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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담론이 의미를 가지려면

박지원 변호사 지난 글에서 연금 걱정 없게 아이 좀 낳아달라던 50대 지인을 향해 저출산은 외려 문명 발전과 인권 신장의 결과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다. 온통 저출산을 걱정하는 목소리 일색이니, 반골기질에 혼자 노라고 외치고픈 마음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사실 공포 마케팅처럼 보이는 저출산 우려 담론에는 쉬이 동조하기 어렵다. 일단 국가주의적 시각이 내재된 듯해 거부감이 든다. 이런 위정자나 경영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다보면 사람을 도구 취급하기 쉽다. 덮어놓고 낳으면 거지꼴 못 면한다며 국가가 불임수술하던 때가 60년 전이다. 출산율이든 GDP든 수치를 목표로 삼는 순간 비인간적인 발상은 끊어내기 어렵다. 대통령도 사람이 먼저를 외치는 시대다. 시민이 굳이 국가와의 일체감에 관료집단의 걱정까지 짊어져야 하나. 해서인지 정부야 아무리 나대봐라. 애 낳나. 고양이랑 살지라는 일갈을 듣노라면, 며느리에게 불임수술 권하러 온 공무원을 곰방대로 쫓아내던 60년대 시아버지 모습이 겹쳐 못내 후련한 마음도 든다. 국가주의적 저출산 우려 담론은 늘 암울한 경제 전망을 동반한다. 그러나 수십 년 뒤의 경제를 예측하는 시도는 그저 토정비결처럼 재미삼아 보는 것으로 족하지 않나 싶다. 식량은 산술급수로 증가하고, 인구는 기하급수로 증가한다던 맬서스의 예측이 어찌됐나. 화학비료로 식량 생산은 폭증했고, 인구 감소를 걱정하게 됐다. 70년대 로마클럽 보고서엔 석유가 2000년쯤 고갈된다더니, 올해 유가는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예측만 잘하면 돈을 버는 주식시장에서도 수많은 전문가 예측이 수개월을 못 버티고 명멸하는데 누가 수십 년 뒤를 장담하는가. 섣부른 예측보다 기술혁신과 인간의 적응력을 믿는 편이 낫지 않을까. 오죽하면 주식 격언에도 시장은 예측보다 대응이라 한다. 하나 더 보태자면 비관론자는 명성을 얻지만, 낙관론자는 돈을 번다. 사실 암울한 경제전망은 지난 세월 한국이 겪은 인구보너스 즉, 생산가능인구가 많고 부양대상은 적던 시기의 성장률이 유지될 수 없다는 불안에 기인한다. 그런데 지금 출산율을 높인다고 그 문제가 해결될까? 60년대 노동집약적 산업구조 하에서는 미숙련 노동이라도 투입만 하면 경제가 성장했다. 하지만 70~80년대 자본축적과 설비투자로 숙련 노동을 요하던 때를 지나, 이제 기계와 AI가 노동을 대체한다고 떠들썩하다. 생산요소 중 기술과 자본을 놓아두고, 노동에만, 그것도 질 아닌 양에만 천착해서는 나아갈 수 없는 시대다. 청년실업을 보면 노동 공급은 이미 과잉이다. 소비 감소도 걱정된다지만 우리 경제가 내수의존이 아닌 수출주도형이라는 점은 모두가 알지 않나. 또 어차피 지금의 소비는 대부분 돈 가진 사람이 쓰는 사치재에서 발생하니 수요의 기준도 인구가 아닌 자본에 방점을 두어야 맞다. 아이가 줄어도 유아용품 산업은 성장하는 이치다. 부양부담, 재정파탄이 우려된다지만 같은 맥락에서 소득과 자본 없는 청년은 생산가능인구라도 부양대상에 불과하다. 장기로 보면 베이비붐 세대가 파도처럼 인구 그래프를 쓸고 간 뒤에 오히려 부담 없는 인구구조가, 심지어 다시 인구보너스기가 올 수도 있다. 누구도 국가나 특정 세대를 부양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시선을 돌려 현 구성원에게 충분히 행복한지 물어야 비로소 의미있는 대화가 시작되지 않을까. 낳고 싶은지, 낳기 싫다면 어째서인지, 낳고 싶은데 어렵다면 고민이 무엇인지 귀기울여보자. /박지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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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02 16:07

우리의 선택지는 결코 두 개가 아니다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많은 매체들이 한사람의 상처에 관해 쉴 새 없이 이야기한다. 단독과 오보 사이를 달리며 누가 더 자극적인 언어를 뽑아내는지 겨루는 경주마 같은 언론이 그러했고 공감과 연대는 사라진 채 분노와 의심, 억측에 휩싸여 피해자라는 과녁을 조준한 화살 같은 SNS가 그러했다. 보고 있자면 턱 하고 숨이 막힌다. 2년 전 피해사실을 고백하던 그날의 기억이 소용돌이치며 가슴이 먹먹하고 뜨겁다. 여전히 의연하지 못한 나의 존재를 사유하며 혹 세상 어딘가 나와 비슷한 존재가 있다면 잔인하고 아픈 칠월을 잘 견뎌주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는 것이 살아있음을 감각하는 일이라고 말해도 괜찮을까. 이 지면을 빌어서. 나는 2018년 2월 공개 기자회견을 통해 극단대표의 성추행사실을 고발한 미투 생존자이다. 그 당시 얼굴을 공개한 피해자라는 이유로 용기, 진정성, 이슈 등 다양한 말들이 쏟아져 나오며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내가 얼굴을 공개한 이유는 신뢰를 얻기 위함이 아니었다. 가해행위자로 지목한 대표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처벌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또 다른 피해자가 있을 확률이 높아 공론화가 필요했다. 또한 나는 직장이 아닌 개인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고 사업장의 수익은 생계를 꾸리는 데 충분했다. 또 평소 대화를 많이 하는 분위기 속에서 가족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의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미투를 적극 지지했다. 다시는 연극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적어도 미투로 인해 내 생계와 일상이 위협받지는 않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코 모든 피해자의 상황이 나와 같지는 않다. 또한 피해자가 만인 앞에 자신을 드러내서 그 많은 상황들을 견뎌야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상처에 훈수를 두며 쉽고 간편하게 피해자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싫습니다. 못합니다를 하지 않은 이유를 몹시 궁금해 하면서도 그 요구가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근무 환경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 않는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저의에 대해서는 온갖 억측을 하지만 얼굴을 드러낸 이후 완전히 달라진 일상 속 고통을 감당할 피해자의 남은 삶이 어떤 것일지는 짐작하려 하지 않는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 마치 그의 삶에 어떤 지분이라도 있는 듯 믿을만한 증거를 운운하며 끝내는 한 죽음과 한 상처를 연관 짓고 책임을 묻고야 만다. 피해자가 나와 같은 직장인이고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며 사회적 일원으로 인정받아 안전하고 즐겁고 일하고 싶은 욕망을 가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왜 떠올리지 못할까? 무엇이 우리의 상상력을 이토록 무력하게 만들었을까? 자 이제 내가 속한 공동체를 떠올려 보자. 공동체 일원 모두에게 싫습니다. 못합니다를 말할 자격이 주어지는가? 그 말을 한 어떤 사람도 결코 불이익이 없는가? 그리고 당신은 그 말을 단지 하나의 의견으로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인가? 피해자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방식으로는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피해사실에는 우리가 바꿔야할 많은 구조적 문제가 숨어있고 우리는 분명히 그것을 찾아낼 수 있다. 누구도 거절에 거창한 용기가 필요 없게 되는 날, 우리 모두는 분명 조금 더 성숙해져 있을 것이다.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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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6 16:22

장애 인식개선이란 무엇일까?

