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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킹 온 헤븐스 도어'와 바다·데킬라

부산에서 짧은 강연이 있었다. 행사가 끝나고 관계자 분들과 짧은 인사를 나눈 후 자리를 빠져나와 곧바로 자갈치시장으로 향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터라, 때마침 좋은 돔이 들어왔다던 97호 횟집 아저씨의 말을 도저히 흘려들을 수 없었다. 꽤 저렴한 가격에 배를 빵빵히 불리고 나서 천천히 걸을 겸해서 바다로 나갔다. 노을을 받아 주황빛으로 넓게 펼쳐진 바다는 내륙 토박이인 내게 있어 좀처럼 보기 힘든 장관이었기에 한동안을 눈에 꾸역꾸역 담아넣느라 애를 먹었다.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혼자 자주 가던 바를 찾았다. 데킬라 반 병을 앉은 자리에서 깔끔히 비웠다. 저마다 떼를 지어 왁자지껄하게 수다판을 벌이는 사람들 중에서 내게 왜 데킬라를 혼자 마시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조금 유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내게 왜 데킬라를 처량하게 혼자 마시고 있느냐고 물었다면 나의 대답은 아마 이러했을 것이다- 그야 물론 바다를 봤으니까. 토머스 얀의 1997년작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는 그런 영화다. 음악을 하는 지인의 소개로 영화를 처음 접했다. 한 번 보면 머리 속에서 제멋대로 바다와 데킬라가 하나로 꽁꽁 묶여 일종의 조건반사를 만들어 버리는, 조금은 곤란한 영화다.이 영화는 어딜 봐도 ‘없어보이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루디는 세상을 너무 무겁게 살아서 없어보이는 남자다. 평생 자신을 규율에 끼워맞추며 바르게만 살다 보니 융통성이라고는 눈을 아무리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반면 마틴은 세상을 너무 가볍게 살아서 없어보이는 남자다. 그에게 있어 규칙은 당연히 깨라고 있는 것이고, 진지함은 메마른지 오래라 어딜가나 여자를 홀리고 다니기 일쑤다.완벽히 상반되는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두 가지 있다. 각각 골수암과 뇌종양으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같은 병실에서 서로를 만났다는 것과,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다는 것. 병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데킬라를 마시며 가까워진 둘은 술김에 병원을 탈출해 바다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을 떠난다.사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가 다루고 있는 스토리-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마지막 꿈을 이룬다는 주제의 이야기는 ‘버킷 리스트’ 등 여러 영화에서 익숙하게 찾아볼 수 있는 소재다. 더군다나 이 영화가 연출에 있어서 섬세하고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참신한 컷연출이나 시각효과보다 거칠고 투박한 구성이 영화의 주를 이룬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작년 국내에서 재개봉될 정도로 아직까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은 작중 최고의 백미로 알려진 마지막 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슷한 류의 로드 무비가 늘 그렇듯 둘은 결국 바다에 도착하게 되는데, 스크린을 꽉 채운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히 데킬라를 들이켜는 둘의 모습과, 그 뒤로 흐르는 밥 딜런의 동명의 노래 ‘Knocking on Heaven‘s Door’가 어우러진 이 장면은 말 그대로 압권이다. 만약 당신이 그 뒤 자연스레 올라가는 크레딧 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게 된다면, 축하드린다. 필자가 그러했듯, 당분간 바다를 보면 자연스레 데킬라가 떠오르는 후유증을 얻게 되셨다.다음에 바다에 가게 됐을 때는, 친구를 데리고 데킬라 한 병을 따로 챙겨가야겠다. 어릴 적 즐겨 듣던 휴대용 CD 플레이어에 밥 딜런 아저씨 노래를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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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2.12 23:02

우리 사랑할 수 있을까

칼럼 제목이 마치 사랑을 다룬 드라마 제목 같지만, 하고자 하는 말은 요즘 젊은이들의 현실이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당시 젊은이들을 ‘X세대’라고 했다. 1980년대의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풍요 속에서 자라나, 당시의 기성세대와는 다른 사고방식을 보였기에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지금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은 ‘3포 세대’라고 불린다. 이는 ‘연애, 결혼, 출산’, 이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라는 뜻이다. 연애결혼이 일반적인 현대에 있어, 연애의 포기는 자연스레 결혼과 출산의 포기로 이어진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는 풍조와 낮은 출산율 등의 통계가 이런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비참한 이유는 아마도 비용의 증가 때문일 것이다. 연애의 경우, 아마도 가장 흔한 데이트 코스가 아마도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것일 텐데, 모두 돈을 써야만 한다. 어찌어찌 연애과정을 넘어가 결혼을 한다고 해도 내 집 마련을 위한 부동산 문제가 신혼부부의 발목을 잡는다. 출산도 마찬가지이다. 분유 값, 기저귀 값은 물론 병원비도 만만치 않다. 이런 비용의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은 그들이 충분한 돈을 벌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젊은이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기업과 자본의 이윤 증가가 더 이상 직원의 임금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 때문에 ‘3포 세대’는 빈익빈 부익부와 노령화 등 대한민국의 음울한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거시적인 사회·경제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 미시적으로 개인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3포 세대를 살펴보자. 어떤 사람이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것은 ‘사랑’을 포기한다는 뜻과 같다. 그것이 남녀 간의 사랑이든, 부모자식간의 사랑이든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을 포기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해리 할로우(Harry F. Halow)라는 심리학자의 실험은 간접적으로나마 그에 대한 답을 준다. 그는 차가운 철사로 만들어졌지만 젖을 주는 어미 원숭이와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젖을 주지 않는 어미 원숭이를 만들어 우리에 집어넣었다. 그 우리 안의 새끼 원숭이는 오랜 시간동안 부드럽고 따뜻한 어미 원숭이와 지내다가 배가 고플 때만 잠깐 차가운 철사로 만든 어미원숭이에게 가서 젖을 먹으러 갔다고 한다. 이렇게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갈구하는 새끼 원숭이의 본능은 인간에게도 있다. 때문에 몸과 몸의 접촉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랑표현은 남녀 간은 물론 부모자식 간에도 매우 중요하다. 게다가 사랑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사랑 없는 삶이 얼마나 삭막하고 우울한지를. 따라서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사랑은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결국 앞서 제기한 ‘우리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사랑해야만 한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하는 비용의 문제를 넘어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상상력이 부족해 적절한 해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고, 연대(solidarity)가 약해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가 실패할 수도 있다. 그래도 사랑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다. 우리는 사랑하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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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2.05 23:02

바로 지금, 청춘의 찰나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나 똑같은 깊이로 또는 길이로 보내지는 않는 시절, 청춘. 우리는 무얼 하며 보냈을까? 혹은, 무얼 하며 보내고 있을까? 보통은 10대에서 20대 정도의 젊은 나이를 일컬어 청춘이라 부르지만, 이에 대한 이견을 내놓는 세 남자가 있다. 이름 하여 청춘 사진관! 올해로 서른 살을 맞은 나에게, 이들의 청춘 스토리가 더할 나위 없이 큰 자극제가 되었다. 스튜디오, 포토그래퍼, 이런 세련된 이름들 놔두고 구지 ‘사진관’이라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추구하는 데에도 뭔가 이유가 있을 듯싶다. 그 아날로그적 감성을 한 번 이해해 보자는 취지로, 필자도 노트와 연필을 꺼내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귀찮아져보기로 했다.말은 사진관이긴 한데, 사실 이 세 남자의 사진관은 사진관이라 부를만한 공간도, 그럴싸한 장비도 갖추지 않은, 이상한 사진관이다. 세 남자 자체가 청춘사진관의 실체이며 그저 나이만으로도 청춘이기에 충분한, 20대 대학생들이다. 대학에서 같은 수업을 들으며 만나게 되었고, 마음 잘 맞는 청춘들끼리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작당해 보자는 취지에서 이 ‘거창한’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세 청년들이 카메라라는 작은 기계 하나로, 사람들의 어떤 찰나를 담아낸다는 것. 청춘 속에 수많은 찰나의 순간들이 있고, 돌아보면 너무나 아쉽고 소중한 순간들이지만, 꼭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는 모순이 있다. 그런 ‘찰나’를 사진으로 담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순간을 되돌려주는 이 세 남자의 청춘의 시절. 얼마나 신나는 청춘들인가. 청춘사진관의 활동에 동경을 느끼는 이유는, 나의 청춘을 더 신나게 즐기지 못한 데에 대한 반성이라고 하겠다.누구나 머릿속에 한 장면쯤은, 평생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복을 입었던 열아홉 살의 졸업식, 어렵게 공부한 끝에 선생님이 되어 첫 제자들을 만난 날, 살면서 흔하게 다가오지 않는 감동의 순간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은 지나가버리면 다시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의 흐름 위에 있어, 더욱 소중하고 아깝게 느껴지곤 한다. 필자가 가장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대학시절 풍물패에 들어가 첫 공연을 했던 날이다. 몸집보다도 더 커다란 장구를 둘러메고 뭐가 그리 신났는지 벌건 얼굴로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나를 보면서, 객석에 있던 엄마는 조용히 울었다고 했다. “왜?” 하고 물으니, “그냥, 너무 예뻐서.”란다. 그 때 눈물 그렁했던 엄마의 눈으로, 나의 모습을 다시 담아보고 싶다. 지금이라면 다시 못 할 것 같은, 그 때 그 순간의 나였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었던 그 표정이, 내 청춘의 표상이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불평 투성이었던 나의 청춘. 하지만 조금만 비틀어서 생각해 보면, 미래가 빤히 보이는 인생은 얼마나 재미없고 절망적인가. 알 수 없는 인생이라 더욱 아름다운 거라고, 이문세 아저씨도 노래하지 않던가. 같은 청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면서 현재를 또 아깝게 흘려보냈던, 우리의 청춘에게도 이제는 고하고 싶다. 좀 더 용기를 내 보자고, 그래서 부끄럽지 않은 청춘의 시절을 다시 시작해 보자고. △ 김주희 코디네이터는 문화재청 무형문화유산 온라인전수조사 보조연구원, 전북발전연구원 전라북도 관광객 실태조사 보조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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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1.29 23:02

