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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속의 오해들

사회생활을 할수록 다양한 활동을 하는 사람일수록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또 그 속에서 많은 오해들로 어려움을 겪는다. 처음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을 때는 좋은 감정, 좋은 관계, 좋은 인연을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처럼 그 관계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관계를 맺고 같이 지내다 보면 사사로운 오해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의 의도는 그렇지 않은데 상대가 잘 못 이해해서 생기는 오해, 나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잘못 전달되어 생기는 오해, 각자의 시선에서 상대를 바라보면서 생기는 오해 등 다양한 이유로 생기는 오해들로 인해 결국 관계가 끊어지거나 최악에는 적이 되는 경우도 너무 많다. 사회생활서 대화하고 관계 맺기 중요그러면 이러한 오해들로 생긴 서로의 불편한 상황을 어떻게 하면 개선해 나갈 수 있을까? 사실 대부분 오해를 풀려고 시도하는 것은 대화이다. 하지만 대화를 하다가 오히려 오해가 더 커져 불신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러한 경우는 오해를 풀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대화를 시도하면 그런 경우가 다반사 인 것 같다. 오해를 풀러 가기 전에는 먼저 확실한 준비가 필요하다. 바로 상대방의 배려, 상대방의 입장 등을 고려하며 서로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지, 잘잘못을 따지고, 시비를 가리려는 마음은 오히려 오해를 더 키우는 경우가 많다. 사실 우리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관계를 맺어가는 사회에서 어떻게 다 좋은 관계로만 지낼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 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 오해를 잘 풀 수 있는 마음, 그리고 더 나아가 관계를 잘 지속하는 능력이 있어야 사회생활에서 더 나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많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이제는 오해를 풀고 대화를 하고 관계를 맺는 것 또한 사회생활에서 너무나 중요한 스펙이고 능력이다. 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주변 사람들과의 트러블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관계속의 스트레스로 인해 힘들고 지친 삶을 살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상담을 받고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을 찾아보면 인간관계가 빠지지 않는 항목으로 나온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것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관계의 어려움의 요인은 다양하게 있을 것이다. 성격의 문제, 의사소통의 문제 등 하지만 필자는 그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문제 해결능력 이라고 본다. 보통 서로의 부딪힘이 생기는 이유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고 본다. 그러니 그 오해를 풀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면 훨씬 더 원활한 관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상대방 배려하고 입장 존중해줘야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관계를 맺을 때는 우리 모두 긍정적인 목적, 이상적인 관계를 위해서 관계를 맺는 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는 입장차이, 시선의 차이로 인해 반드시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입장을 존중해주며 대화를 통해서 오해를 푼다며 반드시 아무리 큰 오해도 다시 화합하며 좋은 관계를 지속할 수 있으며 오히려 그 오해를 푸는 시간을 통해서 서로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끈끈해질 것이라고 본다. 관계를 맺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오해가 너무 많은 요즘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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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15 23:02

우리는 언제나 나쁜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전래동화에서부터 디즈니 명작 동화까지도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고 말을 한다. 나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을 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숱한 어른들은 나쁜 사람에 대한 경각심을 항상 주었다.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에서 나쁜 사람은 특정한 행위를 한다. 보통은 누군가에게 위협을 끼치거나 누군가의 일을 방해하는 등, 특정한 상대에게 물리적으로, 직접적으로 나쁜 일을 한다. 남매의 어머니를 잡아 먹고 둘을 나무 꼭대기까지 몰았던 호랑이, 백설공주에게 독이 든 사과를 주었던 계모. 우리는 누군가에게 직접 위협을 가하는 것이 나쁜 행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살면서 나는 나쁜 사람이 되었다. 나쁜 짓을 하지 않았지만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어른들은 알려주지 않았다.나쁜 사람이 된다는 것나쁜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나쁜 사람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누군가는 내가 왜 나쁜 사람이냐고 되레 화를 내곤 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나쁜 행동을 한 사람보다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던 평범한 사람에게 더 화가 나곤 했다. 나는 저런 사람과 달라라는 외침이 나쁜 행동을 한 사람이 아닌, 당신도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이나 나쁜 행동을 당한 사람에게 향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의미 없는 행위이다.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은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지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우리가 배웠던 나쁜 행동들은 생각보다 간단하고 구체적이었다. 때리지 말 것, 겁을 주지 말 것, 독이 든 사과를 주지 말 것. 우리는 일련의 행동들을 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리고 나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좋은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해서 좋은 사람인 것도 아니었다. 예를 들면 백설공주의 계모가 백설공주에게 독사과를 주겠다고 마음 먹은 동안 말리지 않은 거울 같은 것들.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독사과를 앞에 둔 수많은 거울 중 하나가 바로 나였다. 혹은 당신이었다. 우리는 독사과를 먹을 일이 없으니 쉽게 말했다. 거울은 백설공주를 직접 해치지도 겁을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과연 거울은 좋은 역할일까? 글쎄.억울함을 넘어서나는 억울하곤 했다. 너는 나쁜 사람이야라는 말은 칭찬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모욕에 가까운 말이다. 나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도 나쁜 행동이었다.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저 일은 내 일이 아니야라고 말한 후에 따라오는 것은 억울함이 아니라 부끄러운 것이어야했다. 내 일이 아닌 일에 눈 감을 수 있다는 것, 나쁜 행동에 피해를 받는 사람들의 울음에 창문을 닫고 다시 곤히 잠들 수 있는 당신의 밤을 누군가가 뼈저리게 부러워한다는 것. 나의 억울함조차 누군가가 부러워할 수 있다는 것도 공감이 되지 않는다면 우린 이제 인정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언제나 나쁜 사람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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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08 23:02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

다시 5월이다. 하지만 여느 때와는 다른 역사적인 5월이 될 것이고, 모든 국민이 염원하듯 정의로운 시대, 진정한 통합의 시대를 맞이하는 대한민국이 우리들 눈앞에 기다리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지만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비정규직이 난무하고, 고시원과 알바를 전전하는 청춘들에겐 더 이상의 꿈조차 꿀 수 없는 지금은 헬조선이라 일컫는 나라가 아니던가.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은 여섯 명의 대통령을 선출했고, 두 번의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되짚어보면 혼란스러웠던 정부와 국회를 바라보며 겉으로는 정경유착을 뿌리 뽑겠다는 강한 슬로건을 내걸지만 속으로는 억약부강(抑弱扶强)의 모습으로 언제나 약자의 편이 아니라 기득권 편이었음을 우리 국민은 지난 세월을 통해 충분히 경험해왔다.청춘들에겐 꿈조차 꿀 수 없는 헬조선현재 우리나라 문화예술 정책은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예술위원회가 주도하는 중앙 중심적 구조이다. 그에 대한 제도적인 구체적 실행방안도 없는 터라 문화예술의 재정은 타 분야에 비해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하물며 블랙리스트라는 명목 하에 예술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고 문화예술의 가치를 저해하며 법적 책임까지 지고 있는 정권이 사과문을 발표하는 정도로 셀프 사면을 하고, 현 정권이 저지른 잘못과 관련한 블랙리스트 방지법 입법을 자신들이 추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급박한 현 시점에서 왜 이러는 것일까.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다음 정권을 조용히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반드시 차기정부에서는 블랙리스트 방지법 입법과 문화예술 관련법을 더욱 세밀하게 정비하고 보완하여 지원사업의 공정성을 강화시키고,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또한 예술지원사업 및 예술인 육성에 대한 체계적인 정책을 수립하여 사후지원까지 확충될 수 있는 지속사업이 유연하면서도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평생 1회 밖에 지원이 되지 않는 신진예술인 대상의 예술지원금을 고려한다면 무조건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평가는 그 후의 몫이다. 전문 예술인 양성지원을 위한 예술대학에 대한 국가 지원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며, 전라북도처럼 문화예술에 대해 유구한 역사와 애착심이 강한 지역의 경우 지역대학의 선제적 구조 개혁에 전통분야를 단지 상업적으로 바라보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전문 예술인 양성지원을 위한 예술대학에 지원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졸업 후 예술 활동을 장려하는 정책이 지속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차기정부 또한 문화예술의 가치를 저해한다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공정한 사회로 청춘에게 희망 주어야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를 쓴 대한민국은 국민의 힘으로 어둠을 뚫고, 밝음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것을 촛불역사가 다시금 보여주었고, 이것이야말로 억강부약(抑强扶弱)의 휴머니즘을 우리 스스로 실천에 옮긴 것이 아니던가. 이제 5월이 지나고 나면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다시 그려본다. 공정한 사회로 이 땅의 청춘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정부, 정경유착과 불공정을 뿌리 뽑는 재벌개혁, 걱정 없는 복지사회, 국가의 역사를 상징하며 국가가 보장하는 전통과 문화예술이 살아 숨 쉬는 사회,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 그리고 통일의 문을 열어줄 정부가 들어서길 국민 모두가 가슴 깊이 염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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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01 23:02

