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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새봄이 왔어요

아침에 늦잠을 잤다. 이불 속에서 평소보다 오래 누워 있었다. 내가 이렇게 아침 이불 속에 누워 늑장을 부린 적이 없었는데, 일어나야겠다. 일곱 시가 다 되었다. 거실로 나가 누워서 하는 스트레칭(내가 스스로 개발한 열 서너 가지)을 하였다. 몸 컨디션이 괜찮다. 스트레칭을 하고 창을 가린 블라인드를 올렸다. 햇살이 밝고 맑다. 물을 마시고 서재로 가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 옆에 샘물이 맑다. 며칠 전 봄비가 왔었다. 비가 오면 샘물이 맑아진다. 샘에는 샘 물길을 내주는 가재가 살고 찬물에서만 서식하는 옴 개구리(이 개구리가 옴 개구리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가 산다. 비가 오면 바위 틈에서 나와 노는 가제와 개구리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때가 아닌 모양이다. 샘을 둘러싸고 있는 돌들과 샘 위에 바위에는 이끼가 푸르다. 이끼를 자세히 보았는데, 이끼 꽃이 벌써 맺혀 있다. 우리 집 샘 가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고, 그 바위에는 사시사철 이끼가 산다. 이끼는 겨울철에도 물기만 있으면 눈 속에서도 푸르다. 바위 바로 위에 아주 작은 조팝나무 한 그루를 가꾸고 있는데, 그 조팝나무 작은 실 가지를 뚫고 돋아나 있던 잎 눈이 푸른 잎 눈을 틔웠다. 금방 잎이 피고 그곳에서 바로 작은 꽃대들이 오복 하게 솟아 금방 금방 흰 꽃이 하나둘 셋 넷, 일일이 툭툭 터질 때, 아니 튀밥처럼 툭툭 튈 때, 나는 봄에 감격하고 감동한다. 이 조팝나무 온몸에 지는 햇살이라고 떨어지면, 오! 이런, 세상에 이런 일이, 이렇게 새롭고, 이렇게 신비롭고, 이렇게 생생한 감동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마당을 내려 섰다. 작년 잔디는 노랗게 아주 눕고, 그 사이 사이에 작은 못 끝같이 생긴 푸른 새싹이 돋는다. 봄을 맞이하기 위해 새로 단장해 놓은 화단에는 며칠 전부터 수선화가 피어났다. 수선화는 노란색이다. 앵초 꽃이 피고 있다. 할미꽃, 돌 단풍 꽃은 진즉 피었다. 오늘 아침에는 드디어 봄맞이 꽃이 피어난다. 이 희고 작은 꽃잎이 다섯 장인, 이 똑똑한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이 시려서, 내 눈이 실눈이 된다. 무릎을 꿇어야 잘 보이는 흰 냉이 꽃도 곳곳에 피어났다. 물 까치들이 아침을 먹기 위해 소리를 지르며 날아다닌다. 뒤 안에 작은 살구나무 꽃이 핀다. 빈집 샘 가 앵두 꽃이 피어난다. 집 뒷산에 심어 놓은 작은 벚나무 꽃이 피어나고, 마을 뒷산 4백 년이 넘었다는 느티나무와 마을 앞 2백 년에 되었다는 느티나무와 50년이 넘은 느티나무들은 연두색 불꽃이 터진다. 느티나무 세 그루는 해마다 마을의 새 역사를 쓰고 내게 새 시를 쓰게 하고, 새 정부를 세운다. 봄 비로 몸 단장을 한 까치는 흰 날개를 펼치고 난다. 딱새는 아직 짝을 찾지 못했는지, 전깃줄에 앉아 애타는 연정의 노래를 작곡하여 노래 부른다. 지금 쯤 우리 마을을 향해 꾀꼬리와 파랑새와 호반 새는 날아오고 있을 것이다. 나는 시를 써야지, 새와 바람과 논과 밭과 작은 벌레들과 오래된 농부들의 농사와 떠다니는 아침 구름과 저문 노을에 대해서, 달을 따라다니는 길을 따라 걸으며 시를 쓸 것이다. 나는 이유 없이 도도해지고 싶다. 명랑해지고 싶다. 그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아첨하지 않고, 앞 산 푸른 소나무에 기죽지 않은 아름다운 시를 쓰겠다. 그날 그때, 문형배 헌법 재판관이‘대통령 윤석열 탄핵 판결 문’을 읽어가다가 ‘민주 공화국의 주권 자인 대한 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습니다.’는 판결문에서 ‘대한 국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울컥 먹먹했던 것은 나만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판결문은 이 땅에 사는 우리 개개인의 삶과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국가 공동 운명 체에 답하는 역사적 기록 문이었고 훼손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켜 내야 한다는 명문이었다. 꽃피고 새우는 우리나라 우리 봄이 우리를 다시 찾아왔다. 우리 집 작은 한옥 처마 밑 기와 틈에 참새 한 쌍이 짝을 짓고 새로 집을 짓느라 바쁘다. 나는 기쁘고, 나는 이 봄이 좋다. 저 참새 부부가 집 짓는 공사장으로 새참이라도 챙겨가서 이런저런 우리나라 봄을 이야기하며 같이 먹고 싶다.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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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10 18:53

봄볕처럼 따뜻한 사랑, 서서평(徐舒平)

늦은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개나리와 목련은 한껏 꽃을 피웠고 옷이 조금씩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이제는 완연한 봄이다. 그러나 최악의 피해가 예상되는 영남의 산불, 정치적 불안감, 얼어붙은 취업시장, 물가 상승과 경제적 침체,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자국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미, 중, 러 리더들의 행보 등으로 마음은 겨울보다 더 무겁다. 이런 상황에 영향을 받으며 자신도 모르게 우울해지고 현실에 비관적으로 되기 쉽다. 이럴 때일수록 잠시 멈춰 서서 깊이 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면 좋겠다. 난관을 이겨내고 멋진 삶의 궤적을 이룬 사람의 봄볕 같은 희망이 우리에게 서서히 스며들기를 바라며 독일 출신 미국 간호사 서서평(엘리자베스 요한나 셰핑)을 소개한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이타적인 삶’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1880년 독일에서 태어난 그녀는 3살에 자신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난 어머니 대신 할머니 품에서 자랐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기대를 품고 방문한 생모에게 다시 거부당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불행함에 함몰되기보다는 오히려 도약대로 삼아 단단함과 아량을 갖춘 사람이 되었다.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동료에게 조선에서 환자가 치료받지 못하고 길에 버려진다는 말을 듣고 1912년 운명처럼 조선으로 와서 선교사의 삶을 시작한다. 광주에서 가난하고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도왔는데 주로 버려진 과부와 고아들에게 남다른 사랑을 실천했다. 특히, 사회에서 외면당한 윤락여성들의 아픔을 공감했으며 과부들을 보살피고 14명의 고아를 수양딸로 삼아 죽을 때까지 함께 생활하면서 고국에서 지원받은 얼마 안 되는 생활비와 후원금까지 함께 나누어 썼다. 키가 매우 컸던 서서평이 50대 중반에 세상을 떠난 원인이 영양실조였다는 사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길거리에서 추위에 시달리는 거지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담요의 절반을 나누어 준 일화는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던 그녀의 성정을 보여준다. 봄볕이 만물을 따뜻하게 품듯 어려운 모든 이를, 어떤 상황에서도 기댈 수 있는 어머니 리더십으로 많은 이들에게, 특히 조선의 여성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혈혈단신으로 조선에 와서 여성들에게 자립의 삶, 간호사로 일하며 나와 남을 도울 수 있는 삶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35살이 되던 해에는 병원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는데 화염 속으로 뛰어 들어가 앉은뱅이 환자를 업어서 구출했던 일도 있었다. 광주에서 미국에 기금을 요청해 양잠업을 지도하고 제주에서는 고사리 채취를 도우며 여성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자 애썼다. 여성들이 스스로의 힘을 믿고 자립하고 또 그 힘을 주변에 나눌 수 있는 역량을 키우도록 힘썼다. 32세인 1912년부터 1934년 54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2년 동안 일제강점기에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광주 궁핍한 지역, 제주, 추자도 등지에서 미혼모, 고아, 한센인, 노숙인들을 돌봤다. 그녀의 장례식은 광주 최초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졌는데 그녀의 운구 뒤로 소복을 입은 수백 명의 여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애처롭게 ‘어머니, 어머니’라고 부르던 모습은 지금까지 회자된다. 서서평은 검소했지만, 먼 이국 조선의 어려운 이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내어준 ‘이타적인 낭비’를 하며 살았다. 자신의 시신은 의학용으로 기증할 정도로 삶은 물론 육체까지 조선에 모든것을 주고 떠났다. 어머니에게 거부당하고 기댈 곳 없이 외로웠던 그녀는 바람, 햇살, 숲과 함께 자랐다고 고백했다. 그것으로부터 받은 에너지를 물설고 낯선 이국의 사람들에게 온통 베풀고 떠났으며 그녀를 아는 사람들에게 지극히 아름다울 수 있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절이 수상해서…, 경제가 불안정해서…, 희망이 없는 시대야….’라는 불평은 서서평의 삶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가진 것 없어 보였던 그녀가 희망이 없어 보였던 조선 땅에서 펼친 것은 사랑이었고 그 사랑은 수많은 사람에게 기적이 되었다. 어려운 시절이다. 올봄에는 그녀가 남긴 봄볕 같은 따뜻한 사랑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 모두가 행복해지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오덕성 우송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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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03 18:17

