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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 권하는 사회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만해 한용운의 ‘복종’이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여기서 복종의 대상이 되는 ‘당신’은 관점에 따라 사랑하는 연인, 일제 강점기의 잃어버린 조국, 혹은 종교인으로서 추구해야 할 진리 등으로 해석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당신’이란 우리 사회의 저변에 깔린 복종을 권하는 문화가 되지 않을까?우리 사회의 복종을 권하는 문화는 전통적으로 유교적 가치관을 가진 조선시대부터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충과, 효를 바탕으로 부모와 어른들에게 조건 없는 복종을 하도록 강요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일제에 의해 복종을 하도록 길들었고, 해방 이후 근대적 국민국가의 건설이라는 이름으로 조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 할 것을 맹세했다. 특히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선 이 시기에는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가 학교를 비롯한 온 사회에 팽배하였다.그리고 현재, 우리는 계속해서 복종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이른바 ‘착한아이’로 성장하도록 강요받고, 좋은 학교에 가야 성공한다는 어른들의 말에 따라 중등 교육을 마칠 때 까지 오로지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부만 하는 ‘범생이’로 자란다. 대학에 진학을 해서도 사회적으로 규정된 성공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스펙 쌓기에 청춘을 불태운다. 여기서 조금만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면 소속된 사회 집단에서 퇴출당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어른들의 기준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들에게 남은 것은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만능주의와, 나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타인과 사회 일반에 대해서는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이기주의뿐이다. 이러한 문화의 어두운 면은 세월호 참사 이후 여실히 드러났다. 그저 여태껏 교육받은 대로 어른들의 말을 잘 따랐던 수많은 착한 아이들이 차디찬 바닷속에 수장되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는 이른바 ‘관피아’로 통칭되는 복종의 문화에 길든 많은 사람들이 연루된 부정행위와 그에 따른 문제들이 속속들이 적발되었다. 누구 하나 부정을 고발하려 들지 않았다. 이와 같은 복종을 권하는 사회에서 더 이상 ‘소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의가 이루어지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하는 정당한 외침에 돌아오는 건 ‘가만히 있으라’는 일방적인 명령뿐이었다.이러한 시점에서 소위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대학생들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우리는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우리 주변의 이웃들이 겪는 아픔들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세월호의 유가족들이 자식을 잃은 슬픔을 뒤로하고 우리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밀양의 어르신들이 그토록 처절하게 송전탑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리고 행동하자. 사회 문제에 대해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가지고 그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의 소소한 실천이 거대한 불의와 맞설 수 있는 위대한 저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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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06 23:02

틀려도 괜찮아, 부드러워도 괜찮아

모든 물건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실패를 딛고 우연에서부터 기지개를 펴, 더 큰 감동을 주는 물건들도 있다. 1968년, 3M사의 연구원 스펜서 실버는 기존의 접착제들보다 강력한 물질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접착력은 좋지만 쉽게 떨어져 버리는 물질이 탄생한 것이다. 낙담에 빠진 그에게 직장동료 아트 프라이는 접착제를 바른 종이 상품을 제안한다. 아트 프라이는 주말마다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성가대였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찬송가 쪽수를 찾아야 해서 종이를 한가득 끼워두었는데, 찬송가를 펼치면 종이가 쏟아져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종이가 쏟아지지 않게 하려고 풀을 붙여두면 찬송가의 얇은 페이지들이 찢어져 버리곤 했다. 그래서 잘 붙지만 깨끗하게 떨어지는 종이를 판매하자는 아트 프라이의 착안 덕분에, 드디어 1981년부터 포스트잇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그로부터 포스트잇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활의 편리를 제공하고 있다. 조금 전 일도 깜박깜박하는 나에게도 포스트잇은 없어서는 안 될 친구이다. 사실 포스트잇 말고도 내 주변에는 수많은 메모들이 여기저기 남겨진다. 스마트폰에, 몰스킨 노트에, 바탕화면 메모장 파일에. 메모들은 내 흔적이 닿는 곳마다 살아있어서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갖가지 일들을 나 대신 기억해준다. 하지만 필요한 순간마다 바로바로 찾아 쓸 수 있는 편리함에는 아직도 포스트잇을 따라갈 자가 없다.크기별로 색색별로 구분된 포스트잇들은 복잡한 세상일들을 잘 알아볼 수 있게 도와준다. 심지어 어떨 때는 붙어있는 위치만으로도 여러 일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다. 때로는 벽에 한가득 붙어있는 포스트잇들을 보며 나만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세상에 감탄하기도 한다. 포스트잇에 뭔가를 적는 동안에는 생각이 정리되고 상상력마저 튀어나오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때로는 내가 왜 적지 않고서는 하루라도 마음 놓고 살 수 없게 된 것인지 한탄이 나오기도 한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메모가 된 것 같아 부쩍 심통이 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물 먹은 담요처럼 기분이 내려앉을 때에도, 작고 귀여운 포스트잇 뭉치를 보면 다시 한 번 새로운 무언가를 적고 싶은 마음마저 드는 것이다. 이렇듯 포스트잇은 늘 내 곁에 있어주는 고맙고 깜찍한 친구이다.포스트잇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드라마틱한 이야기마저도 감탄과 함께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실패한 줄만 알았던 작품이 발상의 전환으로 새롭게 가치를 얻은 이 사례는, 창의적 사고와 유연한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일깨워준다. 그리고 실패에 좌절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우연이 필연으로 바뀔 수 있음을 알려주어, 잠시 넘어진 청춘들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준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 ‘틀려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로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도 준다. 또한, 다른 종이들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도 스스로 붙었다 떼어졌다 하며 유연하게 전체의 의사소통을 돕는 모습은 사회에 첫발을 디딘 초년생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더운 날씨에 울컥하여 맥주집을 향하고 싶을 때마다 포스트잇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유쾌하게 웃어 보는 건 어떨까? 붙였다가 언제든지 뗄 수 있으니 틀려도 괜찮다고, 부드럽게 살아도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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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30 23:02

학생을 위한 유토피아

대한민국 학교에서 필수적으로 진행하는 야간 자율 학습이 해외 토픽에 올랐다. 토픽의 주제는 ‘세상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일’ 이라는 주제였다. 한국 학생들처럼 하루 일과가 획일화되어 있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아침 6시에 기상, 등교, 정오가 다 되는 시간까지 공부, 그리고 취침. 사실상 하루 24시간 중에 3/4인 18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셈이 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하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한 준비 과정이다. 국어와 영어를 배워서 세계와 교류하고 폭 넓은 학습을 할 수 있게 준비한다. 수학을 배워 논리력과 공간 지각 능력을 기른다. 도덕과 예체능 과목을 배워 사회에 적응하고 즐기는 능력을 기른다. 이렇게 학생은 12년 동안 자신의 뇌를 발달시키고 지식을 얻는다. 그리고 대학교에 가서 자신이 배우고 싶은 과목을 선택한다. 뇌를 발달시켜왔기에 공부하기에 훨씬 수월하다. 이론상으로는 가장 완벽한 교육 과정이다. 한국 학생들은 세계적인 학술 대회에서도 항상 수상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기술력과 지적 능력을 지닌 학생들이 사회 각계각층으로 뻗어 나가 대한민국 또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행복을 느끼는가? 학생이 공부하도록 강요하여 성적을 이끌어내는 교육 환경은 좋은 환경인가? 학생들의 만족도와 행동을 보았을 때 꼭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한국 사회의 인식은 성적에 의해 극단적으로 계층을 가른다. 이는 한국 학생들의 높은 자살률과도 직결된다.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은 자신의 계층의 현실을 깨닫고 극단적인 선택을 택한다. 자신의 자녀가 좋은 계층에 속하길 원하는 어른들은 학생이 하루에 18시간씩 학교와 학원에 있어야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학교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공부란 불가능하다. 공부만이 뇌를 위한 계발이 아니다. 어떤 행위이든 집중하여 뇌를 사용한다면 뇌는 꾸준히 계발된다. 단지 책상 앞에 학생을 앉힌다고 해서 학생이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하는 사람만 한다. 나머지는 않는다.’ 라는 속설은 ‘성적의 계급화’를 가장 잘 설명한다. 체육 활동은 공간 지각 능력과 사회성을 극명하게 발전시킨다. 이는 미술이나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동아리 활동을 통한 집중은 학생이 ‘원해서 공부할 수 있게’ 만든다. 학생들이 원하는 공부를 택하고 그를 지원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교육은 학생이 학습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막는다. 모범생이던 학생이 대학에 간 이후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창의력보다는 암기력으로 승부한 학생들, 주어진 교과서만 외우고 자신이 공부거리를 찾아서 하는 능력은 떨어진 학생들은 학습적으로 자립할 수 없다. 이런 현상이 반복된다면 학교는 교도소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모범수와 다를 것 없다. 아무리 교도소 내에서 모범수였어도 자유가 되면 방황하듯이, 모범생이라는 학생들도 자립성이 떨어지면 방황한다. 지금 한국에 학생들을 위한 유토피아는 없다. 어른들은 현 제도에서 가장 맞는 제도를 골랐다고 합리화한다. 그리고 어른들의 말이 맞는 말이라고 합리화한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학교를 소개할 때 말하듯,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며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학생이 원하는 교육이 진정한 교육이다. 그 교육이 더더욱 효과적이라면 그것이 올바른 교육이다. 한국은 지금의 교육 제도에만 고착화되어 바꾸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모든 학생이 지금의 제도에 ‘일체화’ 된 지금, 조금의 변화가 가장 큰 효과를 불러올 때다. △김종표 군은 전북교육청 학생단으로 활동하며 최우수 상을 2회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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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23 23:02

