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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 돌은 왜 흐느끼는가

강가에서 주워온 돌 하나가 책상 위에서 가만히 흐느끼고 있다. 그대는 듣는가, 책상 위에서 돌이 혼자 흐느껴 우는 소리를. 나는 새를 쏘았던가? 저 돌은 내가 쏘아 떨어뜨린 새인가? 지난여름 초목을 태울 듯 하던 불꽃 더위가 잦아들고 소슬한 바람이 분다. 복숭아를 좋아하던 용접공은 연애에 빠지고, 줄장미가 붉은 꽃을 피웠던 여름은 지나갔다. 나이 어린 이모가 시골집 뒷곁에서 석류나무에서 몰래 딴 석류를 먹는 계절이 온다. 한때 번성하던 것은 시들고 바스라지며 우리에겐 관조의 시간이 배달되는 것이다. 가을 저녁엔 후박나무 잎사귀가 붙잡고 있던 나뭇가지를 슬그머니 놓치고 제 풀에 내려앉는다. 저렇듯 땅으로 하강하는 조용한 시간이여, 나는 유랑의 무리와 그 속에 고립된 나를 가만히 돌아보련다. 봄엔 산등성이 비탈밭에 심은 사과나무 700그루에 퇴비를 주고 농약을 치고, 늦가을엔 마가목 열매를 따서 설탕을 쏟아부어 과실주를 담그려고 했다. 동지 때면 호롱불 아래서 권정생의 동화책이나 읽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작은 꿈들은 산산이 깨졌다. 하우스 농사를 지으며 농협 빚만 늘었다고 울분을 토해내던 영농후계자들이 서울에서 넥타이를 매고 다단계 회사에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여름내 식빵을 한 조각씩 떼어 입에 넣으며 '성문종합영어'와 '수학의 정석'을 붙들고 있었지만 학업은 고만고만했다. 술에 취하면 '사랑과 평화'의 노래를 불러 제끼고, 나중에 사법고시를 패스해 변호사를 하겠다던 이종사촌은 모의고사를 망치더니 거제도에 내려가 용접공이 되거나 원양어선을 탈거라고 떠들어 댔다. 나 역시 대학입시를 엎고 정음사판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전권이나 독파하기로 결심하고 풋풋한 눈썹을 밀고 토방에 들어갔다. 가을이 오니, 온갖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른다. 내가 열아홉일 때 대수학과 절대음감은 언감생심이었으니 출세에는 관심이 없었다. 상업고교를 졸업하고 시중 은행에 들어가 창구 직원으로 일하다가 감리교회의 신자 아가씨와 눈이 맞아 조촐한 살림을 꾸리며 1남 2녀를 기르며 살고 싶었다. 내가 진학한 상업고교에는 소설을 잘 쓰는 최재섭과 제홍만이 선배로 버티고 있었다. 한때 문학도였던 이들을 보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제홍만은 소설은 진작에 작파했다고 했다. 그는 날마다 영어단어 50개씩을 외우며 전액 장학금을 받더니 졸업식에서 국무총리상을 받고 곧 외환은행에 특채되었다. 훗날 그가 우수행원에 뽑혀 마드리드지점에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재섭은 서울시청 앞 백남빌딩에 있던 대한항공을 다녔는데, 그는 자주 가난한 후배와 함께 명동의 카페 떼아뜨르에 가서 연극을 보았다. 명지대학 야간부 영문학과를 마치고 미국 유학을 떠난 그를 다시 만난 건 16년 뒤 뉴욕에서다. 1991년이던가? 미국 굴지의 보험회사 부사장으로 입신양명의 꿈을 이룬 그가 뉴욕에서 발행되는 미주 한국일보에 난 내 인터뷰 기사를 보고 연락을 해왔던 것이다. 인생에는 꽃향기와 행운, 실패와 배신, 비탈과 암초가 따른다. 나는 들국화 더미 같이 살뜰하게 살진 못했다. 스물넷에 신춘문예에 당선한 뒤 시집 몇 권을 내고, 출판사 창업을 했다. 감리교회를 다니지는 않았으나 참한 처녀와 결혼도 하고, 여뀌같이 어여쁜 아들 둘과 딸 하나를 식솔로 건사하며 가장 노릇을 해냈다. 그 일을 믿기 힘들 정도로 능란하게 해냈다. 뒤늦게 수영을 배우고 근육을 키웠다. 아이들 셋은 백화점 문화센터의 수영 강습반에서 생존수영을 배우게 했다. 서울 하계올림픽 마라톤 경주가 열리던 날 경주마처럼 질주하던 선수들의 역주와 잠실 주경기장의 폐회식 세레모니를 보며 웬일인지 암담해진 채 불안에 떨었다. 나는 새벽에 들이닥친 검찰 수사관들과의 임의 동행 뒤 서울검찰청 특수2부에서 피의자 심문조서를 작성하고, 저녁 8시쯤 영장이 떨어져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언제나 나쁜 일들은 한꺼번에 닥친다. 가정도 사업도 다 깨졌다. 주말마다 가족과의 외식으로 한일관 불고기를 사 먹고, 서울 연고구단의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을 데리고 잠실야구장엘 가려던 꿈도, 휴일마다 목욕탕에 가서 어린 아들에게 등을 맡겨 밀려던 꿈도 찰나의 꿈인 듯 사라졌다. 아, 고요한 시절이 오기란 아예 글러버린 것인가? 나는 무슨 새를 쏘아서 떨어뜨렸던가? 새는 돌이 되어 저렇게 책상 위에서 흐느끼던가? 낙엽을 밟고 오는 계절이여, 가을 저녁 횃대에 올라가 길게 울던 수탉이여. 나는 계좌이체로 자동 납부하던 녹색당 당비를 더는 내지 않으련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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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31 15:29

거리의 선생님들

딸아이가 초등 저학년이던 시절, 학부모 공개수업일에 찾아간 나는 잊을 수 없는 하루를 보냈다. 도심공동화의 충격을 제일 먼저 맞이한 오래된 마을, 한 학년에 4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였다. 기억나는건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동작들이다. 선생님이 무지개~ 라고 나직하게 말하면 아이들은 즉시 책상을 반원형으로 새로 늘어놓고 앉았다. 여섯명~ 하면 다시 착착 움직여 여섯 명씩 그룹을 지어 마주 앉고, 전체~ 하면 스무 명이 칠판을 바라보는 평범한 대형으로 돌아갔다. 선생님의 손끝이나 몸짓, 입모양까지 집중해서 바라보다가 아주 작은 힌트만으로도 기다렸다는 듯 번개같이 지시를 수행하는 아이들은 첨단 동작인식 AI를 탑재한 고성능 기기 같아 보였다. 선생님의 손짓만으로 요술같이 움직이던 아이들 속에는 발달지체아동도 있었는데, 그 아이의 얼굴에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환한 미소와 열정이 일렁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그만 아이들을 황홀하게 지켜보며 뿌듯한 하루를 보냈다. 그것은 툭하면 폐교 위기가 닥쳐오는 작고 오래된 학교에서, 평범한 수업참관일에 보았던 풍경이었다. 그 요술같은 풍경을 만들어낸 사람은 퇴직을 몇년 앞둔, 덩치가 자그마한 담임선생님이었다. 그분은 교감이나 교장 처럼 높은 자리에 오르지 않고 평교사로 정년퇴임하셨는데, 그분을 담임선생님으로 오래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동네 아이들과 부모들이 누렸던 작은 축복이었다. 물론, 내가 학생으로 지냈을 때나 학부모가 되어 다시 학교에 돌아갔을 때나, 학교에서 늘 좋은 일만 겪었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12년의 학창시절을 요약해보자면 축복같은 선생님을 한두 분, 그냥 평범한 선생님을 열 명쯤 만났고, 악몽같은 선생님을 한두 번쯤 겪었다. 결론적으로 그냥 평범한 정규분포 곡선이었는데, 일상의 대화에서는 악몽같은 선생님 이야기가 화제에 훨씬 더 많이 올랐다. 행복과 감사는 고통과 분노에 비하면 훨씬 잔잔한 감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되고 나서 전국의 학교를 찾아다니며 강연을 하게 되었다. 내가 등단할 때만 해도 학교에서 작가를 초청해 강연하는 프로그램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학교는 판에 박은 수업을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려는 방향으로 꾸준히 진화해왔고 그 덕분에 나는 방방곡곡의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작가로서의 내 삶에 가장 축복같은 시간이었다. 내가 찾아가는 학교들은 유명하거나 특별한 학교들이 아니다. 아파트 단지에, 오래된 마을에, 혹은 전교생이 스무명도 채 안되는, 여러 가지 형태의 평범한 학교들이다. 그곳에는 평범한 아이들과 평범한 선생님들이 있다. 나를 한번 초대하려면 선생님들은 여러 장의 기안서와 행정서류를 작성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토론이나 연극 같은 연계 활동을 시키고, 감상문과 보고서를 받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시켜줄 생각 하나로 선생님들은 돈도 되지 않고 일만 많은 행사를 자청해서 벌인다. 모든 선생님들이 다 축복같은 존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장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많은 선생님들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열정으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무더위가 기승이던 8월, 오래 전 내가 폐교 반대 시위를 하러 갔던 교육청 앞에는 난데없는 근조 화환이 무더기로 섰다. 거리에는 검은 옷을 입은 선생님들이 뙤약볕 속에 주말마다 시위를 했다. 시위대에 익숙한 광화문 주민이지만 낯선 풍경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내가 겪은 선생님들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검은 옷의 시위대 속에는 축복같은, 평범한, 악몽같은 선생님들이 정규분포의 비율로 섞여 있었을 것이다. 집단 속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섞여 있는 것은 자연의 순리다. 선생님은 생활인으로서 누구나 일찍 퇴근하고 싶었고 궂은 일은 피하고 싶었고 하는 일에 비해서 급여가 박하다는 한탄을 했을 것이다. 우리와 똑같다. 학교는 지금보다 더 좋은 직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 곁에 좋은 선생님들이 남는다. /심윤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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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24 15:22

‘대통령 각하! 만족하십니까?’