윤석열 대통령만 남았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이재명 2심 무죄’로 ‘사법 슈퍼 위크’의 4가지 시나리오 중 두 개가 사라졌다.‘이 대표 피선거권 박탈+윤석열 대통령 복귀’와 ‘피선거권 박탈+파면’은 없다.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 항소심에서 서울고법은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의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피선거권 박탈형’이 뒤집힌 것이다. 이 대표와 관련하여 이제 남은 변수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 시점과 윤석열 탄핵심판의 헌재 선고일이다.예상과 기대(?)보다 늦어지는 헌재 선고는 빠르면 4월 2일 4일 또는 11일이란다. 그 다음은 4월 18일이다. 이 대표는 현재 총 5개 사건의 재판을 받고 있다.조기 대선이면 대선 전에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있는 사건은 이번 선거법 사건이 유일하다. 대법원 상고심 판결 시한은 6월 26일이지만 빠르면 5월 초도 가능하다는 건 이론적 전망이다. 설령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유죄 취지로 파기하더라도 고등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거쳐 대법원이 최종 확정해야 한다.조기 대선 전에 결론이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말이다. 2심 선고도 1심 선고 후 4개월 11일만이었다. 사법 리스크를 털어낸 이 대표와 민주당은 ‘후보 추대론’과 함께 헌재 앞으로 향한다. 그들은 ‘윤석열의 신속 탄핵’을 촉구하며 광화문 철야농성의 강공에 집중한다. ‘이재명 2심 무죄’ 이후 시나리오 #1은 ‘이재명 무죄 + 윤석열 파면’이다.이 대표는 유력주자로 조기 대선의 독주체제를 강화하고 민주당은 입법부에 이어 행정부 권력까지 장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선의 첫 쟁점은 ‘이재명이냐? 아니냐?’다. 윤 대통령 파면 결정에 대한 여론의 반향과 평가가 결정적이다. 윤 대통령의 내란관련 사법처리가 가속화되면서 특히 여권 강성 지지층의 탄핵불복 여부가 주목된다. 46%의 보수 유권자가 “탄핵이 인용되면 시위에 참여하겠다.”고 한다니 정치적 양극화는 악화되고 국민적 불안감은 높아진다. 국민의힘은 적절한 대선후보를 빨리 찾아야 하는 부담을 갖는다. 탄핵 불복의 강성 지지층 이탈을 막으면서 동시에 중도보수의 소구력을 갖춰야 하는 상반된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여당의 대선 후보선출 룰이 중요한 이유로 ‘범보수 원샷(또는 투샷) 경선’론이 나오는데 여당 지도부의 정치력이 결정한다. 이때 핵심은 윤석열 전(前) 대통령이다. 여당 대선 후보경선은 ‘반탄의 윤 계열 vs. 찬탄의 개혁파’ 경쟁으로 출발한다. 헌재와 민주당 기득권에 저항하다 부당하게 탄핵 당한 ‘피해자 윤석열 서사’의 영향력이 중요하다. 탄핵 심판 직후 윤 대통령의 첫 메시지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이재명 2심 무죄’ 이후 시나리오 #2은 ‘이재명 무죄 + 윤석열 복귀’다.‘ 윤석열 vs 이재명의 연장전이자 최후의 대회전’이다. 여소야대는 이어지며 ‘강 vs 강’ 대치는 이전보다 더 악화된다. “윤 기각 땐 나라 망한다.” vs “이 대통령 되면 진짜 망국”의 대결은 ‘광장 정치’의 “민주주의 후퇴” vs. “법치주의 수호”로 연장된다. “49 vs 51 ‘피 흘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우려가 퍼진다. ‘국민적 불안감이 가장 큰 최악의 상황’은 이미 진행 중이다. “국민 73%는 계엄과 탄핵 의견 다르면 같이 밥 먹기도 꺼리는 상황”이고 “의견이 다른 사람이 증거를 제시해도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사람이 79%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석회화된 진영 갈등’의 상징이다. 양 진영 지지층의 상호 불신도는 89%로 2020년 대비 34%p 증가한 수치다. 특히 20대 남성의 68%가 이재명,60대 이상 여성의 72%가 윤석열을 지지하는 세대·성별 격차는 극단화되었다. 결과는 정치적 소외의 확산이다.2030 세대의 68%가 “탄핵 심판 결과와 무관하게 정치 체제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다.”고 한다. 이미 “양당 구도에 회의감을 느낀다.”는 젊은 세대의 투표와 정치참여 하락은 불가피하다. 역시 윤 대통령이 결정적이다. 직무에 복귀한 대통령은 내란 혐의의 사법 리스크와 함께 한다.정치적 혼란은 경제와 안보 상황의 어려움을 더 가중시킨다. 상처받은 윤 대통령의 권위와 신뢰를 계엄 전으로 회복하기는 불가능하다. 계엄과 탄핵의 혼란과 위기에 대한 책임이 윤 대통령의 인식과 행동 변화의 출발점이다. 복귀 직후 대통령의 첫 메시지가 중요한 이유다. 어떤 시나리오든 한국정치는 상당 기간 동안 불확실성의 도전 앞에 선다. 경험한 적 없는 ‘소용돌이의 정치’다.대통령 파면이든 복귀든 대한민국 운명의 갈림길은 윤 대통령에서부터 시작한다. 대통령만 남았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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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27 16:37

들어라, 봄의 속삭임들

3월 다 가는데 날은 여전히 스산하다. 영등할매가 오는 봄에 심술 내듯 한파를 몰아온 탓이다. 영등할매 늦추위에 장독이 깨지고 중늙은이는 얼어서 죽는다고 했다. 영등할매는 음력 이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땅에 머물며 비와 바람을 쥐락펴락 다스리는 가신(家神)이다. 이월 초하루를 영등날이라고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지냈다. 고향 선배인 박용래 시인도 영등할매에 관한 시를 남겼다. ‘김칫독 터진다는 말씀/2월이 떠올리라/묵은 미나리깡 푸르름 돋아/어딘서가 종다리 우질듯 하더니만/영등할매 늦추위/옹배기물 포개 얼리니/번지르르 춘신 올동말동’.(박용래 ‘영등할매’) 며칠 전엔 절기를 잊은 폭설로 내가 사는 파주는 온통 흰눈으로 뒤덮인 설국으로 변했다. 저 멀리 보이는 심학산 봉우리도 눈 쌓여 희끗희끗 했다. 작년 이맘때 출판단지 안 매화나무 검은 가지마다 밥풀떼기처럼 자잘한 흰꽃이 피었었다. 올해는 한파 영향인지 매화꽃 필 기미가 안 보였다. 올 꽃소식은 유난히 늦은 셈이다. 옛 어른들은 아침이 오기 직전 새벽이 가장 어둡고, 봄 오기 전 추위가 매섭다고 했으니, 옛 어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맘땐 묵은 김치에 질린 탓에 봄동 같이 상큼한 푸성귀 햇것이 먹고 싶어진다. 요즘 먹을 반찬이 마땅치 않다고 툴툴대던 아내가 오늘 아침엔 달래를 넣어 끓인 된장찌개, 갓김치, 구운 고등어를 상에 올렸다. 공기밥 한 그릇을 거뜬하게 비우고 나와서 교하도서관 열람실에 앉아서 반나절을 읽고 싶던 책을 찾아 읽었다. 책을 덮고 도서관을 나와 쾌청한 하늘 아래 오솔길을 걸었다. 찬 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중앙공원 분수대의 물은 얼어있는데, 얇은 얼음장 아래에선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었다. 오솔길을 걸으며 자꾸 ‘복사꽃 피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 뜨고, 초록 제비 묻혀 오는 하늬바람 우에 혼령 있는 하눌이여. 피가 잘 돌아… 아무 병도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 일 좀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라는 싯구를 혼자 중얼거렸다. 미당 서정주의 ‘봄’이란 시다. 아무 병도 없으면, 슬픈 일 좀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라니! 시인이란 무탈하게 지나는 봄날의 심심함도 그냥은 견디기 힘든 족속인 모양이다. 저녁밥 먹고 일찍 잠든 날엔 꼭 새벽에 한번쯤 깨어나곤 한다. 식구들 다 잠든 방에서 혼자 깨어나 앉아 있으면 적적하다. 고요한 한밤중 누군가 육체라는 조그만 막사(幕舍) 안에 갇힌 채 ‘도와 달라!’고 외친다. 그는 몸부림친다.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나는 깜짝 놀라 두 귀를 쫑긋 세우고 그 외침에 집중한다. 물론 내가 들은 외침은 환청에 지나지 않는다. 내 안에서 몸부림치고 웃으며 부르짖는 자는 누구인가? 그는 내 안의 또 다른 나, 숨어 있는 가 아닐까? 곧 매화 꽃망울 터지고 제비꽃 싹 트고 울 아래 작약은 움이 돋을 테다. 봄날은 그렇게 만개한다. 젊은이들의 심장 속에선 춘정이 돌아 새로운 사랑도 시작되리라. 그건 다 생명의 약동에 따른 일들이다. 큰 야망을 품고 살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오, 지금은 봄이 아닌가? 살아있다는 건 꿈틀대는 것, 갈망으로 타오르는 피의 명령에 무언가를 하는 것, 죽을 만큼 힘을 다해 무언가를 이루는 것! 이렇게 밥이나 축내고 군고구마 몇 개나 입속에 우겨넣으며 군살이나 찌우고 멍청하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하다못해 방바닥에서 머리카락 몇 올이라도 정성들여 줍고, 양지 바른 데서 겨우내 긴 손톱 발톱이라도 깎자. 지아비는 지어미에게 제주 귤 하나라도 까서 건네자. 눈꼽챙이문 밖 하늘에 떠가는 구름 몇 조각이라도 바라보자. 월동 마치고 북녘 고향으로 떠나는 쇠기러기의 무사귀환이라도 빌어주자. 불타 올라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몰두하라. 삶도 죽음도 두려워마라. 이건 삶의 숭고함에서 나온 명령이다! 살아서 비명이라도 지르라. 살아 있다고 큰소리로 외쳐라. 오늘이 마치 생의 마지막 날인 듯 살아보자.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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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20 18:50

이슬처럼 작은 것을 가져 오세요

이른 새벽 홀로 일어나 시를 읽다가 잠이 오지 않아 산책 나왔다고 말하며, 내 고민 좀 들어 주며 조금만 같이 걸어주지 않겠냐는 대통령을 만나보고 싶다. 텔레비전에 나와 이번에 이런 책을 읽었다고 좋아하는 총리와 장관들과 국회의원을 보고 싶다. 중고등학교에 강연을 가서 나는 이번 휴가 때 이런 영화를 보았다고 뽐내는 재벌 총수를 보고 싶다. 때로는 우리들의 영혼을 살찌우는 한 장의 그림을 보았노라고, 어느 전시 때 본 그림을 찍은 핸드폰 사진을 보여주는 정당 대표들을 지하철에서 만나보고 싶다. 거리를 걸으며 아이들과 만나 키를 낮추고 공부에 지친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고 손에 들고 있는 책에 대해 말해 주는 교육감을, 그리고 이 책 갖고 싶으면 주겠다고 말하는 교장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 나에게 이 책 읽어보았냐고 읽던 책을 내밀어 보이는 선생님, 공무원을 만나보고 싶다. 아파트 공원 의자에 앉아 신간을 읽는 젊은 어머니 곁에서 동화책을 읽고 있는 아이를 보고 싶고, 승용차 안에 읽다 만 이마누엘 칸트의 책이 있는 단체장을 만나보고 싶다. 도시의 변두리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돋보기를 코에 걸고 앉아 독서 중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곁에 누워 책을 읽다가 코 골며 잠든 기초의원들을 보고 싶고, 어느 소도시 작은 미술관에서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젊은 연인의 잔잔한 사랑을 보고 싶다. 남의 시집을 사 들고 걸어가는 시인을 어느 거리에서 만나, 요새 읽었던 시집 이야기를 하는 시인들을 만나고 싶고, 지난번 시집 잘 사 보았다며, 나는 이 시가 좋다고 젊은 시인의 시구절을 읽어주는 노시인의 보고 싶다. 남의 소설책을 사는 소설가들을 책방에서 우연히 만나보고 싶다. 파도치고 갈매기 날아다니는 해수욕장에서, 깊은 계곡 물소리, 바람 부는 들 길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서, 나비가 앉은 풀꽃, 느닷없는 들길의 소낙비, 봄비 속에 개구리 울음소리, 이른 아침의 새소리, 푸른 산 위로 솟는 뭉게구름,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흐르는 강물 곁에서, 그런 것들과는 무심하게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곁에 가만히 앉아 눈송이로 녹고 싶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어디를 멀리 갈 때는 올라브 하우게의 시집 ‘어린나무 눈을 털어 주다’라는 작고 가벼운 시집을 들고 간다. 올라브 하우게는 노르웨이 시인이다. 몇 년 전 노르웨이로 강연을 갔었다. 서점이 있는 문화 공간에서 강연 후 작가와의 대담 자리가 있었다. 대담하는 도중 나는 시집 한 권 때문에 올라브 하우게가 살았던 노르웨이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번역된 이 시인의 시집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하우게라는 시인의 시집이 한국에서 독자들이 좋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사람들이 놀랬다. 하우게는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 과수원에서 정원사로 일하며 평생을 살았다. 나는 작은 이 시 집의 시중에서 이 시가 좋다. ‘진리를 가져오지 마세요/ 대양이 아니라 물을 원해요/천국이 아니라 빛을 원해요/이슬처럼 작은 것을 가져오세요/새가 호수에서 물방울을 가져오듯/바람이 소금 한 톨을 가져오듯’ 올라브 하우게의 ㅡ진리를 가져오지 마세요ㅡ 전문‘ 나는 그의 시집 뒤에 실린 글도 좋아한다. ’하우게는 줄 것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는 작은 스푼으로 마치 간호사가 약을 주듯 먹여준다. 그는 옛날 방식으로 죽었다. 어떤 병증도 없었다. 단지 열흘 동안 먹지 않았다. 슬픔과 감사로 가득했던 장례식은 어린 하우게가 세례받은 계곡 아래 성당에서 있었다. 말이 끄는 수레가 그의 몸을 싣고 산으로 올라갔다. 작은 망아지가 어미 말과 관을 따라 내내 행복하게 뛰어갔다.” ―로버트 블라이(시인)‘ 나는 평생 이만한 시 한 편 쓰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좋다. 이 시집을 읽게 되어서. 이 시집을 머리맡에 두고 나는 무엇이 부럽지 않다.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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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13 18:58

