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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연한 이야기

사람들이 독립출판물 서점을 운영하는 내게 많이들 물어본다.독립출판물이 뭐예요?이 질문은 독립출판물 서점을 운영하는 지난 3년 내내 매번 처음처럼 들어오던 질문이다. 처음 그 질문을 들었을 때는 독립출판물은 기존의 시장에서 벗어나 각각의 개인들이 만들어 놓은 독립적인 출판물을 말합니다. 점점 시간이 지나자 좀더 짧게 개인이 만든 소규모 출판물을 말합니다. 제가 좋아서 합니다.라고 점점 답변이 짧아지게 된다. 나에게 새로울 것이 없어진 독립출판물, 그렇지만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본다.독립출판물 서점 운영하며 느낀 점독립출판을 처음 접하게 되었던 것은 서울 종로에 있던 가가린이라는 서점이었다. 워낙에 잡지 읽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독립출판물에 대한 관심들도 생겨났던 것 같다.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도서관에서 굉장히 다양한 잡지들만을 읽었던 것 같다. 과학 잡지,여행 잡지, 패션 잡지, 애니메이션 잡지 정말 취향이라고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읽는 것이 취향이었다.잡지라 생각하면 사람들이 얇은 지식이라 하며 무시하는 경향도 있는데 잡지는 보다 세분화 되고 어느 매체보다 빨리 관심사에 대한 정보들을 알 수 있었다. 세분화된 얇은 지식들이 존재하고 있는 매체이다. 그러기에 대학교 시절 어느 주관식 시험지를 받아도 내가 잡지에 읽었던 새로운 이야기들을 함께 버무려 냈기에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일본에서 살았던 시절도 지금 이렇게 작은 책방을 꿈꿀 수 있게 해주었다. 내가 살던 시즈오카의 하마마쯔시는 도쿄에서 전철로 네다섯시간 걸리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런데도 그 곳에서도 언덕배기 위에 작은 동화책 서점이 있었다. 그 곳에서 우주계란이라는 동화책을 만났다. 그리고 지금의 가게 이름으로 짓게 되었다.그렇게 내가 경험하고 느꼈던 것으로 지금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독립출판물을 파는 가게를 운영한다는 것도 새로운 것이 아닌 경험한 것들로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현재의 모습이였다.독립출판물을 만들게 된 사람들은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로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의 어찌보면 소소한 글들을 읽는 것들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그 책에 전하는 그 사람의 용기까지 보였기 때문이다. 독립출판물을 읽는 것은 잡지와 같이 정보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공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점심에 먹는 밥을 기록해서 지금의 내 모습을 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내 자신에 대해서 솔직히 써내려가야만 하는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다니 얼마나 큰 용기인가? 그것에 대한 주위사람들의 한마디, 재미있다. 혹은 재미없다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는 얼마나 단단한 책인가? 그것의 형태와 모양들이 제 각각일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책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다.개인 경험용기 쉽게 평가하면 안돼다른 사람들이 쌓아온 각각의 다른 경험들을 그리고 그들의 용기를 쉬이 평가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관계는 계속 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사람 입장이 내가 될 수도, 그들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들의 용기에 공감하고 쌓여진 내 모습도 다른 누구에게 편히 이야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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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09 23:02

골과 아웃컴

스트리트 최면을 시작하면서 내가 그린 나의 최종 모습은 미국 드라마 멘탈리스트에 나오는 주인공, 페트릭 제인과 같은 멘탈리스트였다. 미국과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흥행을 거두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어색한 단어인 멘탈리스트는 쉽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야기하자면 심리적 테크닉을 사용해서 마치 영화나 만화 속 초능력자와 같은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페트릭 제인의 캐릭터를 이루는 가장 큰 축은 아무래도 마음을 꿰뚫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콜드리딩과 최면이다. 때문에 가상 캐릭터지만 이를 롤 모델로 삼은 나 역시 가장 중점적으로 연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건 최면과 콜드리딩이다.자신의 명확한 목표 가져야심리적인 테크닉에 기반한 두 기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라고 볼 수 있다. 이루고자 하는 명확한 목표가 없다면 굉장히 뛰어난 기법이라도 대단한 효과를 보이지 못하고 헛돌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국의 최면가 제임스 트립은 이러한 목표를 골(Goal)과 아웃컴으로 분류해 설명한다. 골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최종 결과이고 아웃컴은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형태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파티에 초청받아 퍼포먼스를 한다면 파티에서 내 롤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줄 재미난 최면가이고 내 최종 목표인 골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다. 아웃컴은 이러한 추상적 목표를 좀 더 구체화해 내 퍼포먼스에 참여하는 파티 구성원의 양발을 바닥에 뗄 수 없게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최면유도를 통해 사람들이 발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모두 다 즐겁게 생각할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비약인 면이 없지않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최면 혹은 콜드리딩과 같은 심리기법을 사용할 때 명확한 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꿈과 희망에 대해서 듣게 된 자리가 올 초부터 꽤나 많았다. 아무래도 방향성 때문에 자신의 꿈을 쫓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이겠지만 정말 열정에 불타올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활동하는 모습들을 인상깊게 보았다. 사실 나는 그만큼 불타오를 자신이 없었기에 그들의 열정적인 모습이 상당히 인상깊으면서도 어느정도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끼기도 했다. 타인과 대화할 때, 그리고 그들의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SNS를 보면 열정과 깡, 악 그리고 불타오름, 뜨거움과 같이 단어들이 굉장히 인상깊게 내게 다가왔다.그리고 최근들어서 내가 느꼈던 기시감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들의 이야기에서는 골은 들을 수 있었지만 명확한 아웃컴에 대해서는 자세히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신의 영달을 넘어 같은 세대, 주위를 위한 꿈을 가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아웃컴에 대해 듣지 못해 어느정도 추상적인 느낌을 떨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근래 몇몇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결국 포기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땐 가슴 한켠에서 아쉬움이 크게 느껴졌다.결과 설정하고 확인하도록누군가는 정신력이란 무한한 자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여러 연구에 의하면 열정과 의지력이란 결국은 어느 정도 그 한계가 정해진 자원이라 어느 순간 바닥을 보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때문에 이러한 심리적 자원을 무작정 사용하다보면 결국은 지치고 포기하게 만드는 한계의 벽을 마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물질적인 여러 자원들처럼 열정과 의지 역시 세심하고 계산해서 사용해야 한다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에 대해 명확한 골과 아웃컴을 설정해두고 이에 맞춰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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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02 23:02

사업을 해도 사업이 안돼서

사업을 하고 싶었다. 총체적 노답(답 없음) 상태인 대학언론을 사업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수많은 기자가 수많은 매체에서 대학언론의 위기를 주제로 기사를 썼지만 직접 해결하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가라는 축구선수 기성용의 말과 전북대신문 편집장 시절 학교로부터 받은 부당한 탄압의 기억, 해임당한 외대학보 편집장의 눈물, 대학언론인들의 하소연을 가슴 속에 품고 2013년 2월 눈 내리는 어느 날, 서울에 올라왔다.실수 되풀이하고 사업 계획 계속 수정처음은 쾌속전진이었다. 대학언론인 캠프 기획단, 대선 후보 인터뷰 등을 하면서 친해진 기자들을 모아 준비위원회를 꾸렸다. 현장의 목소리를 중시하고 평등한 의사결정을 위해 협동조합 모델을 채택했다. 단체 이름은 대학언론협동조합. 사업 내용은 편집권 공동 대응 매뉴얼 제작, 공동교육, 대학언론인 상 제정 같은 부류의, 협회 같은 일이었다. 뜻을 같이 하고 싶다는 기자와 매체는 계속 늘어났다. 서울시청 지하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노종면 YTN 해직기자가 축하의 말을 남겼다. 당신만큼 힘들겠지만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첫 사업은 대학언론인 캠프였다. 한림대학교에서 11개의 매체, 50명의 기자가 모여 언론관과 편집권 탄압에 대응하는 법을 공부하고 토론했다. 행사가 끝나고 한참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편집권 탄압에 대응할 정답이 없었다. 정답이 있더라도 언젠간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 기존의 대학언론이다. 기자는 바뀌지만 총장과 주간교수는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노답인 줄은 알았지만 이토록 완벽한 노답인 줄은 몰랐다. 이 사업이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실패를 직감할 때 독립언론이라는 새 길을 발견했다. 독립언론은 학교로부터 분리돼 편집권의 간섭이 없는 대신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명확했다. 독립언론의 광고 영업을 대행하는 것이다. 독립언론 두 곳의 광고를 영업을 6개월간 하다가 문제가 생겼다. 한 곳이 잘못된 기사로 인해 여론의 뭇매를 맞자 폐간 후 다른 이름으로 재창간한 것이다. 나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매체들을 묶어서 무언가를 한다는 건 리스크가 크다는 걸 깨달았다.사업모델을 또 변경했다. 독립언론을 발굴하고 운영을 지원하는, 이른바 N대알리 프로젝트다. 핵심파트너는 한국외대의 〈외대알리〉다. 〈외대알리〉의 성공모델을 모든 대학에 프랜차이즈처럼 확산하는 것이다. 대학언론협동조합에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알리의 운영매뉴얼에 따라 매체를 창간해야하며 기사 저작권을 공유해야 한다. 대신 조합원들은 매체 발행비와 기자교육을 보장받는다. 초기 자금은 정부 지원사업에 선정돼 해결했다. 지금은 두 개의 알리에서 시스템을 테스트하고 있고 곧 조합원 모집에 나설 예정이다.성공, 열정 잃지 않고 실패 거듭할 능력여기까지 3년 걸렸다. 숱하게 실패했고 포기를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허송세월을 보낸 건 아니었다. 실수를 거듭하고 사업계획을 수정할수록 본질에 가까워졌다. 대학언론 위기라는 거대담론에서 대학생 알권리 보장을 위한 미디어 환경 제공이라는 구체적 방향을 잡게 됐다. 실패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르지 못했을 단계다. 윈스턴 처칠 말마따나 성공이란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를 거듭할 수 있는 능력 이다. 그러니까 우리, 꾸준히 실패하자. 그나저나 사업적으로 성공하고 나서 이런 글을 써야 제대로 먹히는데, 이번 칼럼도 실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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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26 23:02

