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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무슨…

나는 청춘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 않는다. ‘청춘은 OO다.’ 라고 스스로 정의하기도 아직은 낯 간지럽고, 실제로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그 단어를 꺼내는 것 또한 낯설다.그래서 처음 ‘청춘예찬’의 글을 제안 받았을 때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누구에게 글로서 가르침을 주거나 혹은 위로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도 아니고, 심지어는 나도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한번씩 막막하니까.어쨌든 글을 쓸지 말지 결정하기 전에 여러 칼럼들을 쭉 읽어보는데, 어느순간 짜증이 솟구쳤다. 청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그 많은 사람들 중 아무도 그들의 일상을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뜬 구름 잡는 얘기를 길게 늘어뜨려 ‘우리는 OO 해야 한다.’ 같은 정치적인 이야기로 선동하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는 화를 한참 식힌 후에, 그런 부류의 글들을 몇 번 더 읽고 나서야 결국 글을 써보는 것으로 결심했다. 대신 나는 별 생각없이 그냥 쓰고 싶었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살면서 옆에서 남의 인생에 훈수를 두는 이들이 득실거릴 텐데, 억지로 설정해서 공감대를 얻으려고 하거나, 글을 보는 이들에게 딱히 교훈 같은걸 주고 싶지 않았다. 여행을 가면 어딜 다녀왔는지에 대해 썼고, 친구들이 평소에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그냥 그것에 대해 글을 쓰곤 했다.부끄럽지만 ‘청춘’은 이런 것이 아닐까? ‘어떻게 살아야 한다.’ 라는 강박적인 목표의식이나 꿈보다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사는것. 훈수를 줄 사람보다는 그냥 지켜봐 줄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난 흔히들 말하는 젊을 때 공부 안 하면 늙어서 고생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많이 놀아본 사람이 늙어서도 재밌게 살 것이라고 믿는편이지. 하루라도 더 젊을 때 최대한 많이 보고 듣고 노는 게 인생의 목표까지는 안되더라도 미덕까지는 삼을 수 있겠다. 필요 이상의 지나친 긍정으로 무슨 말을 들어도 피로해지는 요즘 나름 괜찮은 삶이었다고 만족을 하던, 땅을 치고 후회를 하던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편이 심적으로 좀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이제 ‘꽃다운 청춘’ 같은 말은 이 글을 쓴 첫 문단에 쓴 것과 같이 낯간지러운 낱말이 되었고, 오히려 청춘앞에 다른 말을 붙여야 한다고 하면 그건 ‘불타는’ 이 되어야할 것 만 같다. 청춘의 시간을 지나온 부모님 세대의 어른들은 벼랑 끝에 서 있고 그들이 부럽게만 바라보는 우리 또한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기 보다는 언젠가 그 벼랑 끝으로 몰릴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여러 기기들 처럼 사는 것에 ‘포맷’ 이라는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턱도 없는 얘기… 이러니 애초에 내 말은 하고싶은 것 하고, 살고 싶은대로 살자는 얘기다. 이제는 누군가 말을 할때가 되지 않았나? 청춘? 청춘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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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03 23:02

넌 스펙쌓니? 난 세상을 바꾼다!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는 한 대학생의 경험입니다. 평범한 대학생활 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일을 향한 도전과 설렘이 몇 년 뒤 하나의 기업이 되었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수 있다는 것이 이상적인 삶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그것이 확실히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맞는지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청춘들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all-in해야 합니다. 이 대학생은 목표가 적힌 계획서 한 장으로?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대학로를 젊은이들의 문화로 바꿔보지 않을래?” 말을 걸었죠. 물론, 선뜻 함께하겠다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마음만큼은 함께 응원해 주는 모습에 용기도 얻고 막연하게만 느끼던 일을 희망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창업이라는 거대한 계획과 비즈니스 플랜이 아닌, 주변에 불편함과 더 나은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과정에서 기업은 자연스럽게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물음표를 가져야 할 것들이 참 많았죠. ‘내가 생각하는 우리동네는 어떤 모습일까?’ ‘서울과 지방의 격차, 새롭게 변화되는 상권들 속에서 침체되는 곳, 학생이 이용하는 곳이지만 단순하게 자리를 잡은 술 문화!’그가 가진 “?”물음표였습니다. ?처음으로 ‘상가들 간의 협력’을 위한 쿠폰을 만들었습니다. 2개월 동안, 100개의 가게를 찾아다니면서 대부분의 거절을 당했지만, 1곳의 가게를 최소 7번 찾아가는 배짱으로 사장님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거절을 당하면서 그 이유를 듣게 되었고, 계획서를 수정하여서 다시 찾아간 것이 결국은 사장님이 원하는 아이디어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26개를 쿠폰가맹점으로 만들고, 다음 달엔 39개 가게로 증가했는데, 사장님들이 먼저 문의를 하시곤 했습니다.동네 사람들과 만남이 잦아지면서 알게 된 문제점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는 국가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시청에 찾아갔지만, 5년 뒤 10년 뒤 계획들 뿐이었습니다.“안된다. 어렵다”라는 말을 계속 들을수록, ‘직접 실행 가능한 것이라도 찾아서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라는 오기가 생겼습니다.?통행이 불편했던 길에 버스를 만드는 일도 했습니다. 학생 5000명 가게 100곳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는 80% 긍정적 반응을 했습니다. 상가에서는 10만 원씩 걷어서 버스요금을 마련해 주신다고 하였으나, 막상 시작하려니 한 푼도 모이질 않았습니다. ‘이 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자’라며 500원씩 버스요금을 받고 버스가 시작되었고 6년간 운행되었습니다.장사가 안되는 가게를 컨설팅, 공원의 화장실에 벽화, 공영주차장과 상가 연결 쿠폰, 길거리에서 소규모 공연, 마을 주민을 위한 축제 등도 진행하였습니다. 쿠폰, 버스, 공연으로 시작한 작은 활동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활동들이 모여서 지역을 바꿔나가고 있고 누군가에겐 꿈을 찾아주게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작은 것부터, 돈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이 주변에 많습니다.당신이 바꾸실 세상을 어떤 모습입니까? 누구나 자신의 전문성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당신의 재능으로 세상을 얼마나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지 기대 해봅니다. 저는 작은 마을과 지역들을 행복하게 바꿔가는 일로써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다시 한번, 당신이 바꾸실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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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27 23:02

좋았던 추억을 기리며

나는 지금껏 딱 한 번 해외에 나간 적 있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해외봉사로 2주간 네팔을 다녀왔다. 봉사활동을 한 곳은 네팔사람들 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 네팔 남쪽에 위치한 어느 시골마을이었다. 그 곳에 위치한 국립학교에서 일주일 정도 봉사활동을 했다. 이후 포카라에 잠깐 머물고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KOICA의 주최로 이뤄진 한국문화축제에 참여했다.네팔 곳곳의 도시를 다니며 든 생각은 ‘우리나라의 20~30년 전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였다. 서울과 부산보다 가까운 거리를 10시간 넘게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도로는 산을 따라 구불구불 나 있었고, 그 옆으로는 아찔한 절벽이 있었다. 우기에는 산사태로 종종 고속도로가 막혀 몇 십 분을 도로 위에서 꿈쩍도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 시내 곳곳에는 동물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생활하고 있었다. 저녁에는 숙소에 전기가 끊기는 경우가 종종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주변에 불빛은 그리 많지 않았다.그 덕에 네팔 곳곳에는 멋진 풍경들이 보였다. 저녁이 되면 하늘과 산의 경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암흑이 펼쳐지고 그 속에 별빛과 불빛이 어우러져 있었다. 낮에는 높은 산맥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역사를 지닌 문화유산들은 도시 곳곳에서 네팔만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 속에는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네팔 사람들이 있었다. 이방인에게 따뜻한 찌야를 내어주는 이들에게 온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첫 해외경험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이런 추억이 이젠 기억과 사진 몇 장으로 남았다. 몇 주 전, 네팔은 강진이라는 자연의 재앙 앞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2년 전 내가 보았던 네팔의 모습은 지진으로 사라졌다. 두 차례의 지진으로 8500명 이상의 사망자와 3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는 정확하게 파악된 수치가 아니기에 실질적인 피해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과 건물, 도로, 문화재 등 네팔 곳곳에 비극이 일어났다. 더불어 곧 시작될 우기로 피해복구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들을 돕기 위해 파견된 구조대원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열악한 상황 속에 피해복구는 쉽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진 피해가 발생한 지 몇 주가 지났음에도 구호물품 하나 못 받은 오지의 마을들이 있다.네팔의 대참사는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는 아니었다. 네팔은 지진이 발생하는 지형으로 과거에도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겪은 적이 있는 나라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지진을 대비하기란 쉽지 않을 일이었을 것이다. 방 한 칸에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이들도 있었고, 교육봉사를 하던 중 한 반에 지우개를 갖고 있는 아이가 하나 혹은 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진 후 네팔을 찾는 손길이 지진이 일어나기 전부터 있었다면 피해를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구호를 위한 인력과 물자를 네팔로 보내고 있다. 지진 이전의 네팔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런 관심이 끊이지 않길 바란다.네팔, 좋은 추억을 안겨준 나라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 때 그 모습을 이젠 볼 수 없게 됐다. 타국에서 그들의 고통을 느낄 수는 없지만 그들이 하루 빨리 지금의 아픔을 극복하고 이전의 온정을 다시 되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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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20 23:02