김주은 도르 대표 장애인식이 개선된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인식이 변화한다는 것을 증명할만한 명확한 척도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차별 문제와 인권문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통해 우리나라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어떻게 변화해나가야 하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인식과 차별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차별은 누군가를 사회에서 배제하려는 나쁜 마음으로 발생하는 경우보다 어떠한 행동이 차별인지 모르는 무지에서 나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렇기에 인식개선이란 한 사람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행동을 송두리째 바꾸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어떠한 행동이 장애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지 또 장애인에게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알리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존재를 명확하게 인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노약자를 배려하는 것과 같이 장애인을 배려하는 방법이 알리고 권장하는 것이 장애 인식개선의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장애 인식개선은 왜 필요한 것일까? 단순히 장애인만 살기 편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러한 인식개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대부분 차별받지 않기를 원하며 자신이 차별하지 않는 공정한 사람이기를 원한다. 그렇기에 알지 못해서 실수한 행동으로 인하여 너는 차별을 하는 나쁜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는 것은 억울할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차별을 하는 사람을 비판하기에 앞서 어떠한 행동이 장애인에게 차별로 느껴질 수 있는지 알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므로 장애 인식개선은 꼭 필요하다. 장애 인식개선은 누구나 다양한 형태를 통해 할 수 있다. 장애인은 성실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인식을 개선할 수 있으며, 장애인의 부모나, 특수교사, 사회복지사는 장애인을 동정하며 도와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으로 인식개선을 할 수 있다. 또 장애인과 함께 일을 하는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이 자신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을 편견 없이 보는 것만으로도 인식개선이 될 수 있으며, 장애인을 보지 못하는 비장애인들은 이러한 글을 읽음으로써 장애인을 알아가는 것으로 인식개선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장애 인식개선이란 착하고 마음이 바른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대단한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알아가고, 마음이 움직이는 만큼 실천해 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위에 말한 바와 같이 장애 인식개선은 어떠한 척도와 결과로 평가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장애 인식개선으로 얻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장애인이 자연스럽게 버스를 타고, 길을 걷고, 영화를 보고, 일을 하는 것이며, 이렇게 장애인이 활동할 때에 힐끔거리는 눈길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줄어드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장애인과 장애인의 가족, 친구와 같이 장애인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삶의 만족감이 커지는 것이다. 인식이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도록 생각 깊은 곳에 깔린 선입견과 편견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기에 사실 진정으로 인식을 개선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애인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포기할 수 없기에 오늘도 장애인의 이야기를 알리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오늘 이 글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자리에서 한걸음 더 장애 인식개선에 가까워졌기를 희망한다. /김주은 도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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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19 16:18

사람이 온다

정은실 사회활동가 사람들과 새로이 인연을 맺을 때 생각하는 시 한 편이 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ㅡ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어떤 사람에 대하여 지금 눈앞에 보이는 단편적인 모습을 보고 이 사람은 어떻다라고 판단하며 쉽게 타인에 대해 무례를 범하고, 서로를 혐오하곤 한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뼈와 살로 이루어진 하나의 덩어리를 넘어서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의 삶, 그가 살고 있는 현재에 대한 인식, 미래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결정체 같은 것이다. 그렇게 과거, 현재, 미래가 얽혀 지금의 그 사람이 내 앞에 있을 수 있다. 덧붙여 그 사람을 대하는 내 과거의 경험과 현재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그리고 나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과 불안이 모여 그 한 사람을 무엇이라 인식하고 때론 정의한다. 그렇다면 그 인식과 정의에는 상대방의 책임만 있는 것은 아니겠다. 나의 삶의 경험과 가치가 기준이 되어 내가 만든 상자 안에 타인을 짜 맞추어 넣고 상자 위에 라벨을 붙인다. 이 과정에서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그 마음을 살피는 일은 생략되곤 하는데, 마음을 살피는 일이 상대를 다 꿰뚫어 보거나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것과 상응하지는 않는다. 그의 갈피를 더듬어 보고 살펴보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이런 과정을 살펴서 타인을 바라보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 자신도 과거의 삶들을 충실하게 살피지 못할 때가 많았고, 현재도 일과 상황에 치여 그때그때를 살아가는 데 바쁘다. 그런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그림 또한 흔들릴 때가 많다. 이렇듯 나로서 30여 년을 살아온 나도 스스로에 대한 고민과 혼란이 있고, 정의 내리기 쉽지 않은데, 하물며 남에 대해 내가 겪은 부분적인 모습들을 두고 그 사람은 어떻다라고 정의 내리는 것은 쉽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살면서 진정으로 환대해준 사람이 몇이 있을까? 그 경험을 더듬어 보기 전에 환대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봤다. 환대는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한다.라는 뜻인데, 사전적 정의대로 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마음이 즐겁고 기쁘게(반갑게) 맞이해야 하고, 온갖 힘을 다하여 참되고 성실한 마음(정성)을 담아야 하며, 마음 씀씀이나 태도를 너그럽게(후하게) 마땅한 예로써 대해야(대접) 한다.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본다. 살면서 진정으로 환대해준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고 살아온 시간을 낱낱이 반성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다른 이를 환대하기 위한 마음, 그 마음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에 대해 주목하자. 반갑게, 정성껏, 후하게, 대접하는 것 이전에 내 눈에 보이는 일면에 사로잡히기보다는 한 사람의 일생을 마주한다는 마음으로 더듬어 볼 여유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우리는 날마다 어마어마한 일을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 어마어마한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조금 더 상대를 바라보고 살필 수 있기를 바란다. 더듬어 보는 바람을 흉내 내 더 많은 사람을 환대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 정은실 사회활동가는 평화재단 청년포럼에이피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전주시사회혁신센터 공간지원팀에서 근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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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12 15:51

저출산이 사회악인가

박지원 변호사 첫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50대 공무원 지인으로부터 나중에 연금 떨어지지 않게 아이 좀 많이 낳아줘라는 말을 들었다. 농담 반, 덕담 반 섞어 웃음을 건네는 그였기에 차마 개그를 다큐로 받지 못하고 나 역시 웃음으로 답했을 뿐 아쉽게도 대화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한 마디는 여러 생각을 들게 한다. 당시 미처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몇 회에 걸쳐 지면으로 전하고자 한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 심사가 뒤틀리는 성격이다보니 후배의 출산을 축하하는 자리에 연금 걱정 운운하게 만든 사회 분위기에 아니꼬운 의문이 들었다. 왜 저출산을 근절 대상인 사회악으로만 보는가? 정부와 언론 영향이 컸으리라 짐작한다. 저출산으로 잠재성장률이 저하되고 나라가 통째로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소식이었을 터. 인터뷰가 첨부된다면 단칸방에서 시작하던 옛 시절을 전하며 철부지들의 근성을 아쉬워하는 기성세대와, 사람을 귀히 여기지 않는 시대에 희망 없는 삶을 물려주기 싫다며 욜로를 외치는 청년세대의 모습이 함께 그려졌으리라. 100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소위 호환, 마마, 전쟁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던 시대다. 물리적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농경사회에서 자녀는 유일한 노동력의 원천이자 노후대비 수단이었다. 사람들은 시키지 않아도 생존을 위해 다산했으며, 피임기술이 보급되지 않아 흥부는 뺨을 맞으면서도 굽신거리며 살았다. 시곗바늘을 50년만 뒤로 돌린다. 우리는 맹수, 질병, 전쟁, 기아 등 수 천년간 인류를 괴롭힌 문명사의 파고를 정복해나갔다. 산업화로 자본이 축적되면서 연금 등 복지제도가 싹을 틔우고, 도시화로 대가족의 효용은 줄어든다. 50년이 더 흐른 현재. 개인의 인권과 행복은 최우선 가치이고, 여성도 경제활동에 참여하여 독립할 수 있다. 사회와 복지시스템이 일정 수준의 안전과 부양을 보장한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이론 운운하지 않더라도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면서 자아실현 욕구에 집중하게 되고, 가족 제도나 자녀의 효용이 감소하면서 출산율은 자연스레 낮아진다. 이처럼 돌이켜보면 저출산은 공포와 척결 대상이기 전에 인류 번영, 발전의 징표이자 자랑이다. 정히 저출산이 싫고 고출산을 원한다면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를 본받아 과거로 돌아가면 된다. 가부장제를 강화하여 여성의 인권을 억압하고 피임을 금지하며, 사회보장을 없애고 부정부패를 만연케 하며, 군사력과 경찰력을 무력화시켜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다. 여성은 전쟁, 강도, 겁탈을 피해 혼인제도에 의탁하고, 무능한 국가에 기댈 수 없는 사람들은 생존과 노후를 위해 아이를 낳으며, 유력한 가문과 권력자의 보호를 받고자 사돈의 팔촌까지 찾아다니면서 혈맥과 혼맥에 의지하려 애쓸테니 저출산은 그야말로 발본색원이다. 그런 사회로 회귀를 원하는가? 아니라면 개인이 스스로 행복을 위해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 있는 데까지 온 우리 문명 발전사의 도도한 흐름을 자축하며, 그 노정에 작금의 저출산 현상이 있다는 전제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하지 않나. 물론 저출산 우려 담론이 의미를 가질 수는 있는 지점은 분명히 있다. 그것이 본론이었는데 하도 연금 걱정으로 불안해하는 통에 등 한번 토닥이고 시작한다는 것이 서론이 길어졌다. 다음 글에서 뵙겠다. △ 박지원 변호사는 김제시 고문변호사, 서해대학교 이사, 전주MBC 시사프로그램 이슈옥타곤 진행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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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05 16:18

