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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야하는 다른 세대에게

요즘 나의 화두는 어떻게 늙을 것인가?이다. 이런 고민은 어른에 대한 나의 적개심에서 비롯된 마음이기도 하다.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그런 마음들이 모여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늙고 싶은가에 대해 스스로 물음을 던지게 된 것이다.내가 느낀 어른들의 모습이 어땠길래 그러느냐고 물어본다면 정말 철저한 적개심을 가질 정도로 이용당했다 생각이 든다. 물론 사회에 지위를 얻기 위한 요구사항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일과는 별개로 한 인간에게 수치심까지 줘야하는 것인가?어떻게 늙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그동안 사랑만 받던 보호막에서 벗어나와 만난 어른들은 무참히도 나를 아래로 보았다. 넌 어린 여자애잖아, 그러니 당연히 내 말을 들어야해라는 태도로 나에게 언제나 큰 소리로 주문을 했다. 돈을 지불하는 공간에 있으면 어른들의 위상은 더욱 높아진다. 명예를 가진 사람일수록 더 많은 것을 당연하게 요구했고, 나보다 돈이 더 많은 사람이 일개 직원인 나에게 깎아달라, 지불하지 않겠다라며 으름장 놓기 일쑤였다. 일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밥을 먹는 순간에도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어디서든 눈칫밥을 먹으며 살아가야 했다.어른들은 미래를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 내가 꿈꾼 것을 미리 경험한 선배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미리 먼저 태어난 관계로 가지게 된 자본력으로 고용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으로 모든 권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잘 쓰이기 위해 맞춰져야한다. 고용주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 무단히도 애써야한다. 이것을 사회와 개인의 타협이라며 무조건적으로 따라야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건 고용주의 입맛 따라 변해야하는 한 개인의 불안한 정체성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언제나 타인에게 맞춰 살아가야하는 것이다.아직 경험하지 못한 청년들은 수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나타난다. 이건 어떻게 하셨나요?라고 쉽게 물어보는 사람들을 만나며 나 또한 내가 그렇게 해봤는데 그렇게 밖에 안 되더라, 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같은 질문에 늘 같은 답변하는 일도 귀찮아지기만 했다. 그렇게 나도 꼰대가 되어가는가? 싶었다. 어른들이 이래서 그동안 나에게 그렇게 대했던 것일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그들의 세월들이 쉽게 만들어 진 것이 아니며 나 또한 쉬이 얻으려는 자세를 취하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의 경험과 정보를 인터넷에 검색하듯이 제가 물어보면서 답만 말해주세요.라는 태도였지 않았나, 검색하면 나오는 답처럼 경험하지 않고 쉽게 답만 얻으려 했던 것 같다.청년의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는 곳에도 청년들은 주체적이지 못하다. 삼포세대, 오포세대라 지칭하고 있는 것도 어른들이다. 청년은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직접 해결해 나가기보단 그때에도 어른들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청년들 태도에도 무례함은 있어좋든 싫든, 어른은 어른의 이유대로 청년은 청년의 이유대로 살아가며 그렇게 서로를 외면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린 앞으로도 계속 함께해야할 것이다. 미래를 함께 살아가야할 서로에게 이해와 예의를 구할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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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14 23:02

조금 천천히 생각하기

영국의 최면가 제임스 트립은 신경생물학자 존 에클스의 나는 여러분이 자연의 우주에는 어떤 색깔도, 어떤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색깔이나 소리와 비슷한 것, 즉 직물, 문양, 아름다움, 향기 등등의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현실은 실제 객관적인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창으로 마음이 재구성한 사실이라 주장한다.그래서 그는 이러한 내면의 창에 개입해 피험자가 느끼는 현실을 재구성해 최면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제임스 트립의 방식대로 퍼포먼스를 할 때에는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인 최면상태를 유도하지 않고서도 흥미로운 수준의 최면현상을 유도할 수 있다. 간단한 손가락 붙이기부터 시작해서 손바닥이 테이블에 붙어 뗄 수 없게 되고 계속 반응성을 키워간다면 이름을 망각시키고 새로운 이름으로 잠시나마 착각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게 된다. 최면가의 유도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변화함으로써 인식하는 현실이 달라지는 것이다.어떻게 보면 가장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오감이 우리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손바닥과 테이블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매우 강력한 접착제가 손바닥에 발라졌다고 생각하고 그 느낌을 느끼는 것으로 이러한 착각이 일어난다. 굳이 최면현상이 아니라 맹점을 확인하는 간단한 실험을 통해서도 우리는 우리의 뇌가 현실을 순식간에 재창조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결국 우리가 잘 알고 있을 거라 당연하게 믿고 있는 현실 역시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서 인식하는 모습이 굉장히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좀 더 확장해보면 우리가 정말 잘 알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협소해짐을 알 수 있다.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란 말을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말하셨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찾아본 사람들은 이 말이 단재 신채호 선생이 아니라 윈스턴 처칠이 이야기했다고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처칠 박물관의 답변에 의하면 처칠이 그러한 말을 했다고 하는 기록 역시 없다고 한다.사실 무언가를 정확히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작업일 것이다.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단언하는 말에 대해서 마음이 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인터넷을 보면 사진과 간단한 문장으로 결합해 정보를 알려주는 카드 뷰 형식의 뉴스나 유용한 정보와 상식을 설명하는 정보성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때로는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올라온 믿지 못할 사건에 같이 분노하고 이를 공유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다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우리의 감각이 우리에게 때로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줌을 생각할 때 감각을 느끼고 주위를 인지하는 것보다 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사건과 사고, 지식, 정보에 대해서 과연 이것이 쉽게 진실이라 믿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때로는 약간 피곤할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천천히 생각하고 바라보는 게 보다 더 진실에 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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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07 23:02

기자가 돼도 기자가 안돼서

기자가 되고 싶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어느 대학교의 건학이념을 가슴에 품고 다녔다. 진리에 가장 가까운 직업은 기자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지적으로 오만한 고등학생이 생활기록부 장래희망에 써넣기에도 기자는 퍽 그럴싸했다. 대학에 오자마자 대학신문에 지원했다. 기자가 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그때는 그렇게 여겼다.■ 진실 추구, 신념대로 행동하려고기자 3년차 되는 해에 편집장이 됐다. 편집장으로 사령이 난지 한 달이 됐을 쯤, 총장이 사고를 쳤다. 총동아리연합회 발대식 해오름식에서 축사 대신 특강을 했다. 특강은 동아리 활동 어지간히 해라, 취업 준비나 열심히 해라, 우리학교 부실대 선정되면 너희만 손해다류의 내용으로 채워졌다. 55분쯤 했던 것 같다. 애초에 총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이었다. 행사는 전부 뒤로 연기됐다. 2000여 학생들은 반 토막 났다. 나는, 모든 내용을 기사로 썼다. 제목은 총동연 해오름식, 졸지에 해내림식이었다.편집 당일, 주간교수가 찾아왔다. 기사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대로는 내보낼 수 없다고 했다. 제대로 취재했냐고 물었다. 제대로 취재했다고 답했다. 어쨌든 이대로는 안 된다고 했다. 여러 차례 실랑이가 있었고, 누군가에 의해 고쳐진 기사가 지면에 실렸다.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끝까지 항의하지 못한 나였다.한 달 뒤, 다른 기사 취재 때문에 총장실에 갔다. 취재가 끝나고 총장은 나를 불렀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총장의 일대일 맞춤형 연설을 들었다. 한 시간쯤 했던 것 같다. 언론의 역할은 비판이 전부가 아니다, 대안을 제시해야 제대로 된 기사다, 앞으로 지켜보겠다 등등. 대답을 할라치면 끊고 할 말만 했다. 위압감에 짓눌렸다.그때부터, 편집권 문제를 제기하면 신문사 조직 전체가 무너질 것이라는 피해의식이 생겼다. 민감한 기사는 빼고 무난한 기사를 올렸다. 빼앗긴 자존감은 총학생회를 까면서 회복했다. 끝없는 정신승리와 자기합리화. 나는 그렇게 기레기가 되었다. 편집장을 마쳤을 때, 대학신문사는 대학 본부로부터 우수 부서상을 받았다. 담당 간사는 심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총장이 내게 보내는 조롱이라고 느꼈다. 기자가 자유와 이성의 상징이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나는 굴종의 상징이었다.우수 부서상을 받은 다음날, 새벽 두 시에 전화가 왔다. 외대학보 편집장이었다. 잘렸다고 했다. 학교가 쓰지 말라고 한 기사를 냈다는 이유였다. 심히 이례적으로 부끄러웠다. 열등감이 느껴졌다. 동시에 KBS, MBC, YTN에서 언론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기자들이 떠올랐다. 그런 투쟁은 어른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굴종하는 내가 나중에 기자가 되어서, 같은 상황에 과연 굴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대학언론인들 모아 단체 만들어칼럼니스트 김현진의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남자는 스물다섯이 넘으면 꼰대가 된다. 그쯤부터 사람이 안 변한다. 그 때 내 나이가 스물셋. 바로 군대를 다녀오면 스물다섯. 이대로의 나는, 기자가 돼도 이성과 합리,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기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신념대로 행동하고 싶었다. 다시는 나 같은 기자가 나오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곧장 서울로 올라왔다. 대학언론인들을 모아 단체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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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31 23:02

