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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의 재해석과 전라북도 글로컬 실현의 비전

박정민(전북대 사학과 조교수) 지난 10월 30일 국악으로 신명나게 놀아 볼 신개념 퓨전 국악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을 지향한 조선판스타가 종영하였다. 최근 여러 이슈를 몰고 온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 보다 화제성은 적지만, 시청률은 3배 가까이 앞서며 저력을 과시하였다. <조선판스타>는 국악을 기반으로 가요, 재즈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무대를 꾸미는 크로스오버(corss-over)로 판소리를 비롯한 전통음악의 매력을 새롭게 제시하며 호평 받았다. 우리 음악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도 판소리의 파격 변신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대한한국 국악계는 지금 현대적 재해석과 퓨전으로 폭넓은 세대의 주목과 호응을 얻는 중이다. 반면 북한은 국악의 변신에 회의적이다. 북한의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11월 2일 국악계 이단아들이 서양악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면서 민족 음악을 변질시키고 있다., 민족 음악의 명맥이 사라지고 있다.고 비판하며 전통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통을 고수하고 보존한다는 측면에서도 이 주장은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판소리가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이는 18세기 영정조대와 19세기 흥선대원군대의 판소리는 사뭇 다르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판소리는 계속 변화를 겪으며 오늘의 형태에 이르렀는데, 전통이란 것은 시간과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판소리를 비롯한 국악의 역사에서 주목할 점은 우리 전라북도의 위상이다. 흔히 남원을 국악의 성지라고 하는데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흥부가와 춘향가의 배경지이고, 동편제 판소리를 정형화한 송흥록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립민속국악원도 남원에 있고, 시립 국악단이 운영되며, 후속세대를 양성하기 위한 국악예술고등학교도 있다. 남원뿐만 아니다. 19세기에 고창 지역에서 활동했던 동리 신재효는 기존의 판소리를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끼 타령, 적벽가, 가루지기타령 등 여섯 마당 사설로 정리하였고, 이론을 정립하였다. 국악계에서 신재효의 위상은 매우 높은 만큼, 고창군에서도 그를 기리기 위해 판소리박물관, 판소리전수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후속세대 양성을 위해 전국 어린이 판소리 왕중왕 대회를 1988년부터 34회째 진행하고 있다.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전주대사습놀이 역시 조선 후기에 전라감영과 전주부 통인청에서 주관하며 성했하였는데, 1910년을 전후한 시기에 중단되었다가 1975년부터 재개되었다. 전주대사습놀이가 현재 국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국악의 본향이라고 할 수 있는 전라북도의 소리가 현대에 다시 전국적으로 관심을 끌고,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이는 지역의 것이 세계화를 이룰 수 있다는 글로컬(Glocal)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전라북도는 국악 등을 홍보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전통적인 판소리를 계승함과 동시에 퓨전까지 아우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판스타가 시즌 2를 개최한다면 결승전은 전주대사습놀이를 진행했던 전라감영에서 진행하도록 하여 전통적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혹은 최근의 트렌드인 메타버스나 가상현실 플랫폼을 국악과 접목시켜 전라북도에서 선도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방안도 있다. 판소리를 비롯한 국악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 전라북도가 관련 문화 사업에 역동적으로 움직인다면, 우리문화유산의 세계에 알리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정민(전북대 사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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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21 16:54

새로운 일상, 새로운 콘텐츠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최근 단체관광 대신 가족 단위의 소규모 관광이 증가했다. 코로나19로 관광 흐름이 개별소규모비대면으로 바뀐 것이다. 코로나19로 움츠러들었던 지역의 대표 관광지들도 단계적 일상 회복에 맞춘 새로운 관광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새로운 일상에 맞춘 색깔 있는 관광콘텐츠를 만드는 지역만이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시기다. 국외여행의 제약으로 국내여행이 늘어났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관광공사와 2021년 국내관광 흐름 분석 결과 가족, 연인, 친구와의 여행이 증가했다. 단체 여행보다는 소수의 친밀한 사람들과의 여행이 늘었다. 반려동물에 대한 여행도 늘어났다. 안전한 여행을 추구하며, 기존과는 다른 새롭고 독특한 여행 콘텐츠에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코로나 우울을 극복하기 위한 치유와 안전 선호도 높아졌다. 국내의 다양한 여행지로 관심이 증가하면서 기존의 관광지보다는 새로운 관광지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새로운 관광유형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는 기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필자도 콘텐츠 창작 작업을 하면서, 관광콘텐츠의 변화를 실감한다. 기존 한옥마을 중심의 관광콘텐츠 창작에서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 관광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처음으로 하고 있다. 그 첫 대상지는 서학동이다. 서학동은 전주 한옥마을 옆에 있다. 서학동 예술마을로 알려졌지만, 사람들로 북적이는 관광지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주말에도 한옥마을 바로 옆이라는 지리적 위치가 무색할 정도로 한산하다. 최근 서학동은 재개발이 아닌 도시재생 사업으로 걷기 좋은 거리가 되었고, 오래되고 평범한 건물에 숨결을 불어 넣고 있다. 코로나19로 새로운 여행이 주목받고 있다고 하지만, 주민들의 생활공간이 대부분인 서학동에 관광객을 위한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은 시작부터 난감했다. 관광객이 이러한 유형의 여행을 좋아할지도 의문이었다. 서학동 주민들의 거주권을 침해할 수 있었다.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서학동이 간직한 경쟁력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수시로 찾아가서 밥도 먹어보고, 인근 산에도 올라가 보았다.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다녔으나, 주변엔 오로지 평범함 뿐이었다. 막막함이 내내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서학동의 평범함이 곧 새로운 무엇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시 서학동을 바라 보았다. 서학동에는 골목길이 있었다. 골목길은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을 말한다. 대도시에서는 좀처럼 걸어볼 수 없는 길이다. 생각을 바꾸니 골목이 새롭게 보였다. 담벼락, 모퉁이, 계량기, 녹슨 양철 지붕, 화단에 핀 민들레 등 한 걸음씩 뗄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이 골목길에 있었다. 관광객들과 함께 골목길을 걷자. 골목길을 걸으며 서학동 이야기, 전주 이야기, 우리네 사는 삶의 이야기를 하자. 그 이야기를 서학동 주민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말하면 어떨까. 걷는 내내 지역 청년 예술인이 이야기 하면 어떨까. 어쩌면 그곳에도 전주를 가장 전주답게 해주는 삶의 모습이 분명 있을 거라는 거창한 기대도 피어올랐다. 주민들의 이야기와 지역 청년 예술인이 모여 10명 정도의 관광객과 함께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들려줄 이야기를 찾기 시작했다. 주민 자신의 이야기가 곧 서학동 이야기가 되고, 전주의 이야기가 되며, 우리 삶에 관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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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14 16:36