결국 대통령이 나선다.시작은 휴가 중인 대통령의 “냉장과 냉동 탑차를 무제한 공급하라”는 지시다.이상민 장관은 “대통령께서 정부차원 대책 마련을 지시했고 정부 비상대책반이 구성됐다”며 "대통령님의 긴급지시로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서 모든 행사운영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대통령의 지시는 이어진다.“식사의 질과 양을 즉시 개선하고,”“관광프로그램 추가하라.”마지막으로 대통령은 “폐영식 후에도 출국할 때까지 숙식과 교통 문화체험 등을 지원하라”고 말한다. 김현숙 장관은 “위기대응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시점”으로 해석한다.정부가 온 역량을 집중한 ‘반전의 카드’ K팝 콘서트가 구원투수로 대한민국의 체면을 지킨다.대통령의 혜안과 용단이 실패의 입구에 들어선 위기의 국제행사를 살려낸 셈이다. 잼버리조직위원회는 마지막 행사를 위해 부처와 공공기관에서 “자원봉사자” 1000여 명을 모집했다고 한다.기재부는 콘서트 지원을 위해 공공기관과 국책금융기관 등에 인력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은 ‘자원봉사자 모집’이라 쓰고 ‘동원’으로 읽는다.기재부는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자이고 국책금융기관의 최대주주다.“이게 정상적인 정부냐?”라는 공무원노조에 장관은 “공무원들이 동원된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의 디테일 지시’로 시작된 ‘K 잼버리’의 속살은 ‘국가총동원령시대로의 복귀’라는 우려와 맞닿는다.민관자원을 징발하는 “국가주의적 행태”라는 비판도 있다.사적영역의 시민사회가 권력과 관료의 동원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기업들은 “생수 148만병 얼음 5만톤 아이스크림 28만개”를 보냈다.간이화장실 설치와 지원인력 그리고 조기퇴영 후 숙소제공도 그들의 몫이었다. “잼버리 대회 참여자 모두에게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게 한국인의 마음이다.‘K 잼버리’는 ‘강요된 자발적 협조’에 기꺼이 함께 해준 민간과 기업을 중심을 한 국민적 잼버리 구하기 동참의 결과다. “권위주의적 과거로의 회귀”라는 걱정은 그 동안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보여준 모습과 말들에 겹쳐진다.결과물은 “존재감이 없다.”는 대표와 “대통령실 대변인”이 되었다는 집권당에 대한 평가다.미래의 시대변화와 대통령 인식의 불화는 권력에 불리한 일이다. “잼버리 졸속행정 왜 피해를 K리그가”라고 쓰인 축구팬의 손팻말 시위와 “공공기관 인원을 차출해 강제 봉사활동을 하란다.그것도 금요일 저녁에,시대가 어느 때인데 자원봉사 명목으로 무급노동 시키는지”라는 온라인 게시판 글은 ‘지금이 88 올림픽 시대가 아님’을 웅변한다. “우선은 대회를 잘 치러야 한다.”는 선의로 BTS와 축구경기장 사용을 언급했다가 팬들의 반발에 “왜 우리가 희생을 당해야 되냐 잘못은 정부와 지자체가 해 놓고 왜 우리한테 그러느냐 이런 항변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며 “괴리”를 인정한 성일종·이용호 의원의 말도 시대변화를 상징한다. 대통령이 나서야 움직이는 공공영역의 “보신주의”는 넘어서야 한다.총선승리와 성공하는 권력을 향한 대통령의 시대와의 화해도 필요하다.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시스템 복원이다.사람이 아니라 절차와 제도중심이며 책임과 권한의 재량이 인정되어야 한다.둘째,현장과 지역중심이다.대회 전부터 전북 지역언론은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투명하지도 않고 검증의 자신감도 없었으니 “델타구역 벗어나면 취재협조가 어렵다.”는 경고까지 등장한다. “주인의식을 갖고 현장을 챙긴 공무원이 더 많았다면”하고 탄식한다지만 앞으로도 ‘깨알지시의 대통령’이 계속 된다면 곤란하다.총리와 장관의 브리핑이 “대통령께서 지시한대로”로 시작하는 것은 자율과 책임의 부재다.그들이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게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한국정부의 문제해결능력에 놀랐다.”는 말을 전하는 총리와 “무난하게 마무리 되었다.”는 대통령의 언급으로 ‘쌍팔년도식 동원’을 가릴 수는 없다.“아미(Army)”와 “수호신(FC 서울 팬클럽)”은 ‘2023년식 금모으기 운동’을 단호히 거부한다.내년 총선에서 윤 대통령이 마주해야할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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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17 17:34

인생의 태풍을 만났을 때

기억해 보면 어느 한해도 태풍 없이 지나간 여름은 없었다. 한해 평균 3개 정도의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한다고 하니, 태풍은 반드시 만나고 겪어내야 할 한반도의 숙명 같은 것이었다. 인생에도 피할 수 없는 태풍이 있다. <맹자>는 인생의 여정에서 만나는 태풍의 이름을 ‘우환(憂患)’이라고 하였다.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만드는 근심(憂)과 고통(患)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태풍이라는 것이다. 하늘이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할 때 옵션으로 넣어 준 것이 우환이다. 부귀한 자는 부귀한 자로서의 우환을 만나야 하며, 빈천한 자는 빈천한 자로서의 우환을 겪어야 한다. 맹자는 인생에서 만나는 우환의 태풍은 3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고풍(苦風)이다. 마음(心)과 뜻(志)을 고통스럽게(苦) 하는 정신적인 우환이다. 고풍의 우환은 돈과 지위를 모두 가진 사람도 피해갈 수 없는 우환이다. 고풍의 발생원인은 다양하다. 바라던 기대와 다른 결과에 실망하여 올 수도 있고, 관계의 파탄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어느 날 허무함과 고독감을 느끼면서 발생하기도 하고, 아무 이유 없이 다가오기도 한다. 두 번째는 노풍(勞風)이다. 근육(筋)과 뼈(骨)를 수고롭게(勞) 하는 육체적 우환이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만나는 우환이다. 그토록 원하던 목표를 이루고 성공하였지만 노풍을 만나 한 순간 무너지기도 한다. 평소에 건강관리에 소홀하여 오기도 하고, 육체가 보내는 이상 신호를 감지하지 못하고 방치하여 발생하기도 한다. 과도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다고도 하니, 육체적 우환의 발생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 번째는 아풍(餓風)이다. 몸(體)과 피부(膚)를 굶주리게(餓) 하는 재정적 우환이다. 인생에 가장 자주 만나는 견뎌내기 힘든 우환이다. 사람을 잘못 만나 가진 돈을 모두 날리기도 하고, 잘못된 투자로 원금도 회수하지 못하여 발생하기도 한다. 때로는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만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다. 일반 사람이 아풍을 만나면 자유를 잃고 속박당하기도 한다. 맹자는 인생에서 만나는 우환의 태풍을 정신(mentality), 육체(health), 재정(finance) 세 가지로 정리하면서 반전의 한마디를 던진다. 어쩌면 인생에서 만나는 태풍 덕분에 더욱 생명력을 얻을 수 있고, 더 높은 단계의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환 없이 사는 인생이 반드시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논리다. ‘네가 만나는 근심과 고통이 너를 살릴 것이오(生於憂患, 생어우환), 네가 만나는 편안함과 즐거움이 너를 죽일 것이다(死於安樂, 사어안락).’ 그렇다 태풍은 인생에 틈을 만들고, 공기를 불어넣어 더욱 큰 생명 에너지 만들어낸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더욱 단단해진다. 폭풍이 몰고 온 바람은 대기를 순환시키고, 폭우가 내린 곳은 대지를 더욱 굳게 만든다. 태풍을 대비하고 겪어내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성장하고, 성숙하고, 성찰하게 된다. 인생의 태풍은 하늘이 인간을 더욱 크게 만들고자 하는 축복일 수 있다는 것이 맹자의 인생 태풍 이론이다. 사마천은 궁형(宮刑)이라는 예상치 못한 태풍을 만나 <사기(史記)>를 완성하였고, 베토벤은 귀가 안 들리는 태풍을 만나 악성(樂聖)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전쟁과 몇 번의 재정 위기를 견뎌내며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수 있었다. 태풍은 당장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지만, 견뎌만 낸다면 축복이 되고 전설이 된다. 오늘 대한민국은 각종 태풍들을 만나고 있다. 길거리 흉기 난동, 세계대회의 부실한 준비와 처리, 학부형들의 교권침해에 따른 교사들의 아픔 같은 사회적 태풍에서부터, 강대국들의 무역전쟁에 따른 여파, 북한의 군사적 긴장, 불확실한 세계경제 같은 대외적 태풍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루도 그냥 지나가는 날이 없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태풍도 형성, 발달, 극성, 소멸이라는 주기가 있다는 것이다. 작게는 5일, 길어야 10일이면 결국 태풍은 소멸된다. 인생에서 만나는 태풍도 역시 수명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지나간다. 문제는 태풍을 통해 더욱 강해지느냐, 아니면 태풍의 눈에 빠져 태풍과 함께 사라지느냐이다. 태풍 카눈이 몰고 온 빗물이 눈물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올여름에도 태풍을 기꺼이 만난다. / 박재희(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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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10 17:39