슈퍼 마리오의 마리오는 배관공

자전거를 처음 배운 게 초등학교 저학년 인 듯 하다. 탈 것에 대해 두려움이 별로 없기도 하고, 운동신경도 나쁘지 않았는지 롤러스케이트, 자전거 이런 것들을 타고 놀았던 기억이 즐겁게 남아있다. 자전거 바퀴 바람도 제대로 못 넣어성인이 되고 운동 겸, 이동수단으로 자전거를 이용하기 시작한 건 5년 정도가 되겠다. 선물 받은 분홍자전거부터 지금의 날쌘 자전거까지 세 대 정도를 거쳤다. 자전거 상태가 이상하다 싶으면 수리를 맡기는데 얼마전 땜질한 바퀴에 또 구멍이 난 듯 했다. 두어 번 자전거를 끌고 갔다가 부산하게 움직이시는 아저씨께 부탁하기가 그래서 눈치껏 바람 넣기를 시도했다. 영 시원치 않았다. 바쁜 일정에 고칠 시간이 부족해 집에 방치하고 택시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오늘 모처럼 꺼내 나와서 자전거포에 갔다. “아저씨 또 펑크 났나봐요. 바람이 안들어가요.” 아저씨는 무심히 자전거를 만지시더니 이내 빵빵하게 숨을 불어넣으셨다. “요놈을 끝까지 빼고 누른 다음에 넣야혀요. 안 누르면 붙어서 안들어가.” 허무하고 민망했다. 나는 ‘기획’이라는 일을 밥벌이로 삼고 있다. 남부시장의 청년몰부터 야시장. 크고 작은 행사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조율하면서 머리에 있는 것들을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만들어 온 ‘판’에 대한 좋은 평가와 응원을 받았고 보람과 함께 든든한 동료들이 많음에 행복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청년몰과 야시장을 보며 내 역할의 다음 방향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기획’이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리며 헛헛해 하던 즈음이었다. 공간 구성, 관계 조율, 기획서와 정산서가 아닌 손에 잡히는 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목수, 전기공, 춤을 추거나 바느질을 하는 것까지. 그러나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배우는 과정도 만만치않고 ‘전문분야’로 느껴져 선뜻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역에서 알고 지내던 각 예술 분야의 기획자이자 예술가인 분들의 제안으로 스테이풀리쉬위크축제를 만들기로 했다. ‘만드는 사람들이 즐거운 축제를 만들자’는 의도와 축제를 만들어 갈 방식에 동의했고, 다른 자극이 필요했다. 6개월 간 준비를 거쳐 지난 12일부터 16일까지 4박 5일간 펼쳐진 축제는 끝이 났다. 각자의 머릿속에 있던 것들을 꺼내며 조율해서 실현 시켜가는 과정은 때로는 어려웠지만 현장은 매끄러웠다. 음악, 미술, 공간기획 등 선배들은 저 마다의 현장에서 베테랑이었지만 각자의 현장이 아니었기에 더 배려했고, 내 놓았다. 축제를 준비하며, 끝내며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훨씬 많지만 오늘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스테이풀리쉬위크팀의 ‘기술력’이다. 시내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던 옛 KT&G 건물을 하나씩 바꿔나가는 과정은 놀라웠다. 나였다면 돈이 없어서 포기할 것들을 직접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획’이 손에서 직접 ‘실행’되는 과정을 경험했다. 대형 인디언텐트를 생각했으면 예산에 맞춰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었다. 전선을 빼서 어두운 곳을 연결하고 수도가 없는 곳에 물을 대는 그들의 기술은 대형 장비가 아닌 몇 가지의 공구로 이뤄졌다. 기획자이자 예술가인 선배들을 보며 내 고민이 풀리는 실마리를 얻는 듯 했다. 그들이 여전히 에너지 있게 움직이는 이유를 몰래 엿본 기분이었다. 일상 속 기술 배우면 삶이 더 온전자전거를 잘 탄다고 생각했다. 바퀴에 바람만 빠져도 자전거를 쓸 수 없는 내가 말이다. 바쁘고 쉬운 세상 속에서 돈을 벌거나 쓰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구나 싶은 헛헛함이 있다면 슈퍼마리오게임이 아니라 배관공인 마리오의 기술을 배워 보는게 어떨까. 내 일상이 좀 더 온전해 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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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24 23:02

때로는 그냥 여행을 떠나자

얼마 전 휴가 계획을 짜는 데서 오는 피로감에 대해 다룬 기사를 보았다. 언제부터인가 휴가기간에 계획을 짜서 여행을 가거나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세밀하게 일정을 짜고 그 일정에 맞춰 행동하는 경향이 늘었다고 한다.실제로도 휴가 계획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휴가 계획을 짜는 노하우에 대한 기사들도 올라오는 걸 보면 이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쉬는 시간에도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낯선 곳 천천히 걸으면 색다른 느낌그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주변의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이나 전주로 여행 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너무 정형화된 루트대로 여행을 떠난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 전주에 온다면 한옥마을을 구경하고 남부시장에 갔다 청년 몰을 구경하고 막걸리 골목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고, 혹은 전국여행이라면 아침에 전주에 와서 저녁에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 과 같이 여행 계획에 커다란 홈이 파여 있어 그 길대로 떠나는 것 같다.물론 여행에 목적을 가지고 떠나는 것도 굉장히 좋은 일이다.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거나 도시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떠나고 혹은 또 다른 테마에 맞춰 여행을 떠나는 것도 여행을 떠나는 사람 그 자신에게 굉장히 깊은 의미를 선물할 것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그런 모든 것들을 던져 버리고 그냥 아무 이유 없는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무작정 모르는 곳으로 떠나 단 하루나 이틀이라도 그 지역을 발 닿는 데로 거닐면서 보고 듣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즐겁지 않을까?예전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광주로 가는 버스에 몸을 맡긴 적이 있었다. 딱히 광주에 아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디 가고 싶었던 장소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지금 있는 곳이 아니라 가보지 못했던 곳에 가보고 싶어 아무 곳이나 뽑은 것이 바로 광주였다.약 1시간 반 정도 지나 터미널에서 내려 발길 닿는 데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위를 구경하고 배가 고프면 눈에 보이는 음식점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천천히 그렇게 걷다보니 좁은 골목길에 들어가게 되었고 광주라는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사는 장소 한가운데를 걸으면서 그리고 그 장소에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교류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지나는 것도 굉장히 색다른 느낌이었다. 그 동안은 다른 지역을 놀러갈 때 관광객으로써 한 발짝 멀리서 지켜보는 느낌이었지만 그땐 마치 내가 이곳에 사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 뒤에 숨겨진 순수한 얼굴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은 거의 도보로만 다녀서 끝나고 전주로 돌아올 때 굉장히 다리가 아팠지만, 보람차게 시간을 보냈어! 무언가를 얻은 여행이었어! 내 자신을 찾은 느낌이야! 이런 것들과는 관련이 없는, 이유 없는 즐거움을 얻었다.아무 계획도 목적도 없는 휴가를그 뒤로는 소소하게 내가 사는 지역인 전주 여기저기를 두 발로 걸으면서 다니는 취미가 생겼다. 좁은 골목길들, 처음가보는 길, 이런 소소한 곳 속에 숨겨진 보물과도 같은 가게나 카페, 그리고 그 지역의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고등학교 이후 계속 지내고 있는 전주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 크고 더 많은 것들을 감추고 있는 보물 상자라는 생각이 든다.그래서 때로는 아무 계획 없이, 아무 목적 없이 여행을 떠나거나 휴가를 보내는 것을 권한다. 이미 많은 의미는 일상에서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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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10 23:02

