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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는 투표를 하자

총선을 앞두고 청년들의 낮은 투표율에 관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이는 청년 정책의 부실 혹은 부재로 이어지고, 다시 정치에 대한 청년들의 불신이 생겨난다. 악순환이다. 정치적 효능감 경험 많지 않지만청년들이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투표할 의향을 밝혔다는 몇몇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지만, 실제로 더 많은 청년들이 투표장으로 발걸음을 옮길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청년들의 투표 탄력성이 높기 때문에, 이들이 실제로 투표할만한 동기를 부여하는 게 중요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평소에 정치에 무관심했던, 혹은 이에 불신감을 가진 청년들의 마음이 갑자기 어떤 근사한 홍보물을 보았다고 해서 쉽게 움직일까?정치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이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후보자와 정당에 관한 정보를 얻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각종 선거 용어는 생소하고, 일일이 공약을 찾아보며 비교 분석해 보는 일도 만만찮다.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건 알지만, 나 하나 이런 노력을 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싶은 마음이 슬며시 든다. 급기야 이런 데 마음을 쓰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취업 준비를 위해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이를 두고 비난할 수만도 없는 현실이다. 청년들은 정치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을뿐더러 정치 참여가 생활을 개선시킬 거라는 기대가 없으니, 정치에 참여할 특별한 이유를 찾기 힘들다.정치적 효능감이라는 말이 있다. 나의 정치 참여가 효과가 있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믿음은 보통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 경험은 처음부터 특별하거나 거창한 것이기 어렵다. 정치 참여가 내 권리를 보장한다는 믿음은 일상적 경험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일상적 경험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러한 경험은 주로 민주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초 교육을 받는 10대에 풍부하게 축적되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 청년들은 이러한 일상적 경험을 풍부하게 축적해온 세대가 아니다. 당장 나의 경험을 돌아보아도, 정치적 효능감을 경험했던 기억이 많지 않다. 학급 내 반장 선거를 했던 과정, 반장의 역할, 학급 회의의 운영 그리고 각종 의사 결정 과정 등을 아무리 떠올려 보아도 그렇다. 갑자기 각종 법상 성년이 된다고 해서 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노련함 같은 게 생길 리 만무하다. 이 시대 청년들은 학창 시절에는 입시 경쟁에, 성인이 되어서는 생존 경쟁에 매달리느라 바빴다. 청년층 과소대표 되지 않도록 한 표를청년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불신을 무조건 환경 탓으로 돌리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청년들의 낮은 투표율이 나 그리고 당신의 탓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서투르더라도 괜찮다. 적어도 청년층이 과소대표 되지는 않도록 하자. 내가,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투표이고, 결국 우리를 둘러싼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것도 투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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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11 23:02

청년정책과 투표

냉소와 무력감이 청년들을 관통하고 있다. 전통정당에 대한 신뢰는 많은 부분 무너졌다. IMF금융위기 이후 청년실업 등 청년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지는 벌써 십수년이 지났지만 이태백, N포세대, 달관세대에 이르기까지 자조적인 신조어가 유행하도록 청년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약속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만성적인 실업이 계속되고 있고, 이제는 금수저-흙수저논란처럼 청년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로까지 고착화 되고 있다.청년정책에 지역청년들 존재하는가2016년 호남지역 통계청에서 발표한 인구추이를 보면 20대와 30대로 대표되는 청년인구는 꾸준히 유출되고 있으며, 40대와 50대의 유입보다 유출의 감소폭이 커 2015년에는 전북인구의 순유출을 기록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청년인구의 이동을 고려할 때, 통계청에서 발표한 추이에 비해 체감하는 청년인구의 유출은 이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굳이 통계를 예시로 들지 않더라도, 청년인구는 줄어드는 추세이다. 따라서 수적으로도 청년은 정책을 주장할 수 있을만한 입장이다. 물론 이같은 이유가 청년들이 유권자로서 수적인 열세와 조직적인 단결력이 떨이지기 때문에 청년정책의 필요성이 떨어진다고 반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청년인구 유출에 대한 심각성과 정책적인 지원이 요구되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여전히 우리 지역정치권에서 청년유권자에게 정책으로 표현되는 관심이 열악하다는 점은 몹시 유감스럽다.이번 20대 총선을 맞아 후보들과 정당에서 내놓은 정책을 분석해 보면 일자리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가장 심각한 청년문제는 무엇인가에 대한 응답비율과도 이어진다. 청년스스로 가장 큰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이 바로 일자리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청년문제가 일자리 문제로 귀결되는가, 혹은 일자리만 해결되면 모든 청년문제가 해결되는가라고 비판할 수 도 있지만, 한편으로 일자리 정책이야말로 지역에서 청년들이 가장 갈급하는 정책이기도 하다.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일자리문제 외에도 분명 지역적 특색을 갖는 청년들의 욕구가 있을 진대, 이는 유감스럽게도 반영이 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사실상 명확한 수요조사 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청년, 그리고 유권자로서 선거를 통해 확인한 사실은 제도와 순응하는 태도로는 그 어떤 실질적인대안도 탄생시기키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는 구 질서를 분명히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모든 광장 시위와 점거 시위가 증명해 보였듯이,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주권회복과 현 의회제도 사이에 모순된 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주권회복을 위해서는 현 제도를 배척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투표권 행사와 같이 적극적으로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이름없는 청년에서 청년유권자로물론, 이러한 입장에서 청년 문제를 제도화 혹은 재-제도화된 정치로 환원시키는 순간 이 모든 시도와 노력이 허무로 끝나버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오늘 대다수 청년들이 보이는 정치적 무관심 또는 정치적 무중력적 상태(수평적 정치에 대한 환상)에 입각할 경우 특히 더 그렇다. 그러나 둘 중 어느것이든 간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현실에 답하지 못한다면 결국엔 기득권의 질서에 얽매이게 될 것이다. 그것도 오로지 그 질서의 방식에 따라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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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04 23:02

복종의 가려움

‘단군 이래 정부 최대 대학 지원 사업’이라 불리는 ‘프라임 사업(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 계획서 마감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정원 감축 등 구조조정에 따라 재정이 얄팍해진 상황에 등록금 인상 상한선(1.7%)을 조금만 올려도 각종 재정지원 사업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게 돼 동결할 수밖에 없었던 대학들은 정부의 파격적인 ‘당근’지원사업에 또 을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해 대학구조개혁평가로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다시 거대한 사업을 맞이한 당혹과 혼돈을 느낄 새도 없이 전국 대학들은 짧은 기간 동안 어떤 창조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사회 인력 수요에 맞춘 대학 학과 조정단일 사업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6000억원(3년)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하는 프라임 사업은 사회의 인력 수요에 맞춰 대학 학과별 인원을 조정하라는 것이 골자다. 구체적으로 인문·사회·예술과 사범대학 등 이미 사회수요를 넘어선 학과의 인원을 줄여 실용 학과 위주로 구조조정 하라는 의미에 가깝다.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14~2024년 대학 전공별 인력수급 전망’ 자료가 사업의 명분이자 주재료다. 저출산과 인력 초과 영향으로 공학계열의 공급부족과 공학을 제외한 기타 계열의 공급 과잉이 우려된다는 ‘전망’이 프라임 사업의 무쇠 오른팔이 되어주었고, 전국 대학이 앞 다투어 뛰어들고 있는 거대한 당근 게임 카운트다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성격은 다르지만 DNA는 같은 ‘코어 사업(대학 인문역량 강화사업)’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사회수요에 맞게 융합하라는 주문이 들어 가 있다. 코어사업의 5개 항목 중 ‘인문기반 융합전공 모델’ 예시를 보면 ‘인문학과 다양한 학문이 결합한 융합전공 개발을 통해 창의·인문 인재 양성’이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러한 부분이 인문학의 본질을 흐리게 할 ‘짬뽕’학과의 개설을 부추긴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기본계획안에 ‘국공립대 총장직선제 폐지’ 등 사업과 무관한 과제까지 심사기준에 들어가 있다는 것도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정부는 사회 수요와 대학 교육 간 ‘미스매치’를 해소하고 청년 실업난을 완화하기 위해 전공별 수급을 고려한 대학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언뜻 보면 정말 불가피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는 청년 실업난을 해결해야할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대학’이라는 확신이 짙게 깔려 있다. 지원 사업이란 명목 아래 대학을 취업교육학교로 규정하고, 확실하지도 않은 전망을 미끼로 학생들의 미래를 뒤흔들며, 주어진 기간 안에 대학 구성원들과 합의까지 원만하게 끝내라는, 세상에 없는 수를 두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길들이기식 태도 학생들 피해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사업을 시행한다면서도 정식으로 공고가 난 것은 3개월 전에 불과한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일찍이 지원 사업 소식을 듣고 셀프 구조조정에 들어간 대학도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길게는 1년, 짧게는 3개월 기간 동안 어느 착한 대학이 구성원들과 모여 자율적으로 논의하고 방향을 결정 지으려 하겠는가. 학과 통합과 폐지에서 언제나 빠져있는 논의의 대상, 정부의 길들이기식 태도가 전염병처럼 대학에 퍼져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되물림되고 있는 현실. 불확실한 전망만 믿고 대학의 존재 이유 자체를 쥐고 흔드는 막대한 재정지원사업의 진짜 전망은 ‘복종’아닐까. 복종, 그것은 또 다른 지원사업 세계의 문을 연 한국형 인공지능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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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28 23:02