전화하는 날

전주에서 서울까지의 거리 KTX로 약 1시간 30분. 집인 인천에서 서울까지의 거리 또한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 대학 진학 후부터 서른이 넘어서까지 거의 매일같이 인천에서 서울, 왕복 3시간씩을 오갔던 나다. 그런 나였기에 전주에 내려올 때만 하더라도 인천 그까짓 거 하며 자주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거의 두 달에 한 번씩 가는 수준이라니. 며칠 전 역시나 두 달 만에 집에 올라갔다. 연락도 없이 갑작스레 올라와놓고 엄마 얼굴 보자마자 맛있는 거 해달라는 철없는 딸내미의 주문에 엄마는 분주하게 장을 봐 오신다. 고작 2박 3일 머무는데 장을 두 번 보신다. 두 번째 장바구니는 고스란히 딸내미 챙겨 보낼 찬거리가 된다.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엄마의 마음무겁다고, 과일은 가서 사먹어도 된다며 챙기지 마시라는 말에도 이게 달고 맛있다며 한보따리 가득 우겨넣으신다. 이따 전주에 내려가면 비가 올 거라며 우산까지 내미시는데 그놈의 우산 챙기기는 어쩜 이리도 항상 귀찮은 건지. 마다하는 걸 엘레베이터 앞까지 나오셔서 챙겨가라는 통에 하릴없이 받아오며 투덜거린다. 그렇게 전주 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으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순간 싫은 소리 들어도 내 새끼 비 맞게 하기 싫은 어미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툭 가라앉는다. 유리창에 새겨지는 빗자국과 함께 내 볼에 눈물길이 생기고 있었다. 난 여느 딸내미들처럼 애교 많고 살가운 딸이 아니었다. 오히려 말수 적고 혼자 있기 좋아하는 무뚝뚝한 편이었다. 매번 어떤 주제로 대화를 시작 하던지 간에 끝은 항상 비슷한 엄마의 잔소리로 마무리 되는 것이 싫었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층 한층 벽을 쌓아갔고 그 벽으로 인해 끝없는 대립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난 그렇게 일정부분이 결핍된 채로 성장했고 그 결핍은 지금까지도 부모님에게 자주 연락드리는 것조차 익숙지 않은 나를 만들었다. 마냥 듣기 싫었던 엄마의 잔소리가 당신만의 대화 방식이란 걸 이제는 안다. 엄마 또한 나의 그것과 닮은 결핍으로 인해 굳어진 연약한 사람이었으리라. 하나라도 더 챙겨 보내려는 어미의 몸짓으로 이미 나에게 따뜻한 대화를 건네고 계셨다.항상 한결같이 나를 보듬어주시는 아빠. 말없이 내려오고 나면 저녁쯤 치킨 사왔는데 벌써 갔냐며 전화해서 아쉬워하시는, 언제나 나에게 그늘을 제공해주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와 같은 존재. 전주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이 힘들면 그냥 정리하고 올라오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제 일하며 잘 버티고 있는 딸이 대견해 허허 웃어 보이시는 당신. 무심한 딸보다 항상 먼저 전화하시어 자주 연락 달라고 말씀하시는 그 음성이 애틋해 고운 손수건에 고이 담아 심장 가까운 곳에 보관해놓고 당신 그리울 때마다 꺼내 보곤 한다.부모님을 보며 더 잘 되겠다고 다짐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가 생기면 내 새끼 때문에 더 힘을 내서 일을 하고 생활을 하게 된다지만 나는 부모님을 보며 내가 더 잘 돼야겠다고 다짐한다. 처음으로 나의 이야기가 실린 기사와 방송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으시던 그 모습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고, 처음으로 나를 믿고 응원해주신 그 모습이 나의 몸을 움직이게 한다. 아마 지방에 홀로 떨어져 생활 해보지 않았다면 쉽게 알지 못했을 감정이었으리라. 아직도 녹록치 않은 전주생활이지만 지금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이렇게 이야기해본다. 엄마가 싸준 반찬이 맛있어서 힘이 나서 그런지 오늘 일도 잘 풀릴 것 같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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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24 23:02

청년 둘이 만든 벚꽃축제

필자는 MC로 활동하면서 청년들과 문화 예술 활동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실 축제라는 것을 많이 보고 경험했다. 사람이 모이고 그곳에 다양한 콘텐츠 가 결합하면서 하나의 축제가 완성이 된다. 요즘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축제가 존재한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을 콘텐츠로 한 축제들, 공간을 콘텐츠로 한 축제들, 학교나 단체가 주최가 되어서 하는 축제 등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장소시스템 섭외 등 모든 것 처리하나의 축제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기획 단계부터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서 대부분 기관이나 단체들에 의해서 축제가 기획되고 진행이 된다. 사실 개인이 축제를 연다는 것은 어려움이 많은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가장 크게 부딪히는 부분은 비용부분일 것이다. 축제를 열기 위해서는 시스템, 인력, 홍보 등 다양한 부분에서 비용이 발생되고 그 비용도 축제의 규모에 따라 매우 상이하겠지만 적은 비용이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용이 많이 들어가야만 축제가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비용을 들여 만든 축제도 사람이 하나 없어 흥행하지 못하는 축제도 볼 수 있다. 실패 요인에는 굉장히 다양한 것들이 있기에 이것들을 다 맞춰야 성공을 할 수 있으니 어떻게 보면 참으로 어려운 것이 축제의 흥행이 아닌가 싶다. 야외에서 진행되는 축제라면 날씨도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장소, 접근성, 인지도, 일자, 시간, 콘텐츠, 홍보채널 등 신경 쓸 것이 정말 한두 가지가 아니다.필자는 이러한 어려움이 많은 축제를 청년문화기획자 겸 MC 한 분과 함께 봄의 벚꽃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하게 되었다. 사실 고민이 많았다. 처음 시작은 축제를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원 벚꽃야간개장 행사에 맞춰서 간단한 이벤트나 버스킹 공연을 생각하던 중에 동물원이 AI확산으로 인해 휴장을 하게 되면서 봄에 가장 좋은 콘텐츠 중에 하나인 벚꽃을 보러 갈 곳이 없다는 안타까움에 아! 우리가 한번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벚꽃축제를 만들어보자라고 생각하고 급하게 축제를 기획하고 준비하게 되었다.장소 섭외, 시스템 섭외, 푸드 트럭 섭외, 주류업체섭외, 프리마켓 팀 섭외, 자리배치, 무대행사 팀 섭외, 스태프 섭외, 홍보물 제작, 홍보, 사전예약관리 등등 작은 것부터 큰 것 까지 청년문화기획자 2명이서 준비해나갔다. 사실 사비로 준비하다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도 많이 하고 도움도 많이 받으며 준비해나갔다.경험에서 온 깨우침 매우 커그렇게 축제 당일이 오고 주차문제로 조금 난항을 겪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잘 해결이 되었다. 이제 축제를 시작하려고 하니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열심히 준비한 축제가 철수 위기까지 가게 된 것이다. 정말 머리가 하얘지고, 답답했다. 하지만 상황 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기존 준비한 축제의 시간보다 훨씬 단축된 시간에 축제를 진행하게 되었다. 수많은 노력으로 수많은 사람과 함께 준비한 축제였지만 장소 협의 문제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니 난항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많은 걸 깨우치게 한 축제였다. 정말 어렵게 준비하면서 귀한 사람을 얻었고, 축제 준비하고 기획하는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경험을 통해 몸소 배우니 아쉬움도 남았지만 너무 귀하고 값진 시간 이였다. 경험에서 오는 깨우침은 너무나 큰 것 같다. 청춘이니깐 가능한 배움의 방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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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17 23:02