나무야 미안해

그만 넣으라고 해도 기어이 넣는다. 공짜로 1년 구독하게 해준대서 그냥 받았던 〈동아일보〉말이다. 구독 기간이 끝났는데도 새벽마다 꾸역꾸역 문 앞에 놓고 간다. 펼쳐 본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신문을 구석에 차 넣으며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본다. 일상적인 내 아침 풍경이다.스마트폰으로 뭐든 다하는 세상언론에 종사하는 내가 신문을 안 본다. 막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여기서 말하는 신문은 지면으로 발행되는, 잡지를 제외한 정기간행물을 말한다. 많은 선배가 신문을 꼭 봐야 한다고 했다. 편향되지 않은 정보를 얻는다, 지면 배분에 따라 뉴스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다, 여러 신문을 보면서 객관적인 시각을 기를 수 있다…. 이유는 많았다. 하지만 쇠락하는 존재가 자신의 존재 의의를 주장하는 것만큼 안쓰러운 일도 없다.신문을 안보는 이유는 첫째, 신뢰의 문제다. 언론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특히 종합일간지에서 두드러진다. 종합일간지는 짧은 시간 안에 취재와 기사작성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왜곡과 오보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현장에서 취재하는 기자보다 사무실에 앉아있는 부장의 판단으로 기사 방향이 결정된다. 많은 경우, 기사 내용은 취재 나가기 전에 이미 정해져 있다. 취재는 기사에 끼워 맞출만한 적당한 멘트 받으러 다니는 것에 불과하다. 사실 확인 없이 다른 기사, 보도자료를 ‘복붙’하는 기자도 부지기수다. 신문사의 실상을 알면 알수록 신뢰할 수 없는 신문사가 너무 많다. 좋은 신문 블루리본이라도 달아줘야 할 판이다.둘째, ‘노잼(재미없음)’이다. 지금의 신문은 기사를 끝까지 읽게 할 ‘무언가’가 없다. 시사주간지에서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의 내러티브 기사와 오랜 시간 취재해 심층 분석하는 탐사보도가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제작 기간이 길고 인력이 많이 필요해 신문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온라인에서는 인터랙티브 기사가 대두하고 있다. 기사와 함께 음악, 영상, 반응형 웹 등을 접목해 기사의 전달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형식이다. 최근 〈뉴스타파〉에서는 기존의 뉴스를 젊은 감각으로 재해석한 영상을 제작해 인기를 끌고 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예언자 일보〉가 아닌 이상 신문은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영역이다.셋째, 기회비용이 너무 많다. 재미없어도 일단 참고 읽는다고 치자. 신문을 한 번 집중해서 정독하려면 두 시간에서 세 시간이 소요된다. 시간과 집중력은 한정된 재화다. 차라리 그 시간에 페이스북을 하는 게 낫다. 이름 없는 언론사에서 쓴 기사도 내용만 좋다면 페친들이 타임라인에 물어다 준다. 온라인에서 뉴스를 소비할 곳은 널렸다. 조금만 익숙해지면 각 언론사의 좋은 기사만 쏙쏙 빼먹을 수 있다. 스크랩하기도 편하다. 특정 이슈에 대해서는 포털에 검색만 하면 수많은 언론사에서 쓴 기사와 비교 검증할 수 있다. 얼마나 편리한가. 신문 하나 보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건 백수나 할 짓이다.모바일 중심 뉴스 공급전략 필요독자들은 종이에서 디지털로, 모바일로 옮겨가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이미 디지털 혁신을 넘어서 모바일 중심 전략을 도입하고 있다. 아무도 안보는 종이신문은 그 자체로 공해다. 유엔미래보고서에 따르면 어차피 2030년 안에 신문 자체가 사라진다. 이왕 없어질 신문이라면 빨리 없애고 다음을 준비하자. 그래야 나무에게 덜 미안할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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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03 23:02

기승전'나' : 나를 위해 살기

부모로부터 독립은 스스로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한다는 뜻이다. 이는 노동자로서의 삶을 시작된다는 의미다. 나는 현재 독립 5년차며 노동자 5년차다. 고민이 아주 많다. 대학을 다니며 부족한 자취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했던 아르바이트는 ‘어떤 직업을 택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갖게 했다. 하루 10시간씩 빌딩 지하에서 쌀국수를 삶거나, 논술 학원 사무보조 등의 일은 나의 주말과 방학을 불행하게 했다. 돈 말고는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아르바이트는 가혹했다. 일의 목적은 기승전'돈'그러나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받지만 시민단체 인턴이나 무급이라도 자원활동가로 배우는 일은 즐거웠다.(물론 시민사회단체의 박봉과 강도 높은 업무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할 일이다.) 무엇보다 적은 돈으로 즐겁게 사는 자기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이러한 과정이 나를 전주로 오게 했고 ‘청년몰만들기’ 매니저로 일하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는 온갖 잘사는 방법들이 넘쳐난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도 많고, 텔레비전과 인터넷에는 성공한 사람들의 조언이 쏟아진다. “노력하라 기회는 많다!”근데 왜 내 주변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많은 시간을 일에, 자기계발에, 오프라인 온라인을 넘나들며 관계를 맺고 정보를 주고 받는데도 허덕이는 사람이 많을까. 노동의 목표는 오로지 돈을 얼마나 버는가 일까?에너지가 있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사실 날씬하다거나 얼굴이 예쁘다는 소리를 더 듣고 싶지만, 타고 난게 미인은 아니니 돈과 시간을 들여야한다. 적당히 만족하고 산다. 모두가 이나영이 될 수 없다. 더 예쁘게, 더 행복하게. 기준은 ‘다른 사람보다 더’이다. 하지만 익숙하다. 부모님과 선배들도 그렇게 살고 있다. 사람구실하고 살려면 차곡차곡 돈 모으고, 차 사고, 결혼 하고, 집 사고. 뭐 하고, 뭐 하고….청년에게 권해지는 도전정신, 자율성 등이 불편한 이유다. 정해진 프레임 안에서만 가능한 자율성. 예를들면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니까 하는게 낫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면 하든 말든 알아서 정하라고 해야지 하는게 낫다니.선택은 할 수 있지만 이 안에서청년몰을 만드는 과정은 끊임없는 조율의 과정이었다. 공간을 꾸리고 그 속에 관계를 만드는 것은 늘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내포한다. 우리의 롤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정해진 시스템이 있을리도 없었지만, 짜여진 계획대로 움직였다면 지금의 청년몰은 없었을 것이다. 청년몰은 단순한 쇼핑몰이 아니다. 내게 있어 그곳은 독립한 노동자로서 적당한 벌며 어울려 즐거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 공간이다. 그 속에 있는 저마다도 각자의 삶으로 스스로와 다른 청년들, 그리고 기성세대에게 다른 기준을 증명하고 있다. 서로에게 귀한 존재다. 하지만 청년몰도 답은 아니다.여전히 나는 결혼하지 않는 삶이 가능할까, 경쟁하지 않는 삶이 가능할까, 일과 놀이가 일치하는 삶이 가능할까 등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기준에 만족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열심히’는 아니지만 ‘꾸준히’ 찾아다닐 생각이다. 아마 긴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조상들은 먼 길 떠날 때 족삼리 혈에 침을 꽃았다던데 내 걸음에는 함께 할 친구들이 많으면 든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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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27 23:02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뒤에는

