 곧바로 매어드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뒤로 당신은 매일 출퇴근뿐만 아니라 바깥나들이를 할 때마다 늘 꼭 내가 선사한 그 넥타이만을 즐겨 매고 다니셨다. 지금 그 넥타이가 이렇게 당신의 시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의 한 대목에 들어가 있을 줄이야. 그들의 사랑은 짧았지만, 그 사랑에 대한 기억은 시로서 또는 회고록을 통해 영원히 남아있다. 기생 신분으로 시인을 사랑했던 그녀는 1955년부터 성북동에서 운영하던 한정식 집 대원각을 1987년 법정 스님에게 불교도량으로 만들 것을 요청하여 1997년 길상사가 창건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세워진 공덕비에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가 적혀 있는데, 연애시절 백석이 친필로 적어준 시로 알려져 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비극적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사랑은 변함없이 감동을 준다. 뱁새가 우는 산골의 오두막이 아니어도 그리움은 눈이 푹푹 날리는 날 홀로 앉아 소주를 마시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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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나만의 사진언어를 제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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