청춘을 맞이하다

작년 여름. 평소 알고 지내던 선생님에게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 에너지 자립마을로 유명한 임실 중금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연극작품을 하나 기획해달라는 것이었다. 전통 음악공연을 주로 기획했던 나에게 연극을 기획한다는 것은 조금 생소한 작업이었지만, 선뜻 제안을 받아들였다.날씨가 참 좋았던 주말. 임실 중금마을을 찾아가 담당자와 함께 극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시와 비교해서 청정지역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농촌의 환경오염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었다. 특히 오래 전부터 몸에 배인 습관 그대로 농촌의 어르신들은 쓰레기를 소각하고 있었다. 농사에 쓰이는 비닐과 농약병 폐기 문제가 컸다. 결국 중금마을 할머니들의 쓰레기 분리수거 이야기를 주제로 교육형 연극을 만들기로 했다.80대 여배우들을 만나다마을회관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여든이 넘은 분들이었다. 집에서 나오는 생활 쓰레기를 전부 분리수거 해서 버렸다. 요구르트나 우유팩은 깨끗이 씻어서 버릴 정도로 분리수거가 몸에 배어 있었으며, 잘못 분리된 쓰레기를 다시 보기 좋게 분리수거해 놓았다.우리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할머니들의 삶 그대로를 무대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환경에 대한 할머니들의 생각과 평소 자주 쓰던 말투, 행동을 대본에 녹이기 시작했다.농번기와 함께 본격적인 연극연습이 시작되었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들은 성치 않은 몸과 대사를 외우는 일, 그리고 바쁜 농사일로 힘들어 했다. 연습이 점점 어려워졌다. 나는 힘들겠으니 다른 사람과 하라며 연습을 빠지는 일도 있었다. 우리는 연극 공연을 안 해도 좋으니 영상이라도 남겨놓자고 참여를 당부했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그렇게 할머니들과의 밀고 당기기로 가을을 보냈다. 김장철이 다가왔다. 김장을 위해 고향을 찾은 할머니의 아들과 손자, 며느리들은 자연스럽게 연극을 연습하는 할머니를 봤다. 고향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가 대본을 들고 연극을 준비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나 보다. 이내 그들이 연극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그 뒤로 나는 할머니들의 연습 영상을 가족들에게 보내주며, 수시로 중금마을의 소식을 전했다.그 뒤로 할머니들은 스스로 대사를 외워오기 시작했다. 중금마을에 갈 때마다 음식을 싸가던 예전과 다르게, 이제는 할머니들이 한 상 푸짐하게 차려놓았다. 우리와의 연습을 매우 즐거워했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이제 중금마을의 할머니들은 연극배우가 되었다. 올 한 해에도 많은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제9회 그린웨이 축제 개막식 메인무대에 초청되었으며, 임실군 마을 순회공연도 하게 된다. 연말에는 할머니들의 영상을 작은 영화제 출품되기로 했다.재생되길 바라는 마음은 더 애틋할머니들의 삶과 쓰레기는 묘하게 교차된다. 여든이 넘어가는 할머니들은 스스로의 삶을 관심 받지 못하는 쓰레기와 닮아 있다고 본다. 분리수거를 통해 쓸모 있는 물건으로 재생되길 바라는 마음은 그래서 더 애틋했다. 이번 공연 기획은 사람과 사람을 잇고, 그들의 삶에 촘촘히 스며드는 과정, 또 그 의미를 재해석하는 작업일 수도 있다. 청춘의 사전적 의미는 만물이 푸른 봄날을 뜻으로 인생의 젊은 의미를 뜻한다. 여든 넘어 푸른 봄날을 맞이한 소녀같은 할머니들이 늘 건강하고 행복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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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21 23:02

청소년 범죄로 젊은 시절 낭비되지 않도록

뒤늦게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EBS)라는 프로그램에 푹 빠져 있다. 여기에는 심각한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거나, 주인을 심하게 무는 등 행동교정이 필요한 강아지가 나온다. 그리고 그 가정에 전문 훈련사가 방문하여 문제 행동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을 개선해 나간다.위 프로그램을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강아지들이 어떤 문제 행동을 갑자기 보이는 이유는 없다는 훈련사의 말이었다. 강아지들은 사람들이 문제라고 인식할만한 행동을 하기 전에 수없이 많은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신호들을 보지 못했거나, 보고도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심지어 알면서도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소년보호사건 국선보조인 활동나는 서울가정법원 소년보호사건 국선보조인 활동을 하고 있다. 소년보호재판을 받게 된 소년들이 적법 절차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을 한다. 그리고 소년들을 변호하는 일을 하는 동시에 소년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조사하고 지도하는, 상담사와 비슷한 역할도 한다.재판을 받게 된 소년들과 이야기를 하며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이 아이가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겠구나.라는 것이다. 소년의 주변을 살펴보면, 보호자가 폭력적이거나 방임하는 경우, 지속적인 주 보호자가 없는 경우, 집단 따돌림을 받았던 경우 등 그 보호력이 미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이런 상황에서 소년들은 계속 신호를 보낸다. 위 TV 프로그램 속 강아지처럼 말이다. 나를 돌봐주세요, 더 사랑해주세요, 내게 지금 이런 문제가 있어요, 내 마음을 알아주세요, 라고. 소년은 어느 날 성인에게 대들기도 하고 잘 하던 숙제를 하지 않기도 했을 것이다. 자신의 신호를 주변에서 잘 알아주지 않으면 소년은 외로움에 화가 많이 났을 것이고, 학교에 나가지 않기도 했을 것이다. 특히 자신의 생각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소년일수록 문제 행동은 더욱 심화되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소년보호재판을 받게 되어 나와 만나게 되었을 소년들. 우리는 그 사소한 신호를 무시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물론 온정적인 시각에서 소년을 이해하기에는 피해자의 고통과 상처가 상당히 큰 경우가 있다. 혹은 자신의 행동이 범죄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미약하거나 죄책감이 적은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분명히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고 진정으로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정신과적 치료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그 맨 처음 시작은 대부분 아주 작은 것이었을 터이다.세상에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국선보조인으로서 소년과의 만남이 지속적이기는 어렵다 보니 아쉬울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짧은 만남 속에서도 소년들이 세상에 나의 첫 신호를 이제라도 알아주는 성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나와의 만남이 그들에게 치유와 반성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책임이라는 것을 배우기를 바란다.세상에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 소년들이 보내는 그 첫 신호를 민감하게 알아채고 반응하는 것은 청소년 범죄를 예방하는 첫 단추이다. 그 첫 단추를 잘 꿰어서 소년들의 젊음이 더 이상 낭비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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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14 23:02