지혜로운 삶을 준비하는 원리, 3C(Curriculum, Community, Characteristic)

겨울의 끝자락, 봄의 기운이 슬며시 느껴질 때면 캠퍼스는 가벼운 설렘, 미래에 대한 가벼운 불안으로 가득하다. 졸업생들을 보내는 따뜻하게 배웅과 앳된 신입생들을 맞는 반가운 마중이 교차하는, 대학 일정 중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장으로서, 삶을 앞서 살아온 선배로서 그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삶에 작은 울림을 줄 수 있는 말은 뭘까 깊이 고심하게 된다. 4차를 넘어 5차 산업혁명(Industry 5.0)시대에 접어들면서 기업과 사회의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AI와 로봇을 활용한 기술은 2023년 기준, 적게는 38.8%, 많게는 70% 이상의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했으며, 2030년까지 우리나라 일자리의 90%가 AI로 대체될 수 있다고 전망하였다. 이 예측대로면 대학에서 배운 전공이 직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간은 채 10년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진부한 말이 되어버렸고 입학과 졸업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청년들에게 ‘3C’를 갖추면 당당한 사회인이 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축사했다. 3C란 커리큘럼(Curriculum), 공동체(Community), 품성(Characteristic)의 앞 자를 딴 것이다. 남이 대체할 수 없는 자신만의 커리큘럼(Curriculum)이 있다면 다양하고 복잡해진 직업 세계라 해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AI 등 첨단기술 활용 능력, 다른 학문 분야 응용 전공지식 습득 등 새로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자신만의 커리큘럼을 준비하여 변화하는 미래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다음, 같은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협업공동체(Community)가 중요하다. 새롭고 혁신적인 프로젝트일수록 혼자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함께 상의하고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서로 돕고 협력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나 스스로 열린 마음과 좋은 품성(Characteristic)을 갖추고 사람들이 함께 있고 싶은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사람 주변엔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동료들이 자연스레 모이게 되고 서로 존중하며 협력해 나가면 시너지가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입학생들에게는 열린 마음과 긍정적 태도를 강조하였다. 같이 생활하고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이 접근할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이 성공적인 대학 생활의 기본이자 행복의 기본 조건이 될 것이다. 축사를 천천히 되뇌어보니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적용해보면 좋을 듯 싶다. 다만 나이가 든 우리 세대는 우선순위를 바꿔 열린 마음과 좋은 품성(Characteristic)을 앞에 두고 협업공동체(Community), 인생의 커리큘럼(Curriculum)순으로 가치 기준을 달리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주변에 친한 벗들과 접점이 점점 줄어들고, 건강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낄 때 왠지 작아지는 자신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젊은 시절과 다른 색의 행복이 필요하고 사람과의 관계가 더 중요해지는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과 긍정적 태도를 지닌 좋은 품성(Characteristic)은 인생 후반을 잘 살기 위해 무척 중요하다. 좋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협력 공동체를 형성하고 새로운 삶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자신만의 개성 있는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나아갈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은 언젠가부터 나를 이끄는 문구가 되었고 3C 즉, 좋은 품성, 협업공동체, 나만의 커리큘럼을 갖춘다면 누구나, 충분히 가능한 인생의 길이 될 것이다. 처음에는 나의 학생들에게 꼭 전하고 싶었던 축사의 말이었지만 우리들에게도 필요하며 그 목표를 따른다면 편안하고 행복한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오덕성 우송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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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06 19:15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과 ‘이재명의 민주당’

개헌론이 시민사회는 물론 여야를 넘나든다.“지방분권형 개헌과 국가운영 시스템 대개조,”“대통령 권한 축소와 결선투표제의 4년 중임,” 그리고 “내각제 또는 이원집정제”등이다. 개헌 시기는 “2026년 지방선거와 동시 개헌 국민투표” 제안과 함께 조기대선 전 개헌 주장도 나온다.개헌 의지와 정치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권력구조 중심의 개헌논의가 지난 40년 가까이 공전한 이유다. 제헌헌법은 45일,제2공화국 헌법은 공포까지 50일 걸렸다.1987년 헌법도 여야 8인 정치회담부터 헌법공포까지 2개월 26일이었다.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개헌은 의지문제로 야당이 협조하면 한 달 내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조기대선 전이든 내년이든 이재명 대표의 동의나 묵인 없는 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개헌을 포함한 정치개혁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는 김부겸 전 총리에게 이 대표는 “지금은 탄핵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이 대표에게 개헌을 촉구하려고 전화를 하면 요즘은 피한다.”는 정대철 헌정회장의 언급도 같은 맥락이다. 조기대선에서 개헌론은 당 밖의 반명과 당내 비명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국민적 공감과 정치적 파괴력에 따라서 이재명의 선택도 변한다.그가 ‘치유와 회복 그리고 공화국의 전진을 향한 전환기적 리더십의 시대정신’을 이해하느냐 나아가 대의에 충실 하느냐가 갈림길이다. 개헌론의 방향은 분명하다.“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줄이면서 권력의 균형과 협치를 강화하는 것이다. 대통령 권력의 제한과 분산은 ‘국회의 권한과 기능의 확대’다.예산법률주의를 통한 국회의 예산심의와 통제권 강화 그리고 대통령 인사권 축소와 함께 헌법재판소장과 감사위원의 국회 선출 등 이다.감사원의 국회이관도 그 중 하나로 그 끝은 ‘의회중심의 국정운영’이다. 그렇다면 ‘대통령 권력의 분산과 국회의 권한과 기능 확대’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대립과 교착의 정치와 국가 리더십의 기능 부전을 해결할까? 계엄과 탄핵 후의 정치는 민폐가 되었다.거대 야당의 입법 강행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재표결의 악순환 그리고 윤 대통령이 계엄 사유로 지목한 ‘줄탄핵과 예산삭감’ 등은 정치와 리더십 실패의 결과다. “제왕적 대통령”과 여소야대 “제왕적 야당대표”의 극단적 충돌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대통령과 입법 권력의 투쟁과 대치의 위기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개헌이든 정치개혁이든 우리의 최종 목표는 분명하다.‘유능한 민주적 정치 리더십’이 선도하는 ‘문제해결의 정치’다.국민 삶과 생활에 도움 되는 정치다. 우리나라 제헌헌법은 대통령과 국회의 협력과 협치 나아가 공치(共治)를 지향했다.대통령 지명과 국회 인준의 국무총리제와 의원의 장관 겸직 등의 제도적 장치다.“내각제적 대통령제”라고 불리고 기존 제도와 관행의 계승과 심화로 책임총리제를 고민한다. 따라서 국회와 대통령의 협조와 협력의 협치가 제도적으로 불가피하게 만들어야 한다.“제왕적 야당대표의 국회”가 등장하지 않도록 제도적 강제 장치의 마련이다. 5년 임기의 대통령과 4년 주기의 총선은 여소야대의 가능성을 높인다.차기 대선을 향한 “1극 체제”의 “여의도 대툥령”행보는 결국 “제왕적 야당 대표와 제왕적 국회”의 출현이다.국회가 특정 정당과 정치인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한다. “제왕적 국회”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의 승자독식 구조에 따른 거대 정당의 의석 과점에서 출발한다.현행 제도는 “지역주의와 양당체제 고착화의 주범”이다.대량 사표 발생과 비례성과 대표성의 악화가 불가피 하다.작년 총선에서 지역구 투표의 41.5% 1213만 6757표가 사표였다. 개헌으로 국회의 권한과 기능이 더 강화된다면 그 전제는 국민 대표의 국회 구성이어야 하는데 선거제도 개혁이 핵심이다.양극화 정치의 악화를 막아 민주공화국의 위기를 피할 수 있다. “선거제도 개혁 없이는 개헌의 실효성이 없다.”면서 “대표성 강화 없이 대통령 권한만 이양하면 뒤틀린 권력구조가 발생한다.”는 게 노회찬의 지적이다.그는 “국회의 정당 득표율-의석수 일치를 달성해야 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가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선거제도 개혁은 개헌보다 어렵다.더 많은 정치인의 이해관계를 변동 시킨다.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을 잡는 것보다 선거제도 개혁이 더 큰 정치발전을 가져온다.”며 “정권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선거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믿었던 이유다. “제왕적 국회”의 등장 가능성을 줄이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두 가지다.임기조정을 통한 동시선거로 여대야소이거나 도농복합선거구제를 통한 다당제 국회다. 특히 후자는 양당의 주류세력인 민주당 수도권과 국민의힘 영남 의원들에게 불리하다.거대야당 이재명 대표와 수도권 민주당 의원들의 선택이 출발점이다.절대 다수당이기 때문이다.그들의 선의와 공적 마인드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일까?!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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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27 18:03