바라는 순간에 도착하기를

김유진 우석대 미디어영상 4학년 드라마나 소설에서의 죽음은 쉽고 현실의 죽음 또한 허무하다. 억울한 죽음을 보며 삶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고난과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삶을 조금 알 것 같다가도 익숙해질 때쯤 시련이 찾아온다. 꼭 새것처럼 초면처럼 말이다. 그래서 행복하면 불안하기도 하다. 언제 시련이 찾아올지 몰라 대기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통은 불쑥 찾아오고 나를 혼란에 빠트린다. 최진영의 <해가 지는 곳으로>의 소설 속 인물이 바이러스가 세계를 뒤덮고 멸망 직전까지 가게 되는 상황에서 여기서 시작하면 좋겠어. 새로운 인생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모든 것을 잃고 억울한 죽음을 눈앞에 보고도 불행한 삶을 원망하는 게 아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보자는 말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말은 실패하더라도, 힘든 상황이더라도 도전을 해보자는 말처럼 들렸다. 가진 것 하나 없고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희망을 가진 인물이 부러웠다.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준다면 당장 리셋하고 돌아가는 상상을 했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내 마음가짐에 따라 삶을 개척할 수 있는 거였다. 소설 속 인물들에 비하면 나의 고난과 시련은 참 초라했다. 잃은 것 없이 감사한 줄 모르고 불평했던 지난 삶을 돌아보며 반성했다. 코로나로 인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에 억울했지만 생각지 못하게 얻은 것도 있었다. 코로나 이후 깨달은 건 현재를 소중히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현재를 살고 있으니 지금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시간은 돌아오지 않기에 할 수 있다면 하고 후회하자는 생각이 커졌다. 후회하는 일이 있다면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처럼 다시 시도해보자는 말을 떠올릴 것이다.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고 글을 읽으며 마음이 바뀌는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누군가의 말을 빌려 전할 뿐이지만 실패하더라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처럼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도전한다는 것은 어렵고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막상 도전하고 용기를 내도 노력으로만 안 되는 것을 모두 알기 때문이다. 사회는 불공평하므로 출발선이 다르면 같은 시간 안에 도착하지 않는다. 그럴 땐 바꿀 수 없는 것은 빠르게 인정하고 올바른 방법을 찾는 것이다. 고난과 시련은 내가 변화하는 과정의 필수코스이기에 피하려 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믿고 바라는 순간을 그리다 보면 언젠가 원하는 날은 올 것이다. 소설 속 인물처럼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단순히 행복을 위해 사는 삶, 내 집 마련이 꿈인 삶, 돈이 넘쳐서 써도 타격이 없는 삶, 건강만 하면 되는 삶. 사람마다 원하는 삶이 다를 것이다. 최근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사는 기분이 들게 한 건 드럼을 배운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일 테지만 나는 어렵게 하루에 한 시간, 나에게 투자하는 용기를 냈다. 더 빨리 알았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또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현재를 되짚어 봤다. 원하는 날이 막상 와도 시련은 계절처럼 올 것을 안다. 잊지 말 것은 시련이 와도 언제든 나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바라는 곳으로 가기 위해 작은 희망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김유진 우석대 미디어영상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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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07 17:28

신춘문예와 문학의 위기

김정환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가을을 망각할 정도로 시린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이제 겹겹이 옷을 싸매지 않고서는 새벽의 추위를 견디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이 쌀쌀함 속에서도 초연히 열을 올리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문학인들이다.언제나 열병처럼 지나가고 말았던 신춘문예 시즌이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문학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이 가장 기다리고 있었던 시간이 아닐까 싶다. 문학인들은 어찌 보면 농부와 다를 바 없다. 농부는 때로는 따스한 햇볕을 쬐고, 때로는 무더운 더위를 견디고, 때로는 거친 비바람을 헤치고, 때로는 시린 추위를 이겨낸다. 그들은 그렇게 한 해 동안 구슬땀을 흘리고 결국은 농작물을 수확해낸다.농부와 같이 문학인 또한 숱한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사건과 여러 감정들을 마주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만의 글을 건져 올린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온 글을 널리 인정받기 위해 신춘문예에 작품을 투고한다. 비록 예전에 비해 위상이 많이 낮아졌을지라도, 신춘문예가 여전히 문학을 업으로 삼으려 하는 이들에게 든든한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신춘문예는 신문사나 잡지사가 매년 연말 현상금을 내걸고 문학작품을 공모해 심사를 거쳐 당선작을 발표하고 상금을 주는 일종의 문예작품 선발 행사다. 이는 1925년 <동아일보>가 문학작품의 공모를 연말에 실시하면서 생겨난 제도다. 당선자에게는 상금이 주어질 뿐만 아니라 문단에서 신인문학가로 인정을 해주는데, 새로운 신인문학가를 발굴하고 새로운 문학작품을 대중에게 널리 소개할 수 있는 제도로 인정을 받으며 지금까지도 한국 문단의 문학가 양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문학 활동에 뜻을 두고 있는 신인들이 이 제도를 통해 자신의 창작 역량을 시험하고, 문단에 등단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신춘문예는 1930년대 이후부터 신인 문학가들의 등용문이 됐다. 약 100년 역사의 신춘문예가 지금까지 배출한 문인의 수는 이제 헤아릴 수가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다.하지만 세상 그 어떤 것이든 오래된 것은 녹이 슬고 색이 바래기 마련이다. 최근 좁아져만 가는 문학의 입지와 맞물려 신춘문예 제도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돈황의 사랑』의 작가인 윤후명 작가는 한 강연에서 상금이 없거나 과하지 않은 타국의 문학상들과 달리 한국의 문학상은 요행심리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추구해야 할 본질인 문학이 도리어 실종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런 요행과 도박적 요소로 당선된 수상자들이 나중에까지 좋은 소설가로 남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이어 윤후명 작가는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단편 소설 기준이 80매다. 한 백 년 동안 유지되고 있는 형식으로, 외국에는 없는 기준이라며 소설의 분량 기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고, 소설을 분량 채워나가듯 써야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요즘 시대에 글은 읽는 사람만 읽는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고는 한다. 하지만 문학의 위기가 도래한 현 시대에서도 여전히 필자는 문학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믿는다. 인간이 살아 숨쉬는 한 문학은 짙고 긴 그림자처럼 항상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이에 관해서 괴테가 좋은 말을 남겼다. 인간이 타락했을 때에만 문학이 타락한다. 참으로 멋진 말이 아닐 수가 없다. /김정환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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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31 16:42

무작위 정보의 무작정 노출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어떻게 당신은 최신 트렌드도 잘 모르고 사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사실 나는 오징어 게임을 아직 못 봤으며 예능이나 드라마를 잘 안 보기에 일상의 대화를 쉽게 이어가지 못한다. 지인과의 대화에서 모르는 유행어나 신조어가 나온다면, 나는 과감히 묻는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세상에, 그것도 모르고 사냐는 표정. 그렇다. 나는 이제 내가 궁금한 세간의 이야기를 주로 타인으로부터 얻는다. 물질문명을 거부하며 지리산 깊은 곳에 도인처럼 숨어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인류에게 편리한 삶을 가져다준 디지털 기술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 필요하다 싶은 최신 제품이 있으면, 사서 편하게 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도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나의 하루를 돌아보니 무엇하나 스스로 주도하거나 선택한 것이 없었다. TV를 켜놓고 주어진 시간대에 흘러나오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심심하니까. 할 것 없으니까 그랬다. 스마트폰을 켜고 세상의 이야기를 스치듯 넘겨다보았다. 무작위 정보의 무작정 노출, 그것이 일상이었다. 포털사이트에 접속하면 수많은 정보가 자신을 찍어달라고 유혹한다. 목적은 업무 메일 확인이었으나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1시간이나 흘렀다.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마음은 초조하지만, 포털사이트라는 공장에서 클릭만 반복적으로 찍어누른다. 무작위 정보에 무작정 노출되다 보니, 무언가 아는 건 많아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스스로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것인지, 주어진 정보를 앵무새처럼 읊고 있는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오리지날(original) 보다는 그것을 2차 3차 가공한 정보에 눈이 더 갔다. 편하고 쉬우니까. 가공한 정보의 특징은 핵심적이고 짧아 편리하지만, 자극적이며 편파적일 확률이 높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도 생겼다. 세상의 정보 편의점 인스턴트 식품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받아들인 정보가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책을 읽을 때도 빠르게 많은 양의 정보를 얻으려고 했다. 책을 읽었으나, 도대체 뭘 읽은 것인지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았다. 정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으나, 결국 나는 아무것도 얻은 게 없었다. 나는 빠르게 세상을 빠르게 따라가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먼저 나를 둘러싼 무작위 정보와 무작정 노출부터 차단했다. 옷가게에서 아무리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도 정말 필요한 한 가지만 고른다는 심정으로 세간의 정보와 대면했다. 정보에도 유기농 식품과 인스턴트 식품이 있음을 알았다. 또한, 유튜브보다는 책을 읽는 시간을 늘렸다. 한 문장 한 문장 작가가 의도한 바를 음식을 씹고 맛보듯이 천천히 받아들였다. 처음엔 시각적 영상이 따라주지 않아서 답답했으나, 내 머릿속에서도 유튜브보다 더 재미있는 상상의 세계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누구는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전의 나의 삶과 비교했을 때보다 주도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정보가 맛있다. 식사 시간에 TV와 스마트폰을 켜지 않고, 대화도 하지 않으며, 혼자 음식에만 집중해 보았다. 천천히 씹으면서 음식의 맛을 느껴보았다. 음식이 맛있었다. 정보 또한 음식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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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24 16:47