청년기본조례, 청년문제 해결위한 초석

2016년을 맞으며 올해의 화두 중 하나가 바로 청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향신문의 〈부들부들 청년〉, 한겨례의 〈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한국일보의 〈한중일 청년 리포트〉등 앞다투어 기획한 청년 시리즈들은 절망한 청년세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 덕분인지 근래 청년에 대해 관심이 부쩍 늘어난 것을 체감하고 있다.청년 스스로 해결 주체로 나서야하지만 한편으로 관심이 높아진만큼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는 현상들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간간히 들려온다. 청년이라는 이름을 빌어 그다지 연관성 없는 일들을 포장하는데 이용되거나 특별한 내용도 없이 비슷비슷한 내용을 반복하는 자리에 동원되는 것에 염증을 느끼는 청년들도 늘었다. 그래서인지 늘어난 관심이 반갑기도 하지만 모든 세대의 다수가 힘들어 하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유독 청년이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왜인지 스스로가 반문하며 두려움이 엄습할 때도 있었다. 정녕 청년은, 이대로 한때의 유행으로 소비되며 한국사회에서 가장 불쌍한 세대로 그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실제로 청년세대의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의 정책은 늘어나고 있으며, 기성세대의 관심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청년세대의 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주체는 바로 청년이다. 어느샌가 청년이 국가적 문제가 되어 버린 이래, 사회는 끊임없이 청년전문가를 찾기에 급급해 왔다. 하지만 그들이 내놓는 해답이 과연 청년 문제를 해결해 주었던가? 또 그들이 얼마나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해주었던가? 물론, 그 안에는 기성세대의 지혜로운 통찰도 있었고 청년들이 반드시 귀담아 들어야 할 조언도 많았다. 하지만 내 문제에 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인 것처럼, 청년문제도 결국 문제에 대한 인식과 고민의 주체가 청년이 될 때 비로소 궁극적인 해결이 가능한 것이다.최근 청년문제의 해결과 지원의 일환으로 서울시를 비롯해 각 광역단체들과 기초단체들에서도 청년지원조례가 속속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 지역의 경우 전북도에 이어 전주시에서도 시의회를 중심으로 청년기본조례안을 준비하고 있으며, 3월 중 청년들과 함께 공청회를 가질 예정이다. 청년기본조례안은 청년의 사회참여 확대, 학습권 보장, 능력개발, 고용확대, 부채경감, 문화활성화, 청년공간 마련 등 지역실정에 맞는 정책을 마련하는 내용이다. 이번 청년기본조례안은 2015년 가결한 전주시청년일자리창출촉진에관한조례와 별도로 광범위한 분야를 담고 있어 취업문제 외에도 청년들을 지원하고 청년들 스스로 청년문제의 해결주체로 설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지역사회를 청년들 삶의 터전으로한편으로 청년기본조례의 제정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바로 청년들에게 지역사회의 자리를 주는 것이다. 청년들이 지역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청년들이 그동안 실질적인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체감이 이와 같았을까? 청년기본조례의 제정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청년들이 자신의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자리매김하고 더 나아가 청년들에게 지역사회가 머물다 가는 공간, 거쳐가는 공간이 아닌 청년들이 꿈꾸는 삶의 터전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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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07 23:02

어른들의 말

졸업을 했으면 취업을 하라는 말은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는 책 제목처럼 무심한 칼날 같았다. 그만큼 일상적이고 또 잔인했다. 직장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면 어느 직장에서나 평생 마찬가지라는 말을 믿었다. 그 말엔 연륜이 묻어나왔고 믿음직한 경험이 깔려 있었다. 그만큼 사실적이고 무시무시했다. 버텨야 한다. 참아야 한다. 열심히 해야 한다. 열정이 있어야 한다. 노력해야 한다. 그런 말들을 차곡차곡 모아 두 손에 꼭 쥐고 달렸다. 어른들의 말을 따라가면 조금도 위험할 것이 없었다. 험한 길이어도 아직 젊으니 괜찮았다. 뒤돌아볼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묻지 마라. 따지지 마라. 속 보이지 마라. 들을 때마다 발목에 채워두었다.호통만 치는 무서운 세상누군가 그 말을 의심할 때는 비슷한 다른 말을 꺼내 손목에 채워주었다. 묻고 싶고 따지고 싶고 다 털어버리고 싶은 그런 날에도 어쩐지 희망을 바라보고 의지를 확인하고 괜찮다고 다독였다. 감정을 숨기지 못한 날에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고 자책했다. 그래도 가만히 버티고 있으면 괜찮아질 것을 알았다. 내일이 있고 또 다음이 있으니까.이 세계의 오늘은 자주 바뀌었다. 구천에 떠돌던 말들은 더 강력하고 날카로운 이름을 달고 아프게 날아다녔다. 3포세대란 말은 9포세대로 진화하고, 헬조선의 진흙수저들이 땅을 치고 있었다. 누군가는 가까운 과거가 그리워질 거라 말하고, 누군가는 앞으로 더 나빠질 이곳에서 지옥이란 말조차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자고 한다. 이제 망국(亡國)이라고 말이다.그 와중에 대통령 어른은 화를 내며 책상을 내리치고 있었다. 왜 우리더러 책상 밑에 들어가 이상한 법이 가리키는 대로 조마조마 살라는 건지 모른다. 또 다른 어른들이 수십 년 동안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일군 길인데도 모른다. 모르는 것은 많다. 최저임금 월급으로는 집도 방도 결혼도 아기도 가질 수 없는데 현실적인 대안도 없이 어떻게 가정을 꾸리고 살라는 건지 모른다. 계약직을 늘려봤자 불안의 길이만 더 길어질 뿐인데 왜 자꾸 개혁이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모른다. 정말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이 여기인지 어디인지 모른다. 왜 자꾸 어떤 나라랑 비교하는지 모른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른다. 말은 듣지 않고 사정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호통만 치는 어른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스운지 모른다.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못한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있다.그런데 이제 그 말을 조금 비틀어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래서 말이지만 어른들의 말은 대통령의 공포정치의 궤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낡고 닳고 힘센 말이 점점 빛을 잃어가는 시대, 요즘 국회단상에 선 어른들의 말이 새삼 빛난다. 장장 몇 시간 동안 부려놓은 말에선 파도가 굽이치고 행간에선 칼바람이 분다. 어느 역사교과서보다 더 생생한 역사를 듣고, 어느 나라보다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발자취를 느낀다. 말은 격랑 속이지만 나아갈 방향은 더 뚜렷하게 보인다.마음 울리는국회 '필리버스터'현실엔 고개 숙이지만 말 한마디에 다시 고개를 들고 눈을 뜨게 된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국회방송을 켜 두고 그들을 응원하고 있다. 모처럼 어른들의 말이 피부에 와 닿기 힘든 까닭이고 이처럼 마음을 울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임주아씨는 우석대를 졸업했고, 2015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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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2.29 23:02

예술가에게 재능 기부란?

대학생 무렵, 한참 레슨을 받기 위해 선생님을 찾아 다녔다. 당시 선생님은 개인 음반도 발매했으며, 지역 축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공연무대에 오를 만큼 인정을 받는 대금연주가였다.어느 날 레슨을 받는 도중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얼핏 내용을 들어보니 대학 교수가 전화를 걸어온 것 같았다. 통화가 길어질수록 선생님의 언성이 높아졌고, 휴대폰을 놓고 다시 자리에 앉아서도 화는 가라앉지 않는 듯했다. 후에 건넨 이야기는 이러했다. 이번 달에 저명한 학자들과 유명 인사들이 전주에서 모임을 갖는데 혹시 시간이 괜찮다면 연주를 해주길 바란다는 것. 여기까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 후에 건네 온 말이 무척이나 불쾌했다고 한다. 좋은 의미가 있는 자리이니 공연을 재능 기부의 형식으로, 페이 없이 진행해달라는 것이었다.문화산업시대, 예술에 정당한 보상을2년 전 봄, 연주하는 것이 좋아 한옥마을 버스킹을 시작했다. 거리의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었고,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지속적으로 공연을 했다. 전주 한옥마을의 유래 없는 전성기가 시작된 시점. 운이 좋게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그 후로 공연을 해달라는 연락을 자주 받았다. 그들의 논리는 이러했다. 어차피 공연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니 이왕이면 우리 공간에서 공연을 해달라는 것. 언뜻 보기엔 그럴싸했다. 공연을 편하게 할 장소가 생기기 때문이다.하지만 이것은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극과 극의 상황이 된다. 내가 좋아서 하는 공연과, 그들이 불러서 하는 강요된 공연. 이러한 이유로 정중히 거절하면 도리어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때도 많다. 예술가가 좋아서 하는 거지 돈을 바라고 하면 되냐는 논리 앞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돈을 밝히는 못된 예술가로 치부되는 것이다. 예술가들 사이에서 이러한 고민은 닳고 닳은, 해묵은 이야기 주제가 됐다.문화산업 시대가 오고 문화를 경제적인 가치로 어떻게 환산할 지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예술행위에 대한 정확한 정찰제가 없고, 작품에 대한 감동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돈으로 예술을 계산하기는 어렵다.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한 시대에, 예술이 꼭 필요한 것이냐고 되묻는 이도 물론 있을 수 있다.모든 것의 기준이 돈이 되는 시대.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지지만, 예술가를 신성시하는 시선은 굳건하다.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은 여전히 돈의 세계와는 무관한 영역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무얼 먹고 살아야 할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눈물 젖은 빵을 먹는 가난한 예술가로 남아야 할까? 예술가 역시 보통의 영역에 살고 있다. 많은 이들이 학교 강의실에 앉아 경제학과 전기공학 등 전공지식을 배울 때, 우리도 음악학, 전통음악선율 등을 배웠다. 그들이 사회로 나가 청년무급인턴 등 열정페이를 강요 당할 때, 재능기부의 압박을 받는다.청년에게 열정페이 강요하지 말아야재능의 사전적인 의미는 이렇다.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 개인이 타고난 능력과 더불어 훈련에 의하여 획득된 후천적인 능력도 포함된다. 예술가가 가진 것은 재능 뿐이다. 그리고 그 재능이란 모두에게 그렇듯 우리에겐 전공이다. 타고난 감각, 그리고 밤낮으로 이어지는 후천적인 능력으로 한 편의 작품이 만들어진다. 예술가들에게 아무런 보상 없는 제안은 하지 않았으면, 또 그러한 제안을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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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2.22 23:02

