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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절

케이블TV에서 ‘응답하라’시리즈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인기 비결은 청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대목에 있다. ‘그 때 그 노래, 사람들, 시절’의 푸르름에 대한 기억이 애틋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모임, 연말 술자리에서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청춘을 예찬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그들 중 한 사람에게 물었다.청춘에 대한 조언 쏟아지지만“어르신께 청춘이란 뭔가요?” - “그리운거지.”“제가 볼 땐 지금도 청춘이신데요?”- “에이, 그렇지 않아. 이미 지나가버렸지.”그들은 ‘청춘이 마냥 그립다’고 말했다. 돌아갈 수 없기에 그리운 것. 젊은 날과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지만, 결코 그 때와 같지 않은 현재를 살아내고 있다. 누군가는 후회되는 것들을 말하기도 했다. 충분히 그 시절을 겪어내고, 그리워하기에 지금이라도 마음껏 예찬할 수 있는 걸까. ‘청춘’들은 먼 훗날 ‘지금’을 어떻게 돌아볼까?나는 젊음이 영원하지 않을 걸 잘 알고 있다. 항상 내일을 준비하면서도 동시에 현재를 즐기려 노력해왔다. 새해에는 정든 직장을 떠나 미뤄둔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들을 하기 위해 새로운 여정에 뛰어들게 되었다. 나와는 다른 조건 속에 놓여진 청춘들도 아마 자기만의 길을 찾아 떠나는 여정에 있을 것이다. 조금 헤매더라도, 각자의 길을 걷는 친구들과 만나면 서로 에너지를 얻는다. 고민도 많고, 두렵고 불안하지만 아직 우리에게 ‘실패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니까 부럽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가 가장 괴롭다. 첫째로 그들은 ‘하고싶은 일’이 아닌 ‘해야하는 일’을 경쟁적으로 해치워가며 원치 않는 성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갈수록 ‘실패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구조적 모순이 원망스럽기 때문이다. 그 다음엔 친구들이 하나 둘씩 ‘하고싶은 일’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하게 된다. 이게 정말 괴롭다.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 알 것 같아서, ‘가진 건 없어도 아직 우린 젊잖아!’와 같은 무의미한 격려도 할 수 없다. 오히려 천천히 동력을 되찾도록 묵묵히 곁을 지킬 뿐이다. 최근 서점가, 미디어, 그리고 주변의 어른(이라 쓰고 꼰대라 읽는다.)들이 청춘에 대한 조언과 충고를 쏟아내고 있는데, 그런건 오히려 ‘청춘’이라는 이름마저도 무거운 짐으로 만드는 것 같다. 이미 청춘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권고 받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이렇게 글을 쓰면서 짧은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세대에 해당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청춘을 대상화하거나 특정 세대의 삶을 제한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모두의 삶에 더 많은 기회가 찾아오길 바라게 됐다. 성패를 떠나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여유, 특히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여력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6년이 밝았고, 더욱 팍팍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직 밑도 끝도 없이 희망을 잃지 않는 내가, 이래서 청춘인걸까 싶기도 하다.실패할 기회라도 누릴 수 있어야주어진 조건 안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즐거움, 책임감 있게 자유를 누리는 지금의 시간들은 무척 소중하다. 어쩌면 조금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도, 내일로 미뤘다가 더 먼 내일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다. 봄에 놓친 것이 있다면 여름에 해도 되고, 가을에 해도 되지 않을까.△김다이 씨는 독립영화 중에서 단편영화 연출·프로듀서로 첫 발을 내디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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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04 23:02

인문학 열풍을 바라보며

이제는 좀 가신 것 같기도 하지만 요 몇 년간 인문학에 대한 많은 관심과 열풍이 불었다. 고전과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책들이 서점의 한켠을 점령한 걸 바라보고 있으면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칸트에 대한 토론을 하다 총격전이 벌어졌다던 저 동토의 주민들처럼 온갖 동서양의 고전과 신화, 철학을 논하는 자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취업 위한 자기계발서적 같은 내용들필자의 경우 공부가 깊지 못하고 좋아하는 영역에 관심이 편중됐기 때문에 인문학 열풍이 불 때도 과연 인문학, 개중에서 몇몇 학문이 이렇게 열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학제간의 영역을 초월한 통섭적인 시야를 제공할 지혜를 과연 어떻게 나누어 줄지 굉장히 많이 궁금했었다. 이런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친구가 연 철학모임에 참가하기도 했지만 사실 불성실하기도 했고 책을 읽음에도 의문이 해소되지 않아 큰 갈증을 남겼던 걸로 기억한다.그런데 요즘 와서 보면 대중들에게 향유되는 인문학이라는 게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영역이라는 정의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기업에서도 인문학적 사고- 과연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를 가진 인재들을 중용하겠다는 신호를 보인 이후부터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에 대해 관심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블로그, 혹은 커뮤니티에서 자주 소개되고 사람들이 소화하는 인문학적 콘텐츠는 날 것 그대로, 혹은 이에 대한 요약정리, 설명이 아닌 영 다른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 아무래도 점점 사람들이 주로 접하는 매체가 적은 화면의 디지털 기기로 넘어가고 덧붙여 개인적으로 소비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 소비하는 활자매체의 길이가 짧아지는 걸 선호하는 경향이 막을 수 없는 추세라고 보기 때문에 아주 긴 글, 혹은 여러 권의 고전이나 이에 대한 교양서적보다는 이를 축약하고 요점을 정리한 다이제스트 형식의 책이 유행할 거라고 보았다. 그런데 서점에 놓여있는 책들이나 페이스북에서 카드뷰 형식으로 소모되는 내용들은 내 생각과 전혀 다른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가장 널리 많은 커뮤니티에서 공유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했던 어떤 카드 뷰는 인문학적 사고를 다룬다면서 ‘심부름 보낸 선배의 교훈-일을 찾아서 하라, 그렇지 않으면 노동일뿐이다’는 걸 담배 심부름을 통해 후배에게 가르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그 카드 뷰를 만든 곳에서 내 놓은 내용도 대부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담고 있는 공통된 주제는 기업에서, 혹은 업장에서 원하는 인재가 되는 법 그리고 나 자신의 습관을 고쳐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법에 대해서 담고 있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한국에서 인문학이란 단어가 이렇게 소비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결국 과거 자기계발서적이 이야기하던 내용이랑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내용이 유행하는 키워드에 맞춰 네이밍만 달리 한 게 아닌가? 인문학 이전에는 심리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같은 내용을 달리 말하던 게 그저 유행하는 탈을 쓴 것이었다. 문학·역사·철학 진정으로 소비해야아무래도 칸트나 헤겔을 놓고 우리가 주먹다짐을 벌일 일은 아직은 요원한 듯하다. 시대적 정신이 취업을 요구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담고 있는 내용물이 진짜가 아닌데 이걸 진짜로 소모한다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인문고전을 읽자, 혹은 인문고전으로 변화하자, 인문학으로 변화하자 라는 책 대신 실제 역사나 철학, 문학을 통해 진짜를 소비하는 게 자신이 원하는 상에 더더욱 가까워 질 수 있지 않을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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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28 23:02

지옥의 가장자리

나는 ‘헬조선’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적당히 둔감한 성격에 어지간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해버리는 버릇 때문일 수도 있다. 금수저는 아니다. 동수저와 은수저의 경계에서 태어났고 그 경계를 넘어본 적은 없다. 독립한 지금은 흙수저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춥지만 좁지 않은 저렴한 옥탑방과 고양이 두 마리, 불안정하지만 제때 월급 나오는 직장이 있고 이루고자하는 목표도 있다. 과분한 사람과 연애하는 사치까지 부리고 있으니 불만을 가질 틈이 없었다. 행복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강한 악마를 이기기 위해서는그런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죽는다. 나는 행복한데 남들은 그렇지 않다. 하루에 40명씩 자살한다. 다들 어딘가 뒤틀려있다. 불만이 많고 엄살이 심하다. 며칠 전엔 수저색깔을 비관한 한 서울대생이 자살했다. 우울증 때문이라고 했다. 우울증을 치료하면 “이 수저는 흙색이 아니라 ‘자애로운 대지의 여신 가이아색’이야!”하며 수저색을 긍정할 수 있을 텐데, 정신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높은 자살률을 만들어 낸 게 틀림없다.내가 이렇게 교만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운 좋게 지옥의 가장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옥의 가장자리는 유황이 들끓는 지옥불이 아니라 한증막 수준이다. 어느 날 갑자기 기르는 고양이가 아파서 동물병원에 데려 가면, 살고 있는 옥탑방이 머지않아 재개발되면, 제때 월급 나오는 직장이 내년 6월에 계약 만료되면, 부모님이나 동생이 병에 걸리면 나는 지옥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지금의 행복은 어쩌면 우연이 빚어낸 찰나에 불과했다.만약 당신이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저학력, 부양가족, 실직, 질병, 예민한 성격 등의 요소 중 많은 부분에 해당한다면 당신은 지옥불 중심으로 끌려갈 것이다. 지옥의 가장자리에 남은 사람들은 끌려가는 당신을 향해 비아냥댈 것이다. “그러게 조금만 더 노력하지. 그러면 나처럼 편하게 살 수 있는데.”당신이 하지 않은 노력은 단 하나. 당신을 지옥 중심으로 끌고 가는 악마를 뿌리치려는 노력이다. 그 악마는 공권력이기도 하며 은행, 병원, 대기업, 복지제도, 사회분위기 등이기도 하다. 악마는 당신보다 강해서 당신이 일대일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열 명이 달라붙어도 어림없다. 지옥에 있는 모두가 연대해서 싸워야한다.특히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지옥 가장자리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만 지옥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지옥 가장자리 사람들은 적당히 뜨뜻한 상태가 오래도록 유지될 거라 착각한다. 지옥 가운데로 끌려가는 일은 자기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악마를 물리치고 지옥을 바꿔보자고 말하는 사람에겐 ‘이 정도도 견뎌낼 의지가 없느냐’, ‘지옥에서는 지옥의 법을 따라라’, ‘아프니까 지옥이다’식의 구박을 주며 우월감을 느낀다. 지옥에 있는 모두가 연대해 싸워야우리는 지옥 가장자리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단테의 신곡에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는 구절이 있다. 개인적으로 지옥을 탈출하거나 단체로 지옥을 뒤엎지 않는 한 언젠간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에 처박힐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옥 가장자리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지옥 중심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언론이 아닌가 싶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대학언론협동조합이 지옥을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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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21 23:02