한여름의 책읽기

여름엔 바닷가나 숲속 휴양지에서 알베르 카뮈의 '결혼·여름',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 같은 책을 읽기에 좋다. 이 목록은 내가 젊은 날에 읽고 여름마다 되풀이해서 읽는 책이다. 범벅하게 말하자면 독서란 일탈, 해방, 몽상, 그리고 무위를 통해 누리는 한 조각의 행복이다.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는 '세 글자로 불리는 사람'에서 '책들은 고요해진 언어의 대양에서 일어나는 파도 같은 것이다. 책들은 포말처럼 솟구친다'(파스칼 키냐르, 74쪽)라고 쓴다. 도처에 흩어져 있는 독자들은 언어의 대양에서 일어나는 파도에 온몸을 맡기고 몽상의 바다를 떠도는 걸 좋아한다. 한여름 울어대는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나무 그늘 아래서 책 읽는 일이다. 내 경우는 그렇다. 나는 동물 사체에 맹금류들이 두 날개를 펼친 채 달려들어 맹렬하게 살을 찢고 삼키듯이 책을 읽어왔다. 조류가 제 발톱과 부리로 먹잇감을 물고 뜯으며 삼키는 일과 독서는 마치 쌍둥이처럼 닮았다. 우리는 맹금류가 동물 사체를 뜯고 삼켜서 영양분을 취하듯이 책에서 정신의 자양분과 타인의 욕망과 살아감의 기쁨을 얻는다. 잘 알다시피 책은 각종 문자로 이루어진다. 문자는 점토판, 피피루스, 양피지, 죽간, 종이 위에 제 형태를 드러낸다. 책은 각종 문자의 집합이고, 문자는 의미를 기호화한 것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문자를 도약대 삼아 의미계로 솟구친다. 문맹인은 의미 없음에 방치된 채로 음지의 세계에 떠돈다. 반면 의미의 빛으로 넘치는 책을 손에 쥐고 읽는 자는 어둠에서 나와 빛의 세계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며 나아가는 셈이다. 독자란 잠들지 않고 깨어서 홀로 책을 읽는 사람들이다. 독서가들이란 대개 빛을 훔치는 밤의 도둑이거나 항상 깨어 있다는 뜻에서 밤의 야경꾼들이다. 밤은 낮을 훔치고, 새는 곡식의 낱알을 훔친다. 달은 발광체가 아니지만 태양의 빛을 훔쳐 은빛 반사광으로 지상을 물들인다. 책 읽기는 그 본질에서 무언가를 훔치는 행위다. 책을 읽는 자들은 지식을 훔치고, 타인의 욕망을 훔치며, 일찍이 제가 누리지 못한 꿈과 동경을 훔친다. 훔친다는 것은 타인의 벽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들어가 제 존재를 숨긴 채 무언가를 '먹고, 삼키는'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애써 책을 읽을 이유가 없다. 독서 욕망은 제 밖의 세계를 내 안으로 들인다는 점에서 도둑질이고 탐식이다. 책 읽기는 한가로운 소일거리, 고독한 취향, 무한한 기쁨을 누리는 일을 넘어서서 탈취이자 폭식이며, 무용한 기쁨의 도취다. '인간은 기원과 본능의 영향권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문화, 포착, 함께-포착, 타인의 포식, 학습의 와중에서 태어난다. 그러므로 선재(先在)하는 세계를 훔쳐야만 한다'(파스칼 키냐르, 앞의 책, 61쪽).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아버지의 정신과 어머니가 주는 살 뿐만 아니라 다른 무엇도 필요한 법이다. 독서는 우리가 온전한 사람으로 빚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을 얻는 한 수단이다. 독서란 우리 보다 앞서 존재하는 세계에서 필요한 그 무언가를 훔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독서를 고요한 몰입의 행위라고 착각한다. 아니다. 책이 굶주린 자의 앞에 놓인 먹잇감인 한에서 독서란 책을 난폭하게 움켜잡고 책의 정수를 흡혈하는 행위다. 독서에 몰입한 자의 손과 입은 금세 피로 물 든다. 그들은 책을 찢고 삼킨 뒤에야 폭식의 충만감 속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활짝 펼친 책을 본 적이 있는가? 잘 살펴보면 그것은 두 날개를 펼친 새와 같다. 누군가 읽고 있는 책은 양 날개를 펼친 채 공중을 나는 새다. 새들은 공중을 난다. 독서란 정신의 저공비행, 몰입의 현기증 속에서 나는 일, 상상의 비행(飛行)이다. 책에서 눈을 떼지 말고 그 문면을 따라가라! 마치 새가 어디론가 데려가듯이 책도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그런 뜻에서 독서는 항해이고, 여행이며, 모험이다. 책은 먼저 우리를 독서의 고독 속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러나 한 번은 살고 싶은 미지의 세계, 현실 저 너머 가상의 은신처로 데려간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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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3 16:19

폭우 속에서

딸이 미취학 아동이었을 때니까, 어언 15년 전 일이다. 고만고만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던 친구들이 뭉쳐서 모처럼 여름 여행을 떠났다. 숙소에서 꼬마들이 물놀이를 하는 동안 엄마들은 수박을 쪼개리라! 아이들이 첨벙거리며 놀 수 있는 야트막한 계곡이 있는 펜션을 예약하고 우리는 한 계절의 추억을 장만할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그날 물놀이를 하지 못했다. 폭우 뒤끝이라서 아이들이 첨벙거릴 예정이었던 야트막한 계곡은 지옥같은 굉음을 내는 폭포가 되어 있었다.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물놀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쉽사리 버리지 못했다. 우리는 그 계곡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오래 서성였다. 여름 내내 이 날을 기다렸는데! 비싼 돈을 주고 이 곳을 예약했는데! 바위에 앉아서 발을 담그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늘이 개어서 햇빛마저 슬쩍슬쩍 오가는데, 우리에게 설마 정말로 TV에서 보듯 무서운 일이 벌어질까? 돌이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할 만큼 위태로운 장면이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내가 계곡물에 살짝 발을 담그자마자 슬리퍼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사라졌다. 구명조끼를 챙겨입은 서너 명의 꼬마들을 돌려세운 것은 내가 슬리퍼 한짝을 희생시킨 다음이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저렴한 것으로 일어날 뻔했던 비극을 틀어막았으니 우리는 그 날 행운의 돌봄을 받았다. 하지만 철없었던 나는 슬리퍼 한짝을 분실한 것마저도 꽤나 아깝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어리석다는 말조차 아까울 지경이었다. 이전까지 익숙했던 ‘집중호우’나 ‘호우경보’라는 표현을 넘어선 ‘극한호우’라는 표현을 처음 듣고 어리둥절했던 그 주에 나는 4개의 강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첫 강연 장소였던 서울 동작구로 향하면서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빨리 이해한 1인이 되었다. 폭우 속에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나는 정말로 산사태가 일어나지나 않을지 두려워했다. 그날 동작구에는 극한호우의 경보기준을 가뿐히 뛰어넘는 시간당 76.5mm의 집중호우가 내렸다. 본격 극한호우가 한반도를 강타했던 기간에, 나는 호우의 중심지였던 대전과 전북을 오가며 나머지 3개의 강연을 소화했다. 가족의 여름여행 삼아서 맛있는 것을 잔뜩 먹고 오자고 신나게 세웠던 모든 계획들을 떠올릴 틈도 없이, 엄청난 폭우로 눈앞이 보이지도 않았다. 한가롭게 강변 산책로에 서있었을 나무들은 싯누런 강물에 퐁당 잠겼고 저지대 통로의 통행을 제한해 교통혼란이 어마어마했다. 나는 바짝바짝 피가 마르는 기분으로,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연신 ‘늦을 것 같다’는 문자를 날렸다. 어딜 가나 물웅덩이와 손상된 도로와 교통통제와 앞유리창이 보이지 않는 폭우의 연속이었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골목마다 통행금지를 알리는 노란 가로대가 서있었고 차를 돌이킬 때마다 강연장소까지 도착 예정 시간은 큰 폭으로 푹푹 늘어났다. 폭우와 정체에 시달리는 도로에서 남편과 나는 다시 신혼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열정적으로 싸웠다. 남편은 이런 폭우 속에 무리하게 운전해서 가느니 조금 비가 멎을 때까지 휴게소나 식당에서 멈추어 기다리는게 낫겠다고 했고, 나는 정체된 장마전선 속에서 비가 멎을 리 없으니 지금 힘들더라도 달려서 비구름을 벗어나는게 낫겠다고 주장했다. 위험과 안전에 대한 여러 상식과 의견들이 있었으나 당장 우리 눈앞에 놓인 것은 ‘지금 저 길로 들어설 것인가’의 선택, 또 선택, 또다시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무엇이 옳은지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중에 아무도 없었다. 또다시 행운의 도움을 받아, 폭우가 내내 함께한 이틀 동안 마지막 강연에 10분 늦은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무사히 일정을 마쳤다. 그 10분의 지연도 청중들의 너그러움으로 넉넉히 이해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전히 앞창을 두드리는 극한 호우 속에서 비극을 알리는 뉴스를 들었다. 지난 3일간 우리를 돌려세운 수많은 노란 가로대들이 떠올랐고, 내가 행운이라 여겼던 많은 것들이 실은 많은 사람들의 묵묵한 보살핌이었음을 새삼 실감했다. 그 보살핌의 연결고리가 빠진 틈에 기어이 비극은 일어나고 말았다.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겪으신 유가족들에게 애통한 마음을 전한다. /심윤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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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27 15:35