'공리사욕' 삶을 기획하는 직업

토요일 낮 1시 한적한 카페. 약간은 어색한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한 주 전 걸려 온 전화로 만들어진 자리. 문화기획자를 인터뷰 하는 과제 때문에 시간을 내달라는 부탁이었다.요즘 대학생들은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가 많다. 인턴, 봉사활동, 소규모 그룹 활동, 캠프, 공모전 등 민간과 정부에서 쏟아지는 프로그램들이 허다하다. 하지만 그 경험의 방향은 안정적이거나 많은 급여를 주는 회사에 들어가는 것을 기준으로 취해진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보다 얼마를 벌지가 중요한 현실 속에서 경험은 경력이 돼야 한다. 직업의식이야 말로 수장고에 보관된 유물이다. 그래서 이렇게 문화기획쪽 일을 궁금해 하는 친구를 만나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약을 팔아야 할지, 있는 그대로 설명해 줘야 할지 고민이라며 이야기를 꺼낸다. 업무시간 길고 수입 적지만문화기획쪽은 사람이 귀하다. 대부분의 기획자들은 긴 업무시간과 업무량에 비례하지 않는 불안정하고 낮은 수익을 견딘다. 그래서인지 30대 중반 남자들이 별로 없다. 지금 있는 무형유산영상페스티벌 사무국만 해도 국제규모의 영화제를 3개월 안에 만들어야하기에 출근시간은 있지만 퇴근 시간은 없고, 거의 2주에 한 번 꼴로 쉰다. 물론 단기로 진행되기 때문이지만 문화기획쪽의 많은 일들이 프로젝트성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일상이다. 이러한 환경을 권하기는 쉽지 않다.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좋은 직업이라고 여겨지는 대기업 직원, 공무원의 노동환경 역시 긴 시간과 강한 노동강도로 일하며 그 대가로 부모님의 만족, 고급 차와 집을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많은 않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들을 하나의 대체가능한 상품으로 취급하는 무수히 많은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게 대다수가 추구하는 삶이다. 문화기획분야는 영화, 미술, 음악 등의 예술 장르들을 비롯해 도시와 마을, 어떤 특정한 공간이나 그 속의 사람들의 관계 등을 엮어내는 기획까지 다양하고 광범위한 범주를 아우른다. 게다가 문화라는 특성상 공적, 사적분야를 넘나든다. 사고의 범위를 넓힌다. 또한 과제를 생각하고 협의하고 실현시키며 완성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사람과 조율이 일상적이며 위계가 덜하다. 이 부분은 개인 특성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한 켠에서 생각하면 예술, 문화기획 쪽은 자신의 생각이 드러나는 특성상 일에 대한 자부심과 서로에 대한 존중의 분위기가 있는 듯 하다. 지금 하고 있는 영화제 일만 해도 영화라는 전문적인 분야기도 하고 어느정도 틀이 다 구성되어 있는 후에 들어온 터라 온전히 1부터 10까지를 이해하고 진행하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내 생각을 제안하고 조정하면서 한 부분으로서 역할한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일상을 위해 필요한 손기술을 배우거나 그 의미를 이야기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중이다. 이렇게 나의 삶에서 내가 필요한 부분,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고 여기는 부분을 일로 녹여낸다. ‘공리사욕’이라는 말장난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서로 기댈 수 있는 세상으로다양한 직업이 있고 선택의 문제이지만 선택 기준이 다양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문화기획자의 삶은 넉넉하진 않지만 궁핍한 직업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배우고 경험하는 현실 속에 나와 내 주변은 그렇게 살고 있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우리 동네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내리고가 주제가 되는 삶보다 이웃집 감나무 터는 날이 더 화제가 되는 일상을 함께 상상하고 기획하는 친구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고 인정하지 말고 돈 보다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자. 상상하면 시작되고, 많이 상상할수록 가능해진다. 그런 ‘삶 기획’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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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19 23:02

독거 청년의 전주 전전기

전주에 온지 어느덧 4년동안 이사를 다닌 것도 벌써 5번째다. 매년 이사를 했던 것이다. 집값에 맞추어 떠나야하는 유목민 생활의 시작인 것이다.처음 전주에 왔을 때는 같이 일하게 된 언니네 집에서 얹혀살게 됐다.트렁크 하나 달랑 들고 왔을 때에는 타지에 시작되는 사회생활의 설레임과 모든 것이 좋아보이는 만족감으로 전주생활을 시작했다. 같이 살던 룸메이트들도 일때문에 떠나가고 처음으로 혼자 독립하게 된 것은 한 빌라의 옥탑방이었다.4년 동안 다섯 번 이사 다녀옥탑방의 낭만을 안고 운동장만한 20평짜리 옥상과 6평짜리 방을 얻게 됐다. 옥상을 이용해 빨래도 뽀송뽀송 말리고 친구들이 오면 바베큐도 해먹어야지라는 생각에 덜컥 방을 계약했다. 하지만 현실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 수도가 얼 정도로 추운 겨울을 보내야했다. 결국 1년을 살다가 집 근처에 있는 100/15 10평짜리 정도 되는 방을 얻게 됐다. 짐도 너무 많아져서 이번엔 짐이 트럭 하나가 됐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혼자살기에 창고도 딸린 자그마한 방과 혼자 누워있기에는 넉넉한 방이었다. 그런데 세탁기와 냉장고가 없어 애를 먹게 됐다. 냉장고가 없자 집에서 식사도 시원한 물 한모금도 먹을 수 없었다. 결국 중고로 세탁기와 냉장고를 구입했다. 중고 냉장고가 들어오면서 방안 전체에 커다란 모터 소리가 울려퍼지자 왠지 모르게 슬퍼졌다.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지만 냉장고가 바로 귀에서 소리치듯 엔진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고요하고 적막한 방에 대화 상대가 냉장고가 된 것 같아 서글퍼졌다.옥탑방에서 그래도 겪은 노하우가 생겨 지난 겨울에는 겪었던 가스비 폭탄을 맞지 않기 위해 항상 난방은 타이머를 맞추고 옷과 이불 그리고 전기장판과 함께 입김이 나오는 겨울을 보냈다. 오래된 집이라 외풍은 어쩔 수 없었지만 여름이면 나타나는 쌀벌레들과 가끔 버리는 날짜를 지나친 음식들 그리고 어디선가 나타난 바퀴벌레들과 사투해야 했다.혼자 건강하고 맛있는 밥을 위해 샀던 식재료들의 반 이상은 버려야했고 맛있는 요리 하나 만들어 먹고 싶으면 기본 양념이라는게 있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없다보니 매번 살때마다 사먹는 것 보다 더 큰 지출을 해야만 했다. 처음 독립을 시작할 때 꿈꾸던 생활들과 멀어지고 일을 끝내고 들어온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몸을 이끌고 집안일을 한다는 것이 점차 귀찮아져만 갔다. 그러다 보니 잠만 청하는 집이라는 생각으로 이제는 오래된 집이어도 이것이 최선의 선택지라며 월세에 맞춰 집을 고르게 된다. 이번에 옮기게 된 5번째 집도 이제 이사는 언제나 당연히 해야하는 것 쯤으로 여기지만 여전히 계약을 할 때마다 계약이 끝나고 나서 또 이사를 해야하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나는 내 집을 가질 수 있을까주위에 자취하는 친구들과 우리도 이렇게 월세를 낼 바에야 대출을 받아 집을 사자라고 다짐하지만 매일 지나갈 때 마다 보는 부동산 매매 가격들은 오르고 이제 은행대출 이자도 오른다고 하니 내집 마련의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간다.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 일하고 내가 살아가고 싶은 올바른 가치에 맞는 삶을 살아가고 싶었는데 지금의 나는 집을 갖는 다는 것이 인생의 최대 목표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집. 집을 갖기 않고도 행복한 방법은 지금에 충실해야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떨쳐낼 수 없다. 과연 미래에 나는 내 집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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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12 23:02