소비되지 않는 콘텐츠를 상상하며

글을 쓰기 위해 여행을 사전에서 찾아봤더니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라고 쓰여있다. 의외였다. 여행의 목적은 오로지 유람이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대부분 사람들은 타인의 여행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여행이 쉽고 흔한 시절이 또 있었을까.전통시장 관광화 한계 봉착관점을 바꿔 보면,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다닌다는 것은 여행으로 먹고 사는 사람도 더 많이 생긴다는 뜻이다. 관광은 큰 산업이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앞장서서 여행 콘텐츠를 개발하고 확대시키며 사람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전주 한옥마을과 남부시장이 그 예다. 전통시장은 이제 어엿한 관광지다. 전국 전통시장 여행지도라던지, 여행가면 꼭 시장을 들린다는 사람들도 많다. 나 역시 그 일환으로 먹고 살고 있다. 앞뒤 떼고 말하자면 전주 남부시장은 성공한 관광시장 사례에 속한다. 전국에서 선진지 탐방을 위해 오고 청년몰과 야시장을 벤치마킹한다. 정부와 지자체 입장에서 관광 산업은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을 들여 거둬들일 수 있는 효과는 크다. 대한민국에서 적지 않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는 영세 소상공인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투자 할 수 밖에 없다.처음 전통시장 지원과 관련한 사업의 방향은 주로 시설 개조, 보수 등 하드웨어적인 사업이 주를 이루었다. 그 뒤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협업을 통해 각 지역별 특색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고 마트같은 전통시장이 아닌 사람 냄새가 나는 공간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사업 방향이 변화되어 왔다. 좋은 성과도 많다. 서울 망원시장 같은 경우, 근린생활시장으로 평일 오후 3시면 늘 주민들이 북적거린다. 인근에 있던 대형마트와 상생협약을 맺기도 했다. 시장의 원래 기능을 회복한 것이다.그런데 이러한 망원시장에 관광형 사업이 들어온다면? 현재 전국에는 전통시장에 청년상인을 육성하는 사업 또는 야시장 사업 등이 주축으로 시행되거나 준비 중에 있다. 그리고 올해 전국 6개 시장이 글로벌 명품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행하거나 준비 중에 있다. 나 또한 전주 남부시장 사업단에 속해있고 개인적으로 뿌듯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한켠에 염려와 의문도 있다. 모든 시장이 관광시장이 될 수 있는 것일까?청년몰부터 야시장은 몇 년에 걸친 서로의 관계와 수많은 협업으로 남부시장만의 색깔이 되었다. 주말이면 늘 북적인다. 그럼에도 상인들은 장사하고 살기가 녹록치않다며 언제까지 이 분위기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 불안해한다. 관광화로 인한 지역주민들과의 관계의 부재는 결국 남부시장의 근간을 계속 흔들 수 밖에 없다. 관광 콘텐츠는 소모적인 콘텐츠다. 사람은 두 번째 세 번째 거듭될수록 감흥을 느끼기 어렵다. 소수의 대형 시장 몇 개를 제외하고 관광객으로만 유지가 되는 시장은 없다. 지역민들이 아끼고 이용하는 시장이 되어야지 좋은 관광지도 될 수 있다. 누구 말대로라면 이미 시장에서 할 수 있는 콘텐츠는 다 나왔다. 새롭고 화려한 콘텐츠가 아닌 시장이 가진 원래의 관계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끈기가 시장에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 상인,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가야 가능한 모습이다.지역 생산품 유통되는 시장 만들어야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의 목적에 소규모의 생산자와 판매자와 소비자가 함께 공존하는 시장, 제품 하나하나가 다 그 지역에서 생산되고 가공되고 판매되는 시장, 상인들끼리 서로 물건을 판매 할 수 있는 시장 만들기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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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14 23:02

삶의 기준은 결국 자신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고 말한다. 사회에 적응해 살아가려면 직장에서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 어디서든 칭찬받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정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 안에 속해 살아가고 싶어한다. 물론 나라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그때 사람은 살고 있는 삶을 벗어나 다른 대안적인 삶을 위해 찾아 나선다. 그렇게 찾으려했던 삶이 나에게 있어서는 ‘함께 살아가는 삶’이었다. 어릴 적부터 과도한 경쟁에서 자라온 나는 그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에서 조금은 벗어난 대안적인 공동체 안에서 살아보기로 한다.과도한 경쟁 벗어나 함께 살아가는 삶물론 우리는 ‘함께’ 있어서 이루어 낸 것도 있었고 잃어버린 것도 있었다. 우리는 함께 있어서 작지만 단단한 사회를 만들어 냈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나타내기도 했다. 개인의 작은 힘들을 모아서 공간을 변화시켰고 사라져 가는 공간에 활력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함께’ 라는 말이 위기에 있어서는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하지만 매일 살아가야하는 일상에서는 그 힘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이 똘똘 뭉치기는 쉬었지만 위기는 늘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에 함께 있음에 쉬이 지쳐가는 나날들도 찾아왔다.그 시절 내가 생각하던 ‘함께’ 라는 뜻은 모든 것이 일률적으로 공평하게라는 뜻과 함께 같은 양의 책임감도 분배되는데 여기서 모든 사람들이 능력이 다르다는 것이 내포되어 있음을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전 사회와 같이 똑같은 노력과 경쟁이 필요했다. 서로가 그 사람의 특성을 생각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겠지만 결국 양으로 측정하는 이전의 모습들과 마찬가지로 누가 더 많이 했는지, 누가 더 잘했는지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기도 했다. 우리가 그렇게 아웅다웅 서로의 모습을 알아가며 하나가 되어가는 시기에 외부의 사람들이 격려하기도 했고 염려하기도 했다. 그것이 애정이라는 것도 지금은 안다. 하지만 짧은 순간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그들은 빠르게 우리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매출이 얼마가 늘었다더라 관광객수가 얼마나 증가했다더라’라는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다. 드디어 우리들 중 몇몇이 다른 상권과 얼추 비슷한 매출을 올리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우리의 모습을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드디어 양적으로 이루어낸 결과였다. 결국 자본주의를 벗어나려 했던 작은 시도도 자본주의의 양적 평가기준에 도달했을 때 제값을 해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시 언제까지 지속가능한 삶인가에 대한 사람들의 또 다른 평가가 우리에게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다. 외부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삶의 기준나는 결국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그 곳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처음 실현하고자 했던 모습들을 또 다시 외부 기준으로 내 스스로가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양적으로 실패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 이전의 나와 달라진 점은 내 삶의 가치를 실험해보았다라는 경험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상만을 꿈꿀 수도 없는 것 안다. 나는 현실에 살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곳에서 배우고 느꼈던 경험을 통해 외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삶의 기준을 갖게 되었다. 그 기준으로써 나의 가치는 지속성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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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07 23:02