그 사소한 두발자유

그때 담임교사는 나에게 가위를 달라고 했다. 아마 내가 앞자리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에이 설마 진짜 자르겠어.’ 망설이면서도 교사의 말을 잘 거역할 줄 몰랐던 나는 가위를 건넸다. 싹둑. 구레나룻이었던가 앞머리였던가. 길고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았던 어느 학생의 머리카락이 그렇게 잘려나갔다. “이 길이 맞춰서 내일까지 잘라와.”라며. 평소에는 온화한 담임이었고 설마 진짜 자를 줄은 몰랐다고 해도 비겁한 변명일 것이다. 고2 때의 일이었다.그 이듬해인 2005년, 두발 자유화를 요구하는 서명운동과 거리집회 등이 일어났다. 두발자유는 인권이며 머리 길이를 몇 cm까지 허용할지 말지 그런 식으로 타협할 문제가 아니라고 외쳤다. 안전과 위생을 위해 작업복을 갖춰야 하는 특별한 일에 종사하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의 머리카락이나 용의복장을 규제하는 것에는 아무런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다. 두발자유가 헌법상 기본권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공식 판단이 나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딱 10년 전, 봄기운이 짙고 조금 더운 5월이었다.10년간, 두발자유를 이야기해오며 마음속으로 내가 가위를 건넨 그 순간을 돌이켜보곤 했다. 내가 다르게 할 수 있었을지, 과연 어떻게 했어야 했을지. 지금도 그때 교사의 폭력에 협조한 것에 대해 머리카락을 잘렸던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 그가 이 글을 읽을 가능성은 얼마 없겠지만 우선 사과부터 전하고 싶다.다니던 학교가 특별히 두발규제가 깐깐했던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두발규제가 있는 것만으로도 문제는 많았다. “머리카락 같은 사소한 것에 매달리지 마라” 같은 소리를 들으면 화가 났다. 왜 그 사소한 것 때문에 나는 숨 막히는 기분을 느끼고 단속과 폭력을 당하며 몇 년을 보내야 한단 말인가. 왜 그 사소한 것 때문에 나는 가위를 건넨 죄책감을 안아야 했는가. 그게 그렇게 사소한 것이라면 그냥 두발 자유화 좀 하면 되는 거 아닌가.“제12조(개성을 실현할 권리) ① 학생은 복장, 두발의 길이·모양·색상 등 용모에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③ 학교의 장은 교육 목적상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학교의 규정으로 제1항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전북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이다. 다른 학생인권조례와 달리 두발규제를 폭넓게 허용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그 사소한 두발규제에 비상한 집착을 보이는 대한민국 교육부 덕분이다. 교육부는 2012년, 학교가 용의복장규제를 학교 규정으로 정할 수 있다고 시행령까지 개정해가며 학생인권조례에 훼방을 놓았다. 민폐, 진상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는 짓이었다. 솔직히 나는 두발자유를 제대로 담지 못한 전북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조례”라고 부르기가 망설여질 정도다. 한시 바삐 고쳐야 할 문제점이다.머리카락이나 복장처럼 개인이 알아서 할 부분을 함부로 규제하는 악습을 없애려 하는 것은,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것은 사소한 것이 아니다. 두발자유는 한국 사회가 중고등학생을, 청소년을 신체와 사적 영역까지 모두 통제해야 할 관리대상으로 보는지 아니면 존엄과 자유를 가진 인간으로 보는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상징과도 같은 문제다. 한국의 정부와 학교들이 그 ‘별 거 아닌’ 두발규제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두발 자유화가 된다면, 아마 나도 고2 때 나의 ‘사소한’ 불의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조금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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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13 23:02

세계적인 전통의상축제 한국에도 있다

24살에 떠난 첫 해외여행, 대한민국을 떠나서 도착한 낯선 나라 일본에서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불꽃놀이를 하는 하나비 축제였는데, 많은 일본인들은 전통의상 유카타와 기모노를 입고 축제에 참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전통의상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일상화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의식에 놀랐다. 또 대부분 젊은이들이 입고 있었다. 이 외에도 전세계에는 각 나라의 전통의상을 테마로 만든 축제들이 많이 있다. 독일의 옥토버페스트, 스페인의 페리아드아브릴, 일본의 하나비축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카니발 등 이 축제들의 공통점은 자국의 전통의상을 입고 사람들이 축제를 즐긴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도 한복이라는 전통의상이 있는데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전주, 또 살고 있는 곳은 전주한옥마을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한옥, 한식, 한글, 한지, 한국음악으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도시의 전주라는 곳에 우리옷 한복을 입을 수 있다면 한국속에서 “진짜 한국”을 만들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2012년, 전주한옥마을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명절에도 입지않을 정도로 낯설어져 버린 한복이지만, 한국적인 곳 전주에서 ‘한복’은 당연한 것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12년 9월 22일 전주한옥마을에서 300명의 한복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첫 번째 한복데이의 시작이었다. 2013년, ‘우리옷을 입은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진정성있는 말 한마디가 대한민국을 움직였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 한복을 입히는 기획을 하게 되었다. 2013년 9월 28일은 1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리옷을 입고 있었다.2014년 10월 04일 대한민국에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전주를 넘어 전국에서 자발적인 사람들의 뜻이 모여. 부산, 울산, 대구, 대전 5개의 도시에서 한복데이를 하게 되었다. 너와 내가 각자 가지고 있는 한복을 꺼내어 입고 각 지역의 행사장으로 와서 즐기는 인원은 1만명이 넘었다. 이 날은 대한민국에 꽃이 피었다.2015년 지금, 해가 거듭되고 참여자가 많아 질수록 더 큰 책임감이 들고 있다. 20대 위주의 참여자를 넘어서, 색동옷을 입은 아이부터 시집올 때 맞춘 한복을 입은 할머님까지 남녀노소 모두가 입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한복을 제대로 올바르게 입기는 방법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다. 댕기머리로 곱게 머리를 땋고, 구두 대신 꽃신을 싣는 것처럼.한복데이의 가치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 지역 청년들의 자발적인 도전, 시민들의 모금을 통한 예산확보, 지역의 색깔을 가진 콘텐츠, 관객이 주인공되는 축제의 재해석이 가능했다.365일 중, 한복입는 하루 ‘한복데이’를 만들기 위해 100여명이 넘는 스텝과 자원봉사자의 땀과 노력이 있었고, 3개월 이상의 치열한 기획과정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신선한 아이디어가 아닌 한옥마을 주민들을 만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함께 빛내주길 바라는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필요성을 전달하는 일이었다. 4년의 과정을 지나고 대한민국에 기적이 일어났다. 전주한옥마을을 한복 입기 위해서 찾아오는 관광지, 한복을 당연하게 입을 수 있는 도시가 되었다. 앞으로 한복데이가 바라는 바가 있다면, 축제가 아닌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길 바란다. 즐거운 시간이 아닌 국민 모두가 자랑스러운 날이 되길 바란다. 의도된 것이 아닌 사람들의 뜻이 모여 더 큰 기적을 만들기 바란다. 참여 그 이상을 넘어, 개개인들이 모두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원래부터, 당신 것이고 우리 것이었다”라는 사실이다.그동안,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에 도전하고, 누군가가 바라는 것을 이뤄낸 한복데이 기획단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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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29 23:02