노동인권 감수성과 우아한 주문

많은 변호사들이 근로계약서도 없이 일하고 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니 명시된 근로조건을 확인하기도 어렵다. 근로계약서가 있다 하더라도 추가 근무수당 없이 휴일에 출근하거나 야근하는 것쯤은 예삿일이다. 특히 갓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변호사의 경우, 변호사법에 의하여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6개월간 종사하거나 연수를 받아야 독립된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다. 그래서 근로기간을 위 법률사무종사기간인 6개월로 정하여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수습기간으로 보더라도 사용자는 최저임금의 100퍼센트 이상을 지급하여야 하나, 이것조차 지키지 않는 사업장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경우 예외대상이 아닌데도 흔히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다.얄팍한 기득권 챙기고 있는 이에게아동청소년 인권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다 보니 나는 종종 청소년 아르바이트 관련 상담 의뢰를 받는다. 청소년 노동권 침해는 보통 두 가지 상황에서 발생한다. 하나는 관련법을 모르는 경우이다. 당시에는 권리 침해에 대한 인식 없이 사업주가 그렇다니 그런 줄 알고 있다가 지나고 보니 억울하여 상담하러 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권리 침해 사실을 분명히 알고서도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경우다. 청소년의 노동이 그저 어린 애들 용돈벌이로 경시되는 상황에 청소년들이 얼마나 큰 무력감을 느낄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왜 주휴수당 등을 주지 않는지 묻는 청소년에게 너 그 돈 어디에다 쓰려고!라고 윽박지르는 사업주들. 그들에게 생계비를 버는 청소년의 생존권은, 상상 한참 밖의 것인가 보다.나 또한 이런 압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부당해고나 임금 체불을 해결하기 위해 열성을 다해 일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해 있는 변호사들이 법을 몰라서 이런 상황을 참아내고 있는 것일 리 없다.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이는 가장 먼저 약자들을 옭아맨다. 잘못된 방법으로 얄팍한 기득권을 챙기고 있는 사람들은 그 거대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그 부당함에 대해 발설하지 말라 주문한다. 때로는 그 방식이 우아하여, 우리가 그것에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다. 세상살이가 다 그런 것이니, 좋은 교훈을 얻었다 생각하고 넘어가라. 휴게시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거나 소위 알바 꺾기를 당할 때에도, 사업장에서 모욕적인 대우를 당할 때에도, 심지어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부당하게 해고되었을 때에도 이런 주문은 계속된다.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해야그러나 우리는 이를 단호히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노동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육체적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이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참조). 이는 그 자체로 삶을 유지시키는 숭고한 행위이다. 나의 노동은 오롯이 나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그래, 인생의 쓴 경험 했다 쳐버리자라는 포기의 외마디도 차라리 노동자 자신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말이지, 제3자가 할 말은 아닌 것이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이런 우아한 충고가 하고 싶어진다면 자신의 노동인권 감수성을 반드시 점검해야 하는 시점이니, 경계하자.우리는 스스로가 행한 노동의 가치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 뒤에 타인의 존중이 따라온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것은 결국 부당한 것을 두고 부당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로 이루어진 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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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2.15 23:02

젊은 예술가여! 버틸 수 있는 이유를

한때 트위터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소설가 이외수는 존버 정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이 말을 듣고 존버라는 위인의 삶의 태도를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존버 정신이 무어냐 묻는 혜민스님에게 스님, 존버 정신은 존X게 버티는 정신입니다이라는 답변을 한 일화를 듣고 3초는 웃고, 그 뒤로는 오래 씁쓸해졌다.본인이 가는 길에 자긍심 있다면예술가는 배고프다라는 관념은 기정사실이다. 현대에 들어 관립단체는 물론, 예술가가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사라지고 있다. 젊은 예술가들이 예술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필자 역시 대학교를 한국음악으로 졸업하고 상실감과 회의감으로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일본에 간 적이 있다. 오사카와 교토에서 머무르며, 그곳에서 만난 두 분이 나에게 젊은 예술가로서 버텨야 하는 이유를 만들게 했다.오사카 모모다니에는 우리말로 달맞이라는 카페가 있다. 이곳에는 제일교포 2세인 고정자 선생님이 있다. 해방 이후 유신시대를 거쳐 오며 반쪽바리로 불리며 멸시 당한 이야기, 동일본의 대지진 때 일어난 조선인 학살사건 등 그 분이 살아온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 같기도 했다.긴 이야기에 이어 고정자 선생님은 한국을 매우 사랑한다고 했다. 특히 전통음악 판소리를 좋아하는데, 일본 특유의 받침 있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게 가장 가슴 아프다고 했다. 오사카에 사는 제일교포 3세의 소리꾼이 있는데 그 소리꾼이 받침 있게 판소리를 완창하는 날이 일본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일 거라고 이야기했다. 한 발은 일본에, 한 발은 한국에 둔 사람에게 판소리는 얼마나 큰 의미일까. 선생님의 말은 내 안에서 크게 울렸다.다음 일정은 교토였다. 일흔이 넘은 시마주 타케오 할아버지는 금각사 옆에 산다.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너무나 좋아하던 시마주 선생님은 일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분이었다. 맨 처음 필자에게 걸어온 이야기는 광동대지진 사건이었고, 당시 학살된 사람의 수가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멸시 받는 제일교포를 위해 다양한 운동을 했는데, 일본 간첩 사건 때 사식을 넣었고, 강제노역을 당한 광산의 역사를 간직한 단바망간기념관의 이사로도 활동했다. 일본인에게 듣는 우리 아픈 역사에 만감이 교차했다.일본에 계시는 두 선생님은 전주세계소리축제를 맞아 한국에 방문해서 우리 음악을 듣고 막걸리를 드시며, 춤을 추고 흥겨워한다. 한국음악을 전공한 나를 참 좋아하며,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생계를 위해 음악을 포기하려던 나는 버텨야 하는 이유를 두 선생님을 통해서 찾을 수 있었다.흔들리지 않고 올곧은 길 갈 수 있어예술가들은 흔히 이야기한다. 버티는 놈이 이긴다고‥. 하지만 무엇으로 버틸 수 있는지 그 이유는 막연하다. 돈이 삶의 기본요소가 된 시대에, 예술가에게만큼은 돈을 떠나 살라고 말하는 시대. 물론 많은 부를 원한다면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이 걸어가는 길에 대한 정체성과 자긍심이 있다면, 우리는 자연히 존버 정신을 갖게 되고, 흔들리지 않은 채 올곧은 길을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젊은 예술가들이여! 젊다고 해서 버티는 것이 아니다. 버틸 수 있는 이유가 있어서 버틴다면 성공의 길도 그다지 멀지 않을 것이다.△김지훈 대표는 문화공간 cafe 마실을 운영하며 국악협회 전북지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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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25 23:02