전라북도의 정체성과 미래학 확립을 위한 여정

박정민(전북대 사학과 조교수) 최근 이재명 경기지사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되었다. 그는 잘 알려진 것처럼 성남시장이라는 기초 지자체 단체장을 역임한 적이 있고, 지난 지자체 선거에서 경기지사로 당선되어 시정과 도정을 이끌었다. 비단 이재명 지사만 지방자치 경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중도 사퇴했던 이광재 의원은 강원지사, 김태호 의원은 경남지사를 역임했다. 양승조 충남지사, 최문순 강원지사는 현직으로 대선에 도전하였다. 본선에 올랐던 이낙연 전 총리는 전남지사, 홍준표 의원은 경남지사, 원희룡 전 제주지사, 김태호 전 경남지사 등도 지자체장 출신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1991년에 지자체 제도가 다시 시작된 이래 30여 년이 지난 지금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에서 차근차근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대선 후보 반열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지역이 더 이상 중앙과 대비되는 객체가 아니라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지역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해당 지역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 전북 지역에는 지난 2019년에 전북연구원 산하에 설립된 전북학연구센터가 있다. 이곳은 전라북도의 유구한 역사와 독창적 문화를 발굴하고 보존, 발전시켜 새로운 성장 동력 구축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하여 전라북도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찾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지금까지 여러 성과를 쌓았지만 이번 주 금요일(22일)에 제1회 전북학대회를 원광대학교에서 개최하며 지역학 최대 교류의 장을 연다. 물론 코로나19라는 상황 때문에 일반 시민들까지 참석하지 못하지만, 지금까지 이처럼 큰 교류의 장이 열린 적이 없었다. 올해는 전북지역 연구의 회고와 새로운 지평이라는 대주제로 지역학, 사회, 역사, 문화정체성, 농업문명 등 5개 분과에서 전라북도에 대한 심층적 연구를 진행한다. 기조강연으로 원광대 박맹수 총장이 전북의 문화 원형과 자긍심이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이어 총 15개의 다채로운 주제의 연구와 토론으로 수놓을 것이다. 또한, 분과별 발표를 비롯하여 종합토론에서 각 좌장이 모여 분과에서 이루어진 논의를 공유함으로써 학술대회를 총괄적으로 검토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처럼 전북학대회는 각 분야의 연구 흐름과 향후 지향점을 모색하고, 우리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파악하는 자리이다. 이와 같은 큰 행사를 통해 우리 지역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전북학의 역할과 나아갈 방향을 논의할 수 있다. 물론 이번이 첫 개최인 만큼 한 번의 행사로 전라북도의 정체성을 확립하거나 곧바로 획일화된 결론이 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코로나19라는 상황 때문에 일반 시민들과 학문후속세대 등의 참석 등에서도 원활하지 않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집단 지성이 모여 논의하다 보면 우리 지역이 더 나은 발전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동안 소외되었던 연구 분야 혹은 우리의 장점이 잘 드러날 것이다. 처음 진행되는 전북학대회이지만 전라북도의 다양한 학문 체계 구축의 토대로 자리 잡아,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박정민(전북대 사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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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17 16:39

MZ세대는 MBTI 열풍

김유진 우석대 미디어영상 4학년 우리 미래에 어떻게 될까? 이에 친구는 서른 살 되면 모두 직장 다니고 있겠지? 그때도 이렇게 다 모일 수 있을까?라고 답했다. 그 미래를 말한 게 아니어서 당황했다. 우리는 미래를 다르게 이해한 것이다. 나는 사후세계가 궁금했고 친구는 곧 다가올 현실적인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죽으면 어떻게 될지에 대해 물어본 건데라고 말했고 서로 한참을 웃으며 신기해했다.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에 시간을 보내며 그럴 때마다 사고가 확장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현실 가능성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재밌다는 친구. 나와 이 친구는 MBTI가 정반대다. 요즘 친구들과 대화할 때 빠지지 않는 주제는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다. MBTI는 성격유형 검사로 외향(E)-내향(I), 감각(S)-직관(N), 사고(T)-감정(F), 판단(J)-인식(P)의 이 4가지를 조합해 16가지의 성격 유형 중 하나로 분류한다. 별자리, 혈액형 특징을 웃으며 이야기했던 시대를 지나 MBTI로 나를 소개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시대가 왔다. 당당하게 자기 PR을 하는 MZ세대는 MBTI로 자신을 설명한다. 나와 타인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큰 세대인 만큼 상대방과 MBTI 이야기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간단한 테스트로 쉽게 자신의 MBTI를 알 수 있고 이 열풍으로 다양한 심리테스트의 결과 역시 MBTI로 나와 친구들과 공유하며 상대방과 비슷한 점을 언급해준다. 친구들과 MBTI 이야기를 하면 서로의 생각을 듣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떠든다. MBTI로 열띤 토론을 하다 보면 다양한 성격을 가진 친구들끼리 만난 것도 신기하고 대화를 하면 할수록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같은 유형을 만나면 유대감을 갖게 되고 다른 유형을 만나면 서로의 장점을 부러워하고 흥미로워하며 서로의 뇌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MBTI의 열풍이 주는 이점이 있지만 퍼즐처럼 유형에 끼워 맞추는 맹신론자들이 있다는 단점도 있다. 도 넘은 정보들이 선입견을 만들기도 하고 좋고 나쁨을 가르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16개의 유형 중 하나가 한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유형이어도 모두 다 성격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알파벳 네 글자로 사람을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나에겐 MBTI 유행으로 인해 사람들과 관계가 쉬워졌다. 이전에 의견 충돌이 있을 때 서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내가 틀렸다 생각했다. 서로의 성격과 가치관이 달라 표현방식이 달랐고 틀린 것은 없었다. 성격의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다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와 다른 사람들도 있지만 같은 사람들도 많다는 것과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있었다. 잠시나마 나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며 나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게 됐다. 평소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있을까. 살아가면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은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성격유형검사를 통해서 알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방법이던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면 된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면 MBTI 검사를 해보고 그 유형들이 좋아하는 것에 뭐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과 MBTI 유형을 이야기하며 알아가는 시간이 많아지고 더 가까워졌다. 나를 알고 상대방을 알게 되니 서로를 더 존중해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MBTI를 맹신하기보다 개개인의 장점을 칭찬해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라보길 바란다. /김유진 우석대 미디어영상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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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26 16:29

‘D.P.’, 청춘의 무덤을 조명하다

김정환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D.P.가 연일 화제다. 수많은 언론사와 정치인들이 D.P.를 재조명하고 있고, 일상에서도 어디를 가나 D.P. 이야기가 나오는 등 파급력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D.P.는 군무 이탈 체포조(D.P.)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군대 드라마다. 군대 드라마라 하면 한때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던 태양의 후예가 떠오르지만, 그 작품과는 결이 다르다. 방영 이후 사관학교 경쟁률을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릴 만큼 군대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던 것이 태양의 후예라면, D.P.는 다들 알고 있지만 쉬쉬했던, 수면 아래에 침전되어 있던 군대 내 차가운 현실과 부조리를 비추고 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남성이 군대를 가는 우리나라 특성상 많은 공감을 사면서 이목을 끌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군대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그리 좋지 않다. D.P. 방영 이후 여론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SNS에 자신이 겪은 군대 부조리를 고발하는 움직임이 있는가 하면, 군대는 뺄 수 있으면 빼는 게 정답이라는 의견이 많이 보이기도 한다. 대체로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고, 국방부를 향해 수많은 화살이 날아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군대에 대해 쌓여오던 국민들의 불신이 이번 D.P.를 통해 점화된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욱 국방부장관은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은 극화된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지금은 많은 노력을 해서 병영문화가 많이 개선 중에 있고 전환되고 있다는 해명을 하기도 했다. 정말 그 말대로 D.P.는 드라마일 뿐이고 군대는 바뀌어가고 있는 걸까. 지난달 8일, 충남 서산에서 군대 선후임의 괴롭힘으로 인해 제대한 지 일주일 만에 한 남성이 극단적 선택을 했고, 지난 9일 SNS에는 해병대에 복무중인 한 병사가 선임병 4명에게 복부 가격, 인격 모독, 시가잭으로 팔을 지지는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 6월 18일에는 선임병에게 구타, 폭언, 집단따돌림을 겪던 해군 소속의 한 병사가 휴가 도중 극단적 선택을 했고, 지난 5월과 8월에는 공군해군육군에서 잇따라 성추행 피해가 나오기도 했다. 군대가 비록 옛날에 비해 좋아졌고 지금도 개선 중에 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사건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을 미루어 보아 D.P.를 단순히 드라마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될 일이다. D.P.에서 비춰지는 군대의 참혹한 현실과 고통을, 누군가는 지금도 현실로 마주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병영문화 개선 및 군 인권 신장은 곧 강한 국방력과 직결된다. 국가가 존속하기 위해 강한 국방력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이는 이번 아프간 사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방력은 세계 6위로 꽤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으나 D.P.로 인해 밝혀진 군대 내 여러 문제점과 국방부를 향한 국민들의 불신을 생각해보면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일 따름이다. 군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날로 날카로워져만 가는 지금, 국방부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조직의 특성상 군대라는 곳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다. 필자 또한 군대를 다녀왔기에 잘 알고 있고,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2014년, 전 국민을 분노케 했던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과 김 일병 총기 난사 사건. 그 이후로도 누군가의 아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제는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었다는 D.P. 원작자의 말처럼, 비록 더딜지라도 착실하게 변화를 꾀해 군대가 더 이상 청춘의 무덤이 아닌 청춘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정환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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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12 16:52