초등학생들에게 “넌 꿈이 뭐니?”라고 물어보면 “가수요!”, “의사요!”, “외교관이요!” 등 많은 답변을 듣는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기특하게 여긴다. 나도 그랬다. 내 초등학교 때 꿈은 동물병원 의사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고등학생이 된 나는 더 이상 어른들의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내 꿈이 왜 하나의 ‘직업’이어야만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청소년은 직업이 꿈이 돼서 머리에 새겨지고 그것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도 않는다. 나는 그 질문을 던졌고 결론을 내렸다. 꿈은 하나의 직업이 아니다. 숨 쉬고 살아갈 삶이 한 번밖에 없는 것도 슬픈데 꿈마저 한 직업으로 결정지어야 한다면 너무 우울한 인생일 것 같지 않은가?EBS 지식채널e, ‘교육 시리즈-열다섯’을 보면 아일랜드 아이들을 위한 어른들의 아름다운 선물을 볼 수 있다. 아일랜드 교육 시스템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대학 진학을 위한 입시 공부였다. 매일 경쟁을 위해 러닝머신을 뛰듯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며 잘못을 느낀 어른들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달리는 것을 멈추고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어른들은 마침내 엉뚱하지만 아름다운 선물을 줬다. 바로 시간이다. 중등 3학년을 졸업한 15살 아이들에게 1년의 세월, ‘전환학년’을 선물해줬다. 1년간 학교에 다니지 않으며 자신이 배우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즐기며 보낸다. 기업, 대학, 봉사단체, 가게 등은 자신들이 가르쳐 줄 수 있는 기술, 지식을 무료로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전환학년은 자신이 정말 뭘 좋아하는지, 미래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었다.우리나라 학교에서는 하나의 교육과정을 따라 모든 아이들이 공부한다. 각자 좋아하는 것, 개성이 다르지만 가야 하는 길은 하나뿐이다. 마치 경주에 나가는 말들이 옆을 보지 못하도록 눈에 가림막을 달아 놓은 것 같다. 가수 이승기의 노래 ‘음악시간’에 나오는 가사처럼 “왜 우리는 다 다른데 같은 것을 배우며 같은 길을 가게 하나요….”이렇게 어른들이 만든 틀 속에서 사는 청소년들이지만 결국 내 인생을 선택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우리 청소년들도 이제는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스스로 가지며 살아야 한다. 돈 많이 주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 보다,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이 훨씬 더 값지다는 사실을 알고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 질 수 있을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사람은 그렇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삶이 너무나 즐겁다. 내 꿈을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은 그래야만 한다. 어제는 뿌듯했고, 오늘은 즐거웠으며, 내일은 기대돼야 한다. 내 모습을 관찰하고 새로운 나를 발견해 꿈을 그려야 한다.청소년들은 많은 꿈을 꿔야 한다. 모든 걸 잘 할 수는 없어도 많은 걸 즐기는 삶을 살고, 치열한 경쟁에서 이자 하기보단 경쟁에서 한 발짝 벗어나 뒤에서 오는 친구들과 함께 걸어 나가야 한다. 나는 사랑스런 아이의 아빠가 되는 것, 배낭 메고 세계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며 친구들을 만드는 것 등 많은 꿈을 꾼다. 앞으로 살아갈 동안 더 많은 꿈을 꿀 것이다. 직업을 가지고, 가정을 이뤄도 꿈꾸는 일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수많은 꿈을 꾸며 오늘을 행복하게 살기를 희망한다.△김한결씨는 청소년 토론 프로그램 ‘정세청세’기획팀, 청소년 평화통일 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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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16 23:02

푸른 봄날의 자화상

며칠 전 서울에 사는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휴식차 전주로 여행을 온다는 것이었다. 거의 2년간 만나지 못했던 터라 반가운 마음에 곧바로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한옥마을의 조용한 막걸리 집에서 술잔을 부딪쳤다.이 친구와의 인연은 군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공간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잦았다. ∥내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그 친구의 여행담이었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여행을 통해 변화된 자신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 등등, 꾸밈없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막연한 아름다움이 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그때까지 나는 이렇다 할 여행을 한 경험이 없었다. 여행을 통해 분명히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을 함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금전적인 문제나 다른 계획들에 차질이 생길 것 등을 생각하다 결국에는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것은 비단 여행뿐만이 아니었다. 대화를 하다 보면 내가 평소에 하고 싶어 했지만 하지 못한 것들을 그 친구는 대부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와 나의 차이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답을 찾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나는 매 선택의 순간마다 내 자신에 집중하기보다 주변의 환경과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는 데 급급했다. 지금 하고 싶은 것들은 나중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 달랐다. 자신이 좋아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그냥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 순간밖에 느낄 수 없는 행복을 그는 즐기고 있었다. 그 친구를 통해 나는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 그렇게 나는 내 행복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었다.그리고 우리는 다시 만났다. 오후 늦게 와서 한다는 소리가 늦잠을 잤단다. 그럼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더니 계획 같은 건 없다며 되레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며 멋쩍은 듯 웃는다. 심지어 밤에 묵을 숙소도 잡지 않았다고 한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 친구가 자신만의 청춘을 즐기는 나름대로의 방법이었다. 아무렴 어쪄랴. 지금 이 순간, 행복하면 그만이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우리의 푸른 봄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친구와의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대화의 주제는 여느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서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었다. 아직 정확한 진로는 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이 좋아하는 일들을 하다보면 누구보다 멋진 어른이 되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하나씩 늘어놓았다. 그의 눈은 열정으로 빛났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나는 그 친구의 눈에 비친 나 자신을 보고 있었다.40점의 자화상을 남긴 반 고흐는 캔버스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오로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를 열정적으로 살았다. 그는 행복했다. 가난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때때로 사회가 원하는 혹은 부모님이 원하는 기대에 미치기 위해 자신의 꿈과 현재의 행복을 저버리고 수동적인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청춘들에게 160년 전의 화가 반 고흐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곽현문씨는 전북환경운동연합 푸르미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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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09 23:02