아픈 길도 쉬운 길도 답은 아니다

이야기 하나. 영화보다 먼저 접했던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쥬라기 공원 후반부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작중 유명한 수학자이자 혼돈이론의 대가인 이안 말컴은 온갖 공룡들이 풀려나 혼돈의 도가니가 된 쥬라기 공원의 주인인 존 해먼드에게 가라데의 습득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낸다. 초심자가 수십 년의 수련을 통해 검은 띠를 받게 되고 맨 손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을 지니는 고수가 되면 오히려 초심자 때보다 더 자신을 다스리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자제한다. 왜냐하면 수십 년간의 수련의 끝에 그 힘을 다스릴 마음 역시 같이 길러졌고 자신의 힘이 어떤 결과를 낼지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존 해먼드와 인젠은 그런 노력 없이 얻게 된 유전공학이라는 엄청난 힘을 통해 창조해낸 공룡이 사실상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고 그저 대량생산되는 제품인양 생각하고 있으며 이런 것들이 결국은 파국을 만들어 냈다고 말이다. 힘, 노력 없이 얻게 된다면결국 영화와는 다르게 존 해먼드는 자신이 창조한 공룡들에 의해서 저 세상으로 떠나게 되고 쥬라기 공원은 코스타리카 군과 미군에 의해서 모두 파괴가 되고 만다. 이야기 둘. 스포츠 계에서 유명한 이야기지만 구소련에서는 국가적으로 역도나 체육, 백병전과 같은 부분에 대해서 과학적인 연구를 했다고 한다. 단순한 헬스를 넘어서서 크로스핏과 케틀벨 트레이닝이 유행인 지금 이러한 러시아 식 트레이닝 방법론이 우리나라 웹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구소련의 스페츠나츠 체력 훈련 교관인 커리어로 유명한 파벨 차졸린이 세운 SFG는 파벨이 개인적으로 수련한 강유류 공수와 구 소련식 트레이닝+ 미국 피지컬 세라피스트들의 결과를 조합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건강과 강한 신체능력을 얻기 위해 흔히 극한까지 체력운동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SFG나 구소련식 트레이닝은 실패지점을 겪지 않고 꾸준한 연습을 이야기한다. 뇌가 실패지점을 겪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점점 높여 원하는 수준의 퍼포먼스까지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두 가지 이야기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한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쉽고 편안한 방법을 이야기하는 길일 것이다. 하루에 8분만 투자하면 복근을 만들 수 있다거나, 먹으면 살이 빠지는 음식, 사용하면 별다른 노력 없이 살이 빠진다는 운동기구, 몇 분만에 누구의 마음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이야기하는 자기 계발 서적 같은 것들이 굉장히 좋은 예다. 비슷하게 매일 같이 실패를 겪으며 팔굽혀펴기와 턱걸이할 때 접한 파벨 차졸린의 방법론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리고 별달리 힘들게 운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상상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한팔 푸쉬업을 성공할 수 있었다. 전처럼 자세잡기 전 이미 실패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목표 향해 꾸준히 가기목표를 성취하는 것은 쉬운 길과 험난한 길 단 두 가지가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지나갈 수 있고 꾸준히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는 바른 길이 있다고 본다.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겠지만 마틴 셀리그먼의 학습된 무기력 실험처럼 극복할 수 없는 반복적인 실패는 어느 순간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무기력하고 좌절하게만 만든다. 때문에 노력없는 쉬운 길과 험난하기만 한 길 두 가운데서 바른 방법과 길을 찾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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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30 23:02

서울로 이사 오길 잘했다

우선 송하진 도지사님께 죄송하다. 서울시 청년수당에 관한 뉴스를 봤을 때, 서울시민으로서 자긍심을 느꼈다. 서울시 청년수당은 서울시에 거주하는 저소득층에 속하는 미취업 청년 중 3000명을 선발해 월 50만원씩 최대 6개월까지 지원하는 정책이다. 사업성과에 따라 선발인원은 늘어난다고 한다. 몸의 고향은 전북이지만 마음의 고향은 서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아랫동네 성남시는 내년부터 최근 6년 중 3년 이상 거주한 청년 전원에게 연간 100만원을 청년배당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전북에서도 이와 비슷한 정책이 논의되고 있기는 할까?'시간' '활력' 줄 청년 수당청년수당의 장점을 일일이 열거하긴 어렵지만 딱 두 가지만 꼽자면 첫째, 청년의 하루를 늘려준다. 나는 창업을 위해 서울을 올라왔지만 창업을 위한 시간보다 생존을 위한 노동에 투입한 시간이 더 많았다. 진작 한 달에 용돈 50만원이 생겼다면 땡볕아래 강남대로에서 전단지를 뿌리지 않아도, 쌀국수 집에서 손가락을 베이며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눈 비비며 새벽에 편의점에서 진상손님 상대하느라 오장육부가 뒤틀리지 않아도, 주말마다 기절하듯 잠들지 않아도 됐다. 그 시간에 공부를 하고, 동료를 모으고, 사업모델을 발전시켰다면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을 훨씬 일찍 성장시켰을 것이다. 청년수당은 자본금 모으느라 허비하는 예비 창업가, 학원비 내기 위해 알바와 공부를 병행하는 취업준비생의 시간을 절약해준다.50만원을 내년도 최저시급으로 나누면 대충 83시간이다. 꼬박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2시간 42분을 일하면 이 돈을 번다. 뒤집어 말하면, 청년수당을 받는 청년은 매일 2시간 42분을 버는 셈이다. 6개월 동안 청년수당을 받는 청년은 약 500시간, 21일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나에게 21일의 보너스가 주어지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나를 믿고, 청년의 미래가치를 믿고 맡겨 준 시간이다.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보탬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둘째, 청년에게 활력이 생긴다. 서울시 청년허브에서 운영하는 청년참이라는 프로그램은 3인 이상 청년 커뮤니티에 100만원을 지원한다. 청년수당과 성격이 약간 비슷하다. 그 곳에서 만난 단체 백수문화생활은 집에 박혀있는 백수에게 무료 문화생활 정보를 제공하는 모임인데, 팀원 모두가 백수였다. 지원프로그램 덕에 백수로서 풍성한 문화생활을 즐기고 공유하며 자유로운 시간을 보낸 그들은 지금,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대학원, 직장 등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만약 이런 지원프로그램이 없다면 청년들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알바만 하다가 적성과 관련 없는 회사에 들어가 불행한 노동을 반복할지도 모른다.전북에서도 약속해주길청년수당 없는 전북 청년들은 상대적으로 시간에 쫓겨 경쟁에서 밀리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재정자립도 최하위인 전북이 청년수당을 실시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전북에 청년을 위한 경제정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나는 전북보다 서울을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다. 내년 총선에 출마하려고 지역신문 매일매일 챙겨보는 예비 국회의원님들, 나의 애향심과 전북청년의 미래를 지키고 싶거든 공약으로 중앙정부와 연계한 청년수당을 내걸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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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23 23:02

따뜻한 참견을 하는 꼰대

며칠 전 처음 가보는 동네에서 버스를 탔다. 요즘 백수의 특권인 온종일 내 시간을 가지고 발길 가는대로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전국투어를 하는데 그 날은 아기를 키우느라 핼쑥해진 친구 집을 가기 위해 빵집을 갔다. 빵을 사고 나오는데 친구 집에 일이 생겼다는 전화를 받았다. 양손에 든 빵의 다른 목적지를 찾아야 했다. 오후 2시 버스 풍경을 상상하지 못한 채 한가로운 버스 여행을 기대하며 올랐다. 하지만 현실은 양손에 가득한 짐과 나를 둘러싼 초등학생들이었다. 아이들은 나만 빼고 다 아는 사이인 듯 했다. 괜찮았다. 일상의 활기로 느낄 수 있었다.버스 안에서 초등생과 감정싸움그러나 차가 출발하면서 사람들이 같이 출렁였다. 가벼운 초등학생들은 더욱 그랬다. 내 뒤편, 여자아이가 살짝 미끄러지며 내 종아리를 발로 쓸어내렸다. 아이보리색 바지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버스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두 어 정거장을 가다서다를 반복했고 그 여자아이는 또 미끄러졌고 나는 또 밟혔다. 힐끔 보더니 이내 수다를 떨었다. 기분이 상했다. 오히려 앞에 앉은 아주머니가 내 눈치를 보시더니 짐을 들어주겠다고 하셨다. 몇 정거장만 더 가면 내릴터라 사양하고 서 있으면서 속은 아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찼다. 미안하다는 말은 해야지. 열은 받고,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줘야 한다는 교육의 사명감까지 뒤섞여 처음 본 그 아이가 번뇌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얘 버스에서 서로 부딪힐 수 있지? 그럴때는 미안하다고 하면 되는거야. 아이에게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사과를 받는 공익광고의 한 장면을 연습했다. 그러나 이내 같은 상황이 또 벌어졌고 내 입은 하아~하며 깊은 짜증의 한숨을 뱉었다. 살짝 눈이 마주친 아이는 곧 고개를 돌렸다. 나는 초딩이랑 감정싸움하는 어른이 돼버렸다. 하지만 아이는 아랑곳 않고 내 앞이자 출입구 앞에 서더니 끼였어. 끼였어.를 외치며 버스의 리듬에 몸을 맡겼다. 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있는 친구를 잡으려고 깔깔 거렸다. 나는 겨우 말을 했다. 얘, 손잡이. 대꾸도 없던 그 아이는 나와 같은 정류장에 내렸고 갈 길을 갔다. 한참을 아이의 뒷모습을 눈으로 따라가며 생각했다. 뭐야 이 찜찜함.평소 내 감정에 대해서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말 하는 게 쉽지는 않아도 못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주변 사람이 나서지 않아 일이 커지는 사건을 접하면 나라면 달랐을텐데 생각하고 산다. 하지만 그 버스에서 한 마디도 못했다. 어떤 감정이 내 입을 막았을까.말을 했을 때 불특정 다수 사람들에게 받을 주목과 혹은 꼰대로 보이지 않을까를 경계, 그릇된 눈치보기가 있었나 싶었다. 흔히 부모도 안 가르치는 걸 나섰다가 괜히 욕만 듣지. 같은 말을 한다. 그렇다. 타인의 삶에 들어갈 틈이 없다. 세상이 흉흉함을 서글퍼한다. 만약 내가 그 버스에서 넉살좋게 허허거리며 미안하지? 괜찮아. 안 넘어지게 꽉 잡고 가자. 했다면 그 아이의 세계가 아주 조금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익숙한 방식으로 짜증의 눈빛을 보냈기에 그 아이 역시 어색한 눈치와 익숙한 모른 체로 대했다. 아쉬웠다. 물론 쉽지는 않다. 세상은 공익광고처럼 따뜻한 마음에 따뜻한 마음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을 대할 때는 달랐어야 했는데 나도 참 여유가 없구나 싶었다.아이들 대할 때 여유 가졌어야지난 주말 열린 노동자 총궐기대회 소식을 들으며, 드라마 송곳을 보며,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상식 밖 일상을 대하며 분노보다 조롱이 익숙해짐을 느낀다. 그러나 내가 손 댈 수 없는 구조에 대해 허탈함보다 할 수 있는 따뜻함을 놓지 않고 사는 게 나를 위해서 이롭다 싶다. 통장 잔고는 조금씩 압박이 되어오겠지만 백수의 여유가 주는 따뜻한 상념인가 싶기도 하다. 가을 끝, 진한 노랑색들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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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16 23:02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