어느덧 전주에 온지 4년차에 접어들며 우주계란이라는 작은 책방을 운영한지도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많은 곳에서 청년들의 성공이나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 아직 성공도 실패도 아닌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행복도 좌절도 덤덤히 받아들여흔히들 말하는 성공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저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해왔던 것 같다. 그러나 결국 내 목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이 가게를 계속 운영할 수 있을 정도만이라도 벌고 싶다. 솔직히 누구나 예측할 수 있듯이 책을 팔아 돈을 번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래도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가?시작은 누구라도 그렇듯 “좋아서 시작했습니다.”였지만 결국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잖아.” 라며 자기위안으로만 견디기에는 이미 많은 시간들이 지났다.초기에는 자기위안의 과정을 겪는다. 그래,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돈은 벌지 못해도 괜찮아. 다음에는 사회구조에서 문제를 찾는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질 수 없지. 그 다음단계에는 자기혐오를 시작한다. 페이스북이든 주위에서든,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평가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아직도 완벽하지 못한 스스로를 괴롭히게 된다. 그렇게 자신조차 자신을 탓하며 본연의 내 모습을 보여주면 거부당할까 두려워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이런 여러 단계들을 거치며 남을 위해 살아왔던 내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묵인해왔다. 남들에게 내 상황에 대해서 꽤 괜찮은 척 거짓말했던 일들을 되돌아보며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 사람들은 대개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행복했던 적도 많다. 처음 잡지를 내게 되었을 때의 설렘이나, 그 잡지를 읽고 공감해준 사람들이 생겨날 때, 우주계란을 오픈하고부터 2년 동안을 함께해오고 있는 심야독서단, 가게를 옮길 때 마다 매번 찾아와주는 사람들, 모두 가게를 운영하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계획했던 일들이 한 번에 바뀌지 않거나 마음대로 실행되지 않을 때에는 행복만큼이나 큰 좌절을 느낀다. 홍보에 나름 신경 썼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았을 때, 처음엔 부끄러웠던 것 같다. 그런 일도 몇 번 겪다보니 이제는 새삼 부끄럽지는 않아하며 그 시간만큼은 덤덤히 해야 할 것들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믿을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결과물이 비록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에 닥쳤을 때 순간의 불안감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안 좋은 결과를 만들지 않을 만큼 중요한 것은 그 결과에 닥쳤을 때의 태도이다.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며 실망하며 나 자신을 괴롭히는 시간을 지나 이제는 하루에 몇 명 찾아오지 않는 가게이지만 그래도 매일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린다.하루하루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나는 아직 과정에 놓여져 있다. 일년 차, 이년 차를 지나서도 처음과 같이 계속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라는 문제는 언제나 함께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두려움에 자책하며 문을 닫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는 하루하루를 지치지 않고 꾸준히 살아가고 싶다.△신재연 대표는 호서대 문화기획학과를 졸업했고 독립출판물서점 우주계란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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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20 23:02

변화의 한걸음

처음 길거리로 스트리트 최면을 하러 나왔을 때의 일이었다. 내 나름대로 생각하길 전주한옥마을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장소이기 때문에 새롭거나 신기한 체험에도 쉽게 참여할 것 같았다.되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여름방학 시즌이었고 한옥마을은 전국에서도 유명한 관광지였기 때문에 우글우글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그룹을 향해 접근하려 하던 순간이었다.그 순간 내게 찾아온 것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사람들과의 거리는 몇 걸음 되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이라도 처진 것처럼 나는 그 몇 걸음을 떼지 못했다. 아직 딱히 거절이나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을 경험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마치 내 몸이 아닌 양 이상한 기시감이 들기 시작했다. 입술이 바짝 말라 와서 나도 모르게 몇 번이고 입술을 핥았다. 준비한 멘트를 이야기하려고 목소리를 내보려 했지만 내 목소리는 목구멍 밖으로 간신히 기어 나오는 정도였다.외국 최면가들이 자신의 최면 강좌에서 이야기하던 다른 사람들에게 접근하는데 느끼는 두려움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새로운 체험을 찾아 핸드폰을 검색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눈에 띄었지만 마음속으로 나는 한 바퀴만 돌고 와서 저 사람들에게 스트리트 최면을 시도해보자, 라는 변명만 늘어놓으면서 끝도 없이 한옥마을을 걷기 시작했다.돌고 오면 당연히 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계속 여러 가지 이유를 만들어 내면서 한옥마을을 걷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스트리트 최면을 하려 나와 장장 6시간 가까이 한옥마을을 걷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이미 주위가 어두워졌기 때문에 다음에 나와 다시 도전하자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마음속에서는 오늘 아무 말도 못 건 것에 대한 변명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던 그 순간 갑자기 이대로 집에 가면 영영 다시는 거리에서 내가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다른 상황에서도 마음속으로 많은 변명들을 만들었다는 게 떠올랐다.떨리는 심장을 참으며 눈앞에 보이는 커플을 향해 여러 가지 토를 달지 않고 앞에 다가갔다.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커플들에게 내 소개를 하고 준비해온 루틴대로 최면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실패를 했지만 마음속에서 그림자들이 만들어내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커플들은 굉장히 재밌게 체험을 받아들였다.보이지 않는 장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후에도 물론 많이 주저하긴 했지만 나는 계속 한옥마을과 전주거리에서 스트리트 최면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어느덧 유튜브에서 외국 최면가들이 보여주었던 것을 나 스스로도 사람들에게 체험시켜줄 수 있게 되었다.두려워 말고 첫발 내딛어야되고 싶은 모습이 생겼을 때 나는 새로운 테크닉을 익히거나 도구를 사면 단 하루 아침에, 아니면 일주일 만에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과거의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게 된 지금 볼 때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은 어떤 새로운 외국 최면가의 테크닉도 아니고 도구들도 아닌 그 때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변명에 넘어가지 않고 옮긴 몇 걸음 덕분인 것 같다. 사실 수많은 이유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쉬운 일지만 되고 싶은 내가 되기 위해 내딛는 몇 걸음은 옆에서 보는 것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나는 항상 이야기한다.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 첫 걸음을 내딛으라고 말이다.△이태용 씨는 전북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전주한옥마을 등에서 즉석 최면 공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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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13 23:02

동성애 반대하는 친구와 절교해야 하는 이유

나는 얼마 전에 서울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나는 동성애 혐오발언을 쏟아내며 행사를 방해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극렬한 혐오감정을 느꼈다. 그 결과 나는 앞으로 동성애에 반대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과의 모든 관계를 차단하기로 다짐했다. 아래에 그래야만 하는 이유 다섯 가지를 내 주관대로 정리했다.타인의 연애에 대한 오지랖첫째, 이들은 오지랖이 쓸데없이 넓다. 동성애자건 이성애자건, 남이 연애하는데 왜 끼어드는가? 타인의 연애는 찬성하고 반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야, 네 애인 별로다. 헤어져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무례한 발언인지 모르는 것이다. 기본적인 배려심도 없으면서 삶 곳곳에 간섭하려드는 오지라퍼는 내 인생에서 물러가라!둘째, 편견에 가득 차있다. 동성애 반대론자의 주요 근거는 동성애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이다. 그 주장에 따르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연애는 가치가 없다. 당장 불임부부의 결혼을 불법으로 만들어야겠다. 섹스리스 부부 역시 죄악이니 매월 섹스일지를 정부에 신고하도록 해야겠다. 사람이 무슨 애 낳는 기계인가? 연애와 결혼의 목적이 출산이라고 누가 정했나? 자기가 정해놓은 세상에 갇혀 남의 행복을 멋대로 잣대질하는 꼰대도 물러가라!셋째,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동성애 반대론자들은 일반적으로 동성애자 친구가 없다. 그래서 잘 모르니까 반대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왜 믿을 수 없는 사람일까? 생각을 해보자. 세계 인구의 15%가 동성애자다. 이 말은 곧 친구 열 명 중 한 명은 동성애자라는 뜻이다. 아닌가? 자기 주변엔 그런 사람이 없나? 그건 본인이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다. 입 싼 친구에게 미쳤다고 누가 커밍아웃을 할까?넷째, 극단적인데다 변태다. 연애=섹스라고 생각한다. 항문성교 웬 말이냐!류의 슬로건을 보면 추잡하기 그지없다. 연애엔 정신적 사랑도 있고 가벼운 스킨십만 하는 사랑도 있다. 이 들의 상상력은 너무 하드코어하다. 이들은 지나가는 커플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난 이들에게 내 애인을 보이는 것조차 꺼려진다. 이들이 상상하는 걸 생각만 해도 정말 불쾌하다. 또라이+변태는 친구가 아니라 환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종류의 동성애 반대론자는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다섯째,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동성애가 선천적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세상에 가득한데,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특히 종교인이 문제다. 성경에서 동성애가 어떻다고 쓰여 있는 게 무슨 상관인가? 모든 사람이 교회 다니는 것도 아닌데 성경을 증거로 들이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런 얘기는 교회 안에서만 하라. 굳이 밖에서 하려면 제정일치 사회인 중동에 가서 하라. 대통령 각하도 흐뭇해할 것이다.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어떤가? 이 글을 읽고 나니 어이가 없거나 억울하고 욕지기 나오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동성애 반대론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동성애자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이것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차별받고 고통받고 살아왔다. 그러니까 이것 하나만 기억해달라. 당신이 차별받기 싫으면, 남을 차별하지 말라. 당신이 누군가를 혐오하지 않으면 그 누군가는 심지어 당신을 사랑하기까지 한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정상석 이사장은 전 전북대 신문사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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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06 23:02