스스로 배우고 싶어서 배우도록 도울 수 있다면

방학이 다가오며 복도에 점점 여름의 유쾌한 활기가 가득 찬다. 운동장에서 불어오는 더운 기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쁘게 여름을 맞이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선생인 나조차도 서운한 마음을 잊고 방학을 기다리게 된다. 이렇게 여름이 오면 벌써 색종이를 반 접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벌써 한해의 반이 갔는데 그동안 나는 무얼 했나 싶어서 다시 3월의 기억을 떠오려 본다.3월에 학부모님들께 보내는 편지에, 내가 써뒀던 문구들이 있지 않은가. 개학 전날 잠을 뒤척이며 이리저리 단어 속에서 헤매다 나름 야심 차게도 아이들과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고 썼었다. “저는 아이들에게 많이 물어보고 많이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선생님이, 아이들과 아이들이, 서로 소통하고 나누는 교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표현하고 소통하고 나누며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존중하며 함께 땀 흘려 일하고 수확을 기대하는 농부, 즉 하나의 ‘정신적 농부’로 아이들과 함께하려 합니다. 그리고 수확에 대한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눈에 보이는 수확이 많든 적든, 우리가 함께하는 길에서 더 큰 의미들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약속한 것들이 얼마나 잘 실천되었는지 반성해보며, 어찌 됐든 작게나마 실천의 발자국을 옮기고 있었다고 다시 한 번 스스로 다짐을 새겼다. 사실 생각해보면, 선생이 되었든 엄마가 되었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이 스스로 하고 싶어서 무언가를 하도록 돕는 일이다.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아이의 자발적 행동은, 상이나 벌과 같은 ‘당근과 채찍’에 의한 행동보다 훨씬 오래가고 만족도 크다. Daniel Pink는 저서 〈Drive〉에서, 스스로 하고 싶다는 동기부여의 요소로 ‘자율성(autonomy)’, ‘숙련(mastery)’, ‘목적(purpose)’의 조화를 이야기했다. 즉, 아이들 마음속에서 내가 정말 하고 싶어서 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동기 부여의 핵심이다. 그래서 아이들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게 돕고,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려주는 것이 학습에 대한 주인의식을 높여주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하지만 우리 생활에 깃든 조급함은 최초의 교육이 시작된 때부터 우리를 괴롭혀 왔다. 선생인 나조차도 항상 진도라는 물리적 한계에 추격당하며 조급해하는 것이, 슬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항상 나 스스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지금 이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자발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아이들의 삶을 교실로 한 발짝 초대하는 것이 나름의 정답이 아닐까 싶다. 일단 시계를 자주 쳐다보는 습관부터 줄이고.나는 학생이었을 때도 3월에서 2월로 한 해를 보냈고, 졸업한 지금도 여전히 3월부터 2월의 삶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나에게 7월은 해의 고민을 한 번 더 살피는 반 틈의 시간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해를 절반쯤 보낼 때마다 전보다 너그럽지만 수줍어진 자신을 발견한다. 풋내는 조금씩 벗어가는 것 같지만, 오히려 아이들 앞에 어떻게 서야 할지 고민은 점점 커져간다. 어렵겠지만 배우고 가르치는 것에 대한 지금의 고민을 계속해 간다면 내가 꿈꾸는 교실도 조금씩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송은정 교사는 전라북도 교육연구정보원 정보영재강사, 교육부 스미트교육 중앙선도교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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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02 23:02

우리가 극복해야할 조선의 말폐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흔히 조선시대를 비난한다. 그러나 대부분 그 사람들이 근거로 드는 것은 사실 조선의 말폐(末弊)이다. 여기서 말폐란 ‘말기의 폐단’을 가리킨다. 즉, 그들이 비난하는 조선은 이미 거의 망해가던 시절의 악습에 가깝다.조선이 신라나 고려처럼 오류와 모순을 극복하려 시도한 후속 국가에 의해 대체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단계에 접어든 일본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했기 때문에 스스로 말폐를 청산할 기회가 없었다. 게다가 그 이후의 광복이나 분단, 대한민국의 수립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라는 세계사적 구조에서 주어진 것들로, 우리의 선택이나 노력과는 별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극복되어야 할 말폐가 여전히 잔존할 수 있었다. 때문에 아마 구석구석 많은 말폐들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크게 두 가지만 정리해보았다.첫 번째 말폐는 상전-노비 관계를 연상하게 하는 전근대적인 노사관계이다. 물론 제도적으로 노비제도는 공노비 해방(1801년)과 사노비 해방(1894)을 거치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이러한 노비해방은 쟁취의 결과가 아니라, 위로부터의 개혁에 의해 주어진 것이었다. 여전히 고용주는 노동자를 자기가 소유한 노비처럼 다룬다. 즉, 우리나라의 노동자는 노동력을 팔아 연명하지만, 근대적 노동자와 전근대적인 노비 사이의 어느 지점에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근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력’은 상품이고, 상품을 거래하는 두 주체는 기본적으로 서로 대등하다. 따라서 고용주가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구입한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의 시간과 그 시간동안의 인력만 구입한 것이지, 그 사람 자체를 소유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1970년 전태일 이후로 40여 년간 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불사르며 자신의 온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워왔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은 반공이란 명분으로 그들의 정당한 투쟁마저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며 억압하고 있다. 그 덕분에 우리의 삶은 여전히 노비처럼 고단하다.두 번째 말폐는 자신의 안위와 이익만을 탐하는 기회주의의 만연이다. 조선 후기의 혼란한 시대상황에서 관리가 되려면 세도(勢道)를 장악한 집안에 줄을 대고 뇌물을 바쳐야만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백성을 착취하며 자신의 손해를 벌충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의 원인이 된 고부군수 조병갑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이후 외세의 침략에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이완용 같은 기회주의자들은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고 말았다. 그런 친일 반역자들과 그의 후손들은 그 뒤에도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으며, 최근에는 식민지 근대화론 등을 도입하며 자신들의 죄악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아마 제대로 조선이 망하고 새로운 국가가 세워졌더라면, 이러한 기회주의자들은 모두 청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배우는 것은 기회주의자들의 미덕이다. 그것에 저항하는 자들은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혀 ‘낙오자’가 되고 만다. 여기에는 여러 구조적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에, 아마도 이런 말폐들을 쉽게 극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들이 영원불멸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비가 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기우제는 반드시 성공하는 것처럼, 말폐들을 청산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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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25 23:02

청춘, 잃어버린 감정을 찾아서

직장에서 기획회의를 할 때면, 편하게 아이디어를 끄집어낼 수 있도록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이야기에서 시작하곤 한다. 이번에 기획하게 된 행사는 처음 만나는 활동가들과 진행하는 오리엔테이션이었다. 첫 대면에서의 어색하고 불편한 자기소개를 대신해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도 두 가지 사소한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요즈음 당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요즈음 당신을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사소함 속에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큰 힘이 있었다. 요즈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동안은, 처음 만나는 이들 앞인데도 목소리가 떨리고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20대이건 40대이건, 꿈에 대한 고민과 내면의 성장 과정 속에서 일상을 보내느라 비슷한 무게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저, 고민을 나누는 동안만은 나만 외로운 게 아니구나,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며, 어쩌면 잔인한 공감대 속에서 마음이 모아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마음속에서 꺼내어 놓는 그 자체만으로, 그리고 그 이야기를 향해 몸을 기울여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는 느낌이랄까? 그랬구나, 그럴 때가 있지, 그래 힘들었겠다. 주거니 받거니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한 가지 질문으로 오랜 시간 열띤 수다를 떨다가, 두 번째 질문으로 화두를 옮겼다. 그런데 멀뚱멀뚱,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아까의 성토대회 분위기는 어디로 갔는지, 최근의 사건들 속에서 ‘설렘’의 감정을 찾아내느라 모두의 머릿속이 분주한 듯 했다. 즐겁고, 기쁘고, 보람찬 감정들이야 수시로 감정 선을 드나들며 살고 있지만, 설렘이라는 감정은 글쎄…. 첫사랑에게 다시 연락이라도 온다면 모를까 한참을 생각해도 당최 기억이 안 난다. 잃어버린 감정을 찾아야 했다. 당황해하는 서로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버린 우리는, 더듬더듬 설렘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치킨을 주문해놓고 현관문 벨소리가 울리길 기다리는 그 30여분, 육아로 잠시 휴직했다가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 어느 주부의 출근시간, 졸업하고 다시 만난 선후배들, 여행을 떠나기 전날 미리 예매해놓은 버스 티켓 등등. 일상에서 우리가 설렘의 감정에 너무나 무뎌져 있었던 탓일까. 긴장감과 설렘이 가끔 혼동될 때도 있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그 감정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들여다보면 우리들의 일상 속에는 너무나 많은 설렘들이 손을 흔들며 스쳐가고 있었지만, 둔감한 우리가 인사조차 못했던 것이리라.화나고, 우울하고, 슬프고, 무기력한 감정은 홍수처럼 일상에 차고 넘치는데, 반대로 설레거나 짜릿하거나 들뜨는 감정은 바닥이 쩍쩍 갈라지도록 메말라버렸다. 그래서 우리 입에서 토해내는 말들도 늘 ‘짜증나, 힘들어, 못하겠어.’로 걸러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화나고 슬픈 감정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감정의 표현 방식에 문제가 있지 싶다. 어떤 감정이든 내 안에서의 분출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타인과의 ‘공감’을 먼저 생각하면 좀 더 쉬워질 수 있다. 요즈음 당신을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필자의 질문에 갑자기 머리가 멍- 해진다면, 지금 당장 이 질문을 주제로 옆 사람과의 수다를 권하고 싶다. 답답하고 뻔하게 반복됐던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수만 가지 감정들이, 사소하고 작은 소통 속에서 낮선 두근거림으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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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18 23:02