문화예술계 성폭력, 이제는 제도로 답해야 한다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여기, 자신의 삶을 걸고 성폭력피해를 공론화 한 여성예술인들이 있다. 법이 공정하게 잘못을 심판 해줄것이라 믿으며, 더 이상은 이런 아픔이 반복되질 않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지난 6월 19일 전북 문화예술계 박교수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 박교수의 보석신청이 허가되어 석방되었다. 동료교수와 제자를 강제로 성추행하여 1년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된 지 135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에 분노한 전국의 75개의 여성단체와 인권단체, 시민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과정 중 피고인의 권리만을 신경 쓸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권리 또한 곤정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2차 피해를 준 것에 강력하게 규탄하며 피해자와 끝까지 연대하겠다고 공표했다. 또한 힘든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용기를 낸 피해자의 발언문도 낭독 되었다. 저는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닙니다. 저의 피해사실은 저만의 것이 아닙니다. 수 십년간, 그에게서 갑질과 성폭력을 당해온 많은 선배, 동기, 후배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열 세명의 변호사를 선임한 박교수가 두렵습니다. 그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무섭습니다. 그렇지만 당하면서도 당했다고 말하지 못하는 수많은 나를 위해, 또 다른 피해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박교수를 제발 엄중하게 처벌해주십시오. 그 자리에서 함께 구호를 외치던 나는 여러가지 생각들로 복잡해졌다. 어떤 문장과 수식어를 붙여도 결코 다 담길 수 없을 투쟁이 일상이 되어버린 피해자들의 고민과 눈물의 날들이 떠올랐고 어떤 곳에서도 피해예술인들을 보호하지 않았던 문화예술계 내부의 차가운 현실을 깨달았으며 아무리 외쳐도 갖춰지지 않는 제도적 한계에 절망스러웠다. 또한 이 모든 상황을 여전히 남의 일로 치부하는 동료들의 무관심과 지금 이 순간에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파할 사랑하는 사람들의 걱정 어린 그 마음이. 한 순간에 뒤섞여 눈물이 되어 아프게 흘러내렸다. 재작년 미투의 국면을 넘은 문화예술계 내부에서는 성폭력 없는 안전하고 평등한 창작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작은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피해예술인의 보호와 회복, 복귀에 대한 논의는 미비했고 제도적 측면에서의 공론화 방안과 가해행위자의 징계처리 규정에 대해서는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사안은 흩어져버렸다. 아직도 문화예술계의 성폭력을 일회성의 이슈나 사건정도로 밖에는 인식하지 못하는 문화예술계 내부의 분위기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북 문화예술계 박교수 성폭력 사건 또한 2차 피해와 긴 재판과정의 피로감을 오롯이 피해예술인이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을 초래했으며 미투 이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문화예술계의 제도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더 이상은 피해예술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현장을 바꾸려는 노력을 그 누구도 방관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단위에서 이 과정에 적극 개입하고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제도로써 그들을 보호하고 지침으로 가해자를 엄중하게 징계하는 분명한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어떤 피해예술인도 자신이 사랑하던 예술을 떠나지 않는 안전한 창작현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이제껏 맨발로 가시밭길을 걷겠다 마음먹은 피해예술인들을 위한 진정한 위로이자 성폭력 근절의 대안이며 평등하고 안전한 문화예술계로 거듭나는 안전판이 될 것이다.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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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28 16:24

팔복예술공장에는 희망이 있다

김성수 조각가 전주 팔복동에는 1979년부터 1991년까지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하던 공장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CD등 새로운 기록 매체에 자리를 내주고 폐업을 결정한 후 25년간 물리적, 사회적인 호흡이 멈춘 오래된 사진처럼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2016년부터 전주시와 전주문화재단이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여 팔복예술공장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 이 공간은 올해 계획 중인 야외 예술놀이터, 수변공간을 포함하여 전시실, 창작 스튜디오, 유아 예술놀이 공간 등을 보유한 다양한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고 2018년 3월 개관 이후 어느새 누적 방문객이 11만 명(2018-2019년)에 이른 전주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의 명소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유년기를 팔복동에서 보낸 필자는 어렴풋이 80년대의 팔복동의 느낌을 기억한다. 공단 굴뚝에서 끝없이 뿜어져 나오는 회색 구름, 철로 만들어진 낡은 놀이터와 기찻길, 공단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의 색바랜 유니폼. 흐릿한 유년기의 추억 등등. 상대적으로 열악한 주거환경을 가지고 있었던 전주시의 아픈 손가락 같은 팔복동이 문화와 예술로 덧칠한 도시재생의 메카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롭다. 이러한 팔복예술공장의 혁신적인 변화에는 많은 사람의 숨겨진 공로가 있기에 가능했다. 팔복동의 기억을 간직한 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팔복동 거주민들과 공간의 새로운 대안을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심했던 전주의 예술가들은 무엇보다 우리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팔복예술공장을 찾았다. 거기에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수용하려 노력했던 기획담당자들의 열정과 전주시의 낮은 자세가 더해져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내었다고 생각한다. 공간의 변화는 소수의 몇몇으로 인해 바뀔 수 없기에 마음과 뜻을 모은 모두가 이룬 성과라 표현하고 싶다. 하지만 끊임없이 성장 중인 팔복예술공장이 보완하고 갖춰야 할 부분은 아직 남아있다. 예술공장이라는 이름답게 다양한 재료를 요구하는 거친 입체조형작업을 할 수 있는 다목적 창작 스튜디오의 부재와 유아로만 한정된 예술놀이 공간의 협소함은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충분히 개선이 가능한 점이다. 주차장의 좁은 간격도 공간을 찾는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을 하는 공간의 목적성이 있는 곳으로서 다양한 예술 분야의 전문인력(도슨트, 스튜디오 테크니션, 어시스턴트)의 육성과 추가배치를 통해 예술공장을 찾고 이용하는 관람객과 참여작가들에게 더욱 나은 사유의 경험과 창작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은 근무와 창작의 환경적인 측면에서 개선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올해 3월부터 팔복예술공장의 3기 정기입주작가로 참여하여 창작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몇 개월간 오가며 그동안 안에서 바라본 팔복예술공장의 모습은 바깥에서 바라본 시각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팔복예술공장을 위해 밤낮으로 고생하시는 팔복운영팀, 창작기획팀, 예술놀이팀의 직원분들의 노고가 더해져 이 공장이 돌아가는 모습에 측은함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낀다. 이제 다음 주가 되면 입주작가로 들어온 지 딱 100일째가 된다. 10명의 입주작가와 작은 축하의 의미로 모든 직원분께 감사의 떡을 돌리기로 했다. 예전 이 공간에는 써니(카세트 공장에서 일했던 여성 근로자를 상징하는 팔복예술공장의 마스코트)가 공장의 불빛을 밝혔지만, 지금은 여러분이 계신다고 말하고 싶다. 어둑해진 밤, 팔복예술공장은 아직도 희망의 불빛을 킨 체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김성수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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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21 16:13