[금요칼럼] 그건 교양이 아니에요

예전 어른들이 종종 “그 사람은 교양머리가 없어!”라는 말을 하던 게 떠오른다. 염치가 없고 무례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을 힐난하는 말이었다. 그건 행동거지가 제멋대로인 막돼먹은 사람, 인품이 조악하고 몹쓸 사람이라는 낙인이다. 그런 이들과는 인연을 끊는 게 마땅하다는 선언이자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자격 미달의 인간이라는 암묵적 합의일 테다. 그러니까 ‘교양머리가 없다’는 말은 사람의 품성과 인격에 대한 무섭고 신랄한 평가였던 셈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 됨됨이를 자는 척도로서의 교양이란 말을 더는 쓰지 않게 되었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 그건 교양이 현실에서 더는 유용하지 못한 상태로 죽어버린 탓이다. 교양은 원시 채집시대 인류가 아니라 현대를 사는 인간들이 창안해낸 산물이다. 교양은 말과 태도의 우아함이고, 태도의 실행 속에서 드러나는 기품이자 기억과 지식의 축적 속에서 일어난 놀라운 혁신의 결과물이다. 그건 질서와 내면 도덕의 발현이며 고차원의 사회생활의 기술이자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덕목이다. 교양이란 고등 생명체로 진화에 성공한 인간 무리가 합의한 우아한 행동양식이다. 항상 현재 안에서 작동하는 우아함이란 점에서 교양은 정태(靜態)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교양의 반대는 무교양이다. 따라서 교양머리가 없다는 것은 인격의 막돼먹음이고 파렴치한 행실을 일삼는 것을 뜻한다. 무교양 사회는 미개하고 탈법과 무법이 판을 치는 후진 사회이다. 혼돈과 무질서가 지배하는 사회, 더 나아질 가망이 없는 사회, 도덕과 상식이 퇴행하는 사회가 무교양 사회다. 교양은 지식의 유무나 학력의 많고 적음에 좌우되지 않는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것은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이고, 예의와 교양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사회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교양이란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지식이고 배우고 몸에 익힌 태도이다. 또한 도덕적 일탈을 막는 내면 기율이고, 제 행동을 통제하는 권력이다. 교양은 처세의 기술도 아니요, 도덕적 의무도 아니지만 그것은 언어능력이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수단이다. 교양이 양심에 잇댄 의식, 도덕과 품성, 타인을 포용하는 능력, 기분 좋은 매너를 아우를 때 비록 그것이 현실에서 써먹을 데가 마땅치는 않더라도 우리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동력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교양사회에서는 국가의 통제 권력이 마비된 무정부 상태도, 군중이 폭도로 변해 난동을 일으키는 사태도 없을 테다. 교양은 무례하지 않고, 사회 규범을 존중하며, 성실한 이들의 가치관을 존중한다. 교양은 한쪽 이념으로 치우치거나 확증 편향에 빠지지 않으며 폭력을 수단으로 무언가를 도모하지 않는다. 교양은 사회의 혼돈과 무질서에 부화뇌동하지 않으며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파괴하는 불법 사태를 용납하거나 동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큰소리치며 활개를 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무법과 혼돈이 뒤섞인 사회, 탈법적 폭력으로 무언가를 도모하는 사회가 교양사회일 수는 없다. 막말, 난동, 폭력, 탈법, 갑질, 거짓, 허언… 그런 것들은 교양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막장 현실의 징후들이고 막돼먹은 사회가 최후에 드러내는 아노미 현상이다. 그 반대가 예의바른 태도, 겸손, 타자에 대한 관용,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의 의젓함을 갖춘 이들이 협업하며 만드는 교양사회다. 교양이 문화, 웰빙, 덕성을 집약한 것이라면 그것은 삶을 경이로 바꾸는 기품이고 기쁨일 테다. 그것은 궁극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가장 좋은 것으로서의 삶 그 자체다. 교양을 가진 어른들과 함께 살던 시절이 그립다. 어른들은 점잖고 웃음과 유머가 있었으며 태도에는 기품이 있었다. 존경을 받을 만한 어른들 앞에 서면 절로 고개가 숙여졌던 것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품격 있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며,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이성과 상식이 통하는 교양사회로 나아가기를 기대하고 갈망한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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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20 18:42

[금요칼럼] 어쩌다 마주친 새들의 눈

작년 전 겨울이었던가, 서울 중랑천에 원앙 200여 마리가 떼로 나타났다고 많은 매체들이 화려한 원앙 떼 사진을 앞다투어 연일 보도한 적이 있었다. 원앙이 떼로, 그것도 200마리가 넘게 떼를 지어 나타난 일은 세계 최초의 일이라고 전문가들의 입을 빌렸다. 모두 ‘세계 최초’를 앞세웠다. 그런데 그 세계 최초에 세인들은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은 듯했다. 강연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그 ‘최초’를 보았느냐고 물어보아도 그 보도를 보았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래전 강길 십리 길을 걸어 출퇴근할 때였다. 강물을 지척에 둔 길이었다, 길은 차가 다닐 정도로 넓게 나 있었지만, 풀과 나무가 너무 오래 자라 있고, 또 그 길을 이용해야 할 경제성이 없어서 그런지 2년 동안 차도 걷는 사람도 거의 보지 못했다. 이슬 때문에 나는 반바지를 입고 출근해서 긴바지로 바꿔 입어야 했다. 어느 날 강물이 쉬어 가는 소(沼)에 물결이 요동치고 있었다. 물결을 일으키는 그 물체(?)는 등과 머리를 드러내놓고 헤엄을 치고 있었다. 오싹 겁이 나고, 혼자 놀래 주위를 둘러보았다. 용이 못된 구렁이가 우리 마을 근처 큰 호수(그 용소가 지금은 없다.)에 살았다는 말을 듣고 살았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니, 수달 두 마리였다. 수달을 너무 오랫만에 본 것이다. 출근해서 신문을 뒤적이는데, 우리나라에 수달이 멸종되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신문사로 전화했다. 기자님은 수달이 멸종되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고 못 박았다. 나는 아침에 분명히 수달을 보았다고 한 번 더 말했다. 원앙 떼가 서울 중랑천에 세계 최초로 200여 마리가 나타났다는 그 기사의 화제 성에 내가 놀랐던 것은, 지난 3. 4년 동안, 수달이 나타났던 그 강에 원앙이 208마리 정도까지 날아와 한겨울을 지내다가 갔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208마리 정도라고 그 숫자를 거의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느냐고요? 사진을 찍어 세어 보았으니까요. 어떤 해는 청둥오리 떼와 원앙 떼가 마을 앞 강을 가득 메우고 ‘찬란’하게 먹이를 찾아 먹기도 했다. 3년 전부터는 홍 머리 오리들이 외진 강물에 와서 살다 간다. 작년과 올해부터는 댕기흰죽지 오리리가 여러 마리가 강물에서 놀고 있다. 청둥오리, 비오리, 호사비오리는 철새다. 호사비오리는 멸종 위기 새다. (이 오리에게 총 쏘면 크게 벌 받는다.) 논병아리와 쇠오리, 쥐오리는, 토종 오리다. 토종 원앙도 몇 마리 산다. 어떤 해에는 물닭, 깃털이 우아한 호방 오리도 왔다 갔다. 참, 내, 원, 몇 년 전부터 가마우지도 온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나는 가마우지가 우리 마을 산천하고 어울리지 않게 너무 검고 커서 정서적인 불쾌감과 거부감이 있다. 우리 마을 앞 강에 와서 한겨울을 나던 원앙 떼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새 연구가 한 분이 남원에 사신다. 그분의 말에 의하면 원앙들은 기온이 자기들에게 맞고 먹이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고 아주 조심스럽게 말한다. 어느 날 나는 길을 걷다가 길가 숲에서 붉은 머리 오목눈이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다, 새가 그 작고 까맣게 환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작고 선량한 눈을 보고 하마터면 울 뻔했다. 그렇게 겁 없고 작고 선량한, 아름다운 눈을 처음 마주친 것이다. 며칠 전 흰 댕기 죽지 오리 사진을 확대해 보다가 또 놀랐다. 또, 정말, 진짜로, 참말로 그렇게 아름다운 테두리 속에 눈을 두고 있다니, 검은 바탕에 그 작고 똥그랗고 또렷한 눈가 테두리는 놀랍게도 노란색이다. 나는 숨이 막힐 정도로 그 눈이 서늘하여서 하마터면 사랑한다고, 말을 해 버릴 뻔했다. 나는 나만 외롭게 알고 있어야만 하는, 새들의 경이로운 생태와 태도들을 간직하고 있다. 누구에게 말해 보았자 사람들은 새들의 선량한 눈 따위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나는 익히 알고 있다. 어쩌다 새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는 어디서 읽었던 임마누엘 칸트에 대한 이 글이 생각나곤 한다. ‘칸트는 참으로 선량한 사람이다. 바로 이것이 그가 오늘날에도 세상에서 의미를 잃지 않은 이유다.’ 선량은 눈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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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13 18:25

‘보통 사람’의 아름다운 작별, 카터의 뒷모습

지난해 말,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작별의 인사를 하고 10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결식에는 미국 역대 대통령 부부가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다. 고인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밝은 얼굴로 고인을 보내는 이 자리는 슬픔이 가득한 조문의 자리라기보다는 아름다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는 유쾌한 자리였다. 그의 최대 정적이라 일컬어지던 포드 전 대통령이 사망하기 전에 미리 작성하였던 추도사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추도사에는 ‘평화와 연민이라는 카터의 유산은 시대를 초월해 독보적인 존재로 남을 것’이라며 카터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표현되어 있었다. 땅콩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여러 실패를 경험한 대통령이었지만 ‘가장 뛰어난 미국의 전임 대통령 카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을 시종일관 이끌었던 성실한 자세였다. 카터 대통령의 일생을 회고해 보면 ‘보통 사람’으로 살기 위해 평생토록 애썼던 ‘특별한 사람’의 노력이 우리에게 신선한 감동을 준다. 우선 그는 ‘인생의 성공은 대통령이라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노력을 통해 마무리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얼핏 ‘미국 대통령보다 명예스러운 자리가 있을까?’ 싶지만 성대한 취임식 후, 재임기간동안 냉정한 평가가 있었고 실제로 임기를 마치면서 ‘성공적인 대통령’이란 칭찬을 듣는 미국 대통령은 그리 많지 않았다. 카터는 1977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 사회 정의, 평등을 실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시대의 정황은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경제문제, 대사관 인질 문제 등으로 1980년 대통령 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패배하며 단임으로 임기를 마치고 고향집으로 돌아갔을 땐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명칭 외에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정책 실패에 따른 국민의 불만이 커졌고 재임에도 실패하며 ‘도덕적으로는 훌륭하지만, 실질적인 정책 집행에는 부족했던 대통령’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대통령 퇴임 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위해 카터 센터를 설립하고 인권, 민주주의 등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세계 각국의 위험한 분쟁지역을 찾아다니며 평화와 타협을 이끌어 갔던 세계 평화대사로서의 역할은 그의 명성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생 2막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지금, 카터 대통령이 겪고 이겨낸 실패와 새로운 노력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두 번째, 카터의 일생을 뒷받침하고 있는 가치 기준으로 ‘겸손, 겸허, 검소’와 같은 단어가 있다.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은 침실 2개가 있는 평범한 주택과 상당한 채무였다. 신탁에 맡겨놓았던 땅콩농장은 심각한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다른 전임 대통령들처럼 임기 이후 강연, 기업의 자문 등을 통해 큰돈을 벌 수 있는 수많은 제의가 있었지만 그는 그러한 제의들을 철저히 거절했다. 자신의 연금을 절약하고 33권의 책을 쓰는 등 오로지 본인의 노력으로 빚을 갚아 나갔다. 또한 본인을 선택된 특별한 사람이 아닌 ‘보통 사람’으로 여겼고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을 거절했다. 자신의 생활을 절제하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연금, 경호, 예우 등을 위한 관리 비용을 다른 전임 대통령들보다 절반 가까운 금액을 절약하는 모습을 보였다.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교회 주일학교의 성실한 교사로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고, 일등석이 아닌 이코노미석의 비행기를 타고다니며 전 세계 가난한 마을의 궁핍한 이들을 위해서 집을 지어주었다. 그는 지난 1월 9일, 조지아주 고향마을의 교회에서 치러진 장례식 후 연못이 있는 버드나무 옆, 인생의 동반자였던 아내 로잘린 여사 곁에 묻혔다. 부부가 일생동안 함께 살았던 집은 본인이 죽은 이후 국립공원 관리청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사전에 기부했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겸허한 모습이다. 타인에게 감동을 주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스스로 그렇게 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카터 대통령의 아름다운 뒷모습은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의 삶을 살펴보면서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 부르는 ‘행복’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떠오른다.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행복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렇게 살았던 카터 대통령은 행복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아름다운 작별의 인사를 하였다. 100세 시대에 카터 대통령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필자도 그가 걸어갔던 행복한 삶의 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이를 본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필자도 ‘보통 사람’으로서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자 한다. 오덕성 우송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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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06 15:45

‘부정선거론’이 가른다!