학교 안전교육 소홀한 우리나라

주말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어머니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길래 그 이유를 물었더니, 방금 전까지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과 만나고 오셨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바라는 것은 내가 행복하게 사는게 전부라고 하셨다.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날지 모르고, 내가 바다건너 사는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했을지도 모르는 대화가 공부하라, 또는 꾸짖는 말이 된다면 슬플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참 아팠다. 사실 우리나라 학생들과 부모님들의 대화는 주로 공부나 학원 따위가 주제니까. 특히나 내 또래가 가장 많이 해당 되는것 같다. 수학여행 날 아침에 부모님과 다투고 나온 친구도 있었을 것이고, 한 번도 속시원한 대화를 나누거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친구들도 많았을 텐데. 같은 학생으로서 너무 아프고 화가 난다. 학교 교육에 부족한 점이 많은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이 사고로 인해 안전 교육 문제가 확실히 부각되는것 같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현장학습도 가보고 수학여행도 가봤지만 출발 전 딱히 안전 교육을 받은 기억은 없다. 그냥 부모님에 허락한 서명서를 내고 가는 것이다. 버스 안에서도 안전띠를 매라고 하지 않을 때도 있었고, 말로만 꼭 매라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었다. 장소에 도착해서도 별 다른 방송은 없었다. 내가 다닌 학교만 그런 것인지, 다른 학교도 비슷한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학교를 벗어날 때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안전에 관한 인식을 조금 소홀히 하는 것 같다. 사실 강당에 모여 앉아 아무리 위험하다고 강의을 들어도 그림과 말만으로는 잘 다가오지 않는다. 체험이나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색다른 교육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이상하게 안전에 관해서 규칙이 엄청나게 많았다. 분위기상 한국보다 자유로웠지만 정말 내가 처음 들었을때 ‘별 규칙이 다 있네…’ 하는 것도 많았다. 예를 들자면 중학생들은 학교측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 등록된 부모님의 차 외에 다른것을 탈 수 없다. 시내 버스를 타고 하교하고 싶다면 허락을 받고 미리 학교에 알려야 한다. 친구 부모님의 차라도 친구 부모님과 내 보호자가 서로 연락이 되었다는 사실을 학교가 알아야 한다. 현장학습이 있을때는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학부모 보호자를 네 다섯명 정도 신청받는다. 학교로 직접 와서 얘기하거나 이메일로 신청할 수 있다. 현장학습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학교 행사도 해당된다. 사실 학생들은 친구들끼리 가는 여행에 부모님이 오시는 것이 불편하고 부끄러울 수 있지만, 안전을 따진다면 확실히 이편이 낫다. 한국이나 일본 처럼 학교에서 따로 교육을 받진 않지만, 일이 생기기 전에 이런저런 규칙들로 예방하는 식이다. 아주 조그만 일로도 고소를 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학교 측의 잘못이 되기 때문이다.일본은 안전 교육의 빈도가 굉장히 잦다. 주제도 다양하다. 특히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전거로 등·하교를 하기 때문에 자전거 교육에서부터 조폭이나 불법 단체란 관한 것까지 가르친다. 참 특이한 것이 미국이나 우리나라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개개인이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일본은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한다. 지금까지 받은 검사만 해도 여섯개는 되는 것 같다. 심장 검사, 폐 엑스레이, 척추나 구강검사 등 다 학교에서 제공한다. 이미 수학여행을 한번 갔다 왔고, 이번달에 한번 더 있을 예정인데 출발하기 2주 전쯤 알레르기나 지병, 복용중인 약이나 버스를 타도 괜찮은지, 또 특별히 알아야 할 사항이 있는지 미리 조사한다. 그리고 장소에 도착하면 그쪽 관계자가 직접 안전 교육을 해주는 등 굉장히 철저하다. 교육에는 정답이 없다. 우리나라가 무조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 교육이 올바른 방향으로 잘 나아가고 있는것 같지가 않다. 하루빨리 더 이상의 무의미한 희생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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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11 23:02

보헤미안의 인생

자기계발서가 범람하는 세상이다. 세상에, 정말 빠져 죽을 수도 있을 것만 같다.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는 것이 보통의 경우 그들이 말하는 기본 골자 중 하나다. 틀린 것 하나 없는 말이지만, 피끓는 청춘이라는 이유로 필요 이상의 고통을 합리화시키는 부작용을 앓는 병든 청춘들 역시 적지 않게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안타까운 모습이다.살아있었다면 지금쯤 이들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차고 있었을 것 같은 사람이 생각난다. 10년이 넘게 웨이터 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언젠가는 자신의 뮤지컬이 브로드웨이를 뒤흔들 것이라고 소리치고 다니던 괴짜같은 사람, 뮤지컬 ‘렌트’의 제작자 조나단 라슨이다. 그는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뉴욕 슬럼가의 5층 다락방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던 숱한 룸메이트들이자 동시에 열정 가득한 빈털털이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 싶어했고, 이러한 그의 열망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렌트’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불행히도 조나단 라슨 본인은 렌트의 초연 전날 대동맥류파열로 사망했으나, ‘렌트’는 그의 바람대로 브로드웨이를 뒤흔들었던 걸작으로 평가받았다.아무리 작품 속 인물들이라지만 다들 참 기구하게도 산다. 무명 가수와 스트립댄서가 시종일관 틱틱 싸우면서도 사랑을 나누고,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 철학 교수가 강단에서 내려와 인생을 노래한다.“La vie boheme(보헤미안의 인생)!” 언제 생을 마감할지 모르는 이들이지만 서로 오늘도 수고하셨소, 하고 웃고 떠들고 술잔을 부딪치며 외치는 말이다. 서로 닮은 점 하나 없는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진리의 말이자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풀리는 것 하나 없지만 오히려 삶에 대한 여유가 넘친다. 전직 교수가 “수틀리면 딴데 가서 식당이나 차리지!”라고 하는 걸 보면, 말 다했다.‘렌트’는 예술가들의 유쾌한 발악을 매개체로, 시간에 쫓겨 현재를 잃어버리고 사는 이들에게 “오직 오늘뿐“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나중에 잘 살려고 오늘 하고 싶은 걸 왜 참아야 하냐고 묻는다. 불치병과 불안정한 생활로 이미 미래가 불투명한 그들에겐 당연한 일상이다. 그들의 해답은 항상 현재를 살며, 항상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는 마음가짐에 있었다.인터넷에서 한 글귀를 읽었다. 노는 돈을 아껴 저금하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파격적인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달에 100만원씩 1년을 저금하면 1,200만원이고 10년이면 1억 2,000만원을 버는 셈이란다. 결국 10년을 저금한다고 해도 서울에 있는 아파트 전세도 힘드니 투자라 생각하고 하고 싶은 걸 하라는 우스갯소리 섞인 글귀였는데, 생각해보니 이게 꽤 설득력있는 말이다. (그럴 만한 배짱이 있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겠지만.)몇몇 청춘들은 오늘도 주문을 외운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참는 자가 복이 있다며 끊임없이 되뇌이다가 현실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하면 또다시 힐링이라는 주문을 반복하는 식이다. 조금 더 자신을 위해 살면 어떻겠느냐, 고 조심스레 권유하고 싶다. 무조건 위를 바라보기보다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찾는 것이, 멀리 봤을 때 더 큰 기회이지 않을까.이 곳에서의 마지막 글이다.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마지막 이야기를 끝맺고 싶었다. Viva la vie boheme, 영원하라, 보헤미안의 인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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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04 23:02