노력이란 말의 공허함

작년 내 관심을 끌었던 책을 하나 꼽자면 살마 로벨의 센세이션이라는 책을 들 수 있다. 살마 로벨의 책인 센세이션은 우연히 포럼에서 추천하는 내용을 보고 구매한 책이었고 호기심이 있긴 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본 책이었다. 하지만 체화된 인지이론에 대해서 다룬 이 책의 내용은 내 기대를 넘어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오늘날 사회구조적 문제 많아단순히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대화 속에 담긴 여러 상징과 은유, 비유들이 단순히 정신을 넘어서서 실제 외부 세계의 물리적인 대상이나 현상처럼 사람들이 인지하고 반응한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예를 들어 죄를 씻어낸다라는 말처럼 실제 사람이 손을 씻는 행위만으로 죄책감을 상당히 덜어낸다거나, 혹은 따듯한 마음씨처럼 따듯한 감각을 유도하도록 따듯한 음료가 담긴 컵을 들게 하는 것만으로 친절을 유도할 수 있는 것같은 여러 사례들은 말을 통해 사람들에게 비일상적인 체험을 선물하는 분야인 스트리트 최면을 하고 있는 내게 언어의 사용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은유와 대화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하였고 현대최면의 두 거장중 하나라는 밀턴 에릭슨 이래로 많은 최면가들에게 은유와 상징의 사용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지만 체화된 인지 이론은 그보다 훨씬 더 강한 인상을 내게 남겼다. 실제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거리에서 즉석으로 최면을 시연할 때 챌린지라 하여 일종의 테스트를 굉장히 많이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손바닥을 테이블에 달라붙게 만드는 체험을 할 때 단순히 손이 테이블에 붙습니다.로 끝나는게 아니라 체험자로 하여금 실제 손바닥을 떼보도록 테스트를 하는 것이다. 이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 바로 ~하려고 노력해보세요.라는 말이다. 언뜻 생각하면 손바닥을 붙여야 하는 상황에서 떼보라고 노력하라는 말은 일으키려는 현상과는 정반대 행동처럼 보인다. 하지만 외국 최면공연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에 대해서 노력하라는 말은 실제로는 할 수 없다라는 말과 같다는 것이다. 이미 노력하라는 말에는 할 수 없다라는 말이 전제가 되어 있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 내 경험에서도 노력하라는 말을 아낌없이 사용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원하는대로 손을 떼지 못하고 이름을 기억할 수 없었다.최근 들어 점점 사회적 경제적인 문제들이 불거지고 갈등이 시각화 되면서 청년층을 중심으로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노력 부족의 문제로 치부하는 세태에 대한 풍자로 노오력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한다면 여러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지난 수십년동안 진리처럼 공유해왔다. 하지만 이미 계급은 고착화되어가고 있고 이를 뛰어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임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이미 우리보다 앞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여러 선진국의 사례를 볼 때 단순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에는 매우 힘들어 보인다.개인 혼자 해결하기 힘들어사실 예체능보다도 더 노력하면 될 거 같은 공부에서도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는 것을 볼 때 노력하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가? 주위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다면 공허하고 수십번 이상 들었을 노력하라는 말 대신 치킨 한마리가 더 낫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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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05 23:02

명절 잘 보내면 세상 바뀔 '수'도 있다

얼마 전 친구와 수다 중에 뜬금없이 우리나라 최대 명절이 설인지 추석인지를 두고 분분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해보니 이 즈음 대화는 늘 명절 이야기가 주제가 된다. ‘민족 최대 명절’이라는 수식어에 맞게 시장도 마트도 활력이 생기고 온 가족이 모여 정치얘기, 경제얘기 등 온갖 정보들을 주고 받으니 추석이든 설이든 명절은 ‘민족 최대 행사’다.명절, 가족주의 카르텔 위한 축제?언제부턴가 비슷한 또래의 사촌 간 학교, 직장, 결혼 상대에 대한 비교범주에 속하게 되고,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 이해관계 속에 역할을 해야 하면서명절이 피곤해졌다. 명절을 지내고 올 때마다 어른들의 수많은 걱정 속에 즐겁다고 여기고 있는 내 삶이 불안하고 빈곤하게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부모님께 안간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건강한 가족의 모습에 누가 되는 느낌에서랄까? 그리고 마침내 지난 설, 피로함이 스트레스로 바뀌는 사건이 생겼다. 지난 설에도 어김없이 친척들이 모였고 말끝에 사촌동생이 대학 졸업반이라며 이모가 좋은 자리 좀 알아봐달라고 하셨다. 사촌동생과 거의 일면식이 없었기에 문화기획쪽에 관심이 있는지 몰랐다. 그래서 전공이 뭔지 특히 관심있는 쪽이 무엇인지 물었다. 토목을 전공했는데 전공에 별 관심이 없으니 안정적 직장만 있으면 전주도 상관없다고 했다. 내가 경험 한 문화기획쪽 분야는 일은 많고 돈은 적다. 그렇기에 ‘안정적’과는 거리가 멀지만 역동적이고 다른 일에 비해 일 하는 사람의 성향을 표현할 수 있고 상대적이겠지만 덜 위계적이다. 그렇기에 경험은 부족하더라도 하고자 하는 사람의 의욕이 중요하다. 물론 당연히 다른 분야의 일들도 의욕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모가 원하는 사촌동생의 직장으로는 아닌 듯 했다. 둘러둘러 생각을 전했다. 얼마 뒤 엄마와의 통화끝에 이모가 섭섭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황스러웠다. 어떤 오해를 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어디 회장도 아니고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을 ‘꽂아넣을’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하셨을까? 아니 설령 그렇다치더라도 그게 맞나? 여하튼 정황상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영화 베테랑을 봤다. 천이백만이라고 하지만 들어가기 전까지도 뭔 내용인지 모르고 있었고 별 기대없이 들어갔는데 보는내내 깔깔거렸고 통쾌했다. 하지만 영화관을 나오면서 “감옥에서 잘 쉬다 곧 나오겠네.” 했다. 우리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겪은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그치만 저 마음 깊은 곳에서 ‘그래 돈 많은 망나니보다 ‘쪽팔리지않게’ 살려고 고군분투하는 삶이 더 멋지지.’ 하는 생각에 힘이 실리고, 일상에서 조금씩 풀어낼 수 있다면 세상도 바뀌지 않을까 하는 ‘초긍정’적인 생각도 들었다.대한민국 사회에서 많은 공적인 일들이 사적인 관계의 특혜로 얽혀있다. 빽 없는 것은 ‘잘못’이다. 물론 나와 이모의 에피소드는 이모의 오해에서 비롯 된 것이지만 만약 내가 ‘꽃아넣을’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남도 아니고 친척인데’ 내가 이기적인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렵다는 좋은 직장을 구하는 조건은 ‘빽’이 아니라 스스로의 준비로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당연하게 여겨져야 진짜 돈 없고 빽없는 대다수 사람들이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해당사항이 아닌 조건을 부러워하고 인정해버리면 내 삶이 더 곤궁해진다. '가치있는 삶' 이야기 나누자이번 추석에는 사촌동생을 만나야 겠다. ‘안정적 직장’이 아닌 ‘가치있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우리집 명절 대화 주제를 상상해본다. 아마도 내 현실은 영화가 아니니 “재 뭐래니.” 같은 분위기가 될테지만 그래도 상상만으로 나의 명절이 꽤 괜찮아질 듯 하다. 모두 즐거운 추석 보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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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21 23:02