윤 대통령만 할 수 있는 일

내년 총선은 누가 승리할까? 국민의힘? 민주당? 아니면 제3당? ‘한 달이 1년’이라는 한국정치에서 7월 20일 현재 총선을 265일 남긴 시점에서 총선승부를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내년 총선결과를 예상한다면 세 가지다.국민의힘 승리 또는 민주당 승리 그리고 과반의석을 차지한 정당 없이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엇비슷한 수의 의석을 가진 경우다. 국민의힘 또는 민주당 승리는 한 정당이 국회 내 과반의석을 확보한 경우다. 물론 진행 중인 제3당 시도가 성공할 수도 있다.이 때 ‘성공’은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을 제외한 제3정당이 1당이 되거나 또는 독자적으로 과반의석을 가졌다는 게 아니다.만약 그렇다면 성공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한국정치의 혁명적 상황’이다.그만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제3당 입장에서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엇비슷한 수의 의석을 차지하고 제3당이 캐스팅 보트가 되는 경우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기대다.이조차도 거대양당의 원심력이 강력하게 작용하면서 동시에 제3당이 유권자 요구와 불만의 분출구 역할을 담당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국민의힘 또는 민주당의 총선승리다.먼저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민주당의 전국선거 3연패의 반전이다.총선승리의 민주당은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 승리를 향한 반(反)윤석열 행보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민주당 총선승리가 윤석열 정권의 국민적 심판이다. 윤석열 정권은 임기 내내 여소야대로 사실상 ‘식물정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이 때 대통령과 의회의 대립은 격화될 것이고 더 이상 대통령 권력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여당은 지방선거와 대선 그리고 다음 총선을 위해 독자행보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말이 좋아 독자행보지 대통령과 거리두기 또는 대통령 버리기다.여권은 각자도생의 시대다. 국민의힘이 승리한다면 전국선거 3연승으로 “정권교체는 완성된다.”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연승을 통한 중앙과 지방권력의 교체가 총선승리의 국회권력 교체로 완결된다. 국민의힘은 선거승리를 자신하는 모습이다.대통령 임기 3년차지만 취임기준으로 보면 임기 만 2년에 한 달 정도 모자라는 시점의 총선이라는 ‘정치적 운’도 따른다.최소한 투표참여가 높은 전통적 지지층의 결집으로 총선승리가 가능하다는 판단으로 보인다.민주당은 “카르텔과 반국가세력”에 점점 갇히고 이재명 체제의 총선이냐를 둘러싼 내부분열은 악화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국민의힘 총선승리는 한국정치의 진화를 가져올까? 여야대립은 협치로 바뀌고 정치는 국민 삶의 개선을 선도하는 본연 역할을 할까?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여대야소 또한 극단적 여야대립의 다른 모습이었다.누가 먼저인지는 모르지만 거대야당은 야당을 무시하고 소수야당은 장외투쟁에 나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국민의힘 여대야소는 대통령 마음대로 여당 마음대로를 가능하게 할까? 우선 윤석열 권력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비정상’의 문재인 정부를 정상화시키는 것은 권력기대의 최소한’이다.총선에서는 정상화이후 어떤 어젠다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정치개혁부터 시작인데 진정성도 고민도 없어 보인다. 결국 총선 후 여소야대는 말할 것도 없고 여대야소에서도 여론의 지지와 (최소한의) 야당인정과 묵인은 필수적이다.여소야대든 여대야소든 ‘대립과 교착의 정치’에서 벗어나려는 윤석열 권력의 결단이 요구되는 대목이다.제도로 해결할 수 없는 정치의 영역이고 대통령만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치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인격화된 권력’을 넘어 국민 삶의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민주화된 권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회 다수당의 총리 복수추천’을 총선공약으로 제시하는 게 출발이다. 기득권 포기와 공익과 공동체 우선, 총선승리의 단기적 비법이고, ‘대한민국 정치 업그레이드의 선도자,’ 퇴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지켜주는 장기적 안전판이 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만 할 수 있는 일이다! /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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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20 15:48

농단(壟斷)과 천장부(賤丈夫)

정보가 권력이다. 정보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정보는 돈이 되고 이익이 된다. 주식 시장에서 기업의 정확한 정보는 투자 성공이 되고, 부동산 시장에서 개발 정보는 곧바로 돈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보다 앞서 정보를 얻으려고 하고, 정보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힘을 이용한다. <손자병법>에서는 정보를 전쟁의 승패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정의한다. 병사를 모집하고, 훈련하고, 물자를 모아 전쟁 준비를 하는데 적의 정보를 모르면 결국 전쟁의 패배로 이어지니,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돈과 지위를 아끼지 말라고 강조한다. 용간(用間)은 정보원의 활용이다. 인적정보를 통해 확실한 정보를 얻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고급 정보는 일반 사람의 눈높이로는 절대로 알 수 없다. 일반 사람들의 시선과 다른 높은 곳에서 보아야 비로소 남들이 못 보는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고 힘쓰는 것이다. 옛날 시장에서 고급 정보를 얻으려는 남자가 있었다. 어디에서 어떤 물건을 파는지를 정확히 알면 엄청난 이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옛날 시장은 현물거래였기 때문에, 시장에 물건을 거래하러 나온 사람들이 가지고 온 현물의 공급과 수요로 가격이 결정되었다. 쌀이 넘쳐나면 쌀 가격은 내려갔고, 직물이 모자라면 직물 가격이 올라갔다. 이런 정보를 알려면 높은 곳에서 시장 전체를 보아야 했다. 그래서 그 남자는 시장 전체를 볼 수 있는 언덕(壟, 농)에 올라갔다. 그 언덕은 깎아(斷, 단) 세운 듯 높은 곳이었다. 농단(壟斷)에 올라가니 시장 어느 곳에서 어떤 물건 얼마나 거래되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이 정보를 이용하여 싼 곳에서 물건을 사다가 비싼 곳에 가서 팔아 엄청난 이득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남자를 천한 남자((賤丈夫, 천장부)라고 부르며 멸시하였다. 농단(壟斷)에 올라 부당이익을 얻었다는 이유였다. 농단도 재주라고 하면 재주다. 왜 너는 높은 언덕에 올라가서 시장 전체를 보고 정보를 얻을 생각을 하지 않냐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언덕은 아무나 올라가는 곳이 아니다. 힘이 있어야 하고, 부당 거래에 대해 옳다고 주장할 수 있는 뻔뻔함이 있어야 한다. 시장을 관리하는 감독관은 이런 농단의 폐해를 근절하고자 세금을 거두었다. 이득을 얻은 만큼 국가에서 세금으로 징수하여 이득을 못 본 사람에게 나누어주고자 함이었다. 시장에 대한 공권력의 첫 개입이다. <맹자>에 나오는 농단(壟斷)에 관한 이야기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농단을 통한 이윤 추구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정보를 이용해서 거래 이윤을 얻고, 선물거래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큰 죄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거대 기업이 가진 고급 정보와 거대 자본으로 중소기업의 이익을 빼앗아 가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권력과 결탁한 농단이다. 국정이든 사법이든, 자리를 이용한 정보를 이용하여 이익을 추구한다면 응징과 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고급 정보를 가진 공직자에게 주식이나 부동산 거래를 제한하는 것은 농단의 의혹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함이다. 높은 자리에서 얻은 정보를 통해 사적인 이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두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고, 참외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애초부터 의심받을 상황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를 가진 국가의 공직자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이 높은 언덕에 올라 자신의 이익을 찾는 농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농단의 결과는 천한 사람이라는 칭호와 몰락이다. 비록 주머니에 돈은 가득 채웠지만 천민자본가라는 비난과 함께 비운의 결말을 맞이한다. 농단의 결말, 모두 알고 있지만 미리 알고 피하는 사람은 매우 드문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박재희(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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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13 15:26