January 17, 2014

나는 시험 기간에 선생님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 아니, 교칙을 어겨서도, 버릇없게 군 것도 아니다. 우리의 미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시험 기간에 책을 꺼내 읽는다는 이유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려러니 하고 넘겼으나 하루는 선생님께서 내 머리를 탁! 치며 말씀하셨다. “다를 애들 다 공부하는데 너만 딴짓하냐? ” 그런데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하다. 독서도 당연히 공부의 한 부분이다. 모든 교과 수업의 시작은 교과서를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또한 복습과 시험공부도 책을 읽으며 다시 되짚어보는게 기본이다. 그런데 책 읽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니! 참으로 모순되는 말이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미국에서의 중학교 졸업, 그리고 고등학교 일학년 과정을 수료하면서 배우고 느낀게 정말 많다. 물론 미국이라고 다 좋은게 전혀 아니었다. 사회적인 문제들도 한국에서 간간이 듣는 것과 그 속에서 직접 체험하는건 다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현재 미국의 공립학교는 맘놓고 갈 곳이 아니라는건 확실하다. 하지만 내가 다녔던 사립학교(유학생 신분으로는 공립학교 입학 불가)에서 ‘와 이런건 정말 괜찮은 방법이구나’ 했던 것이 몇가지 있다. 하나를 꼽자면 독서의 중요성 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어리버리한 한국 중학생이 처음 한게 ‘그룹 독서 활동’ 이었다. 소설책 다섯권 중에서 그룹마다 한 권씩 골라 같이 읽으며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선생님께선 우리가 매일 밤 한 단원씩 책을 읽어오게 하셨고 그 내용을 토대로 토론을 하고, 발표도 하며, 단어도 배우고, 문법도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하기도 늘고, 쓰기도 늘었다. 그럼 시험은 어떻게 보냐고? 시험은 내가 한국에서 보았던 시험이랑은 사뭇 다르게 진행된다. 어찌보면 대학교에서 보는 시험을 연상시키는 시험이었다. 번호를 고르는 문제와 단답형 문제도 조금 있었지만 진짜 핵심 문제는 많아야 세개였다. 요구하는 바는 간단했다. ‘당신이 읽은 책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무엇이며, 그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무엇인가?’ 혹은 ‘당신의 의견이 그러하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와 증거를 서술하라’ 등의 질문이었다. 당시 나는 그 첫 시험을 망쳐버리고 말았다. 수업, 시험공부, 시험과 소설책, 나의 의견을 완전히 다른 분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서운 첫 경험 이후에도 몇번 더 넘어지고 깨진 후에야 공부는 그저 정도껏 외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익숙해졌다. 나는 책이 나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이해하고 시간을 들여 생각하는 일이 공부라고 생각한다. 내용물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었는지 알아보는 일이 시험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으로 되돌아온 지금 또 다시 암기 전쟁을 하고 있다. 수 많은 공식들을 외우고, 조선시대 시조들을 외우면서 정말로 그것들을 제대로 ‘공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꼭 시험 보는 방법을 배우는 것 같다. 문제들을 풀고 나면 벌써 암기한 내용들이 가물가물 해져간다. 나 스스로 느끼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력 수준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오죽하면 한국에서 수학을 잘한다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한 내가 미국에서는 수학 천재라는 칭찬을 들었을까. 나 뿐만 아니라 미국 학교에 다녔던 거의 대부분 한국 학생들도 항상 미국학생들은 우리를 ‘역시 한국인이다! 쟤내들은 천재야!’ 라고 평했다. 하지만 이런 한국천재들은 책을 읽고 진행하는 수업에는 언제나 취약했다. 발표나 글쓰기도 마찬가지. 모두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고 인생에 도움이 되니 무조건 읽으라고 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독서를 “딴 짓” 이라고 한다면 책이 어떻게 삶을 풍족하게 바꿀 수 있는지, 진짜 인생 공부가 무엇인지 경험하지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온태현 학생은 미국 워싱턴주 올림피아시 소재 NCHS 고등학교 1학년을 수료하고 일본 후쿠오카 야나가와 고등학교를 입학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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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1.22 23:02

막걸리 아저씨 예찬

스무살의 봄, 홍대에서 저녁 술약속을 잡았다. 상대는 홍대 바닥에서 8년 정도 밴드생활을 한 잔뼈 굵은 음악가. 부스스하게 늘어뜨린 긴 머리가 한때 그의 트레이드마크였기에, 나는 그를 ‘예수 형’이라 불렀다. 예수 형은 직업이 음악을 만드는 사람인지, 술을 마시는 사람인지 헷갈릴 만큼 애주가셨고, 나는 술김에 털어놓는 그의 소싯적 밴드 무용담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길가에서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리는 캔맥주 하나씩을 들고 근처 놀이터로 향했다.밤의 홍대 놀이터는 여느 때처럼 길거리 음악가들의 공연으로 시끌벅적했다. 적당한 곳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데 저만치서 낯선 모습의 남자가 다가왔다. 다 늘어나고 색이 바랜 옷차림이었지만 그가 끼고 있던 면장갑만큼은 유독 깨끗했고, 그가 끌고 온 커다란 리어카는 온통 막걸리 병으로 가득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본 그 괴이한 존재에 깜짝 놀라 바라보고 있는 동안 예수 형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았다.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예수 형과 그의 대화는 편하고 즐거워 보였다. 그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쩌렁쩌렁하고 쾌활한 그의 목소리는 멀리서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음색이었다. 악수에 포옹까지 요란한 인사를 치루고 돌아오는 예수 형의 손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막걸리 세 병이었다. 다 마신 맥주캔을 내려놓고 종이컵에 갓 사온 막걸리를 따르며 예수 형으로부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통칭 막걸리 아저씨. 그가 홍대에 처음 모습을 나타낸 것은 10년도 더 전의 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막걸리로 가득한 리어카를 끌고 홍대를 누비는 명물이라고 했다. 이름도, 고향도 불명. 일이 끝나면 벤츠를 몰고 다닌다느니, 근처의 건물 몇 채가 그의 소유라느니 하는 출처 모를 소문들이 무성하지만 워낙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보니 진위여부를 가릴 수도 없다.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막걸리를 한 잔 들이켰다. 기막힌 맛이었다.그 후에도 홍대에서 가끔 막걸리 아저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신출귀몰한 사람이라, 찾으려 하면 절대 나타나지 않다가 생각 없이 홍대 거리를 걸을 때면 불쑥 나타나곤 했다. 그와 마주친 날이면 항상 그의 막걸리를 두어 병 사들고 집에 돌아갔다. 그의 막걸리가 탁월한 맛을 자랑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와 대화를 나눈 뒤에는 항상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는 항상 웃고 있었다. 잔뜩 쉰 그의 목소리는 항상 격양되어 있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끝자락에 가서는 서로의 목소리 싸움이 되기 일쑤였다. 그것이 그와 대화를 나누는 방법인 듯 했다. 한 병에 3000원, 두 병에 5000원. 세워서 보관하고, 취객 되기 싫으면 반 병만 마실 것. 총알같이 쏘아대는 아저씨의 유쾌한 상품 소개에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이면 어느새 손에는 막걸리가 들려 있고(어째선지 절대 한 병만 사는 일은 없다), 뭐가 좋은지 배시시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집에 돌아와서 생각했다. 내가 산 건 사실 5000원어치의 웃음이고 서비스로 막걸리 두세 병 얻어온 거라고, 횡재한 거라고. 그러면서 혼자 킥킥대다 기분좋게 취해서는 간만에 행복한 숙면을 취했다. 스무살의 봄, 이것이 내가 나의 청춘을 예찬하는 방법이었다.△이신혁씨는 서울국제초단편영상제 최연소 초청감독을 맡았으며, 현재 아티스트 창작브랜드 Project SH대표, 총괄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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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1.15 23:02