그냥 내 피를 흘릴테니 그러려니 해주세요

집을 나온 지 약 한 달, 여러가지를 스스로 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가계부를 쓰는 일이다. 여러가지 항목을 나누고 항목에 맞게 금액을 사용하며 생활하고 있는데, 쉽게 넘길 수 없는 항목이 있다. 바로 월경 비용이다.비싼데다 발암물질 검출된 생리대월경을 하는 사람으로서 내 몸은 건강할 때 한 달에 한 번, 6일 정도 피를 흘린다. 내가 생리를 시작한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흔히 생리대하면 떠올리는 부착형 패드를 사용했고, 대학생이 되고 지금까지는 탐폰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탐폰이 더할 나위 없이 패드보다 편하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썩 낫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패드가 저렴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몸에 맞지 않는 걸 사용하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요새는 월경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생리대 크기는 엉덩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냐, 월경이 불편하면 묶으면 되지 않냐 같은 소리들을 듣지만 이 글에서 틀린 부분을 하나 하나 설명하지는 않겠다.- 나의 고충을 이해하는 사람과 관계 없이 생리대 가격은 내 지갑사정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았다.그런 와중,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이 월경컵을 극찬하기 시작했다. 패드와 탐폰처럼 쓰레기통에서 썩어가며 피냄새를 풍기지도 않고, 최장 10년은 사용할 수 있으며 독성 쇼크사의 위험성도 적고, 생리가 끝나면 소독하여 재사용할 수 있는, 일회용이 아닌 월경 용품. 다만 우리나라에서 직접 생산하지 않아서 해외에서 구매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침 공동 구매를 하는 곳을 알게되어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월경컵이 안전히 도착하기를 바라며 신청서를 작성했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월경컵을 받아보기도 전에 환불할 수밖에 없었다. 월경컵은 대한민국에서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수입품목인데, 식약처에서는 월경컵에 대한 품목 허가 매뉴얼이 존재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전무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 구매 수량이 약 700개가 넘은 상황에서 대량 수입은 판매용으로 간주되어 관세사와 일반 수입신고 당사자가 처벌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결국 공동 구매가 취소되었다. 나는 더 기다릴 만한 지갑 사정이 아니어서 환불을 요청했다.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품을 수입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중단될 수 있다는 것 정도야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월경컵 공동 구매 취소와 함께 생리대 11종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뉴스가 함께 들려왔다는 것이 화가 날 뿐이었다. 월경을 하는 사람들에게 생리대란 양말 만큼이나 일상적인 물건이다. 이런 일상적인 물건에게 건강상의 위협이 쉽게 노출되어 있는데 어떤 움직임도 없었고, 없는 점은 많은 월경인구에게 분노를 샀다.대안 없는 대한민국에 월경인구 분노내가 앞으로 30년은 더 해야할 것이 월경인데, 왜 안전하게 고를 수 조차 없느냐는 것이다. 양말도 내가 스포츠 브랜드의 양말을 신을 지, 아니면 속옷 브랜드의 양말을 신을 지 고를 수 있고 내 발에 편해 즐겨 신는 양말을 정할 수 있는데, 비싼데다가 발암물질까지 검출된 생리대의 대안이 없다는 것이 너무도 끔찍했다.게다가 저소득층 월경인구는 생리대 가격을 감당할 수 없어 깔창이나 양말을 사용한다는 뉴스가 TV와 신문, 각종 SNS로 퍼진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장기가 닿는 것인데 어떤 보호장치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 이젠 그냥 피를 흘릴테니 그러려니 했으면 좋겠다. 굶는 것보다 월경혈을 흘리며 밖을 나가는 것이 더 끔찍해야하는 사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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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10 23:02

국악이 걸어온 길, 나아가야 할 길

오늘 필자는 국악을 전공한 음악인이 아닌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갖게 된 의문에 관하여 펜을 들어 본다. 세계 많은 나라의 사람들은 그들이 영토를 갖고 있음을 인지하고, 고유의 언어를 쓰며 살아간다. 이웃 국가나 역사적 사유에 의해 영토분쟁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 많고, 열강의 언어에 밀려 자국의 언어를 잃어가는 사람들 역시 많다.안일함무관심이 무시퇴보 낳아멀리 볼 것 없이 독도라는 작은 땅을 두고 이웃 국가인 일본과 분쟁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들여다보자. 당연히 우리의 영토라고 믿으며, 긴 시간을 흘러 보내온 지금의 상황은 불편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선조들의 자취가 남겨져 있고, 그 사실을 뒷받침 해 주는 역사적 자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대한민국은 일본이라는 국가와 외교적 대립을 겪으며 지난하고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가져온 시간을 통해 축적된 역사적 증거들에 맞설 근거가 타당하지 않아서였을까? 관심의 결핍, 이것은 변화를 꾀하지 않고 현재의 상태에 안주하고 더 이상 발전을 원하지 않는 우리의 사회 속에 당연하게 주워지고, 항상 갖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만들어낸 무사안일 풍조의 또 다른 의미가 아닐까하고 필자는 생각해본다. 살기엔 편하지 않았고, 삶의 이익이라는 효율성이 떨어진 먼 동쪽의 외톨이 작은 섬이었기 때문에 관심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독도가 영토로써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지키지 않아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의 땅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안일함과 무관심이 불편한 외교문제의 화두가 되어있는 현실이다.국악이라는 음악의 존재성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우리의 역사를 음률로 기록한, 문자와도 같은 정신이 깃든 국악이 현실 속에선 정작 설 자리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대중적이고, 선호되어지는 서양음악에 밀려 존재하기가 어려운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국악이 다가가기 어렵고 지루한 음악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일까? 이러한 의문들은 본질을 잃은 의미 없는 겉핥기식의 논쟁일 뿐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공교육을 시작하는 순간 국어라는 언어를 배우는 것은 의무적인 교육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세종대왕이 나라의 존속과 백성을 위해 우리의 언어를 만들었으며 널리 전파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긴 역사를 지나오며 의무적인 제도 하에 한글을 지켜 왔기에 열강국인 중국과 일본의 언어에 밀리지 않고 유지가 되어 온 것이다. 국악 또한 그러하다. 여러 다른 나라의 음악들과 함께 저울질 하는 것이 아닌, 한 나라의 음악으로서 자리를 마련해 유지, 보수, 발전을 고수해야 할 것이다. 공교육의 음악교과가 서양음악이 주가 아닌 국악이 주가 되어 서양음악을 접하는 제도적인 바로잡기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우리 전통음악 보존 제도화해야필자는 앞으로 본 칼럼을 통하여 국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해 나아가고자 한다. 관객의 외면을 받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음악이라는 편견은 개개인이 바꿀 수 있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국악을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다양한 측면의 노력이 제도적으로 탄탄히 뒷받침이 되어 준다면, 우리의 정서가 담긴 한국의 전통음악은 결코 무시와 퇴보의 길을 걷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국가의 음악은 의무적인 보존이 뒷받침 되어질 때에 역사에 남겨질 것이며, 열강국의 종속적인 음악이 아닌 독립된 우리의 정신으로 이어 나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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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03 23:02

자연스러운 삶

자연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과거에도 지금도 산과 강 주위로 문화가 피어오른다. 도시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산과 강의 그 깊은 맛을 잊었지만, 나는 일부로 서울에서 떨어져서 산과 강 주위에서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영감들의 흔적들을 만나기 시작한다.산과 강을 찾아 예술 영감을 얻어매화 향기를 따라 봄날의 섬진강을 찾아가 본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따라 화개장터엔…’ 조영남의 ‘화개장터’라는 아버지 시절부터 이어져온 이 익숙한 노래 덕분에 나는 섬진강의 존재가 나에게 항상 친근하면서도 미지의 그 무엇이었다. 진안에 발원지를 두고 있는 이 소박한 강으로 인해 누군가는 시인이 되었고 또 누군가는 화가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그저 개발해야 될 미 개척지의 한 공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이 강에서 사회를 보았고 인생을 보았다. 강과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랐고 평생을 지금과 같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길 원한다. 전통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깊은 영감의 흔적들을 찾기를 바라며 무턱대고 내려온 이곳, 그렇다면 그 자연속 삶은 어떤 것일까? 상선약수(上善若水).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으로 물처럼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법이라는 이야기다. 노자의 도덕경 8장에 나오는 이 구절에서 노자는 세상을 물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남과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는다는 부쟁(不爭)의 철학이다. 언뜻 보면 소극적인 삶의 방식인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은 만물을 길러주고 키워주지만 자신의 공을 남과 다투려 하지 않는다.’ 물은 내가 길러주었다고 일일이 말하지 않는다. 둘째,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겸손의 철학이다. 물은 낮은 곳으로 임하기에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이 뻔한 이치가 이다지도 어려워 내 공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존재를 부각하려고 난리고 권력을 이용해 아랫사람을 하인 부리듯 주무른다. ‘자연(自然)스럽다’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이러하다. 1.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이상함이 없다. 2. 순리에 맞고 당연하다. 3. 힘들이거나 애쓰지 아니하고 저절로 된 듯하다.자연은 그냥 자연스럽게 두면 된다. 순리에 맞게 그 모습 그대로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애써 힘들이지 않고 가만 두면 되는 것이다. 무상히 흘러가는 강물의 흐름 속에서 조상들은 이 깨달음을 얻었고, 나는 그 섬진강을 몇 시간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서른세 살에 여전히 붓을 잡고 있는 나에게도 예술을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비우는 중요한 과정 중에 하나다. 자기 자신의 욕심이 들어가는 순간 예술의 흔적들은 사라지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심만이 작품을 가득 메우게 된다. 내가 서울 한 복판에서 전주행 티켓을 끊었을 때, 사람들은 내가 주류에서 멀어진다고 많은 걱정을 했지만, 나에게는 이렇게 나를 비워내는 과정들이 필요했다.수천 년 간 여전히 꿋꿋하게 서 있는 위대한 자연 경관들을 홀로 여행하면서 나는 상선약수와 같은 삶의 소중함을 배워간다. 자연과 더불어 더 단단한 예술가로이제 나는 다시 나를 비우려 한다. 종이를 다시 펼쳐 본다. 나의 눈에 비친 섬진강의 아름다운 자태를 따라 그리면서 나는 순리에 맞고 당연한 그 자연의 긴 호흡에 맞춰 간다. 자연과 더불어 나는 더 단단한 예술가가 되어갈 것이다. 그렇게 나를 물처럼 채워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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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7 23:02