화사한 꽃밭 같은 동네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전주한옥마을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전주시는 문화시설 연장개관과 온라인 스탬프 투어를 운영하며 시민과 관광객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으라차차 향교길 공연, 전통연희 퍼레이드 등 코로나19 감염 상황을 보며 대기 중인 프로그램도 한가득이다. 주말 평균 관람객 수가 150명대에서 300명대로 늘어난 최명희문학관도 지난 11일 『혼불』 완독 프로그램을 열며 조심스럽게 기지개를 켰다. 이 시간이 너무 그리웠다.는 수강생들은 먼저 나서서 개인위생을 지키며 문학 강연을 즐겼다. 문화시설과 이용자 모두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 변화에 적응해나가는 중인 것이다. 문학관이 터를 잡은 이곳. 어린 최명희(19471998)가 뛰어놀았던 화원동(현 풍남동) 일대는 오랜 시간 주거 공간으로 사랑받았던 동네다. 현 전주시청 자리에 전주역이 있어 접근성이 좋았고, 큰 시장과 가까워 많은 사람이 거쳐 가는 물류의 중심이었다. 또한 주요 기관과 공장 등으로 근거리 출퇴근이 가능해 3만 명 내외의 인구가 사는 부촌이었다. 하지만 1977년 한옥보존지구로 선정되고 덕진동을 중심으로 부도심이 형성되면서 문화연필, 백양 메리야스로 대표되는 공장들이 이전하고, 1981년 전주역이 우아동으로 옮겨 간 뒤에는 경제활동 주력 층이 점차 빠져나가게 된다. 구두 수선소며 가방 도매상들은 이미 자취도 없어진 채, 어디론가 밀려나버리고,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는 노트사, 그리고 낯익은 금은방들도 어수선한 흙먼지에 뒤덮여, 간신히 고개만 내밀고 있는 형국이었다.(최명희 단편소설 「만종」 중) 1980년대 전국체전을 계기로 풍남동 일대에서 벌어진 변화를 다룬 최명희의 단편소설 「만종」을 보면 당시 분위기가 생생하다. 사람들 모다 빠져나가먼, 매급시, 돈은 객지에서 다 갖꼬 가고, 여그는 빈껍데기 건물들만 남능거 아닌가?라고 걱정하는 마을 어르신의 목소리와 절반은 이미 허물어져 가시 철망으로 둘러놓은 울타리, ㅁ 중에서 ㄱ 부분만 남아있는 경기전까지. 사람들의 눈길에서 멀어져 시간 속에서 스러지고 있는 것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글에 담겨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쓰러졌던 담벼락이 새 단장을 하고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가 된 것은 2000년대부터다. 2010년 슬로시티로 지정과 2012년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 선정 등으로 전주는 교육도시에서 관광도시로 다시 태어난다. 한옥이 모여 생긴 독특한 풍경과 경기전오목대전주향교 등의 문화유산, 향토음식, 남부시장 청년몰과 야시장이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지면서 전주한옥마을은 전주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콘크리트 같은 딱딱한 일상에 지쳐 휴식이 필요해 전주한옥마을에 왔어요. 구석구석 예쁜 한옥마을 전경과 맛있고 푸짐한 음식이 함께하니 숨통이 트이네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니 저까지 밝아지는 기분이에요.(최명희문학관 방명록에서, 한○윤서울) 단 한 사람만이라도 제가 하는 일을 지켜본다면 이 길을 끝내 가리라라고 말했던, 아늑하고 화사했던 풍남동 은행나무 골목의 유년 시절과 잠깐 살다 옮긴 전동집에서의 짧은 기억을 사랑했던 작가가 지금의 고향땅을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골목마다 보물이 숨어 있는, 소소한 행복이 넘실거리는, 화사한 꽃밭 같은 이곳을 우리는 잘 지켜내고 가꿔야 한다. 애정 어린 눈길과 적당한 거리, 배려하는 마음이 모여 틔워낸 웃음꽃에서 그윽한 향기가 풍겨온다.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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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14 15:57

우리는 장애인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김주은 도르 대표 우리는 장애인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지난 칼럼에서 이야기했던 바와 같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무지, 즉 어떠한 말과 행동이 장애인에게 불편함을 주는가를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실제로 장애 인식개선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 나눴던 사람 중 대다수는 장애인을 특별히 싫어하는 건 아닌데, 장애인을 만났을 때 자신이 몰라서 실수를 하게 될까 봐 다가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칼럼에서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자연스럽게 함께할 수 있도록, 장애인을 만났을 때의 가져야 할 올바른 생각, 말, 행동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전제(생각)는 다음과 같다. 먼저,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동일한 한 인격체임을 인지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똑같은 한 사람이기에, 비장애인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언행은 당연히 장애인에게도 불편함을 유발할 수 있는 언행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 또, 장애는 개인의 다양한 특징 중 한 가지일 뿐, 그 사람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단편적인 예시로, 장애인이라고 모두 의존적이고 불쌍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 사회에서는 장애인을 미디어로 만나는 경우가 많기에 장애라는 단어로 장애인을 과하게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 장애인을 장애라는 특징으로 성격과 정체성을 일반화하여 생각하는 것을 지양하고, 한 개인으로 인정하고 알아가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장애인을 만났을 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좋을까? 첫 번째, 장애인이 아니라 개인의 이름으로 호칭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비장애인 역시 빡빡이, 뚱뚱보와 같이 개인의 한 특징이 그 사람의 전부인 것 마냥 호칭된다면 불쾌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장애인에게 장애도 개인이 가진 특징 중 하나이므로 장애가 개인의 정체성인 것 마냥 호칭되는 것은 불쾌한 일이며, 이름으로 호칭해야 한다. 두 번째, 도움이 필요한지 질문한 뒤 승낙했을 경우에만 도움을 준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또는 장애의 특징과 정도가 달라서 도움이 필요하지 않거나, 알맞은 도움이 아닐 수 있다. 또 장애인에게 요청하지 않은 과한 배려는 장애인이라 못할 것이다라는 동정이나 무시로 이해될 수 있기에 장애인에 도움이 필요한 것으로 보일시 도움이 필요하신가요?라고 질문한 뒤 승낙하면 도와주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다. 세 번째, 정상인, 일반인이란 단어 사용은 지양한다. 장애인 앞에서 정상인, 일반인과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면 장애인은 비 일반적이고 비정상적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어 불쾌감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장애인이 아닌 사람을 지칭할 때는 비장애인으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올바르다. 앞서 설명한 장애인을 만났을 때 올바른 생각, 말, 행동은 전달 상의 오류를 줄이고자 최대한 일반적이고 포괄적으로 내용으로 구성하였으므로 특정 장애에 따라 행동이 변형되거나 추가될 수 있다. 또 모든 행동은 사람과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으므로, 이번 칼럼의 내용이 절대적인 척도가 될 수는 없음을 밝힌다.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는 장애인을 비장애인을 똑같은 한 인격체로 인정하고 대해야 한다는 것이며, 장애인을 몰라서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가서 물어보고 알아가며 함께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행동이라는 것이다.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 그 자체로 충분히 올바르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읽고 생각하고 행동할 당신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김주은 도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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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07 15:59

내겐 정말 그리운 그녀들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이야기 하나. 14년 전 겨울쯤일까? 아무 기대 없이 보러간 선배들의 연극에서 무대 위 너무도 반짝이던 Y를 처음 보았다. 티비에서 보던 화려한 배우들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배역의 호흡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그녀의 연기에 완전히 매료되어 알 수 없는 울렁거림과 벅참을 느끼며 생각했다. 10년 뒤에 나도 저런 배우가 되고 싶다. 아마도 그 날 부터였다. 소극장 특유의 쾌쾌함도 휑한 객석도 배고픈 현실도 다 잊을 만큼 매력 있는 직업을 찾은 것 같다고 느낀 순간이. 이야기 둘. 기본기가 짱짱하고 무대장악력도 대단하다는 H선배의 모노드라마를 보러가기로 했다. 현장에서 꽤 자주 마주쳤지만 친근하게 다가가기엔 어딘지 어려웠던 그녀. 평소 남 눈치를 많이 살피는 내 성격상 친해지고 싶다는 말은커녕 씩씩하게 인사도 한번 해본 적 없었지만 공연장으로 응원을 가게 된다면 친해질 기회를 조금은 갖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역시 그녀는 공연내내 그 많은 관객들을 혼자서 울리고 웃기며 배우다움을 마구 뿜어댔다. 완전히 그녀에게 매료되어 버린 채, 나는 생각했다. 아주 오랫동안 배우를 하셨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꼭 같은 작품에서 만날 수 있게. 이야기 셋. 우여곡절 끝에 다시 연극을 시작하게 된 나는 K대표님을 만나 배우 인생에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남성연출가의 시각에서 창조된 여성캐릭터만을 연기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다양한 배역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대표였던 그녀는 나에게 특유의 집요함과 꼼꼼함으로 매순간 완벽함을 요구하며 오로지 배우로 성장할 것을 강요했다. 혹독했지만 불합리 하다고 느낀적은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나보다 더 많은 것들을 더 완벽하게 수행했으니까. 그녀와 함께 하는 매순간 느꼈다.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녀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 이제껏 어떤 어른도 내게 보여주지 않았던 책임감 있는 모습을 나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이야기 넷. 동물적인 감각으로 연기를 하는 C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풍부한 감정표현과 공감능력을 가진 그녀는 이야기를 상상하고, 상상한 이야기를 사랑스럽게 전달하는 능력 또한 으뜸이다. 환하게 웃는 얼굴은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이상한 흡입력으로 관객을 빨아들인다. 그러나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매순간 진실한 마음을 녹여내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다. 작품에서도 현실에서도. C, 언제나 네가 부럽고 한편으론 자랑스러웠었어. 당신은 정말 타고난 배우야. 나는 그녀들을 다시 무대에서 보고 싶다. 다시금 무대에서 활개 치는 그녀들의 모습이 진정으로 그립다. 누구와 비교해보아도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잘난 그녀들이 본인의 역량을 뽐낼 수 있는 터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 속에서 그녀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싶고 찐하게 협업하고 싶다. 어쩌면 나 혼자만의 소망이거나 주책 맞은 오지랖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들을 현장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 여전히 이곳은 배고프고 열악하지만 더 많은 여성예술인들과 함께 하고 싶다. 그녀들과 있는 힘껏 연대해 이곳을 바꿔보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볼 생각이다. 그녀들이 돌아 올 이곳이 안전하고 아늑할 수 있도록. 어떤 이유로도, 여성예술인이 현장을 떠나지 않길 바라며.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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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31 15:57