영원한 나라는 없다

망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그러므로 신라가, 고려가, 조선이 망한 것처럼, 대한민국도 언젠가 망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새로운 나라가 생겨날까?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지만, 상상할 수는 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보다 나은 우리나라를 상상해보고자 한다.첫 번째로 특별 사면권이 없는 대통령을 상상해본다. 대통령의 특별 사면권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보장된 대통령의 권리이다. 그런데 역대로 특별사면은 억울한 사람을 구해주기보다는, 정치인이나 재벌총수 등을 풀어주는 데 많이 쓰였다. 때문에 ‘죄를 지으면 벌 받는다’는 상식은 통하지 않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몰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새로운 나라에서는 반드시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폐지되어야 사법정의가 구현되리라 생각한다.두 번째로 공정한 중재자로서 국가를 상상해 본다. 자본은 기본적으로 치안을 유지할 공권력은 필요로 하지만, 그 공권력이 너무 커져 자본을 통제하고 간섭하는 상황은 싫어한다. 때문에 근대이후 자본은 국가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축소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길들여 왔다. 그래서 신자유주의에 포섭된 현재의 대한민국은 국민을 보호한다는 가장 큰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의 계획경제처럼, 사사건건 국가가 개입하는 방식도 옳지 않다. 이는 소련 등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이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때문에 국가의 역할은 공정한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과 대기업, 재벌의 전횡으로부터 사회적 약자인 중소기업과 소비자, 서민을 보호해야 한다. 따라서 공정거래위원회 등 여러 관련 기관의 권한을 강화하고, 징벌적 배상제도의 도입 등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세 번째로 직접 민주주의 제도를 상상해 본다. 간접민주주의는 교통과 통신이 아직 불편했고, 정치에 참여할 정도로 교육받은 자들이 소수였던, 근대의 초입에 생겨난 제도이다. 따라서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교육 받은 다수의 대중이 존재하는 현대에도 적합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물론 국민이 모든 법률의 입법과 행정에 직접 관여하는 수준의 직접 민주주의는 지금으로선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는 국민 개개인은 물론, 국가에게도 엄청난 비용과 시간,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직접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최초의 한 발자국 정도는 상상해볼 수 있다. 바로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 대한 탄핵 발의권이나 국민 소환제 등을 도입하는 것이다. 현재 간접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임명만 할 수 있고 해임을 할 수 없는 반쪽짜리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뽑아준 국민의 뜻과 어긋나게 국정을 운영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때문에 최소한의 해임권한을 확보하여 간접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 구체적인 직접 민주주의는 그 뒤에 상상해볼 문제이다. 그러나 이런 상상들이 현실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헌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헌법 개정 절차는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거친 후에야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에 들어갈 수 있다. 즉, 아직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와 같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 우리는 87년 6월,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개헌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성취한 바 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희망은 언제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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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28 23:02

여행, 그 참을 수 없는 고단함을 위하여

퇴근 후에 자취방에 앉아 빨래를 개다가 문득, 방바닥과 정리장 사이 뿌옇게 자리 잡은 먼지가 눈에 띄었다. 정리장을 밀어내고 그 자리의 먼지를 닦아내니, 그 앞에 있는 침대 모서리 먼지들이 또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렇게 다 늦은 저녁, 느닷없이 대청소가 시작되었다. 자취생활 4년차에 접어들다 보니 작은 방에 무슨 물건들이 그리도 많은지, 큰맘 먹고 버릴 물건들을 정리했다. 언젠가는 입을 일이 생길 것 같은 마음에 서랍장에 모셔놨지만, 계절이 몇 번이나 다시 돌아와도 꺼내어지지 않는 옷들, 또 언젠가는 요긴하게 쓸 일이 생길 것 같은 마음에 상자마다 쟁여놓은 물건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요긴하기는 커녕, 이런 게 있었네.하고 있다. 버리지 못한 이유는 미련보다는 미련함이지 싶어, 그 미련함에 반박하듯이 재활용 수거함으로 직행.한참을 정리하기에 몰입하느라 오히려 온 방을 뒤집어 놓고는, 한동안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 물건 하나가 발견됐다. 물건 하나가 눈에 띄었을 뿐인데, 방 안의 공기들이 그 물건에 대한 기억들 수만 가지로 가득 찼다. 짐보다는 추억과 낭만과 내 20대의 작은 세상을 더 많이 담아냈던, 여행 가방이었다. 대학 때는 방학이면 농활, 악기 전수, 해외봉사, 해외연수, 하다못해 친언니처럼 좋아했던 언니들의 배낭여행에 따라가고 싶어 돈을 모았다. 꼭 해외가 아니더라도 강원도로, 부산으로, 또 전남일주까지 배낭 하나만 달랑 챙겨가지고는 버스와 기차만으로도 여행이었는데,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여비도 넉넉하고 이동수단도 업그레이드되었는데도 왜 여행이 여행같지 않은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마음가짐의 문제이지 싶다.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일보다도 고단했지만 공부보다도 얻는 것이 많았으며 그 어떤 휴일보다도 달달했다. 편하자고 하는 여행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으로는 그 때는 그래도 어렸고, 그래서 마냥 신났고, 아무튼 지금보다는 나았다는 핑계를 늘어놓고 싶다. 하지만 내 인생에 그 어느 때라도 지금보다 덜 치열했거나 덜 심각했다고 말할 수 있는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예상치 못했던 막내동생이 태어나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초등학교 때도, 첫사랑에 실패했던 중학교 때도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가 좋았다는 억측이 만들어낸 속담이 바로 구관이 명관인 모양이다. 역시나, 마음가짐의 문제임이 확실하다. 살면서 축적해가는 경험치는 점점 높아지는데, 희한하게도 목표는 점점 더 희미해지고 마음은 지쳐가게 된다. 일을 위한 일이 고약하게 지속되다보니,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잃어버리거나, 혹은 잊어버리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여행을 마음먹기가 예전처럼 쉽지가 않다. 월요일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주말에 휴식이 꼭 필요하다는 강박관념에 여행이 휴식이 아닌 또 하나의 고단함이 될 것만 같고, 그렇다고 마냥 집에 누워 있는다고 해서 월요일이 덜 두려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시계바늘 위에 걸터앉아서 시간이 옮겨다 주는 대로 정말 꾸역꾸역 살아가는 느낌이다. 배낭을 꺼낸 김에, 다시 한 번 여행갈 채비를 해 보려고 한다, 배낭에 쌓여있던 먼지를 털어내듯이 감성에 쌓인 먼지도 털어내고, 또 한 10년쯤 흐르고 난 뒤에 그래도 그 때가 좋았지하며 억측을 늘어놓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 하나 더 만들어 와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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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21 23:02

참 예쁜 야나가와

제주도 보다 아래쪽에 있는 일본 규슈 지역의 야나가와에는 벌써부터 여름이 시작된것 같다. 오후만 되면 해가 쨍하고 밤에는 벌레들이 노래하는 소리까지 들린다. 꽃샘 추위는 이곳을 빼먹고 지나가 버렸나 보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별별 꽃나무들이 만개한 모습은 정말 보기 아릅답다. 야나가와는 아직까지 시골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동네라서 곳곳에 작은 숲과 밭이 많다. 주말이면 느지막하게 일어나 동네를 구경하는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오래 다녀도 온 지 얼마 안되어서 그런지 질리지가 않는다. 야나가와로 들어올때 거쳤던 도시들과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다. 저번 글에 언급했던 사람들의 무심함이 여기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아, 정말 평화로운 곳이다. 사람들도 동네를 닮는다고 했던가. 동네처럼 주민들도, 학교 친구들도 하나같이 순박하다. 전주에서, 또 미국에서 살았을 때 아침마다 모르는 사람들과 정겹게 아침 인사를 나눈 기억이 없다. 여기서는 아침 인사를 하지 않는 사람이 더 이상하게 보인다. 나도 이제는 익숙해져 아직은 서투른 일본어로 인사를 한다. 학교 앞의 편의점 아주머니랑도 친근하게 인사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학생들이 자주 가는 곳이라 아주머니께서는 학생들 이름을 다 외우신다! 학교 분위기도 느긋해서 전혀 경쟁이 없다.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 갈 때면 운동부 선수들의 힘찬 훈련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모든 게 부드럽고 느긋한 기분이다. 최근에는 한 친구가 반 아이들 모두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나보다 먼저 유학온 친구가 일본인들은 예의를 엄청나게 지킨다기에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여기 사람들은 쉬이 마음을 열지 않는다.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 이번 기회에 갔다가 실수하면 어쩌나 하고 마음을 졸였다. 가기 전날 예의바르게 말하는 방법까지 공부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친구의 아버지는 무척이나 재미있는 분이셨고, 초대받은 아이들을 직접 차로 데려다 주셨다. 야나가와 외각에 위치해 있는 집은, 정말 시골같은 분위기였다. 집 안으로 들어선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정말 전통적인 일식 다다미 방에는, 긴테이블 가득히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친구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주방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셨다. 정말 놀랐다. 친구들이 온다고 무슨 뷔페에 온 것처럼 점심을 차려주시다니. 국제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은 모두 즐겁게 어울리며 근사한 점심을 먹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뭐 또 그러면 어떤가. 손짓 발짓 모두 섞어가며 대화 하는것도 나름대로 즐겁다. 주 요리는 우리나라의 김밥 처럼 삼각형 모양의 김 위에다 밥을 올리고, 마음에 드는 재료를 골라 먹는 것이었다. 비슷하지만 또 다른 맛이 있어 흥미로웠다. 친구의 어머니께서는 식사가 끝난 후 향 좋은 홍차까지 직접 우려내어 대접해 주셨다. 너무 잘 대해주셔서 나중에는 죄송한 마음까지 들었다. 모두들 배가 부르자 밖에 나가 열심히 뛰어 놀았다.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휴대전화만 만지작 거리고, 같이 텔레비젼을 보는 것 말고 땀을 흘리며 열심히 논 것은 참 오랜만이었다. 다시 초등학생이 된 듯한 하루를 보냈다. 확실히 일본이라고 다 이런 것도 아니고, 더 큰 도시로 나가면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이곳 야나가와는 참 예쁜 동네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앞으로 이곳에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생각을 하니 기대가 된다. 한번쯤은 여기 느긋한 곳으로 여행을 와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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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14 23:02