청춘을 밖으로 내쫓지 마세요

어른들은 인생 조언을 하시면서 종종 이런 말씀을 하신다.“가능하다면 위로 올라가서 살아라.”지금의 상황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일자리나 생활여건 등이 여기보다 나은 곳에서 살라는 의미인 듯하다. 힘들고 즐길 것 못 즐기며 산 어른들보다 조금은 더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인가 보다. 하지만 타지로 떠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는 잘 살 수 없나? 잘 살기 위해서 나고 자라온 곳을 떠나야만 할까?’20대 청춘들이 이민계(契)를 들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복지가 좋은 나라로 이민을 하려고 고학력자들이 기술을 배워 기술이민을 준비하고 있단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머나먼 타국으로 지금껏 쌓아온 자신의 모든 것들을 두고 떠난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기사 댓글에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말들이 수두룩하다. 이곳에는 희망이나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 최대한 젊을 때 떠나 여기보다 좋은 곳에서 자리 잡고 살라고 한다. 떠나는 청춘을 붙잡는 이들은 거의 없다. 고향, 고국을 떠나는 일은 사실 새삼스럽진 않다. 당장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주변을 보면 반절 정도는 학교 혹은 직장 때문에 서울·경기권으로 올라간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직장을 잡기 위해 지역을 떠나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몇몇 친구들은 자신의 꿈은 외국에 나가 사는 것이라 말한다. 우린 그렇게 이곳을 떠나고 있다. 지방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외국으로. 지금보다 잘 살기 위해서 살던 지역을 잘 살게 만들려고 하진 않는다.고령화 사회, 저출산으로 청년층의 비율은 갈수록 줄어든다고 한다. 그나마 있는 청년들은 우리 지역, 우리나라를 떠나고 있다. 나라, 지역의 기둥이 될 청년이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붙잡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가능하다면 얼른 나가라고 등 떠밀고 있다. 과연 이게 맞는 걸까? 떠밀리는 입장에서 그저 좋지만은 않다.우리나라의 자랑 중 하나가 교육열이다. 덕분에 평균 학력 수준이 높아졌고 우수한 인력을 배출해 내고 있다. 생활 수준도 과거 몇 십 년 전에 비하면 비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늘어난 고학력자들은 일을 하려 하지만 일할 곳이 없다. 지역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지닌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나고 자란 지역을 떠난다. 열심히 키워낸 인재들이 우리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을 위해 일하는 꼴이다. 그렇게 하나 둘 씩 지역을, 나라를 떠난다.청춘을 밖으로 내쫓지 마라. 이전 세대가 힘들게 갈고 닦아 놓은 이곳에서 지금의 세대가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도록 기회를 줬으면 한다. 우리 지역을, 우리나라를 희망과 미래가 없는 곳으로 만들어 청춘들이 떠나가도록 내버려 두지 마라. 청년들에 대한 투자로 전 세대가 함께 공존하는 미래를 그려주길 바란다. 이전 세대보단 지금의 세대가, 지금보단 미래의 세대가 더 잘 사는 곳이 되도록 지역 사회를 만들어 줘라. 청년들이 이 지역을 떠나도록 길을 터줄 것이 아니라 지역에 남아 능력을 펼치며 살도록 길을 만들어 줘라. 그리고 우리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우리의 것을 너무 쉽게 놓아버리지 말자. 여기보다 나은 곳에서 새로운 터전을 잡으며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보단 나고 자란 지역에서 아는 이들과 함께 잘 먹고 잘 살도록 노력해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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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22 23:02

바로 여기 함께 있다

학교에 차별 문제를 주제로 인권교육을 갈 때면 다소 ‘짓궂은’ 일을 하곤 한다.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교육 참여자가 무언가 편견을 보이면, 나한테는 동성애자 친구도 많고 내가 동성애자일 수도 있는데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냐고 하는 것이다. 간혹 여자친구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남자친구가 있을지도 모르죠”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놀라는 사람도 있고,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 몇몇에게는 인상 깊은 경험으로 남았을 듯싶다.차별과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그것을 막연한 ‘남 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자기는 동성애자에게 별 편견은 없지만 가족이나 친구 중에 있는 건 싫다는 식의 말은 얼마나 심각한 편견을 드러내고 있는가. 그렇게 소수자들이 함께 살고 있지 않다는 듯이 대하는 것이야말로 차별이다. 분리는 종종 배제와 편견, 몰이해의 시작이 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유명한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분리정책이라는 뜻이며 “차별이 아닌 분리”라는 명분을 내걸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해둬야 한다.최근 교육부가 성교육에 대한 지침을 내놓으면서 ‘동성애에 대한 지도는 허용되지 않는다’, ‘동성애, 다양한 성적 지향, 성 소수자 등의 내용과 용어 사용은 불가’하다고 한 것 역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교육부는 논란이 될 일은 말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듯하나, 그 침묵의 의미는 지금 학교에 있는 성 소수자 학생들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다. 학교에 동성애자이거나 양성애자인 학생들 또는 나중에라도 스스로를 그렇게 정체화할 학생들이 있다고 조금이라도 상상해봤다면 나올 수 없는 지침이다.교사가 혹시라도 차별적인 편견이나 혐오를 드러내는 것을 막았다는 일면의 장점이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성교육의 내용 자체가 이성애 중심주의에 근거해서 만들어져 있기에 그 교육 속에서 동성애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다. 무지해서 간과한 것도 아니고 아예 언급을 금지시킨 것은, 성소수자들을 함께 살지 않는 존재로 보겠다고 한 것과 다름없다.정부에게는 당연히 차별금지와 교육권 보장을 위해 노력할 책무가 있다. 그러므로 성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편견을 없애고 차별을 막는 교육을 해야 한다. 동성애자인 학생들도 자신들에게 적절한 성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성애와 동성애 모두를 포함하는 성교육 내용을 보급해야 한다. 설령 그것이 지금 당장 교육부에게 어떤 여건상 어려웠다고 치더라도, 세상에는 이성애자만이 아니라 동성애자도 존재하며 이 교실 안에도 있을 수 있다는 내용쯤은 포함되어야 했을 것이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등에 대한 정보는 이야기했어야 했다. 교육부의 지침은 회피도 아니고 적극적인 배제와 차별 행위에 가깝다.어느 자리에서든 항상 그 안에 얼마든지 소수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상기시키고는 한다. 바로 여기 이 자리에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의 사람들이 함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 차별을 없애는 첫 걸음이다. 성 소수자만이 아니라도 바로 자신이, 자신이 만나는 사람이 소수자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동성애자냐고? 그 답은 다른 분들의 상상에 맡겨두도록 하겠다. 내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이 뭐든 아무런 상관도 없는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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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15 23:02