‘시민의 숲 1963’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김성수 조각가 전주에는 전북도민의 힘으로 만들어진 역사적인 공간이 있다. 그곳은 바로 전국체전을 치르기 위해 만들어진 전주시 최초의 전주종합경기장과 야구장이다. 1963년에 만들어진 종합경기장과 야구장은 당시 44회 전국체전을 치르기 위해 합심한 전북도민의 성금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에 더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80년대생인 필자의 기억 속에는 90년대에 활동했던 쌍방울야구팀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홈경기가 있는 날이면 구단 마크가 새겨진 모자를 쓴 아이들이 야구장 주위에서 응원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97년도에는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렸고 종합경기장의 육상트랙에 물을 얼려 스피드 스케이트 경기를 진행했던 색다른 기억도 있다. 종합경기장터는 전북의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곳이지만 2000년대에 들어와 관리와 보수문제를 안고 있었던 전주시의 오래된 숙원사업이었다. 2012년 전주시와 롯데쇼핑과의 기부대양여 협약을 통해 전주시는 롯데에 종합경기장터 부지의 52%인 1만 9000여 평을 넘겨주고, 롯데는 종합경기장, 야구장을 만들어 주는 대신 대형아울렛과 호텔 입점을 계획했지만, 시민단체와 지역 소상공인의 반대가 심했고 도민의 힘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매각할 수 없다는 공론이 확산되었다. 2019년 3월 전주시는 롯데와의 기나긴 협상 끝에 양여가 아닌 50년 장기임대라는 절충안을 내놓았고 종합경기장터 3만 7000평 중에서 7000평은 롯데에게 임대하고 나머지 3만평의 부지를 시민의 숲과 컨벤션 센터, 호텔로 조성하여 전주시민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생태자연과 복합문화의 터전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발표하였다. 지난 1월 30일 건축, 조경, 도시, 교통, 환경, 미술 등 재생사업과 관련된 6개 분야 전문가 11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자문단이 출범하여 지속적인 회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 3월에는 1963명에 달하는 대규모 시민참여단을 모집하여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아이디어를 얻는 등 진행 과정에서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시민의 숲이라는 이름답게 이 공간은 공공을 위한 숲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부분이다. 전주시는 주변 자연을 연결하는 생태 자연공원을 조성하여 정원의 숲, 예술의 숲, 놀이의 숲, 미식의 숲, 그리고 국제규모 컨벤션 센터가 조성되는 MICE의 숲까지 총 5개의 컨셉으로 구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복합문화공간을 기반으로 한 시민문화 공간, 휴식공간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미뤄왔던 전주시립미술관 건립도 함께 추진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도심 속 숲에서 문화와 예술이 함께 살아 숨 쉬는 모습은 전주시의 품격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올해 9월 세부 설계용역이 완수될 예정이고 2023년 완공을 목표로 한 시민의 숲 1963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시민의 숲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세부적인 구상과 함께 이전될 예정인 종합경기장과 야구장의 모습도 그 계획과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야 하는 부분이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과정의 면면을 공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올해 3월 출범한 11인으로 구성된 전문가 자문단은 시민의 숲 1963 프로젝트와 관련해 시작부터 완료되는 전 과정에 깊숙이 참여하여 관련 전문 분야에 대한 자문 활동을 펼칠 예정이라고 하니 그 책임은 무엇보다 막중하다. 1963년 후손들을 위해 미래를 설계했던 전북도민의 한마음과 그 혜안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 지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희망이 담긴 시민의 숲이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김성수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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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24 17:24

발로 읽는 이야기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한 바위가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큰 돌. 대개는 그냥 지나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누군가 옆에 서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바위는 호운석이다. 호랑이 호와 떨어질 운,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이안사와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더라. 그때부터 바위는 단순한 돌이 아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구절처럼 잊혀지지 않는 존재가 된다. 동네, 길, 도로, 나무, 산, 절 등 이름이 허투루 붙은 경우는 찾기 힘들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살펴보면 모든 걸음걸음이 이야기로 가득하다. 반복되는 일상 속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발견은 생각의 폭을 넓혀 삶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나와 가까운 곳에서 이야기를 찾는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도로명주소다. 머물고 있는 동네, 매일 걷는 거리, 수만 번 지나쳤을 장소의 이름에는 우리 지역의 고유한 특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시선이 닿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요즘 청년들은 알기 힘든 역사와 옛 전주의 모습, 생활 풍경 등을 만날 수 있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사람들을 모아 의병을 조직하고, 64세의 나이로 전장에 나가 300여 명의 왜군으로부터 전주성을 지켜낸 이정란 장군(15291600). 그의 시호가 충경(忠景)이다. 장군의 의로움과 희생정신은 전주 시내를 가로지르는 주요 간선 도로인 충경로와 남고산 아래 산성마을의 충경사, 전라북도를 지키는 제35보병사단 충경부대의 이름에 남아 이어지고 있다. 태조어진과 경기전, 오목대와 이목대, 조경단과 조경묘 등 문화유적과 관련된 명칭들도 눈에 띈다. 태조 어진을 모신 경기전 주변의 태조로와 경기전길, 1380년 삼도순찰사 이성계가 남원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승전을 자축하는 연회를 열었던 오목대길, 고종이 전주이씨 시조 이한의 묘에 단을 쌓아 명명한 조경단로 등 조선 왕조의 발상지였던 전주의 역사가 길에 스며있다. 이 고장의 자랑스러운 인물들도 만날 수 있다. 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19471998)를 떠올리게 하는 최명희길을 비롯해 전북도립국악원에 기적비가 있는 비가비 명창 권삼득( 17711841)을 기린 권삼득로, 조선 시대에 평등한 세상을 꿈꾼 혁신적인 사상가 정여립(15461589)의 대동정신이 서린 정여립로, 병자호란 때 병사를 모집해 서울에 진격했던 이기발(16021662)의 호를 딴 서귀로, 효행으로 명성이 높았던 강서린을 기념해 조선 영조 때 건립된 지행당길 등 올곧은 신념으로 자신의 길을 걸었던 조상들의 자취가 표지판에 새겨 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길들은 모두 선조들이 먼저 걸었던 길이다. 인간의 언어 속에 시간에 관한 우리들의 깊은 고민이 갈무리되어 있듯이, 길에는 시간과 시간의 길이에 대한 우리들의 고민이 총체적으로 깔려 있다.(김병용의 『길 위의 풍경』 중) 동네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지역의 살아 있는 이야기는 일상에 녹아들어 잊어서는 안 될 가치를 들려준다.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를 지키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추구했던 전주 사람들의 마음. 전주라는 도시가 지닌 정신과 매력, 역사문화적 힘은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을 든든히 떠받치고 있다.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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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17 15:55