당신은 어떤 색을 띠고 있습니까

영상을 만드는 감독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 작품철학이 몇 가지 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대규모의 작품이 아니라면, 배우를 섭외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그 첫 걸음이다. 나는 배우에게 필요 이상의 변신을 요구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그 어색한 느낌에 예민한 때문이고, 카메라가 꺼지면 바뀌는 모습이 아직까지도 어색하게 느껴지는 때문이다.그래서 항상 등장인물과 최대한 같은 분위기가 흐르는 사람, 혹은 성격이나 버릇 등 겹치는 부분이 가장 많은 사람을 배우로 섭외한다. 꼭 연기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평소라면 카메라 뒤에 있어야 할 스태프들을 무대에 세운 적도 적지 않다. 이렇게 직업과 지위를 막론하고 나의 프레임 안에 담긴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대부분은 영화의 캐릭터처럼 참 개성있고 한결같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들에 대해 물으면 ‘아, 그 친구는 이런 친구야’라는 대답이 서스럼없이 나온다. 게다가 어딜 가서 물어봐도 그 대답에 있어 한 치의 오차 없이 모두 하나의 색깔을 떠올리는 것이 신기하다.좀처럼 쉽지 않은 일임에도 모두가 그들 각각에 대해 변하지 않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만이 가진 확고한 캐릭터가, 확고한 색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자신만의 캐릭터를 가진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 빛난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명확하고, 자신의 장단점에 솔직하며 자기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들과 대화하고 있으면 가끔은 영화의 등장인물과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때마다 그들에게서 흔들리지 않는 묵직한 뿌리 비슷한 것을 느낀다. 신념과 자존감을 비롯한 수많은 요소들이 모여 그 사람만의 독특한 색채와 향기를 만들어 낸다. 그에 반해 무채색의 사람은 항상 어딘가 붕 떠 보인다. 분명 존재감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를 정의할 어떤 알맹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2008년 개봉한 코미디 영화 ‘트로픽 썬더’에서는 이른바 ‘연기병’에 걸린 한 배우가 등장한다. 소문난 명배우지만 한 번 연기에 빠지면 일상 생활에서까지 그 배역이 되어 산다. 흑인을 연기하면 다음 배역을 맡기 전까지는 피부를 까맣게 태우고 흑인 말투를 쓰는 등 자신의 배역에 기생하며 사는 식이다. 끝내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어느 곳에든 있었지만,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자신만의 색을 가진 사람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꽤 요란한 작품이 나올 것 같다. 그리고 동시에 다들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양한 색으로 현란하게 꽉 채워진 배경 앞에 특정한 색이 꾸준히 덧칠되어 주인공이 되어 있는 모습으로 말이다. 지금까지 색이 짙은 많은 사람들을 지켜본 바로는, 여러 색을 겪어본 후에야 비로소 자신만의 색채를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다양한 색깔이 되어본 후 비로소 찾은 하나의 색을 끊임없이 덧칠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내가 달려가고 있는 20대의 세상은 먼저 수많은 색으로 배경을 채우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열심히 캔버스를 요란하게 꾸미고 있을 나의 주변인들이 그 와중에 조금씩 도드라지는 색을 보며 기뻐했으면 좋겠다. 이 색이 꾸준히 짙어질지, 새로운 색이 덧씌어질지 고민하며 흔들리는 나날이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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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07 23:02

세상을 바꾸는 방법

많은 젊은이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가 옳지 않으며,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그저 마음만 있을 뿐,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알지 못해 자포자기하거나, 무작정 이리저리 좌충우돌하다가 좌절하고 만다. 필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만 차마 포기할 수 없어 끊임없이 배우고 생각해보니, 세상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 듯하여 그 내용을 공유해보고자 한다.세상을 바꾸고자 할 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영향력의 원’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한 개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를 뜻한다. 이 말은 반대로 영향력의 원 밖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음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의 노력은 바로 이 ‘영향력의 원’ 안에 존재하는 대상에게 집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러나 대부분 사람에게 영향력의 원은 좁다. 이 때문에 바꿀 수 있는 범위도 적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한계에 부딪힌다. 그나마 요즘엔 SNS가 등장해서 조금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 역시 약간의 범위가 늘어났을 뿐, 여전히 한계는 명확하다. 또한 영향력의 원안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친인들조차, 아니 나 자신조차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나 역시 이런 한계에 좌절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던 시절,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를 읽으면서 약간의 단초를 얻었다. ‘언어는 어떻게 변화하는가?’라는 화두를 가지고 책을 읽다 보니, 언어의 변화는 생물의 진화와 닮아 있었다. 변화되는 환경에 잘 적응한 생물만 살아남듯, 변화되는 세계를 정확하게 표현한 말과 글이 언어에 수용되었을 때 언어가 변화했다. 즉, 한 개인이 보다 세계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내뱉은 ‘발화(發話)’가 다수에게 수용되어 언어에 반영되는 것이었다. 다만 이 변화는 단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변화가 누적되어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개인의 발화가 언어를 바꾸듯, 개인이 세계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세상을 바꾸는 수단은 우리가 가진 유일한 도구인 언어와 행동이었다. 언어로써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행동(혹은 노동)으로써 세계에 영향을 주다 보면, 작은 변화가 누적되어 언젠가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재발견’한 것이다. 이렇게 개인이 세계를 바꾼 가까운 예로 ‘민주화’가 생각났다. 현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있던 군사독재 시절만 해도, 재판을 끝내자마자 사형을 집행해 죽여 버리는 ‘사법살인’이 가능한 나라였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 바쳐 노력한 끝에 군사독재를 끝내고 1987년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즉, 수많은 개인들의 노력 끝에 군사독재라는 폭력을 몰아내고 대한민국을 바꾼 것이다.따라서 현재는 감히 감당할 수 없어 보이는 신자유주의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사실 이는 근대의 성격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다. 다만 지금처럼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행동할지 알 수 없는 단계에서는 먼저 배우고 생각하며 우리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그래야만 세계를 바꾸기 위해 우리가 말해야 할 것과 행동해야 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연후에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야 한다. 조급해하지 말고 내 영향력의 원 안에서 변화의 결과물들을 쌓아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보다 나은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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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30 23:02