함께 살아가야하는 다른 세대에게

요즘 나의 화두는 어떻게 늙을 것인가?이다. 이런 고민은 어른에 대한 나의 적개심에서 비롯된 마음이기도 하다.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그런 마음들이 모여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늙고 싶은가에 대해 스스로 물음을 던지게 된 것이다.내가 느낀 어른들의 모습이 어땠길래 그러느냐고 물어본다면 정말 철저한 적개심을 가질 정도로 이용당했다 생각이 든다. 물론 사회에 지위를 얻기 위한 요구사항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일과는 별개로 한 인간에게 수치심까지 줘야하는 것인가?어떻게 늙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그동안 사랑만 받던 보호막에서 벗어나와 만난 어른들은 무참히도 나를 아래로 보았다. 넌 어린 여자애잖아, 그러니 당연히 내 말을 들어야해라는 태도로 나에게 언제나 큰 소리로 주문을 했다. 돈을 지불하는 공간에 있으면 어른들의 위상은 더욱 높아진다. 명예를 가진 사람일수록 더 많은 것을 당연하게 요구했고, 나보다 돈이 더 많은 사람이 일개 직원인 나에게 깎아달라, 지불하지 않겠다라며 으름장 놓기 일쑤였다. 일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밥을 먹는 순간에도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어디서든 눈칫밥을 먹으며 살아가야 했다.어른들은 미래를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 내가 꿈꾼 것을 미리 경험한 선배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미리 먼저 태어난 관계로 가지게 된 자본력으로 고용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으로 모든 권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잘 쓰이기 위해 맞춰져야한다. 고용주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 무단히도 애써야한다. 이것을 사회와 개인의 타협이라며 무조건적으로 따라야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건 고용주의 입맛 따라 변해야하는 한 개인의 불안한 정체성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언제나 타인에게 맞춰 살아가야하는 것이다.아직 경험하지 못한 청년들은 수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나타난다. 이건 어떻게 하셨나요?라고 쉽게 물어보는 사람들을 만나며 나 또한 내가 그렇게 해봤는데 그렇게 밖에 안 되더라, 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같은 질문에 늘 같은 답변하는 일도 귀찮아지기만 했다. 그렇게 나도 꼰대가 되어가는가? 싶었다. 어른들이 이래서 그동안 나에게 그렇게 대했던 것일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그들의 세월들이 쉽게 만들어 진 것이 아니며 나 또한 쉬이 얻으려는 자세를 취하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의 경험과 정보를 인터넷에 검색하듯이 제가 물어보면서 답만 말해주세요.라는 태도였지 않았나, 검색하면 나오는 답처럼 경험하지 않고 쉽게 답만 얻으려 했던 것 같다.청년의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는 곳에도 청년들은 주체적이지 못하다. 삼포세대, 오포세대라 지칭하고 있는 것도 어른들이다. 청년은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직접 해결해 나가기보단 그때에도 어른들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청년들 태도에도 무례함은 있어좋든 싫든, 어른은 어른의 이유대로 청년은 청년의 이유대로 살아가며 그렇게 서로를 외면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린 앞으로도 계속 함께해야할 것이다. 미래를 함께 살아가야할 서로에게 이해와 예의를 구할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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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14 23:02

조금 천천히 생각하기

영국의 최면가 제임스 트립은 신경생물학자 존 에클스의 나는 여러분이 자연의 우주에는 어떤 색깔도, 어떤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색깔이나 소리와 비슷한 것, 즉 직물, 문양, 아름다움, 향기 등등의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현실은 실제 객관적인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창으로 마음이 재구성한 사실이라 주장한다.그래서 그는 이러한 내면의 창에 개입해 피험자가 느끼는 현실을 재구성해 최면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제임스 트립의 방식대로 퍼포먼스를 할 때에는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인 최면상태를 유도하지 않고서도 흥미로운 수준의 최면현상을 유도할 수 있다. 간단한 손가락 붙이기부터 시작해서 손바닥이 테이블에 붙어 뗄 수 없게 되고 계속 반응성을 키워간다면 이름을 망각시키고 새로운 이름으로 잠시나마 착각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게 된다. 최면가의 유도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변화함으로써 인식하는 현실이 달라지는 것이다.어떻게 보면 가장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오감이 우리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손바닥과 테이블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매우 강력한 접착제가 손바닥에 발라졌다고 생각하고 그 느낌을 느끼는 것으로 이러한 착각이 일어난다. 굳이 최면현상이 아니라 맹점을 확인하는 간단한 실험을 통해서도 우리는 우리의 뇌가 현실을 순식간에 재창조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결국 우리가 잘 알고 있을 거라 당연하게 믿고 있는 현실 역시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서 인식하는 모습이 굉장히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좀 더 확장해보면 우리가 정말 잘 알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협소해짐을 알 수 있다.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란 말을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말하셨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찾아본 사람들은 이 말이 단재 신채호 선생이 아니라 윈스턴 처칠이 이야기했다고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처칠 박물관의 답변에 의하면 처칠이 그러한 말을 했다고 하는 기록 역시 없다고 한다.사실 무언가를 정확히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작업일 것이다.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단언하는 말에 대해서 마음이 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인터넷을 보면 사진과 간단한 문장으로 결합해 정보를 알려주는 카드 뷰 형식의 뉴스나 유용한 정보와 상식을 설명하는 정보성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때로는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올라온 믿지 못할 사건에 같이 분노하고 이를 공유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다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우리의 감각이 우리에게 때로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줌을 생각할 때 감각을 느끼고 주위를 인지하는 것보다 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사건과 사고, 지식, 정보에 대해서 과연 이것이 쉽게 진실이라 믿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때로는 약간 피곤할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천천히 생각하고 바라보는 게 보다 더 진실에 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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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07 23:02

기자가 돼도 기자가 안돼서

기자가 되고 싶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어느 대학교의 건학이념을 가슴에 품고 다녔다. 진리에 가장 가까운 직업은 기자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지적으로 오만한 고등학생이 생활기록부 장래희망에 써넣기에도 기자는 퍽 그럴싸했다. 대학에 오자마자 대학신문에 지원했다. 기자가 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그때는 그렇게 여겼다.■ 진실 추구, 신념대로 행동하려고기자 3년차 되는 해에 편집장이 됐다. 편집장으로 사령이 난지 한 달이 됐을 쯤, 총장이 사고를 쳤다. 총동아리연합회 발대식 해오름식에서 축사 대신 특강을 했다. 특강은 동아리 활동 어지간히 해라, 취업 준비나 열심히 해라, 우리학교 부실대 선정되면 너희만 손해다류의 내용으로 채워졌다. 55분쯤 했던 것 같다. 애초에 총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이었다. 행사는 전부 뒤로 연기됐다. 2000여 학생들은 반 토막 났다. 나는, 모든 내용을 기사로 썼다. 제목은 총동연 해오름식, 졸지에 해내림식이었다.편집 당일, 주간교수가 찾아왔다. 기사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대로는 내보낼 수 없다고 했다. 제대로 취재했냐고 물었다. 제대로 취재했다고 답했다. 어쨌든 이대로는 안 된다고 했다. 여러 차례 실랑이가 있었고, 누군가에 의해 고쳐진 기사가 지면에 실렸다.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끝까지 항의하지 못한 나였다.한 달 뒤, 다른 기사 취재 때문에 총장실에 갔다. 취재가 끝나고 총장은 나를 불렀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총장의 일대일 맞춤형 연설을 들었다. 한 시간쯤 했던 것 같다. 언론의 역할은 비판이 전부가 아니다, 대안을 제시해야 제대로 된 기사다, 앞으로 지켜보겠다 등등. 대답을 할라치면 끊고 할 말만 했다. 위압감에 짓눌렸다.그때부터, 편집권 문제를 제기하면 신문사 조직 전체가 무너질 것이라는 피해의식이 생겼다. 민감한 기사는 빼고 무난한 기사를 올렸다. 빼앗긴 자존감은 총학생회를 까면서 회복했다. 끝없는 정신승리와 자기합리화. 나는 그렇게 기레기가 되었다. 편집장을 마쳤을 때, 대학신문사는 대학 본부로부터 우수 부서상을 받았다. 담당 간사는 심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총장이 내게 보내는 조롱이라고 느꼈다. 기자가 자유와 이성의 상징이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나는 굴종의 상징이었다.우수 부서상을 받은 다음날, 새벽 두 시에 전화가 왔다. 외대학보 편집장이었다. 잘렸다고 했다. 학교가 쓰지 말라고 한 기사를 냈다는 이유였다. 심히 이례적으로 부끄러웠다. 열등감이 느껴졌다. 동시에 KBS, MBC, YTN에서 언론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기자들이 떠올랐다. 그런 투쟁은 어른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굴종하는 내가 나중에 기자가 되어서, 같은 상황에 과연 굴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대학언론인들 모아 단체 만들어칼럼니스트 김현진의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남자는 스물다섯이 넘으면 꼰대가 된다. 그쯤부터 사람이 안 변한다. 그 때 내 나이가 스물셋. 바로 군대를 다녀오면 스물다섯. 이대로의 나는, 기자가 돼도 이성과 합리,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기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신념대로 행동하고 싶었다. 다시는 나 같은 기자가 나오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곧장 서울로 올라왔다. 대학언론인들을 모아 단체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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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31 23:02