쇠를 달구고 망치질 하며 노래하라

사람들은 원고료와 인세만으로 생계를 꾸리는 나를 가리켜 '전업작가'라고 한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책상 앞에 어깨를 구부리고 앉아 글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인생의 3분의2를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쓰며 보내고 나니 알겠다. 제 고독과 마주하며 무언가를 쓰는 일은 보람도 없지 않지만 꽤나 건조한 작업이라는 것을! 작가의 일이란 '꿈, 낳기, 창작'이다. 그 일은 '우리를 통해 존재하고자 하는 것들'에게 몸을 주어 존재하게 한다. 현실에서 당장의 쓸모는 없을지라도 작가라는 직업을 갖고 사는 동안 가끔 몸을 쓰는 직업을 가졌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 하고 묻곤 했다. 국가재해보험국이란 직장에서 근무하며 퇴근한 뒤에는 자기 방에서 타자기로 소설을 썼던 카프카가 그랬듯이 나는 언젠가 '가구를 만드는 장인'이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종일 나무에서 나오는 향내를 맡으로 일하고 싶다는 꿈은 이룰 수가 없었다. 내 아버지의 직업은 목수였다. 그는 솜씨가 좋은 목수였지만 몸을 쓰는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크지 않았다. 현장에서 몸을 쓰며 땀 흘리는 일보다는 '책상에서 펜대를 굴리며' 살기를 갈망하던 아버지는 한 직장에서 진득하니 견디기보다는 여러 번 전직을 하며 옮겨 다녔다. 그렇게 옮겨 다녔건만 아버지는 만족감을 찾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실직으로 빈둥거리며 보낸 세월이 더 길었다. 일하지 않고 무위도식 하는 자는 무기력하고 비루해 보였다. 내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여러 사업을 구상하고 '허황한 일확천금'을 꿈꾸는 아버지의 속내를 이해하거나 용납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이 온전하도록 떠받치는 것은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 꽃을 피우는 구근식물, 벌과 나비들, 땅에 뿌리를 박고 광합성 작용을 하는 나무들, 그리고 제 자리를 지키며 일하는 자들의 성실함이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대장간을 짓고, 쇠를 달구고 망치질 하며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평화롭게 굴러간다. 씨를 뿌리고 파종하는 농부들, 새벽 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 노동자들, 빵을 굽는 제빵사들,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 간호사와 의사들, 우편물을 분류하고 배달하는 우체국 직원들이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제 일터에서 헌신하는 노동자가 없다면 우리 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더 조악하고 누추해질 게 분명하다. '저기 언덕 꼭대기에 서서/소리치지 말라./물론 당신이 하는 말은/옳다, 너무 옳아서/그것을 말하는 자체가/소음이다./언덕 속으로 들어가라./그곳에 당신의 대장간을 지어라./그곳에 풀무를 세우고/그곳에서 쇠를 달구고/망치질 하며 노래하라./우리가 그 노래를 들을 것이다./그 노래를 듣고/당신이 어디 있는지 알 것이다'.(올라브 H. 하우게, '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지 말라')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이 공연히 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는 일이 되지 않기 위하여 애써야 한다. 그 외침이 의미의 생산이 아니라 소음을 만드는 공허한 짓인 탓이다. 나는 자주 묻는다. 내가 하는 일이 고슴도치나 양치식물이 세상에 기여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가? 한 줄의 시, 한 줄의 산문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힘을 보태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무용한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인들이란 얼마나 하염없는 존재들인가! 시인 윤동주는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에 제 얼굴을 비춰 보고 그 욕됨에 부끄러워하며,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라고 다짐한다. 그런 싯구를 적는 청년은 외래의 피침으로 국권을 잃고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에서 야만의 시대를 견뎌야 했던 그 누구보다도 정직한 사람이었다. 생명을 가진 것들은 모두 빛의 격려 속에서 먹고 살기 위하여 일한다. 박새와 곤줄박이, 닭과 오리, 벌과 개미, 저 혼자 돋는 열무 싹과 민들레도 먹이를 구하며 생명의 동력을 얻는다. 우리가 하는 정직한 일들은 생계의 방편이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도정이며, 삶의 기쁨과 의미를 만드는 근간이다. 한 사람의 가치는 그가 하는 일에 대한 평판에서 나온다. 일하지 않는 자는 어떤 평판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시인은 쇠를 달구고 망치질 하며 노래하는 사람이 되라고 썼을 테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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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06 17:01

100세 시대

어느 선거일에, 나는 투표소 앞 긴 줄 안에 서 있었다. 하루 종일 줄은 길었고, 코로나의 끝물이라서 아직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남들처럼 스마트폰의 도움을 받아 지루함을 이기며 서있었는데, 문득 투표 진행을 돕는 참관인이 도움을 청했다. “107세 유권자가 오셨습니다. 차례를 양보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 나 아닌 누구라도 이런 양보를 거절할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표정과 몸짓으로 기꺼움을 최대한 드러내보이며, 신성한 투표권을 행사하러 오신 107세 유권자를 기다렸다. 잠시 후 도착한 어르신을 보고 나는 내가 뻔하고 고루한 선입관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그분이 들것이나 휠체어의 도움을 받아 오실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분은 아주 세련된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않았고 지팡이조차 짚지 않았다. 다소 천천히 걷기는 했지만 앞선 안내가 없었다면 나는 그분이 80대쯤 되셨으려니 짐작했을 것이다. 아니 아무런 짐작조차 하지 않고 그분에게 어떤 관심이나 주의조차 기울이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그분은 107이라는 깜짝 놀랄 숫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보이는 평범한 노인 중 하나일 뿐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인 1991년 6월,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가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는 87이라는 숫자가 지금의 107처럼 들렸다. 107세 유권자와 나의 할머니를 겹쳐 떠올리면서 나는 그 사이 사람의 수명과 노년의 활력수명이 함께 길어진 것을 실감했다. 누구나 칭송할만큼 장수하고 세상을 떠나신 나의 할머니는 107세 유권자처럼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운신에 어려움이 없었다. “오금이 붙으면 안뒤야.” 할머니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바지런히 움직였다. 오금이 붙지 않기 위해서 할머니는 눈이오나 비가오나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왔고 쑤시는 어깨를 풀기 위해 관절을 돌렸다. 지금 생각하니 손녀에게 어깨나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셔도 좋았을 텐데,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몸을 누구에게 의탁하지 않았다. “움적거리면 뒤야.” 할머니는 속상한 일이 있어도 불평하거나 한탄하는 법이 없었다. 나쁜 일이 있어도 우울하고 어두운 표정을 한나절 이상 길게 가져가는 일도 없었다. 한숨 한번 쉬고 나서 몸을 움적거리는 것으로 할머니는 노년에 닥쳐오는 어려움을 모두 이겨냈다. 씩씩하게 약수터에 오르고 쑤시는 어깨를 혼자서 풀던 할머니는 단 하루도 몸져 눕지 않고 어느 날 잠자듯 세상을 떠나셨다. 조촐하게 욕심이 없던 할머니가 거두신 생의 마지막 승리는 그 고요하고 갑작스러운 떠나심이었다. 아직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지 않았던 어느 유월의 맑은 날에, 나와 부모님, 그리고 세분 고모들은 할머니의 산소에 성묘를 갔다. 사랑이 많으셨던 우리 할머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 할 수 있다. 산소로 향하는 야트막한 오솔길을 걸으며 나는 마음 속으로 덧셈을 해보았다. 큰고모 96세, 둘째고모 93세, 아버지 89세, 막내고모 84세, 엄마 82세. 할머니의 직계자손 4남매의 나이를 더하면 362, 엄마까지 더하면 444년이라는 놀라운 시간이 조용히 내 앞을 흘러가고 있었다. 큰고모가 가벼운 지팡이를 짚었을 뿐 모두 씩씩하게 잘 걸었다. 몇 년전 둘째고모는 허리를 다치며 보행이 어려워졌다. 고모가 열심히 재활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솔직히 속으로 비관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둘째고모는 끝내 회복해 지팡이 없이 꼿꼿하게 언덕길을 올랐다. 간이 의자 두 개를 챙겼는데 고모들이 계시니 아버지께는 순서가 돌아오지 않았다. 여기서 90세 이하는 모두 젊은이에 해당할 뿐이었다. 그늘에서 쉬시라고 해도 고모들은 좀 움직이는게 좋겠다며 꼬챙이를 들고 산소 주변의 잡초를 뽑았다. 이제는 당신보다 연세가 높아진 딸아들 들에게, 땅 속에서 할머니는 다시 한번 조용히 속삭이셨을지도 모른다. 오금이 붙으면 안뒤야, 움적거리면 뒤야. 그분의 자녀들은 최선을 다해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살았다. 각자에게 주어진 노년의 시간이 얼만큼이 될지 모르지만, 결국 내가 해야할 일은 그것으로 수렴될 것이다. 오금이 붙지 않게 바지런히 움직이고, 속상한 일들은 몸을 움적거려 날려보내면 된다. /심윤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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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29 16:39

윤석열의 정치적 운(運)