여행에 조건을 달지 않을 것!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릴 적 기억을 제외하고는 나는 내 스스로 여행을 가본 기억이 없다. 그러니 여태껏 요만큼의 여행의 필요 또한 느끼지 못했다. 가끔 누가 홀로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했다거나, 350만 원으로 141일 동안 세계일주를 했다는 등의 뉴스라도 보면 나는 ‘차라리 그 돈으로 악기를 하나 더 사지.’ 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그러다 어느 날 문득, 스스로 피곤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 다 가는 여행을. 한번 안 가본 것이 갑자기 억울했다. 아, 내 인생에서 내 의지로 여행을 갔던 일이 몇 번이나 있던가. 사실 지난 해 바캉스 여행을 목표로 삼았었다. 하지만 이 핑계 저 핑계에 이것 저것 따지다 결국에 공연가던 길에 전주천에서 다리 몇 번 담근 걸로 땡이었다. 붐비지 않을 만큼 사람이 많지 않은 곳, 조용하지만 주변에 볼것이 많은 곳, 공기가 좋은 곳, 맛있는 음식이 많은 곳 이런 자잘한 조건을 다 내걸고 여행이라니…여행을 떠나기엔 내가 너무 바쁘고 까다로운 사람이 되어버린 것 일까? 급하게 캘린더를 열고 일정을 확인했다. 별 다른 스케줄이 없었지만, 토요일에 서울에 미팅이 하나 있었다. 오히려 이참에 잘되었다 싶었다. 거의 매주 가는 서울이지만 정작 어떤 곳에 뭐가 있는지는 몰랐기 때문에…아마 시간에 쫓겨 그냥 지나친 곳도 많을거다. 그래, 여행이라고 너무 거창할 필요 없지. 그러곤 다음날 아침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도착하자마자 뭘 해볼까 고민하지도 않고 무작정 지하철부터 탔다. 몇 정거장을 지나치고 나서야 머릿속에 그저 지하철 역이름으로 밖에 기억되지 않았던 곳들을 하나씩 다녀보기로 했다. 차갑고 삭막하게만 느껴지던 익숙한 서울 풍경도 여행이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특히 볼거리 없다며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친구도, 정해진 약속 시간도 없으니 급하게 걷지 않아도 됐고, 지하철을 놓쳐도 천하태평이었다. 비록 감탄을 금치못할 장관이나 모래사장에서 비키니를 입은 금발의 아가씨도, 셀카봉도 없었지만 바쁜 사람들 틈에서 모처럼 느껴보는 여유로운 시간이었다.만약, 친구들과 함께 서울이 아닌 평소 방송에서 리포터가 갖은 리액션을 남발하며 소개된 ‘핫’한 도시를 찾아가거나, 전국에 있는 사람들이 다 갈 것 같은 유명 관광지를 찾아갔다면 어땠을까?분명 친구들의 잔소리와 함께 수 많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하루종일 부대끼다가 짜증이 폭발하기 직전, ‘이럴 바엔 차라리 집에 있을걸’ 하며 땅을 차고 후회했을 것이 뻔하다.어쩌면, 여태껏 이런저런 핑계와 조건들을 대며, 여행을 가지 않았던 진짜 이유가 실은 나를 바쁘게 더 채찍질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라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파울로 코엘료가 그랬던가?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라고.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것을 꼽으라면 앞서말한 그 ‘용기’ 라는 것이 내게도 조금 생긴 것이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는 나와 같은 사람 혹은 나보다 더한 워커홀릭 또는 겁쟁이가 있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망설이지 말고, 첫 여행지는 가까운 곳부터 고를 것! 여행에 조건을 달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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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08 23:02

당신의 인생에서 영웅이 되는 길

슈퍼맨, 배트맨, 아이언맨. 이들의 공통점은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악당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낸다.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도 영웅은 존재한다. 다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세상을 차츰차츰 바꾸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당신 또한 누군가의 영웅이 될 수 있다. 영웅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보상을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돕는다. 두 번째. 누군가가 해야만 하는 어려운 일을 자발적으로 즐긴다. 세 번째. 자격증이라는 것 대신 사람들로부터 영웅이라고 인정을 받는다. 요즘 대학생들은 하고 싶은 일보다 학점, 토익 등 ‘스펙’에 열중하고 있다. 가장 스펙에 안달할 시기엔 시험기간에 밤을 새우고, 스펙을 만들기 위해 토익공부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막연히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가’를 찾는게 중요하다.나만의 스펙을 쌓기 보다는 주변으로부터 나를 찾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 학점을 관리하고 토익을 공부하는 건 자신과의 싸움이다. 하지만 그 시간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한다면 스펙보다 중요한 경험이 된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주위 사람에게 그림을 그려준다. 경영학과 학생이라면 장사가 안 되는 가게에 컨설팅을 해 준다. 자격증이 없어도 상관없다. 그저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다보면 수치화된 스펙이 아니라 신뢰가 쌓이게 된다. 주위 사람에게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대학생활을 이렇게 하다 보니 저절로 기회가 다가왔다. 어느날 백화점 컨설팅을 요청받게 되었다. 사실 경영학과도 아니고 관련 학위도, 자격증도 없는 나에게 어려운 요청이었다. 하지만 직원들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정리해서 직접 설문조사를 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발로 뛰었다. 결국 백화점 측에서 목표했었던 바를 이루어 내었다. 당시에 나는 백화점 직원들의 영웅이 되었다. ‘내가 가진 무엇으로 사람들을 도울 것인가’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기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일도 막상 잘하지 못한다면 누군가를 도울 수도 없다. 하지만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을 재밌게 느끼는 게 중요하다. 처음에 그저 해보고 싶은 일도 주위사람들의 응원을 들으면서 ‘이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일을 좋아하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지금 당장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지만 앞으로 내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고, 내 인생을 세상을 위해 어떻게 쓸 것인가가 중요하다. 직업을 선택해야 할 시기가 되었을 때 ‘내 직업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지’도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당신을 만난건 행운입니다’라는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 통행이 불편했던 구간에 노선을 만들어 버스를 운영시켰던 시절이였는데, 당시 사람들의 문의가 많아서 버스에 적어놓은 핸드폰 번호로 문자가 온 것이다. 물론 저장도 되어있지 않고 낯선 번호였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일 뿐인데 사람들이 고마워하는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마워하고 응원해 주는 걸 느끼면서 매일매일 이런 얘기를 듣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어딜 가던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 순간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보이면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지금은 한옥마을에 있으니까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고, 언젠가 미국이든 아프리카든 있는 그 곳에서 최선을 다하려 한다. 한옥마을에서 떡볶이를 파는 할머니에게도, 문방구 할아버지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 내 꿈은 ‘세상씨를 만난 건 행운입니다.’라는 얘기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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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01 23:02

풍족한 세상 속 우리들의 부족함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은 어렵다. 눈에 띄는 우여곡절을 넘긴 사람은 드물고, 비슷한 학력을 쌓아가며 성장해왔다. 부모님 세대와 달리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어른들은 너희들이 어려운 것을 알긴 하냐고 말하기도 한다. 주변의 모든 환경이 완벽한 것처럼 보인다. 순탄하다 보니 부족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 속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적어나가야 하는데 쉽지 않다. 결국 나의 자기소개서를 다른 누군가에게 맡긴다. 다른 이들의 삶을 참고해 소설을 적기도 한다. 행복했던 자신의 기억을 불행하게 왜곡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 모두 비슷한 자기소개서를 만들어 낸다.최근 텔레비전, 인터넷, 신문 등 각종 매체에서 자주 등장하는 기업인이 있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중국 인터넷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다. 그는 중국의 청춘들에게 자수성가가 가능함을 몸소 보여주며 창업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몇몇 상인들은 마윈의 초상화를 가게에 걸어놓고 마치 재물 신처럼 모시고 있다고 한다.이런 마윈의 성공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소개되고 있다. 그 중 한 강연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마윈의 성공비결은 의외였다. 스탠퍼드 대학 강연 당시 마윈이 설명한 자신의 성공비결은 3가지였다. 첫째, 돈이 없었다. 둘째, 기술이 없었다. 셋째, 계획이 없었다. 돈이 필요한 문제를 전부 창의력과 노력으로 해결해야 했고, 기술이 없었기에 기술자들을 존중하고 우대했다. 마지막으로 계획이 없었기에 변화하는 시장의 흐름에 그때그때 대처하며 적응해 나가야 했다. 마윈은 자신에게 부족한 요소들을 찾아내서 자신만의 성공 요소로 삼고 노력했다. 그 결과 평범했던 교사는 전 세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기업인으로 성장했다.우리는 풍족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음식은 남아서 버리는 일이 많고, 하루에 한 번 씻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다. 인터넷을 통해 살면서 다 볼 수 없을 정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SNS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와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이제 대학 진학의 선택 기준은 어쩔 수 없이 못 가는 것이 아니라 필요가 없어서 안 가는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많은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다 보니 정작 소중한 한 개를 얻는 것은 어려워졌다. 돈만 있다면 식당 종류별로 각종 음식들을 맛볼 수 있지만, 따뜻한 집 밥을 먹는 날은 손에 꼽을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하나의 주제에 대한 각종 이야기를 찾을 수는 있지만, 진실을 찾는 것은 어렵다. 대부분 하나씩 갖고 있는 스마트폰을 제대로 이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얼굴을 보지 않는 모니터 상의 인간관계 속에는 서로에 대한 예의가 사라져 가고, 실제로 만나도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기 보단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주변에 많은 것들이 넘쳐나다 보니 정작 나만의 것은 부족해졌다. 남의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보니 내 것을 만드는 고생을 하지 않는다. 최대한 쉽게 가려고 하고, 어렵고 불편한 일들은 피하려고 한다. 결국 기본이라 생각됐던 예의는 무너지고 만다.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며 고통받는 이들이 많이 보인다. 넘쳐나는 정보들에 현혹되지 말고 나만의 것을 만드는 일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범했던 마윈이 유명한 기업인이 된 것은 그가 특출났던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그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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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25 23:02