이 시대 청춘들의 행복 추구권

영화 행복을 찾아서의 주인공은 지독하게 가난한 생활의 절정에 이런 말을 한다. 그 순간 토마스 제퍼슨이 쓴 독립선언문이 생각났어요. 삶, 자유, 행복추구권 부분이요. 그리곤 생각했죠. 행복이란 오직 추구할 수만 있는 것. 그리고 평생 무슨 짓을 하던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성공 위해 비인간적 삶 살 순 없어우리 헌법 제10조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여기서 도출되는 권리를 행복 추구권이라고 부른다. 자유나 평등도 행복만큼이나 추상적인 개념인데, 우리는 이를 각각 자유권, 평등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유독 행복만은 행복권이 아닌 행복 추구권이라고 한다.이 시대 청년들의 행복과, 행복을 추구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바라는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혹은 조금 더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났어도 일정 수준 이상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일정 시기에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고, 일을 하면서 때로 만족을 느낄 수 있으며, 함께 나이 들어갈 사람들을 곁에 둘 수 있는 삶, 그 정도가 아닐까. 저마다의 행복이 또 있겠지만, 어쨌든 이 시대의 청년들이 바라는 행복은 유별난 것이 아니다.그러나 청년들이 이 정도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독한 불행 그 자체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수많은 고통에 더하여, 실체를 알 수 없는 성공을 위해 비인간적인 삶을 기꺼이 감내하는 노력을 계속 하라는 일부 기성세대들의 이기적인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도 한몫 하고 있다.비교적 젊은 나이에 변호사가 된 나는 사회에 나름대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전통적인 변호사 업무는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고,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이럴 때 제일 먼저 고통의 한 가운데로 떠밀리는 것은 청년 변호사들이다. 내게 일터에서의 시간은 불행의 연속이었다.내가 원하는 행복도 그리 큰 것이 아니었지만, 이를 위해서 찰나의 만족스러운 순간조차 모두 포기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적 보상이 충분한 것도 결코 아니었다. 이대로 더 버틸 수 없겠다는 절박함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미래의 더 큰 만족을 위해 현재의 만족을 포기하거나 유예하는 것이 유효하던 시대는 가버렸다는 확신이 들었다.그리고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어느 정도 고정 고객을 확보한 뒤에야 용기 내서 할 수 있다는 개업이라는 것을 그만 해버렸다. 모은 돈이 많지 않았으니 사무직원 없이 작은 사무실에서 컴퓨터, 전화기와 팩스를 두고 시작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변호사 같은 세련됨은 꽤나 부족하지만 처음부터 일을 만들어 가는 보람은 있다.행복의 본질은 추구하는데 있어법률사무소를 어떻게 운영했더니 잘 되고 있다는 식의 성공 스토리를 쓸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청춘이라 일컬어지는 세대가 빠르게 독립된 인간으로 자리 잡기 어려운 때에 평범한 내가 그런 것을 벌써 할 수 있었을 리 없다. 다만 훗날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불행을 참아내는 일을 이제 그만 두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뿐이다.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이 지독한 불행일 뿐이라면, 언젠가 행복이라는 지점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진정한 행복이라 말할 수 있을까. 행복추구권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행복의 본질은, 그 자체보다 그것을 추구하는 데 있는지 모른다.△서경원 변호사는 이화여대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고 민변 아동인권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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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18 23:02

청년정책, 포퓰리즘 복지사업 아니다

2015년을 맞이하며, 신문 1면을 장식했던 N포세대와 달관세대라는 신조어를 보고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해졌던 기억이 난다. 특히 일본의 사토리세대를 번역한 달관세대라는 단어의 등장은 평범한 대한민국의 한 청년의 입장에서 자괴감마저 들게 했다. 왜 청년들은 한국사회에서 많은 것을 포기고, 무기력한 세대로 낙인이 찍혔는가. 또 왜 우리는 청년들에 대한 이름을 다른 세대, 어른들 시각으로 규정되고 불리우게 할 수 밖에 없었으며 자조와 냉소, 무기력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인가.계층 구조적 문제 포함한 청년 문제그 고민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앞다투어 신조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인구론, 헬조선, 노오력, 취업깡패, 이케아세대, 취업 9종세트, 화석선배 등.그리고 최근까지 논란이 많았던 금수저-흙수저까지. 언론에서 수없이 인용됐던 청년에 대한 신조어들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을지라도 취업난, 물가상승 등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취업은 물론이고 연애, 결혼, 출산이라는 일반적 삶의 과정을 포기해야만 하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근래 정부가 청년희망펀드를 조성하고 재계에서 각기 거금을 투입하며 앞다투어 지원정책을 내놓는 것은, 그 의도나 진정성에 대한 논의는 논외로 치더라도 한국사회에서 청년문제의 심각성을 뒤늦게나마 인지한 결과라 생각한다.하지만 그럼에도 왜 청년이 문제인가에 대해 여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분들을 요즘도 종종 만난다. 흔한 말로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거나 요새 젊은이들이 도전정신이나 패기가 부족해서, 청년들이 투표를 안해서 혹은 개인 역량의 문제로 환원시키며 청년들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저색깔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미 청년문제는 단순히 세대의 문제가 아니다. 굳이 문화자본이니 상징자본이니 하는 용어들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미 청년세대의 문제는 세대문제를 넘어서 계층적, 구조적인 문제까지 포함한 복잡한 난제가 됐다.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이하 청년수당)과 성남시 청년배당과 같은 정책도 이 연장선상에서 평가해야 한다. 청년수당은 미취업자, 졸업예정자 중 중위소득 60%이하인 19~29세 청년 3000명에게 월 50만원씩 지원비를 지원하겠다는 것이고, 청년배당은 3년이상 성남시에 거주한 19~24세의 모든 청년에게 연 100만원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정부는 이들을 무분별한 무상복지사업, 포퓰리즘 복지사업이라며 지방자치단체에 패널티를 부과해서라도 막겠다고 한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청년정책의 규모가 연간 1조 7000억원임에 비교하면, 서울시와 성남시가 2016년 청년 관련 사업비로 책정한 금액은 각각 90억원, 113억원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더군다나 평범한 직장인이자, 한 청년의 입장에서 중앙정부의 정책들이 만 30세까지의 국세납부세제해택, 청년인턴고용 확대 등과 같이 큰 실효성을 느끼기 힘든 것들이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서울시와 성남시가 시행하고자 하는 정책이 단순히 포퓰리즘에 입각한 정책이라고 비난하기 어렵다.중앙정부 해결하려는 의지 보여야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청년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해결을 위해 경쟁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처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사이의 정치논리와 명분에 의해 청년정책이 다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청년문제에 대한 해결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정부가 자치단체가 힘겨루기를 할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고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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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11 23:02

어떤 시절

케이블TV에서 ‘응답하라’시리즈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인기 비결은 청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대목에 있다. ‘그 때 그 노래, 사람들, 시절’의 푸르름에 대한 기억이 애틋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모임, 연말 술자리에서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청춘을 예찬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그들 중 한 사람에게 물었다.청춘에 대한 조언 쏟아지지만“어르신께 청춘이란 뭔가요?” - “그리운거지.”“제가 볼 땐 지금도 청춘이신데요?”- “에이, 그렇지 않아. 이미 지나가버렸지.”그들은 ‘청춘이 마냥 그립다’고 말했다. 돌아갈 수 없기에 그리운 것. 젊은 날과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지만, 결코 그 때와 같지 않은 현재를 살아내고 있다. 누군가는 후회되는 것들을 말하기도 했다. 충분히 그 시절을 겪어내고, 그리워하기에 지금이라도 마음껏 예찬할 수 있는 걸까. ‘청춘’들은 먼 훗날 ‘지금’을 어떻게 돌아볼까?나는 젊음이 영원하지 않을 걸 잘 알고 있다. 항상 내일을 준비하면서도 동시에 현재를 즐기려 노력해왔다. 새해에는 정든 직장을 떠나 미뤄둔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들을 하기 위해 새로운 여정에 뛰어들게 되었다. 나와는 다른 조건 속에 놓여진 청춘들도 아마 자기만의 길을 찾아 떠나는 여정에 있을 것이다. 조금 헤매더라도, 각자의 길을 걷는 친구들과 만나면 서로 에너지를 얻는다. 고민도 많고, 두렵고 불안하지만 아직 우리에게 ‘실패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니까 부럽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가 가장 괴롭다. 첫째로 그들은 ‘하고싶은 일’이 아닌 ‘해야하는 일’을 경쟁적으로 해치워가며 원치 않는 성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갈수록 ‘실패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구조적 모순이 원망스럽기 때문이다. 그 다음엔 친구들이 하나 둘씩 ‘하고싶은 일’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하게 된다. 이게 정말 괴롭다.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 알 것 같아서, ‘가진 건 없어도 아직 우린 젊잖아!’와 같은 무의미한 격려도 할 수 없다. 오히려 천천히 동력을 되찾도록 묵묵히 곁을 지킬 뿐이다. 최근 서점가, 미디어, 그리고 주변의 어른(이라 쓰고 꼰대라 읽는다.)들이 청춘에 대한 조언과 충고를 쏟아내고 있는데, 그런건 오히려 ‘청춘’이라는 이름마저도 무거운 짐으로 만드는 것 같다. 이미 청춘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권고 받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이렇게 글을 쓰면서 짧은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세대에 해당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청춘을 대상화하거나 특정 세대의 삶을 제한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모두의 삶에 더 많은 기회가 찾아오길 바라게 됐다. 성패를 떠나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여유, 특히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여력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6년이 밝았고, 더욱 팍팍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직 밑도 끝도 없이 희망을 잃지 않는 내가, 이래서 청춘인걸까 싶기도 하다.실패할 기회라도 누릴 수 있어야주어진 조건 안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즐거움, 책임감 있게 자유를 누리는 지금의 시간들은 무척 소중하다. 어쩌면 조금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도, 내일로 미뤘다가 더 먼 내일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다. 봄에 놓친 것이 있다면 여름에 해도 되고, 가을에 해도 되지 않을까.△김다이 씨는 독립영화 중에서 단편영화 연출·프로듀서로 첫 발을 내디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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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04 23:02