'지니어스' 이준석과 홍진호

한 고려대 학생이 쓴 아날로그적 감성의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유행했다. 스마트폰과 SNS로 대변되는 21세기에 손으로 직접 쓴 대자보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러한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에 대한 반응들 중,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었던 이준석이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청년들의 고단한 삶과 철도 민영화 문제를 연결시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비판한 것이 눈에 띄었다.먼저 이준석이란 사람은 ‘지니어스’라고 말할 수 있다. 서울 과학고를 졸업하고 하버드대를 나왔으며, 20대의 젊은 나이에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을 역임했다. 하지만 내가 이준석이란 사람을 처음 본 것은 TVN의 예능 프로그램인 ‘더 지니어스 : 게임의 법칙’에서이다. 이 프로그램은 연예인을 포함한 각계각층의 13명이 플레이어로 참가해, 매주 게임을 통해 대결하여 1명씩 탈락시킨 뒤, 최종우승자를 가리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1회에서 프로게이머 홍진호와 연합해 비상한 전략을 세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탈락자를 가리는 데스매치에서 자기가 1회 메인매치 우승자로 만들어준 홍진호에 의해 탈락하고 만다. 다만 이런 홍진호의 배신은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룰라의 리더였던 이상민이 홍진호가 잃어버린 가넷(지니어스 게임의 화폐)을 주워 다른 탈락 후보인 김민서에게 줬고, 김민서는 홍진호의 것을 마치 자신의 가넷을 주는 것처럼 속여 홍진호를 회유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자신을 우승하게 도와준 이준석과 자신에게 가넷을 준 김민서 사이에서 고민하던 홍진호는 이준석을 탈락시키는 선택을 했다. 이는 홍진호가 이상민과 김민서에게 속은 탓이기도 하지만, 이준석이 김민서보다 위험한 경쟁자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모략과 배신이 판치는 현실의 축소판인 ‘지니어스 게임’에서 ‘지니어스’ 이준석은 가장 먼저 떨어졌다.반면 1회에서 그를 떨어뜨린 홍진호는 이준석과 대조되는 사람이다. 일단 편모슬하에서 성장했고, 일반인은 ‘게임폐인’ 정도로 생각하는 프로게이머로 활동했다. 게다가 정규 리그에서 대부분 준우승을 해, 2등으로 유명한 프로게이머였다. 더군다나 1회부터 남에게 속아 넘어가는 어수룩한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프로게이머 시절의 실패와 고난을 통해 단련된 그는, 3번이나 떨어질 뻔 했으나 자신의 실력으로 끝까지 살아남아 ‘더 지니어스 : 게임의 법칙’에서 최종우승을 했다. 물론 이렇게 글을 썼다고 해서 이준석이라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새누리당 계열의 정치인이지만, 엘리트다운 자신감과 젊은이다운 열정을 방송에서 보였다. 또한 결승전에서 자신을 떨어트린 홍진호를 지지하며 그의 우승을 돕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현실의 ‘지니어스’ 이준석과 ‘더 지니어스 게임’ 우승자 홍진호를 나란히 놓고 보면, ‘안녕들하십니까’에 대해 이준석이 지적한 ‘논리적 비약’은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서로 ‘안녕들하십니까’라고 물어야만 하고, 청년들이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철도민영화와 똑같이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현실이기 때문이다. 즉, 그가 ‘더 지니어스’에서 1회만에 탈락한 것처럼, 현실의 ‘지니어스’ 이준석조차도 안녕하다고 말할 수 없는 세상인 것이다. 결국 우리는 눈앞의 현실과 그 이면의 구조적 문제를 제대로 봐야한다. 그들의 문제가 곧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문경득씨는 고려대 한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전주대 사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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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1.08 23:02

잠시 내려놓기

헤라클레스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리스신화의 영웅으로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엄청난 힘의 소유자였다. 신의 땅인 올림푸스에 올라가기 위해서 해라가 그에게 주어준 12가지 과제를 수행해야 했고 결국 누구보다 힘든 생애를 보내야만 했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들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해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면 그에게 주어져 그의 일생을 힘들게 만든 12가지 과업이 모두 헤라 여신의 속임수였는데도 말이다. 심리학자인 타이비 킬러는 헤라클레스 이야기가 인간의 중요한 심리적 태도를 보여준다고 했다. 사람들은 흔히 무엇인가를 이룬 다음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일단 집을 장만한 뒤에, 대학에 들어간 뒤에, 아이들이 좀 큰 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 등과 같이 말이다. 사람들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욕심이고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야만 나중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의 현재를 희생하고, 하고 싶은 일을 미래로 미루며 살아간다.대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취직을 하지 못한다. 지금 대외활동, 봉사활동을 해 놓지 않으면 내게 밝은 미래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정신을 옥죄고 몸을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기거나 친구와 잠시 여행을 떠날 시간이 생겨도 또 다시 자신의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무엇인가를 찾아 나선다. 물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어느 정도의 희생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꼭 내 젊음의 한 순간을 포기하면서 단순히 스펙을 위한 봉사활동이나 대외활동을 한다고 해서 혹은 1박 2일 동안의 여행 대신 TOEIC 책 한 번 더 본다고 해서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정말 다양한 대답들을 들을 수 있다. 기타를 배우고 싶다. 여행을 가고 싶다. 하루 종일 누워서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와 같은 말들이다.어느 대학에서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자신이 이틀 후에 죽는다면 지금껏 하지 못해 아쉬울 것 같은 일들을 종이에 적어보라고 했다. 학생들은 교수님의 말대로 내일모래 죽는다고 생각하고 못했던 것 하고 싶었던 것 들을 종이에 적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모두 적고 난 후 교수님이 학생들을 향해 “종이에 적은 것들을 지금 당장 실행 하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사실 지금 당장 바빠서 하지 못하거나 위 사례처럼 죽기 이틀 전에 후회할 만한 일들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아마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잠시 미뤄둔 것들도 많을 것이다. 기타를 배우고 싶었다면 지금 당장 친구, 선배 혹은 학원이라도 찾아가서 배우면 되고 하루 종일 누워서 아무 것도 하기 싫다면 잠시 하던 일들을 멈추고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된다.앞으로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걸음 물러나거나 멈추어서 숨을 고르는 것도 필요하다. 이제 2013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이 소중한 시간을 희생하면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지금껏 미래를 위해 포기하고 옆으로 미뤄놨던 일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당장 시행해 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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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2.25 23:02