일상 차 한 잔의 여유

바쁜 일상을 보내던 중 기분 좋은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평소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부터의 전화였다. 내용은 이랬다. 선생님이 가지고 계신 다양하고 좋은 차(茶)를 지역에 열심히 사는 청년들과 함께 나누며,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것 이였다. 사실 필자도 차(茶)를 즐겨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선생님을 통해서 차(茶)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차(茶)가 주는 편안함, 여유, 따뜻함 등이 좋았다. 조금은 지쳐있던 필자는 너무 반갑고 또 주변에 열심히 사는 친구들과 1~2주에 한번은 차(茶)를 통해서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필자의 고민도 털어 놓고 싶었다.차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는 모임통화가 끝나고 바로 장소를 정하고 SNS를 통해서 같이 차를 마실 인원을 모았다. 사실 걱정도 됐다. 과연 축제도 아니고 뭔가를 배우는 모임도 아닌데, 그냥 특별한 것 없이 차(茶)를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는 모임인데 인원들이 모집이 잘 될까? 고민은 짧은 시간 내 해결이 됐다. 주변에 알던 친구들 뿐 아니라 SNS 통해서만 알고 지내던 인원에게도 연락이 왔다. 아, 생각보다 차(茶)에 관심 있는 사람도 많고 여유로운 시간이 필요한 하는 사람도 많구나.그렇게 모여진 7명이 첫 번째 차(茶)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 보는 사이도 있어서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하지만 따뜻한 차로 마음을 녹이고 선생님이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또 차(茶)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니, 평소에 차(茶)에 대해 궁금한 것들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묻고 답하며 이야기가 이어졌다. 우리는 몰랐던 차(茶)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야기의 화제가 정치, 세월호, 한옥마을, 청년 등 다양한 곳으로 옮겨가며 다양한 의견과 본인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어색한 기류는 차(茶)덕분인지 이야기꽃으로 따뜻한 기류로 바뀌었다.사실 요즘은 사람을 만날 때 대부분 커피숍에서 만나니 커피나 음료는 굉장히 많이 접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차(茶)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소통을 하고 있었다. 각 나라마다 차(茶)가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고 하는데 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의 차(茶)의 의미는 소통이라고 정의해주시는 것에 우리는 모두 공감을 했다. 어떠한 음식처럼 먹고 싶어서 먹는 것이 아닌 소통의 매개체로 차(茶)를 활용했던 것이다.주변사람들과 소통을 통한 여유를우리가 마시는 따뜻한 차(茶)를 소통의미에 하나의 의미를 더하고 싶었다. 바로 소통을 통한 여유다. 일상에 수많은 소통을 하고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따뜻한 차(茶) 한잔을 마시며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을 정리하고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열심히 살아야하는 치열한 사회에 사는 우리. 하지만 앞만 보고 뛰다가 지쳐 쓰러질 수 있으니, 따뜻한 차(茶)한잔하며 주변사람들과 소통하고 여유를 얻으면 좋겠다. 앞으로 여력이 가능한 차(茶)모임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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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0 23:02

정말 변해야만 한다면

탄핵이 되었다. 선고요지를 침착하게 읽던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그러나’를 말할 때마다 얼마나 심장이 내려 앉았는지 모른다. ‘탄핵을 인용한다’는 말에는 나도 모르게 우와! 하고 소리 지르며 붕붕 뛰었다. 결과적으로 탄핵은 되었고, 그 사람은 내려왔다. 이번 탄핵이 매우 만족스러웠던 것만은 아니다. 우병우를 구속시키지 못했고, 그 사람은 세월호의 책임자로서 탄핵되지 못했다. 하지만 역시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번 탄핵과 특검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고생하셨다는 박수를 치고 싶다.탄핵됐다고 모든게 변하는 건 아냐 ‘12345678’이라는 기가 막힌 숫자(퇴장 1명, 찬성 234명, 반대 56명, 무효 7표, 8명의 헌법 재판관 인용)를 이야기하면 웃을 수 있지만, 그 웃음은 한바탕 신나게 웃을 수 많은 없는 웃음이었다. ‘과연 탄핵으로 우리의 삶이 변할 수 있을까?’, ‘정말 이제는 바뀔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드는 한편 분명 ‘이제는 분명 바뀌어야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웃음이 나다가도 멎고, 나다가도 멎고를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 이제는 바뀌어야한다.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문제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니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었다고 해서 나의 삶이, 모든 사람의 삶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최저임금 6470원에 허덕이고, 장애인들을 위한 학교는 설립되지 못하고, 성소수자는 지정성별 이성애자라고 말해야하고, 출산휴가를 낸 선배는 출산휴가가 끝나고 복직할 수 있을 지 걱정한다. 우리의 삶이 바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이제 대선이 다가온다. 많은 정당에서 후보를 내세우고 있고 이미 여러 정치인들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지 꽤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가 말했다. 선거는 ‘최선을 뽑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는 것이다’고.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우리는 최선을 뽑아야 한다. 그리고 최선의 후보가 나와야한다. 최악이 아닌 차악을 뽑는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차악은 차’악’이지, 선이 아니다. 대선후보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그동안 우리나라의 문제를 민주적이고 윤리적으로 풀어나아가야한다. 부끄럽게도 그동안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최악’이었다. 최악에서 벗어나는 길은 차악이 아니라 ‘선’이다. 같은 악이라면 우리는 변하지 못한 것이다.하지만 우리의 삶이 더욱 확실히 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대통령을 잘 뽑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변해야한다. 대통령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그의 감수성이지만 어쨌든 우리의 삶은 우리가 선택해야만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 감수성이 우리의 분위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각 개인이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야하는가. 어떤 삶을 만들어야하는가. 우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려왔다는 것에 안도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부지런히 움직여야한다.우리 스스로도 변해야 한다한창 백남기 농민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평화시위와 관련해 한창 논쟁이 뜨겁던 와중 인터넷에서 한 시를 보게 되었다. 송경동 시인의 ‘우리 안의 폴리스라인’이라는 시로, 마지막 구절을 인용하며 마친다. ‘위만 나쁘다고/위만 바뀌면 된다고도 말하지 말아주세요/나도 바꿔야할 게 많아요/그렇게 내가 비로소 말할 수 있을 때/내가 나로부터 변할 때/그 때가 진짜 혁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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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13 23:02