인문학 열풍을 바라보며

이제는 좀 가신 것 같기도 하지만 요 몇 년간 인문학에 대한 많은 관심과 열풍이 불었다. 고전과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책들이 서점의 한켠을 점령한 걸 바라보고 있으면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칸트에 대한 토론을 하다 총격전이 벌어졌다던 저 동토의 주민들처럼 온갖 동서양의 고전과 신화, 철학을 논하는 자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취업 위한 자기계발서적 같은 내용들필자의 경우 공부가 깊지 못하고 좋아하는 영역에 관심이 편중됐기 때문에 인문학 열풍이 불 때도 과연 인문학, 개중에서 몇몇 학문이 이렇게 열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학제간의 영역을 초월한 통섭적인 시야를 제공할 지혜를 과연 어떻게 나누어 줄지 굉장히 많이 궁금했었다. 이런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친구가 연 철학모임에 참가하기도 했지만 사실 불성실하기도 했고 책을 읽음에도 의문이 해소되지 않아 큰 갈증을 남겼던 걸로 기억한다.그런데 요즘 와서 보면 대중들에게 향유되는 인문학이라는 게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영역이라는 정의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기업에서도 인문학적 사고- 과연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를 가진 인재들을 중용하겠다는 신호를 보인 이후부터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에 대해 관심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블로그, 혹은 커뮤니티에서 자주 소개되고 사람들이 소화하는 인문학적 콘텐츠는 날 것 그대로, 혹은 이에 대한 요약정리, 설명이 아닌 영 다른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 아무래도 점점 사람들이 주로 접하는 매체가 적은 화면의 디지털 기기로 넘어가고 덧붙여 개인적으로 소비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 소비하는 활자매체의 길이가 짧아지는 걸 선호하는 경향이 막을 수 없는 추세라고 보기 때문에 아주 긴 글, 혹은 여러 권의 고전이나 이에 대한 교양서적보다는 이를 축약하고 요점을 정리한 다이제스트 형식의 책이 유행할 거라고 보았다. 그런데 서점에 놓여있는 책들이나 페이스북에서 카드뷰 형식으로 소모되는 내용들은 내 생각과 전혀 다른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가장 널리 많은 커뮤니티에서 공유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했던 어떤 카드 뷰는 인문학적 사고를 다룬다면서 ‘심부름 보낸 선배의 교훈-일을 찾아서 하라, 그렇지 않으면 노동일뿐이다’는 걸 담배 심부름을 통해 후배에게 가르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그 카드 뷰를 만든 곳에서 내 놓은 내용도 대부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담고 있는 공통된 주제는 기업에서, 혹은 업장에서 원하는 인재가 되는 법 그리고 나 자신의 습관을 고쳐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법에 대해서 담고 있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한국에서 인문학이란 단어가 이렇게 소비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결국 과거 자기계발서적이 이야기하던 내용이랑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내용이 유행하는 키워드에 맞춰 네이밍만 달리 한 게 아닌가? 인문학 이전에는 심리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같은 내용을 달리 말하던 게 그저 유행하는 탈을 쓴 것이었다. 문학·역사·철학 진정으로 소비해야아무래도 칸트나 헤겔을 놓고 우리가 주먹다짐을 벌일 일은 아직은 요원한 듯하다. 시대적 정신이 취업을 요구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담고 있는 내용물이 진짜가 아닌데 이걸 진짜로 소모한다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인문고전을 읽자, 혹은 인문고전으로 변화하자, 인문학으로 변화하자 라는 책 대신 실제 역사나 철학, 문학을 통해 진짜를 소비하는 게 자신이 원하는 상에 더더욱 가까워 질 수 있지 않을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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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28 23:02

지옥의 가장자리

나는 ‘헬조선’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적당히 둔감한 성격에 어지간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해버리는 버릇 때문일 수도 있다. 금수저는 아니다. 동수저와 은수저의 경계에서 태어났고 그 경계를 넘어본 적은 없다. 독립한 지금은 흙수저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춥지만 좁지 않은 저렴한 옥탑방과 고양이 두 마리, 불안정하지만 제때 월급 나오는 직장이 있고 이루고자하는 목표도 있다. 과분한 사람과 연애하는 사치까지 부리고 있으니 불만을 가질 틈이 없었다. 행복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강한 악마를 이기기 위해서는그런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죽는다. 나는 행복한데 남들은 그렇지 않다. 하루에 40명씩 자살한다. 다들 어딘가 뒤틀려있다. 불만이 많고 엄살이 심하다. 며칠 전엔 수저색깔을 비관한 한 서울대생이 자살했다. 우울증 때문이라고 했다. 우울증을 치료하면 “이 수저는 흙색이 아니라 ‘자애로운 대지의 여신 가이아색’이야!”하며 수저색을 긍정할 수 있을 텐데, 정신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높은 자살률을 만들어 낸 게 틀림없다.내가 이렇게 교만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운 좋게 지옥의 가장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옥의 가장자리는 유황이 들끓는 지옥불이 아니라 한증막 수준이다. 어느 날 갑자기 기르는 고양이가 아파서 동물병원에 데려 가면, 살고 있는 옥탑방이 머지않아 재개발되면, 제때 월급 나오는 직장이 내년 6월에 계약 만료되면, 부모님이나 동생이 병에 걸리면 나는 지옥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지금의 행복은 어쩌면 우연이 빚어낸 찰나에 불과했다.만약 당신이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저학력, 부양가족, 실직, 질병, 예민한 성격 등의 요소 중 많은 부분에 해당한다면 당신은 지옥불 중심으로 끌려갈 것이다. 지옥의 가장자리에 남은 사람들은 끌려가는 당신을 향해 비아냥댈 것이다. “그러게 조금만 더 노력하지. 그러면 나처럼 편하게 살 수 있는데.”당신이 하지 않은 노력은 단 하나. 당신을 지옥 중심으로 끌고 가는 악마를 뿌리치려는 노력이다. 그 악마는 공권력이기도 하며 은행, 병원, 대기업, 복지제도, 사회분위기 등이기도 하다. 악마는 당신보다 강해서 당신이 일대일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열 명이 달라붙어도 어림없다. 지옥에 있는 모두가 연대해서 싸워야한다.특히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지옥 가장자리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만 지옥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지옥 가장자리 사람들은 적당히 뜨뜻한 상태가 오래도록 유지될 거라 착각한다. 지옥 가운데로 끌려가는 일은 자기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악마를 물리치고 지옥을 바꿔보자고 말하는 사람에겐 ‘이 정도도 견뎌낼 의지가 없느냐’, ‘지옥에서는 지옥의 법을 따라라’, ‘아프니까 지옥이다’식의 구박을 주며 우월감을 느낀다. 지옥에 있는 모두가 연대해 싸워야우리는 지옥 가장자리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단테의 신곡에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는 구절이 있다. 개인적으로 지옥을 탈출하거나 단체로 지옥을 뒤엎지 않는 한 언젠간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에 처박힐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옥 가장자리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지옥 중심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언론이 아닌가 싶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대학언론협동조합이 지옥을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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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21 23:02