계엄과 탄핵 후 여론은 요동친다. ‘정당 지지율과 대선후보 선호도 또는 가상대결 그리고 정권 교체론 vs. 연장론’의 3대 지표 모두 그렇다. ‘초반 압도-격차 축소-접전 양상 또는 역전’의 패턴이다. 첫째, 12월 초중순에는 민주당 지지율이 53%까지 오르며 24%의 국민의힘을 압도한다. 12월말부터 1월 초 민주당 지지율은 하락세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상승세로 1월 중순이후 양당 격차는 더욱 축소된다. 오차범위 내 접전양상이 대부분으로 여당이 야당을 앞서는 조사도 나온다. 둘째, 대선후보 여론은 ‘초기 이재명 독주’다. 다자구도는 물론 양자대결에서도 여권 후보를 상대로 10%~20% 포인트 앞선다. 이후 여권 후보들 지지율이 상승한다. 그래도 이재명 우위지만 양자 간 격차는 좁혀진다. 설 연휴 직전 ‘김문수 약진’이 핵심으로 그는 보수결집의 계기다. ‘46% vs. 42%’로 이재명을 누르기도 한다. 다른 여권후보들도 이재명을 오차범위 내에서 거세게 추격한다. 셋째, 정권 교체론 역시 초반에는 압도적이다. ‘정권 교체가 60% vs. 연장 32%’로 두 배 가까운 차이다. 1월 초 이후 정권 교체론은 줄어들고 연장론이 늘어 ‘교체론 53% vs. 연장론 42%’를 보인다. 중순 이후 설 연휴 즈음에 정권 교체와 연장론이 오차범위 내에서 뒤집히는 조사가 처음 등장하지만 정권 교체론의 우위 속에서 팽팽한 접전양상이다. 당장 이재명 민주당 ‘닥공’의 우려와 불안감이 중도층으로까지 확산된 결과다. 이 대표는 “독재와 반민주 세력의 반동은 계속 될 것”이라며 “마지막 고비 넘어가자”고 한다. “6개월 안에 끝낸다”와 “2심 전 대선”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모습이다. 최근 조사를 보면 중도 무당층에서 ‘민주당 신뢰와 불신’은 거의 동률이다. 중도층 유권자의 1/4은 ‘현재 지지정당이 없다. ’고 한다. ‘문재인 학습효과’는 구조적 배경이다. ‘1987년 체제의 해체와 새로운 공화국의 기초 만들기’라는 시대정신과 역사적 임무를 인식하지 못한 탓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극단적 대립과 교착의 정치’는 ‘문재인 권력의 실패’를 상징한다. 3대 여론 지표에 반영된 보수의 위기감과 결집효과는 다양한 측면에서 설명된다. 보수층의 적극적 응답은 ‘윤석열을 향한 동정심’과 그의 “끝까지 싸우겠다. ”는 메시지 정치에 따른 동원효과이기도 하다. ‘30대에서 탄핵반대가 앞서는 조사까지 등장하는데서 보듯 2030세대가 결정적이다. 이들은 수도권의 탄핵반대 여론이 전국평균보다 높게 나오는데도 일조한다. 여론동향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3대 지표 여론의 변화를 추동한 ‘계엄과 탄핵에 대한 의견의 변화’다. 이는 당장 헌재의 탄핵심판과 내란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길게는 향후 우리 정치의 향방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정당 지지율과 대통령 후보 선호도 그리고 양자대결에서 접전 또는 여당 우위의 여론변화의 출발점은 탄핵 찬반의 변화다. 12월 초에는 탄핵찬성 여론이 압도적이다. ‘유권자 10명 중 7명 이상이 찬성했고 반대는 20% 초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계엄을 “위헌적 중대범죄 또는 내란”으로 간주했다. 12월말부터 1월 중순사이에 변화가 나타난다. 탄핵 찬성여론은 줄고 반대가 늘어난다. 예를 들면 ‘찬성은 75%에서 64%로 줄고 반대는 32%로 증가’한다. 그후 탄핵 찬반격차는 더 축소되는데 ‘탄핵찬성이 57%~64% 반대가 36%~43%의 분포’를 보인다. 탄핵 찬반의 의견변화는 계엄평가와 연동된다. 초기에는 계엄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대부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완화되는 경향이다. 특히 보수층과 고령층을 중심으로 계엄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소폭이지만 상승한다. ‘여당 지지율과 대선 후보 선호도 그리고 양자대결의 접전양상 흐름’은 계엄과 탄핵찬반의 의견변화로부터 시작한 셈이다. 나아가 계엄과 탄핵찬반의 근저에는 ‘부정 선거론과 거야 입법독재의 행패론’이 있다. 모두 이념적 갈등과 진영 간 대립의 계기라는 게 걱정이다. 특히 부정 선거론은 ‘30% 중반의 찬성 vs. 60% 전후의 반대’를 보이지만,‘보수 유권자 10명 중 6명 이상이 동의한다. 는 게 주목된다. 젊은층과 고령층에서 부정선거 공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기도 하다. ‘부정선거의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48% vs. 불필요 47%’라는 조사도 있다. 결국 부정 선거론은 첫째, 진영 대립을 더 격화시키고 악화시킨다. 중도의 선택과 판단이 결정적인데 길게 끌수록 보수의 부담은 늘어난다. 둘째, 보수의 분화 또는 분열 개연성이다. 극우적 성향의 그룹이 보수의 주류가 되면 대선은 다자구도로 바뀔 수 있는데 이때는 이준석의 향배가 중요하다. 보수의 재편이다. 셋째, 여당 대선후보의 선출방식이 어떻게 바뀌느냐가 출발점이다. 이는 여당 사람들의 목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부정 선거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결정할 것이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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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30 16:44

혹시 ‘경알이’ 말을 아세요?

말은 시간의 응집이고, 사람의 경험과 기억, 생각을 전달하는 매체다. 말은 시간이라는 맥락 안에서 생성과 소멸을 겪는다. 어떤 말은 살아남고, 어떤 말은 도태되어 사라진다. 지금 내 말은 거의 완전한 서울말인데, 나는 본디 서울말 사용자가 아니었다. 나는 전라도 북부와 충청도 남단의 경계에 있는 농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다. 시골에서 들을 망아지처럼 천방지축으로 뛰어 놀던 촌뜨기가 서울의 부모와 합가하면서 서울내기가 되었다. 충청도 입말에 익숙하던 내 고막에 서울말은 낯섦 그 자체였다. 어린 고막을 울리던 서울말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나는 금세 서울말에 반한다. 고향의 입말과 서울말이 사뭇 다른데 놀라고, 나는 그 차이를 문화적 충격으로 흡수한 것이다. 한 세기 전 경성(서울의 옛 이름)에 사는 중류층 말을 ‘경알이’말이라 했다. 경알이 말은 표준어의 지위를 얻으며 위상이 더욱 공고해진다. 사대문 안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토박이 박태원의 ‘천변풍경’이나 염상섭의 소설들은 지금은 듣기 힘든 경알이 말의 보고다. 한국영화사의 걸작으로 꼽는 주요섭 소설이 원작인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 감독, 1961)에서도 서울말의 원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극 중 어머니와 어린 옥희가 주고받는 말이 서울말이다. 반세기 전 서울말과 지금의 서울말은 또 다르다. 세월이 흐르면서 서울의 주인들이 바뀌고 그런 가운데 서울말도 달라진 것이다. 서울말은 서울 토박이의 오랜 습속과 정서가 밴 입말이다. 서울말은 경기 말과 다르고 인천, 강화 말과도 차이가 난다. 그렇건만 서울말과 충청도말, 전라도말, 경상도말 사이에는 우열 관계가 성립되지는 않는다. 서울말이 소중하면 지방의 말도 언어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서 귀한 말이다. 서울말이 문화적 가치가 있다면 지역말도 보존해야 할 중요한 문화 자산이다. 일부에서는 서울말을 서울깍쟁이말이라고, 혹은 서울말이 간사하다고 흉을 보았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한동안 나는 억세고 투박한 지방말에 견줘 서울말이 더 세련되었다고 생각했다. 서울말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어, 해방 뒤엔 미군 상주와 함께 영어의 영향을 받는다. 서울말은 해방과 한국전쟁, 산업화라는 격랑 속에서 살아남은 말이다. 산업화 시대로 넘어오며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상경 인구가 빠르게 늘었다. 그 결과 서울말은 지방말과 섞이고 동화되면서 그 특색이 옅어졌다. 어른들은 계단을 ‘가이당(階段)’이라 하고, 도시락을 ‘벤또’라고, 손톱깎이를 ‘스메끼리’라고, 등에 매는 가방을 ‘니꾸사꾸(rucksack)’라고, 바지를 ‘쓰봉’이라고, 겉에 걸치는 옷을 ‘우와기’라고 했다. 우리말에 뒤섞여 쓰던 일본말의 잔재는 그 존재감이 뚜렷했다. 본디 서울말에는 된소리 발음이 거의 없었다. 자음 ㄱ, ㄷ, ㅂ, ㅅ, ㅈ 같은 예사소리를 ㄲ, ㄸ, ㅃ, ㅆ, ㅉ 같이 된소리로 쓰지 않았다. 어느 시기부터 서울말에 예사소리를 밀어내고 된소리 발음들이 부쩍 늘어난다. 예전에는 ‘소주’라고 발음하던 것을 지금은 다들 ‘쏘주’, ‘쐬주’라고 발음하는데, 이것은 서울말이 거칠어진 세태로 말미암아 거칠어진 거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오라범땍(올캐), 그러께(재작년), 긍검스럽다(근검스럽다), 후뜨루마뜨루(휘뚜루마뚜루)’ 같은 말은 새 말의 위세에 눌려 자취를 감춘 서울말이다. 나는 서울 서촌 일대에서 초·중·고교를 다녔다. 서울의 수돗물을 마시고 서울에서 생업을 일구며 자식을 낳고 마흔 해 넘게 살았다. 살면서 서울 사람의 어휘와 말본새를 듣고 배우며 서울 사람처럼 서울말을 썼다. 서울 시민 노릇을 하며 사는 마흔 해 동안 서울 시내를 가로지르던 전차가 사라지고 새로 지하철이 개통한다. 도심에 고층 빌딩과 고층아파트 대단지들이 들어서고, 한강 이남의 대규모 개발로 강남이 노른 자리 땅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내 귀와 혀에 인이 박힌 서울말도 그 변화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서울말의 부침을 더듬자니, 세월의 무상함 한 줄기가 따라온다. 가끔 어린 시절 ‘~했걸랑’ 같은 어미를 쓰던 서울 동무들과 그들의 서울말이 그리워진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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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23 18:11