세계 속 창조 전북을 위하여

나는 어린 시절부터 작곡가를 꿈꿔왔던 것은 아니었다. 음악과 미술, 학문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으셨던 형님 옆에서 세계의 다양한 음악들을 접하게 되었고, 피아노를 연주하시던 누님의 어깨 너머로 따라서 연주하던 정도였다. 학교의 실기교실과 학원을 오가며 서예에 빠져 있었고, 집에 와서도 난과 죽을 치며 혼자서 하는 놀이에 빠져있는 성향이었다. 아마도 집안에서 초서를 즐겨하시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탓도 있으려니 했다.아직도 창작 예술인 처우 미흡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야 서예에서 잠시 멀어져 학업에 매진하던 찰나 느닷없이 학교의 동아리에서 쇠북장구 징 소리가 들렸고, 나도 모르게 그 소리에 매료되어 국악이라는 분야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평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푹 빠지는 감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해왔던 음악 임에도 국악은 새롭고, 신선한 자극이었다. 그렇게 나의 국악인생이 시작되었다. 전통악곡과 국악기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던 나는 악기마다 가지고 있는 매우 독특한 소리에 매력을 느끼고 한 가지씩 배워나갔다. 군 제대 이후 대학전공을 살려 연주회에 걸 맞는 형식의 곡을 쓰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쓰기 시작한 곡이 운이 좋아 외부로 팔려나가기도 했다. 꿈꿔왔던 작곡가의 삶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곡을 짓는 작업이 어느 덧 십여 년이 흘러 그간 수많은 작품들을 무대에 올리며 전업작곡가로서의 삶을 이어왔다. 물론 그러한 삶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세월이었다. 젊음이라는 자신감 하나 가지고 버텨왔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나는 여전히 청춘이다. 이제는 후학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나이가 되어 실상 작곡가의 현실에 대해 지역에서 활동하는 후배 작곡가들을 위해서 더 나은 환경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창작자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예술관련계에서 분명 알고 있을 법 한데 아직도 창작자에 대한 처우가 미흡한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새로운 인물이 탄생하고, 육성될 수 있겠는가. 창조적인 전북, 세계로 뻗어나가는 전북도의 예술 작품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뛰어난 창작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 있는 창작자를 세계적인 예술인으로 길러내야 하는 책임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몇 해 전에 서울의 모 예술단체에서 상주작곡가 제도를 국악분야 최초로 도입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이는 국악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한 과제로 완성도 높은 창작곡 개발에 주목하기 위해서다. 또한 작곡가가 창작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해 국내 최초로 상주작곡가 제도를 도입했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상주작곡가 제도가 전통문화 발상지인 전북도에 꼭 필요한 제도라 여겨왔다. 전북지역 민간단체에서부터 관 단체에 이르기까지 한 해를 기준으로 생산해내는 위촉 작품 대다수가 전북도와 도내 지역 문예진흥기금 지원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고서라도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무대에 올리려는 작품 규모의 욕심은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관 단체의 수억 원대 브랜드사업과 견주려 하니 순수창작예술인의 등골만 휘어가는 형국이 됐다. 물론 문예진흥기금을 선정하는 기준 또한 작품의 실효성과 그에 따르는 예산이 동떨어진 심사가 매해 반복되다보니 사업에 참여하는 예술인 모두가 기금사업에 선정되었다 하더라도 녹록치 못한 환경 속에서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는 현실이다.문화예술인도민 관심과 노력 필요국악창작곡의 경우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역사에서 작품의 레퍼토리가 매우 적기 때문에 매해 새로운 주제의 위촉 창작곡을 통해 단체의 변화를 모색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공연예산으로 인해 단발성 공연이 지속되기 십상이다. 문화 충족의 전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창작예술인의 처우개선을 위해 문화예술인 뿐만 아니라 도민들의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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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06 23:02

청춘인생

청춘(靑春)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이다. 대개 10대 후반에서 20대를 뜻하기도 한다. 그 시기의 나는 진정 청춘이었나? 예고를 나와 미대를 졸업한 나는 예술적 성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비교적 다양한 일들을 하며 지내왔다. 스물한 살, 연예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간 것이 시작이었다.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사람들과 상황 속에서 첫 사회생활의 무서움을 느꼈다. 그 뒤로 다양한 곳에서 성인과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일은 물론, 쇼핑몰 MD, 모델, 디자이너, 회사원, 벽화를 그리기도 했고 백수로 지내기도 했다.청춘, 10대 후반20대 뜻하지만그렇게 20대를 보냈다. 짧은 시간동안 이렇게 다양한 일을 했다는 것은 한 가지 일을 긴 시간동안 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펙이라고 할 만한 것 하나 없던 나는 뭐하나 끈기 있게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도 부끄러운 사람이었다.내 몸과 마음이 한없이 작아 보여 더 이상 작아질 수도 없을 만큼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질 시기에 공연을 하나 보게 된다. 드로잉쇼라고 하는 그 공연은 무대에서 다양한 기법과 효과를 주며 빠른 시간 안에 그림을 그려내는 흥미로운 그림공연 이었다.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무작정 그 극단에 연락을 해서 오디션을 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간절함이 통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곳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내 나이 29살 때였다.그 때는 몰랐다. 마냥 새로운 꿈에 부풀어 들어간 그 곳이 상상 이상으로 녹록치 않은 곳이란 것을.연극의 연자는 커녕 걸음걸이조차 문제였던 나는 그 극단의 천덕꾸러기이자 총체적 난국이었다. 게다가 단체생활에 익숙하지 않았던지라 배우들 속에서 섞이는 법을 몰랐고 그렇게 매일을 하루가 한 달 같은 시간들을 보냈다. 그곳에서 나의 마지막 20대 청춘이 까맣게 타들어갔다.끈기 없이 쉽게 포기하던 내가, 그 전 같으면 진작에 때려 쳤을 그 일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붙잡고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내가 그토록 원해서 하게 된 그 일조차 버티지 못하고 포기한다면 평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낙오자가 될 것만 같은 불안함과 절박함. 처음이었다.처음부터 끝까지 단 하루도 마음 편한 적 없었고 몸과 마음을 다치기도 했지만 나를 가장 성장시킨 시간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아서가 아니었다. 자의만으로 나를 이긴 최초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일을 계기로 조금씩 나를 넘어서는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스스로를 이겨먹지 못해 후회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다만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보이던 대상을 한번 넘으니 더 이상 막막하지만은 않은 것처럼 마냥 나는 안 돼라고 생각하지는 않게 되었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고 작은 고비들을 넘기며 성취의 즐거움을 깨닫게 됐다.봄마다 푸른 싹 틔울 수 있다면 청춘까맣게 타들어가 더는 태울 수 없을 것만 같던 그 숯이 다시 한 번 빨갛게 불타오르고 그 불꽃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끊임없이 부활할 것이다. 이미 꿈과 의지만으로 먹고살 수밖에 없는 삶을 선택해 버렸으니 그 숯이 재가 되지 않고 계속 타오를 수 있도록 즐기면 그만이다. 나의 청춘은 20대를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청춘이 뭐 별건가. 내 속의 나무가 말라 죽지 않고 매년 봄마다 푸른 새싹을 틔울 수 있으면 그게 언제까지고 청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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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2.27 23:02

여행이 주는 의미

주변에 보면 1년에도 여러 번 국내 뿐 아니라 해외로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여행을 가는 연령도 매우 낮아 진 것 같다. 자만벽화마을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자주 가는 편인데 벽화마을에서도 대학생이 아니라 중학생, 고등학생들도 친구끼리 연인끼리 여행을 오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일상 벗어나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것또한 요즘에는 여행에 관한 정보도 SNS를 통해서 너무 손쉽고 다양하게 얻을 수 있다. 추천 코스, 추천 관광지, 추천 식당 등 없는 것이 없다. 기존에는 여행사를 통한 여행이 주였다면 이제는 스스로 항공을 예약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코스를 짜는 셀프 여행 족들이 굉장히 많아 졌다. 필자 주변에도 보면 인터넷으로 손쉽게 예약하고 일본, 유럽 등을 친구끼리 불편함 없이 즐겁게 자유여행을 하고 오는 대학생 친구들을 정말 자주 본다.반면에 해외도 한번 가보지 못하고 제대로 된 여행을 가보지 못했던 필자는 주변에 다 여행을 자주 가는데 아! 나도 한번 여행을 가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여행이 주는 어떤 매력 때문에 이렇데 다들 여행을 다니는지 사실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남자 넷이서 2박3일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여 다녀오게 되었다.여행을 가보지 않아서 그런지 사실 두려움이 컸다. 항공기 예약은 어떻게 하고, 숙소는 어디로 하고, 차량은 어떻게 하고 등등 고민과 걱정이 기대감보다 앞섰던 것 같다. 하지만 괜한 걱정 이었다.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확인하고 실시간으로 결제까지 한 번에 해결이 가능하였다. 아 여행 준비 하는 것이 간편하네. 생각했다. 여행 간에도 코스도 인터넷을 통해서 또 지인을 통해서 추천 명소, 가볼만한 곳을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두려웠던 제주도 여행은 나름 성공적으로 즐겁게 마무리 되었다.여행 중에 그리고 여행에 돌아온 후에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다. 여행이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제일 좋았던 건 바로 일탈 이였다. 일상에서 벗어나 아무 걱정 없이 오롯이 어디 갈지 뭐먹을지 뭐하고 놀지만 걱정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사실 첫 여행이라 많은 의미를 담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주변에 여행을 많이 다니는 지인들에게 물음을 던졌다. 여행이 주는 의미는 뭐예요? 여행은 왜가세요? 다양한 의견과 다양한 생각이 나와서 흥미로웠다. 인상적인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다.우리 삶에 플러스 되어주는 것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 이에요. 여행은 심리상담을 하는 것 같아요. 나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고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하기도 하거든요. 여행은 미지의 낯선 곳을 간다는 두려움으로 시작해서 하나씩 알아가는 기쁨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재미예요. 처음 가는 곳, 처음 보는 사람들, 새로운 환경에서 보고 배우고 도전하는 의미입니다. 여행을 가는 이유는 여행을 가면 어떤 일이 생길지 누구를 만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오는 설렘이 있어요.각자 의미와 이유는 다 다르지만 여행은 우리의 삶에 플러스가 되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 우리의 일상 중에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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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2.20 23:02