실력으로 다가올 인맥·정보력 쌓기

‘민생조례 공모전에 우리학교 정치외교 석권’지난 달 18일 시상식이 진행된 ‘전주시 민생조례안 공모전’에 대한 내용이 담긴 전북대신문의 한 기사 내용이다. 이 공모전의 총 수상자 8명 중 무려 7명이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이었다.지방자치와 관련된 전공인 정치외교학을 이수하는 학생들이었던 만큼 이들은 이 공모전과 관련된 지식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글에서, 이들이 어떻게 이 공모전을 알게 됐는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 하고자 한다.이들 중 일부는 지난 하계 방학 중 산학협력현장 실습으로 전주시의회에 파견돼 다양한 실무를 경험했다. 또 다른 일부는 전주시 의정 서포터즈 활동을 하며 시 의회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전주시의회에서 위와 같은 공모전을 주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각 활동들로 얻은 내공을 활용해 응모, 당당히 입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결과적으로 이들에게는 ‘정보력’이라는 실력이 크게 따랐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평소 지방자치에 관심이 많은 정치외교 학생들이었고, 따라서 관련 분야의 경험을 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 왔다. 그 결과, 해당 활동으로 얻은 경험을 활용하기에 최적인 공모전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이를 활용할 기회를 알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는가!물론 이 ‘정보력’이라 하는 것 역시 규정하기 나름이다. 이를테면, 시험에서 우수한 성과를 내기 위해 주변 인물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족보’를 얻는 것은 정보력이라기보다는 ‘요행’이라고 평하고 싶다. 그러한 행위는 해당 시험 과목이 ‘식사대접학 개론’이 아닌 이상, ‘시험’이라는 분야와 관련된 활동과 경험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이와 관련해, 퇴폐적인 놀이문화와 술자리를 좋아하면서 학구적인 이들에게 ‘인맥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고 비아냥거리는 이들에게도 일침을 놓고 싶다. ‘인맥도 실력이다’라는 속설은 술자리에서 아부를 떨어가며 친해진 이들에게 덕을 봤을 때 쓰는 말이 아니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 그리고 생산성 있는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알게 된 이들과 서로의 능력을 공유하며 시너지를 내는 것이 바로 실력으로서의 인맥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물론 인맥과 정보력은 능력이라는 다른 실력이 있어야 보다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맥락에서, 인맥·정보력이라는 실력은 부족한 능력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시금 ‘공모전’이라는 주제로 예를 들어보자. 만약 누군가가 능력은 높지만 정보력이 떨어진다면 그는 흔히 알려져 있고 경쟁률도 높은 공모전에 참여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입상 가능성도 떨어질 것이다. 반면 능력은 비교적 떨어지지만 정보력이 높은 이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속 있는 공모전을 찾아 비교적 낮은 경쟁률로 입상할 수 있을 것이다.이처럼 당신의 경쟁력을 높여줄 진정한 의미의 인맥과 정보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은 사실 다른 능력을 키우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열심히 노력하고 관련분야 정보를 꾸준히 습득하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 끝에 얻게 된 정보로 조그마한 행운을 갖게 됐다면, 그때 당당히 말하라! 이것은 운이 아닌 실력이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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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2.18 23:02

오빠가 돌아왔다

외투를 사러 객사에 나갔더니 “오빠라고 불러다오, 오빠라고 불러다오”가 쉼 없이 반복되는 노래가 상점마다 울리고 있었다.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장미하관(장미여관, 노홍철)이 부른 이 노골적인 노래는 히트를 했고, 덩달아 장미여관은 유명한 밴드가 되었다. 장미여관의 꽤 오래된 팬인 나는 장미여관의 노래 ‘봉숙이’가 가요 프로그램에서 무려 12위를 차지하고, 장미여관이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많은 사람이 장미여관의 멤버들을 별명으로 부르며 이야기하는 모습에 복잡한 마음이 되고 말았다. 좋은 밴드가 세상에 알려졌으니 기뻐해야 하는가, 나만의 밴드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에 화가 나야 하는가. 옆에서 엄마는 “오빠라면 역시 조용필 오빠”라고 했다. 내가 “지금도 오빠야? 60대라고 하던데”라고 하니, “영원한 오빠지”라고 대답한다. ‘오빠’라는 것은 그러니까, 생물학적 나이 범위 내의 남자를 손위 아래 여자가 정답게 칭하는 것 외에, 오래도록 동경하고 선망하는 남자를 이르는 말인 것이다.그런 의미로 나에게 오빠가 있다면 백민석이다. 그는 10년 전 〈죽은 올빼미 농장〉을 마지막으로 절필한 소설가였다. 그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그가 절필하고도 3년 후인 2006년이었다. “아흐 다롱디리”와 “얄리얄리 얄라셩”같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아무 뜻 없는 말들을 계속 읽고 외워야하는 17살의 여름이었다. 교과서에는 도무지 재밌는 이야기라고는 없었다. 장마가 오면 물이 새는 집에 살거나, 노모가 눈길을 걸으며 아들 생각을 하는 이야기들은 슬프고 장황했다. 나는 좀 재미있는 이야기가 읽고 싶었고, 도서관에 갔고, 우연히 그의 책 〈목화밭 엽기전〉을 대출했다. 소설 속에는 훗날 ‘그로테스크’라고 불리는 끔찍하고 흥미로운 이미지들이 있었고,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은 자주 화를 내고 이성을 잃었다. 나는 아무 뜻이 없는 “얄리얄리 얄라셩”의 세계에서 너무 빨리, 모든 행간과 문장에 뜻이 있는 세계로 넘어왔다. 인물들이 서로 사랑하고 다치게 하는 점을 빼고 그의 소설은 지금껏 읽어왔던 어떤 이야기와도 비슷하지 않았다. 그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팬이 되었고 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여고생들이 좋아하는 연예인과 관련된 물품을 모으는 것과 성질이 비슷했으나, 힘든 일이었다. 당연히 서점에 남은 그의 책은 근간 한 두 권이 전부였다. 다른 책들은 모두 절판이었다. 출판사에 전화해도 소용없었다. 그의 소설 서평을 올린 블로거들에게 일일이 쪽지를 보내 책을 팔아 달라고 부탁했다. 대부분은 거절이었다. 그럴 것이 쪽지는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막에서 물을 찾는 사람의 절박하고 기이한 느낌을 가득 담고 있었다. 몇 년에 걸쳐 단 두 권을 뺀 나머지 책을 모두 구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사랑한 캔디〉와 〈불쌍한 꼬마 한스〉를 책장에 꽂기 위해 헌책방이 많이 있다는 도시들을 방문했다. 불행하지만 그 책들은 구하지 못했다. 나는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의 뙤약볕 밑에서 눈물을 뚝뚝 흘릴 수밖에 없었다.전주의 한 서점에서 〈불쌍한 꼬마 한스〉를 구한 것이 몇 달 전인데, 돌연 그의 새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각종 신문에 기사가 나고 그의 책을 내는 출판사에서도 홍보에 열심이었다. 절필한 ‘소설가였던’ 백민석이 갑자기 ‘소설가’ 백민석으로 나타난 것이다. 예전보다 살이 좀 쪘고, 좀 너그러워졌고, 새 소설 역시 완전히 새롭게 써졌고 읽혀야 하지만, ‘오빠’에게 그런 것은 상관없다. 드디어 오빠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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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2.04 23:02

로마가 흥할 수 있었던 이유

수레는 앞에서 끌어도 뒤에서 밀어도 움직인다. 그러나 앞에서 끄는 사람이 방향을 잘못 잡으면 엉뚱한 곳으로 가고 만다. 한 집단에서 지도층은 앞에서 수레를 끄는 사람들이다. 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를 요구할 때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는 의미의 프랑스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사용되곤 한다.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의 귀족들은 모범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모범이다. 사회 지도층이 먼저 희생하고 모범을 보인다면 시민들은 그들을 존경하기 마련이다. 기원전 218년, 전쟁이 10년째에 이르렀을 때 로마의 인적, 물적 자원이 고갈됐다. 이때 콘술 라이비누스는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우리가 먼저 부담을 집시다. 원로원들이여 우리의 신분을 나타내는 징표인 반지를 제외한 모든 금, 은, 주조한 동전을 모두 내일까지 국가에 바칩시다. 국가를 잃는다면 개인들의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라이비누스의 연설이 끝나자 원로원 의원들은 대대적인 재산헌납 운동을 펼쳤다. 모두들 앞 다투어 각종 귀금속을 국가에 바쳤다. 이때 원로원 의원들이 자발적인 재산 기부로 인해 로마는 해군을 양성하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최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건강보험료가 직장가입자 최고보험료의 절반 아래인 것이 공개돼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불평등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잘못 되도 한참 잘못된 상황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사실 이 회장이 그룹에서 보수를 받지 않아 지역가입자로 돼 있는 것도, 건강보험공단이 정해놓은 지역가입자 보험료 상한이 219만원인 것도 거짓이 아니기에 이 회장의 건보료가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회장의 건보료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대중이 거대 그룹의 총수이고 우리나라 최고의 재력가인 이 회장을 사회지도층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은 사회지도층에게 작은 것이라도 사적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 줄 것과 대중에게 모범이 돼 줄 것을 요구한다. 지도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 대중에게 모범을 보일 때 집단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사회보장제도의 일환인 건강보험료로 인한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이명박 전 대통령 건강보험료 납부를 회피하고자 편법을 사용했다는 논란이 있었고 상대적으로 수입이 높은 건축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건강 보험료를 내지 않고 버티는 경우가 일반 직장인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지속적으로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면 국민들은 모범을 보이지 않는 사회 지도층에 실망하고 계층 간 갈등만 더욱 심해지기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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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27 23:02