야간학습 없는 세상

한국에서 밤에도 불이 켜져 있는 고등학교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반계고라면 야간자율학습을 안 하는 학교가 더 적을 것이다. 학원가는 말할 것도 없고, 심야까지도 독서실이나 집에서 더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도 많다. 이런 모습은 곧잘 기특한 일로 추켜세워지기까지 한다. 작년 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던 한 고등학교 교장은 새벽에도 불 켜진 학교 건물 사진을 SNS에 올리며 자랑과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을 바람직한 일로 포장하는 현실이다.그러나 야간학습은 전혀 좋은 일이 아니다. OECD 국가 중 학습시간이 가장 긴 한국 청소년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애초에 중고등학교의 수업 자체가 많은 편인데, 거기에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 사교육까지 더해져 밤까지도 공부를 하게 된다. 아침부터 밤까지 빼곡하게 공부로만 채워진 학생들의 시간표를 보면 놀 시간과 쉴 시간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해가 진 뒤에도 학교나 학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는 모습은 이런 현실을 상징하는 슬픈 풍경이라고 할 만하다.청소년들의 시간을 빼앗는 장시간 야간학습의 폐해는 작지 않다. 청소년들의 낮은 행복지수도 그 탓이 클 것이며, 많은 청소년들이 자는 시간마저도 부족한 형편이니 건강에도 안 좋을 것이 분명하다. 간혹 야간자율학습 중 갑자기 쓰러져 목숨을 잃은 청소년들의 소식이 들리곤 하는데, 직접적 원인이 불명이더라도 과중한 학습으로 인한 피로와 스트레스 등이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추측해본다. 또한 야간노동의 경우는 암의 원인으로 의심받고 있으며 소화기 질환, 심혈관계 질환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간학습도 마찬가지 아닐까?몇 년 전 손학규 의원이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화두를 던졌던 적이 있다. 노동시간도 가장 긴 편인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여 많은 공감을 얻은 표어였다. 청소년들 역시 ‘저녁이 있는 삶’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밤에 학교나 학원에라도 잡아놓지 않으면 청소년들이 갈 곳도 없고 위험에 노출될 거라는 우려를 하는 이들도 있다. 과거 군사정권이 통행금지를 시행하던 논리랑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어 보이긴 하지만, 아마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부모가 많기 때문에 생기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얘기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건 그만큼 청소년들이 참여할 다양한 여가 활동들과 시설들을 만들어서 해결할 문제이다. 일하는 부모들도 일찍 귀가할 수 있게 해야 할 테고.새 학기가 되니 야간자율학습을 강제로 시키는 사례들이 이슈가 되고, 교육청도 단속에 나서곤 한다. 그러나 ‘강제로’ 시키는 것만이 문제일까? 밤까지도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는 교육 상황 그 자체가 인권 문제이다. 애초에 밤까지 학교에서 공부시키는 제도라는 게 한국과 중국 일부 정도에서밖에 찾아볼 수 없는 비정상적인 모습이다. 학교에서의 야간학습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 또한 UN사회권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대해 내린 권고대로 야간의 사교육 영업을 법률로 확실히 규제하는 것도 필요하다. 학교나 학원에서 공식적으로 밤까지 공부를 시키는 것이 당연한 ‘야간학습 문화’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야간학습 없는 세상만 만들어도 한국은 청소년들이 좀 더 살 만한 곳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공부든 일이든, 저녁과 밤에는 사람이 좀 쉬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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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18 23:02

꿈꾸는 나를 꿈꾼다

길을 가다 우연히 친구들을 만날 때면 꼭 한 번씩 듣는 말이 있다. “너는 하고 싶은 일해서 좋겠다, 나는 아직 꿈이 없어...” 그 말을 들었을 때 처음 알았다. 꿈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 꿈을 이루는 게 아니며, 하고 싶은 일을 아직 찾지 못한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난 지금까지 꿈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돈이 드는 일도 아니고, 허황한 꿈을 꾼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 결국 그 친구에게는 어떠한 말도 해주지 못했다. 다들 번듯하게 하고 싶은 일하며, 잘들 살고 있겠거니 싶었는데, 내 주변에 꿈이 없는 사람이 이렇게 많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20살이 되어, 가고 싶은 대학을 정할 때도 그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취업 준비를 할 때마저 부모님의 뜻이 아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틈이 우리에게 있었던가? 나의 지인 중에 초등학교 선생님이 하나 있는데, 요즘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삼성에 취직 하는 거요!” 라고 대답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6학년도 아닌 초등학교 1, 2학년 아이들이 벌써 취직이라는 단어를 알고 쓴다는 게 기분이 묘했다. 내가 그 나이 때는 꿈이 참 많았던 것 같은데. 남들이 다 한번 씩은 꿈꾸던 운동선수부터 시작해 변호사, 방송국PD, 잡지 피처에디터, 음악가, 영화감독 등의 장래희망으로도 모자라 나중에 크면 살고 싶은 집까지 그리곤 했으니까. 그 중에 하나라도 이루면 돈과 행복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으로 생각했건만. 막상 재능을 인정받고 음악가가 되었더니, 그 꿈에 ‘돈 잘 버는’, ‘유명한’ 같은 수식어가 하나 더 붙어야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러고 보니 초등학교 1, 2학년 꿈이 ‘취직’ 이라는 것도 이제 서야 좀 실감이 난다.그래도 꿈이라면 크면 클수록 좋고 그런 거라도 좀 있어야, 살면서 어떤 욕심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내가 부럽다는 그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혹은 다른 누군가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니 부럽다고 말한다면 이거 해도 똑같다는 대답 대신, 그냥 아무 말 없이 한번 안아줘야지 싶다. ‘아름다운 꿈’ 같은 건 옛말이 되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그 이후에 어떻게 돈을 벌어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가를 여전히 고민해야 하는 요즘 세상에선 결혼하는 것도 큰 꿈 중에 하나가 되었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한다 해도 내가 낳은 아이마저 내가 살아온 이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까 싶어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요즘 TV를 틀면 자주 보이는 연예인 아빠들이 아이를 키우는 프로그램처럼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이런 방송에서 나오는 그들의 일상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부모님이 직장에 나가 밤늦게 퇴근하고, 그걸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이 나오는 장면 같은 건 없다. 앞서 말한 방송 에서처럼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말은 말 그대로 꿈같은 이야기겠지.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 나의 두 번째 꿈이라면, 꿈을 꾸는 것은 정말 잠을 잘 때나 가능한 일이 되어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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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11 23:02

'수익 창출' 장사꾼? VS '시장 창출' 창업가!