택견을 왜 하냐는 물음에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한 택견은 이렇다 할 정도로 고수는 아니지만 오래 한 만큼은 기본적인 실력은 있다 자부할 수 있다. 흔하지 않은 특기인데, 어떻게 시작했냐고 묻는다면 조금 웃기지만 택견복 때문이었다. 어릴 적 본 애니메이션 〈홍길동〉이 떠오르는 검은 조끼와 붉은 끈이 어찌나 예뻐보여서 검도도, 태권도도 아닌 택견을 선택했고 나는 현재까지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질문이 ‘택견을 왜 해?’라면 나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다.단순한 운동이나 무술이 아닌택견복이 예뻐서 택견을 시작했지만, 내가 택견을 지금까지 하는 이유는 택견 속에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대회를 나가기 위해 노력했던 나의 모습, 택견을 향한 사람들의 열정 같은 것도 있지만 택견을 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깨달았기 때문이다.택견에서 서로의 실력을 뽐내며 경쟁하는 것을 ‘견주기’라고 한다. 견주기처럼 상대를 때릴 수 있고 때려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누구나 쉽게 몸을 움직일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 갑작스러운 대치도 아니고 뚜렷한 규칙도 있고, 보호구도 있음에도 이러한 상황을 처음 마주치게 되면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정말 때려야하는 것이 맞는지, 내가 누군가를 상처줘도 괜찮은 것인지 망설이는 동안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를 제대로 차지 못하는 나에게 당시 택견을 가르쳐주던 선생님께서 알려주셨던 것이 있었다. 견주기에서 이기고 싶을 때 제일 중요하게 삼아야하는 것은 ‘깡’이라고. 선생님께서는 ‘깡’이라고 표현했지만 상대와 대치할 수 있는 ‘용기’를 의미한 것이겠다. 상대방을 공격할 준비가 되어있고 상대방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상태를 누구보다 빨리 준비하는 것. 그것이 ‘깡’이었다. 이 용기가 준비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밀려 자신의 자리를 잃게 된다. 제 아무리 자신이 연습 때 빠르고 강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해도, 용기가 없으면 견주기에서 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선생님은 나에게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라고.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하라고. 눈을 뜨고 앞에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용기를 가지라고.깨달음은 얻었지만 경기에서는 졌다. 선생님은 경기를 보시고는 나에게 경기를 왜 이렇게 연습보다 못했냐며 한참을 나무라셨다. 져서 시무룩할 나를 생각하셔서 더 그러신 것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 이후에도 택견을 하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 상대와 나의 거리를 재는 방법, 무게 중심 유지하기, 때로는 앞이 아닌 옆이나 뒤에서 상대하는 법,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가끔은 정직하지 않더라도 페인팅 하기…. 택견은 나에게 단순한 운동이나 무술이 아니었다. 나에게 살아가는 용기를 주고 살아가는 방법을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살아가는 용기와 방법을 준 경험사람들은 택견을 할 줄 안다는 나에게 자주 묻는다. 너는 택견을 왜 해? 사람들은 잘 안찾는 무예잖아. 구구절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항상 말을 잘 하지 못했다. 택견을 좋아하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거나 놀림거리가 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리를 빌어 말하자면, 그래도 멋쩍게 웃어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 단지 누군가의 입에 쉽게 오르내리락 하는 것이 두려웠을 뿐이다. 그만큼 소중한 경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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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2.13 23:02

땅을 두드리며 부르는 노래

필자는 국악작곡가로 활동해오며 다양한 주제를 음악적으로 다루고 있다. 과거 조선시대 선비들이 즐기던 가곡에 뿌리를 둔 경풍년(慶豊年)을 소재로 하여 작곡되어진 대금과 아쟁을 위한 이중주 격양가(擊壤歌)를 쓰게 된 작곡 노트의 일부분을 잠시 칼럼에 인용해 본다.백성들이 걱정 없이 즐겁게 사는 나라동양권에서 가장 이상적인 시대를 말할 때 요순시대를 빗대곤 한다. 요순시대에는 태평성대가 끊이지 않았는데 이때 백성들이 저절로 흥겨워 부른 노래가 바로 격양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풍년이 들어 오곡이 풍성하고 민심이 후한 태평시대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는 격양가의 노래가사는 『세종실록』 권8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일출이작(日出而作) 착정이가(鑿井而歌) 경전이식(耕田而食) 제력하유어아재(帝力何有於我哉).해가 뜨면 일하고, 우물 파서 물마시고, 밭을 갈아 밥 먹으니, 임금의 은혜 어찌 우리에게만 있으리오.격양가는 중국의 고가로써 전해지는 내용은 이렇다.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이 되었을 때, 과연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백성들이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자 평민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다. 넓고 번화한 네거리에 이르렀을 때 아이들이 노래 부르며 놀고 있어 그 노랫소리를 유심히 들었다. 우리 백성들을 살게 하는 것은, 그대의 지극함 아닌 것이 없다,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임금의 법에 따르고 있다. 그 뜻은 임금님이 인간의 본성에 따라 백성을 도리에 맞게 인도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법이니 정치니 하는 것을 염두에 두거나 배워 알거나 하지 않아도 자연 임금님의 가르침에 따르게 된다는 것으로, 이 노래를 강구가무(康衢歌舞)라고도 한다.임금은 다시 발길을 옮겼다. 한 노인이 길가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한 손으로는 배를 두들기고 또 한 손으로는 땅바닥을 치며 장단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고,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으니,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 노래의 요체는 정치의 고마움을 알게 하는 정치보다는 그것을 전혀 느끼기조차 못하게 하는 정치가 진실로 위대한 정치라는 것으로, 이 노래가 격양가이다. 노래한 노인이 했다는 한 손으로는 배를 두들기고 또 한 손으로는 땅바닥을 치는 행위가 곧 함포고복(含哺鼓腹)이다. 이는 장자가 다스림의 최고 경지라 한 것으로 백성들이 먹을 것이 풍족하여 아무런 걱정 없이 즐겁게 지내고 있음을 뜻한다.격앙가 부르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지금은 어느 모로 보나 이 나라 국민들이 배 두드리며 격양가를 부를 형편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 나라 위정자들이 정치를 아주 잘 한다고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예술가뿐만이 아니라 국민이라면 어느 구석에서든 불만이 있을 수 있으며 국민은 그 불만을 표현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그것이 예술적 표현에서든 비폭력 시위를 통해서든 말이다. 촛불 집회를 벌이고, 예술가들이 곳곳에서 시국을 대변하는 작품을 쏟아내고 있다. 이는 우리사회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것을 두고 억압할 목적의 수단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매 정권마다 문화예술에 대해 편가르기식 지원을 하며 그들의 입맛에 맞는 문화를 요구하는 시대를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부디 이 땅에 살고 있는 국민 모두가 땅을 치고 배를 두드리며 격양가를 노래하는 그날이 하루빨리 찾아오길 우리는 오늘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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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2.06 23:02