청년 CEO의 선물 '성장통 5가지'

기업을 만들어서 운영한지 7년째 되는 해이다. 온몸으로 세상에 맞서도 무너지지 않을 ‘청년정신’이 깃든 나이였고, 확고한 가치관으로 세운 뜻을 이루기 위해 조직을 경영해야 하는 ‘CEO’ 역할이 주어진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조직 경험이 없었고, 아이템만으로 창업을 시작했기에 기업을 운영하는 일은 어렵게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기업을 대하는 태도부터 여러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최근에 창업에 도전하는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경험을 정리해서 편지를 쓰고 싶었다.하나. 칭찬받는 일은 줄어들고, 사과하는 일은 늘어요.- 시작할 당시엔 젊은 나이에 창업했다는 도전적인 행동만으로도 주변으로부터 많은 응원을 듣곤 했어요. 곧, 시간이 지나고 ‘열정’이 아닌 ‘성과’로 증명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모든 일의 결과를 책임져야 해요. 기업에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면 성과를 낸 직원에게 칭찬을 받게 하고, 기업에 망측한 일이 생기면 CEO는 총 책임자로서 고개 숙여 사과를 해야 하는 일이 당연해져요. 둘.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어려워져요.- 막연한 아이디어에 고집을 부리며 그렇게 일이 시작 돼요. 수익모델도 없고, 어디에 팔 것인지, 누가 살 건지도 모르니 항상 배고플 수밖에 없었죠. 기업의 초반에는 주변에서 시키는 일을 하면서 한달 한달을 버티는게 최선이었어요. 1년, 2년을 버티다 보면 인맥, 전문성, 노하우가 생기면서 우리만의 색깔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분명 오게 돼요. 이때 더 큰 고민은, 기업의 수익금을 어떻게 사용할 건지 선택해야 하는 거예요. 수익금을 직원의 보너스, 회사 홍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데 활용할 수도 있어요. 어떻게 돈을 버느냐보다 ‘어떻게 돈을 쓰느냐’의 결정이 기업의 미래에 중요한 요인이 되는 건 확실해요. 셋. 내가 잘난 것보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많아져야 행복해요.- 새로운 생각, 새로운 도전을 하는 톡톡 튀는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만들고 일을 시작하죠. 근거 없는 잘난 척이 처음에 팀원들을 모으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에 한계를 느낄때가 올 거예요. 이때 CEO는 팀원들을 믿어주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잘난척쟁이로 만들어야 해요. 넷. ‘마음’ 써야 하는 일을 ‘돈’ 쓰는 일로 대신 할 때도 많아요.- 가끔씩은 고생한 팀원들에게 맛은 없었지만 장보고 직접 요리를 했어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땐 작은 손편지를 주면 엄청나게 좋아해요. 별것도 아닌데 ‘마음’을 쓰는 작은 일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예요. 시간이 지나고 일과 사람이 많아지면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 줄어들어요. 얼굴 보면서 밥 먹을 시간이 없으니 회사카드로 각자 해결해요. 감사한 일은 손편지 대신 돈이 담긴 봉투로 대신해요.다섯. 매출이 많은 회사보다, 신뢰가 큰 회사가 부러워요.- 잘되는 벤처기업들을 만나면, 무슨 아이디어인지, 직원은 몇 명인지, 매출은 얼마인지 듣고 부러울 때가 많아요. 하지만 매출이 크다고 해서 꼭 튼튼한 기업은 아니었어요. 기업의 최고 자산은 사람과 사람으로 연결된 신뢰라는 걸 매번 확인해요. 회사를 방문했을 때 직원들이 생글생글 웃고 있고, ‘주인은 CEO가 아니라 나야’라고 자신감 넘치는 구성원들이 있는 곳이 정말 튼튼한 기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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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24 23:02

소탐대실

어느새 한 학기가 끝났다. 이번 학기의 시작은 이전 학기들과는 조금 달랐다. 기성회비 폐지, 그에 따른 등록금 고지서의 변화였다. 항상 등록금 고지서에 보이던 기성회비란 글자와 그 옆에 적힌 액수는 올해 그 이름은 사라지고 액수는 수업료 속에 포함됐다. 더불어 등록금은 ‘사실상’ 인하돼 작년과 비슷한 등록금을 준비하면 됐다. 그 당시 학생 입장에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었다.하지만 개학 후 학교 곳곳에서 듣게 되는 상황들은 참담했다. 각종 예산은 우후죽순 삭감됐다. 학교에 돈이 없다는 이야기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오르내린다. 교수, 교직원에게 지원되던 예산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작년까지는 존재했던 학생지원 프로그램들이 이번 학기에는 그 수가 줄어들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몇몇 해외지원 프로그램들이 곧 사라진다는 말이 돌고 있다. 실제로 선발인원이 작년에 비해 줄어든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학생들은 차라리 등록금을 조금 더 내더라도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줄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몇 년 전부터 전국의 많은 대학생들이 반값등록금을 외쳤다. 학생들의 외침으로 높은 등록금은 사회문제로 인식됐고 등록금 인하, 국가장학금 확대, 기성회비 폐지 등이 진행됐다. 교육부는 국가장학금 2유형, 교육부에서 진행하는 사업 선정 등에서 불이익을 주며 대학에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이런 변화 속에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사립대와 국립대의 차이이다. 한 학기 등록금이 500만 원을 훨씬 웃도는 사립대학에 비해 국립대는 그에 절반도 되지 않는다. 전북대의 경우 인문·사회계열은 170만 원 정도, 공학계열은 230만 원 정도이다. 그 차이는 서울 사립대와 지방 국립대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아마 지방 국립대 학생들 중 반값등록금을 원하는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감히 추측한다.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하나의 이유는 액수 자체의 문제보단 학생들이 낸 등록금을 제대로 쓰지 않는 경우, 필요 이상의 등록금을 내야 하는 경우이다. 사학의 재정 비리로 많은 등록금이 헛되게 쓰이는 경우가 곳곳에서 보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지금의 등록금 인하 정책은 모든 대학이 등록금을 인하해야 하고 그에 대한 운영감사는 크게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더불어 등록금 인하분에 대한 국가의 국립대 지원액은 늘지 않고 있다. 더불어 국립대 기성회비 반환 소송으로 대학의 재정 자율성 문제와 소송 결과에 따른 보상 문제로 국립대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예산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학이 언제부턴가 지성을 추구하는 학교보다 성과를 중시하는 기업처럼 보인다.유럽의 저렴한 등록금을 동경하며 우리나라도 유럽을 지양해서 대학 등록금을 낮춰야 한다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등록금을 대신할 예산이 준비되지 않은 지금의 상황에서 계속해서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라 생각한다. 이렇게 등록금을 계속 낮춘다면 그 피해는 대학과 대학 구성원들 모두에게 갈 것이다. 지금의 등록금 인하는 과연 옳은 방향일까?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잃게 되지는 않을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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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17 23:02