미국 뉴욕에 가면 쓰레기를 파는 사람이 있다. 도시 한복판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를 주어서 포장해 놓으면, 관광객들은 그것을 구매한다. 도시의 골칫덩이로만 여겨지던 하찮은 쓰레기가 뉴욕이라는 곳을 추억하고 기념하기 위한 관광 상품이 된 것이다. 이 사업은 2001년부터 시작해 뉴욕뿐만 아니라 미국 내 40여 개 주, 나아가 30여 개 국가에서도 주문이 들어온다고 한다. 일본의 한 마을에서는 낙엽을 판다. 매년 처치 곤란할 정도로 많은 낙엽이 길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예쁘고 건강한 낙엽들을 골라서 다양하게 상품을 만들었다. 음식을 고급스럽거나 예쁘게 장식하는데 낙엽을 사용하도록 시장을 만든 것이다. 낙엽을 팔아 발생하는 수익금으로 온 마을 사람들이 먹고 살 정도다. 한국의 전주한옥마을에서도 비슷한 프로젝트가 진행됐던 적이 있다.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를 주어서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가, 관광객들에게 선물이라며 돌멩이를 건네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쓸모없고 돌멩이를 받은 관광객들은 종종 당황하긴 했지만, 자신들의 SNS를 통해서 ‘전주한옥마을에서 선물 받은 돌멩이’라며 손바닥 위에 아기자기하게 올려놓고 찍은 사진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게시되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받은것인지, 누구에게 받은것인지’를 묻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2012년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아무리 사소한 돌멩이라도 사람이 사람에게 전달하면 의미와 가치가 생긴다는 나의 개똥철학이 기반되었고, 전주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돌멩이를 매개체’로써 이 곳, 이 곳에서 만난 사람을 기억할 수 있게 하기 위한 프로젝트 의도를 설명했다. 현재는 돌멩이를 받기 위해서 불가능공장을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생겼다.길에 버려진 쓰레기, 흔하게 떨어져 있는 돌멩이 등 두 가지 사례를 보자면 ‘무엇(WHAT)’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HOW)’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바꾸어 나갈 것인지 과정이 더 중요해 보인다. 창업을 시작했다가 ‘시기가 빨라서’, ‘아이템이 안 좋아서’라고 투정을 부려봤다면 ‘어떻게’라는 질문을 안고 다시 한번 생각해봐도 좋다. 기존에 형성된 시장에서 큰 자본이나 마케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장사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시장을 창출’하는 창업은 분명 다르다.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이 있듯이 창업에 있어서도 초기 자본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다. 돈 없고, 전문성 없고, 경험 없고, 인력 없고, 인맥도 없는 청년이 창업을 시작하게 된다면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까.수익을 창출하는 방향보다는 시장을 만드는 방향으로 접근을 차근차근 걸어나가 보자. 나만의 고객을 만날 수 있는 틈새시장도, 나만의 고객을 만날 수 있는 홍보 채널도, 나의 가치를 필요로 하는 동료를 찾고, 내가 변화시키고 싶은 세상에 대한 신념을 세우는 것이다. 물론 더 어려운 숙제라는 것을 알지만, 청년 창업가들은 마땅히 이 도전을 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자산 ‘시간’이라는 걸 최고의 무기로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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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04 23:02

휴학을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학생기자 시절, 처음 기사를 쓸 때 쉼표는 애매모호하고 어려웠다. 쉼표의 용법이 있지만 글을 쓰다보면 괜히 넣게 되곤 했다. 뭔가 끊어줘야 할 것 같았고, 모든 내용을 한 문장에 담으려 했기 때문이다. 쉼표를 넣다보면 문장이 길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장은 여러 번 읽어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쉼표를 빼면 문장이 어색해졌다. 문장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쉼표는 의미를 부각시켜주기도, 살을 이어주기도 하지만 제때 사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의미를 변질시켰다.며칠 후면 4학년이 된다. 새내기로 첫 발을 내디딘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끝이 보인다. 아직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회에 나갈 준비는 안 된 것 같은데 대학생활을 마무리해야 한다. 내 또래라면 한번쯤 휴학을 고민하고 있다. 학과가 적성과 맞지 않아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 사회에 나가기 전 잠시 쉬고 싶어서, 취업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물론 등록금이란 불가피한 이유로 휴학을 하는 이들도 있다.휴학에 대해 누군가는 한번쯤 필요하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시간만 버릴 뿐이라고 한다. 실제로 휴학기간을 알차게 보낸 학생이 있는 반면, 왜 했나 싶은 학생도 있다. 계획도 없이 어영부영 보내는 이들, 졸업과 취업 앞에 도피처로 삼는 이들이 적지 않다. 휴학 슬럼프에 빠져 뭐하나 제대로 못해보고 복학하기도 한다. 다들 한번쯤 하니까 따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휴학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자격증, 어학, 시험 등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여러 경험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분명 ‘나만의 시간’이 필요한 이들에게 휴학이란 쉼표는 적절한 선택이다. 결국 휴학을 결정할 수 있는 열쇠는 스스로 갖고 있다. 우리는 각자 환경과 생각, 꿈이 다르다. 하나에만 집중할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학교를 다니며 취업을 준비하는 것이 나은 경우도 있다. 대학의 공부가 의미 없는 경우도 있고, 전공을 살려 진로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여러 상황들에 따른 판단은 스스로의 몫이다.지금 찍으려는 쉼표가 나란 문장에 있어 옳은 지점일까? 해답도 없고, 오답도 없는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고민하고 있다. 경험자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각종 사이트에서 정보를 찾아보기도 한다. 계획을 써내려가다 지우기도 한다. 삶에 어떤 계기가 될지 모를 시간을 결정하기 위해. 그 선택에는 어느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있길 바란다. 더불어 이미 내린 결정에는 흔들리지 말고 나아가길 바란다.소설가 황석영 씨가 「개밥바라기별」에서 작가의 말로 전한 메시지는 휴학에 대한 결정을 내린 이들에게 조금은 자신감을 줄 것 같아 마지막으로 남긴다.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면서 다만 자기가 작정해둔 귀한 가치들을 끝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물론 삶에는 실망과 환멸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는 어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다. 그들은 네가 다른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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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2.25 23:02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올해 스물다섯 살. 키는 178, 몸무게는 67kg에 덩치에 비해 어깨가 넓고, 쌍꺼풀이 없는 매서운 눈에, 숫기가 없어 처음 보는 사람들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는 것을 못한다. 또 웃을 때 잇몸이 크게 보여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어색하게 웃는 버릇을 포함, 이런 눈에 보이는 몇 가지만을 가지고서 사람들은 나를 어려운 사람으로 여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지인들을 만날 때면 항상 아래와 같은 질문으로 사람들을 귀찮게 하곤 했다. “야, 네가 볼 땐 난 어떤 사람인 것 같아?”, “오늘 어때 보여?” 물론 눈앞에 있는 누군가를 당장 몇 마디의 말로 평가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나로선 행여 인상이 나쁜 사람으로 보이진 않을까, 또 약간 바보 같거나 촌스러운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을까 매번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들에게 내 성격이나 행동들을 확인받으면서까지 ‘좋은 사람,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살아가면서 이런 경험들이 꽤 있을 거다. 모르는 것도 아는 척, 없는 것도 있는 척, 휴대폰으로 사진 찍을 때마저도 최대한 밝고 예쁘게 나오는 곳을 찾아낸 후 20, 30번을 연달아 찍은 사진 중 제일 잘 나온 것을 프로필로 설정해놓고는 그게 정말 내 모습인 것처럼 누군가를 교묘히 속이며 나를 감추는…. 이렇듯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누군가와 비교하며, 진짜 내 모습이 아닌 내가 만들어 낸 ‘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치길 바란다. 나 또한 그런 행동들을 서슴지 않았는데, 중학생 때는 친구들 앞에서 남들 모르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힘들게 산 비싼 신발을 신고서는 엄마에게 선물을 받은 척을 하기도 하고, 20살이 돼 친구에게 소개받은 여자 앞에서는 친하지도 않은 유명한 가수들을 친한 형이라며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밖에서의 그런 내 모습들이 너무 ‘짝퉁’ 같이 느껴졌다. 애초에 명품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전에 ‘짝퉁’이 돼버린 학창시절 나의 모습은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아마 그 생각을 하게 된 이후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보이는지 지인들에게 일일이 물어 검사를 맡지 않았나 싶다. 남들이 보면 취향 독특하다 할지 몰라도 나는 여자라면,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에 평범한 운동복 차림의 여자를 좋아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화장을 하지 않은 자기 모습을 드러내기 죽을 만큼 꺼려하고, 힐은 여자의 자존심이라며 이 세상에서 가장 도도한 표정으로 보도블록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지만, 내게 그런 모습은 말 그대로 여자들의 ‘겉치장’으로 느껴졌다. 하루는 그런 ‘겉치장’에 목매곤 했던 당시 여자친구에게 물었다. “난 화장 안한 네 모습이 더 좋아. 화장을 좀 옅게 하면 안 돼?” 그러자 그 친구는 화장을 하기 시작한 후로 거울을 볼 때면 화장을 하지 않은 자신의 맨 얼굴이 TV 속에 나오는 연예인들이나, 길거리를 쏘다니는 화려한 여자들의 얼굴들에 비해 너무 초라하고 초췌해 보여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렇다. 누구에게나 멋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존재하고, 그 욕망의 시작은 보통 외로움이나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 시작되며, 결국 모두가 원하는 그 끝은 나를 보는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안타깝게도 인간이라는 동물은 제아무리 감추고 숨겨봐도 ‘나는, 나’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언젠가는 깨닫게 돼 있다. 오늘 하루 중 거울을 보았을 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면 자신을 위해 한 번쯤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겠다. 그동안 잊고 있던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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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2.11 23:02

청년 복지가 잘 된 도시? 스스로 해결하는 청년 도시!