청년들의 현실적인 고민

요즘 청년들은 참 고민이 많다. 그 중에서도 깊은 고민이 바로 진로, 먹고사는 고민이다. 진로고민도 아주 다양한 직업군에서 취사선택하는데도 고민이 있겠지만, 직업을 선택한 청년들도 또다른 고민을 갖게된다. 바로 현실이라는 큰 벽에 부딪혀서이다.기성세대도 청년의 고민 함께해주길많은 청년들이 이 현실 때문에 안정적이고 급여가 높은 직업군을 많이 선호한다. 하지만 어떻게 사람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이 다 똑같을 수 있는가? 돈을 많이 버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으면 돈을 조금 버는 일을 하는 사람도 존재 한다. 주변에는 남들이 하지 않는 청소년, 대학생,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더 좋은 환경,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료 친구들이 많다. 이 친구들은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도 먼저의 고민은 어디서 이 비용을 끌어 올 것인가이다. 인건비는커녕 행사를 치르는 최소비용도 지원받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열정으로 도전한 좋은 프로그램은 현실에 부딪혀 실패하거나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청년들에게 어른들은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좋은 경험이야, 그것이 쌓이면 나중엔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거야, 그러니 조금만 참아 현실을 봐, 당장 배고픈데 무슨 좋은 일을 한다고 그래 당장 다른 일 찾아봐청년들은 두렵다. 또 고민이다. 내가 정말 즐겁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이일을 좋은 경험이라고 자신을 다독여야 할지 아니면 현실이 힘들고 어려우니 포기하고 현실에 맞는 일을 찾아야 하는 건지.청년의 고민을 청년 뿐만아니라 보다 더한 세월을 살아간 기성세대가 같이 고민해주면 어떨까? 이 고민에 정확한 답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고민을 해본 입장으로 같이 고민 해봤으면 좋겠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일이 어떻게 하면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를 반드시 고민해 봐야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또한 시선을 조금만 옮기면 다양하고 보다나은 수익모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즐거운 일, 하고 싶은 일만 추구하다 수익모델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으면 현실적인 고민이 시작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평생 지원 받을 수 없는 연유다. 하지만 어떻게 좋은 일 하는 게 바로 수익이 될 수 있겠는가, 국가와 기업 단체들은 이미 잘 먹고 잘 사는 사회 및 경제적 강자에게만 시선을 주지 말고 열정이 넘치는데 현실과 경험의 선에서 고민 하는 젊은 청년들에게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준다면 이런 청년들도 조금 더 노력해보지 않을까 싶다.필요에 따라서 전략적인 시간분배를 해보자! 일을 하다보면 이런 고민도 한다. 돈이 되는 일, 돈이 안 되는 일, 어떤 일을 할 것인가?때로는 투자헌신적 희생도 필요당연히 생계를 위해서 돈이 되는 일을 해야 된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어떻게 돈 되는 일만 주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고민을 한다. 돈이 안 되는 일이 주어졌을 때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열심히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기준이 있으면 한다. 이것이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목표와 목적에 도움이 될 것 인지, 연관성이 있는 건지 생산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물만 줘서는 안 된다. 가지도 쳐야하고, 거름도 해야 된다. 성공을 위해서는 돈 되는 일만 해야 되다는 현실적인 부분에만 치우치지 말고, 때로는 투자도 필요하고 헌신적 희생도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싶다. 그 때가 바로 지금 청년의 시기가 아닌가 싶다. 나라는 나무를 키우기 위해 전략적으로 단기적이면서 중장기 적인 플랜을 포함한 시간분배를 청년의 컬러에 맞게 추진해나가자.△이정길 단장은 현재 제이알이벤트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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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23 23:02

우리들의 집

군대에서 휴가 나온 친구와 맥주를 마셨다. 우리 둘 얼굴이 벌겋게 되었을 때 쯤 우리는 집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친구는 tvN 드라마 〈청춘시대〉를 재밌게 봤다고 했다. 혈연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한 집에 살며, 자신의 인생과 타인의 인생을 함께 사는 서사. 친구는 그 이야기가 참 부러웠다고 말했다. 우리는 갑자기 홀린 듯 드라마에 나오는 쉐어 하우스 이야기를 했다. 창업을 하네 마네, 규칙을 어떻게 하네 마네. 심지어 애인을 집에 들이네 마네까지.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는 드라마 〈청춘시대〉처럼 젊은 청년들에게 복층 집을 내어놓는 마음씨 좋은 집주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에게 집이 없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잠시 멈춘 대화 사이로 가수 한동근씨의 노래 〈그대라는 사치〉가 흘러나왔다. 그래 사치, 그댄 사치, 내겐 사치.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사치로 여겨지는 씁쓸한 보금자리그 때 우리는 웃었지만, 우리는 집이 없었고 우리에게 집은 사치다. 200만원을 웃도는 보증금과 30만원이라는 월세. 어떤 방은 빨래라도 하는 날이면 곧게 편 빨래 건조대 때문에 침대나 책상에서 내려가지 못했다. 어떤 방은 마치 공장식 축산농장의 닭장처럼, 침대와 옷장이 방의 전부이기도 했다. 방의 가구가 침대와 옷장뿐이라는 것이 아니라, 침대와 옷장이 끝인 방이었다. 다분히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서울과 수도권의 문제가 아니라, 전북권 대학 인근에서도 이런 방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런 집에서 사는 것이 어떤 지역의 특수성이 아니었다. 학점이고 취업 준비고 잠깐 침대에 누워 눈을 붙이고 싶은 집은 좁다 못해 가끔은 외로울 정도로 갑갑했고 슬프게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보금자리로서의 집 역시 다분히 사치였다. 사회의 노력하라는 말에 쫓기는 나에게 혈육은 남들도 다 그만큼은 한다는 말을 쉽게 했고, 어쩔 때는 그렇지 않다, 열심히 하고 있다고 대꾸할 힘조차 들지 않았다. 나를 향한 기대가 나를 짓눌렀고 그 기대만큼 잘 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우리도 세상 일이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항상 내 편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미친 듯이 달리기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집으로 돌아와 쉬고 싶은데 집조차 편하지가 않았다. 사람답게 살만한 집을 찾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했고 혈육이 있는 집은 맘 편히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에게 집은 사치일 수 밖에 없었다.사치 아닌 '일상'이 되는 집 바란다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집을, 새로운 가족을 끊임없이 떠올렸다. 나와 친구의 상상은 끝이 없었다. 나는 이런 집에서 살고 싶지 않아, 그런 부모가 되지 않을 거야, 내 가족이 될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을거야, 공간까지 내가 도와주지 못하더라도 나의 가족이 집이라는 보금자리를 사치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줄줄 나열한 이 상상이 정말로 현실로 이루어질까, 우리는 믿음보다 의심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보증금 200만원과 월세 30만원을 당장 준비할 수 없어서 우리들의 집을 위해 가장 먼저 집이 사치가 되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며 노력하기로 했다. 우리들의 집이 사치가 아닌 일상이 되는 집을 만들기 위해서.△권화담씨는 청년대안언론 Misfits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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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16 23:02