차별은 무지에서 나온다

김주은 도르 대표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자.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자. 장애인이 가진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인식개선의 시작이다. 여태껏 청춘예찬에 기고했던 모든 글의 결론이자, 앞으로 이야기할 모든 글의 결론이며, 이 칼럼을 통해 가장 전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이와 같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다수가 장애인을 의도적으로 차별하고 배제하며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다. 경험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차별은 의도적인 혐오나 배제보다는 장애인의 입장에서 어떤 행동이 차별로 느껴지며, 잘못된 인식을 가진 말인지 모르는 무지에서 오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무지는 비장애인이 의도적으로 장애인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도록 분리되어 있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가장 크다. 그러므로 이 칼럼을 통해 장애인의 입장을 몰라준다고 비장애인을 비판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으며, 다만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무지에서 오는 차별을 줄이고자 장애인의 문제와 입장을 알리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비장애인은 사회의 다수로서 주류로서의 삶이 익숙하고 편안하기 때문에,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사회의 구조와 환경이 장애인에겐 차별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우리나라 정도면, 나 정도면 차별이 없는 편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대다수의 비장애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의 차별적인 상황과 환경에 묵인으로 합승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김지혜 작가님이 지으신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책의 제목부터 강력한 전달력을 가지고 있다. 사회에는 장애인을 괴롭히고자, 혐오하고자 하는 사람보다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으려는 선량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이러한 선량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고 있을까?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한 구절을 함께 살펴보자. 우리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특권이란 주어진 사회적 조건이 자신에게 유리해서 누리게 되는 온갖 혜택을 말한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누리는 특권은 대개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얻게 된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조건이라서 눈치채지 못한다. 시외버스 좌석에 앉아서 자신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의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누군가가 시외버스 탑승을 요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단어는, 우리는 대다수 차별은 없어야 한다는 선량한 마음을 품고 있으나, 자신이 무슨 특권을 누리는지 알지 못하기에 장애인은 사회적으로 당연히 누려야 할 어떠한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차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장애 인식개선은 우리는 차별을 하지 않는다, 나 정도면 하지 않는다라고 안주하지 않고 우리가 무엇을 모르고 있으며 장애인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다. 이 칼럼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다. 누군가는 평온한 우물에 돌을 던져야 하며, 돌로 인해 일어나는 우물 속 오물들을 걸려내야만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 이 글이 생각 우물에 돌이 되었으면 한다. 다수가 누리기에 편안한 삶이 익숙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 바닥에 깔려있는 차별적인 오물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인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오물들을 마주하고 깨끗이 걸러내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차별하지 않는,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주은 도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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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10 16:10

안전하고 평등한 예술 창작환경을 위한 모두의 과제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2018년 2월, 도내 모 극단 대표의 성추행 고발 기자회견으로 점화된 전라북도 문화예술계의 미투운동은 연이은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폭로와 고발에 이어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위드유로 확산되면서 지역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이후 성폭력을 개인 대 개인의 사적인 문제로 치부하던 과거와는 다르게, 문화예술계의 창작 환경 전반에 대한 구조적 문제의 개선을 요구하는 창작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또한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폐쇄적 구조, 소수 기득권의 권력 독점, 작품 내 빈번한 여성혐오적 표현, 불평등한 성별권력, 인맥과 품평중심의 진입 장벽 등 문화예술계에 만연한 문제적 창작환경이 함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술인 당사자들의 자정적 움직임은 물론이거니와 안전하고 평등한 창작 환경을 위한 지자체와 문화재단의 성평등 정책에 대한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미투 이후 정부는 성차별 해소를 위한 양성평등정책관을 문체부와 법무부, 교육부를 비롯한 8개 부처에 신설했으며, 문화체육관광부는 2020년 <문화비전 2030>을 통해 성평등 문화 실현이라는 의제를 중요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내외적 상황과는 다르게 우리 지역의 행정은 성폭력 사안 중심의 대응 방식으로 일관했다. 성평등을 중요 과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지역문화 발전에 흠결을 내는 것으로 오인해 정책적 연구와 시스템 마련이 더디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 있다. 또한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특정 성별 및 나이대를 성적 대상화한 작품을 창작하거나 작품 내 빈번한 여성혐오적 표현에 대한 여과 없는 재현, 자유분방함을 넘어선 성적 표현을 예술적인 자유로움으로 용인하곤 했다. 그러나 예술가의 창작물은 예술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예술가의 성인지 감수성 함양을 위한 교육과 창작 환경 개선을 도모하는 행정의 성평등 정책 마련은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본 필자는 네 가지 정책 제안을 이미 2019 전주문화논총에 실은 바 있다. 첫째, 문화예술 기반 조성 및 제도 개선. 전담부서 신설 및 성평등 자치규약 제정, 실태조사 실시, 성폭력 근절 서약서 의무화, 성폭력 사안에 관련된 매뉴얼 마련, 예방교육 의무화 등이다. 둘째, 문화정책 전문인력 양성 및 활동 지원에서 젠더 관점 갖기. 교부금 심사위원 성별 균형 및 성인지 감수성 교육 의무화, 범 예술인 대상 포럼 및 세미나 개최를 통한 현장 자정의 기회 마련, 문화예술계 내 젠더 문제 해결 소모임 지원에 관련한 정책이다. 셋째, 문화 프로그램에서의 성평등 감수성 제고. 왜곡된 성별 고정관념 혹은 성차별적, 여성비하적 편견이 내재된 작품 소비 지양을 위한 캠페인이 필요하다는 정책이었으며 마지막으로 문화예술 지원사업 및 운영에 있어서 젠더 관점 가이드라인 제안에 대해 교부금 지원 창작물에 대한 젠더 관점 가이드라인 안내물 제작, 젠더 감수성 평가지표를 통한 사업 반영등 에 관한 정책이었다. 문화예술계의 미투는 단순한 이슈를 넘어서 시대적 정신이 되었다. 더는 아픈 과거가 재생되지 않도록 누구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이제라도 성평등한 문화예술계를 위한 시스템 구축을 가장 중요한 정책적 과제로 인식하고 안전하고 평등한 창작 환경 만들기를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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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03 15:35

우리 동네에는 어떤 공공미술이 있을까?

김성수 조각가 우리가 사는 동네에는 어떤 미술작품들이 있는지 둘러본 적이 있는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우리의 생활 주변 공간에서 다양한 공공미술을 발견할 수 있다. 흔히 바깥에서 볼 수 있는 조형작품은 삭막한 도시 속에서 누구나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띠며 우리 삶 속에 스며들어 있기에 공공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공공미술이 진행되는 경로는 크게 3개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로 퍼센트 법이라고도 불리는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로 설치되는 미술작품이 있다. 연면적 1만 제곱미터 이상 신축 또는 증축하는 일정한 용도의 건축물은 건축 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회화, 조각, 공예 등 미술작품의 설치에 사용하거나 직접 설치비용의 70%에 해당하는 금액을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이며 아파트나 대형빌딩, 병원, 마트와 백화점 앞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야외 조형물과 건물 로비에 설치된 미술작품이 이에 해당한다. 건축주가 사전 협의를 통해 지정 공모로 작가를 선정하기도 하고 건물의 목적과 컨셉에 맞는 작품을 공모를 내어 선정하기도 한다. 사업 대부분에 작가가 직접 참여하며 전북의 경우 전문가로 이루어진 20명 내외의 전라북도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위원 회의를 통해 작품설치의 가부가 결정된다. 두 번째로 전문작가가 참여하여 커뮤니티 형성이 주축이 되는 마을미술프로젝트 계열의 사업이 있다. 건축물 미술작품 기금납부를 통해 모인 문화예술진흥기금이나 지자체의 예산을 사용하여 삭막해진 도시를 다양한 색으로 수놓는 벽화작업과 기발한 설치작품을 통해 침체되고 소외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의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예술로 풀어나가고자 하는 성격이 강하다. 전주시에는 2000년대 초반 공공미술프로젝트로 이루어진 동문예술거리와 자만벽화마을이 있으며 최근에는 첫 마중길 야외조각 전시, 예술있는 승강장 사업과 이동형갤러리 꽃심, 선미촌 2.0 프로젝트처럼 문화예술 도시를 지향하는 도시계획 속에 실험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공공미술프로젝트가 실행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기념조형물의 형태가 있다. 조달청의 기준으로 집행되며 금액이 큰 만큼 지원조건이 까다로워서 조각가 혹은 전문예술인보다 조형물 전문업체나 기업형태의 접근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첫째와 둘째의 경우 작가의 직접적인 참여도가 높고 전문가로 이루어진 심의위원 조성과 심사과정에서 작품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지기에 심미적 평가가 양호하나, 셋째의 경우 경쟁적으로 이루어지는 거액의 랜드마크형태의 조악한 조형물들이 무분별하게 설치가 되면서 기존의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공공예술작품마저 함께 질타의 대상이 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각 지역의 특산물이나 상징물을 예술성의 고려 없이 확대하여 조형화시킨 것들이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공미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지면서 우리 주변에 설치되는 작품들의 선정절차와 작가선정에 대한 공정성과 투명함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지역에서 건물이 세워지면 어떤 작가의 작품이 세워지게 되는지 어떤 절차를 통해 작품이 선정되는지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도 작품을 관람하는 것만큼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예술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할 만큼 가까이 있으며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어떤 이는 작품을 보며 꿈을 꾸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랑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지친 삶의 위로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로 지친 요즘, 우리 주변에 숨어있는 미술작품을 찾아 산책을 해보는 건 어떨까. /김성수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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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26 16:28