슈퍼 마리오의 마리오는 배관공

자전거를 처음 배운 게 초등학교 저학년 인 듯 하다. 탈 것에 대해 두려움이 별로 없기도 하고, 운동신경도 나쁘지 않았는지 롤러스케이트, 자전거 이런 것들을 타고 놀았던 기억이 즐겁게 남아있다. 자전거 바퀴 바람도 제대로 못 넣어성인이 되고 운동 겸, 이동수단으로 자전거를 이용하기 시작한 건 5년 정도가 되겠다. 선물 받은 분홍자전거부터 지금의 날쌘 자전거까지 세 대 정도를 거쳤다. 자전거 상태가 이상하다 싶으면 수리를 맡기는데 얼마전 땜질한 바퀴에 또 구멍이 난 듯 했다. 두어 번 자전거를 끌고 갔다가 부산하게 움직이시는 아저씨께 부탁하기가 그래서 눈치껏 바람 넣기를 시도했다. 영 시원치 않았다. 바쁜 일정에 고칠 시간이 부족해 집에 방치하고 택시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오늘 모처럼 꺼내 나와서 자전거포에 갔다. “아저씨 또 펑크 났나봐요. 바람이 안들어가요.” 아저씨는 무심히 자전거를 만지시더니 이내 빵빵하게 숨을 불어넣으셨다. “요놈을 끝까지 빼고 누른 다음에 넣야혀요. 안 누르면 붙어서 안들어가.” 허무하고 민망했다. 나는 ‘기획’이라는 일을 밥벌이로 삼고 있다. 남부시장의 청년몰부터 야시장. 크고 작은 행사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조율하면서 머리에 있는 것들을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만들어 온 ‘판’에 대한 좋은 평가와 응원을 받았고 보람과 함께 든든한 동료들이 많음에 행복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청년몰과 야시장을 보며 내 역할의 다음 방향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기획’이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리며 헛헛해 하던 즈음이었다. 공간 구성, 관계 조율, 기획서와 정산서가 아닌 손에 잡히는 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목수, 전기공, 춤을 추거나 바느질을 하는 것까지. 그러나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배우는 과정도 만만치않고 ‘전문분야’로 느껴져 선뜻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역에서 알고 지내던 각 예술 분야의 기획자이자 예술가인 분들의 제안으로 스테이풀리쉬위크축제를 만들기로 했다. ‘만드는 사람들이 즐거운 축제를 만들자’는 의도와 축제를 만들어 갈 방식에 동의했고, 다른 자극이 필요했다. 6개월 간 준비를 거쳐 지난 12일부터 16일까지 4박 5일간 펼쳐진 축제는 끝이 났다. 각자의 머릿속에 있던 것들을 꺼내며 조율해서 실현 시켜가는 과정은 때로는 어려웠지만 현장은 매끄러웠다. 음악, 미술, 공간기획 등 선배들은 저 마다의 현장에서 베테랑이었지만 각자의 현장이 아니었기에 더 배려했고, 내 놓았다. 축제를 준비하며, 끝내며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훨씬 많지만 오늘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스테이풀리쉬위크팀의 ‘기술력’이다. 시내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던 옛 KT&G 건물을 하나씩 바꿔나가는 과정은 놀라웠다. 나였다면 돈이 없어서 포기할 것들을 직접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획’이 손에서 직접 ‘실행’되는 과정을 경험했다. 대형 인디언텐트를 생각했으면 예산에 맞춰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었다. 전선을 빼서 어두운 곳을 연결하고 수도가 없는 곳에 물을 대는 그들의 기술은 대형 장비가 아닌 몇 가지의 공구로 이뤄졌다. 기획자이자 예술가인 선배들을 보며 내 고민이 풀리는 실마리를 얻는 듯 했다. 그들이 여전히 에너지 있게 움직이는 이유를 몰래 엿본 기분이었다. 일상 속 기술 배우면 삶이 더 온전자전거를 잘 탄다고 생각했다. 바퀴에 바람만 빠져도 자전거를 쓸 수 없는 내가 말이다. 바쁘고 쉬운 세상 속에서 돈을 벌거나 쓰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구나 싶은 헛헛함이 있다면 슈퍼마리오게임이 아니라 배관공인 마리오의 기술을 배워 보는게 어떨까. 내 일상이 좀 더 온전해 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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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24 23:02

때로는 그냥 여행을 떠나자

얼마 전 휴가 계획을 짜는 데서 오는 피로감에 대해 다룬 기사를 보았다. 언제부터인가 휴가기간에 계획을 짜서 여행을 가거나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세밀하게 일정을 짜고 그 일정에 맞춰 행동하는 경향이 늘었다고 한다.실제로도 휴가 계획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휴가 계획을 짜는 노하우에 대한 기사들도 올라오는 걸 보면 이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쉬는 시간에도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낯선 곳 천천히 걸으면 색다른 느낌그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주변의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이나 전주로 여행 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너무 정형화된 루트대로 여행을 떠난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 전주에 온다면 한옥마을을 구경하고 남부시장에 갔다 청년 몰을 구경하고 막걸리 골목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고, 혹은 전국여행이라면 아침에 전주에 와서 저녁에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 과 같이 여행 계획에 커다란 홈이 파여 있어 그 길대로 떠나는 것 같다.물론 여행에 목적을 가지고 떠나는 것도 굉장히 좋은 일이다.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거나 도시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떠나고 혹은 또 다른 테마에 맞춰 여행을 떠나는 것도 여행을 떠나는 사람 그 자신에게 굉장히 깊은 의미를 선물할 것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그런 모든 것들을 던져 버리고 그냥 아무 이유 없는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무작정 모르는 곳으로 떠나 단 하루나 이틀이라도 그 지역을 발 닿는 데로 거닐면서 보고 듣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즐겁지 않을까?예전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광주로 가는 버스에 몸을 맡긴 적이 있었다. 딱히 광주에 아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디 가고 싶었던 장소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지금 있는 곳이 아니라 가보지 못했던 곳에 가보고 싶어 아무 곳이나 뽑은 것이 바로 광주였다.약 1시간 반 정도 지나 터미널에서 내려 발길 닿는 데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위를 구경하고 배가 고프면 눈에 보이는 음식점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천천히 그렇게 걷다보니 좁은 골목길에 들어가게 되었고 광주라는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사는 장소 한가운데를 걸으면서 그리고 그 장소에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교류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지나는 것도 굉장히 색다른 느낌이었다. 그 동안은 다른 지역을 놀러갈 때 관광객으로써 한 발짝 멀리서 지켜보는 느낌이었지만 그땐 마치 내가 이곳에 사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 뒤에 숨겨진 순수한 얼굴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은 거의 도보로만 다녀서 끝나고 전주로 돌아올 때 굉장히 다리가 아팠지만, 보람차게 시간을 보냈어! 무언가를 얻은 여행이었어! 내 자신을 찾은 느낌이야! 이런 것들과는 관련이 없는, 이유 없는 즐거움을 얻었다.아무 계획도 목적도 없는 휴가를그 뒤로는 소소하게 내가 사는 지역인 전주 여기저기를 두 발로 걸으면서 다니는 취미가 생겼다. 좁은 골목길들, 처음가보는 길, 이런 소소한 곳 속에 숨겨진 보물과도 같은 가게나 카페, 그리고 그 지역의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고등학교 이후 계속 지내고 있는 전주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 크고 더 많은 것들을 감추고 있는 보물 상자라는 생각이 든다.그래서 때로는 아무 계획 없이, 아무 목적 없이 여행을 떠나거나 휴가를 보내는 것을 권한다. 이미 많은 의미는 일상에서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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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10 23:02