새들의 시

아침밥 먹고 빨래 개서 옷장에 정리하고 빨아 놓은 빨래를 거실에 잘 털어 널었다. 빨래를 널거나 소파에 앉아 빨래를 개고 있는 내 모습을 내가 생각하면, 내가 착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보르헤스’의 시를 읽다가 시집을 배 위에 올려놓고 이불속에 누웠다. 방바닥의 따사로운 온기가 몸으로 전이 되어 왔다. 내 몸과 이불 속의 온도가 일치되는구나, 하면서 정신이 가물가물 스르르 잠이 들었다. 포근한 온기로 푹 잤다. 낮잠을 길게 자고 일어나니, 겨울이 겨울 같다. 몸이 환하게 개여 가뿐하였다. 밖에 나갔다. 하늘이 청명하였다. 정말 맑았다. 고개를 들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을 둘러보았다. 산 능선들이 선명하다. 눈부신 겨울 하늘이다. 오랜만에 본 하늘 같다. 강을 건넜다. 낙엽이 쌓여 있는 오솔길을 걸었다. 참나무 잎이 수북하다. 참나무 잎은 두껍고 미끌미끌하다. 발밑에서 부서지는 바스락 소리가 듣기 좋다. 자꾸 뒤가 돌아보아진다. 강길인데, 어쩐지 깊은 숲속 길 같다. 물속에 잠긴 돌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한번도 말을 해 본 것 같지 않은 물속 돌들은 깊은 침묵 속에 잠겨 있다. 자갈들이 밟히는 길이 끝나고 흙길이 나타났다. 따뜻한 양지다. 흙 위에 낙엽들이 쌓여 폭신폭신하였다. 멧돼지들이 땅을 뒤집어 놓았다. 뒤집힌 땅이 마치 서툰 사람의 괭이질 솜씨 같다. 든든하게 땅에 뿌리를 박고 서 있는 막강한 나무들을 올려다보았다. 나무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사람도 저렇게 삶에 구차함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무들은 비겁하지도 않고 다른 나무를 속이지 않을 것 같다. 따로 무엇을 강하게 주장 하지도 남을 욕할 것 같지도 않을 것 같다. 누구를 지저분하게 이기거나 누구에게 비굴하게 지지 않을 것 같다. 불의를 모를 것 같은 반듯하고 당당한 나무들 곁에 서 있으면 내가 졸아든다. 오래된 나무들은 아무 데나 서 있어도 넘볼 수 없는 고결한 인격을 갖춘 상상 속의 어떤 인물 같다. 내가 사는 마을 앞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150년도 더 되었다고 한다. 우리 마을에 사셨던 서춘 할아버지가 심었다고 한다. 서춘 할아버지는 평생 홀로 사셔서 자손이 없다. 이 느티나무가 할아버지의 자손이다. 느티나무의 천년을 넘게 산다고 한다. 이 느티나무는 살아 숨 쉬는 나의 책이다. 나는 이 나무를 78년째 바라보는 중이고, 77년 동안이 나무 아래를 지나다녔다. 하루도 빠짐없이 나는 이 나무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지금도 봄이 오면 까치가 집을 수리하고, 새잎이 피고 꾀꼬리가 날아와 운다. 여름밤이면 둥근달이 나무 위를 지나간다. 가을이면 단풍 물든 느티나무 잎이 강물에 떨어지고 겨울이면 나뭇가지마다 하얀 눈이 쌓여 놀라운 마을 풍경을 그려준다. 이 느티나무는 해마다 새로운 정부를 세워주는 나의 나라다. 날이면 날마다 지치지 않고 새로운 시를 써주는 놀라운 ‘시 나무’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게 인문이다. 보고 배우고 익혀 새로운 세상을 만나 사람을 귀하게 가꾸며 자기가 하는 일을 잘하도록 가르치는 게 책이라면 내게 이만한 책이 없다. 흐르는 강물에 몸을 씻고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써서 보여 주는 이 책은 공부도 하지 않고, 학교도 가지 않고, 책도 안 읽는다. 지금도 강 건너 큰 소나무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는 것 같다. 어느 날 나는 이 나무가 불러주는 시 한 편을 받아 적었다, ‘나무는 정면이 없다/바라보는 쪽이 정면이다/나무는 언제 보아도/ 완성되어 있고 /언제 보아도 다르다/ 나무는 경계가 없어서 /자기에게 오는 모든 것들을/받아들여 새로운 정부를 세운다/ 달이 뜨면 달이 뜨는 나무가 되고/새가 날아 와 앉으면/ 새가 앉은 나무가 된다/ 나무는/바람의, 눈송이들의, /새들의/詩다’ -졸시‘새들의 시’ 전문.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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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16 15:37

'희망의 리더십'이 그리운 요즘

2025년 새해가 밝았다. 뛰어난 식견과 냉철한 판단으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낸 지도자가 그리운 요즘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중요한 시기마다 탁월한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들이 나타나 어려움을 해결하곤 했다. 뛰어난 지도자는 갑자기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준비과정을 거치면서 경륜을 갖추고, 이를 바탕으로 위기에서 그 역량을 최대한 발휘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은 신뢰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유럽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가 전쟁에 휩쓸리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의 독일에 맞서며 연합국을 승리로 이끈 중심에는 처칠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정치가들은 전쟁으로 지쳐있던 국민들에게 평화와 안정된 삶을 약속하였다. 특히, 독일의 팽창에 대해 체임벌린 총리(영국 제60대 총리)는 협상을 기반으로 한 외교적 유화정책으로 영국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었다. 반면 처칠은 히틀러의 위협을 경계하면서 강하게 대응해 나갔다. 1939년, 인근 국가를 침략하기 시작한 독일은 이듬해 프랑스를 공격하면서 유럽대륙은 전쟁에 접어들었다. 처칠이 총리로 임명된 시점은 영국이 전쟁에서 상당히 열세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의회 연설에서 ‘나는 피, 수고, 눈물, 그리고 땀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라는 결연의 메시지를 통해 동료의원들과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독일과 맞섰다. 처칠의 뛰어난 웅변과 리더십은 승리라는 목표를 향해 새롭게 국민들의 마음을 모으는 구심점이 되었다. 몰살 위기에 처한 연합군을 구하기 위한 프랑스 덩케르크 철수 작전은 민-군 협력의 모범적인 사례로 일컬어진다. 독일군이 덩케르크 인근에서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군을 포위함에 따라 심각한 패배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군함과 민간 선박, 어선, 요트까지 동원하여 9일 동안 약 34만 명의 아군 병력을 구출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철수 작전을 성공시킨 이후 처칠은 ‘전쟁에서의 승리는 아니지만, 위대한 구출이었다.’라며 국민들에게 투쟁의 의지를 심어주었다. 또한 57일간 지속되었던 독일 전투기의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국민들이 지하벙커에서 고통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투쟁하자는 처칠의 라디오 연설을 들으며 지도자와 정부를 믿고 버텨나갈 수 있던 배경에는 처칠의 「희망의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 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탁월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지도자였다. 화가, 문필가로서도 그의 뛰어난 능력은 위기에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승리를 쟁취하는 탁월한 지도력의 바탕이 되었다. 2002년, BBC에서 영국민 100만 명을 대상으로 ‘역사를 빛낸 위대한 영국인 100인’을 뽑았던 설문조사에서 셰익스피어, 뉴턴을 제치고 처칠이 1위로 선정되었고, 2015년에 새로 발권된 5파운드 지폐 뒷면에는 처칠의 초상화가 새겨져 있다. 학교생활 부적응자, 낙제생, 사관학교 3수 등 뛰어난 지도자로서 젊은 시절의 모습은 아쉽지만, 그 모든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통합해 결정적인 순간에 빛나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사람이야말로 역사 속에 남을 지도자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처칠은 교육과 가치관의 형성, 축척된 경험을 통해 지도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충실히 하였고 실제 역할이 주어졌을 때 지도자로서 준비된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시대를 읽는 식견, 뛰어난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국민들을 설득하여 자신을 믿고 따를 수 있는 확신을 주었으며 무엇보다 어두운 밤, 등불과도 같은 희망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우리도 다양한 영역에 있어서 윈스턴 처칠 못지않은 위대한 지도자들이 있고 지금도 잘 길러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처칠과 같이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이끌 수 있는 식견과 역량이 있고 「희망의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가 나와 국민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오덕성 우송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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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9 18:35

2025년 정치 개혁의 리더십을 기대한다

방향은 분명하다. ‘제왕적 대통령 권력의 분산과 승자독식에 따른 독선과 무능의 리더십에서 유능한 민주적 리더십’으로의 전환이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민폐가 아니라 ‘국민 통합의 구심점이자 미래 선도의 정치 리더십’을 지향한다. 1987년 체제의 핵심은 ‘1인 장기집권의 방지’였다. 당시 집권 가능성이 높았던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권력의 자리에 올라야 해서 5년 단임의 암묵적 합의였다는 말도 있다. ‘제왕적 대통령과 승자독식의 제도’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대통령으로의 권력 집중과 승자 독식의 선거제도는 정권 말기마다 교체 요구와 정치 보복으로 이어졌다. 진영 간 극단적 대립은 정치적 통합과 협력을 막는다. ‘여야가 5년 동안 죽어라 싸우게 하는 게 대통령제’가 되어 “‘상대가 악’이라는 선악 구도만 매몰”된 정치다. 최근에는 법조인 출신의 정치가 대세로 미래가 아닌 과거의 잘못만 따지는 과거 지향의 정치다. ‘갑툭튀의 끝판왕’ 윤석열 캐릭터의 등장과 계엄 그리고 탄핵은 겸손한 승리와 책임 있는 패배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체제가 보여주는 최악의 모습이다. 대통령제가 “민주주의의 죽음의 키스”라는 말을 듣는 이유다.OECD 37개 국가 중에서 대통령제는 6개국뿐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권력 사유화와 교착 정치의 상시화’로 이어진다. 노무현의 “코드인사” 이명박의 “고소영 강부자 인사” 박근혜의 “수첩 밀봉 인사” 그리고 문재인의 “캠코도 인사”가 대표적이다. 교착 정치는 ‘정치 실종’이다. 직선 대통령의 권력은 국회 다수당과 대립한다. 일상화된 여소야대의 분점 정부다. 견제와 균형의 원칙은 사라지고 극단적 대치와 교착 상태다. 우리가 본 거야의 입법과 대통령 거부의 악순환이다. 결과는 ‘정치의 사법화’다. 정치적 갈등을 정치적으로 풀지 못한다. 협상과 타협 대신 법적 해결에 의존한다. 정치 쟁점이 법정으로 넘어가면서 대화와 통합 그리고 미래의 정치 리더십은 사라진다. 법적 공방과 정치적 책임 회피는 시민들의 무관심과 냉소의 대상이 된다. 극단화된 ‘팬덤 정치’는 악화된다. 양당과 양 진영 모두 각자의 지지층만을 바라보는 정치를 지향한다. 팬덤의 양당과 진영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여지를 줄인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저주와 분열 그리고 내전의 정치다. 승자독식 구조의 핵심은 선거제도다.정치적 양극화의 출발점이다.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한 표라도 더 얻은 사람이 당선되는 제도로 2위 이하의 표는 국정에 반영되지 못한다.단순다수제와 소선거구제는 지역주의와 결합하면서 양당 중심의 대결 구도를 심화시킨다. 지역주의 기반의 양당 체제는 기득권화되고 폐쇄적인 엘리트 구조로 변질된다. 양당의 극단적 대립과 양극화는 당연한 결과다. 어느 쪽이 집권하든 여당은 대통령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며 정책 보다는 정쟁과 대립을 주도한다. 변화의 방향은 분명하다. ‘포용적 정치 시스템과 포용적 선거제도’다. 민주주의를 “집단 지성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개인의 성장을 촉지하는 체제”라고 한다면 상호 존중과 인정을 전제로 공동체의 함께 기여를 위해 경쟁하는 것이다. 협조와 협치와 공존과 공영의 정치가 불가피 하도록 제도적으로 강제해야 한다.대통령 권한의 분산과 결선투표 그리고 도농복합선거구제의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원칙인데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출발점이다. 국민여론도 우호적이다.유권자 10명 중 6명 이상이 “현 대통령제를 개헌해야”한다고 본다.“권한 축소한 대통령제의 선호가 가장 높아” 70%에 이른다는 조사도 있다. 개헌 시기를 ‘다음 대선 전’으로 하자는 의견도 국민 다수다. 보수보다 진보에서 더 개헌을 원하는 양상이다. 민주당 지지층이 국민의힘 지지층 보다 더 개헌을 바란다. 헌정회 여야 원로들은 “선 개헌 후 대선”을 제안하며 “탄핵 정국이 개헌의 적기”라고 한다. 문제는 오해의 소지다. 이재명 대표는 “한가한 소리” “탄핵 관철에 집중할 때”라고 말한다.개헌을 얘기하는 사람들을 “내란 동조 세력”으로 규정하며 정치적 물타기를 의심한다. 탄핵 지연이나 권력 연장의 정략적 의도로 본다. 헌정 질서의 회복이 우선이라는 말이지만 정대철 헌정회장은 “권력이 눈앞에 보이니 성급해진다.”고 진단한다. 이 대표와 민주당의 결심이 중요하다. 특히 100명이 넘는 수도권 의원들의 선택이 핵심이다. 영남 출신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그 다음이다. 선거제도 개혁의 갈림길로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공익우선이냐 사익 우선’이냐다. 2025년 새로운 정치 리더십의 등장을 기대한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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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2 17:00