전북 발전을 위한 학문 후속세대의 양성과 지역의 책무

박정민(전북대 사학과 조교수) 최근 교육부에서 발표한 정부 재정지원 탈락 대상 대학에 52개교가 선정되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우리 지역의 국립대인 군산대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 정량 평가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획득했음에도 정성 평가에서 탈락 점수를 받아 군산대와 시민 등이 반발하며 이의신청을 제기했지만 기각되었다. 이 결과 군산대뿐만 아니라 전북 지역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다른 학교들이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안도할 일은 아니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대학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 둘씩 학교가 무너지게 된다면 우리 지역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할 연구자 자체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 지역 대학교수와 연구원들은 지자체의 자문 임무를 수행하고, 중앙 부처의 전공 분야에서 지역 이해를 대변해준다. 하지만 점차 지역 대학이 사라진다면 그 소임을 다해 줄 수 있는 인력풀 자체가 감소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지역에 대한 연구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우리 지역 사람들이 전북 지역에 대한 사례 조사를 많이 진행하는데, 이 역시 해당 인력이 감소하면 감당할 수 있는 사람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한, 향후 10년, 20년 이상을 이끌어갈 미래 세대의 소멸은 우리 지역의 연구 역량과 발전 기반의 감소를 의미한다. 그 결과 앞으로 지역을 체계적으로 이해하여 정책적으로 제시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것이다. 각 학문에서 미래 세대가 감소하는 문제는 현재 대부분의 학계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으로, 국가적으로 혹은 공공기관, 기업, 학회 등 다양한 곳에서 학문 후속세대를 양성하여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다. 즉, 이들을 위한 각종 장학금을 운영하거나, 연구비 공모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들이 구조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지라도 학문 후속세대 양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와 같은 지원이 중앙 차원에서만 진행되고 있고, 지역에서는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행히 전북은 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를 중심으로 학문 후속세대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 작년부터 센터에서는 전북 지역을 대상으로 박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한 대학원생 중 우수 연구자를 선발하여 시상하는 우수학위 논문 지원사업을 진행하였다. 올해는 콘텐츠, 문화인류학, 고고학, 도시계획, 교육학 등 전북을 주제로 한 다양한 학위논문 연구자를 선발하였고, 9월 24(금)에 시상식이 개최될 예정이다. 또한, 연초에 진행하는 전북학 연구지원 사업에서도 쿼터를 두고 학문 후속세대의 몫을 배정하고 있다. 물론 이 사업 하나로 전북 지역에 대한 연구가 풍부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시작으로 우리 지역에 대한 학계와 대중의 관심을 높일 수 있고, 몇 안 되는 우리 지역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고무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현재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 전북학연구센터 밖에 없지만 향후 도내 다양한 기관들에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전북에 내려와 있는 유수의 공공기관에서도 지역 연구 지원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다양한 방면으로 학문 후속세대를 양성해야 할 책무가 있다. 이들 기관이 각자의 분야에서 지역과 상생하는 모델을 만든다면 다른 지역보다 전북이 선도적인 위치를 점유하며 지역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박정민(전북대 사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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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05 16:39

좀 더 새로운 거 없어요?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어떻게 하면 우리 지역에 사람이 모이게 할까? 지역을 기반으로 정책을 만드는 사람의 비중 있는 고민일 것이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어도,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여기에 이런 거 팔면 잘 될 거야. 여기엔 반드시 이런 게 있어야만 해. 크리에이티브 시티라는 묵직한 수사를 붙이지 않더라도, 로컬 크리에이터라는 거창한 수사를 붙이지 않더라도, 지역에 사는 우리는 일상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 같은 것이라도 좀 더 괜찮은 것은 무엇일지 고민한다. 이는 로컬 크리에이터가 지역에 따로 존재하는 특수한 것이 아닌, 지역에 사는 사람 누구나 로컬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역에 사는 사람 누구나 로컬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듯, 지역의 모든 것이 로컬 콘텐츠의 가치가 될 수 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등 유무형의 것에서 가치를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역의 가치를 찾는다는 것은 지역에 관한 관심과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우리 지역이 가지고 있는 것을 모아 이야기를 만들어, 그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성공과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 로컬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면, 실패하더라도 그것은 성공의 가능성이 담긴 괜찮은 실패일 것이다. 지역의 정체성이 담긴 고유한 이미지를 상징화하여 지역다운 지역을 만들어내는 로컬 브랜딩 또한 로컬 크리에이터의 활동과 연결될 수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닌 그 지역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독창적인 창조물이 필요하다. 그래야 기존의 주목받지 못했던 로컬 자원에도 시선을 둘 수 있다. 리브랜딩(Rebranding)이라는 마케팅 용어가 있다. 소비자의 기호, 취향, 환경 변화 등을 고려해 기존 제품이나 브랜드의 이미지를 새롭게 창출하는 것을 말한다. 이미 탄생한 브랜드를 다시 다듬는 것을 리브랜딩이라 한다면 로컬의 스토리가 담긴 로컬 크리에이터의 활동도 로컬 리브랜딩이 될 수 있다. 로컬 크리에이터 활성화 지원사업 심사도 지역의 이야기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최신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아이디어만이 사업 선정의 기준일 수 없다. 로컬의 고유 정체성이 담긴 이야기를 로컬 크리에이터가 이해하고 있는지, 지역의 이야기를 열심히 발굴하고 고민했는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조금 더 새로운 기술은 없는지, 홍보는 어떻게 할 것인지, 돈은 되는지가 사업 평가의 기준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로컬의 고유한 정체성이 담긴 이야기다. 좀 더 새로운 거 없어요? 라는 말이 심사위원의 말에서 나온다면, 그것이 로컬 크리에이터가 대답해야 할 질문일까? 지역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만들어낸 아이디어가 반드시 새로워야 할까? 기술이 접목되지 않더라도, 유행을 따르는 새로운 것이 아니더라도, 로컬 크리에이터가 지역의 이야기를 꺼내는 행위 자체를 존중해야 한다. 로컬 크리에이터의 발굴도 새로운 기술이 아닌, 기존의 로컬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주목해야 한다.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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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29 16:45