소비의 '눈치'

누구나 타인 앞에서‘눈치’를 보는 일이 있을 것이다. 대학생의 입장에서는 교수님들 앞에서, 또는 친구들 앞에서도 많은 눈치를 살피기 마련이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썩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자신과 함께 있는 사람의 심기를 살핀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헌데 필자는 부쩍 이 ‘눈치’ 때문에 고민이다. ‘소비’에 대한 눈치가 필자의 심기를 크게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이렇게만 말한다면 소비의 양이 많아 가족이나 지인의 눈치를 본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속사정은 정 반대이다. 필자는 오히려 소액의 소비를 할 때 눈치를 보고 있다. 새는 돈을 줄이기 위해 체크카드를 주로 사용하고 있는 입장에서, 금액이 크지 않은 물건을 구매할 때의 심정은 그야말로 좌불안석이다.실제로 체크카드로 소액의 물건을 구매하며 면박을 받은 경험도 적지 않다. 분식점에서 식사를 한 후 체크카드를 내밀었다가 사장님으로부터 ‘염치도 좋다’는 비아냥을 들은 바도 있고, 한 중국집 사장님은 체크카드로 계산을 하자 마치 들으라는 듯 ‘이놈에 카드 때문에 장사 못 하겠다’는 말을 전하셨다.택시를 탈 때에도 이러한 눈치는 이어진다. ‘단거리’로 인한 눈치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황금시간대에 단거리 이동을 위해 택시를 자칫 잘못 탄다면 호된 면박을 당하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필자는 단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타야하는 상황에서 기사 분께 죄송스러움을 전하고, 요금을 계산할 때 잔돈 정도는 받지 않으며 극도의 눈치를 본다. 아울러 대기 중인 택시는 절대 타지 않고 반드시 지나가는 택시만을 탑승하는 센스도 발휘한다. 고객이 서비스 제공자에게 눈치를 보는 ‘주객전도’가 바로 이것이 아니겠는가.적은 금액을 판매하고도 카드수수료로 인해 마진을 적게 봐야 하는 영세 상인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아울러 사납금 인상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사 분들을 비하하겠다는 의도도 더더욱 아니다. 다만 내 돈을 지불하고 재화를 구매하는 입장에서, 서비스 제공자에게 면박을 당하고 눈치를 봐야한다는 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뿐이다.아울러 소액 계산자에 대한 그러한 면박은 서비스 제공자 당사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큰돈을 시원시원하게 긁을 수도 없는 대학생의 입장에서, 그리고 체크카드 사용에 큰 편의를 느끼는 입장에서 필자는 면박을 받은 가게를 방문할 때 현금을 구비하기 보다는 해당 가게를 방문하지 않는 대안을 선택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프랜차이즈 편의점이나 대형 할인마트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앞서 언급했듯, ‘눈치’를 본다는 것은 함께 있는 상대방의 심기를 고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소비자가 카드수수료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영세 상인들을 위해 약간의 현금을 구비하는 센스를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서비스 제공자 역시 소액 소비자의 심기를 보다 고려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조금만 살핀다면 불필요한 언쟁과 갈등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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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20 23:02

너 '응답하라 1994' 보니?

요즘 금요일, 토요일이 되면 유난히도 기다려지는 드라마가 있다. 그 드라마는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이다. 작년에 고등학생들의 풋풋함을 다룬 '응답하라 1997'에 이어 이번에는 대학생들의 청춘을 아름답게 영상으로 담아내고 있다. 대체로 본편에 이어서 다시 작품을 제작할 경우 흥행하는 사례는 드물다. 그러나 '응사'는 전편보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텔레비전 앞으로 모이게 하고 있다. 더 신기한 것은 그때 당시의 배경인 1994년도 신촌을 경험하지도 못한 많은 20대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다는 점이다.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일까? 첫 번째, 우리와는 달리 정이 있기 때문이다. '응사'에서의 대학생들은 하숙을 한다. 그러나 단순히 하숙집생들과 주인의 관계가 아니다. 그들은 진짜 가족처럼 식탁에 앉아서 다 같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한다. 심지어는 하숙집생들이 주인 아주머니에게 옷을 제대로 안 다려놨다며 엄마에게 하듯이 투정을 부린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하숙집보다는 원룸이 더 생기며 여럿보다는 혼자살기를 원하는 학생들도 점점 많아진다. 이처럼 우리는 누구에게서 간섭 받기 싫어하고 점점 개인주의화가 심해지는 세대이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있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존재한다. 다만 어느 누구라도 맘 놓고 터놓지는 않을 뿐이지, 사회적 동물로서 느끼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어쩌면 많은 대학생들이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하숙집에 대한 로망을 꿈꾸는 건지도 모르겠다.두 번째는 현재와는 달리 과도한 경쟁이 없다. 현재의 많은 대학생들은 취업난에서 취직을 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장씩 자기소개서를 써내며 영어 인증 점수를 올리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한다. 솔직히 말해 대학생은 놀 수 있는 나이라고 하는 것은 옛말이다. 그러나 '응사'의 드라마 속은 우리가 꿈꾸는 대학생활을 담고 있다. 그들은 라이브 카페에 가기 위해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가게 밖에서 줄을 서 있는가 하면 실습도중 학교 체육대회에 참가하는 여유도 있다. 또한 과도한 경쟁이 없다보니 대학 친구들 사이에서도 끈끈한 우정들로 뭉쳐져 있다. 이러한 모습은 수업이 끝나면 바로 도서관으로 직행해야 하고 경쟁 때문에 동기들과 선을 긋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비록 그들도 불분명한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불안은 청춘이면 누구라도 겪을 성장통과 같은 것이지 냉혈한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을 제치고 성취해야 할 목표같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여전히 취업난과 고시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현재의 대학생들의 눈에는 그들이 무척이나 부럽게만 느껴진다.10년이 지난 후에는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이 순간도 드라마의 한 장면이 될 수 있다. 앞선 드라마들과 마찬가지로 미래의 제작자들 역시 2013년에 향유했던 청춘들의 문화, 배경, 사랑 등을 드라마 속에 담아 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청춘들이 1994, 1997년도와 같이 마냥 아기하게 그려질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시대를 막론하고 20대에게는 불안함, 불안정함이 따라다니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타의에 의해 또는 군중에 의해 휩쓸리는 청춘의 현실들은 그리 아름답게 포장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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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13 23:02