소비되지 않는 콘텐츠를 상상하며

글을 쓰기 위해 여행을 사전에서 찾아봤더니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라고 쓰여있다. 의외였다. 여행의 목적은 오로지 유람이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대부분 사람들은 타인의 여행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여행이 쉽고 흔한 시절이 또 있었을까.전통시장 관광화 한계 봉착관점을 바꿔 보면,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다닌다는 것은 여행으로 먹고 사는 사람도 더 많이 생긴다는 뜻이다. 관광은 큰 산업이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앞장서서 여행 콘텐츠를 개발하고 확대시키며 사람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전주 한옥마을과 남부시장이 그 예다. 전통시장은 이제 어엿한 관광지다. 전국 전통시장 여행지도라던지, 여행가면 꼭 시장을 들린다는 사람들도 많다. 나 역시 그 일환으로 먹고 살고 있다. 앞뒤 떼고 말하자면 전주 남부시장은 성공한 관광시장 사례에 속한다. 전국에서 선진지 탐방을 위해 오고 청년몰과 야시장을 벤치마킹한다. 정부와 지자체 입장에서 관광 산업은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을 들여 거둬들일 수 있는 효과는 크다. 대한민국에서 적지 않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는 영세 소상공인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투자 할 수 밖에 없다.처음 전통시장 지원과 관련한 사업의 방향은 주로 시설 개조, 보수 등 하드웨어적인 사업이 주를 이루었다. 그 뒤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협업을 통해 각 지역별 특색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고 마트같은 전통시장이 아닌 사람 냄새가 나는 공간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사업 방향이 변화되어 왔다. 좋은 성과도 많다. 서울 망원시장 같은 경우, 근린생활시장으로 평일 오후 3시면 늘 주민들이 북적거린다. 인근에 있던 대형마트와 상생협약을 맺기도 했다. 시장의 원래 기능을 회복한 것이다.그런데 이러한 망원시장에 관광형 사업이 들어온다면? 현재 전국에는 전통시장에 청년상인을 육성하는 사업 또는 야시장 사업 등이 주축으로 시행되거나 준비 중에 있다. 그리고 올해 전국 6개 시장이 글로벌 명품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행하거나 준비 중에 있다. 나 또한 전주 남부시장 사업단에 속해있고 개인적으로 뿌듯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한켠에 염려와 의문도 있다. 모든 시장이 관광시장이 될 수 있는 것일까?청년몰부터 야시장은 몇 년에 걸친 서로의 관계와 수많은 협업으로 남부시장만의 색깔이 되었다. 주말이면 늘 북적인다. 그럼에도 상인들은 장사하고 살기가 녹록치않다며 언제까지 이 분위기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 불안해한다. 관광화로 인한 지역주민들과의 관계의 부재는 결국 남부시장의 근간을 계속 흔들 수 밖에 없다. 관광 콘텐츠는 소모적인 콘텐츠다. 사람은 두 번째 세 번째 거듭될수록 감흥을 느끼기 어렵다. 소수의 대형 시장 몇 개를 제외하고 관광객으로만 유지가 되는 시장은 없다. 지역민들이 아끼고 이용하는 시장이 되어야지 좋은 관광지도 될 수 있다. 누구 말대로라면 이미 시장에서 할 수 있는 콘텐츠는 다 나왔다. 새롭고 화려한 콘텐츠가 아닌 시장이 가진 원래의 관계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끈기가 시장에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 상인,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가야 가능한 모습이다.지역 생산품 유통되는 시장 만들어야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의 목적에 소규모의 생산자와 판매자와 소비자가 함께 공존하는 시장, 제품 하나하나가 다 그 지역에서 생산되고 가공되고 판매되는 시장, 상인들끼리 서로 물건을 판매 할 수 있는 시장 만들기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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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14 23:02

삶의 기준은 결국 자신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고 말한다. 사회에 적응해 살아가려면 직장에서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 어디서든 칭찬받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정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 안에 속해 살아가고 싶어한다. 물론 나라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그때 사람은 살고 있는 삶을 벗어나 다른 대안적인 삶을 위해 찾아 나선다. 그렇게 찾으려했던 삶이 나에게 있어서는 ‘함께 살아가는 삶’이었다. 어릴 적부터 과도한 경쟁에서 자라온 나는 그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에서 조금은 벗어난 대안적인 공동체 안에서 살아보기로 한다.과도한 경쟁 벗어나 함께 살아가는 삶물론 우리는 ‘함께’ 있어서 이루어 낸 것도 있었고 잃어버린 것도 있었다. 우리는 함께 있어서 작지만 단단한 사회를 만들어 냈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나타내기도 했다. 개인의 작은 힘들을 모아서 공간을 변화시켰고 사라져 가는 공간에 활력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함께’ 라는 말이 위기에 있어서는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하지만 매일 살아가야하는 일상에서는 그 힘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이 똘똘 뭉치기는 쉬었지만 위기는 늘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에 함께 있음에 쉬이 지쳐가는 나날들도 찾아왔다.그 시절 내가 생각하던 ‘함께’ 라는 뜻은 모든 것이 일률적으로 공평하게라는 뜻과 함께 같은 양의 책임감도 분배되는데 여기서 모든 사람들이 능력이 다르다는 것이 내포되어 있음을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전 사회와 같이 똑같은 노력과 경쟁이 필요했다. 서로가 그 사람의 특성을 생각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겠지만 결국 양으로 측정하는 이전의 모습들과 마찬가지로 누가 더 많이 했는지, 누가 더 잘했는지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기도 했다. 우리가 그렇게 아웅다웅 서로의 모습을 알아가며 하나가 되어가는 시기에 외부의 사람들이 격려하기도 했고 염려하기도 했다. 그것이 애정이라는 것도 지금은 안다. 하지만 짧은 순간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그들은 빠르게 우리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매출이 얼마가 늘었다더라 관광객수가 얼마나 증가했다더라’라는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다. 드디어 우리들 중 몇몇이 다른 상권과 얼추 비슷한 매출을 올리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우리의 모습을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드디어 양적으로 이루어낸 결과였다. 결국 자본주의를 벗어나려 했던 작은 시도도 자본주의의 양적 평가기준에 도달했을 때 제값을 해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시 언제까지 지속가능한 삶인가에 대한 사람들의 또 다른 평가가 우리에게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다. 외부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삶의 기준나는 결국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그 곳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처음 실현하고자 했던 모습들을 또 다시 외부 기준으로 내 스스로가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양적으로 실패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 이전의 나와 달라진 점은 내 삶의 가치를 실험해보았다라는 경험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상만을 꿈꿀 수도 없는 것 안다. 나는 현실에 살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곳에서 배우고 느꼈던 경험을 통해 외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삶의 기준을 갖게 되었다. 그 기준으로써 나의 가치는 지속성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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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07 23:02

아픈 길도 쉬운 길도 답은 아니다

이야기 하나. 영화보다 먼저 접했던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쥬라기 공원 후반부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작중 유명한 수학자이자 혼돈이론의 대가인 이안 말컴은 온갖 공룡들이 풀려나 혼돈의 도가니가 된 쥬라기 공원의 주인인 존 해먼드에게 가라데의 습득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낸다. 초심자가 수십 년의 수련을 통해 검은 띠를 받게 되고 맨 손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을 지니는 고수가 되면 오히려 초심자 때보다 더 자신을 다스리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자제한다. 왜냐하면 수십 년간의 수련의 끝에 그 힘을 다스릴 마음 역시 같이 길러졌고 자신의 힘이 어떤 결과를 낼지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존 해먼드와 인젠은 그런 노력 없이 얻게 된 유전공학이라는 엄청난 힘을 통해 창조해낸 공룡이 사실상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고 그저 대량생산되는 제품인양 생각하고 있으며 이런 것들이 결국은 파국을 만들어 냈다고 말이다. 힘, 노력 없이 얻게 된다면결국 영화와는 다르게 존 해먼드는 자신이 창조한 공룡들에 의해서 저 세상으로 떠나게 되고 쥬라기 공원은 코스타리카 군과 미군에 의해서 모두 파괴가 되고 만다. 이야기 둘. 스포츠 계에서 유명한 이야기지만 구소련에서는 국가적으로 역도나 체육, 백병전과 같은 부분에 대해서 과학적인 연구를 했다고 한다. 단순한 헬스를 넘어서서 크로스핏과 케틀벨 트레이닝이 유행인 지금 이러한 러시아 식 트레이닝 방법론이 우리나라 웹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구소련의 스페츠나츠 체력 훈련 교관인 커리어로 유명한 파벨 차졸린이 세운 SFG는 파벨이 개인적으로 수련한 강유류 공수와 구 소련식 트레이닝+ 미국 피지컬 세라피스트들의 결과를 조합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건강과 강한 신체능력을 얻기 위해 흔히 극한까지 체력운동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SFG나 구소련식 트레이닝은 실패지점을 겪지 않고 꾸준한 연습을 이야기한다. 뇌가 실패지점을 겪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점점 높여 원하는 수준의 퍼포먼스까지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두 가지 이야기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한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쉽고 편안한 방법을 이야기하는 길일 것이다. 하루에 8분만 투자하면 복근을 만들 수 있다거나, 먹으면 살이 빠지는 음식, 사용하면 별다른 노력 없이 살이 빠진다는 운동기구, 몇 분만에 누구의 마음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이야기하는 자기 계발 서적 같은 것들이 굉장히 좋은 예다. 비슷하게 매일 같이 실패를 겪으며 팔굽혀펴기와 턱걸이할 때 접한 파벨 차졸린의 방법론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리고 별달리 힘들게 운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상상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한팔 푸쉬업을 성공할 수 있었다. 전처럼 자세잡기 전 이미 실패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목표 향해 꾸준히 가기목표를 성취하는 것은 쉬운 길과 험난한 길 단 두 가지가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지나갈 수 있고 꾸준히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는 바른 길이 있다고 본다.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겠지만 마틴 셀리그먼의 학습된 무기력 실험처럼 극복할 수 없는 반복적인 실패는 어느 순간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무기력하고 좌절하게만 만든다. 때문에 노력없는 쉬운 길과 험난하기만 한 길 두 가운데서 바른 방법과 길을 찾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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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30 23:02