비상식적 상식들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는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열 손가락 지문날인을 강제하는 것이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헌법재판소는 판결문에서 법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합헌 판결을 내리는 ‘곡예’를 부렸다. 강제 지문날인 제도에 별 문제가 없다는 선입견을 갖고 판결했다는 의심이 드는 부분이다. 그나마 3명의 재판관이 ‘모든 17세 이상의 국민에 대하여 열 손가락 지문 전부를 날인하도록 하는 것은 필요한 범위를 벗어난 것’,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라고 지적한 것이 위안거리일까.만 열일곱 살 때 주민등록증을 만들러 가서 순순히 지문을 찍은 것은 내가 각별히 후회하는 일 중 하나다. 이번에 강제 지문날인이 위헌이라고 재판을 냈던 청구인들은 모두 지문날인을 거부하여 주민등록증 없이 살고 있는데, 그들이 겪는 불편을 알면서도 나는 가끔 그들이 부러워지곤 한다. 나는 신분증을 만들러 가기 전엔 열 손가락에 잉크를 묻혀가며 지문을 날인해야 하는 줄도 몰랐고, 이걸 왜 하는지 어떻게 관리되는지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엉겁결에 시키는 대로 날인을 했던 것이다.지문날인을 했을 때, 기묘한 불쾌감이 등줄기를 쓸고 지나갔다. 이 나라는 내가 언젠가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그때 범죄 현장에 지문을 남길지도 모르니까 내 지문을 전부 다 보관해놓겠다고 하는 건데, 대체 내가 왜 그런 의심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만약 국가가, 혹은 지문정보가 유출돼서 다른 사람이 이를 악용하거나 나에게 누명을 씌운다면 큰일일 것이다. 비밀번호야 바꿀 수라도 있다지만, 지문은 떼어낼 수도 바꿀 수도 없다. 도대체 왜 큰 반발이 없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지문날인을 하는 것을 당연한 상식처럼 여 있다. 그래서 국가가 지문정보를 수집해가는 것의 문제점은 사소한 것으로 생각되고 그 필요성이나 효용성은 과대 평가된다. 수사나 치안, 신분 확인 등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신분증을 만들 때 열 손가락 지문 정보를 강제로 받는 나라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전 국민 지문정보’가 없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한국보다 경찰이 수사를 더 못할까? 신분 확인을 특별히 못할까? 설득력이 없는 이야 다른 많은 나라 정부들이 불쾌해 할 이야기다.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익숙해져 있는 ‘상식’이 꽤 비상식적이고 보편적 기준에 어긋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중고등학교 대부분에서는 교복을 강제로 입히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교복을 없애면 큰 문제라도 생길 것처럼 걱정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교복을 강제로 입히는 나라들이 오히려 소수이며, 자유롭게 사복을 입어도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교사의 정치활동도, 세계적으로는 교사의 정당 가입이나 정치활동이 보장된 경우가 많다.단지 익숙하다는 이유로 상식을 그냥 받아들여선 안 된다. 상식이 정말로 일반적이고 당연한 것인지 따지려면 한 걸음 물러나 거리를 두는 게 필요하며, 나아가 더 보편적인 기준을 참고해봐야 한다. 나는 자신의 상식이 혹시 ‘비상식적’인 것은 아닌지 의심해보는 것이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기에, 보통의 시민들보다도 한층 더 ‘익숙한 상식’을 넘어 인권과 헌법의 기준에 따라 판결해야 할 헌법재판소의 그렇지 못한 행보들이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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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10 23:02

청춘은 무슨…

나는 청춘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 않는다. ‘청춘은 OO다.’ 라고 스스로 정의하기도 아직은 낯 간지럽고, 실제로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그 단어를 꺼내는 것 또한 낯설다.그래서 처음 ‘청춘예찬’의 글을 제안 받았을 때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누구에게 글로서 가르침을 주거나 혹은 위로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도 아니고, 심지어는 나도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한번씩 막막하니까.어쨌든 글을 쓸지 말지 결정하기 전에 여러 칼럼들을 쭉 읽어보는데, 어느순간 짜증이 솟구쳤다. 청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그 많은 사람들 중 아무도 그들의 일상을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뜬 구름 잡는 얘기를 길게 늘어뜨려 ‘우리는 OO 해야 한다.’ 같은 정치적인 이야기로 선동하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는 화를 한참 식힌 후에, 그런 부류의 글들을 몇 번 더 읽고 나서야 결국 글을 써보는 것으로 결심했다. 대신 나는 별 생각없이 그냥 쓰고 싶었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살면서 옆에서 남의 인생에 훈수를 두는 이들이 득실거릴 텐데, 억지로 설정해서 공감대를 얻으려고 하거나, 글을 보는 이들에게 딱히 교훈 같은걸 주고 싶지 않았다. 여행을 가면 어딜 다녀왔는지에 대해 썼고, 친구들이 평소에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그냥 그것에 대해 글을 쓰곤 했다.부끄럽지만 ‘청춘’은 이런 것이 아닐까? ‘어떻게 살아야 한다.’ 라는 강박적인 목표의식이나 꿈보다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사는것. 훈수를 줄 사람보다는 그냥 지켜봐 줄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난 흔히들 말하는 젊을 때 공부 안 하면 늙어서 고생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많이 놀아본 사람이 늙어서도 재밌게 살 것이라고 믿는편이지. 하루라도 더 젊을 때 최대한 많이 보고 듣고 노는 게 인생의 목표까지는 안되더라도 미덕까지는 삼을 수 있겠다. 필요 이상의 지나친 긍정으로 무슨 말을 들어도 피로해지는 요즘 나름 괜찮은 삶이었다고 만족을 하던, 땅을 치고 후회를 하던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편이 심적으로 좀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이제 ‘꽃다운 청춘’ 같은 말은 이 글을 쓴 첫 문단에 쓴 것과 같이 낯간지러운 낱말이 되었고, 오히려 청춘앞에 다른 말을 붙여야 한다고 하면 그건 ‘불타는’ 이 되어야할 것 만 같다. 청춘의 시간을 지나온 부모님 세대의 어른들은 벼랑 끝에 서 있고 그들이 부럽게만 바라보는 우리 또한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기 보다는 언젠가 그 벼랑 끝으로 몰릴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여러 기기들 처럼 사는 것에 ‘포맷’ 이라는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턱도 없는 얘기… 이러니 애초에 내 말은 하고싶은 것 하고, 살고 싶은대로 살자는 얘기다. 이제는 누군가 말을 할때가 되지 않았나? 청춘? 청춘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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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03 23:02

넌 스펙쌓니? 난 세상을 바꾼다!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는 한 대학생의 경험입니다. 평범한 대학생활 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일을 향한 도전과 설렘이 몇 년 뒤 하나의 기업이 되었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수 있다는 것이 이상적인 삶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그것이 확실히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맞는지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청춘들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all-in해야 합니다. 이 대학생은 목표가 적힌 계획서 한 장으로?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대학로를 젊은이들의 문화로 바꿔보지 않을래?” 말을 걸었죠. 물론, 선뜻 함께하겠다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마음만큼은 함께 응원해 주는 모습에 용기도 얻고 막연하게만 느끼던 일을 희망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창업이라는 거대한 계획과 비즈니스 플랜이 아닌, 주변에 불편함과 더 나은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과정에서 기업은 자연스럽게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물음표를 가져야 할 것들이 참 많았죠. ‘내가 생각하는 우리동네는 어떤 모습일까?’ ‘서울과 지방의 격차, 새롭게 변화되는 상권들 속에서 침체되는 곳, 학생이 이용하는 곳이지만 단순하게 자리를 잡은 술 문화!’그가 가진 “?”물음표였습니다. ?처음으로 ‘상가들 간의 협력’을 위한 쿠폰을 만들었습니다. 2개월 동안, 100개의 가게를 찾아다니면서 대부분의 거절을 당했지만, 1곳의 가게를 최소 7번 찾아가는 배짱으로 사장님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거절을 당하면서 그 이유를 듣게 되었고, 계획서를 수정하여서 다시 찾아간 것이 결국은 사장님이 원하는 아이디어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26개를 쿠폰가맹점으로 만들고, 다음 달엔 39개 가게로 증가했는데, 사장님들이 먼저 문의를 하시곤 했습니다.동네 사람들과 만남이 잦아지면서 알게 된 문제점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는 국가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시청에 찾아갔지만, 5년 뒤 10년 뒤 계획들 뿐이었습니다.“안된다. 어렵다”라는 말을 계속 들을수록, ‘직접 실행 가능한 것이라도 찾아서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라는 오기가 생겼습니다.?통행이 불편했던 길에 버스를 만드는 일도 했습니다. 학생 5000명 가게 100곳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는 80% 긍정적 반응을 했습니다. 상가에서는 10만 원씩 걷어서 버스요금을 마련해 주신다고 하였으나, 막상 시작하려니 한 푼도 모이질 않았습니다. ‘이 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자’라며 500원씩 버스요금을 받고 버스가 시작되었고 6년간 운행되었습니다.장사가 안되는 가게를 컨설팅, 공원의 화장실에 벽화, 공영주차장과 상가 연결 쿠폰, 길거리에서 소규모 공연, 마을 주민을 위한 축제 등도 진행하였습니다. 쿠폰, 버스, 공연으로 시작한 작은 활동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활동들이 모여서 지역을 바꿔나가고 있고 누군가에겐 꿈을 찾아주게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작은 것부터, 돈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이 주변에 많습니다.당신이 바꾸실 세상을 어떤 모습입니까? 누구나 자신의 전문성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당신의 재능으로 세상을 얼마나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지 기대 해봅니다. 저는 작은 마을과 지역들을 행복하게 바꿔가는 일로써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다시 한번, 당신이 바꾸실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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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27 23:02