아직은 모른다.유권자들은 좀 더 지켜보겠다는 뜻이다.시간도 충분하다.6월 22일 현재 293일 남은 2024년 총선여론의 흐름이다. 작년 12월부터 최근까지 ‘지원론 vs. 심판론’ 또는 ‘국민의힘 vs. 민주당 지지’의 여론조사는 모두 28개. ‘심판론 또는 민주당 지지’가 25승 1무 2패로 압도적으로 앞선다.‘국정 지원론 또는 국민의 힘 지지’는 평균 40.0%,‘정권 심판론(견제론) 또는 민주당 지지’는 평균 48.4%다. ‘국정 지원론 또는 국민의 힘 지지’의 여론은 최저 36%였는데 작년 12월 초와 4월 초였다.최고는 46%로 5월 말이었다.‘정권 심판론(견제론) 또는 민주당 지지’의 여론은 최저 43%로 5월 초였고 최고는 56.2%로 대통령 당선 1주년 때였다. 28개의 여론조사는 ‘지원론 vs. 심판론’ 또는 ‘국민의힘 vs. 민주당 지지’의 다양한 설문을 시간적 순서로 나열한 것이다.따라서 장점은 여론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것이고 단점은 서로 다른 설문의 조사를 동일한 것처럼 간주하는 위험성이다. 그래서 동일 또는 유사한 설문을 사용한 일정한 간격의 조사들을 본다.28개의 여론조사 중 9개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그 중 하나는 5월 초부터 2주 간격으로 2회 조사했다.이에 따르면 5월 초순 ‘지원론 vs. 심판론은 44% vs. 43%’였다가 5월 하순 46%로 동률을 이룬다.가장 최근의 조사로 현재여론의 흐름을 반영한다. 일정 간격의 동일 또는 유사설문의 조사 9개 중 7개는 작년 12월부터 6월 초까지 걸쳐있다.이에 따르면 ‘국정 지원론’은 ‘36% 44% 42% 36% 37% 39% 그리고 37%’로 이어지고,‘정권 심판론’은 ‘49% 50% 44% 50% 49% 51% 그리고 49%’다.전제척으로 보면 28개 여론조사의 평균(40% vs. 48%)으로 수렴하는 양상이다. 28개의 여론조사 중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중도 또는 무당층의 선택이다.28개의 조사 중 27개가 이들을 따로 뽑아 분석했는데 중도 또는 무당층의 ‘지원론 또는 국민의힘 지지 vs. 심판론 또는 민주당 지지’의 여론은 평균 ‘33% vs. 54%’였다.‘지원론’은 최저17%를 기록하기도 했고 4월 초순이었던 이 때 ‘심판론’은 69%로 최고를 기록한다.27개의 조사 중 24번 ‘심판론’이 50%를 넘는다. 따라서 오늘 현재 내년 총선을 향한 민심은 첫째,오차범위 내외로 ‘심판론 또는 민주당 지지’의 여론이 상대적으로 높다.둘째,선거의 향방을 결정할 중도 또는 무당층은 ‘심판론 또는 민주당 지지’로 좀 더 기울어져 있다. 총선은 야권의 시간으로 시작한다.민주당은 ‘김은경 혁신위’를 시작했지만 “혁신위가 성공한 사례는 없다.”고 한다.많은 사람들이 갓 출범한 민주당 혁신위를 비대위로 가는 징검다리로 보는 이유다.친명도 비명도 그리고 반명의 향후 민주당의 총선체제를 향한 공통분모는 비대위다. 예를 들어 “김부겸 비대위”가 2016년 김종인 비대위처럼 “이해찬과 정청래 공천탈락”부터 시작한다면 ‘심판론 또는 민주당 지지’는 더 높아질 것이다.물론 그 출발은 ‘왜 5년 만에 40%대 지지율의 퇴임 대통령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내놨느냐?’에 대한 반성이고 이게 김은경 혁신위의 첫 과제다. 임기 만 2년의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을 향한 유권자의 심사는 복잡하다.‘제대로 일 할 기회를 줘야한다.’면서도 ‘권력의 오만과 독선은 막아야 한다.’는 필요가 교차한다.하는 걸 보면 마뜩치 않다는 게 지금의 여론이지만 ‘남은 임기를 생각하면 이렇게 둘 수도 없지 않냐’는 게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 지점이 바로 윤 대통령 정치적 행운(?)의 출발점이다.두 명의 대통령밖에 누리지 못한 ‘타이밍의 포르투나’다.임기 만 2년 안에 총선을 치룬 3명의 대통령 중 두 명이 압승했다. ‘진짜 실력의 비르투나’는 승부의 쐐기를 박는다.출발은 ‘총선이후 대통령 권력이 강화된 경우도 대통령의 친위세력이 대통령의 충성을 더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도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받아들이는 것이다.윤석열의 정치적 운,이제 마지막 시험대에 오른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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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22 16:08

명령 거부권, 군명유소불수(君命有所不受)

인사권자의 부당한 지시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단호하게 거부할 것인가? 부당한 지시나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용납한다면 그 결과는 참혹하다. 작게는 기업과 사회가 부패하고, 크게는 나라가 망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인사권자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부당한 지시라면 과감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조직을 살리고, 미래의 더 높은 차원의 조직을 만드는 일이다. <손자병법>에는 전쟁터에 나간 장군이 부당한 지시를 내리는 군주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고 한다. 전방의 현장 상황도 모르고 후방에 앉아 측근들의 편협한 의견을 듣고 잘못된 명령을 내리는 군주에 대하여 현장의 장군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엄한 임금의 명령이라도(君命, 군명), 따르지 않을 경우가 있다(有所不受., 유소불수).’ 이순신 장군은 무모하게 돌격하라는 선조의 명령을 거부하고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하였다. 나의 생존을 위해서 나라와 백성의 생명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가 전쟁에서 패하고, 나라가 망하는 이유는 후방 군주의 지나친 간섭과 부당한 지시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기>에는 제(齊)나라 대장군 사마양저(司馬穰苴)가 왕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쟁터에 군대가 출정하던 날, 왕이 총애하는 신하 장고(張賈)라는 사람이 군율을 어기고 제멋대로 전횡을 일삼았다. 사마양저는 군율에 따라 참형을 명령하였다. 왕이 이 사실을 알고 사자를 보내 측근인 장고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였으나 양저는 아무리 지엄한 임금의 명령이라고 부당한 명령이라면 거부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장고의 목을 베었다. 그는 군율을 어긴 제나라 왕의 측근 장고의 죄를 물어 처형하면서 유명한 말을 남긴다. ‘장군은 전장에서 지엄한 임금의 명령이라도 거부할 수 있다. 임무를 맡아 전쟁터에 나선 장군이 잊어야 할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장군은 임명된 날에(將受命之日, 장수명지일) 자신의 집안일을 잊어버려야 한다(忘其家. 망기가). 둘째 전장에서 군법을 한 번 정하게 되면(臨軍約束. 임군약속) 그때부터 부모도 잊어버려야 한다(忘其親, 망기친). 셋째 전쟁터에서 북을 치며 적진을 향해 돌격할 때는(鼓之急, 고지급), 자신의 몸조차 잊어버려야 한다(忘其身).’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조국과 임무에 충성한다는 사마양저 장군의 철학이 담겨 있는 말이다.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부대를 이끌었던 양저는 병사들의 강한 지지를 얻게 되었고, 사기가 충천한 제나라 군대는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고 승리한 군대가 되어 제나라 수도로 돌아왔다. 윗사람의 부당한 지시는 거부할 수 있다는 철학은 머리로는 이해하기 쉬우나 실행에 옮기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직장에서 상사의 지시가 부당하다고 생각할 때, 과감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공권력에 대하여 부당한 권력의 행사에 반기를 드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친구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충고하면 친구와 이별을 맞이할 수 있고, 직장상사의 부당함을 거부하면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부당한 권력에 대하여 저항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옳은 일에 대하여 자신의 자리와 목숨을 걸고 지켜 온 사람들에 의하여 더욱 발전하였으니, 내가 비록 어떤 이유로 옳은 길을 선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자리를 걸고 옳은 길을 선택한 사람에 대하여 비난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부당함에 눈을 감고 침묵할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경우도 있고, 소신을 가지고 거부하며 저항해야 할 때도 있다. 어느 결정이든 다 이유가 있고, 논리가 있으니 어느 한 편에서 함부로 비난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때로는 목숨을 걸고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인생에서 후회할 일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박재희 (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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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15 15:06