편리함은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김유진 우석대 미디어영상 4학년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며 옛날 노래를 즐겨듣고 전자책보다 종이책의 촉감을 더 좋아한다. 옛것의 가치를 높게 사는 20대로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스며들다가도 툭 하고 튕겨 나갈 때도 있다. 코로나 19 이후 방문 기록 작성을 매번 수기작성으로 했다. 아직도 수기로 작성하냐는 소리를 들어도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전자출입명부로만 입장 가능한 상황이 오자 당황했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보니 QR 체크인을 처음 사용해봤다. 몇 번의 터치로 입장 가능한 신세계를 경험하고 왜 사람들이 전자출입명부를 이용하는지 알게 됐다. 부모님에게도 QR 체크인 기능을 알려드리며 이용해보라고 권했다. 부모님은 터치가 익숙한 세대가 아니기에 수기작성이 더 편하다고 잘 사용하지 않으신다. 몇 번의 터치로 간편하게 음식을 주문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모님은 세상 정말 좋아졌다며 긍정적으로 보시지만, 부모님이 직접 이용하시는 건 어렵다고 하신다. 몇 년 전부터 부쩍 매장에 무인계산기가 생겨나고 사람과 대면으로 만나는 일이 적어졌다. 주 고객층이 젊은 층이 아닌 다양한 연령층이 가는 대형마트, 생활용품점에도 셀프 계산대로 바뀌고 있다.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어 직원과 고객 모두에게 무인계산기가 간편하고 좋은 것 같았지만 셀프 계산대 사용을 어려워하시는 어르신들을 목격할 수 있었고 나에게 도움을 청하신 분들도 있었다. 나중에 부모님이 무인 계산기에서 마주하게 될 상황을 대비해 요즘은 일부러 부모님에게 무인 계산기를 이용하도록 권한다. 당황하지 않고 무사히 계산을 마치기 위해. 분명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이상한 광경이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인데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상황이라니. 나도 무인계산기를 처음 이용했을 때 주어진 시간 안에 주문해야 하는데 원하는 음식을 못 찾아 눈에 보이는 음식을 골랐던 기억이 있다. 20대에게도 복잡한 기계인데 디지털 소외계층은 불편함을 호소할 수밖에 없다. 그 불편함이 무엇인지 잘 느낄 수 있는 영상이 있다.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가 맥도날드에 가서 무인 계산기로 햄버거를 주문하는 영상이다. 할머니는 그림을 보고 주문하다 보니 커피를 콜라로 착각하고, 높이 있는 버튼을 누르는 것도 어려움을 느끼신다. 주문과정 중 터치해주세요(눌러주세요)라는 말과 프렌치프라이(감자튀김), 테이크아웃(포장)이라는 과한 영어가 당연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기계가 있으면 바로 나와 버린다는 말과 자존심 상한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내 마음에 콕 박혀 버렸다. 어쩌면 나도 쉽게 익숙해지지 않을 시간이 올 거고 어려움을 겪는 날이 오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어떤 새로운 세상이 우리를 위협할지 모른다. 다수에 익숙해지다 보면 소수의 의견을 들을 기회는 사라지고 묵살된다. 편리함은 다수의 편리와 소수의 불편함이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닌 다수와 소수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행동들이 또 다른 누군가는 시간을 들이고 불편을 감수하며 살고 있을 수 있다. 어쩌면 편리함이 당연한 이들은 배려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발전에 맞춰 배움을 받아온 이들이 소수의 불편에 관심을 갖고 이해해야 한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는 만큼 소외되는 사람들이 없도록 서로 배려하며 친절을 베푸는 분위기가 되길 바란다. /김유진 우석대 미디어영상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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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22 16:28

또 다시 피어오를 성화

김정환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지독하리만큼 무더운 여름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그저 걷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다. 하지만 이 무더위에 뒤지지 않을 만큼 이번 2020 도쿄 올림픽 성화의 열기는 뜨거웠다. 전례 없는 무관중 진행, 더불어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 피어오르는 불안한 잡음이 개최 직전까지도 끊이지 않았지만, 늘 그래왔던 것처럼 세계인의 축제는 지구를 떠들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이토록 올림픽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스포츠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함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인류사를 훑어보면 인간과 스포츠는 떼놓으려야 떼놓을 수 없는 관계다. 이는 근대 올림픽의 전신인 고대 올림피아 제전과 로마 제국의 콜로세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 시절 스포츠는 지금과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 나체로 창을 던지거나 상대의 모든 곳을 만져도 허용되는 권투, 심지어 잘 벼려진 검과 검을 맞대기도 하는 등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다소 야만적으로 느껴진다. 경기를 보는 관중들은 그 모습에서 유희를 느끼고,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은 목숨을 걸어가면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 한다. 우리는 그들의 땀방울에 열광하고, 그들은 우리의 환호성에 전율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습은 많이 바뀌었지만, 이것이 바로 스포츠의 근간인 것이다. 이번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많은 선수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우리나라는 특히 비인기종목 선수들이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며 국민들을 열광케 했다. 아쉽게도 오늘을 끝으로 올림픽은 막을 내리지만, 뒤이어 우리가 소리 높여 응원해야 할 대회가 하나 더 남아있다. 바로 오는 8월 24일에 계최될 예정인 2020 도쿄 패럴림픽이다. 국제 신체 장애인 체육 대회를 이르는 패럴림픽은 장애인 스포츠의 꽃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올림픽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방송3사가 올림픽 중계에 경쟁적으로 나서는데 비해 패럴림픽은 상대적으로 중계가 잘 되지 않는다. 사실 이렇게 멀리 볼 것도 아니고 주변만 둘러보아도 패럴림픽을 챙겨보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다. 올림픽과 패럴림픽 모두 같은 국제 스포츠 대회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가장 큰 이유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최근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사회 운동이 국제적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여러 소외 계층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집단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 길이 멀어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2019년 충청북도종합사회복지센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 항목에 대한 참여자의 비율이 무려 75.3%에 달한다. 사회에는 여전히 알게 모르게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숨어있다는 것에 많은 이가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2020 도쿄 패럴림픽 카누 종목에 출전하는 아나스 알 칼리파 선수는 훈련하러 갈 때, 스포츠는 제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성취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제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해줍니다. 더 이상 어떠한 장애도 있지 않은 것처럼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노력하지 않는 선수가 어디 있겠냐마는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모두 장애를 가지고 있다. 선천적인 이들은 박탈감을, 후천적인 이들은 좌절감을 겪었을 것이고, 그 감정의 깊이는 우리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절망과 한계를 딛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이들이 이번 패럴림픽에서 어떤 휴먼드라마를 써내려갈지 기대되는 바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선수 모두가 후회 없이 땀방울을 훔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김정환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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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08 16:11

‘킹덤-아신전’을 통해 본 역사문화 기초 연구의 가치

박정민 전북연구원 부연구위원 지난 7월 23일 넷플릭스에서 킹덤-아신전이 개봉했다. 킹덤 시즌 1과 2는 단순한 좀비물을 넘어 전염과 확산이라는 코드로 코로나-19라는 현실과 맞물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번 편은 시즌 1과 2의 전사(前史)로 생사초의 비밀과 조선에 거주하는 여진인 아신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킹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나오는 용어를 알아야 하지만, 대체로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많다. 성저야인과 번호부락, 폐사군, 추파진, 파저위 등 한국사 전공자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역사 용어를 기반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전공자들에게도 생소한 용어를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었다는 부분은 역사적 사실과 작품 사이의 괴리를 벗어나 개인적으로 큰 흥미를 가졌다. 필자는 폐사군과 여진 등을 연구하고 있지만, 이 주제가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연구 성과도 많지 않고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며, 관련 용어가 학계에서 자주 쓰이기 시작한 것도 불과 10여 년 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킹덤-아신전을 보며 전공뿐만 아니라 콘텐츠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일어났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독창적이라면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OTT 서비스가 활발하게 이용되어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는 지금, 지역은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전북은 충분한 매력을 가진 땅이다. 자타가 공인하듯 역사문화와 관련된 많은 스토리를 확보하고 있고, 이는 콘텐츠로 발전할 수 있는 자산이다. 잘 알려진 것 만해도 손에 꼽을 수 없이 많다.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내려와 지금의 익산 금마 지역에 나라를 세웠고, 이것이 마한의 시초가 되었다는 이야기. 서동과 선화공주. 견훤의 후백제 건국과 강성함. 조선 왕조의 발상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 동학농민혁명 등이 있다. 알려지지 않은 것은 훨씬 더 많다. 킹덤-아신전을 예로 들면, 그 배경이 되는 추파진에서 근무한 군산 출신의 최호 장군과 연관성을 꼽을 수 있다. 그는 1580년에 추파진 만호로 부임하여 약 1년간 근무하였다. 이후에도 함경북도 방원보 만호로 근무할 때 니탕개의 난으로부터 임지를 보호한 공으로 무려 세 품계를 올렸다. 또한, 킹덤-아신전의 시대인 임진왜란기에는 함경남도 도절제사(현재의 사단장)로 부임하여 압록강변 가을파지보(현재의 김정숙군)에 시장을 열어 여진인과 평화 교역의 계기를 마련하며 지역민의 칭송을 들었다. 군산은 일찍부터 최호를 기리기 위해 사당을 만들었고, 지난 2015년부터 35사단 제9585부대 1대대를 최호대대로 명명하였다. 이처럼 전북은 잘 알려진 것부터 알려지지 않은 내용까지 풍부하고 다양한 역사문화 콘텐츠가 있다. 어쩌면 이러한 콘텐츠들은 킹덤처럼 각별한 계기로 대중에게 자신의 가치가 알려지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한 순간에 지역의 콘텐츠를 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 어떻게 활용될지 모르지만, 적시에 진행하기 위해 역사문화에 대한 묵묵한 지원과 심도 있는 기초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활용만 강조한다면 자칫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지역의 역사문화가 탄탄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면 언젠가 개봉될 전북의 킹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박정민 전북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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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01 16:44