엄마 밥이 그리운 날

살다보면 가끔,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이고, 그러다 아프기도 하고, 주눅이 들어 눈물 나는 날도 있다. 맛있는 거 먹을 때는 남자친구 먼저 챙길 거면서, 꼭 이렇게 힘들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은 엄마, 그리고 엄마가 해주는 밥. 돼지고기 듬뿍 넣고 끓인 김치찌개, 제사 때마다 끓여주는 시원한 소고기 무국, 백숙 해먹고 남은 닭고기로 끓인 육개장까지. 하다못해 시원한 보리차에 찬밥 한 덩이 말아먹는 것 뿐인데도 엄마가 해 주면 왜 그렇게 맛있는지. 암만 해도 엄마가 밥에다 뭘 타는 모양이다.우리엄마는 딸에게 ‘황여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내가 엄마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건 아마 4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매 끼니마다 고슬고슬한 냄비 밥을 좋아했고, 아침에 먹었던 국이 저녁밥상에 다시 올라오는 걸 제일 싫어했던, 입맛 까다롭고 유난스러웠던 아빠가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이후였다. 밥상을 차리느라 매일이 분주했고 하루 중 가장 큰 고민이 저녁메뉴였던 엄마였기 때문에, 아빠가 떠나고 한동안은 뭘 해야 할지를 몰라 했다. 그런 엄마에게 남편이자, 애인이자, 친구이자, 든든한 자식이 되어주고 싶었다. 아직도 엄마는 아빠의 제사상 앞에서 절을 올리는 자식들을 차마 못 보고, 주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빠는 저 세상에서도 엄마 밥이 그리운 모양이다.작년 여름, 휴가기간을 이용해서 엄마와 제주도 여행에 다녀왔다. 2박3일 짧은 시간이었지만 엄마와 단둘이 여행은 처음이라, 엄마도 나도 잔뜩 설레서 출발 전날부터 한 침대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엄마와 팔짱을 끼고 제주도 성산일출봉을 걷다가 문득 엄마가 했던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가슴을 저몄다. “요만하던 니 손잡고 초등학교 입학시키면서 가슴이 뭉클해져서 눈물 날 뻔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니가 엄마 손을 잡고 다니네.”2박3일 동안 본인이 차려내는 밥 말고, 남이 차려주는 밥들을 앉아서 받아먹기만 하니 엄마는 너무 맛있단다. 반대로 제주도 어느 맛집을 가도 엄마가 차려주는 밥만은 못했던 나는, 어쩔 수 없는 엄마 딸인가 보다. 엄마의 밥에는 분명 치유의 힘이 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툭 떨어질 것만 같이 마음이 고단한 날, 연락도 없이 엄마를 찾아가 가만히 앉아있으면 엄마가 묻는다. ‘밥은?’ 그리고 뚝딱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작은 상 위에 올려서 축 늘어져 있는 내 앞에 갖다놓고는 말없이 숟가락을 내민다. 밥을 넘기며 목 위로 차오르는 울음을 누르다보면, 어느새 그릇이 비고 배가 든든해진다. 엄마의 따뜻한 밥 한 끼는, 그렇게 다 큰 딸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져주곤 한다. 딸에게 늘상 늘어놓는 잔소리는 ‘밥 먹었냐’부터 시작해서 ‘라면 먹지 말아라, 병원 좀 가 봐라, 김치 가져가거라, 이불빨래 가져와라’까지. 이런저런 핑계로 대통령 못지않게 바쁜 척 일색인 딸이지만, 이번 주말에는 바쁜 척 그만하고 엄마한테 가서 ‘나 밥 줘.’ 하고 투정 한 번 부려봐야겠다. ‘얼씨구’ 하며 맞장구 칠 황여사를 생각하니 괜스레 웃음이 난다. 함께 밥 한 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밥상머리에서 도란도란 투닥투닥 젓가락 부딪혀가며 얼굴을 마주하는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새삼스레 눈물 나게 감사한 일이 되어버렸다. 아직 세월호 안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아이들도, 어서 돌아와서 엄마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 맛있게 먹을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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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23 23:02

April 13, 2014

세계 어디를 가나 일본인들은 참 평판이 좋다. 조용하고, 예의바르고, 특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작년 여름 봉사활동을 다녔던 전북 환경운동연합에서 내 또래의 일본인 친구들을 초대해 한일 교류회를 열었다. 한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이 번갈아가며 서로의 나라를 방문하는 형식이었다. 내 나이의 일본인들은 처음 만나보는지라 꽤나 긴장했었다. 부산에서 하카타 항 까지 배편으로 두 시간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가까운 나라이지만 굉장히 다른 모습에 놀랐다. 옷차림, 행동, 말투까지 너무나 달랐다! 취침시간이 지났어도 선생님들을 조르며 꿋꿋이 놀았던 우리와 다르게 일본 학생들은 종이 땡 치자마자 군말 없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리 놀자고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다. 즐길 줄 아는 우리나라와, 규칙을 지킬 줄 아는 일본이랄까. 하지만 굉장히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걸로 기억한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 있지만 모두가 아직 때묻지 않은 청춘이기에 가까워 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일본에 와 있다. 여행객으로써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민으로서 살아간다. 모든 나라가 그렇겠지만 겉에서 간만 봤을 때와 수박의 안을 맛보는 것은 매우 다르다. 미국이 그랬던 것 처럼 역시 일본도 당연하다. 두어 달 전 사랑하는 외삼촌께서 한국을 오랜만에 방문하셨을때 견학 차 내가 등교할 일본의 학교에 짧게 다녀왔다. 항구에서 나와 처음 느낀 이미지는, 아! 이곳은 참 깨끗한 나라구나! 였다. 부산에서 출발해 도착한 하카타는 서울보다 조금 작은 도시다(생각해보면 은근히 크다). 거리에 흔한 쓰레기 하나 없는게 신기했다. 게다가 대부분 표지판에 한국어 표기가 되어있어 이동하기 편리했다. 일본인들은 남에게 전혀 피해를 주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 났다. 거리를 여기저기 쏘다니는 동안 사람과 부딪히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 거기다 점원들은 또 어찌나 친절한지. 사실 그 짧은 삼 일간 일본에 반하고 말았다. 하지만 잠깐의 친절한 모습으론 절대로 그 나라의 이면을 알 수가 없다. 드디어 기숙사에 짐을 옮기려 두 번째로 출발한 일본 여행은 첫 걸음부터 순탄하지 못했다. 그 많은 짐가방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옮기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갈때는 마치 내가 일본을 아는 것 같아 자신 만만 했는데 몇 시간만에 환상이 깨졌다. 계단 앞에서 큰 짐들을 들고 낑낑거리는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역무원들도 우리를 쳐다보기만 할 뿐 물어보기 전까지는 도와주지 않았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라는 말은 무서운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잠깐 동안은 편할지 몰라도 서로에게 무신경한 사회는 위험한 사회가 아닐까. 일본에서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행동이 한국보다 더 자유로운 걸 보고 열린 사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뒤집어서 보면 각자 자기만의 공간이 확고하여 생기는 현상일지도. 힘든 하루를 보내니 정 넘치는 한국이 그리웠다. 분명 한국에선 누군가 도와주었으리라 믿는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살짝 어려웠다. 나보다 먼저 유학온 학생들은 일본 친구들은 마음을 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나에겐 아직도 삼년이란 긴 사간이 남았고, 그중에 겨우 일주일이 지났다. 지금은 이 알쏭달쏭하고 말 그대로 멀고도 가까운 나라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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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16 23:02

집 나간 영혼을 찾습니다

오늘도 별 일 없이 하루 일과가 끝났다. 피곤은 쌓일대로 쌓인지 오래다. 그대로 의자 등받이에 쓰러지듯 기대어 머리를 잔뜩 뒤로 꺾자 천장이 눈을 꽉 채운다. 형광등 빛이 따가워 그대로 눈만 감았다. 갑자기, 정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울어본 게 언제였더라.아니, 그 전에, 지난 몇 주간 다른 사람이 눈물을 보이는 모습은 본 적이 있었던가. 까마득하다. 그럼 격정적으로 화내는 모습은? 본 적 없음. 가벼운 웃음이야 그렇다 쳐도,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려 가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역시 기억에 없다. 뒤늦은 깨달음, 요즘 누군가가 얼굴 근육을 어느 정도 이상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나는 본 적이 없다.짧은 영화의 촬영을 앞두고 스태프들이 좁은 작업실에 모여앉아 이런저런 회의를 나누던 날이었다. 이야깃거리가 너무 많아져 짧은 휴식 시간을 갖기로 했다. 슬쩍 스쳐지나가며 보니 한 스태프가 페이스북을 뒤적거린다. 웃긴 글이라도 건졌는지, 엄지손가락이 닳도록 연신 ‘ㅋ’ 버튼을 두들기고 있었다. 어지간히도 웃긴가보다 하며 슬쩍 얼굴로 시선을 옮겼는데, 이런, 웃음기 하나 없이, 세상에서 가장 피곤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방금 웃긴 거 보지 않았냐, 고 묻자 오히려 이상한 사람 보듯이 받아치는 거다. 아니 엄청 웃겼는데요 하고.그가 소리 없는 웃음을 터뜨리던 그 페이스북 세상에서는 얼마 전까지 ‘영혼 없는’이라는 수식어가 인기였다. 어디 나사가 한 군데 풀려 있거나, 혹은 그런 것처럼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아 보이는 행동을 두고 ‘영혼 없는 칭찬’이라던가 ‘영혼 없는 리액션’같은 말로 우스꽝스럽게 포장했던 것이다.내 추측은 이렇다. 그 포스트에 달려 있던 수백 개의 댓글은 아마 그 친구가 그랬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적혔을 것이다. 이것 좀 보라느니, 진짜 웃기다느니, 글로만 봤을 때는 시장통을 방불케 했을 그 모든 감탄사와 남발되는 초성들은 엄지손가락만 놀리는 그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으로 차곡차곡 꼬리에 꼬리를 물었을 것이다. 입꼬리를 올리는 수고조차 필요 없이, 즉, 영혼 없이!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폭이 줄어들 때마다 인간은 조금씩 죽어간다고 나는 생각한다. 감정을 진심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사실 크던 작던 내면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얼굴에 표정을 띄우는 것조차 꽤 피곤한 일이다.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에너지원이 신통찮으면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것부터가 고달프기 때문이다. 나는 그 에너지원을 ‘열정’이라고밖에 정의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나는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사람들이 그 동력원을 끊임없이, 아낌없이 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혼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다른 표정을 짓고 다양한 감정을 만끽하며, 그렇게 매 순간 생기를 마음껏 뿜으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자신에게 물어보면 알겠지만, 보통의 경우 그 에너지는 사실 남아도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내는 것만큼 낭비는 없다. 화장실 거울을 들여다 봤다. 간만에 이런저런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구길대로 구겨 봤다. 안 쓰던 몇 군데가 뻐근하다. 아직은 탱탱한 얼굴. 잡티 하나라도 더 생기기 전에, 지금까지 몸 쓰고 머리 쓴 만큼 열심히 ‘얼굴 쓰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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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09 23:02