다 사람 사는 똑같은 곳

시험기간에는 어쩐지 딴청을 피우고 싶어진다. 무려 신문의 경제기사도 재밌다. 1면의 큰 기사부터 텔레비전 프로그램 소개 기사까지 꼼꼼히 읽은 뒤 다시 전공서적을 편다. 필기하려고 연필을 잡았더니 글씨를 쓸 때마다 손톱이 거추장스럽다. 일단은 손톱부터 손질하고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나는 본격적으로 손톱을 다듬고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도 모자라 여행사진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10월에 다녀온 여수, 순천 여행사진을 정리하다 사소한 기억이 떠올랐다. 이렇게 되면 이제 공부는 뒷전이다.서울 사는 친구와 여수의 유명한 장어탕 식당에 갔을 때였다. 친구는 식당에 들어서며 대뜸 서울에서 왔으니 많이 달라고 했다. 나는 서울에서 오지 않았으나 부끄러워서 가만히 있었다. 그저 친구가 넉살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장어탕을 배불리 먹고 난 뒤에는 돌산대교에 가기로 했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지금 돌산대교는 못 간다고 딱 잘랐다. 마침 태풍이 여수 바다를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라남도는 말투부터 무척 달라서 우리는 말을 할 때마다 이방인이라고 광고하는 꼴이었다. 나는 충남 논산에 살았지만 주춤주춤 하다가 서울이라고 대답했다. 무언가 굉장히 찝찝하고 이상한 기분이었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무엇을 놓치고 지나간 느낌. 아무튼, 우리는 돌산대교에 내렸고 태풍에 가로등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느낌은 부끄러움이었다. 우리 동네가 아닌 서울을 발음한 순간 스스로 지방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었다. 나는 같은 동네에 살다가 천안으로 이사 간 친구가 동네를 가리켜 시골이라고 할 때마다 뜻 모를 화가 나곤 했다. 시골이라는 단어에서는 촌스러움이 느껴졌고 불편함, 동떨어진, 뒤늦은 등의 이미지가 차례로 떠올랐다. 나는 몰래 그 친구의 험담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뒤늦게 시골의 뜻을 찾아본 일이었다. 시골의 뜻은 고향을 떠난 사람이 고향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었다. 또, 나는 서울에 무슨 공연이나 전시가 있을 때마다 자주 들락거렸다. 거리낌 없이 용산행 기차에 오를 때마다 내가 덜 촌스럽고 오히려 멋진 문화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예전에는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컸다. 유행이 퍼지는 속도가 그랬고 교통수단이 지금처럼 편리하지 않아 서울을 자주 오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서울뿐 아니라 전 세계의 예술, 문화, 패션, 문화의 최신을 인터넷으로 빠르게 접한다. 또 도로와 다양한 교통수단은 서울과 부산의 거리까지 2시간 이내로 줄였다. 바야흐로 전국 어디든 반나절이면 충분히 오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느끼는 이 서울에 대한 동경은 뭘까.여행 다니듯 오가다 보니 서울을 추억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추억은 좋지 않았던 순간들은 나도 모르게 지워버리고 즐거움과 행복만 남겨놨다. 그래서 시간 관계없이 붐비는 지하철 2호선의 짜증도, 볶음밥 맛집을 찾아 헤맸던 한여름 마포의 아스팔트 열기도, 새벽 홍대 앞의 택시 승차거부도 기억 속에 봉인되어 있었다. 이것들은 내가 논산에 살며 느끼는 불편함에 비하면 어마어마했다.아, 나는 비로소 서울 사는 친구가 그 많은 재미를 내버려두고 오직 학교와 집만을 오가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겨우 한 두정거장 차이를 줄이기 위해 출근 루트를 다시 짜는지, 전주 한옥마을의 밥집들과 객사의 커피집들에 열광하는지 알 것 같았다. 서울이든 전주든 논산이든 다 사람 사는 동네라 똑같다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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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06 23:02

트위터 이제 그만 지저귐을 멈춰라

얼마 전 SNS라고는 통 관심이 없던 친구가 트위터를 시작해 보아야겠다고 했다. 갑작스레 트위터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뭔지 궁금해 물어보니 많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어야 하는 시대에 자신만 SNS를 하지 않아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2주 후 다시 그 친구를 만나 트위터는 재미있게 하고 있는지 물었다. 친구는 멋쩍은 듯 웃으며 이제 트위터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유는 트위터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지만 각종 기업들의 광고성 글과 정치적 성격을 띠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글들만 올라와 자신이 기대했던 공간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기 위함은 SNS가 만들어진 주요한 이유 중 하나다. 트위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인 트위터는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트위터는 매일같이 문제를 일으키고 분란과 혼란을 조장한다. 모든 것이 그렇듯 트위터 자체가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트위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트위터 내에서 팔로잉은 거래된다. 팔로워를 늘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팔로잉 해주면 상대방도 보답성으로 자신을 팔로잉 해 주기 때문이다. 이를 '맞팔'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팔로워 수를 늘려가다 보면 자신이 팔로잉 하는 사람도, 자신을 팔로잉하는 사람도 수천 명은 쉽게 넘길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팔로워 수를 늘려 자신이 영향력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생각해보자. 팔로잉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면 5분이면 적어도 수십 개의 트윗이 대화창에 생성된다. 트위터리안(트위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들이 올리는 트윗들을 하나하나 읽어볼까?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다. 팔로잉 하는 사람이 천 단위가 아니라 1만 2만을 넘어선다면 더 말 할 것도 없어진다. 이러한 팔로잉 거래 방식은 애초에 대화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이다. 단지 자신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듣고 있는 것처럼 느끼기 위한 허세성 숫자일 뿐이다. 자신부터 거래 상대일 뿐인 다른 사람의 트윗에 관심을 갖지 않는데 상대방이라고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기나 하겠느냔 말이다.트위터는 더 이상 SNS 본연의 목적인 생각의 공유와 상호간 소통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이기적인 생각의 표출만 남아있을 뿐이다. 트위터리안들이 트위터 상에서 지저귀는 소리들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욕하고 폄하하는 이야기들뿐이다. 실제로 트위터에 접속해보면 보수는 진보를 욕하고 진보는 보수를 비난한다. 소식창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트윗은 광고성 트윗이 아니면 정치 성향을 드러내고 상대진영을 비난하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에게 상대방 이야기에 귀 기울일 생각 따윈 없다. 단지 자신의 손가락에서 퍼져나가는 140자의 지저귐이 중요할 뿐이다.트위터로인해 온 나라가 시끄럽다. 지난 대선 발생했던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에 이어 국방부산하 사이버사령부가 트위터를 이용해 수만 건의 친여성향 글들을 게시하고 리트윗해 대선에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 때문이다. 이로 인해 트위터는 더욱 시끄러워졌다. 트위터 대선개입과 관련해 여야, 진보, 보수 모두는 너나 할 것 없이 상대진영에 대한 흑색선전과 비방의 트윗을 끊임없이 올리고 있다. 서로 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닌 상대방을 비난하고 편 갈라 싸우기 위한 트위터라면 그 지저귐 이제 그만 멈춰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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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30 23:02

우리의 '공간'은 어디에…

우연한 기회로 대학의 '공간비용채산제'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공간비용채산제란 한정된 대학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목적으로 대학 구성원 1인당에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배정하고, 그 이상의 공간을 사용하는 구성원에게는 추가비용을 청구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 같은 공간비용채산제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여러 대학의 공간비용채산제를 찾아보던 도중, 일부 대학의 황당한 사례를 알게 됐다. 학생들이 사용하는 학생회방·동아리방 등의 학생자치공간에 대한 공간비용까지 청구하는 대학들이 그 사례였다.오늘날 대학생들에게 주어진 '물리적 공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될까? 수강생을 수용하지 못해 일부 학생들은 책상도 없이 수업을 듣고, 시험기간 도서관은 해도 뜨기 전에 가지 않으면 앉을 자리조차 없는 것이 오늘날 대학의 풍경이다. 그런데 이제는 학생들이 학내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학생자치공간에 대한 비용까지 청구하겠다니, 이 얼마나 코미디적인 발상인가!갈 곳 없는 대학생들의 비애는 교정 밖에서도 끝나지 않는다. 최근 경기도의 한 대학교 앞에서는 대학생이 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인도와 차도가 따로 구분돼 있지 않은 대학로 인근 도로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고였다.오늘날 대학로에는 사실상 인도가 없다. 좁디좁은 도로에서는 차들과 사람들이 뒤엉켜 통행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대학로가 노폭이 좁은 구도심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어디 대학로 뿐이겠는가. 자취방과 하숙집이 빼곡하게 들어선 대학 인근의 주택가에서 역시 학생들은 자동차들과 뒤섞여 좁은 도로를 지나다닌다. 오늘날 대학생들에게는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는 온전한 인도조차 사치인 듯하다.문제는 물리적인 공간에만 그치지 않는다. 대학생들의 젊음과 생활을 상징한다는 대학로에서는 술집과 식당 외에 다른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좀 더 쳐준다면 당구장이나 노래방 정도가 전부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소비, 소비, 소비! '대학로' 라는 표현보다는 '상권' 이라는 표현이 익숙해진 이 거리에서 '문화'를 영유할만한 창조적인 공간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대학로로부터 쫓겨난 '문화'를, 애석하게도 학교 역시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대학 내의 많은 공연동아리들은 항상 연습공간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른다. 심지어 공연을 위해 학교 앞 대학로로 나온 동아리들이 시끄럽다는 상가의 민원으로 인해 쫓겨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대학생들이, 대학로에서 쫓겨나는 것이다.최근 몇몇 정치인들은 소비위주의 대학로 및 위험한 대학인근도로를 정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까지 논의되는 것을 보면, 분명 간과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그러나 이 같은 논의가 진행된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아무리 커도, 이를 집행하는 곳에서 "예산이 없다"는 단 한마디만 하면 그만이니 쉽사리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학교 안이라고 어디 다르겠는가? 학생들은 이러한 '비극적' 상황을 개선해 줄 것을 학교에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공간과 예산이 한정돼 있어 어쩔 수 없다는 하릴없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은 5평 남짓한 자취방이 전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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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23 23:02