오직 여기서만, 로컬콘텐츠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오늘날 인류를 지배하는 가장 보편적인 시스템은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자본주의 생산혁신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시대를 열었다. 유행은 짧고 빠르며, 물건은 넘쳐난다. 잘 키운 작은 기업을 대기업이 흡수한다. 새로운 회사가 나오면 빠르게 인수하는 능력은 대기업의 전략 중 하나다. 회사 하나 만들어서 비싸게 파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 청년 사장도 있다. 물건은 노동자가 만들지만, 물건을 판 돈 대부분은 공장 주인이 가져간다. 정해진 월급을 받는 노동자는 공장주인만큼 부를 얻기 힘들다. 토지 또한 아무런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가지고만 있어도 저절로 소득이 쌓인다. 땅이 없는 사람은 부를 쌓을 수 없다. 다수가 이해하고 인정하는 자본주의 원리다. 소수에게 부(富)가 집중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가난한 사람은 늘 가난하다. 양질의 지원을 받는 자녀들은 출발선부터 앞서 나간다. 더 많은 부를 획득할 기회를 잘 사는 자녀들이 얻는다. 그렇지 않은 반대편의 사람은 가난만을 대물림한다. 다수가 이해하고 인정하는 자본주의 원리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무너지고 잃어버린 가치가 있다. 자본주의는 소득 불평등뿐만 아니라 지역 불평등도 낳았다. 도시와 농촌의 차별에서 벗어나,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확대되었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서 살고 있다. 어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는 지역감정까지 섞인다. 이 모든 것이 자본주의 탓만은 아니지만, 지역 불평등에 자본주의가 숨어있다는 것은 다수가 이해하고 인정하는 자본주의 원리다. 먹고 살려면 수도권으로 가야 한다고 다짐한 청년들의 인서울 행렬이 이어진다. 지방은 사람을 잃고, 활력도 잃는다. 국가는 지역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육성할 의무를 지닌다는 헌법 123조에 명시된 문장이 자못 섭섭하다. 다가온 미래, 다가올 미래, 우리는, 지방에 있는 우리는, 지방에 남아있는 청년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브랜드는 사람을 모으고, 소비를 일으킨다. 브랜드는 단순한 로고가 아니다, 브랜드는 문화이며, 다른 것과 다른 정체성이다. 진정한 명품은 다른 것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브랜드는 뺏고 빼앗기는 자본주의의 구조로만 설명될 수 없다. 지역도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지역만의 브랜드를 통해 지역의 장점과 특성을 드러내야 한다. 오직 우리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 문화적 자산. 그 고귀한 자산을 꺼내 취향과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가게는 오래된 메뉴를 그대로 유지한다. 유행에 맞춰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체할 수 없는 고유의 콘텐츠가 있기 때문이다. 지역이 지역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야 한다. 지역의 고유한 자원과 연계하여 무엇으로 지역을 알리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된, 오직 우리 지역만이 가질 수 있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유형의 한계를 넘어, 무형의 것에서도 찾아야 한다. SNS로 관계를 맺는 온라인 시대에 오프라인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일은 지역의 특성을 살리는 로컬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다. 로컬콘텐츠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나 혁신적인 기술을 도입하여 창업한다면, 오직 우리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희소성 있고 특별한 경험이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소상공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장기적인 경쟁력은, 대기업이 쉽게 따라 할 수도, 흡수할 수도 없다.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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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25 16:31

우리는 모두 아이였다

김유진 우석대 미디어영상 4학년 지금 우리는 어렸을 적 꿈꾸던 모습일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였다. 경찰, 제빵사, 심리상담사, 사진가, 그중 하나는 선생님이었다. 스무 살 때부터 아동센터에서 근로하며 내 이름 석 자보다 선생님으로 불렸다. 앞에는 별명, 뒤에는 선생님이 붙는다. 어찌 보면 꿈을 이룬 셈이다. 평생 선생님을 부르는 입장이었기에 처음에는 누군가가 나를 선생님으로 부르는 것이 어색했다. 동시에 선생님으로 불릴 때마다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아이들에게 무수한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단어에 맞게 잘 행동하고 있는지 도움이 되는 존재인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나를 찾는다는 소리를 들으면 잘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며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나 역시 아이들을 보며 배우는 것이 많다. 학교 끝나고 놀이터를 다녀와도 에너지가 남아돈다. 공부 시간을 제외하고 하염없이 놀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에너지가 가장 빛을 발하는 피구 시간에는 초롱초롱한 눈동자들이 하나같이 공을 향해 있다. 땀이 나도록 뛰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열정을 체육 시간에 뽐내는 아이도 있고 나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는 아이도 있고 의젓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 상상력이 풍부하고 긍정적인 아이도 있다. 그 나이에만 빛나는 마음을 보면 어린 시절이 떠올라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려 노력한다. 순수한 열정은 나한테도 전달되는데 놀 때는 아이들의 친구처럼 놀아주고 공부할 때는 공부에 흥미를 갖도록 알려준다. 아이들의 검은 눈동자를 보면 맑다 못해 내 모습이 비친다. 맑은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그 시절이 마냥 부럽다. 하지만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스물셋이어도 어른이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고 아직도 부족한데 말이다. 어른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이 옛날 사람이라고 놀릴 때면 어른이 되는 건가 싶다. 성인이 되면 자유로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스무 살의 나는 실수투성이고 걱정으로 덮여있었다. 어렸을 적 그려왔던 모습과 상반된 모습이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어른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가 많아도 어른 같지 않은 사람이 있듯이 어른은 상대적인 것 같다. 아이들의 눈에 내가 어른처럼 보이지만, 부모님은 아직 어린 애로 보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 한 아이가 색종이로 접은 토끼를 본인 몸집만 한 쇼핑백에 한가득 접어왔다.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는데 선생님은 보라색 좋아하니까 보라색 토끼예요!라며 나에게 건넸다. 얇고 얇은 색종이 한 장이 감동을 줬다. 나눔의 기쁨을 생각하며 접었을 아이의 마음이 기특하고 귀여웠다. 아이들은 어른과 다르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선물해준다. 토끼의 감동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쓰레기통에서 구겨진 토끼를 발견했을 때다. 그리고 버린 사람은 아이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됐다. 나만 쉽게 감동한 것일까. 누군가에게 토끼가 낙서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때만큼은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아이에게 미안했다. 나는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리고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다. 아이들 속에서도 슬픔과 기쁨이 공존할 것이고 세상은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단지 어른들로부터 웃음을 덜 잃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들의 꿈이 흐려지지 않도록, 세상이 다정해지도록 내가 먼저 괜찮은 어른이 되어야겠다. /김유진 우석대 미디어영상 4학년 △김유진 학생은 우석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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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18 16:22