나무야 미안해

그만 넣으라고 해도 기어이 넣는다. 공짜로 1년 구독하게 해준대서 그냥 받았던 〈동아일보〉말이다. 구독 기간이 끝났는데도 새벽마다 꾸역꾸역 문 앞에 놓고 간다. 펼쳐 본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신문을 구석에 차 넣으며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본다. 일상적인 내 아침 풍경이다.스마트폰으로 뭐든 다하는 세상언론에 종사하는 내가 신문을 안 본다. 막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여기서 말하는 신문은 지면으로 발행되는, 잡지를 제외한 정기간행물을 말한다. 많은 선배가 신문을 꼭 봐야 한다고 했다. 편향되지 않은 정보를 얻는다, 지면 배분에 따라 뉴스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다, 여러 신문을 보면서 객관적인 시각을 기를 수 있다…. 이유는 많았다. 하지만 쇠락하는 존재가 자신의 존재 의의를 주장하는 것만큼 안쓰러운 일도 없다.신문을 안보는 이유는 첫째, 신뢰의 문제다. 언론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특히 종합일간지에서 두드러진다. 종합일간지는 짧은 시간 안에 취재와 기사작성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왜곡과 오보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현장에서 취재하는 기자보다 사무실에 앉아있는 부장의 판단으로 기사 방향이 결정된다. 많은 경우, 기사 내용은 취재 나가기 전에 이미 정해져 있다. 취재는 기사에 끼워 맞출만한 적당한 멘트 받으러 다니는 것에 불과하다. 사실 확인 없이 다른 기사, 보도자료를 ‘복붙’하는 기자도 부지기수다. 신문사의 실상을 알면 알수록 신뢰할 수 없는 신문사가 너무 많다. 좋은 신문 블루리본이라도 달아줘야 할 판이다.둘째, ‘노잼(재미없음)’이다. 지금의 신문은 기사를 끝까지 읽게 할 ‘무언가’가 없다. 시사주간지에서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의 내러티브 기사와 오랜 시간 취재해 심층 분석하는 탐사보도가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제작 기간이 길고 인력이 많이 필요해 신문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온라인에서는 인터랙티브 기사가 대두하고 있다. 기사와 함께 음악, 영상, 반응형 웹 등을 접목해 기사의 전달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형식이다. 최근 〈뉴스타파〉에서는 기존의 뉴스를 젊은 감각으로 재해석한 영상을 제작해 인기를 끌고 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예언자 일보〉가 아닌 이상 신문은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영역이다.셋째, 기회비용이 너무 많다. 재미없어도 일단 참고 읽는다고 치자. 신문을 한 번 집중해서 정독하려면 두 시간에서 세 시간이 소요된다. 시간과 집중력은 한정된 재화다. 차라리 그 시간에 페이스북을 하는 게 낫다. 이름 없는 언론사에서 쓴 기사도 내용만 좋다면 페친들이 타임라인에 물어다 준다. 온라인에서 뉴스를 소비할 곳은 널렸다. 조금만 익숙해지면 각 언론사의 좋은 기사만 쏙쏙 빼먹을 수 있다. 스크랩하기도 편하다. 특정 이슈에 대해서는 포털에 검색만 하면 수많은 언론사에서 쓴 기사와 비교 검증할 수 있다. 얼마나 편리한가. 신문 하나 보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건 백수나 할 짓이다.모바일 중심 뉴스 공급전략 필요독자들은 종이에서 디지털로, 모바일로 옮겨가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이미 디지털 혁신을 넘어서 모바일 중심 전략을 도입하고 있다. 아무도 안보는 종이신문은 그 자체로 공해다. 유엔미래보고서에 따르면 어차피 2030년 안에 신문 자체가 사라진다. 이왕 없어질 신문이라면 빨리 없애고 다음을 준비하자. 그래야 나무에게 덜 미안할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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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03 23:02

기승전'나' : 나를 위해 살기

부모로부터 독립은 스스로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한다는 뜻이다. 이는 노동자로서의 삶을 시작된다는 의미다. 나는 현재 독립 5년차며 노동자 5년차다. 고민이 아주 많다. 대학을 다니며 부족한 자취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했던 아르바이트는 ‘어떤 직업을 택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갖게 했다. 하루 10시간씩 빌딩 지하에서 쌀국수를 삶거나, 논술 학원 사무보조 등의 일은 나의 주말과 방학을 불행하게 했다. 돈 말고는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아르바이트는 가혹했다. 일의 목적은 기승전'돈'그러나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받지만 시민단체 인턴이나 무급이라도 자원활동가로 배우는 일은 즐거웠다.(물론 시민사회단체의 박봉과 강도 높은 업무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할 일이다.) 무엇보다 적은 돈으로 즐겁게 사는 자기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이러한 과정이 나를 전주로 오게 했고 ‘청년몰만들기’ 매니저로 일하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는 온갖 잘사는 방법들이 넘쳐난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도 많고, 텔레비전과 인터넷에는 성공한 사람들의 조언이 쏟아진다. “노력하라 기회는 많다!”근데 왜 내 주변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많은 시간을 일에, 자기계발에, 오프라인 온라인을 넘나들며 관계를 맺고 정보를 주고 받는데도 허덕이는 사람이 많을까. 노동의 목표는 오로지 돈을 얼마나 버는가 일까?에너지가 있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사실 날씬하다거나 얼굴이 예쁘다는 소리를 더 듣고 싶지만, 타고 난게 미인은 아니니 돈과 시간을 들여야한다. 적당히 만족하고 산다. 모두가 이나영이 될 수 없다. 더 예쁘게, 더 행복하게. 기준은 ‘다른 사람보다 더’이다. 하지만 익숙하다. 부모님과 선배들도 그렇게 살고 있다. 사람구실하고 살려면 차곡차곡 돈 모으고, 차 사고, 결혼 하고, 집 사고. 뭐 하고, 뭐 하고….청년에게 권해지는 도전정신, 자율성 등이 불편한 이유다. 정해진 프레임 안에서만 가능한 자율성. 예를들면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니까 하는게 낫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면 하든 말든 알아서 정하라고 해야지 하는게 낫다니.선택은 할 수 있지만 이 안에서청년몰을 만드는 과정은 끊임없는 조율의 과정이었다. 공간을 꾸리고 그 속에 관계를 만드는 것은 늘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내포한다. 우리의 롤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정해진 시스템이 있을리도 없었지만, 짜여진 계획대로 움직였다면 지금의 청년몰은 없었을 것이다. 청년몰은 단순한 쇼핑몰이 아니다. 내게 있어 그곳은 독립한 노동자로서 적당한 벌며 어울려 즐거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 공간이다. 그 속에 있는 저마다도 각자의 삶으로 스스로와 다른 청년들, 그리고 기성세대에게 다른 기준을 증명하고 있다. 서로에게 귀한 존재다. 하지만 청년몰도 답은 아니다.여전히 나는 결혼하지 않는 삶이 가능할까, 경쟁하지 않는 삶이 가능할까, 일과 놀이가 일치하는 삶이 가능할까 등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기준에 만족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열심히’는 아니지만 ‘꾸준히’ 찾아다닐 생각이다. 아마 긴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조상들은 먼 길 떠날 때 족삼리 혈에 침을 꽃았다던데 내 걸음에는 함께 할 친구들이 많으면 든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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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27 23:02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뒤에는

어느덧 전주에 온지 4년차에 접어들며 우주계란이라는 작은 책방을 운영한지도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많은 곳에서 청년들의 성공이나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 아직 성공도 실패도 아닌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행복도 좌절도 덤덤히 받아들여흔히들 말하는 성공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저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해왔던 것 같다. 그러나 결국 내 목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이 가게를 계속 운영할 수 있을 정도만이라도 벌고 싶다. 솔직히 누구나 예측할 수 있듯이 책을 팔아 돈을 번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래도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가?시작은 누구라도 그렇듯 “좋아서 시작했습니다.”였지만 결국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잖아.” 라며 자기위안으로만 견디기에는 이미 많은 시간들이 지났다.초기에는 자기위안의 과정을 겪는다. 그래,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돈은 벌지 못해도 괜찮아. 다음에는 사회구조에서 문제를 찾는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질 수 없지. 그 다음단계에는 자기혐오를 시작한다. 페이스북이든 주위에서든,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평가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아직도 완벽하지 못한 스스로를 괴롭히게 된다. 그렇게 자신조차 자신을 탓하며 본연의 내 모습을 보여주면 거부당할까 두려워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이런 여러 단계들을 거치며 남을 위해 살아왔던 내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묵인해왔다. 남들에게 내 상황에 대해서 꽤 괜찮은 척 거짓말했던 일들을 되돌아보며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 사람들은 대개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행복했던 적도 많다. 처음 잡지를 내게 되었을 때의 설렘이나, 그 잡지를 읽고 공감해준 사람들이 생겨날 때, 우주계란을 오픈하고부터 2년 동안을 함께해오고 있는 심야독서단, 가게를 옮길 때 마다 매번 찾아와주는 사람들, 모두 가게를 운영하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계획했던 일들이 한 번에 바뀌지 않거나 마음대로 실행되지 않을 때에는 행복만큼이나 큰 좌절을 느낀다. 홍보에 나름 신경 썼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았을 때, 처음엔 부끄러웠던 것 같다. 그런 일도 몇 번 겪다보니 이제는 새삼 부끄럽지는 않아하며 그 시간만큼은 덤덤히 해야 할 것들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믿을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결과물이 비록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에 닥쳤을 때 순간의 불안감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안 좋은 결과를 만들지 않을 만큼 중요한 것은 그 결과에 닥쳤을 때의 태도이다.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며 실망하며 나 자신을 괴롭히는 시간을 지나 이제는 하루에 몇 명 찾아오지 않는 가게이지만 그래도 매일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린다.하루하루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나는 아직 과정에 놓여져 있다. 일년 차, 이년 차를 지나서도 처음과 같이 계속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라는 문제는 언제나 함께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두려움에 자책하며 문을 닫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는 하루하루를 지치지 않고 꾸준히 살아가고 싶다.△신재연 대표는 호서대 문화기획학과를 졸업했고 독립출판물서점 우주계란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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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20 23:02