부품되기 VS 사람되기

세계화의 열풍과 IMF의 혹풍 이후,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을 비정규직으로 삶을 연명해야하는 ‘88만원 세대’로 만들었다. 결국 그들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가 되었다. 그래도 아직 삶을 포기할 수 없는 젊은 청춘들은 바늘구멍과 같은 취업관문을 뚫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인터넷 사이트와 SNS를 통해 수많은 정보들을 공유하는데, 그 중에 ‘대기업 인사팀 18년차의 조언’이라는 글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글을 거칠게 요약하면 ‘대한민국의 재벌은 수출위주 제조업 중심이므로 공대를 가라.’, ‘문과는 서강대 경영이 대기업 입사 커트라인.’, ‘수도권 대학 못 갈 거면 차라리 지방 국립대 공대가 낫다. 대기업에서는 지방의 공단에 인력수요가 있기 때문.’, ‘경영, 영문 같은 학과는 포화상태라 이젠 나와도 의미가 없다. 차라리 희귀한 전공의 틈새학과를 가라.’, ‘여자는 이대나 숙대를 추천한다.’ 등등의 내용이 있다. 참으로 대한민국의 지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현실적인 조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갖은 노력 끝에 대기업에 들어간다 해도, 결국 소모되고 대체되는 ‘부품’이 된다는 또 다른 현실은 간과한 조언이다. ‘공밀레’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말은 아이를 쇳물에 넣어 종을 완성했기 때문에 ‘에밀레’하고 울린다는 성덕대왕신종에 얽힌 설화에서 나왔다. 즉, ‘공돌이’를 갈아 넣어 물건을 완성한다고 할 정도로 착취당하고 버려지기에 ‘공밀레’라고 하는 자조적 표현이 나온 것이다.하지만 우리는 부품이 아니라 사람이고, 부품으로 착취당하며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게다가 우리의 삶은 단 한 번뿐이다. 호스피스 전문의가 암 말기 환자들을 상대한 경험을 정리해 적은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가지’라는 책에서도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이라고 후회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 단 한번뿐인 인생, 돈 벌려고 취직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그러나 이것 역시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첫 번째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찾는 것 자체가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자신이 선택하는 게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경험을 하면서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학창시절에는 ‘좋은 대학’만을 강요하고,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는 ‘취직’만이 전부인 한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다가는 자칫 ‘낙오자’ 혹은 ‘패배자’ 취급받기 쉽다. 두 번째로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도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니 돈을 적게 받아라.’라는 논리로 노동력을 착취한다. 이게 바로 ‘열정 페이 계산법’이다. 상식적인 자본주의 사회라면 있을 수 없는 괴상한 논리이지만, 우리나라에는 버젓이 통용되고 있는 ‘상식’이다.단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걸 하고 살기도 참 힘들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늘 자신을 성찰하며 꾸준히 노력한 결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젊음과 미래가 가능성과 희망이 아닌, 불안함과 절망을 가리키는 시대라 할지라도, 우리는 사람답게 살아가기를 포기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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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02 23:02

2014년 결혼방정식

2014년에 들어서서 벌써 결혼식만 다섯 번 째다. 주말마다 늘 남의 결혼식만 이리 줄기차게 다니고 있는 내가, 정작 버진로드를 행진할 수 있는 날이 오기나 할지. 아무래도 30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의 경과 때문인지, 나보다도 내 주변 사람들의 성화가 더욱 나의 서른을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다가 유행가 가사의 첫 구절이 서른의 나이를 더 쓸쓸하게 만든다. “서른이 넘기 전에 결혼을 할는지….”어쨌든 올해만 다섯 번의 결혼식을 다녀오면서, 결혼에 대한 ‘환상과 현실의 이면’도 다섯 번을 더 생각하게 되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생 딱 한 번 가지게 되는 통과의례인 결혼식. 그만큼 누구에게나 특별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는 것만은 분명하지만, 안타깝게도 보는 이들의 시선에서는 결혼식장으로 출발하면서부터 시작되는 전쟁 같은 시간이다. 뭘 입고 가야할지 며칠을 고민하다가 고른 불편한 옷을 입고, 겨우겨우 결혼식장 인근을 뒤져 주차에 성공. 주례사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지만 마지막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가,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또 겨우겨우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음식을 가져오기 위해 접시를 들고 수많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뷔페 순례를 다녀와야 한다.두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에 진행되는 이 과정들이 내가 다녀 온 다섯 번의 결혼식에서 반복되었다. 그 날 그 결혼식이 누구 결혼식이었더라, 헷갈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결혼식의 장본인들은 이 결혼식을 위해 몇 달을 준비했을까. 결혼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린 뺄 건 다 빼고 꼭 필요한 것만 했다고 이야기 한다. 나는 사실 아직도 모르겠다. 뺄 건 뭐고, 꼭 필요한 건 또 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몇 달이라는 시간과 몇 천만원이라는 비용이 필요한 건지. 혼인은 두 사람의 약속이고 사랑의 결실이지만, 이것이 사회 안에서 하나의 제도가 되면서 수학문제를 풀듯이 똑같은 방정식에 대입된다. 그 당연한 방정식들은 결혼식에 드는 ‘비용’으로 산출되어 양가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요즘은 작은 결혼식, 두 사람만의 특별한 결혼식도 심심치 않게 모습을 드러낸다. 혼인신고를 마치고 나온 구청 앞에서 두 사람만의 세레모니로 결혼식을 대체하거나 지인들과의 작은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다만 연예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난 3월 15일, 경인여대 학생들이 가진 재능을 통해 형편이 어렵거나 작은 결혼식을 추구하는 이들을 위한 특별한 결혼식이 진행되기도 했단다. 어릴 때 엄마 손 잡고 따라갔던 막내 삼촌의 결혼식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촌스러운 흑백사진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진지하고 경건하게 결혼식을 지켜봐 주었던 하객들과, 지금처럼 화려한 뷔페는 아니지만 뜨끈한 불낙전골과 오가는 소주잔으로 기쁜 마음을 나누었던 밥상 위의 경치가 왠지 모르게 그리워진다. 결혼식만 끝나고 나면 모든 게 다 끝날 것만 같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마음은 더 씁쓸해진다. 내 나이 서른, 직장생활 3년차, 집이 있을 리도 만무한데다가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마일리지처럼 쌓여온 학자금까지 생각하면, 새로운 출발을 준비해야 하는 결혼이라는 과정에 너무 많은 에너지와 자존심을 쏟아 붓게 되는 것은 아닐지, 또 지레 겁부터 먹게 된다. 그나저나, 다음 주 결혼식에는 또 뭘 입고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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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2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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