좋았던 추억을 기리며

나는 지금껏 딱 한 번 해외에 나간 적 있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해외봉사로 2주간 네팔을 다녀왔다. 봉사활동을 한 곳은 네팔사람들 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 네팔 남쪽에 위치한 어느 시골마을이었다. 그 곳에 위치한 국립학교에서 일주일 정도 봉사활동을 했다. 이후 포카라에 잠깐 머물고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KOICA의 주최로 이뤄진 한국문화축제에 참여했다.네팔 곳곳의 도시를 다니며 든 생각은 ‘우리나라의 20~30년 전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였다. 서울과 부산보다 가까운 거리를 10시간 넘게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도로는 산을 따라 구불구불 나 있었고, 그 옆으로는 아찔한 절벽이 있었다. 우기에는 산사태로 종종 고속도로가 막혀 몇 십 분을 도로 위에서 꿈쩍도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 시내 곳곳에는 동물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생활하고 있었다. 저녁에는 숙소에 전기가 끊기는 경우가 종종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주변에 불빛은 그리 많지 않았다.그 덕에 네팔 곳곳에는 멋진 풍경들이 보였다. 저녁이 되면 하늘과 산의 경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암흑이 펼쳐지고 그 속에 별빛과 불빛이 어우러져 있었다. 낮에는 높은 산맥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역사를 지닌 문화유산들은 도시 곳곳에서 네팔만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 속에는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네팔 사람들이 있었다. 이방인에게 따뜻한 찌야를 내어주는 이들에게 온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첫 해외경험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이런 추억이 이젠 기억과 사진 몇 장으로 남았다. 몇 주 전, 네팔은 강진이라는 자연의 재앙 앞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2년 전 내가 보았던 네팔의 모습은 지진으로 사라졌다. 두 차례의 지진으로 8500명 이상의 사망자와 3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는 정확하게 파악된 수치가 아니기에 실질적인 피해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과 건물, 도로, 문화재 등 네팔 곳곳에 비극이 일어났다. 더불어 곧 시작될 우기로 피해복구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들을 돕기 위해 파견된 구조대원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열악한 상황 속에 피해복구는 쉽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진 피해가 발생한 지 몇 주가 지났음에도 구호물품 하나 못 받은 오지의 마을들이 있다.네팔의 대참사는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는 아니었다. 네팔은 지진이 발생하는 지형으로 과거에도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겪은 적이 있는 나라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지진을 대비하기란 쉽지 않을 일이었을 것이다. 방 한 칸에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이들도 있었고, 교육봉사를 하던 중 한 반에 지우개를 갖고 있는 아이가 하나 혹은 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진 후 네팔을 찾는 손길이 지진이 일어나기 전부터 있었다면 피해를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구호를 위한 인력과 물자를 네팔로 보내고 있다. 지진 이전의 네팔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런 관심이 끊이지 않길 바란다.네팔, 좋은 추억을 안겨준 나라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 때 그 모습을 이젠 볼 수 없게 됐다. 타국에서 그들의 고통을 느낄 수는 없지만 그들이 하루 빨리 지금의 아픔을 극복하고 이전의 온정을 다시 되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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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20 23:02

그 사소한 두발자유

그때 담임교사는 나에게 가위를 달라고 했다. 아마 내가 앞자리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에이 설마 진짜 자르겠어.’ 망설이면서도 교사의 말을 잘 거역할 줄 몰랐던 나는 가위를 건넸다. 싹둑. 구레나룻이었던가 앞머리였던가. 길고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았던 어느 학생의 머리카락이 그렇게 잘려나갔다. “이 길이 맞춰서 내일까지 잘라와.”라며. 평소에는 온화한 담임이었고 설마 진짜 자를 줄은 몰랐다고 해도 비겁한 변명일 것이다. 고2 때의 일이었다.그 이듬해인 2005년, 두발 자유화를 요구하는 서명운동과 거리집회 등이 일어났다. 두발자유는 인권이며 머리 길이를 몇 cm까지 허용할지 말지 그런 식으로 타협할 문제가 아니라고 외쳤다. 안전과 위생을 위해 작업복을 갖춰야 하는 특별한 일에 종사하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의 머리카락이나 용의복장을 규제하는 것에는 아무런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다. 두발자유가 헌법상 기본권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공식 판단이 나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딱 10년 전, 봄기운이 짙고 조금 더운 5월이었다.10년간, 두발자유를 이야기해오며 마음속으로 내가 가위를 건넨 그 순간을 돌이켜보곤 했다. 내가 다르게 할 수 있었을지, 과연 어떻게 했어야 했을지. 지금도 그때 교사의 폭력에 협조한 것에 대해 머리카락을 잘렸던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 그가 이 글을 읽을 가능성은 얼마 없겠지만 우선 사과부터 전하고 싶다.다니던 학교가 특별히 두발규제가 깐깐했던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두발규제가 있는 것만으로도 문제는 많았다. “머리카락 같은 사소한 것에 매달리지 마라” 같은 소리를 들으면 화가 났다. 왜 그 사소한 것 때문에 나는 숨 막히는 기분을 느끼고 단속과 폭력을 당하며 몇 년을 보내야 한단 말인가. 왜 그 사소한 것 때문에 나는 가위를 건넨 죄책감을 안아야 했는가. 그게 그렇게 사소한 것이라면 그냥 두발 자유화 좀 하면 되는 거 아닌가.“제12조(개성을 실현할 권리) ① 학생은 복장, 두발의 길이·모양·색상 등 용모에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③ 학교의 장은 교육 목적상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학교의 규정으로 제1항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전북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이다. 다른 학생인권조례와 달리 두발규제를 폭넓게 허용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그 사소한 두발규제에 비상한 집착을 보이는 대한민국 교육부 덕분이다. 교육부는 2012년, 학교가 용의복장규제를 학교 규정으로 정할 수 있다고 시행령까지 개정해가며 학생인권조례에 훼방을 놓았다. 민폐, 진상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는 짓이었다. 솔직히 나는 두발자유를 제대로 담지 못한 전북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조례”라고 부르기가 망설여질 정도다. 한시 바삐 고쳐야 할 문제점이다.머리카락이나 복장처럼 개인이 알아서 할 부분을 함부로 규제하는 악습을 없애려 하는 것은,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것은 사소한 것이 아니다. 두발자유는 한국 사회가 중고등학생을, 청소년을 신체와 사적 영역까지 모두 통제해야 할 관리대상으로 보는지 아니면 존엄과 자유를 가진 인간으로 보는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상징과도 같은 문제다. 한국의 정부와 학교들이 그 ‘별 거 아닌’ 두발규제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두발 자유화가 된다면, 아마 나도 고2 때 나의 ‘사소한’ 불의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조금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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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13 23:02

세계적인 전통의상축제 한국에도 있다

24살에 떠난 첫 해외여행, 대한민국을 떠나서 도착한 낯선 나라 일본에서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불꽃놀이를 하는 하나비 축제였는데, 많은 일본인들은 전통의상 유카타와 기모노를 입고 축제에 참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전통의상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일상화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의식에 놀랐다. 또 대부분 젊은이들이 입고 있었다. 이 외에도 전세계에는 각 나라의 전통의상을 테마로 만든 축제들이 많이 있다. 독일의 옥토버페스트, 스페인의 페리아드아브릴, 일본의 하나비축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카니발 등 이 축제들의 공통점은 자국의 전통의상을 입고 사람들이 축제를 즐긴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도 한복이라는 전통의상이 있는데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전주, 또 살고 있는 곳은 전주한옥마을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한옥, 한식, 한글, 한지, 한국음악으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도시의 전주라는 곳에 우리옷 한복을 입을 수 있다면 한국속에서 “진짜 한국”을 만들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2012년, 전주한옥마을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명절에도 입지않을 정도로 낯설어져 버린 한복이지만, 한국적인 곳 전주에서 ‘한복’은 당연한 것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12년 9월 22일 전주한옥마을에서 300명의 한복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첫 번째 한복데이의 시작이었다. 2013년, ‘우리옷을 입은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진정성있는 말 한마디가 대한민국을 움직였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 한복을 입히는 기획을 하게 되었다. 2013년 9월 28일은 1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리옷을 입고 있었다.2014년 10월 04일 대한민국에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전주를 넘어 전국에서 자발적인 사람들의 뜻이 모여. 부산, 울산, 대구, 대전 5개의 도시에서 한복데이를 하게 되었다. 너와 내가 각자 가지고 있는 한복을 꺼내어 입고 각 지역의 행사장으로 와서 즐기는 인원은 1만명이 넘었다. 이 날은 대한민국에 꽃이 피었다.2015년 지금, 해가 거듭되고 참여자가 많아 질수록 더 큰 책임감이 들고 있다. 20대 위주의 참여자를 넘어서, 색동옷을 입은 아이부터 시집올 때 맞춘 한복을 입은 할머님까지 남녀노소 모두가 입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한복을 제대로 올바르게 입기는 방법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다. 댕기머리로 곱게 머리를 땋고, 구두 대신 꽃신을 싣는 것처럼.한복데이의 가치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 지역 청년들의 자발적인 도전, 시민들의 모금을 통한 예산확보, 지역의 색깔을 가진 콘텐츠, 관객이 주인공되는 축제의 재해석이 가능했다.365일 중, 한복입는 하루 ‘한복데이’를 만들기 위해 100여명이 넘는 스텝과 자원봉사자의 땀과 노력이 있었고, 3개월 이상의 치열한 기획과정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신선한 아이디어가 아닌 한옥마을 주민들을 만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함께 빛내주길 바라는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필요성을 전달하는 일이었다. 4년의 과정을 지나고 대한민국에 기적이 일어났다. 전주한옥마을을 한복 입기 위해서 찾아오는 관광지, 한복을 당연하게 입을 수 있는 도시가 되었다. 앞으로 한복데이가 바라는 바가 있다면, 축제가 아닌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길 바란다. 즐거운 시간이 아닌 국민 모두가 자랑스러운 날이 되길 바란다. 의도된 것이 아닌 사람들의 뜻이 모여 더 큰 기적을 만들기 바란다. 참여 그 이상을 넘어, 개개인들이 모두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원래부터, 당신 것이고 우리 것이었다”라는 사실이다.그동안,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에 도전하고, 누군가가 바라는 것을 이뤄낸 한복데이 기획단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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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29 23:02