변화의 한걸음

처음 길거리로 스트리트 최면을 하러 나왔을 때의 일이었다. 내 나름대로 생각하길 전주한옥마을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장소이기 때문에 새롭거나 신기한 체험에도 쉽게 참여할 것 같았다.되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여름방학 시즌이었고 한옥마을은 전국에서도 유명한 관광지였기 때문에 우글우글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그룹을 향해 접근하려 하던 순간이었다.그 순간 내게 찾아온 것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사람들과의 거리는 몇 걸음 되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이라도 처진 것처럼 나는 그 몇 걸음을 떼지 못했다. 아직 딱히 거절이나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을 경험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마치 내 몸이 아닌 양 이상한 기시감이 들기 시작했다. 입술이 바짝 말라 와서 나도 모르게 몇 번이고 입술을 핥았다. 준비한 멘트를 이야기하려고 목소리를 내보려 했지만 내 목소리는 목구멍 밖으로 간신히 기어 나오는 정도였다.외국 최면가들이 자신의 최면 강좌에서 이야기하던 다른 사람들에게 접근하는데 느끼는 두려움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새로운 체험을 찾아 핸드폰을 검색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눈에 띄었지만 마음속으로 나는 한 바퀴만 돌고 와서 저 사람들에게 스트리트 최면을 시도해보자, 라는 변명만 늘어놓으면서 끝도 없이 한옥마을을 걷기 시작했다.돌고 오면 당연히 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계속 여러 가지 이유를 만들어 내면서 한옥마을을 걷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스트리트 최면을 하려 나와 장장 6시간 가까이 한옥마을을 걷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이미 주위가 어두워졌기 때문에 다음에 나와 다시 도전하자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마음속에서는 오늘 아무 말도 못 건 것에 대한 변명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던 그 순간 갑자기 이대로 집에 가면 영영 다시는 거리에서 내가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다른 상황에서도 마음속으로 많은 변명들을 만들었다는 게 떠올랐다.떨리는 심장을 참으며 눈앞에 보이는 커플을 향해 여러 가지 토를 달지 않고 앞에 다가갔다.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커플들에게 내 소개를 하고 준비해온 루틴대로 최면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실패를 했지만 마음속에서 그림자들이 만들어내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커플들은 굉장히 재밌게 체험을 받아들였다.보이지 않는 장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후에도 물론 많이 주저하긴 했지만 나는 계속 한옥마을과 전주거리에서 스트리트 최면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어느덧 유튜브에서 외국 최면가들이 보여주었던 것을 나 스스로도 사람들에게 체험시켜줄 수 있게 되었다.두려워 말고 첫발 내딛어야되고 싶은 모습이 생겼을 때 나는 새로운 테크닉을 익히거나 도구를 사면 단 하루 아침에, 아니면 일주일 만에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과거의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게 된 지금 볼 때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은 어떤 새로운 외국 최면가의 테크닉도 아니고 도구들도 아닌 그 때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변명에 넘어가지 않고 옮긴 몇 걸음 덕분인 것 같다. 사실 수많은 이유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쉬운 일지만 되고 싶은 내가 되기 위해 내딛는 몇 걸음은 옆에서 보는 것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나는 항상 이야기한다.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 첫 걸음을 내딛으라고 말이다.△이태용 씨는 전북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전주한옥마을 등에서 즉석 최면 공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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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13 23:02

동성애 반대하는 친구와 절교해야 하는 이유

나는 얼마 전에 서울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나는 동성애 혐오발언을 쏟아내며 행사를 방해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극렬한 혐오감정을 느꼈다. 그 결과 나는 앞으로 동성애에 반대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과의 모든 관계를 차단하기로 다짐했다. 아래에 그래야만 하는 이유 다섯 가지를 내 주관대로 정리했다.타인의 연애에 대한 오지랖첫째, 이들은 오지랖이 쓸데없이 넓다. 동성애자건 이성애자건, 남이 연애하는데 왜 끼어드는가? 타인의 연애는 찬성하고 반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야, 네 애인 별로다. 헤어져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무례한 발언인지 모르는 것이다. 기본적인 배려심도 없으면서 삶 곳곳에 간섭하려드는 오지라퍼는 내 인생에서 물러가라!둘째, 편견에 가득 차있다. 동성애 반대론자의 주요 근거는 동성애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이다. 그 주장에 따르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연애는 가치가 없다. 당장 불임부부의 결혼을 불법으로 만들어야겠다. 섹스리스 부부 역시 죄악이니 매월 섹스일지를 정부에 신고하도록 해야겠다. 사람이 무슨 애 낳는 기계인가? 연애와 결혼의 목적이 출산이라고 누가 정했나? 자기가 정해놓은 세상에 갇혀 남의 행복을 멋대로 잣대질하는 꼰대도 물러가라!셋째,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동성애 반대론자들은 일반적으로 동성애자 친구가 없다. 그래서 잘 모르니까 반대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왜 믿을 수 없는 사람일까? 생각을 해보자. 세계 인구의 15%가 동성애자다. 이 말은 곧 친구 열 명 중 한 명은 동성애자라는 뜻이다. 아닌가? 자기 주변엔 그런 사람이 없나? 그건 본인이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다. 입 싼 친구에게 미쳤다고 누가 커밍아웃을 할까?넷째, 극단적인데다 변태다. 연애=섹스라고 생각한다. 항문성교 웬 말이냐!류의 슬로건을 보면 추잡하기 그지없다. 연애엔 정신적 사랑도 있고 가벼운 스킨십만 하는 사랑도 있다. 이 들의 상상력은 너무 하드코어하다. 이들은 지나가는 커플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난 이들에게 내 애인을 보이는 것조차 꺼려진다. 이들이 상상하는 걸 생각만 해도 정말 불쾌하다. 또라이+변태는 친구가 아니라 환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종류의 동성애 반대론자는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다섯째,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동성애가 선천적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세상에 가득한데,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특히 종교인이 문제다. 성경에서 동성애가 어떻다고 쓰여 있는 게 무슨 상관인가? 모든 사람이 교회 다니는 것도 아닌데 성경을 증거로 들이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런 얘기는 교회 안에서만 하라. 굳이 밖에서 하려면 제정일치 사회인 중동에 가서 하라. 대통령 각하도 흐뭇해할 것이다.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어떤가? 이 글을 읽고 나니 어이가 없거나 억울하고 욕지기 나오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동성애 반대론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동성애자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이것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차별받고 고통받고 살아왔다. 그러니까 이것 하나만 기억해달라. 당신이 차별받기 싫으면, 남을 차별하지 말라. 당신이 누군가를 혐오하지 않으면 그 누군가는 심지어 당신을 사랑하기까지 한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정상석 이사장은 전 전북대 신문사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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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06 23:02

청년 CEO의 선물 '성장통 5가지'