사람들이 독립출판물 서점을 운영하는 내게 많이들 물어본다.독립출판물이 뭐예요?이 질문은 독립출판물 서점을 운영하는 지난 3년 내내 매번 처음처럼 들어오던 질문이다. 처음 그 질문을 들었을 때는 독립출판물은 기존의 시장에서 벗어나 각각의 개인들이 만들어 놓은 독립적인 출판물을 말합니다. 점점 시간이 지나자 좀더 짧게 개인이 만든 소규모 출판물을 말합니다. 제가 좋아서 합니다.라고 점점 답변이 짧아지게 된다. 나에게 새로울 것이 없어진 독립출판물, 그렇지만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본다.독립출판물 서점 운영하며 느낀 점독립출판을 처음 접하게 되었던 것은 서울 종로에 있던 가가린이라는 서점이었다. 워낙에 잡지 읽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독립출판물에 대한 관심들도 생겨났던 것 같다.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도서관에서 굉장히 다양한 잡지들만을 읽었던 것 같다. 과학 잡지,여행 잡지, 패션 잡지, 애니메이션 잡지 정말 취향이라고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읽는 것이 취향이었다.잡지라 생각하면 사람들이 얇은 지식이라 하며 무시하는 경향도 있는데 잡지는 보다 세분화 되고 어느 매체보다 빨리 관심사에 대한 정보들을 알 수 있었다. 세분화된 얇은 지식들이 존재하고 있는 매체이다. 그러기에 대학교 시절 어느 주관식 시험지를 받아도 내가 잡지에 읽었던 새로운 이야기들을 함께 버무려 냈기에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일본에서 살았던 시절도 지금 이렇게 작은 책방을 꿈꿀 수 있게 해주었다. 내가 살던 시즈오카의 하마마쯔시는 도쿄에서 전철로 네다섯시간 걸리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런데도 그 곳에서도 언덕배기 위에 작은 동화책 서점이 있었다. 그 곳에서 우주계란이라는 동화책을 만났다. 그리고 지금의 가게 이름으로 짓게 되었다.그렇게 내가 경험하고 느꼈던 것으로 지금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독립출판물을 파는 가게를 운영한다는 것도 새로운 것이 아닌 경험한 것들로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현재의 모습이였다.독립출판물을 만들게 된 사람들은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로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의 어찌보면 소소한 글들을 읽는 것들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그 책에 전하는 그 사람의 용기까지 보였기 때문이다. 독립출판물을 읽는 것은 잡지와 같이 정보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공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점심에 먹는 밥을 기록해서 지금의 내 모습을 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내 자신에 대해서 솔직히 써내려가야만 하는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다니 얼마나 큰 용기인가? 그것에 대한 주위사람들의 한마디, 재미있다. 혹은 재미없다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는 얼마나 단단한 책인가? 그것의 형태와 모양들이 제 각각일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책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다.개인 경험용기 쉽게 평가하면 안돼다른 사람들이 쌓아온 각각의 다른 경험들을 그리고 그들의 용기를 쉬이 평가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관계는 계속 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사람 입장이 내가 될 수도, 그들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들의 용기에 공감하고 쌓여진 내 모습도 다른 누구에게 편히 이야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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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09 23:02

골과 아웃컴

스트리트 최면을 시작하면서 내가 그린 나의 최종 모습은 미국 드라마 멘탈리스트에 나오는 주인공, 페트릭 제인과 같은 멘탈리스트였다. 미국과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흥행을 거두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어색한 단어인 멘탈리스트는 쉽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야기하자면 심리적 테크닉을 사용해서 마치 영화나 만화 속 초능력자와 같은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페트릭 제인의 캐릭터를 이루는 가장 큰 축은 아무래도 마음을 꿰뚫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콜드리딩과 최면이다. 때문에 가상 캐릭터지만 이를 롤 모델로 삼은 나 역시 가장 중점적으로 연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건 최면과 콜드리딩이다.자신의 명확한 목표 가져야심리적인 테크닉에 기반한 두 기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라고 볼 수 있다. 이루고자 하는 명확한 목표가 없다면 굉장히 뛰어난 기법이라도 대단한 효과를 보이지 못하고 헛돌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국의 최면가 제임스 트립은 이러한 목표를 골(Goal)과 아웃컴으로 분류해 설명한다. 골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최종 결과이고 아웃컴은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형태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파티에 초청받아 퍼포먼스를 한다면 파티에서 내 롤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줄 재미난 최면가이고 내 최종 목표인 골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다. 아웃컴은 이러한 추상적 목표를 좀 더 구체화해 내 퍼포먼스에 참여하는 파티 구성원의 양발을 바닥에 뗄 수 없게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최면유도를 통해 사람들이 발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모두 다 즐겁게 생각할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비약인 면이 없지않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최면 혹은 콜드리딩과 같은 심리기법을 사용할 때 명확한 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꿈과 희망에 대해서 듣게 된 자리가 올 초부터 꽤나 많았다. 아무래도 방향성 때문에 자신의 꿈을 쫓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이겠지만 정말 열정에 불타올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활동하는 모습들을 인상깊게 보았다. 사실 나는 그만큼 불타오를 자신이 없었기에 그들의 열정적인 모습이 상당히 인상깊으면서도 어느정도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끼기도 했다. 타인과 대화할 때, 그리고 그들의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SNS를 보면 열정과 깡, 악 그리고 불타오름, 뜨거움과 같이 단어들이 굉장히 인상깊게 내게 다가왔다.그리고 최근들어서 내가 느꼈던 기시감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들의 이야기에서는 골은 들을 수 있었지만 명확한 아웃컴에 대해서는 자세히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신의 영달을 넘어 같은 세대, 주위를 위한 꿈을 가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아웃컴에 대해 듣지 못해 어느정도 추상적인 느낌을 떨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근래 몇몇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결국 포기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땐 가슴 한켠에서 아쉬움이 크게 느껴졌다.결과 설정하고 확인하도록누군가는 정신력이란 무한한 자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여러 연구에 의하면 열정과 의지력이란 결국은 어느 정도 그 한계가 정해진 자원이라 어느 순간 바닥을 보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때문에 이러한 심리적 자원을 무작정 사용하다보면 결국은 지치고 포기하게 만드는 한계의 벽을 마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물질적인 여러 자원들처럼 열정과 의지 역시 세심하고 계산해서 사용해야 한다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에 대해 명확한 골과 아웃컴을 설정해두고 이에 맞춰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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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02 23:02