서울로 이사 오길 잘했다

우선 송하진 도지사님께 죄송하다. 서울시 청년수당에 관한 뉴스를 봤을 때, 서울시민으로서 자긍심을 느꼈다. 서울시 청년수당은 서울시에 거주하는 저소득층에 속하는 미취업 청년 중 3000명을 선발해 월 50만원씩 최대 6개월까지 지원하는 정책이다. 사업성과에 따라 선발인원은 늘어난다고 한다. 몸의 고향은 전북이지만 마음의 고향은 서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아랫동네 성남시는 내년부터 최근 6년 중 3년 이상 거주한 청년 전원에게 연간 100만원을 청년배당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전북에서도 이와 비슷한 정책이 논의되고 있기는 할까?'시간' '활력' 줄 청년 수당청년수당의 장점을 일일이 열거하긴 어렵지만 딱 두 가지만 꼽자면 첫째, 청년의 하루를 늘려준다. 나는 창업을 위해 서울을 올라왔지만 창업을 위한 시간보다 생존을 위한 노동에 투입한 시간이 더 많았다. 진작 한 달에 용돈 50만원이 생겼다면 땡볕아래 강남대로에서 전단지를 뿌리지 않아도, 쌀국수 집에서 손가락을 베이며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눈 비비며 새벽에 편의점에서 진상손님 상대하느라 오장육부가 뒤틀리지 않아도, 주말마다 기절하듯 잠들지 않아도 됐다. 그 시간에 공부를 하고, 동료를 모으고, 사업모델을 발전시켰다면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을 훨씬 일찍 성장시켰을 것이다. 청년수당은 자본금 모으느라 허비하는 예비 창업가, 학원비 내기 위해 알바와 공부를 병행하는 취업준비생의 시간을 절약해준다.50만원을 내년도 최저시급으로 나누면 대충 83시간이다. 꼬박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2시간 42분을 일하면 이 돈을 번다. 뒤집어 말하면, 청년수당을 받는 청년은 매일 2시간 42분을 버는 셈이다. 6개월 동안 청년수당을 받는 청년은 약 500시간, 21일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나에게 21일의 보너스가 주어지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나를 믿고, 청년의 미래가치를 믿고 맡겨 준 시간이다.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보탬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둘째, 청년에게 활력이 생긴다. 서울시 청년허브에서 운영하는 청년참이라는 프로그램은 3인 이상 청년 커뮤니티에 100만원을 지원한다. 청년수당과 성격이 약간 비슷하다. 그 곳에서 만난 단체 백수문화생활은 집에 박혀있는 백수에게 무료 문화생활 정보를 제공하는 모임인데, 팀원 모두가 백수였다. 지원프로그램 덕에 백수로서 풍성한 문화생활을 즐기고 공유하며 자유로운 시간을 보낸 그들은 지금,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대학원, 직장 등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만약 이런 지원프로그램이 없다면 청년들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알바만 하다가 적성과 관련 없는 회사에 들어가 불행한 노동을 반복할지도 모른다.전북에서도 약속해주길청년수당 없는 전북 청년들은 상대적으로 시간에 쫓겨 경쟁에서 밀리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재정자립도 최하위인 전북이 청년수당을 실시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전북에 청년을 위한 경제정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나는 전북보다 서울을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다. 내년 총선에 출마하려고 지역신문 매일매일 챙겨보는 예비 국회의원님들, 나의 애향심과 전북청년의 미래를 지키고 싶거든 공약으로 중앙정부와 연계한 청년수당을 내걸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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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23 23:02

따뜻한 참견을 하는 꼰대

며칠 전 처음 가보는 동네에서 버스를 탔다. 요즘 백수의 특권인 온종일 내 시간을 가지고 발길 가는대로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전국투어를 하는데 그 날은 아기를 키우느라 핼쑥해진 친구 집을 가기 위해 빵집을 갔다. 빵을 사고 나오는데 친구 집에 일이 생겼다는 전화를 받았다. 양손에 든 빵의 다른 목적지를 찾아야 했다. 오후 2시 버스 풍경을 상상하지 못한 채 한가로운 버스 여행을 기대하며 올랐다. 하지만 현실은 양손에 가득한 짐과 나를 둘러싼 초등학생들이었다. 아이들은 나만 빼고 다 아는 사이인 듯 했다. 괜찮았다. 일상의 활기로 느낄 수 있었다.버스 안에서 초등생과 감정싸움그러나 차가 출발하면서 사람들이 같이 출렁였다. 가벼운 초등학생들은 더욱 그랬다. 내 뒤편, 여자아이가 살짝 미끄러지며 내 종아리를 발로 쓸어내렸다. 아이보리색 바지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버스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두 어 정거장을 가다서다를 반복했고 그 여자아이는 또 미끄러졌고 나는 또 밟혔다. 힐끔 보더니 이내 수다를 떨었다. 기분이 상했다. 오히려 앞에 앉은 아주머니가 내 눈치를 보시더니 짐을 들어주겠다고 하셨다. 몇 정거장만 더 가면 내릴터라 사양하고 서 있으면서 속은 아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찼다. 미안하다는 말은 해야지. 열은 받고,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줘야 한다는 교육의 사명감까지 뒤섞여 처음 본 그 아이가 번뇌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얘 버스에서 서로 부딪힐 수 있지? 그럴때는 미안하다고 하면 되는거야. 아이에게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사과를 받는 공익광고의 한 장면을 연습했다. 그러나 이내 같은 상황이 또 벌어졌고 내 입은 하아~하며 깊은 짜증의 한숨을 뱉었다. 살짝 눈이 마주친 아이는 곧 고개를 돌렸다. 나는 초딩이랑 감정싸움하는 어른이 돼버렸다. 하지만 아이는 아랑곳 않고 내 앞이자 출입구 앞에 서더니 끼였어. 끼였어.를 외치며 버스의 리듬에 몸을 맡겼다. 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있는 친구를 잡으려고 깔깔 거렸다. 나는 겨우 말을 했다. 얘, 손잡이. 대꾸도 없던 그 아이는 나와 같은 정류장에 내렸고 갈 길을 갔다. 한참을 아이의 뒷모습을 눈으로 따라가며 생각했다. 뭐야 이 찜찜함.평소 내 감정에 대해서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말 하는 게 쉽지는 않아도 못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주변 사람이 나서지 않아 일이 커지는 사건을 접하면 나라면 달랐을텐데 생각하고 산다. 하지만 그 버스에서 한 마디도 못했다. 어떤 감정이 내 입을 막았을까.말을 했을 때 불특정 다수 사람들에게 받을 주목과 혹은 꼰대로 보이지 않을까를 경계, 그릇된 눈치보기가 있었나 싶었다. 흔히 부모도 안 가르치는 걸 나섰다가 괜히 욕만 듣지. 같은 말을 한다. 그렇다. 타인의 삶에 들어갈 틈이 없다. 세상이 흉흉함을 서글퍼한다. 만약 내가 그 버스에서 넉살좋게 허허거리며 미안하지? 괜찮아. 안 넘어지게 꽉 잡고 가자. 했다면 그 아이의 세계가 아주 조금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익숙한 방식으로 짜증의 눈빛을 보냈기에 그 아이 역시 어색한 눈치와 익숙한 모른 체로 대했다. 아쉬웠다. 물론 쉽지는 않다. 세상은 공익광고처럼 따뜻한 마음에 따뜻한 마음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을 대할 때는 달랐어야 했는데 나도 참 여유가 없구나 싶었다.아이들 대할 때 여유 가졌어야지난 주말 열린 노동자 총궐기대회 소식을 들으며, 드라마 송곳을 보며,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상식 밖 일상을 대하며 분노보다 조롱이 익숙해짐을 느낀다. 그러나 내가 손 댈 수 없는 구조에 대해 허탈함보다 할 수 있는 따뜻함을 놓지 않고 사는 게 나를 위해서 이롭다 싶다. 통장 잔고는 조금씩 압박이 되어오겠지만 백수의 여유가 주는 따뜻한 상념인가 싶기도 하다. 가을 끝, 진한 노랑색들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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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1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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