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한 주일 전에 만나 서로의 건재함을 확인한 지인이 죽었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평소 지병이 없던 분이기에 그 부음은 큰 슬픔과 당혹감은 안겨주었다. 사망 원인은 심근경색이었다. 죽은 당사자는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겠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나는 황망한 마음에 한동안 일손을 놓고 망연히 앉아 있었다. 다시는 웃으며 말하는 그이를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죽고 사는 일의 덧없음이 밀려든다. 무생물계 저편으로 사라졌으나 그이의 부재는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언젠가 점심식사 자리에서 그이는 시인이 된 계기를 유쾌하게 들려주었다. 그이는 과도와 잘 익은 사과 한 알을 보자기에 싸서 한국시의 전설인 원로를 찾아가 당돌하게 가르침을 청한다. 그걸 계기로 사제 간의 연을 맺고 배움을 잇다가 시인의 꿈을 이뤘다. 그이는 동료들의 신간 시집을 받아 읽은 뒤 반드시 재생 용지에 쓴 편지를 보내는 걸로 잘 알려져 있다. 나도 반듯한 글씨로 쓴 그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동료들의 창작을 격려하는 선의가 작동했을 테다. 그이는 착한 사람이지만 막상 그이에 대해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인간은 한 생명체로 태어나서 죽음이라는 한계 안에서 느끼고 생각하며 말하는 생물학적 실존을 잇는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이란 놀라운 실존 사건을 단 한 번씩 겪는다. 죽음이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마주한 영구불변의 조건이다. 지구의 생명체 중에 자기 죽음을 투명하게 인식하는 건 호모 사피엔스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경구는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인간이 죽음을 향하여 있는 존재라는 걸 기억하라는 뜻이다. 질병은 생물학적 존재로 엄연한 인간의 생태적 균형을 흔드는 일이다. 질병을 겪으면서 우리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저항을 조금씩 누그러뜨린다. 인간은 대뇌변연계를 갖게 되면서 장기 기억 처리가 가능해진다. 이것은 과거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긴 시간’을 뇌의 해마와 편도체에 저장하고 산다는 뜻이다. 긴 시간 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니 인간은 이전보다 훨씬 더 똑똑해진다. 긴 시간은 기억의 양태로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지는데, 그 안쪽에는 사랑과 이별, 명예와 비루함, 고통과 쾌락들이 마치 올실과 날실로 짠 카펫처럼 펼쳐진다. 우리 삶은 긴 시간이라는 카펫 위에 세워진다고 할 수 있다. 그 카펫은 죽음과 함께 거둬져서 사라진다. 죽음이 사라짐이라면 그것은 우주적이고 영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순환의 일부가 아닐까? 그것은 몸이라는 유기체의 구조를 버리고 또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일이 아닐까? 불면으로 깨어 있는 동안 나는 자주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은 우리 안에 작은 씨앗 같은 있다가 싹을 틔우고 자라난다. 죽음은 계속 자란다. 그리고 예기치 않은 때에 우리를 포획한다. 죽음은 나의 화두, 불가사의한 수수께끼였다. 나는 지금까지 죽음으로 인한 혼돈과 불안에서 멀리 달아나려고 했다. 죽음에서 도피하려는 욕구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내 무의식의 본성이 낳은 것일 테다. 누구도 살아 있는 동안 제 죽음을 겪을 수 없다. 내 대뇌피질에 오롯하게 있는 죽음에 대한 관념은 대체로 타인의 경험에서 유추된 결과물이다. 나는 아직 인간이 왜 죽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지 못했다. 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가운데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라는 젊었을 때 읽은 성경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 명쾌한 전언에 따르면 무릇 죽음은 태어남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무에서 나와 유로 존재하다가 무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죽음이다. 잠시 돌아가신 지 오래인 어머니도 떠오른다. 나는 형제들과 요양병원에서 어머니의 임종을 지켰는데, 어머니가 마지막 숨을 거둔 뒤 이불 아래로 드러난 어머니의 하얀 발을 잊을 수가 없다. 여동생들이 오열을 할 때 나는 어머니가 발이 시릴까 가만히 쓰다듬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장례가 끝나고 보름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통곡이 터져 나왔다. 나는 한밤중 주방에서 혼자 오래 울었다. 내 어머니는 흙으로 돌아가서 편안히 안식하고 있으리라.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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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26 18:33

우리 공동체의 리더십 희망을 찾습니다!

엄청난 후폭풍이다.경제부터 흔들린다. 원화 약세와 환율 상승은 물론 주식시장도 고전 중이다.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사라진 시가총액이 144조라고 한다. 내년 우리나라 예산 677조의 20%가 넘는 금액이다. 다행스럽게도(?) 기관이 8000억 원에 가까운 돈으로 더 이상의 증시급락을 막았다. 이 중 6000억 원은 국민연금이 포함된 연기금에서 나왔다고 한다. 국민들의 노후 자금을 쏟아 부어 증시폭락을 막은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정치적 불안정이 한국경제의 성장률을 더 떨어트릴 수 있다는 점이다. 계엄 사태 이전에도 우리의 성장률 전망은 1%대로 낮았다. 계엄 이후 경우에 따라서는 0%대 또는 역성장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모습니다. 물론 한국경제의 규모와 역량에 비추어보면 이번 사태가 외환위기 수준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부분의 전망이다. 그럼에도 일시적이겠지만 한국의 국제 신용등급 하락 우려와 우리 경제의 대외 신인도 타격은 불가피하다. 외교적 파장도 만만치 않다. 당장 정상 외교 일정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사례가 이어졌다. 주요 국가와의 외교 네트워크가 약화되어 글로벌 공급망 재편 및 미중 경제전쟁 등 중요 의제의 논의 과정에서 한국의 입지가 약화될 위험성이 증대된다. 외교 공백을 최소하화기 위해 정부의 노력이 진행 중이지만 계엄과 대통령 탄핵 정국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에 치명적이다. 세계는 한국의 정치적 혼란을 주시하며 우리나라를 지정학적 리스크로 간주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례적이라는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공동 외신 기자 간담회는 정부의 회복 노력을 상징한다. ‘한국의 경제와 외교 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다짐을 통해 국제사회의 불안을 진정시키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초현실적 상황은 지금도 계속 된다. 현직 대통령은 출국 금지되고 내란 혐의 피의자로 구속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하이에나로 변신한 검찰”은 ‘대통령이 국방장관과 공모해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수사기관들은 경쟁적으로 대통령 신병을 노리며 소환장을 계속 발부한다. ‘상상 그 이상의 대통령’은 뭘 더 보여줄지 걱정이다. 12월 3일 밤 우리는 한 사람이 가진 엄청난 힘과 영향력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몇몇 사람의 고집과 무모한 행동이 공동체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 주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결국 대한민국 공동체의 정치 리더십이 문제의 근원이다. 댓가는 혹독하다.정치가 민생 경제와 대한민국을 흔드는 상황으로 외신은 “5100만 한국인들이 비상계엄의 경제적 대가를 앞으로 할부로 치러야 한다.”고 우려한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정치 리더십의 대안은 크게 둘로 나뉜다. 집단으로 보면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중심이고 개인으로 보면 “한세표 유안준”으로 ‘한동훈 오세훈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 이준석’ vs. 이재명과 “신3김 3총”으로 ‘이재명 김경수 김동연 김두관 김부겸 정세균 이낙연’이다. 대부분 거론되었거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충분히 예상되었던 사람들이다. 이번에 새로운 인물의 등장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윤 대통령의 ‘의도하지 않은 기여’다. “갑툭튀의 끝판왕”은 지금 대통령으로 충분하다는 게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그리고 ‘한세표 유안준’ vs. ‘이재명과 신3김 3총’의 리더십은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의 리더십일까? 양당과 그들은 새로운 헌정체제의 7공화국 요구를 고민할까! 걱정이 앞선다. 해체위기의 여당은 “조기 대선하면 이재명 대통령”이라는 공포에 휩싸여 있다. “극우 파시즘이냐 정통보수냐 갈림길”에 섰으면서도 “한 명씩 일어나 탄핵 찬반 밝히라”며 배신자를 색출하겠다는 말이 나온다.갈 데까지 갔다. 현재 시점 가장 유리한 위치의 강력한 차기 대권후보 이재명의 민주당은 ‘닥치고 공격’이다. ‘6개월 내에 끝낸다.’며 ‘이재명 2심 전(前) 대선’을 목표로 한다. 자신과 당에 대한 조사와 관련된 24회의 보복성 탄핵시도는 “조폭 정치와 국회 사유화”의 비판을 넘어선다. 그들은 “지금은 점령군인 양”하며 “물 만난 듯 대통령 놀이”하며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얘기를 듣는다. “다뜯어민주당 재명세”의 논란은 정치적 목적을 최우선으로 한 기민함과 민첩한 변신의 이재명 리더십을 상징한다. 새 리더십을 찾아야 하는 대한민국의 고민은 공동체의 방향성과 리더십의 조건으로 이어진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리빌딩과 재도약을 위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누가 리빌딩과 재도약의 리더십일까? 결국 우리의 선택이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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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9 18:06