나는 뭔가를 찾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요

앵두나무에 박새 몇 마리가 포르르 날아와 앉고, 불두화는 꽃을 흐드러지게 피웠다. 오늘 아침 앵두나무 가지에 매달린 앵두는 붉게 익어가는 중이다. 새벽에 어린 고양이는 내 품에 안겨 아기처럼 가르랑거린다. 어린 고양이의 털에 코를 묻고 있으면 기분 좋은 햇빛 냄새가 난다. 나는 날마다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는 날씨 속에서 산다. 해가 떴다 지고, 어둠 속에서 달은 야위었다가 차오르기를 반복하고, 어린 고양이는 반드시 성체 고양이로 자라나는 그런 합법칙의 세계에서! 남해 물결은 섬과 섬 사이에서 잠잠하고, 항구마다 정박한 배들은 묶여 있다. 동해에는 돌고래와 귀신고래들이 새끼를 데리고 떼 지어 유영을 한다. 먼 데서 달려온 파도는 해변에 포말을 남기며 사라지고, 깨끗한 하늘엔 적멸보궁 같은 흰구름이 피어오르는데, 꿀벌들은 지상에서 날개를 붕붕거리며 꿀과 꽃가루를 채집하고, 복숭아나무 가지에서는 열매들이 최선을 다해 여문다. 지난가을 어머니가 담근 고추장에는 순한 단맛이 들고, 장을 가득 채운 항아리들은 반짝거린다. 간밤엔 별똥별 몇 개가 동에서 서로 횡선을 그으며 흘러가고, 올해 처음 목격한 반딧불이의 군무는 신기했다. 실내 등을 다 끄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초록빛 인광을 반짝이며 떠다니는 반딧불이를 자정 너머까지 보다 잠들었다. 새벽에 깨어나 책상머리에 앉아 몇 년 째 쓰던 책의 마지막 줄을 쓰고 마침표를 찍었다. 나를 누르던 압박감은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낙관은 이스트를 낳은 빵처럼 부푼다. 오늘 아침은 혈압은 높지도 낮지도 않고, 당뇨 수치는 정상이다. 연체료가 붙은 미납 세금고지서가 날아온 적은 없고, 두루마리 휴지도 몇 달은 쓸 만큼 넉넉하며, 오늘 외출할 때 신고 나갈 구두는 새 구두다. 주방에서는 딸아이가 콧노래를 부르며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텃밭에서 딴 토마토를 믹서기에 갈아 주스를 만드는 중이다.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 한때 노름에 빠진 적이 있다. 외적 우연에 판돈을 걸지만 내 예측은 번번이 빗나갔다. 푼돈을 털리고 분노와 허탈감을 안고 귀가하곤 했다. 시 한 줄 쓰지 못한 채 노름으로 허송세월하는 나 스스로가 한심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튿날 역으로 나가 기차를 타고 예정에 없던 여행을 떠났다. 일제 강점기 때 지은 건물들이 유적처럼 남은 남쪽의 항구도시였다. 그 도시에 지인은 없었다. 나는 며칠 동안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어느 날 숙박업소에 들어 불을 끄고 잠 들려는 순간 옆방에서 라디오라도 틀었을까, 빌리 조엘(Billy Joel)이 부르는 'The River of Drems'이라는 아름다운 노래가 들려왔다. 눈을 감은 채 가만히 노래를 듣다가, 아, 참 좋다, 라고 나는 감탄했다. 빌리 조엘은 밤중에 강가를 서성이며, 나는 뭔가를 찾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요, 라고 노래했다. 나 역시 낯선 고장에서 무얼 찾아 헤매는 것일까. 무언가가 내 생의 한 찰나를 흔들고 지나갔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아무도 아닙니다. 한 목소리가 내게 물음을 던지고, 나는 정직하게 대답을 했다. 이튿날 아침 나는 낯선 여관에서 나와 항구의 한 식당에서 조반을 먹고 돌아왔다. 내가 찾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인생의 진실이었을까? 하지만 나는 그게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 막막하던 시절에서 서른 해 쯤 흘렀다. 그리고 이 여름 아침에 나는 다시 빌리 조엘의 노래를 듣는다. 빌리 조엘은 여전히 난 뭔가를 찾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요, 라고 노래한다. 나는 찾으려던 인생의 진실을 찾았을까? 나는 젊음을 탕진하고 속절없이 나이를 먹으며 늙어간다. 세면대에서 물을 쓴 뒤에는 수도꼭지를 잘 잠그고, 밤하늘을 가린 지붕 아래서 일찍 잠자리에 든다. 나는 더 이상 사랑의 번뇌에 빠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직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인생의 진실은 무엇인지를 잘 모른 채 살아간다. 고작 이 여름날에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에 몇 마디 할 수 있을 뿐이다. 저녁답 마당귀에서 꽃망울을 터뜨린 작약꽃, 무릎에 올라와 가르랑거리는 어린 고양이, 다리미 열기가 남은 면 셔츠의 감촉, 얼음덩이 몇 개를 띄운 토마토주스, 그리고 빌리 조엘의 노래! 서른 해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왜 빌리 조엘의 노래를 들으면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걸까.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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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08 15:35

나의 아름다운 단골가게들

도서관에서 북토크 행사를 했던 어느날이었다. 행사를 온라인 라이브 송출한다는 것까지도 괜찮았는데, 내가 실시간으로 방송을 확인할 수 있도록 내 앞에 태블릿 하나를 놓아준 것이었다. 태블릿을 치워달라고 말할 찬스를 놓친 채 얼떨결에 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비슷한 일을 겪었을 때 스트레스를 받을 사람이 나 말고도 여럿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북토크를 하는 것과, 내가 북토크 하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지켜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나는 내 모습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모니터의 화면을 보면서 내내 생각하게 된다. 말할 때 왜 입이 비뚤어지지? 머리는 왜 저렇지? 멍청하게 웃는 저 촌스러운 여자는 도대체 누구지? 다행히 그 날 나는 그런 괴로운 생각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았다. 모니터를 보면서 몇 번 구부러진 허리를 바르게 펴기는 했지만 그건 주최측이 내 앞에 태블릿을 놓아준 의도와 아주 부합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모니터 속의 내 모습을 헐뜯고 경멸하지 않으며 오로지 대화에 집중했다. 나는 평화롭게 행사를 마쳤다. 이 일은 나에게 뜻하지 않은 큰 기쁨을 주어,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일을 흐뭇하게 되새겼다. 작가 경력 20년만에 드디어 나에게도 경륜이나 자신감이라고 할만한 것이 생긴 것이다. 나는 이제 모니터 속의 내 모습에도 당황하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베테랑이 되었다. 어쩌면 흔히 ‘나 자신과의 화해’라고 말하는 일을 해낸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한계와 현실을 인정하고 담담하고 편안한 눈으로 나 자신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좋아하는 단골 옷가게에서 봄 세일을 한다는 안내 문자가 왔을 때 나는 갑자기 이날의 북토크를 번개같이 다시 떠올렸다. 그날의 일들이 빠른 속도로 머리 속에서 재생되면서, 이날 모니터 속의 내 모습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했던 생각들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그때 나는 북토크를 하는 중간중간 이런 생각들을 했다. 린넨 재킷을 사길 잘했어. 역시 독자들을 만날 때는 재킷이 좋아. 예의를 차린 듯하면서도 린넨 소재가 주는 어떤 자유로움이 있거든. 한여름이 되기 전까지는 잘 입을 수 있겠다. 앞머리가 많이 길었네. 펌 한지 오래 되었는데 아직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아서 다행이야. 다음주 쯤에는 미용실에 가야지... 이리하여 나는 지난 10년간 나에게 일어난 숨은 변화와 그 결과를 갑자기 통찰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인터뷰에서라도 나에게 지난 10년간 일어난 중요한 일들을 꼽아보라고 물었을 때 내가 미용실이나 옷가게를 떠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높은 확률로, 내가 겪었던 가족간의 일들, 작가로서의 이력, 읽었던 책들이나 사회적인 현상들과 관련된 대답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내 인생에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변화를 이룬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내 단골 미용실 원장님이나 옷가게 사장님 같은 현실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나는 마음에 드는 브랜드를 찾아 내 옷장의 거의 90% 이상을 채웠다. 처음에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입했지만 이제는 온라인으로 사도 이 브랜드 옷들의 분위기와 재질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꽤 오랜 시간동안 이 브랜드 제품들을 고루 사보면서 어떤 디자인과 분위기가 나와 잘 어울리는지 상당한 데이터가 축적되었으므로 어떤 옷을 사든지 만족도가 높고 오래 입는 편이다. 그리고 감사한 미용사님. 이분 덕분에 나는 더 이상 미용실에 가는 일을 괴로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곳에서 내 의견 따위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그저 그분께 머리를 맡기고 잠시 눈을 감고 있으면 알아서 필요한 일들을 슥슥 다 해주신다. 오랫동안 나에게 미용실과 백화점은 치과만큼이나 가기 싫은 곳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고, 상당한 돈을 쓰고도 그 결과는 항상 미심쩍었다. 쇼핑과 스타일링에 대한 자괴감은 자존감마저 깎아먹어 공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에 불필요한 위축감이 들게 했다. 하지만 나의 이 아름다운 단골가게들은 내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켰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구매하고, 그 결과에 만족하고, 자신감과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바꾸어 생각하면 일상 속에서 대단치 않은 일들로 얼굴을 마주하는 우리는 서로에게 이렇게 보이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서로 감사하고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 /심윤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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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01 17:29