생각이 살아 꿈틀거리는 도시, 놀라운 실천력으로 변화를 이끌어가는 도시,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꿈의 도시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 이러한 설레이는 상상을 하기 이전에 우리들이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 있다.지방의 도시들은 젊은이들이 지역을 떠나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떠나는 현상들에 대해서 많은 고민들을 한다. 이러한 현상들이 발생하게 된 것은 더 큰 세상에 대한 동경 때문일 수도 있고, 현재 살고 있는 공간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 때문일수도 있다.청년에 대한 문제점을 찾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전북 지역에 살고 있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청년들의 어려움, 불편함, 혹은 필요한 것들을 먼저 조사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난달을 시작으로 전주시는 ‘청년다울마당’이라는 포럼을 정기적으로 진행을 하고 있다. 청년 정책을 만드는데 있어서 ‘성공한 좋은 정책’ 보다는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무게 중심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첫 번째, 다양한 입장을 가진 주체의 참여가 필요하다. 스스로 위로 받고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거나, 친구들의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것, 문제의식조차 없는 등 여러 가지 입장이 있다. ‘기존 지역에 많은 관심을 두고 활동했던 활동가’를 넘어서 불특정 다수의 청년 참여를 이끌어 내자.두 번째, 의견을 축적하고 문화로 이어나갈 공간이 필요하다.비슷한 생각, 관심사를 가진 청년들이 함께 모여서 토론하고 공동 작업할 공간은 많은 시너지 효과를 가진다. 이것은 단지 하드웨어를 위한 관점 보다는, 소프트웨어를 위한 관점으로 봐야 한다. 소소하지만 용감했던 청년활동들이 단기간 안에 끝나고 증발되는 일이 많다. 이런 활동을 모아서 콘텐츠로 저장하고 축적해 문화로 발전시켜나가야 하는 공간의 기능을 강화시켜야 한다. 세 번째, 만들어줄 것인지 만들게 할 것이지 방향을 잡아야 한다.청년이 가진 문제의식에 대한 안건들을 지자체의 예산과 전문가의 투입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제공해 줄 것인지, 혹은 하고싶은 것이 있는 청년들에게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기회를 제공할 것인지 두가지 관점에서 방향성을 명확히 잡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지자체(민간단체, 기업)에는 각 분야별로 정해진 예산으로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그 일들을 청년들에게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어떨까? 그 과정을 통해서 경험을 쌓는 교육의 관점으로 청년들의 역량을 개발하고, 지역에 대한 이해를 깊이 있게 돕는 것, 지역에 관심가지고 머물게 하는 것, 나아가 일자리를 스스로 만드는 것 등 이들에게 기회를 줘보자. ‘청년’이라는 단어가 나이를 의미하진 않는다고 다들 알고 있다. 청년다운 생각. 나보다는 타인과 사회에 관심가지고 고민하는 청년들이 그리 흔한 세상인가. 그래도 그 날을 기대해본다. 제 밥값은 제가 해결하고 전북이라는 지역에서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청년들이 많아지길 바란다.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청년 복지’가 잘 된 도시가 될 것이냐.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청년의 도시’가 될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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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2.04 23:02

전구는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다

가끔 빨리 나이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불안하고 불확실한 이 시기가 지나갔으면 좋겠다. ‘그땐 그랬지’하며 지금을 추억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싶다. 아름답고 빛나는 청춘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청춘이라, 젊으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겪어야 할 차별이 싫기 때문이다.젊음은 한번 지나가면 다신 돌아오지 않는다.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다. 청춘이기에 실수를 해도 실패하지 않을 수 있고, 틀려도 바로 잡을 기회가 있다. 노하우는 부족하지만 잠재력은 충분하다. 물론 전문가가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 경험이 없어 서툴다. 배우면서 일을 하다 보니 느리다. 그럼 청년은 사회를 배움의 기회로, 경력 한 줄로만 살아가야 할까? 한 일, 들인 시간보다 대우를 받지 못해도 견뎌야만 하는 걸까? ‘너의 열정을 발휘할 기회를 줄게. 대신 임금은 바라지마(없어).’ ‘열정페이’ 덕분에 청년들에 대한 차별이 사회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몇몇 업계에서 거론된 청년의 부당한 대우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 견습, 인턴, 교육생, 알바 등으로 존재하는 비일비재한 모습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이유로 목소리 한 번 내기 어렵다. 억울하지만 ‘그것도 못 견디면서 뭘 하겠냐’는 말을 들을까봐 이 악물고 버틴다. 하고 싶은 일이 청춘들에게 독으로 다가온다. 열정은 꿈을 실현시키기보단 잔혹한 현실을 경험하게 해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이들을 부러워하고 싶지만 그들의 현실은 슬프다. 열정을 가진 청춘들에게는 대우가 아닌 희생만 주어지고 있다.우리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기도 전에 당장 몇 년 뒤 취직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한다. 꿈은 오래 전 현실적인 단어에서 이상적인 단어가 됐다.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것 하라던 어른들의 말은 안정적인 직장 잡으면 하고 싶은 것 찾아 취미생활로 즐기라는 말로 바뀌었다. 삶의 기준을 사회의 기준에 맞추려다보니 하나, 둘 포기하게 된다. 이젠 우리보고 연애, 결혼, 출산에 인간관계, 내 집 마련까지 포기했다고 ‘오포세대’란다. 우리가 포기했다기보다는 사회가 포기시켰다고 해야 맞는 말 같다.누구나 꿈은 있다. 젊음에 열정, 수많은 기회까지 있는 청년들은 오죽할까. 청년은 도전해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이들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청춘의 현실은 열정의 보상이라곤 최저시급도 되지 않는다. 결국 마음 안에 있던 꿈과 열정은 더 깊숙이 집어넣게 된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따르게 된다.청춘들이 안타깝다고 굳이 위로를 보낼 필요는 없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잠깐일 뿐이다. 지금 상황이 문제라고 느껴진다면 사회에 발을 내딛은 청년을 붙잡아 줬으면 한다. 지금까지 이어진 ‘열정페이’에 대한 악습을 끊고 청년의 열정을 제 값에 사주길 바란다. 안타깝다는 마음보단 변화를 위한 행동을 해주길 부탁한다. 청춘은 새 전구다. 빛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전구의 종류가 다양하듯 각자 성격과 재능도 다르다. 전구는 아무리 아름다운 빛을 가졌다 하더라도 에너지가 없으면 그 빛을 낼 수 없다. 형형색색의 전구들이 있어도 한 곳에만 모아놓으면 의미 없기 마련이다. 사회가 청년들이 각자 제자리에서 빛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아름다운 빛들의 향연을 볼 수 있지 않을까?△김도연 전 편집장은 전북대 공과대학 도시공학과에 재학 중이며 전북대신문사 학생기자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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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28 23:02

'용' 안 돼도 괜찮아

요즘 한국 사회를 묘사하는 말 중에 “개천에서 용이 못 난다.”라는 얘기가 있다. “용 난다는 개천은 시궁창 돼”라고 제목을 단 신문기사도 본 적이 있다. 거기 담긴 문제의식은 요컨대 더 이상 개인의 노력과 능력으로 계급상승을 이룰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소위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뜻이며,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희박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학교 교육과 입시에서부터 잘 사는 가정이 더 유리하고, 소득은 양극화되며, 부동산 등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더 쉽게 이득을 보는 현실을 볼 때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그런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는 과연 어땠을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성공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고, 좀 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이른바 ‘명문대’에 들어가고 고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분명 ‘용이 못 된’ 많은 이들이 있었으리란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삶은 괜찮았던 것일까. 모두에게 원치 않아도 경쟁에 뛰어들라고 등 떠밀고 ‘등용문’을 노리는 법만 가르친 시대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노력하면 개천을 탈출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정작 개천의 부조리나 열악한 상황은 고쳐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신화는 그 밑바탕에 일종의 능력주의를 깔고 있다. 그리고 그 뒷면에는 차별의 정당화가 자리한다. 몇몇 성공의 사례들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겪을 불이익과 차별을 그들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잠자코 받아들이게 하는 근거가 된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가혹한 경쟁체제와 그 결과에 순응하게 한다. 경쟁교육, 학벌주의 등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조차 먼저 성적과 학벌을 물으며 자격을 따지는 것은 그 한 단면이다. 용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피해를 입는 이들이야말로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과거에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안 된다, 다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만으로는 부족하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시스템을 개혁하지 않은 것 자체가, 어쩌면 차별을 누적시켜 양극화를 만들어내고 지금 ‘개천’을 ‘시궁창’으로 만든 하나의 원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용’의 신화 자체가 현재의 시스템을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성공 가능성이 아니라, 개천에서의 삶 전반을 보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애초에 개천과 바다를 나누고 용이 된 자만 박수와 보상을 받는 차별과 승자독식의 시스템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자신의 출신에 상관없이 노력과 능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더 좋은 사회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모두가 ‘용’이 되어야 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 미꾸라지, 송사리, 개구리, 붕어, 메기 등 다양한 삶이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들 모두가 나름대로의 모습으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경제 상황 속에서 다시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을 부활시키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도 의심스럽지만, 그건 애초에 잘못된 해결 방향이기도 하다. 복지제도이든 입시폐지이든, ‘용 안 돼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어갈 방법, 그것이 지금 우리가 찾아야 할 길일 것이다.△공현 청소년 인권운동가는 월간지〈오늘의 교육〉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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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21 23:02