사업을 해도 사업이 안돼서

사업을 하고 싶었다. 총체적 노답(답 없음) 상태인 대학언론을 사업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수많은 기자가 수많은 매체에서 대학언론의 위기를 주제로 기사를 썼지만 직접 해결하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가라는 축구선수 기성용의 말과 전북대신문 편집장 시절 학교로부터 받은 부당한 탄압의 기억, 해임당한 외대학보 편집장의 눈물, 대학언론인들의 하소연을 가슴 속에 품고 2013년 2월 눈 내리는 어느 날, 서울에 올라왔다.실수 되풀이하고 사업 계획 계속 수정처음은 쾌속전진이었다. 대학언론인 캠프 기획단, 대선 후보 인터뷰 등을 하면서 친해진 기자들을 모아 준비위원회를 꾸렸다. 현장의 목소리를 중시하고 평등한 의사결정을 위해 협동조합 모델을 채택했다. 단체 이름은 대학언론협동조합. 사업 내용은 편집권 공동 대응 매뉴얼 제작, 공동교육, 대학언론인 상 제정 같은 부류의, 협회 같은 일이었다. 뜻을 같이 하고 싶다는 기자와 매체는 계속 늘어났다. 서울시청 지하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노종면 YTN 해직기자가 축하의 말을 남겼다. 당신만큼 힘들겠지만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첫 사업은 대학언론인 캠프였다. 한림대학교에서 11개의 매체, 50명의 기자가 모여 언론관과 편집권 탄압에 대응하는 법을 공부하고 토론했다. 행사가 끝나고 한참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편집권 탄압에 대응할 정답이 없었다. 정답이 있더라도 언젠간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 기존의 대학언론이다. 기자는 바뀌지만 총장과 주간교수는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노답인 줄은 알았지만 이토록 완벽한 노답인 줄은 몰랐다. 이 사업이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실패를 직감할 때 독립언론이라는 새 길을 발견했다. 독립언론은 학교로부터 분리돼 편집권의 간섭이 없는 대신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명확했다. 독립언론의 광고 영업을 대행하는 것이다. 독립언론 두 곳의 광고를 영업을 6개월간 하다가 문제가 생겼다. 한 곳이 잘못된 기사로 인해 여론의 뭇매를 맞자 폐간 후 다른 이름으로 재창간한 것이다. 나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매체들을 묶어서 무언가를 한다는 건 리스크가 크다는 걸 깨달았다.사업모델을 또 변경했다. 독립언론을 발굴하고 운영을 지원하는, 이른바 N대알리 프로젝트다. 핵심파트너는 한국외대의 〈외대알리〉다. 〈외대알리〉의 성공모델을 모든 대학에 프랜차이즈처럼 확산하는 것이다. 대학언론협동조합에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알리의 운영매뉴얼에 따라 매체를 창간해야하며 기사 저작권을 공유해야 한다. 대신 조합원들은 매체 발행비와 기자교육을 보장받는다. 초기 자금은 정부 지원사업에 선정돼 해결했다. 지금은 두 개의 알리에서 시스템을 테스트하고 있고 곧 조합원 모집에 나설 예정이다.성공, 열정 잃지 않고 실패 거듭할 능력여기까지 3년 걸렸다. 숱하게 실패했고 포기를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허송세월을 보낸 건 아니었다. 실수를 거듭하고 사업계획을 수정할수록 본질에 가까워졌다. 대학언론 위기라는 거대담론에서 대학생 알권리 보장을 위한 미디어 환경 제공이라는 구체적 방향을 잡게 됐다. 실패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르지 못했을 단계다. 윈스턴 처칠 말마따나 성공이란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를 거듭할 수 있는 능력 이다. 그러니까 우리, 꾸준히 실패하자. 그나저나 사업적으로 성공하고 나서 이런 글을 써야 제대로 먹히는데, 이번 칼럼도 실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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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26 23:02

'공리사욕' 삶을 기획하는 직업

토요일 낮 1시 한적한 카페. 약간은 어색한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한 주 전 걸려 온 전화로 만들어진 자리. 문화기획자를 인터뷰 하는 과제 때문에 시간을 내달라는 부탁이었다.요즘 대학생들은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가 많다. 인턴, 봉사활동, 소규모 그룹 활동, 캠프, 공모전 등 민간과 정부에서 쏟아지는 프로그램들이 허다하다. 하지만 그 경험의 방향은 안정적이거나 많은 급여를 주는 회사에 들어가는 것을 기준으로 취해진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보다 얼마를 벌지가 중요한 현실 속에서 경험은 경력이 돼야 한다. 직업의식이야 말로 수장고에 보관된 유물이다. 그래서 이렇게 문화기획쪽 일을 궁금해 하는 친구를 만나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약을 팔아야 할지, 있는 그대로 설명해 줘야 할지 고민이라며 이야기를 꺼낸다. 업무시간 길고 수입 적지만문화기획쪽은 사람이 귀하다. 대부분의 기획자들은 긴 업무시간과 업무량에 비례하지 않는 불안정하고 낮은 수익을 견딘다. 그래서인지 30대 중반 남자들이 별로 없다. 지금 있는 무형유산영상페스티벌 사무국만 해도 국제규모의 영화제를 3개월 안에 만들어야하기에 출근시간은 있지만 퇴근 시간은 없고, 거의 2주에 한 번 꼴로 쉰다. 물론 단기로 진행되기 때문이지만 문화기획쪽의 많은 일들이 프로젝트성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일상이다. 이러한 환경을 권하기는 쉽지 않다.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좋은 직업이라고 여겨지는 대기업 직원, 공무원의 노동환경 역시 긴 시간과 강한 노동강도로 일하며 그 대가로 부모님의 만족, 고급 차와 집을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많은 않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들을 하나의 대체가능한 상품으로 취급하는 무수히 많은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게 대다수가 추구하는 삶이다. 문화기획분야는 영화, 미술, 음악 등의 예술 장르들을 비롯해 도시와 마을, 어떤 특정한 공간이나 그 속의 사람들의 관계 등을 엮어내는 기획까지 다양하고 광범위한 범주를 아우른다. 게다가 문화라는 특성상 공적, 사적분야를 넘나든다. 사고의 범위를 넓힌다. 또한 과제를 생각하고 협의하고 실현시키며 완성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사람과 조율이 일상적이며 위계가 덜하다. 이 부분은 개인 특성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한 켠에서 생각하면 예술, 문화기획 쪽은 자신의 생각이 드러나는 특성상 일에 대한 자부심과 서로에 대한 존중의 분위기가 있는 듯 하다. 지금 하고 있는 영화제 일만 해도 영화라는 전문적인 분야기도 하고 어느정도 틀이 다 구성되어 있는 후에 들어온 터라 온전히 1부터 10까지를 이해하고 진행하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내 생각을 제안하고 조정하면서 한 부분으로서 역할한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일상을 위해 필요한 손기술을 배우거나 그 의미를 이야기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중이다. 이렇게 나의 삶에서 내가 필요한 부분,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고 여기는 부분을 일로 녹여낸다. ‘공리사욕’이라는 말장난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서로 기댈 수 있는 세상으로다양한 직업이 있고 선택의 문제이지만 선택 기준이 다양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문화기획자의 삶은 넉넉하진 않지만 궁핍한 직업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배우고 경험하는 현실 속에 나와 내 주변은 그렇게 살고 있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우리 동네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내리고가 주제가 되는 삶보다 이웃집 감나무 터는 날이 더 화제가 되는 일상을 함께 상상하고 기획하는 친구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고 인정하지 말고 돈 보다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자. 상상하면 시작되고, 많이 상상할수록 가능해진다. 그런 ‘삶 기획’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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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19 23:02