겨울 감나무

감나무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마을 어디서 나 쉽게 볼 수 있는 나무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격 있는 나무가 감나무다. 감나무 모습 중에서 가장 문기가 넘치는 모습은 뭐니 뭐니 해도 붉은 감이 몇 개 달린 눈 쌓인 감나무 가지에 까치가 앉아 우는 새 아침의 모습일 것이다. 다른 나무에 비해 실 가지가 굵은 감나무는 눈을 많이 받는다. 검고 굵고 짧고 뭉툭한 가지에 가만가만 내려 눈은 소복하게 얹힌다. 가지에 얹힌 눈이 녹을수록 감나무는 눈 녹은 물로 젖어 더 검어지고 눈은 희게 빛난다. 내가 오랫동안 근무했던 초등학교 주위에 감나무들이 많았다. 그 감나무들은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거기 있었다. 나는 계절을 따라 아이들과 감나무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였다. 감잎이 진 가을이면 점심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학교 뒤에 있는 감나무를 향해 돌멩이를 던져 감을 따 먹다가, 감나무 주인인 강 건너 우리 고모가 운동장에 들어서며 누가 우리 감 따 먹었느냐고 고함을 치기도 해서 달려가 내가 그랬다고 늦가을 소동을 무마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내가 유리창을 열어 놓고 감나무를 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하나둘 감 같은 얼굴로 내 곁에 모였었다. 겨울이 와서 감나무 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거나, 가지마다 가만가만 쌓인 눈이 여기저기서 천천히 허물어져 떨어지는 모습은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아득해지는 고적함을 가져다주었다. 감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몸이 검어진다. 다른 나무에 비해 몸이 검고, 투박하고 까만 가지들은 세월이 갈수록 단아해져 가고 품위를 갖추어 간다. 감나무는 찢어지지 않고 부러진다. 찢어지지 않고 뚝! 부러진 내면은 얼마나 고운, 흰색인가. 뻗어나가며 적당한 길이로 구부러진 멋스러운 마디의 검은 가지에 얹힌 흰 눈의 대비는 수묵의 경지다. 감나무도 나이가 들고 고목이 되어 이 가지 저 가지가 죽어가는 그 꾸밈새 없는 모습은,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자라 평생을 살면서 마을을 이해하여 그에 알맞은 마음을 곱게 쓰며 살아 온 선량한 동네 어른처럼 믿음이 간다. 나이가 들어가며 자기 생각을 버리고 가다듬어 살아 온 세월의 자세로 다문다문 열린 감 같은 시를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새잎 피는 봄날, 내 책을 들고 온 사람들에게 사인을 이렇게 해 준다. ‘감나무에 새잎 피어 좋은 날, 임 만나러 가고 싶은 날’. 잎이 피면 잎이 피고, 감꽃이 피면 감꽃 핀대로, 땡감이 열려 있으면 그런대로, 감잎이 다 지고 붉은 감만 달고 서 있으면 또 그런대로, 빈 나무로 서 있으면 그런대로 검고 단단한 골격을 갖춘 자세를 견지한다. 지금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재래종 붉은 감들이 가시덤불 속에서 눈을 하얗게 쓰고 꽁꽁 얼어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 농부들의 일평생 같아 눈 맞는 감처럼 마음은 춥다. 감나무는 농촌 사람들에게 그리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소득원이었고, 농촌의 풍경을 사시사철 소박하고도 조촐하게 그려주던 나무였다. 옛날에는 집집이 마당 가나 뒤 안에 감나무들이 있었다. 큰 집 뒤 안 장독대에 감나무가 있었다. 뒷짐 지고 서서 서리맞은 붉은 감을 바라보던 큰아버지의 등은 얼마나 다정하고 말라가는 곶감이 걸린 처마 밑들은 얼마나 정다웠던가. 감나무는 순박한 삶을 가꾸어 온 우리네 저 유구한 농부들과 그 운명을 같이 해 온 셈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김장까지 끝내고 회관 아랫목에 여기저기 누워 ‘비상 계엄’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들기도 한다. 가누기도 힘든 몸으로 자다 일어나 묻고, 뒤척이다 잠결에 눈을 비비며 나라의 안부를 묻는다“어치게 되어가? 날씨도 추운디, 많이 모였네” 오늘 밤도 마을 회관에 모여 텔레비전 보다가 어둑어둑 집으로 돌아 들 간다. 희끗희끗 눈 발이 날린다. 어둠 속이다. 강물 소리가 휘몰아친다. 감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감나무가 어둡게 서 있다.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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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3 13:15

한 해의 끝, 나에게 하고 싶은 질문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아일랜드 출신 영국 극작가이자 소설가로 19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묘비에 새겨진 글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면 이 문구가 자주 떠오르곤 한다. 2024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지금, ‘나는 올해 어떻게 살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새해에 세운 목표를 되새기고 열심히 살아왔는지’, ‘주변의 가족, 친구, 이웃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따뜻한 일 년을 보냈는지’, ‘후회되는 일은 없는지’ 등등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올해 초에 받은 무릎 수술은 필자의 일 년 계획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해외 출장 일정을 소화하던 중 다소 무리하여 무릎의 상태가 나빠졌고, 걷기 힘든 상황이 되어 일정을 다 소화하지 못한 채 급하게 귀국하였다. 그 발단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네스코 지원사업 수행차 스리랑카에 방문했는데 교통사고로 무릎에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완치하지 못한 무릎은 20년 간의 지속적인 충격으로 결국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수술을 받고 2주 넘게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느낀 점은 ’건강도 때가 있다.’라는 것이다. 아플 때 정신 차리고 문제가 된 무릎을 잘 보살피면서 서두르지 말고 살았어야 했는데, 내 몸은 건강하다고 착각하고 살아왔다. 나를 돌보기보다 급한 일에 쫓겨서 서두르다가 몸도 나빠지고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당시 기억에 남는 일은 병원 옆 제과점에서 아내와 함께한 시간이었다.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병상에만 누워 있다가 목발을 짚고 옆 건물에 있는 제과점으로 가서 아내와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했다. 하지만 무릎이 많이 회복되고 다시 걸을 수 있게 되면서 돌아가 급한 일에 쫓기며 소중한 일은 미루고 있는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왔다. ‘시간의 흐름은 사건의 축적으로 인식한다.’라는 어느 뇌과학자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따뜻한 시간만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텐데 그런 시간은 늘 급한 일에 밀려 소홀히 여기고 있다.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면서 한정된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일, 급한 일, 꾸준히 해야 할 일’ 등 적어도 세 부류로 구분하여 급한 일 때문에 중요한 일이 미뤄지지 않도록 삶의 우선순위를 두기로 했다. 매일 바쁘게 흘러가는 삶에서 잠시 멈춰서서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알아차리는 나만의 시간은 중요하다. 매일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아가는 삶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인가?’ 되새기게 된다. 바로 옆에 있는 가족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 같은 소중한 사람들과 연락하며 안부를 묻고 관심을 갖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인생의 목표를 ‘짧고 굵게 사는 것’이라며 매번 강조하던 필자의 친구가 있었다. 일 중심으로 살던 그 친구가 갑자기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온 이후, 핼쑥해진 모습으로 나에게 자신의 가치관이 바뀌었다면서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짧고 굵게 사는 것’보다 지혜로운 것을 깨달았다고 말해주었다. 당시에는 그냥 웃어넘겼지만, 무릎 때문에 크게 고생을 해보고 나니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말이었다. 무릎 통증이 가끔 느껴졌지만 무시하고 바쁜 일에 몰두하면서 건강관리를 경시했던 모습이 친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수술 후 걷기 위해 애쓰던 시간을 기억하면서 내 몸의 소중함을 알고 친구의 말처럼 건강한 몸으로 ‘가늘고 길게’ 살고 싶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나의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해왔지만, 이제는 고개를 들어 주변도 살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능기부, 사회봉사, 자원봉사 등 내가 속한 조직,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실천함으로써 이웃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야겠다. 연말연시에 우리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나 자신을 내어주는 한 달이 되었으면 한다. 한 해가 끝나가고 새해를 기다리는 이 시점에서 잠시 멈추어서 지난 11개월의 삶을 되돌아보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고백하는 글을 묘비에 새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삶의 우선순위와 태도를 바꾸고 의미 있게 한 해를 마무리해야겠다. 오덕성 우송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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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05 17:04

점술사의 시대

인간의 불확실한 미래는 늘 두렵다. 특히 운명이 걸린 상황이라면 불안이 더욱 고조된다. 내가 투자한 주식, 인사에서 승진, 선거에서 당선, 건강의 위험과 인간관계, 미래는 모든지 불안하고 알고 싶다. 불확실하기에 점술사를 찾는다.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사람을 수소문해서 찾는다. 어떤 일이 발생할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어떻게 위기를 피할 수 있을지, 귀를 쫑긋 세워 점술사의 말에 집중한다. 점술사는 위로도 하지만 협박도 한다. 예측도 하지만 대가도 원한다. 점술사의 예언은 한도가 없다. 죽은 뒤에 세계를 천국과 지옥을 나누기도 하고, 살아서 천벌과 축복을 예견하기도 한다. 위기를 피하는 대가로 돈이나 복종을 제시한다. 점술사는 자기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일단 외모부터 도사의 풍모를 갖춘다. 하얀 수염을 멋있게 기르거나 원색의 복장을 입어 찾아 사람의 눈을 홀린다. 주변에는 수행원을 배치하여 권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연기를 피워 후각과 시각을 혼란하게 하고, 묘한 음악과 소리로 귀를 어지럽힌다. 유명인을 잘 안다고 떠벌리기도 하고 화려한 동상이나 상징물을 등 뒤에 배치하여 머리를 숙이게 만든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도 이쯤 되면 주술사에게 머리를 조아리거나 손을 모아 애절한 표정을 짓게 된다. 부디 나를 축복하고, 액운을 물리치고, 건강과 행복을 주소서. 공자는 미래가 현재를 삼키고, 미신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이념이 사람을 옭아매는 세상을 탄식했다. ‘괴력난신(怪力亂神)’, 공자가 평생 금기시 했던 항목이다. 상식을 벗어난 괴상한 이야기(怪),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엄청난 능력과 힘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力), 세상을 혼란에 빠트리고 공정과 정의를 무너트리는 사람과 집단의 이야기(亂), 보이지 않는 귀신과 미신을 찬양하는 이야기(神)는 공자가 평생 언급하지 않았던 내용이다. 제자인 자로(子路)가 귀신과 미래의 일을 물었을 때 공자는 호되게 야단치며 훈계했다, ‘귀신이 아닌 사람을 섬겨라! 내세가 아닌 현재에 집중하라!’ 죽은 조상 제사 잘 지내는 것보다 살아생전 밥 한 끼 잘 차려드리는 것이 효도다.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걱정하느니 현재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행복이다. 점술사에게 묻지 말고 주변 사람에게 묻고,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현재에 집중하라, 공자가 평생토록 추구해 온 철학이다. 미래는 중요하다.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가올 위기에 대안을 만들고, 위기가 닥쳤을 때 대항력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예측의 방법이다. 점술사의 예언도 아니고, 주관적 짐작도 아니다.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추론, 과거의 있었던 패턴, 과학적 수치를 기반으로 미래에 대한 예측이 필요하다. <손자병법>에서는 합리적 미래 예측의 리더를 선지자(先知者)라고 말한다. 미리(先) 알고(知) 전쟁에 임하는 장군이라는 의미다. 거북이 등껍질이나 물소 뼈를 불로 지져 갈라지는 무늬를 보고 전쟁에 임했던 시대에 손자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미래의 정보를 획득해야 한다고 하였다. ‘귀신에게 묻지 마라! 보이는 대로 믿지 마라! 주관적 경험으로 판단하지 마라!’ 손자는 귀신에게 점을 쳐서 물어보고, 주관적 경험에 의존하여 얻던 관습을 비판하며 철저하게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불확실이 높아지던 시대에는 점술사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었다. 그들은 혹세(惑世)하여 권력을 얻었고, 무민(誣民)하여 이익을 챙겼다. 지도자들은 점술사의 허무(虛無)한 이야기에 해야 할 일을 미뤘고, 맹랑(孟浪)한 경고에 하지 말아야할 일을 했다. 충언과 간언은 길바닥에 내팽겨 쳐졌다. 그런 시대는 혼란이 극에 달했고, 지도자는 자리에서 끌려 내려왔다. 이런 일이 다시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소원한다. 박재희 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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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2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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