스스로에게 위로와 격려를

여느 때처럼 한 해가 가고 있다. 거리는 벌써 은행냄새로 가득 차 있고 밤에는 겉옷을 입지 않으면 추워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더위에 지쳐서 그늘을 찾고 있던 나는 어느새 차가운 아침공기 사이로 스며드는 따사로운 햇빛이 반갑다. 이맘때쯤이면 자신이 연초에 세웠던 계획들을 돌아보기 마련이다. 누구나 연초는 거창하고 멋진 계획들을 세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상에 젖어들게 되면 어느새 연초의 계획들을 잊어버리고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다가 문득 오늘 같이 연초 때 세웠던 계획들을 떠올리게 되면 '나는 한 해 동안 무엇을 했나' 와 같은 자책을 하기 시작한다. 청춘들은 말한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나는 무엇인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어.' 그러나 현실은 결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깊은 슬픔에 빠진다. 나 역시 올 한 해 동안 일만 늘어놓고 제대로 하나 한 것 없어 보였다. 어떤 날은 올바르게 살아가고는 있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잠을 뒤척이기도 했다.그러던 중 어느 책의 한 구절을 보게 되었다. 그 구절은 이러하다. '마음이 약해지면 평소에 지나쳤던 것을 자세히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 약해지면 이것저것 더 슬퍼질 일이 많아진다. 이것저것 찾아내서 슬퍼진다.' 나는 순간, 어쩌면 나 스스로가 나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옆 사람과 자신을 비교한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그러한 성향은 고급스럽고 고가인 상품이 더 잘 팔리는 소비적 풍토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타인과 비교하여 자신이 늘 앞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과정보다는 결과를, 질보다는 양을, 느림보다는 빠름이 우선시 된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내가 타인보다 이뤄낸 것이 없거나 뒤쳐진다는 생각이 들면 불안해지고 괴롭다. 그리고 이러한 슬픔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신 스스로를 절벽으로 밀어낸다. 잠시 여유를 내어 자신을 돌아보자. 나는 빠르게 가고 있지는 않아도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 혜민 스님은 고통과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있는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배고프면 배고픈 대로, 화가 나면 화가 난대로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스님처럼 꾸준하게 내면을 단련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 아직은 미숙하고 어렵다. 그러나 인정하는 것을 시도하기도 전에 애써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자신을 자책하면서 억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명언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명언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고통스러운 것을 억지로 즐기면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즐기지도 못하는 것을 즐기라고 하는 것조차 스트레스가 된다. 차라리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현재의 순간만 바라보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오히려 성장의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매 순간이 경쟁으로 치닫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좀 더 사랑할 필요가 있다. 이 각박한 삶속에서 스스로마저도 자신을 외면하고 궁지로 몰아넣는다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비록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닌 나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나를 생각하며 자신에게 격려와 위로를 보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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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16 23:02

갈팡질팡해도 괜찮아

기숙사에 살고 있지만, 점심은 거의 사 먹는다. 점심시간은 한 시간 남짓인데 우리학교 본관과 기숙사는 꽤 멀다. 빠른 식사를 위해서는 메뉴 역시 서둘러 골라야 한다. 그런데 맙소사, 메뉴판에는 20가지가 넘는 음식 이름이 쓰여 있다. 학교 근처에서 메뉴가 단출한 가게는 보지 못했다. 이때부터 나는 헤매기 시작한다. 오므라이스를 먹을까 했다가 김치찌개와 순두부찌개 사이에서 고민하고, 주문이 들어가기 직전에 라볶이로 메뉴를 바꾼다. 메뉴가 이렇게나 많은데 여기서 하나만 골라야 한다니 사실 좀 잔인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고함20(20대 인터넷 언론 매체)에 가보니 매뉴얼을 주제로 기획기사가 여럿 올라와 있다. 20대의 매뉴얼 강박증은 스펙 쌓기 경쟁에서 비롯되었으며, 때문에 매뉴얼을 따르는 것은 개인의 의지로 보기는 어렵다는 내용이다. 취직 준비 매뉴얼을 검색하니 기업마다 차별화한 적성검사 목록이 쭉 뜬다. 또 다른 세계를 본 느낌이다. 내가 아는 매뉴얼이라고는 스타크래프트 경기 방식 몇 가지였다. 흔히 테크트리라고 불렀는데, A테크트리로 경기를 운영하면 방어율이 높아지고, B테크트리를 타면 빠른 공격을 가하고, 저글링을 좀 더 생산하고…하는 식이었다. 떠올려보면 나는 꽤 오래전부터 매뉴얼과는 아주 먼, 갈팡질팡하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진학도 인문계, 상업계 선택지에 요리 특성화 학교까지 끼워 넣자 지친 담임선생님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이과, 문과 선택으로 몇 주를 고민했다. 공부는 어땠느냐면, 수업 내용을 공책에 정리하다가 음악을 듣고, 창틀에 앉아 야자 시간을 보내고 몰래 나가 운동장을 뛰는 식이었다. 독서를 좋아해서 언어 성적은 괜찮았지만, 성적이 좋았을 리 없다. 대학교를 잘 다니다 돌연 취직을 해서 일 년 직장 생활 뒤에 재입학하기도 했다. 로드스쿨러들처럼 여러 학교의 강의를 경험해 보고 싶기도 하다. 요새는 어떤 일을 그만두어야 할지, 계속 해야 할지, 또다시 갈팡질팡하고 있다. 심리학 공부를 막 시작했는데 난생처음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기엔 내 몸이 하나라 아쉽다. 추석에 큰집에 가니까 어른들이 '슬슬 취직 걱정해야겠네'하고 말을 걸었다. 나는 '출판사나 방송사에 들어가지 않겠어요? 근데 소설가도 되고 싶고 그림이랑 디자인을 배워서 북디자이너도 하고 싶어요. 이상심리전문가도 재미있어 보이고요. 뭐 어떻게든 되겠죠?' 하고 답했다. 뜨악한 얼굴로 어느 하나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지 물어오는 분도 있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있을 리 없다.소설 작법에서 우연은 찬밥신세다. 주인공과 기타 인물들은 늘 필연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 이야기를 맺기 위해 우연을 남발한 글이 있다면 합평 시간에 그야말로 가루가 되도록 혼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제 삶에는 나처럼 갈팡질팡하며 우연과 의지 사이를 넘나드는 사람도 있다. 소설가 이기호와 극작가 버나드 쇼가 그렇다. 언젠가는 초록색 표지에 지은이 이기호라고 쓰여 있는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를 옆구리에 끼고, 버나드 쇼의 묘를 방문하고 싶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이다.학보사에 들어오게 된 것도 대내외 활동 스펙 쌓기와 같은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친한 선배가 학보사 생활을 즐거워하기에, 그렇게 재밌나? 하며 기웃거린 게 여기까지 와 와버렸다. 덕분에 청춘예찬을 쓰는 기회도 얻었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갈팡질팡해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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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09 23:02