독거 청년의 전주 전전기

전주에 온지 어느덧 4년동안 이사를 다닌 것도 벌써 5번째다. 매년 이사를 했던 것이다. 집값에 맞추어 떠나야하는 유목민 생활의 시작인 것이다.처음 전주에 왔을 때는 같이 일하게 된 언니네 집에서 얹혀살게 됐다.트렁크 하나 달랑 들고 왔을 때에는 타지에 시작되는 사회생활의 설레임과 모든 것이 좋아보이는 만족감으로 전주생활을 시작했다. 같이 살던 룸메이트들도 일때문에 떠나가고 처음으로 혼자 독립하게 된 것은 한 빌라의 옥탑방이었다.4년 동안 다섯 번 이사 다녀옥탑방의 낭만을 안고 운동장만한 20평짜리 옥상과 6평짜리 방을 얻게 됐다. 옥상을 이용해 빨래도 뽀송뽀송 말리고 친구들이 오면 바베큐도 해먹어야지라는 생각에 덜컥 방을 계약했다. 하지만 현실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 수도가 얼 정도로 추운 겨울을 보내야했다. 결국 1년을 살다가 집 근처에 있는 100/15 10평짜리 정도 되는 방을 얻게 됐다. 짐도 너무 많아져서 이번엔 짐이 트럭 하나가 됐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혼자살기에 창고도 딸린 자그마한 방과 혼자 누워있기에는 넉넉한 방이었다. 그런데 세탁기와 냉장고가 없어 애를 먹게 됐다. 냉장고가 없자 집에서 식사도 시원한 물 한모금도 먹을 수 없었다. 결국 중고로 세탁기와 냉장고를 구입했다. 중고 냉장고가 들어오면서 방안 전체에 커다란 모터 소리가 울려퍼지자 왠지 모르게 슬퍼졌다.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지만 냉장고가 바로 귀에서 소리치듯 엔진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고요하고 적막한 방에 대화 상대가 냉장고가 된 것 같아 서글퍼졌다.옥탑방에서 그래도 겪은 노하우가 생겨 지난 겨울에는 겪었던 가스비 폭탄을 맞지 않기 위해 항상 난방은 타이머를 맞추고 옷과 이불 그리고 전기장판과 함께 입김이 나오는 겨울을 보냈다. 오래된 집이라 외풍은 어쩔 수 없었지만 여름이면 나타나는 쌀벌레들과 가끔 버리는 날짜를 지나친 음식들 그리고 어디선가 나타난 바퀴벌레들과 사투해야 했다.혼자 건강하고 맛있는 밥을 위해 샀던 식재료들의 반 이상은 버려야했고 맛있는 요리 하나 만들어 먹고 싶으면 기본 양념이라는게 있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없다보니 매번 살때마다 사먹는 것 보다 더 큰 지출을 해야만 했다. 처음 독립을 시작할 때 꿈꾸던 생활들과 멀어지고 일을 끝내고 들어온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몸을 이끌고 집안일을 한다는 것이 점차 귀찮아져만 갔다. 그러다 보니 잠만 청하는 집이라는 생각으로 이제는 오래된 집이어도 이것이 최선의 선택지라며 월세에 맞춰 집을 고르게 된다. 이번에 옮기게 된 5번째 집도 이제 이사는 언제나 당연히 해야하는 것 쯤으로 여기지만 여전히 계약을 할 때마다 계약이 끝나고 나서 또 이사를 해야하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나는 내 집을 가질 수 있을까주위에 자취하는 친구들과 우리도 이렇게 월세를 낼 바에야 대출을 받아 집을 사자라고 다짐하지만 매일 지나갈 때 마다 보는 부동산 매매 가격들은 오르고 이제 은행대출 이자도 오른다고 하니 내집 마련의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간다.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 일하고 내가 살아가고 싶은 올바른 가치에 맞는 삶을 살아가고 싶었는데 지금의 나는 집을 갖는 다는 것이 인생의 최대 목표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집. 집을 갖기 않고도 행복한 방법은 지금에 충실해야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떨쳐낼 수 없다. 과연 미래에 나는 내 집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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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12 23:02

노력이란 말의 공허함

작년 내 관심을 끌었던 책을 하나 꼽자면 살마 로벨의 센세이션이라는 책을 들 수 있다. 살마 로벨의 책인 센세이션은 우연히 포럼에서 추천하는 내용을 보고 구매한 책이었고 호기심이 있긴 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본 책이었다. 하지만 체화된 인지이론에 대해서 다룬 이 책의 내용은 내 기대를 넘어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오늘날 사회구조적 문제 많아단순히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대화 속에 담긴 여러 상징과 은유, 비유들이 단순히 정신을 넘어서서 실제 외부 세계의 물리적인 대상이나 현상처럼 사람들이 인지하고 반응한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예를 들어 죄를 씻어낸다라는 말처럼 실제 사람이 손을 씻는 행위만으로 죄책감을 상당히 덜어낸다거나, 혹은 따듯한 마음씨처럼 따듯한 감각을 유도하도록 따듯한 음료가 담긴 컵을 들게 하는 것만으로 친절을 유도할 수 있는 것같은 여러 사례들은 말을 통해 사람들에게 비일상적인 체험을 선물하는 분야인 스트리트 최면을 하고 있는 내게 언어의 사용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은유와 대화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하였고 현대최면의 두 거장중 하나라는 밀턴 에릭슨 이래로 많은 최면가들에게 은유와 상징의 사용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지만 체화된 인지 이론은 그보다 훨씬 더 강한 인상을 내게 남겼다. 실제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거리에서 즉석으로 최면을 시연할 때 챌린지라 하여 일종의 테스트를 굉장히 많이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손바닥을 테이블에 달라붙게 만드는 체험을 할 때 단순히 손이 테이블에 붙습니다.로 끝나는게 아니라 체험자로 하여금 실제 손바닥을 떼보도록 테스트를 하는 것이다. 이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 바로 ~하려고 노력해보세요.라는 말이다. 언뜻 생각하면 손바닥을 붙여야 하는 상황에서 떼보라고 노력하라는 말은 일으키려는 현상과는 정반대 행동처럼 보인다. 하지만 외국 최면공연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에 대해서 노력하라는 말은 실제로는 할 수 없다라는 말과 같다는 것이다. 이미 노력하라는 말에는 할 수 없다라는 말이 전제가 되어 있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 내 경험에서도 노력하라는 말을 아낌없이 사용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원하는대로 손을 떼지 못하고 이름을 기억할 수 없었다.최근 들어 점점 사회적 경제적인 문제들이 불거지고 갈등이 시각화 되면서 청년층을 중심으로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노력 부족의 문제로 치부하는 세태에 대한 풍자로 노오력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한다면 여러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지난 수십년동안 진리처럼 공유해왔다. 하지만 이미 계급은 고착화되어가고 있고 이를 뛰어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임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이미 우리보다 앞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여러 선진국의 사례를 볼 때 단순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에는 매우 힘들어 보인다.개인 혼자 해결하기 힘들어사실 예체능보다도 더 노력하면 될 거 같은 공부에서도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는 것을 볼 때 노력하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가? 주위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다면 공허하고 수십번 이상 들었을 노력하라는 말 대신 치킨 한마리가 더 낫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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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05 23:02

명절 잘 보내면 세상 바뀔 '수'도 있다

얼마 전 친구와 수다 중에 뜬금없이 우리나라 최대 명절이 설인지 추석인지를 두고 분분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해보니 이 즈음 대화는 늘 명절 이야기가 주제가 된다. ‘민족 최대 명절’이라는 수식어에 맞게 시장도 마트도 활력이 생기고 온 가족이 모여 정치얘기, 경제얘기 등 온갖 정보들을 주고 받으니 추석이든 설이든 명절은 ‘민족 최대 행사’다.명절, 가족주의 카르텔 위한 축제?언제부턴가 비슷한 또래의 사촌 간 학교, 직장, 결혼 상대에 대한 비교범주에 속하게 되고,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 이해관계 속에 역할을 해야 하면서명절이 피곤해졌다. 명절을 지내고 올 때마다 어른들의 수많은 걱정 속에 즐겁다고 여기고 있는 내 삶이 불안하고 빈곤하게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부모님께 안간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건강한 가족의 모습에 누가 되는 느낌에서랄까? 그리고 마침내 지난 설, 피로함이 스트레스로 바뀌는 사건이 생겼다. 지난 설에도 어김없이 친척들이 모였고 말끝에 사촌동생이 대학 졸업반이라며 이모가 좋은 자리 좀 알아봐달라고 하셨다. 사촌동생과 거의 일면식이 없었기에 문화기획쪽에 관심이 있는지 몰랐다. 그래서 전공이 뭔지 특히 관심있는 쪽이 무엇인지 물었다. 토목을 전공했는데 전공에 별 관심이 없으니 안정적 직장만 있으면 전주도 상관없다고 했다. 내가 경험 한 문화기획쪽 분야는 일은 많고 돈은 적다. 그렇기에 ‘안정적’과는 거리가 멀지만 역동적이고 다른 일에 비해 일 하는 사람의 성향을 표현할 수 있고 상대적이겠지만 덜 위계적이다. 그렇기에 경험은 부족하더라도 하고자 하는 사람의 의욕이 중요하다. 물론 당연히 다른 분야의 일들도 의욕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모가 원하는 사촌동생의 직장으로는 아닌 듯 했다. 둘러둘러 생각을 전했다. 얼마 뒤 엄마와의 통화끝에 이모가 섭섭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황스러웠다. 어떤 오해를 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어디 회장도 아니고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을 ‘꽂아넣을’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하셨을까? 아니 설령 그렇다치더라도 그게 맞나? 여하튼 정황상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영화 베테랑을 봤다. 천이백만이라고 하지만 들어가기 전까지도 뭔 내용인지 모르고 있었고 별 기대없이 들어갔는데 보는내내 깔깔거렸고 통쾌했다. 하지만 영화관을 나오면서 “감옥에서 잘 쉬다 곧 나오겠네.” 했다. 우리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겪은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그치만 저 마음 깊은 곳에서 ‘그래 돈 많은 망나니보다 ‘쪽팔리지않게’ 살려고 고군분투하는 삶이 더 멋지지.’ 하는 생각에 힘이 실리고, 일상에서 조금씩 풀어낼 수 있다면 세상도 바뀌지 않을까 하는 ‘초긍정’적인 생각도 들었다.대한민국 사회에서 많은 공적인 일들이 사적인 관계의 특혜로 얽혀있다. 빽 없는 것은 ‘잘못’이다. 물론 나와 이모의 에피소드는 이모의 오해에서 비롯 된 것이지만 만약 내가 ‘꽃아넣을’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남도 아니고 친척인데’ 내가 이기적인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렵다는 좋은 직장을 구하는 조건은 ‘빽’이 아니라 스스로의 준비로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당연하게 여겨져야 진짜 돈 없고 빽없는 대다수 사람들이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해당사항이 아닌 조건을 부러워하고 인정해버리면 내 삶이 더 곤궁해진다. '가치있는 삶' 이야기 나누자이번 추석에는 사촌동생을 만나야 겠다. ‘안정적 직장’이 아닌 ‘가치있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우리집 명절 대화 주제를 상상해본다. 아마도 내 현실은 영화가 아니니 “재 뭐래니.” 같은 분위기가 될테지만 그래도 상상만으로 나의 명절이 꽤 괜찮아질 듯 하다. 모두 즐거운 추석 보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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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21 23:02