청춘을 밖으로 내쫓지 마세요

어른들은 인생 조언을 하시면서 종종 이런 말씀을 하신다.“가능하다면 위로 올라가서 살아라.”지금의 상황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일자리나 생활여건 등이 여기보다 나은 곳에서 살라는 의미인 듯하다. 힘들고 즐길 것 못 즐기며 산 어른들보다 조금은 더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인가 보다. 하지만 타지로 떠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는 잘 살 수 없나? 잘 살기 위해서 나고 자라온 곳을 떠나야만 할까?’20대 청춘들이 이민계(契)를 들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복지가 좋은 나라로 이민을 하려고 고학력자들이 기술을 배워 기술이민을 준비하고 있단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머나먼 타국으로 지금껏 쌓아온 자신의 모든 것들을 두고 떠난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기사 댓글에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말들이 수두룩하다. 이곳에는 희망이나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 최대한 젊을 때 떠나 여기보다 좋은 곳에서 자리 잡고 살라고 한다. 떠나는 청춘을 붙잡는 이들은 거의 없다. 고향, 고국을 떠나는 일은 사실 새삼스럽진 않다. 당장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주변을 보면 반절 정도는 학교 혹은 직장 때문에 서울·경기권으로 올라간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직장을 잡기 위해 지역을 떠나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몇몇 친구들은 자신의 꿈은 외국에 나가 사는 것이라 말한다. 우린 그렇게 이곳을 떠나고 있다. 지방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외국으로. 지금보다 잘 살기 위해서 살던 지역을 잘 살게 만들려고 하진 않는다.고령화 사회, 저출산으로 청년층의 비율은 갈수록 줄어든다고 한다. 그나마 있는 청년들은 우리 지역, 우리나라를 떠나고 있다. 나라, 지역의 기둥이 될 청년이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붙잡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가능하다면 얼른 나가라고 등 떠밀고 있다. 과연 이게 맞는 걸까? 떠밀리는 입장에서 그저 좋지만은 않다.우리나라의 자랑 중 하나가 교육열이다. 덕분에 평균 학력 수준이 높아졌고 우수한 인력을 배출해 내고 있다. 생활 수준도 과거 몇 십 년 전에 비하면 비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늘어난 고학력자들은 일을 하려 하지만 일할 곳이 없다. 지역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지닌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나고 자란 지역을 떠난다. 열심히 키워낸 인재들이 우리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을 위해 일하는 꼴이다. 그렇게 하나 둘 씩 지역을, 나라를 떠난다.청춘을 밖으로 내쫓지 마라. 이전 세대가 힘들게 갈고 닦아 놓은 이곳에서 지금의 세대가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도록 기회를 줬으면 한다. 우리 지역을, 우리나라를 희망과 미래가 없는 곳으로 만들어 청춘들이 떠나가도록 내버려 두지 마라. 청년들에 대한 투자로 전 세대가 함께 공존하는 미래를 그려주길 바란다. 이전 세대보단 지금의 세대가, 지금보단 미래의 세대가 더 잘 사는 곳이 되도록 지역 사회를 만들어 줘라. 청년들이 이 지역을 떠나도록 길을 터줄 것이 아니라 지역에 남아 능력을 펼치며 살도록 길을 만들어 줘라. 그리고 우리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우리의 것을 너무 쉽게 놓아버리지 말자. 여기보다 나은 곳에서 새로운 터전을 잡으며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보단 나고 자란 지역에서 아는 이들과 함께 잘 먹고 잘 살도록 노력해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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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22 23:02

바로 여기 함께 있다

학교에 차별 문제를 주제로 인권교육을 갈 때면 다소 ‘짓궂은’ 일을 하곤 한다.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교육 참여자가 무언가 편견을 보이면, 나한테는 동성애자 친구도 많고 내가 동성애자일 수도 있는데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냐고 하는 것이다. 간혹 여자친구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남자친구가 있을지도 모르죠”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놀라는 사람도 있고,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 몇몇에게는 인상 깊은 경험으로 남았을 듯싶다.차별과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그것을 막연한 ‘남 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자기는 동성애자에게 별 편견은 없지만 가족이나 친구 중에 있는 건 싫다는 식의 말은 얼마나 심각한 편견을 드러내고 있는가. 그렇게 소수자들이 함께 살고 있지 않다는 듯이 대하는 것이야말로 차별이다. 분리는 종종 배제와 편견, 몰이해의 시작이 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유명한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분리정책이라는 뜻이며 “차별이 아닌 분리”라는 명분을 내걸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해둬야 한다.최근 교육부가 성교육에 대한 지침을 내놓으면서 ‘동성애에 대한 지도는 허용되지 않는다’, ‘동성애, 다양한 성적 지향, 성 소수자 등의 내용과 용어 사용은 불가’하다고 한 것 역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교육부는 논란이 될 일은 말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듯하나, 그 침묵의 의미는 지금 학교에 있는 성 소수자 학생들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다. 학교에 동성애자이거나 양성애자인 학생들 또는 나중에라도 스스로를 그렇게 정체화할 학생들이 있다고 조금이라도 상상해봤다면 나올 수 없는 지침이다.교사가 혹시라도 차별적인 편견이나 혐오를 드러내는 것을 막았다는 일면의 장점이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성교육의 내용 자체가 이성애 중심주의에 근거해서 만들어져 있기에 그 교육 속에서 동성애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다. 무지해서 간과한 것도 아니고 아예 언급을 금지시킨 것은, 성소수자들을 함께 살지 않는 존재로 보겠다고 한 것과 다름없다.정부에게는 당연히 차별금지와 교육권 보장을 위해 노력할 책무가 있다. 그러므로 성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편견을 없애고 차별을 막는 교육을 해야 한다. 동성애자인 학생들도 자신들에게 적절한 성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성애와 동성애 모두를 포함하는 성교육 내용을 보급해야 한다. 설령 그것이 지금 당장 교육부에게 어떤 여건상 어려웠다고 치더라도, 세상에는 이성애자만이 아니라 동성애자도 존재하며 이 교실 안에도 있을 수 있다는 내용쯤은 포함되어야 했을 것이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등에 대한 정보는 이야기했어야 했다. 교육부의 지침은 회피도 아니고 적극적인 배제와 차별 행위에 가깝다.어느 자리에서든 항상 그 안에 얼마든지 소수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상기시키고는 한다. 바로 여기 이 자리에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의 사람들이 함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 차별을 없애는 첫 걸음이다. 성 소수자만이 아니라도 바로 자신이, 자신이 만나는 사람이 소수자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동성애자냐고? 그 답은 다른 분들의 상상에 맡겨두도록 하겠다. 내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이 뭐든 아무런 상관도 없는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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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1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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