바람을 그리다

정유년(丁酉年)의 눈부신 새해 첫날, 필자는 천년 전북, 청년 전북의 닭띠 태생으로 올해는 남다른 해가 되리라는 바람을 안고 평소엔 오르지도 않던 모악산 정상을 밟았다. 지난날의 시련과 아픔을 멀리 떼어버리고 나와, 새해의 소망을 가슴 속에 되뇌었다. 지난 4년의 풍상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갔지만, 비단 필자의 개인적인 고뇌만은 아니었음을 -현 시국이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듯- 오늘 아침뉴스는 어제와 별다를 바 없었다.본질로 되돌아가야 새로움 얻어창작을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는 병적으로 매순간 새로운 소리 혹은 가치 있는 소리에 목말라 했다. 악상의 부제로 숨통을 조여 오는 것을 느낄 땐 불현 듯 과거로 돌아가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결국 본질로 되돌아가야지만 새로움을 얻게 됨을 깨닫는다. 그땐 이미 마감시간에 쫓겨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이런 삶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지금껏 달려온 것을 보면 바보가 아니라면 청춘의 다른 이름, 열정이었을까.전라북도는 문화예술의 훌륭한 인적자원과 유구한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는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대의 전통문화 발상지이다. 수준 높은 전북의 귀명창이 소리의 고장 전북을 지켜내고 있다는 사실에 이견이 없을 듯하다. 창작음악 역시 그에 걸맞는 수준의 음악적 양식을 갖추어야 할 터이니 지역의 국악계를 이끌어갈 청년 국악인들은 어깨가 실로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요즘은 갈수록 자극적인 것의 수위가 높아만 간다. 뉴스, 드라마, 음식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러하다. 음악 역시 빠른 정보 습득과 유행을 쫓으며 편향되는 현상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자극에 익숙해질 때 즈음 우리는 더욱 심한 자극을 맞이한다. 새로운 공연주제와 무대연출, 소재의 홍수 속에 창작음악은 유행처럼 번지듯 관객의 구미에 맞춰 MSG를 뿜어낸다. 저마다 같은 소리와 무대를 보이며 악곡의 해석은 산(山)으로 갈 때가 허다하다. 때로는 과하다 못해 어떤 음악을 표현하려는 것인지 조차 분간이 안갈 때도 있다.우리가 지향해야 할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 실험적인 악곡의 다양한 편곡 방향을 정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악곡을 표현함에 있어 음향에 대한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음악을 억지로 짜 맞춘 것 같은 느낌보다는 조금 더 안정되고 효율적인 음악구조로써 새로운 세계를 만난 듯 발전적인 창작국악으로, 청년국악으로 나아가야겠다.1145년(인종 23) 김부식 등이 편찬한 『삼국사기』에 전하길 신라 진흥왕 시절 우륵이 제자의 음악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樂而不流 哀而不悲 (낙이불류 애이불비) 즐겁지만 넘치지 아니하고 애절하지만 슬프지 않다. 이 말은 즐기되 지나치게 휩쓸리지 않고 슬퍼하되 비탄에 빠지지 않는다는 음악 최고의 경지를 뜻한다. 또한 애이불비(哀而不悲) 이전에 애이불상(哀而不傷)이라는 말이 있다. 공자가 간추린 시경(詩經)에서 문왕(文王)과 후비(后妃)의 덕을 노래한 관저(關雎)라는 곡(曲)을 이렇게 평하였다. 樂而不淫 哀而不傷 (애이불상 낙이불음) 즐겁지만 방탕하지 아니하고 슬프지만 마음을 상하지 않는다.청춘들, 여유 갖고 너의 길 가라고대로부터 발전해 온 동아시아의 전통 사상은 음악이라는 예술에 살아 있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끊임없이 고한다. 절제하라! 치우치지마라! 여유를 갖고 너의 길을 가라!△강성오 씨는 국악작곡가 겸 지휘자이며 한국전통문화고전주대 등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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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09 23:02

나의 Soul match

얼마 전 연사로 참여했던 강연장에서 한 학생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림을 잘 그리는 재능은 타고난 건가요? 타고난 재능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부모의 DNA 중 우성인자에 의한 선천적인 능력? 그렇다고 하기 에는 나의 부모님과 친가, 외가 친척들, 조상님까지도 미술업계에 종사하셨다는 분은 계시지 않았다. 혹은 재능이 있었지만 개발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겠다. 부모님도 두 분 모두 손재주가 좋으시니 말이다. 영혼 통하듯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일그렇다면 과연 나는 정말 타고났을까?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유치원 때? 그것보다 조금 더 과거의 이야기다.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림 그리는 행위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항상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것을 내밀며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나의 이름이 쓰여 진 스케치북에는 매번 다른 사람들의 그림으로만 가득 채워졌다. 그렇게 그림을 바라보기만 하던 꼬맹이의 첫 그림 입문은 바로 ‘먹지’의 존재를 알고부터였다. 그때부터 집에 있는 동화책 속 공주님이란 공주님은 죄다 베껴 그려지는 대상이 되었다. 좋아하는 그림은 몇 번 이고 베꼈다. 그림의 검정 라인이 덧그려진 나의 선들로 인해 너덜거렸다. 그러다 조금 더 크니 상상 속 공주님을 직접 그리게 되고, 집에 있는 사물을 보고 그리고, 풍경을 그리게 되더라. 나는 그냥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였지 특출난 재능을 타고난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림에 대한 관심이 특별히 많았던 것이 선천적인 부분이라면 그렇달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들이는 만큼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누구나 매한가지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타고난 자신의 성향과 잘 맞는 일은 있다는 것이다. 그림에 관심이 있었던 만큼 피아노 또한 좋아했다. 아직 손이 덜 자라 피아노를 칠 수 없을 만큼 작은 아이였을 때, 특별히 떼쓰는 것 없이 순했던 내가 피아노 학원 앞만 지나가면 그 앞에 앉아 울고불고 해서 엄마를 당혹케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꽤 긴 시간동안 피아노를 배웠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던 피아노가 어찌 보면 미래의 직업으로 선택하기에 더 알맞았을지도 모른다. 한두 번 콩쿨에 나가 입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대에서의 공포심과 실수에 대한 압박감 때문이었을까. 피아노는 나의 흥미에서 점점 멀어졌고 학원을 가는 것이 괴롭게만 느껴졌다. 여전히 무대에 서는 것이 참 힘들다. 대중 앞에서 이야기를 할라치면 평정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법으로 강연을 망치고 돌아와 이불킥하기 일쑤이다.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림 공연을 할 때만큼은 예외다. 오히려 그들의 에너지를 받아 작품에 원 없이 표출한다. 그렇게 아낌없이 쏟아 그림을 완성하고 난 뒤 돌아서서 관객을 바라보았을 때의 그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남이 만들어 놓은 틀에 맞춰 살지 말자나에게 피아노와 그림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영혼이 통하듯 오롯이 집중해서 그 행위에 빠질 수 있는 어떤 힘이지 않을까 싶다. 소울 메이트처럼 직업에도 소울 매치(Soul match)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난 두 해를 나만의 소울 매치를 창조하기 위해 보내왔다. 그리고 2017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길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지라도 남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 맞추어 살기 위해 나의 몸과 영혼을 깎아 우겨넣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신은미 씨는 성신여대를 졸업하고 전주한옥마을에서 아트샵 새라바림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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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02 23:02

새로운 시절을 맞이하며

나는 대학시절 남들 보기에 ‘쓸 데 없어 보이는 일’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전공 특성상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하면 취업에는 큰 지장이 없었던 덕분이었다. 기말 시험을 보러 가다가 눈 내리는 거리의 모습에 감명 받아 갑자기 그대로 남산에 가서 풍경을 본다거나, 문득 궁금해지는 게 있으면 망설임 없이 관련된 다른 전공의 수업을 수강하거나 하는 식이었다. 물론 시험에 불참한 과목은 재수강을 하게 되었고, 쟁쟁한 전공생들 사이에서 얻은 타 전공수업 학점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그래도 내 인생에서 그토록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기회는 그 때가 아니면 다시 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던 일그러던 어느 여름, 계절학기로 개설된 ‘성의 철학과 성윤리’라는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다. 무려 지하철로 열 정거장이 넘는 다른 학교까지 가서 말이다.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터라 주변에서는 쓸 데 없이 멀리까지 가서 학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수업을 듣지 말라는 조언을 했지만, 나는 그 수업을 듣고야 말았다.그리고 그 수업에서 나는 지금까지 마음에 새기고 있을 정도로 인상 깊은 말을 듣게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 우리는 불쾌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그와 비슷한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똑같은 감정을 느끼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이 때 이것을 단순한 감정의 경험에서 끝내지 않고, 그 기분의 기저에 깔린 원인을 찾아 이성적인 언어로 표현해보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방식으로 소통하고자 노력한다면 이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한 마디로, 불평만 하지 말고 상황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보자는 말이다. 합리적이지 않은 규칙이나 제도 등에 의해 그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은 아닌지, 나만 그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인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일하면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나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을 자주 보는데, 그런 노력들 덕에 이런 법률도 제정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일할 때에도 막연한 답답함을 적극적으로 말로 풀어보면서 그 말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관련 법령을 찾다 보면, 승소의 기쁨을 누리는 때가 많다. 모두가 수강하지 말라고 말렸던 저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었을 배움이다. 이 정도면 살면서 다소 쓸 데 없는 짓을 일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 오히려 그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삶의 많은 부분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오히려 삶의 많은 부분 지탱해주는 힘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6년이 가면, 나는 이십대를 지나 서른 살이 된다. 그동안 계속 밖으로 에너지를 쏟아내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이십대 초반에 자유롭게 생활하면서 밑거름을 만들어둔 덕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서른 살을 앞두고 다시 삼십대를 견뎌낼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일구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동안은 무엇인가 편치 않다는,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여 왔다면, 이제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을 기를 때가 아닐까. 새롭게 삼십 대를 맞이한 시점에서의 ‘쓸 데 없어 보이는 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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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2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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