함께 살아가야하는 다른 세대에게

요즘 나의 화두는 어떻게 늙을 것인가?이다. 이런 고민은 어른에 대한 나의 적개심에서 비롯된 마음이기도 하다.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그런 마음들이 모여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늙고 싶은가에 대해 스스로 물음을 던지게 된 것이다.내가 느낀 어른들의 모습이 어땠길래 그러느냐고 물어본다면 정말 철저한 적개심을 가질 정도로 이용당했다 생각이 든다. 물론 사회에 지위를 얻기 위한 요구사항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일과는 별개로 한 인간에게 수치심까지 줘야하는 것인가?어떻게 늙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그동안 사랑만 받던 보호막에서 벗어나와 만난 어른들은 무참히도 나를 아래로 보았다. 넌 어린 여자애잖아, 그러니 당연히 내 말을 들어야해라는 태도로 나에게 언제나 큰 소리로 주문을 했다. 돈을 지불하는 공간에 있으면 어른들의 위상은 더욱 높아진다. 명예를 가진 사람일수록 더 많은 것을 당연하게 요구했고, 나보다 돈이 더 많은 사람이 일개 직원인 나에게 깎아달라, 지불하지 않겠다라며 으름장 놓기 일쑤였다. 일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밥을 먹는 순간에도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어디서든 눈칫밥을 먹으며 살아가야 했다.어른들은 미래를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 내가 꿈꾼 것을 미리 경험한 선배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미리 먼저 태어난 관계로 가지게 된 자본력으로 고용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으로 모든 권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잘 쓰이기 위해 맞춰져야한다. 고용주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 무단히도 애써야한다. 이것을 사회와 개인의 타협이라며 무조건적으로 따라야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건 고용주의 입맛 따라 변해야하는 한 개인의 불안한 정체성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언제나 타인에게 맞춰 살아가야하는 것이다.아직 경험하지 못한 청년들은 수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나타난다. 이건 어떻게 하셨나요?라고 쉽게 물어보는 사람들을 만나며 나 또한 내가 그렇게 해봤는데 그렇게 밖에 안 되더라, 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같은 질문에 늘 같은 답변하는 일도 귀찮아지기만 했다. 그렇게 나도 꼰대가 되어가는가? 싶었다. 어른들이 이래서 그동안 나에게 그렇게 대했던 것일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그들의 세월들이 쉽게 만들어 진 것이 아니며 나 또한 쉬이 얻으려는 자세를 취하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의 경험과 정보를 인터넷에 검색하듯이 제가 물어보면서 답만 말해주세요.라는 태도였지 않았나, 검색하면 나오는 답처럼 경험하지 않고 쉽게 답만 얻으려 했던 것 같다.청년의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는 곳에도 청년들은 주체적이지 못하다. 삼포세대, 오포세대라 지칭하고 있는 것도 어른들이다. 청년은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직접 해결해 나가기보단 그때에도 어른들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청년들 태도에도 무례함은 있어좋든 싫든, 어른은 어른의 이유대로 청년은 청년의 이유대로 살아가며 그렇게 서로를 외면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린 앞으로도 계속 함께해야할 것이다. 미래를 함께 살아가야할 서로에게 이해와 예의를 구할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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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14 23:02

조금 천천히 생각하기

영국의 최면가 제임스 트립은 신경생물학자 존 에클스의 나는 여러분이 자연의 우주에는 어떤 색깔도, 어떤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색깔이나 소리와 비슷한 것, 즉 직물, 문양, 아름다움, 향기 등등의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현실은 실제 객관적인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창으로 마음이 재구성한 사실이라 주장한다.그래서 그는 이러한 내면의 창에 개입해 피험자가 느끼는 현실을 재구성해 최면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제임스 트립의 방식대로 퍼포먼스를 할 때에는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인 최면상태를 유도하지 않고서도 흥미로운 수준의 최면현상을 유도할 수 있다. 간단한 손가락 붙이기부터 시작해서 손바닥이 테이블에 붙어 뗄 수 없게 되고 계속 반응성을 키워간다면 이름을 망각시키고 새로운 이름으로 잠시나마 착각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게 된다. 최면가의 유도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변화함으로써 인식하는 현실이 달라지는 것이다.어떻게 보면 가장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오감이 우리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손바닥과 테이블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매우 강력한 접착제가 손바닥에 발라졌다고 생각하고 그 느낌을 느끼는 것으로 이러한 착각이 일어난다. 굳이 최면현상이 아니라 맹점을 확인하는 간단한 실험을 통해서도 우리는 우리의 뇌가 현실을 순식간에 재창조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결국 우리가 잘 알고 있을 거라 당연하게 믿고 있는 현실 역시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서 인식하는 모습이 굉장히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좀 더 확장해보면 우리가 정말 잘 알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협소해짐을 알 수 있다.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란 말을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말하셨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찾아본 사람들은 이 말이 단재 신채호 선생이 아니라 윈스턴 처칠이 이야기했다고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처칠 박물관의 답변에 의하면 처칠이 그러한 말을 했다고 하는 기록 역시 없다고 한다.사실 무언가를 정확히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작업일 것이다.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단언하는 말에 대해서 마음이 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인터넷을 보면 사진과 간단한 문장으로 결합해 정보를 알려주는 카드 뷰 형식의 뉴스나 유용한 정보와 상식을 설명하는 정보성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때로는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올라온 믿지 못할 사건에 같이 분노하고 이를 공유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다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우리의 감각이 우리에게 때로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줌을 생각할 때 감각을 느끼고 주위를 인지하는 것보다 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사건과 사고, 지식, 정보에 대해서 과연 이것이 쉽게 진실이라 믿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때로는 약간 피곤할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천천히 생각하고 바라보는 게 보다 더 진실에 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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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07 23:02

기자가 돼도 기자가 안돼서

기자가 되고 싶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어느 대학교의 건학이념을 가슴에 품고 다녔다. 진리에 가장 가까운 직업은 기자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지적으로 오만한 고등학생이 생활기록부 장래희망에 써넣기에도 기자는 퍽 그럴싸했다. 대학에 오자마자 대학신문에 지원했다. 기자가 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그때는 그렇게 여겼다.■ 진실 추구, 신념대로 행동하려고기자 3년차 되는 해에 편집장이 됐다. 편집장으로 사령이 난지 한 달이 됐을 쯤, 총장이 사고를 쳤다. 총동아리연합회 발대식 해오름식에서 축사 대신 특강을 했다. 특강은 동아리 활동 어지간히 해라, 취업 준비나 열심히 해라, 우리학교 부실대 선정되면 너희만 손해다류의 내용으로 채워졌다. 55분쯤 했던 것 같다. 애초에 총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이었다. 행사는 전부 뒤로 연기됐다. 2000여 학생들은 반 토막 났다. 나는, 모든 내용을 기사로 썼다. 제목은 총동연 해오름식, 졸지에 해내림식이었다.편집 당일, 주간교수가 찾아왔다. 기사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대로는 내보낼 수 없다고 했다. 제대로 취재했냐고 물었다. 제대로 취재했다고 답했다. 어쨌든 이대로는 안 된다고 했다. 여러 차례 실랑이가 있었고, 누군가에 의해 고쳐진 기사가 지면에 실렸다.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끝까지 항의하지 못한 나였다.한 달 뒤, 다른 기사 취재 때문에 총장실에 갔다. 취재가 끝나고 총장은 나를 불렀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총장의 일대일 맞춤형 연설을 들었다. 한 시간쯤 했던 것 같다. 언론의 역할은 비판이 전부가 아니다, 대안을 제시해야 제대로 된 기사다, 앞으로 지켜보겠다 등등. 대답을 할라치면 끊고 할 말만 했다. 위압감에 짓눌렸다.그때부터, 편집권 문제를 제기하면 신문사 조직 전체가 무너질 것이라는 피해의식이 생겼다. 민감한 기사는 빼고 무난한 기사를 올렸다. 빼앗긴 자존감은 총학생회를 까면서 회복했다. 끝없는 정신승리와 자기합리화. 나는 그렇게 기레기가 되었다. 편집장을 마쳤을 때, 대학신문사는 대학 본부로부터 우수 부서상을 받았다. 담당 간사는 심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총장이 내게 보내는 조롱이라고 느꼈다. 기자가 자유와 이성의 상징이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나는 굴종의 상징이었다.우수 부서상을 받은 다음날, 새벽 두 시에 전화가 왔다. 외대학보 편집장이었다. 잘렸다고 했다. 학교가 쓰지 말라고 한 기사를 냈다는 이유였다. 심히 이례적으로 부끄러웠다. 열등감이 느껴졌다. 동시에 KBS, MBC, YTN에서 언론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기자들이 떠올랐다. 그런 투쟁은 어른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굴종하는 내가 나중에 기자가 되어서, 같은 상황에 과연 굴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대학언론인들 모아 단체 만들어칼럼니스트 김현진의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남자는 스물다섯이 넘으면 꼰대가 된다. 그쯤부터 사람이 안 변한다. 그 때 내 나이가 스물셋. 바로 군대를 다녀오면 스물다섯. 이대로의 나는, 기자가 돼도 이성과 합리,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기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신념대로 행동하고 싶었다. 다시는 나 같은 기자가 나오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곧장 서울로 올라왔다. 대학언론인들을 모아 단체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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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31 23:02