지나고 나니 청춘이어라

옛날엔 그 시대마다 냄새가 있었다. 유명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에서 한 캐릭터가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읊조리는 대사다. 어린 나이에 들었을 때는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말이다. 최근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프로젝트 그룹 MSG워너비가 연일 화제다. 이는 과거 200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제작된 그룹인데, 이들의 제작 과정을 담은 놀면 뭐하니?가 토요일 전체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를 달성하고 데뷔곡이 발매함과 동시에 국내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그 파급력이 실로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토토가, Jtbc 예능 프로그램 슈가맨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대중들을 과거의 향수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면서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흐름. 우리나라에 이러한 복고 열풍이 한철 지나가는 유행이 아닌 본격적으로 주류 문화 현상이 된 것은 필자를 포함한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 핵심 구성원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무렵부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밀레니얼 세대는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 사이의 과도기를 겪은 세대다. 지금이야 상대방이 어디에 있든 SNS를 통해 손쉽게 소통할 수 있지만, 시공간적 제약이 있었던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않은가. 친구들과 놀기 위해 놀이터로 몇 시까지 모이자는 약속을 하거나,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편지에 자신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거나 하는, 흑백 필터를 낀 듯 왠지 모르게 아련한 그 시절 그 기억들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우리의 몸집이 커진 만큼 많은 것들이 변했고, 이제는 같은 자리에 있어도 눈을 보고 대화하는 것이 아닌 스마트폰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이게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므로 그 시절이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과거를 그리워하고 과거에서 위안을 얻는 복고 열풍이 특히나 밀레니얼 세대에서 두드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014년 시장조사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복고 트렌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명 중 1명이(49.3%) 현실이 힘들수록 복고에 집착하는 것 같다고 응답했다. 1997년 IMF 외환 위기를 겪기도 하고 현재 최악의 청년실업률을 몸소 체감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는 N포세대라 불릴 만큼 녹록지 않은 현실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다.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고 내 집 마련의 꿈과 인간관계를 포기할 정도로 가혹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우리에게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콘텐츠들이 그 어떤 것보다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가혹한 현실을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는 비상구이기 때문이 아닐까. 옛날엔 그 시대마다 냄새가 있었다. 사람 냄새 풀풀 풍기던 아날로그 시대를 추억하는 우리가 지금의 디지털 시대를 어떤 냄새로 기억할지 궁금하다. 어쩌면 무색무취의 시대라 회상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므로, 현재의 우리가 남긴 발자취 속에서 먼 훗날의 우리는 새로운 냄새를 찾게 될 것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 그때 참 힘들었지. 그래도 지나고 보니 추억이고, 지나고 나니 청춘이더라. /김정환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김정환 학생은 원광대학교 학보사 원대신문 57기 정기자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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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11 16:54

지방 소멸의 위협, 지역학으로 돌파하자

박정민 전북연구원 부연구위원 최근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인구 유출의 신호탄으로 지역학생들이 in 서울을 외치며 탈지역을 선호하던 현상은 한 두 해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에 인구절벽 시대를 맞아 학령인구 감소가 현실로 다가와 올해부터 지역대학의 미충원 사태까지 벌어지며 위기를 체감할 수 있다. 서남대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대학의 위기는 단순히 관계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과 지역의 생활경제권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공생 관계로 학교 앞 상권 등 대학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역대학의 붕괴는 지역경제의 위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방분권의 이념에 따라 갈수록 지역 특성에 적합한 인재 양성이 요구되고 있다. 애향심과 실정에 밝은 인재는 지역의 아젠다를 제시하고, 현안을 해결하는 초석이다. 그러나 지역대학의 정원 미달이라는 미증유 사태를 겪으며 이제 연구 집단의 인력풀 자체가 감소하는 문제점에 직면했다. 이와 함께 해당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할 수 있는 학문후속세대의 양성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단순한 인구유출, 대학 정원의 미달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도모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지역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제시하는데, 그 중 하나가 지역학이다. 각 지역의 정체성 정립과 미래비전 설정을 위해 전국 16개 모든 광역자치단체에서 지역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물론 이런 거창한 담론이 아니더라도 지역학은 우리의 터전에서 선조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알고, 이를 통해 우리의 강점과 특수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처럼 지역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전국, 세계화로 확장하는 글로컬(Glocal)의 토대라 할 수 있다. 지역의 위기가 계속되는 이 시기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냉철하게 현실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는 개인, 혹은 기관 등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일로 집단 지성이 요구된다. 여기에 긍정적 신호를 주는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지난 2016년부터 시작된 제주학대회와 강원학대회이다. 각각의 연구센터를 중심으로 지역의 민관학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역 정체성과 발전 방향을 자유롭게 논의하는 장으로 만들었다. 더불어 다양한 전공자들이 지역학이라는 큰 주제를 함께하는 명실상부한 대표 지역학 대회로 발돋움하였다. 전북 역시 2019년에 전북연구원 산하로 전북학연구센터를 설립하였다. 도정의 정책지원부터 연구, 대중화, 네트워크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올해 전북학연구센터에서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은 제1회 전북학 대회이다. 지역학, 역사, 문화관광, 사회, 농업 등 5개 분과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지금까지 전북에서 이루어진 연구 현황을 살펴보고 미래를 진단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매년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여 전북의 현안과 관련된 담론을 만들고, 우리만의 시각이 담긴 아젠다를 선점하는 자리로 만들 수 있다. 이 같은 작은 발걸음은 지역의 민관학이 함께 모여 지역의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집단 지성의 기회를 마련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 지역에서 갖는 대학의 역할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지역대학 당위성존재감을 내세우며 자라나는 학문후속세대에게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박정민(전북연구원 부연구위원) △박정민 부연구위원은 중국 연변대학교 방문학자, 일본 규슈대학교 방문연구원, 전북대 강사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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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04 17:04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었다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총 4회 공연 대본을 위해 6월 한 달 동안 대한민국 대표 명창, 명무, 명인 10명을 인터뷰했다. 직접 만나거나, 전화 통화로 진행하는 두 가지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인터뷰 도중 사전 분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선생님에게 혼쭐나기도 했으며, 선생님의 말씀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녹음자료나 메모한 내용을 혼자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곁에서 잠시나마 살펴본 선생님들의 삶은 곧 예술이었다. 자기 예술 앞에 타협은 없었다. 예술을 더 잘하기 위해서 매일 새로워지고자 했다. 젊은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물었더니 첫째는 성품이 좋을 것이었다. 정심정음(正心正音)이라는 말처럼 바른 마음이라야 바른 소리가 나올 수 있었다. 둘째는 오직 하나만 깊고 오래 할 것을 강조했다. 하나를 제대로 잘하지 않고서 다음은 없었다. 예술가(藝術家)의 집 가(家) 자처럼, 예술로 하나의 집을 이루지 않고서는 예술가라고 말할 수 없었다. 선생님들의 예술은 죽을 때까지 운명이었다. 자신의 스승님은 악보를 정리하다 그대로 앉은 채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하며 그런 스승 밑에서 배운 자신도 삶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끝까지 예술과 함께 하고자 했다. 아픈 것도 자신이 예술을 제대로 하지 못해 큰 병이 난 거라며, 자신의 예술을 운명으로 여겼다. 예술은 처음부터 좋았고, 50년, 60년이 지난 지금도 좋다고 했다. 좋다고 말하는 선생님의 표정은 마치 장난감을 손에 넣은 아이와 같았으며, 최후의 전투를 앞두고 숫돌에 칼을 가는 장수와도 같았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개인적으로 느낀 점 몇 가지를 두서없이 나열한 이유가 있다. 우리 사회가 윗분들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떠받들어 모시자는 맹목적인 찬양의 의미는 아니다. 자신을 피하기만 하고 늙은이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잔소리로만 여기는 젊은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이렇게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니 젊어지는 것 같고, 기분이 좋다고, 더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했다. 우리는 윗사람의 말을 꼰대라는 거들먹거리는 말로 깎아내리지 않았는지 뒤돌아보게 되었다. 책으로 잘 정리되어 있고, 유튜브를 통해 따라 배우면 되며, 윗사람의 말을 녹음했다가 나중에 살펴보면 된다. 그러니 현장에서, 만남에서 윗사람에 대한 존경과 존중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공연장에서 관객이 무대를 보지 않고, 공연을 찍고 있는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스치듯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창작에 대한 이야기 또한 대가(大家)들의 언어는 두루 통했다. 창작이 둥둥 떠다니면 안 된다고 말했다. 창작이 둥둥 떠다니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전통에 대한, 역사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통과 역사에 대한 뿌리를 깊게 알고 나서야 비로소 창작이 나온다고 말했다. 또한, 세상의 모든 예술은 보통 사람들이 듣고 보았을 때 행복한 음악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선생님들의 삶에 스며들고자 노력하였으나, 많이 부족했다. 그래도 공연은 끝났으며, 다음 공연을 잘 준비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마무리하려다 문득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눈이 형형하게 빛났던 선생님 한 분이 떠올랐다. 그들은 배려에도 원칙이 있었고, 반대에도 관용이 있었다. 오랜 시간 켜켜이 쌓아온 예인의 삶만큼 그들의 세계는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었다. /안선우 문화예술공작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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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27 17:00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의 파편