기업을 만들어서 운영한지 7년째 되는 해이다. 온몸으로 세상에 맞서도 무너지지 않을 ‘청년정신’이 깃든 나이였고, 확고한 가치관으로 세운 뜻을 이루기 위해 조직을 경영해야 하는 ‘CEO’ 역할이 주어진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조직 경험이 없었고, 아이템만으로 창업을 시작했기에 기업을 운영하는 일은 어렵게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기업을 대하는 태도부터 여러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최근에 창업에 도전하는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경험을 정리해서 편지를 쓰고 싶었다.하나. 칭찬받는 일은 줄어들고, 사과하는 일은 늘어요.- 시작할 당시엔 젊은 나이에 창업했다는 도전적인 행동만으로도 주변으로부터 많은 응원을 듣곤 했어요. 곧, 시간이 지나고 ‘열정’이 아닌 ‘성과’로 증명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모든 일의 결과를 책임져야 해요. 기업에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면 성과를 낸 직원에게 칭찬을 받게 하고, 기업에 망측한 일이 생기면 CEO는 총 책임자로서 고개 숙여 사과를 해야 하는 일이 당연해져요. 둘.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어려워져요.- 막연한 아이디어에 고집을 부리며 그렇게 일이 시작 돼요. 수익모델도 없고, 어디에 팔 것인지, 누가 살 건지도 모르니 항상 배고플 수밖에 없었죠. 기업의 초반에는 주변에서 시키는 일을 하면서 한달 한달을 버티는게 최선이었어요. 1년, 2년을 버티다 보면 인맥, 전문성, 노하우가 생기면서 우리만의 색깔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분명 오게 돼요. 이때 더 큰 고민은, 기업의 수익금을 어떻게 사용할 건지 선택해야 하는 거예요. 수익금을 직원의 보너스, 회사 홍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데 활용할 수도 있어요. 어떻게 돈을 버느냐보다 ‘어떻게 돈을 쓰느냐’의 결정이 기업의 미래에 중요한 요인이 되는 건 확실해요. 셋. 내가 잘난 것보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많아져야 행복해요.- 새로운 생각, 새로운 도전을 하는 톡톡 튀는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만들고 일을 시작하죠. 근거 없는 잘난 척이 처음에 팀원들을 모으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에 한계를 느낄때가 올 거예요. 이때 CEO는 팀원들을 믿어주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잘난척쟁이로 만들어야 해요. 넷. ‘마음’ 써야 하는 일을 ‘돈’ 쓰는 일로 대신 할 때도 많아요.- 가끔씩은 고생한 팀원들에게 맛은 없었지만 장보고 직접 요리를 했어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땐 작은 손편지를 주면 엄청나게 좋아해요. 별것도 아닌데 ‘마음’을 쓰는 작은 일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예요. 시간이 지나고 일과 사람이 많아지면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 줄어들어요. 얼굴 보면서 밥 먹을 시간이 없으니 회사카드로 각자 해결해요. 감사한 일은 손편지 대신 돈이 담긴 봉투로 대신해요.다섯. 매출이 많은 회사보다, 신뢰가 큰 회사가 부러워요.- 잘되는 벤처기업들을 만나면, 무슨 아이디어인지, 직원은 몇 명인지, 매출은 얼마인지 듣고 부러울 때가 많아요. 하지만 매출이 크다고 해서 꼭 튼튼한 기업은 아니었어요. 기업의 최고 자산은 사람과 사람으로 연결된 신뢰라는 걸 매번 확인해요. 회사를 방문했을 때 직원들이 생글생글 웃고 있고, ‘주인은 CEO가 아니라 나야’라고 자신감 넘치는 구성원들이 있는 곳이 정말 튼튼한 기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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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24 23:02

소탐대실

어느새 한 학기가 끝났다. 이번 학기의 시작은 이전 학기들과는 조금 달랐다. 기성회비 폐지, 그에 따른 등록금 고지서의 변화였다. 항상 등록금 고지서에 보이던 기성회비란 글자와 그 옆에 적힌 액수는 올해 그 이름은 사라지고 액수는 수업료 속에 포함됐다. 더불어 등록금은 ‘사실상’ 인하돼 작년과 비슷한 등록금을 준비하면 됐다. 그 당시 학생 입장에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었다.하지만 개학 후 학교 곳곳에서 듣게 되는 상황들은 참담했다. 각종 예산은 우후죽순 삭감됐다. 학교에 돈이 없다는 이야기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오르내린다. 교수, 교직원에게 지원되던 예산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작년까지는 존재했던 학생지원 프로그램들이 이번 학기에는 그 수가 줄어들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몇몇 해외지원 프로그램들이 곧 사라진다는 말이 돌고 있다. 실제로 선발인원이 작년에 비해 줄어든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학생들은 차라리 등록금을 조금 더 내더라도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줄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몇 년 전부터 전국의 많은 대학생들이 반값등록금을 외쳤다. 학생들의 외침으로 높은 등록금은 사회문제로 인식됐고 등록금 인하, 국가장학금 확대, 기성회비 폐지 등이 진행됐다. 교육부는 국가장학금 2유형, 교육부에서 진행하는 사업 선정 등에서 불이익을 주며 대학에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이런 변화 속에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사립대와 국립대의 차이이다. 한 학기 등록금이 500만 원을 훨씬 웃도는 사립대학에 비해 국립대는 그에 절반도 되지 않는다. 전북대의 경우 인문·사회계열은 170만 원 정도, 공학계열은 230만 원 정도이다. 그 차이는 서울 사립대와 지방 국립대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아마 지방 국립대 학생들 중 반값등록금을 원하는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감히 추측한다.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하나의 이유는 액수 자체의 문제보단 학생들이 낸 등록금을 제대로 쓰지 않는 경우, 필요 이상의 등록금을 내야 하는 경우이다. 사학의 재정 비리로 많은 등록금이 헛되게 쓰이는 경우가 곳곳에서 보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지금의 등록금 인하 정책은 모든 대학이 등록금을 인하해야 하고 그에 대한 운영감사는 크게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더불어 등록금 인하분에 대한 국가의 국립대 지원액은 늘지 않고 있다. 더불어 국립대 기성회비 반환 소송으로 대학의 재정 자율성 문제와 소송 결과에 따른 보상 문제로 국립대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예산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학이 언제부턴가 지성을 추구하는 학교보다 성과를 중시하는 기업처럼 보인다.유럽의 저렴한 등록금을 동경하며 우리나라도 유럽을 지양해서 대학 등록금을 낮춰야 한다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등록금을 대신할 예산이 준비되지 않은 지금의 상황에서 계속해서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라 생각한다. 이렇게 등록금을 계속 낮춘다면 그 피해는 대학과 대학 구성원들 모두에게 갈 것이다. 지금의 등록금 인하는 과연 옳은 방향일까?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잃게 되지는 않을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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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17 23:02

비상식적 상식들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는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열 손가락 지문날인을 강제하는 것이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헌법재판소는 판결문에서 법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합헌 판결을 내리는 ‘곡예’를 부렸다. 강제 지문날인 제도에 별 문제가 없다는 선입견을 갖고 판결했다는 의심이 드는 부분이다. 그나마 3명의 재판관이 ‘모든 17세 이상의 국민에 대하여 열 손가락 지문 전부를 날인하도록 하는 것은 필요한 범위를 벗어난 것’,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라고 지적한 것이 위안거리일까.만 열일곱 살 때 주민등록증을 만들러 가서 순순히 지문을 찍은 것은 내가 각별히 후회하는 일 중 하나다. 이번에 강제 지문날인이 위헌이라고 재판을 냈던 청구인들은 모두 지문날인을 거부하여 주민등록증 없이 살고 있는데, 그들이 겪는 불편을 알면서도 나는 가끔 그들이 부러워지곤 한다. 나는 신분증을 만들러 가기 전엔 열 손가락에 잉크를 묻혀가며 지문을 날인해야 하는 줄도 몰랐고, 이걸 왜 하는지 어떻게 관리되는지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엉겁결에 시키는 대로 날인을 했던 것이다.지문날인을 했을 때, 기묘한 불쾌감이 등줄기를 쓸고 지나갔다. 이 나라는 내가 언젠가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그때 범죄 현장에 지문을 남길지도 모르니까 내 지문을 전부 다 보관해놓겠다고 하는 건데, 대체 내가 왜 그런 의심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만약 국가가, 혹은 지문정보가 유출돼서 다른 사람이 이를 악용하거나 나에게 누명을 씌운다면 큰일일 것이다. 비밀번호야 바꿀 수라도 있다지만, 지문은 떼어낼 수도 바꿀 수도 없다. 도대체 왜 큰 반발이 없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지문날인을 하는 것을 당연한 상식처럼 여 있다. 그래서 국가가 지문정보를 수집해가는 것의 문제점은 사소한 것으로 생각되고 그 필요성이나 효용성은 과대 평가된다. 수사나 치안, 신분 확인 등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신분증을 만들 때 열 손가락 지문 정보를 강제로 받는 나라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전 국민 지문정보’가 없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한국보다 경찰이 수사를 더 못할까? 신분 확인을 특별히 못할까? 설득력이 없는 이야 다른 많은 나라 정부들이 불쾌해 할 이야기다.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익숙해져 있는 ‘상식’이 꽤 비상식적이고 보편적 기준에 어긋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중고등학교 대부분에서는 교복을 강제로 입히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교복을 없애면 큰 문제라도 생길 것처럼 걱정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교복을 강제로 입히는 나라들이 오히려 소수이며, 자유롭게 사복을 입어도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교사의 정치활동도, 세계적으로는 교사의 정당 가입이나 정치활동이 보장된 경우가 많다.단지 익숙하다는 이유로 상식을 그냥 받아들여선 안 된다. 상식이 정말로 일반적이고 당연한 것인지 따지려면 한 걸음 물러나 거리를 두는 게 필요하며, 나아가 더 보편적인 기준을 참고해봐야 한다. 나는 자신의 상식이 혹시 ‘비상식적’인 것은 아닌지 의심해보는 것이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기에, 보통의 시민들보다도 한층 더 ‘익숙한 상식’을 넘어 인권과 헌법의 기준에 따라 판결해야 할 헌법재판소의 그렇지 못한 행보들이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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