다시 손으로 씁니다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복고가 대세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트로트를 비롯해 경제문화예술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다. 고전문학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출판계 역시 그 바람을 타고 있다. 인터넷서점 YES24에 따르면,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1947)가 문학을 포함한 전 분야를 통틀어 3월 한 달 판매 순위 2위를 기록했다. 최근 개봉한 동명 영화로 입소문을 탄 루이자 메이 올콧의 『작은 아씨들』(1868)은 3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1919)은 6위에 올랐다. 초판본 표지 디자인도 다시 등장했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55년 증보판을 시작으로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1795),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 백석의 『사슴』(1936), 김구의 『백범일지』(1947) 등이 옛 얼굴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디지털에 밀려 희미해져 가던 아날로그는 지친 현대인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자아와 성찰을 다루는 과거 문학작품이 인기를 얻고, 전자 화면에 손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스타일러스와 스마트펜 기술이 발달하고, 컬러링북다이어리 북필사시집 등이 생겨난 것은 기계가 충족시키지 못하는 인간 고유의 감성 때문이다. 사과문, 각서, 편지 등을 타이핑하지 않고 여전히 자필로 쓰는 것 또한 비슷한 이유이다. 우리는 활자가 주지 못하는 따뜻함과 정겨움, 진정성을 손으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 느낀다. 예부터 글씨는 인격을 수양하는 도구로 활용됐고, 오늘날에는 서예와 캘리그래피(멋글씨)가 느림과 정성의 미학을 뽐내며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문학청년들의 글쓰기 연습에 필사가 우선으로 꼽히듯 대다수의 시인과 작가도 손으로 먼저 글을 익혔다. 소설가 조정래는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연이어 쓰면서 하도 팔을 굴려 먹어서 오른팔 관절이 어긋나 버렸다.라고 밝히면서도 사람이 글을 쓰는데, 육필, 손으로 쓰는 글씨가 다 없어져 버리는 시대는 얼마나 삭막한가.라고 탄식했다. 작가 박경리는 유고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다.라고 적었고, 시인 김수영은 글을 쓰는 것이 천직이라 좋은 만년필을 갖고 싶은 것이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욕망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만년필 사랑이 각별했던 소설가 최명희도 만년필과 원고지를 고집하는 이유를 만년필은 몸의 일부이며 원고지를 펼치고 펜을 잡을 때 신선한 영감이 온몸에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면서, 소설 「혼불」을 차가운 기계에 의존해 쓴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라고 대답했다. 종이에 손으로 글을 쓰는 행위는 생각을 가다듬게 하고 마음의 안정을 준다. 특히, 필사는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와 더불어 논리력과 어휘력을 키우고, 헷갈리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된다. 별을 보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은 불행하다. 아이들은 자신의 불행을 모른 채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자란다. 아이들아, 먼지의 장막 뒤에서 별들은 빛나고 있다. 아이들아, 별들은 보이지 않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김훈 『연필로 쓰기』 중) 여러모로 심란한 요즘, 가슴에 와 닿은 시 한 구절, 산문 한 문단을 따라 써 보며 조금은 느리고 불편하지만 과정이 주는 기쁨과 정성의 가치를 다시 느껴보길 바란다.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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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19 16:15

코로나19·텔레그램 N번방 이슈 속 장애인

김주은 도르 대표 수많은 이슈들로 시끄러운 세상이다. 바이러스부터 성범죄까지 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아프고 있으며, 뉴스에 나오는 문제들이 곧 나와 내 가족의 문제가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이러한 이슈는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들춰보게 됨으로써 두려움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러한 부정적인 면을 고쳐나갈 수 있을지 대안을 생각하게 되고,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문제가 이슈화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고쳐나가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이슈 속에서 장애인의 문제는 여전히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는 장애인이 겪는 문제의 심각성을 아직 모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코로나19로 만 명이 넘는 확진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아직도 계속적으로 증가하는 확진자를 줄이기 위해서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안전 안내 문자를 보고, 질병관리본부의 브리핑을 듣고, 줄을 서서 마스크를 사는 것이 혼자서 어려운 장애인들이 있다. 이러한 장애인에게 대책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나 [자가격리]와 같이 혼자서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 장애인은 바이러스 감염 이전에 일상생활 유지가 어려워 위기 상황이 닥칠 수 있다. 하지만 전 국민이 함께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에서 국민의 5% 해당하는 260만 장애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는 여전히 가이드라인이 부재한 실정이다. (출처. 연합뉴스) 텔레그램 N번방 속에도 장애인 뉴스가 숨어있다. 미래 통합당은 N번방 사건을 위한 대책 위원회를 구성했다고 알리며, N번방의 잔혹한 영상 중 장애인과 강제 성관계하는 영상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출처. news1) 지적장애인의 경우, 성에 대한 지식과 판단 능력이 부족하여 성범죄에 쉽게 노출이 된다. 하지만 성범죄를 당해도 자신의 입장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우리는 텔레그램 N번방이란 이슈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과 미성년자들이 성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보게 되었다. 자식과 동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였으며, 분노하였고, 관심을 가지고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같은 텔레그램 N번방이란 이슈 속에서 장애인 성범죄라는 문제는 많은 공감과 관심을 얻지 못하였고, 대중에게 심각성을 알리지 못하였다. 커다란 이슈의 홍수 속에서 장애인이 겪는 문제는 나와 내 가족의 문제가 아니기에, 공감하지 못하고, 관심 가지지 않으며, 결국 뒤로 밀리게 되는 것. 이것이 우리 사회가 아직도 장애인을 우리 사회의 일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늘 명확히 존재하지만, 차별을 하는 사람은 늘 명확하지 않다. 아마도 우리는 누군가를 차별하면서도, 차별한다고 인식을 못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장애인 차별의 시작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수많은 정보를 접할 때, 장애인의 문제에 한 번 더 관심을 가진다면 내가 의도치 않게 장애인을 차별하게 되는 일은 없어질 것이며, 우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될 것이다. /김주은 도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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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12 15:41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나의 20대, 이제 막 문화예술계에 진입했을 때 무대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시간이 흘러 무대가 나의 삶이 되겠구나라는 막연한 결심이 들 때쯤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진짜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열정이 솟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누가 진짜 예술가인지, 무엇이 진짜 예술을 판가름하는 기준인지 알지 못했고 유명작가, 유명연출가 등 대중에게 알려진 성공한 예술가가 하는 창작행위는 적어도 진짜 예술일 것이라는 믿음에 빠졌다. 그들의 작품을 관람하고 수집하는 데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고 저서와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에 꽤 큰 만족감을 느꼈다. 그들의 작품을 닮고 싶었고 그들의 삶을 선망했다. 어떻게 하면 나도 저들처럼 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대학원에 진학했다. 석사과정을 시작하고 전문지식을 습득하여 구사할 수 있는 전문가적 언어가 늘어난 것에 대한 자신감은 커졌지만 이상하게도 나의 예술은 수렁에 빠진 듯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위대한 작품들과 나의 작품을 비교하기 시작했고 창작과정에 대한 자기검열이 심해졌으며 열등감과 부끄러움이 더해졌다. 무대는 가장 무거운 숙제가 되어 나를 짓눌렀다. 무엇에 대한 두려움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렵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예정된 숙제였을지도 모른다. 정작 내 삶의 반경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들여다보지 않으면서도 무대 위 소재에 대해서는 내 일인 양 분노하였고, 다수가 인정하는 성공한 타인의 삶만을 욕망하며 그 외양을 흉내내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8년 2월 공개기자회견을 통한 나의 미투는 이러한 치열한 자기고민에 대한 고백이었다. 더 이상은 나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들에 대해 외면하지 않으리라, 내가 서 있는 이 곳에서 내 세상을 관철하리라, 그것이 예술가로 존재하는 나의 시발점이며 정체성이고 오롯이 내가 담아낼 작품의 소재임을 깨달은 셈이다. 그리고 그 해, 수많은 문화예술계 미투를 보며 진짜 예술을 바라보는 나의 기준은 분명히 달라졌다. 천재라 불리던 유명연출가의 성폭력 사건을 보면서, 미투 가해자의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예술가였다는 사실을 지켜보면서, 추앙받았던 그들의 유명 작품이 피해여성의 성착취가 묵인된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모든 상황을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의 전문가적 기량만을 뽐내기에 바쁜 몇 몇의 유명연출가의 행보를 보면서 내가 선망했던 진짜 예술은 어쩌면 허상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최근 성착취채팅방 사건과 한 정치인의 딥페이크, 예술작품이라 생각하고 만들 수 있지 않냐는 발언과 관련 법안을 졸속처리한 국회를 보며 이 사회의 일원이자 여성인 나는 한없이 분노한다. 또한 이 분노가 무력감이 되지 않기 위해 예술적 동력으로 활용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에 이바지할 작품을 세상에 탄생시켜야 한다는 책임마저 생긴다. 나는 여전히 진짜 예술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타인을 착취하고 괴롭히며 묵인, 방조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던 어떤 것에도 예술이라는 이름을 허락할 수 없다는 기준은 명확하다. 폭력과 배설에 예술을 빙자하도록 허락하지 않겠다.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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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05 15:34