불안한 스캔들

지난달 26일 다이나믹듀오의 멤버 최자와 설리의 열애설 발표되고 이어서 오종혁과 티아라 소연의 열애설이 함께 터졌다. 하루 만에 유명 연예인의 열예설이 2 건이나 발표된 것이다. 각종 검색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의 상위를 열애설 당사자들의 이름이 차지했고 SNS도 이들의 데이트 사진과 동영상 등으로 도배됐다.평소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지 않는 편이라 인터넷 페이지를 넘기려고 했지만 SNS게시물에 달려있는 댓글 몇 개가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을 멈추게 했다. "정치에 뭔일이 일어나고 있는게 틀림없어"라는 글이었다. 이 외에도 정치적 문제로 인해 정부에서 연예인의 열애설을 의도적으로 퍼트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 혹은 확신을 담은 글들이 난무하고 있었다.2011년 4월이 떠올랐다. 당시 일명 서태지·이지아 사건은 국민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이 열애설과 함께 대두되는 주장이 있었다. 서태지와 이지아의 재산 분할 청구 소송에 대한 기사가 처음 나가기 1시간 전 "BBK 수사 도중 검찰이 김경준에게 '이명박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면 형량을 낮춰주겠다'고 보도한 시사인 보도가 허위가 아니다"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BBK 보도를 묻기 위해 서태지-이지아 보도를 낸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연예인들의 열애설을 일부러 퍼뜨린다는 등의 음모론이 아니다. 이런 음모론의 사실 유무와 관계 없이 왜 연예인들의 이야기가 이슈화 될 때마다 국민들 사이에서 정부가 무엇인가 숨기려고 언론을 이용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언론에 대한 불신이 국민들 사이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일부 국민들은 대한민국 언론을 국민의 눈을 가리기 위한 정부의 도구정도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미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떨어질 만큼 떨어져 있다. 매년 각국의 신뢰도를 조사하는 에델만은 '2012에델만 신뢰도 지표조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미디어 신뢰도가 2011년에 비해 16%포인트 하락한 44%라고 발표했다. 이에 더해 우리나라를 일본, 러시아와 함께 믿지 못하는 나라(DISTRUSTER)로 분류하기도 했다.언론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신문이나 방송이 국민에게 전할 수 있는 내용은 한정적이다. 신문은 지면이 한정돼 있고 방송은 방송시간이 제한돼 있다. 언론은 우리나라 그리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한정된 지면과 시간에 할애해야 한다. 국민은 언론이 전해 주는 정보를 통해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를 이해하고 우리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잘못된 부분 혹은 수정되어야 할 부분은 없는지 생각하고 판단한다. 국민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이 언론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보도되지 않는다면 국민은 부족한 정보로 결국 잘못된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이때 국민은 자신의 선택 혹은 판단이 잘못되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이것이 언론이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하는 이유다. 언론은 지금부터라도 다시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간단하다. 바로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반드시 알아야 할 소식을 진실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국민들은 연예계 스캔들에 더 이상 불안해 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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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02 23:02

생각 잘하는 사람 되기

오늘도 취재에 지친 대학신문 기자들은 종종 기사보다 칼럼이 더 쉽고 재밌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번거로운 취재를 적게 해도 되고 기사보다는 마음가는대로 써도 되는 것이 칼럼이기 때문이란다.그러나 필자는 요즘 들어 칼럼을 쓰기가 참 어렵다. 좀 더 정확히는 쓰기 무섭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칼럼은 기사에 비해 취재는 적게 해도 되는 반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관적인 견해를 배제하자는 언론관을 가진 필자의 입장에서, 기사는 타인의 말을 잘 취재해 이것을 깔끔하게 정리하기만 하면 돼 생각을 비교적 적게 해도 되지만 칼럼은 내 생각을 원고에 담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는 점에서 부담스러운 것이다.칼럼에 대한 이 같은 부담은, 생각을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에서 기인한다. 사실, 필자는 요즘 생각을 하는 것이 어렵다. 생각을 잘 안하기 때문이다. 필자뿐만 아니라 생각에 대한 부담을 가지는 사람들은 내 주위에도 부쩍 늘고 있다.최근 들어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어려워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본다. 먼저 생각에 대한 책임이 과거보다 커진 점이 하나의 이유이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생각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도 많아졌고, 이에 따라 그 생각을 열람할 수 있는 사람도 늘었다. 아울러 생각에 대한 코멘트를 달기도 용이해져 다양한 이견들과 비판이 난립하게 됐다. 본디 사람이란 타인에게 비판받기를 두려워하는지라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기는 다소 조심스러워진다.또 다른 이유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정보화 물결에 의해 언제든 타인의 생각과 견해를 차용할 수 있게 됐다. 생각을 잘 하는 사람들의 견해와 주장을 스마트폰 검색 정도로도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구지 내 에너지를 소비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나보다 생각을 잘하고 또 전문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마치 내 생각인 것처럼 말하고 다니기 훨씬 용이해 졌다. 생각하지 않아도 무식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칼럼을 쓰는 필자의 마음이 바로 그렇다. 내가 쓰는 이 생각이 누군가에게 '까이지는'않을지, 이미 웬만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유식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언급했을 터인데 진부하지는 않을지 걱정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생각에 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겠지만, 특히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정립해 가는 과정인 20대들에게는 더더욱 고민되는 문제일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꾸준히 생각해야 한다. 나보다 생각을 잘하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생각에 대한 권리를 위임하기만 한다면, 생각에 있어서도 기득권 논리가 작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각에 유능한 몇몇 사람들만이 생각을 담당하고 대다수 사람들이 이를 차용하기만 한다면, 마치 돈을 가진 자가 돈을 벌 듯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만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아울러 능동적인 인재가 되기 위해서도 생각은 필요하다. 생산력이 능력에 대한 주요 기준이 되던 시대는 끝났다. 우수한 기획력과 사고력이 당신을 성공시키는 더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생각은 어렵다. 내 생각을 타인에게 인정받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글 잘쓰는 작가들이 꾸준히 습작을 만들어 내듯이, 우리도 꾸준히 생각하는 연습을 하며 '생각 잘하는' 사람이 되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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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25 23:02

의심하는 눈초리

로버트 카파 사진 전시회에 다녀왔다. 그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다양한 전쟁을 사진 기록으로 남기고 전쟁 현장에서 죽은 종군기자다. 한 군인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순간을 찍은 사진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은 유명하다. 그의 사진은 이제 저널리즘을 벗어나 작품으로써 전시된다. 전쟁 사진들을 본 사람들은 공포, 연민, 분노 등의 감정을 생생하게 느낀다. 이는 프란시스코 고야나 파블로 피카소의 전쟁 그림을 볼 때 상상력이 불러일으키는 감정보다 농도가 짙다. 사진은 지금 보는 것이 가공하지 않은 진실이라고 착각하게 한다. 단순히 생각할 때, 그림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이미지이고 사진은 기계로 '찍어서' 인쇄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림은 전쟁의 고통과 폐허를 재배치하고 종합한다. 예를 들어 고야의 그림 속 프랑스군은 스페인 사람의 시신을 나무에 걸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반면 사진은 카메라 렌즈 앞의 피사체를 그대로 가져온다. 그러므로 사진은 이미지의 내용을 환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고 간주한다. 사진이 그림과 달리 무엇을 증명해 준다고 여기는 이유다. 전시회 액자에 걸려 있어도 여전히 사람들은 사진 역시 창조자가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사진을 손보지 않았다면 사진 자체가 말하는 무엇, 또 사진을 보는 사람이 느끼는 무엇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실은 아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구도를 잡아야 하며 피사체를 정해야 한다. 구도를 잡고 무엇을 찍을까 고려할 때 그 밖의 것들은 배제되는 것이다. 그림과 같이 사진에는 찍는 사람의 의도가 포함된다. 피사체가 어떤 포즈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찍었다는 사진이 평범해 보이지 않을 경우, 사진은 보는 사람들을 자극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끼라고 강요하는 모양이 된다. 특히 사진이 보는 사람의 행동과 가치관을 조작할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사람들은 신문의 글자보다 사진에 먼저 집중하며, 때때로 사진을 통해 현실을 훨씬 더 잘 보게 된다고 느낀다. 실제로 보통보다 사물을 더 잘 보이게 해주는 것은 사진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사람들의 도덕적 판단을 흐리게 한다. 죄를 지었을지도 모르는 사람의 사진 중 좀 더 추악한 것을 선별해 싣는 일은 불손하다. 죄와 상관없는 부분을 드러내고 선입견을 이용해 낙인찍기 때문이다. 지난 8월 30일, 다양한 신문들의 1면 사진이 그러하다. 1면을 장식한 인물은 한 사람이었으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각 신문의 이석기 의원은 웃고 있었고, 삿대질하고 있었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고, 곁눈질하고 있었다. 내란죄 혐의를 받고 증거로 대화록이 공개된 상황에 지을 표정은 아니었다. 웃는 사진의 경우, 그의 말대로 내란죄 혐의가 음모이든 국정원이 주장하는 대로 실제 내란을 꾸몄든 어느 쪽으로 보아도 괴이했다. 언론이 특정 인물과 단체의 이미지를 몰아가고, 거대한 흐름의 중심을 취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사회의 변화와 함께 매체와 도구를 바꾸어가며 존재했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이미지 노출, 사생활 침해,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위해 이용하는 경우 등의 윤리적 문제점들 역시 과거는 물론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제는 비판 없이 수용하고 의도를 의심치 않던 태도를 돌아봐야 할 때이다. 사진은 결코 현실의 객관적 반영이 될 수 없다. 의도적으로 사진이 표현하지 않은 부분을 탐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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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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