생각의 전환, 혼자서도 잘 노는 법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은 항상 집에 혼자 있는 나를 위해 일주일에 한번 씩 음반을 사와 들려주시곤 했다. 그로 인해 어릴 적부터 외동으로 자라 외동으로 커온 내 삶에 있어 가장 처음 느껴본 즐거움은 대 여섯 살 때 집에 있는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김건모의 ‘스피드’를 들으며 혼자 춤을 추던 때가 아니었을까.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가정, 다른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학창시절 같이 놀던 친구들, 또는 사회의 어떤 무리와 멀어져 혼자 있게 되는 순간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이를테면 학교, 학원, 직장 같은 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밖에 있다가 집에 들어와 신발을 벗을 때마다 허무함을 느끼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그렇다면 그런 순간들을 즐길 수는 없는 걸까?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의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친구들 중 유독 혼자 있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해 만날 때마다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며 매번 내 발목을 잡던 녀석이 있다. 하루는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CD를 몇 개 사더니, 어느 날 비어있던 책상에 디제잉 장비가 떡 하니 놓여있는 게 심상치 않았는데. 세상에 길은 많고 정답은 없다 했던가. 지금 그 친구는 하루에 몇 시간씩 시간을 쪼개 꼬박 꼬박 음악을 듣고 주말마다 클럽에서 디제이를 하며, 어느새 친구들 사이에서도 ‘재밌게 사는 놈’ 으로 불린다.사실, ‘혼자서 노는 법’ 따위는 나도 잘 모른다. 애초에 누구에게 고민처럼 말하거나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을만한 그런 거창한 일이 아니니 혼자서도 잘 먹고 잘 노는 법은 젓가락질 하는것 만큼이나 간단하다. 비록 남들이 보기엔 쓸데없는 짓처럼 보일지라도 내가 혼자 있을 때 심심함을 느끼지 않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 누가 뭐라 한들 그것이야말로 ‘혼자서도 잘 노는 법’ 인 것이다.누군가 내 옆에 있을 때는 절대 할 수 없을 것만 같아 보이던 ‘영화관에서 궁상맞게 혼자 영화를 보는 일’도 몇 번 해보고 나니 더 이상 여자친구나, 친구들에게 보고 싶은 영화를 양보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재미가 들렸는지 요즘엔 혼자서 보고 싶은 영화들은 따로 적어두기까지 한다. 전에는 지겨워 한숨 나오던 혼자만의 시간들이 지금은 오히려 아쉬운 순간들이 되었다.그런 아쉬움들이 차츰 쌓일 때쯤엔 젊거나 늙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누구는 자전거를 탄다더라, 누구는 요리를 한다더라 같이 들리는 소문에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되고, 나이와 내가 속한 사회의 직책을 떠나 앞으로 주어진 내 시간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 만큼 고민되는 일도 몇 없을 거다.존카니 감독의 <비긴 어게인> 이란 영화를 보면 마지막 즈음 이런 훈훈한 대사가 나온다. “이래서 내가 음악을 좋아해. 가장 따분한 순간까지도 갑자기 의미를 갖게 되니까. 이런 평범함도 음악을 듣는 순간 아름답게 빛나는 진주처럼 변하지. 그게 음악이야.”상투적 일 수도 있지만 뭐든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왠지 모르게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아주 간단한 생각의 전환만으로 늘 홀로 다니던 지옥 같은 출·퇴근길이 정말로 지옥처럼 느껴질 수도, 혹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 산책로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 중요한 것은, 우리는 이미 이 문제의 답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꼭 긴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야 깨닫고 만다는 것이다. △문이랑 프로듀서는 인디레이블 YOUNG, GIFTED&WACK 소속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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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14 23:02

지식을 배우는 대학? 인생을 배우는 대학로!

“그게 세상을 바꾸고 있는 거라고?”2009년, 재학중인 대학교 인근의 동네 상가를 돌아다니면서 ‘쿠폰이라는 매체를 만들자’고 상인들에게 ‘땡깡’부리는 일은 학교 공부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게 했다. 취미나 전공으로 예술활동을 하고 있는 학우들을 찾아가 ‘길거리에서 공연 한번 해보자’며 음치 박치 몸치의 대표주자인 내가 이야기를 꺼내니 도통 설득이 되질 않는다. 기숙사에서 대학가 상권까지 걸어서 20분이나 떨어진 거리를 걸어다니기가 귀찮다는 핑계로 ‘버스를 만들자’고 아이디어를 냈지만 버스 운전부터 배워야 할 실정이였다. “네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냐?”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꼭 필요해 보이지 않은 일을 할 [시간]에 스펙을 쌓으라던 친구들, 일을 하려면 [돈] 되는 걸 하라는 상인들, 학과의 [전공]을 잘 살려서 그 분야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교수님들, 무엇보다 [안정적인 삶]을 선택하길 원하는 부모님까지도 먹고 살기 힘든 시대의 청춘들에게 걱정 넘치는 걱정을 보여주셨다. ‘하고 싶은 일 = 해야만 하는 일’이 공식이 성립되는 삶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가능 할 수도 있지만, 꼭 가능한 것에만 도전하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 또한 식상하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거라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지,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답을 찾기 어려웠지만 내가 이론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에 설레임을 가질 때도 있었다. 대학이라는 곳은 전문지식을 배우는 곳일 때보다 ‘내 것’을 가지고 질문할 때 더 재미있다는 걸 졸업하고 나서야 알았다.“그러나, 여전히 상상하고 설렌다”술, 당구장, 노래방, 음식점으로 건물 틈새까지 가득 메운 상점들이 즐비한 대학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상상 ‘어디 갈까? 뭐 먹을까?’ 그 이상의 질문들을 해보자. 음식을 사먹는 식당 보다는 여자친구를 위해 맛집 스파게티 요리를 배우는 요리 학교 !음료 마시는 커피숍 보다는 비슷한 고민의 청춘들이 모여 지식을 공유하는 인문학 학교 ! 잠자는 원룸과 자취방 보다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청춘들이 함께 사는 쉐어하우스 !전북대 뒷동 건지산 보다는 숲과 나무로 인테리어 된 전국 최대의 힐링 강의실 !대학생이기 때문에 더욱 실감하는 대학로의 문제점과 불편함을 기회로 바꿔낼 수 있는 시기가 온 것 같다. 올해부터 청춘들이 모이는 전북대 대학로가 20대 문화공간으로 변화하기 위한 계획을 실행에 옮길 계획이다.우리 청춘들은 지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전북대 대학로를 ‘바꿀 사람은 누구인지,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은 누가 해야만 할까. 그 주역이 대학가를 이용하는 20대이면 좋겠고, 전북대를 잘 알고 있는 지역 청년이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는게 꼭 거창하지 않아도 되고 거창해 보일 필요도 없다. 꼭 내가 주역이 아니더라도 세상은 변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마을, 도시, 대한민국 이런 지역의 변화들 속에서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은 분명히 있다. 혹시라도 자신이 꿈꾸는 대학가를 상상해 본 경험이 있는 청춘이라면 지금! 여기! 시작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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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0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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