슈퍼 마리오의 마리오는 배관공

자전거를 처음 배운 게 초등학교 저학년 인 듯 하다. 탈 것에 대해 두려움이 별로 없기도 하고, 운동신경도 나쁘지 않았는지 롤러스케이트, 자전거 이런 것들을 타고 놀았던 기억이 즐겁게 남아있다. 자전거 바퀴 바람도 제대로 못 넣어성인이 되고 운동 겸, 이동수단으로 자전거를 이용하기 시작한 건 5년 정도가 되겠다. 선물 받은 분홍자전거부터 지금의 날쌘 자전거까지 세 대 정도를 거쳤다. 자전거 상태가 이상하다 싶으면 수리를 맡기는데 얼마전 땜질한 바퀴에 또 구멍이 난 듯 했다. 두어 번 자전거를 끌고 갔다가 부산하게 움직이시는 아저씨께 부탁하기가 그래서 눈치껏 바람 넣기를 시도했다. 영 시원치 않았다. 바쁜 일정에 고칠 시간이 부족해 집에 방치하고 택시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오늘 모처럼 꺼내 나와서 자전거포에 갔다. “아저씨 또 펑크 났나봐요. 바람이 안들어가요.” 아저씨는 무심히 자전거를 만지시더니 이내 빵빵하게 숨을 불어넣으셨다. “요놈을 끝까지 빼고 누른 다음에 넣야혀요. 안 누르면 붙어서 안들어가.” 허무하고 민망했다. 나는 ‘기획’이라는 일을 밥벌이로 삼고 있다. 남부시장의 청년몰부터 야시장. 크고 작은 행사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조율하면서 머리에 있는 것들을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만들어 온 ‘판’에 대한 좋은 평가와 응원을 받았고 보람과 함께 든든한 동료들이 많음에 행복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청년몰과 야시장을 보며 내 역할의 다음 방향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기획’이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리며 헛헛해 하던 즈음이었다. 공간 구성, 관계 조율, 기획서와 정산서가 아닌 손에 잡히는 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목수, 전기공, 춤을 추거나 바느질을 하는 것까지. 그러나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배우는 과정도 만만치않고 ‘전문분야’로 느껴져 선뜻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역에서 알고 지내던 각 예술 분야의 기획자이자 예술가인 분들의 제안으로 스테이풀리쉬위크축제를 만들기로 했다. ‘만드는 사람들이 즐거운 축제를 만들자’는 의도와 축제를 만들어 갈 방식에 동의했고, 다른 자극이 필요했다. 6개월 간 준비를 거쳐 지난 12일부터 16일까지 4박 5일간 펼쳐진 축제는 끝이 났다. 각자의 머릿속에 있던 것들을 꺼내며 조율해서 실현 시켜가는 과정은 때로는 어려웠지만 현장은 매끄러웠다. 음악, 미술, 공간기획 등 선배들은 저 마다의 현장에서 베테랑이었지만 각자의 현장이 아니었기에 더 배려했고, 내 놓았다. 축제를 준비하며, 끝내며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훨씬 많지만 오늘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스테이풀리쉬위크팀의 ‘기술력’이다. 시내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던 옛 KT&G 건물을 하나씩 바꿔나가는 과정은 놀라웠다. 나였다면 돈이 없어서 포기할 것들을 직접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획’이 손에서 직접 ‘실행’되는 과정을 경험했다. 대형 인디언텐트를 생각했으면 예산에 맞춰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었다. 전선을 빼서 어두운 곳을 연결하고 수도가 없는 곳에 물을 대는 그들의 기술은 대형 장비가 아닌 몇 가지의 공구로 이뤄졌다. 기획자이자 예술가인 선배들을 보며 내 고민이 풀리는 실마리를 얻는 듯 했다. 그들이 여전히 에너지 있게 움직이는 이유를 몰래 엿본 기분이었다. 일상 속 기술 배우면 삶이 더 온전자전거를 잘 탄다고 생각했다. 바퀴에 바람만 빠져도 자전거를 쓸 수 없는 내가 말이다. 바쁘고 쉬운 세상 속에서 돈을 벌거나 쓰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구나 싶은 헛헛함이 있다면 슈퍼마리오게임이 아니라 배관공인 마리오의 기술을 배워 보는게 어떨까. 내 일상이 좀 더 온전해 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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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24 23:02

때로는 그냥 여행을 떠나자

얼마 전 휴가 계획을 짜는 데서 오는 피로감에 대해 다룬 기사를 보았다. 언제부터인가 휴가기간에 계획을 짜서 여행을 가거나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세밀하게 일정을 짜고 그 일정에 맞춰 행동하는 경향이 늘었다고 한다.실제로도 휴가 계획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휴가 계획을 짜는 노하우에 대한 기사들도 올라오는 걸 보면 이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쉬는 시간에도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낯선 곳 천천히 걸으면 색다른 느낌그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주변의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이나 전주로 여행 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너무 정형화된 루트대로 여행을 떠난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 전주에 온다면 한옥마을을 구경하고 남부시장에 갔다 청년 몰을 구경하고 막걸리 골목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고, 혹은 전국여행이라면 아침에 전주에 와서 저녁에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 과 같이 여행 계획에 커다란 홈이 파여 있어 그 길대로 떠나는 것 같다.물론 여행에 목적을 가지고 떠나는 것도 굉장히 좋은 일이다. 누군가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거나 도시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떠나고 혹은 또 다른 테마에 맞춰 여행을 떠나는 것도 여행을 떠나는 사람 그 자신에게 굉장히 깊은 의미를 선물할 것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그런 모든 것들을 던져 버리고 그냥 아무 이유 없는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무작정 모르는 곳으로 떠나 단 하루나 이틀이라도 그 지역을 발 닿는 데로 거닐면서 보고 듣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즐겁지 않을까?예전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광주로 가는 버스에 몸을 맡긴 적이 있었다. 딱히 광주에 아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디 가고 싶었던 장소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지금 있는 곳이 아니라 가보지 못했던 곳에 가보고 싶어 아무 곳이나 뽑은 것이 바로 광주였다.약 1시간 반 정도 지나 터미널에서 내려 발길 닿는 데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위를 구경하고 배가 고프면 눈에 보이는 음식점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천천히 그렇게 걷다보니 좁은 골목길에 들어가게 되었고 광주라는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사는 장소 한가운데를 걸으면서 그리고 그 장소에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교류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지나는 것도 굉장히 색다른 느낌이었다. 그 동안은 다른 지역을 놀러갈 때 관광객으로써 한 발짝 멀리서 지켜보는 느낌이었지만 그땐 마치 내가 이곳에 사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 뒤에 숨겨진 순수한 얼굴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은 거의 도보로만 다녀서 끝나고 전주로 돌아올 때 굉장히 다리가 아팠지만, 보람차게 시간을 보냈어! 무언가를 얻은 여행이었어! 내 자신을 찾은 느낌이야! 이런 것들과는 관련이 없는, 이유 없는 즐거움을 얻었다.아무 계획도 목적도 없는 휴가를그 뒤로는 소소하게 내가 사는 지역인 전주 여기저기를 두 발로 걸으면서 다니는 취미가 생겼다. 좁은 골목길들, 처음가보는 길, 이런 소소한 곳 속에 숨겨진 보물과도 같은 가게나 카페, 그리고 그 지역의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고등학교 이후 계속 지내고 있는 전주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 크고 더 많은 것들을 감추고 있는 보물 상자라는 생각이 든다.그래서 때로는 아무 계획 없이, 아무 목적 없이 여행을 떠나거나 휴가를 보내는 것을 권한다. 이미 많은 의미는 일상에서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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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1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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