조각가의 하루

김성수 조각가 아침 6시반, 알람 소리와 함께 하루가 시작된다.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은 후 삼례에 있는 작업실로 향한다. 운전대를 잡은 왼손의 붕대 안의 상처는 전보다 많이 아물었지만, 움직일 때마다 욱신거리는 통증에 계속 신경이 쓰인다. 지난 1월 21일 구정을 앞두고 손을 다쳤다. 4인치 그라인더로 금속판을 자르던 중 회전하는 절단날이 왼쪽 집게손가락 위를 덮쳤고 깊게 들어간 날은 피부를 찢고 인대를 스쳤다. 급한 대로 작업실에 갖춰놓은 구급함 붕대로 지혈하고 허겁지겁 도착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10여 바늘을 꿰맨 후 수술은 마무리되었고 다행히 신경은 무사하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작업하거나 그림을 그릴 때 왼손을 사용하기에 작가 생명을 좌우할 수 있었던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아직도 왼손 검지는 깊게 말리지 않아 불편함이 있지만, 밀린 작업 진행을 위해 오늘도 작업실에 도착했다. 지난겨울은 봄을 시샘하지 않는 듯 몹시 춥지 않아서 작업하기 딱 알맞은 온도였다. 묵직한 망치로 금속판을 두드리고 불꽃이 튀는 용접작업을 하는 필자는 더운 여름보다 시원한 겨울을 선호한다. 가끔 망치질할 때 생각을 비우기도 하지만 곧 다가오는 작업실 월세라든지, 다음 달 생활비를 생각하며 한탄 섞인 망치질을 하기도 한다. 오늘은 오전 내내 1제곱미터 넓이 분량의 금속판을 두드렸다. 농사짓는 분들이 솟아나는 볏모를 보며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려나. 잘리고 두드려진 금속판들을 보면 말할 수 없는 보람이 느껴진다. 2009년에 데뷔해서 올해로 작업 11년 차 조각가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지만, 작업실에서 시나브로 완성되어가는 작품을 볼 때 생애 첫 작품을 바라보는 것처럼 뿌듯함과 희열을 느낀다. 고된 망치질 덕에 허기를 느껴 점심을 간단히 먹고 돌아와 오후에는 용접을 진행했다. 망치질에 비하면 용접은 나름 신선놀음이지만 섭씨 1,500도의 강한 알곤가스 용접의 빛에 눈이 종종 화상을 입곤 한다. 조각가의 숙명이려니 하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차가운 물수건을 올린다. 예술의 범주에서 놀고 있지만 고된 노동력을 수반하는 작업성향 덕에 노동자의 옐로칼라가 훨씬 잘 어울리는 듯하다. 언제까지라도 이 재밌는 놀이(?)를 계속하고 싶지만 내 몸이 버텨줄까 하는 걱정과 함께 못 버티면 그때 가서 할 수 있는 작은 작품을 만들면 되지! 하고 위안을 하곤 한다. 조각가들은 고된 작업성향으로 인해 실제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은 다른 미술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다. 요즘은 부드럽고 가벼운 재료와 오브제를 사용한 개념 위주의 작품들도 많이 볼 수 있지만, 재료의 물성을 기본바탕으로 하는 작업의 형태는 전통적인 조각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전북에서 활동하는 대략 40~50명 정도의 조각가들은 대부분 노동력을 수반하는 땀 흘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재료와 숙성기간, 음식을 담는 그릇이 다르면 그 맛이 천차만별 다르듯 각각의 조각가의 신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개성 있는 작품들은 그저 경이로울 수밖에 없다. 3D프린터가 나오고 기술이 고도화되는 시대로 흐를수록 만드는 행위의 기본이 되는 시간과 땀의 소중한 가치는 오히려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작업을 마치고 어둑해진 길을 나서며 보람찬 하루를 보냈는지 자신에게 되묻는다. 난 오늘도 뜨거웠는가? 오늘도 이렇게 조각가의 하루가 지나간다. /김성수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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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29 15:19

설령 코앞에 삼재 팔난이 닥칠지라도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알록달록 색을 더해가는 전주한옥마을 담벼락. 낯설게 고요하다. 익숙한 재잘거림이 사라진 거리에 상인들의 한숨이 나뒹굴고 있다.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19는 평범했던 일상과 특별했을 계획을 모두 얼어붙게 했다. 소살소살 흘러온 봄을 보고 있자니 더욱 야속해진다. 사람이 아무 살도 안 띠고 평생을 순탄하게 살기는 아무래도 어려운 법이란다. 누구라도 한두 가지 살은 맞게 되어 있지마는, 그러더라도 어쩌든지 제가 미리 알고, 조심허고, 뛰어갈 거 걸어가고, 소리칠 거 어루만지고, 그렇게 삼가면, 설령 코앞에 삼재 팔난이 닥칠지라도 가벼이 지나간단다.(소설 「혼불」 중) 전주시의 지침으로 도서관박물관체육관 등 대부분의 공공시설은 문을 닫았지만, 최명희문학관을 비롯한 일부 민간위탁 문화시설은 정상 운영하며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문학관 역시 다수의 사람이 모이는 문학강연문학기행체험행사문학제 등 모든 행사를 잠정 중단한 상황이다. 출근길 전주사고 근처를 지나니 과거 조상들은 전염병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궁금증이 인다. 지금보다 의학지식도 첨단장비도 부족했던 왕조시대에는 심각한 국가위기를 어떻게 이겨냈을까.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는 무엇일까. 『조선왕조실록』에는 1,455건의 전염병 기록이 등장한다. 1392년부터 1917년까지 연평균 2.73회 발생했다. 임금별로 보면 숙종이 25회로 가장 많았고, 영조(19회)와 현종(13회)이 뒤를 잇는다. 유행 빈도는 3월(12.3%), 2월(12%), 4월(10.4%) 등 봄철이 34.7%로 가장 많다. 겨울에 시작해 봄에 확산된 코로나19의 상황과 비슷하다. 병자 격리, 처방문 배포, 위생관리, 구휼미 제공 등 대응 방안도 지금과 유사한 부분이 눈에 띈다. 1437년 봄 전염병이 진제장(무료급식소)을 휩쓸어 수많은 백성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1444년 또다시 역병이 돌자 세종은 7년 전의 전처를 밟으면 안 된다.라며 빈민들을 분산 수용하고 질병에 걸린 사람은 다른 사람과 섞여 살게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1526년 중종은 평안도로 의약품을 내려보내 마음을 써 치료하도록 하고, 또한 중앙에서 제사 지낼 것을 예조에 말하라.라며 피해자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했다. 1613년 2월 광해군은 백성들이 병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전염병 매뉴얼인 『신찬벽온방』을 전국에 배포했는데, 물을 반드시 끓여먹고, 옷가지를 삶아서 입고, 몸을 깨끗하게 하고, 고여 있는 물을 퍼내어 쓰라고 적혀 있다. 기록 속 조상들의 모습에서 전염병을 개인의 희생이 아닌 사회문화적 문제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엿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현재로 이어져 코로나19를 막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전주에서 시작한 착한 임대료 운동과 재난기본소득을 비롯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부, 피해지역 의료봉사, 사회적 거리두기, 예방수칙 지키기 등 사회 전반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기분 좋은 소식들이다. 과거에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공동체 문화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은 재물을 풀어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병으로 농사를 못 짓는 가정을 위해 이웃에서 대신 농사를 지어주는 것.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는 이유이다. 우리는 이 위기를 잘 이겨내고 소중한 일상으로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설령 코앞에 삼재 팔난이 닥칠지라도.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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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2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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