박지원 변호사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1심 소송에서 각하 판결이 선고됐다. 기존 대법원 판결로 위자료가 인정되어 강제집행까지 하는 마당에 하급심이 엇갈린 판결을 한 것이다. 이 일로 다른 근로정신대나 위안부 관련 소송도 지연되는 등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논쟁은 법원 안에 머물지 않고 정치적 파장을 일으켰다. 판사 탄핵 국민 청원에 수십만 명이 동참했고, 북한도 천 년 숙적의 손을 들어주었다며 비난했다. 기존 대법원 판결부터도 재판거래 의혹이 있었고, 일본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운운하며 경제보복까지 할 만큼 외교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한 사안이니 당연한 수순이다. 사실 모든 일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이라는 잘못 끼운 첫 단추에서 비롯되었다. 그 파편이 튀어 피해자들은 1997년부터 20년 넘게 일본과 한국의 법원을 오가는 인간 탁구공이 되었고, 협정 관련 문서 공개를 꺼리는 외교부를 상대로 소송까지 해야 했다. 양국이 서로 책임을 면피하고 전가하기 위한 해석적 곡예(interpretative acrobatics)를 했던 것도 청구권 협정 때문이요,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이 논리를 쥐어짜 1, 2심을 파기했으나, 끝내 소수 반대의견이 남은 것도, 이번 하급심 판결도 모두 청구권 협정의 파편이다. 그럼에도 협정 체결 당시와 이후의 우리 정부 책임에 대하여는 의아하리만큼 언급이 적다. 한일회담에서 한국은 피징용 한국인의 청구권 변제를 요구했다. 이후 협정을 통해 피징용 한국인의 청구권을 포함하여 양국과 그 국민간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했다. 그 때 한국이 요구한 12억 달러에는 피징용자에 대한 보상 명목의 3억 6000만 달러가 포함돼 있었다. 생존자당 200달러, 사망자당 1650달러, 부상자당 2000달러로 산정했다. 일본은 개별 피해자에게 직접 보상하는 방법을 제안했으나, 한국 정부는 개인에 대한 보상은 국내에서 처리하겠다며 최종적으로 3억 달러 무상, 2억 달러 차관을 받았다. 당시 정권이 일본 전범 기업들로부터 정치자금을 제공받았다거나, 미국의 압력으로 한일 국교정상화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기에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등 문제는 넘어가자. 그저 피해자를 내세워 받아낸 돈 중에 얼마가 피해자들에게 갔는지만 따지겠다. 1970년대에 정부는 징용 피해자 중 사망자만 신고를 받아 총 25억 원 즉, 전체 5억 달러(당시 약 2500억 원)의 1% 남짓한 금액만 지급하고 입을 씻었다. 나머지 자금은 포항제철에 1억 2000만 달러 등 경제개발에 사용됐다. 정부는 2006년에 들어서야 기존 보상이 불충분했다며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고 1인당 2000만 원 이하의 위로금을 지급했지만 판결로 인정된 위자료에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진상조사 위원회는 2015년 폐지되어 활동 종료되었고, 일본의 협조가 필요한 피해자 지원 방안은 외교 문제로 교착상태다. 강제노역과 체불임금, 방사능 피폭 등 산재, 귀국 후 고향에서 받은 멸시와 고통은 모두 제철소 고로의 쇳물로 녹아 우리가 누리는 번영의 기반이 되었다. 이제는 현 세대 정부가 우선 피해자들에게 충분히 보상하고 진상조사를 계속하면서, 일본 측에 돈 문제는 우리가 먼저 해결했다. 사과하고 진상규명에 협조하라고 요구할 때가 된 것 아닐까. /박지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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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20 17:40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정은실 사회활동가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나는 모른다 / 나는 매 순간 변해왔다. TV프로그램 놀면뭐하니?의 유산슬을 시작으로 부캐가 유행처럼 번져가는 모습을 보며 70개가 넘는 이명(異名)을 사용했던 페르난두 페소아가 떠오른다. 그는 필명이 아닌 각각의 이명으로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진 글과 시를 발표한 포르투갈의 시인이다. 다양한 일들을 고민하고 시도하며 여러 영역의 역할 맡고 있는 요즈음, 사람들 앞에 서서 나를 설명해야 할 때면 페소아의 시가 큰 위로가 된다. 작년 12월 끄트머리에 사회혁신센터의 계약기간을 마치고 직업이라고 할만한 무언가를 뚜렷하게 갖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설명하는 자리가 생기면 고민부터 앞섰다. 이 고민은 두 가지 관점에서 비롯했다. 첫째는 나의 주관보다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내어주고픈 습성 덕분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깊은 관심과 이해를 위해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간단한 정보로 빠르게 나를 판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다. 나 또한 상대방이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한 답을 주고 싶었다. 어디서 시작된 강박인지 모르겠지만 나에 대한 설명이 간단하고 명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내가 지금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는 일들이 생계유지를 위한 또는 생계유지를 넘어서 제대로 된 수익을 만들기 위한 일이 아니었기에 직업을 염두하고 하는 질문에 직업 다운 답변이 아닌 거 같아서 위축되는 마음이 항상 있었다. 그렇다. 요즘의 내가 하는 일들은 간단하고 명료하지 않았고, 생계유지를 위해 시작한 일도 아니었기에 답변으로서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위축됐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위축감은 밖으로부터 시작해 내 안까지 들어와 어느새 나를 갉아먹곤 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간단한 답변에 대부분은 다시 물었다. 그게 무슨 일이야?, 그래서 그게 뭔데? 이어서 나에게 허락되는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충실하게 부연 설명을 하면 대부분은 신기하다, 대단하다 정도의 피상적인 피드백을 보낸다. 결국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역할로서 설명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준)둥근숲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전주달팽이협동조합 이사장, 우깨컴퍼니 이사, 불모지장 기획자, 간람록 대표, 활동가 등이 있다. 이는 역할일 뿐 각각의 역할에 있어서 매번 새로운 관점과 시선으로 기획과 활동, 인연이 만들어져 새로운 세상을 구축해가고 있음에 대해서는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예를 들어 현재 살고 있는 전주달팽이집에서부터 시작한 전주달팽이협동조합은 함께 사는 집(사람들은 이를 쉐어하우스라고 부른다)을 통해서 청년들의 편안(편하고 걱정없이 좋음)하고 지속(어떤 상태가 오래 계속됨)적인 정주(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삶)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주거를 기반으로 한 청년활동그룹이다. 남은 역항을 다 나열하고 프로젝트까지 설명하면 글을 마치지 못한다.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각각의 일이 다 다른 방향과 형식을 갖고 있고, 함께 하는 사람들도 다 다르다면 페소아의 시 구절을 나누고 싶다. 그래서 낯설게 나는 읽어나간다/ 마치 페이지처럼, 나 자신을/ 다가올 것을 예상치 못하면서/ 지나가버린 건 잊어가면서/ 읽은 것을 귀퉁이에 적으면서/ 느꼈다고 생각한 것을/ 다시 읽어보고는 말한다/ 이게 나였어? 자기 자신의 수많은 페이지를 만들어가자. 사람들은 읽고 싶은 페이지를 펼쳐보면 될 일이다. /정은실 사회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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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1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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