위선과 무능 vs. 쇄신과 미래의 유능

최근 대통령과 정당 지지율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다. 작년 5월 10일 대통령 취임부터 최근까지 실시된 여론조사는 모두 455개로 이 중 면접조사 139개 ARS 조사 316개다.주간 단위로 적게는 2개 많게는 19개의 여론조사가 실시되었다. 평균적으로 한 주에 8개 내외의 여론조사가 있었다. 가장 많은 여론조사는 대통령 취임 1주년 때였다. 대통령 지지율은 4월 중순부터 상승추세를 보인다. 지난 5주 동안 실시된 여론조사는 모두 54개였는데,이 기간 동안 대통령 지지율은 평균 32.1% 34.2% 34.7% 37.4% 37.9%를 기록한다. 반면 대통령 부정평가는 63.7% 62.8% 61.2% 59.1% 59%로 변화한다. 주별 평균으로 본 대통령 긍정평가가 한 달 이상 계속해서 상승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윤석열 정부출범 후 처음이다. 다른 조사도 비슷한 양상인데 갤럽조사는 3주,리얼미터 조사로는 4주 연속 상승을 기록한다. 이제 40%를 목전에 둔 대통령 지지율의 다음 목표는 40% 중반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선승리의 중도보수연합 재건이 중요하다. 대통령의 행보가 출발점인데 윤석열 대통령의 선택이 주목된다. 정당 지지율은 같은 기간 동안 민주당 하락세의 약보합, 국민의힘 상승세의 약보합 양상이다. 주별 평균으로 보면 지난 한 달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계속 앞섰지만 그 격차는 점점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크게는 양당 지지율이 10% 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양당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로 좁아진다. 양당 지지율의 격차가 줄어든다는 것은 양당의 지지율의 흐름이 다르다는 말이기도 하다. 민주당의 최고 지지율은 한 달 전이고 국민의힘 최고 지지율은 가장 최근이다. 민주당 주별 평균 지지율은 이 때 최저 37.7% 최고 42.7%를 기록한다. 국민의힘 주별 평균 지지율은 최저 33.7% 최고 36%를 기록한다. 5.18에서 5.23까지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시간이다. ‘광주에서 봉하마을로’ 이어지며 지지율 상승까지는 아니더라도 민주당이 최소한 여론과 관심의 초점이 되는 기간이다. 그럼에도 민주당 지지율은 지난 한 달 동안 하락세였고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윤 정부출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지지율이 하락한다. 추락하는 민주당 지지율은 연속된 구조적 위기의 당연한 결과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의 리더십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데 여기에 ‘송영길의 전통과 구태의 관행’ 돈 봉투 파문에 이어 ‘김남국의 신기술 코인’파동이 이어진다. 엎친데 덮친 격이다. 여당에 비해 잘하는 것은 고사하고 잘못하지만 않아도 지지를 잃지는 않는데 스스로 자초한 위기다. 특히 김남국 파문은 ‘윤미향-양정숙-김홍걸-오거돈-박원순-노영민-김상조’로 이어진 위선 시리즈의 끝판왕일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모습이다. 김남국 사태는 지금 시작으로 그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당 위선 시리즈’의 가장 앞에는 조국이 있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상승세의 약보합인 것은 그들이 무엇을 잘한 결과는 아니다. 굳이 해석한다면 최근 대통령의 외교성과에 기댄 부산물의 지지율 상승세다. ‘김재원과 태영호 징계’이후 국민의힘은 여론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야당은 실수하지 않으면 되지만 여당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잘해야 한다. 그래야 골든 크로스가 가능하다. 지금 여당은 무능의 다른 말이다. 국민의힘은 지금 내년 총선을 향한 조용한 준비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다. 벌써부터 영남 일부지역에서는 몇몇 다선의 물갈이와 이들을 대체하게 될 “검사출신 공천”설이 횡행 한단다. 어느 정도의 과장과 오해도 있겠지만 국민의힘은 ‘윤석열의 이름으로 윤석열의 중간심판 선거’를 지향한다. 지금부터 내년 총선까지 양당은 ‘새로움의 도전 앞’에 선다. 누가 먼저‘New 민주당’ 또는 ‘새로운 국민의힘’으로 국민에게 다가가느냐의 시험대다. 양당 모두 누가 더 과거로 되돌아가느냐의 경쟁에서 벗어나야 할 시기다. 이제 더 이상 서로가 서로의 등불과 희망이 되는 ‘반사이익의 정치’는 국민들이 용남하지 않는다. 누가 위선과 무능의 정치에서 벗어나 쇄신과 미래의 유능한 정치를 보여주느냐가 문제다! 국민의 힘? 민주당? 아니면 제3당? /박명호(동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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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25 16:55

가짜뉴스 대처법,  필찰(必察)

진실과 거짓이 구별되지 않는 시대다. 인터넷에는 근거 없는 거짓정보가 진실인양 포장되어 자리 잡고 있고, SNS에는 그럴듯한 거짓이 설득력 있게 넘쳐흐르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신 차리고 보지 않으면 도저히 분간할 수 없는 모호(模糊)의 시대다. 올해 7월에는 3일 빼놓고 비가 내린다는 근거 없는 외국 기상예보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혼란에 빠트리기도 한다. 누가 무슨 외제 고급차를 타고 다닌다며 거짓 비방하여 법원의 처벌을 받기도 하고, 미국 발 금융위기가 곧 한국으로 불어 닥쳐 상상할 수 없는 금융위기가 올 것이란 어설픈 예측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뉴스를 타고 다닌다. 자극적이어야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선정적이어야 사람들의 마음을 잡는다. 바야흐로 가짜뉴스가 진실을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입과 혀는(口舌者, 구설자), 근심을 불러일으키는 재앙의 문이오(禍患之門, 화환지문), 내 몸을 찍어내는 도끼다(滅身之斧, 멸신지부).’ 아무런 근거도 없이 함부로 말을 하면, 그 말이 도끼가 되어 나를 찍기도 하고, 내 인생에 큰 근심이 될 수도 있으니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 된다는 <명심보감>의 오래된 당부다. 말 한마디라도 신중하게 할 것이며, 확실한 근거가 없는 말은 더더욱 조심하여 함부로 내뱉어서는 안 된다. 거짓은 아무런 여과 없이 확대 재생산되어 물결처럼 퍼져나간다. 내가 만든 거짓이 아니라도 퍼 나르는 것만 해도 벌을 받아야 한다. 거짓을 진실인양 둔갑시키고, 떠들고, 나르고, 믿는 사람 모두 그 죄를 감당할 준비를 해야 한다. 길에서 어깨 너머로 들은 이야기를 길에서 함부로 말하고 다니는 사람을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고 <논어>에서 말한다.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것을 그저 길거리에서 듣고 길거리에서 함부로 말해버리는 것(道聽塗說, 도청도설)이야말로 자신의 인격을 포기하는 일(德之棄, 덕지기)이다.’ 길거리 통신사를 함부로 세워 마음대로 사건을 부풀리기도 하고, 왜곡시켜 진실이 실종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공자의 경고다. 공자는 ‘도청도설(道聽塗說)’의 폐해에 대해 언급하면서 가짜뉴스에 속지 말고 주체적으로 모든 것을 살펴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모두 옳다고 이야기해도(衆人好之, 중인호지), 반드시 직접 살펴서 판단하고(必察焉, 필찰언), 모든 사람이 그르다고 해도(衆人惡之, 중인오지), 반드시 직접 살펴서 확인한 후 결정해야 한다(必察焉, 필찰언).’ 모든 사람이 옳다고 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니다. 반대로 모든 사람이 그르다고 하는 것이 반드시 그른 것이 아니다. 진실은 부풀어지기도 하고, 왜곡되기 때문이다. 공자가 살던 시대에도 가짜뉴스가 있어 멀쩡한 사람을 악인으로 만들기도 하고, 악인을 착한 사람으로 둔갑시키기도 했던 것 같다. 오로지 믿을 것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왜곡된 대중의 의견에 휩쓸려 본질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가짜뉴스가 판치는 요즘 시대를 탈진실의 시대라고 한다. 진실은 존재하지 않고, 의도된 거짓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정말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분간하기조차 힘든 혼란한 시대다. 거짓을 퍼뜨려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근거 없는 이야기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표를 얻으려는 사람들, 사람들의 이목을 끌려고 근거 없는 사실을 떠벌리는 사람들, 할 일 없이 남의 일에 끼어들어 생사람 잡는 사람들, 자신의 인격을 포기하고 타인에게 고통을 안기는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반드시 직접 살펴 판단하라(必察)! 이것만이 가짜 뉴스와 결별하고 진실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다. /박재희(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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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18 16:41

썩는 것은 축복이다!

태양은 공중에 떠 있고 바람이 불어와 나뭇가지를 낭창낭창 흔든다. 벌써 짙어진 녹색 나뭇잎들은 기름 바른 듯 반짝이는데, 나도 모르게 불쑥, '볕 좋고 바람 좋고, 참 좋은 계절이다' 하며 감탄을 한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죽고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인생의 길흉화복을 두루 겪고 인생을 알 만큼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나는 이 물음에 답을 할 수가 없다. 아무리 궁리해도 이 물음은 불가해하기 짝이 없다. 인류는 오랫동안 불사에의 소망을 품고 살아왔다. 하지만 회춘이나 죽지 않는 소망은 가망없는 짓이다. 인간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죽음을 맞는다. 아버지는 십여 년 전에 돌아가셨다. 땅속에 매장된 시신은 부패하고 원소로 해체되어 사라졌을 테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살아서 무병장수를 꿈꾸었을지도 모를 그들은 결국 흙에서 묻힌 채로 썩어 분해되었을 테다. 생명 활동을 마치고 사라진 존재들, 시신이 썩어서 존재 이전으로 돌아간 존재들은 덧없고 애잔하다. 어렸을 때부터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한 가지 의문은 '신은 왜 결국 무로 돌아갈 존재를 창조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토록 생생한 본성과 감각, 지성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가? 적정 온도에서 방치해 둔 음식물은 부패한다. 음식물은 흐물흐물 문드러지고 악취를 뿜어내며 썩는다. 실온 보관한 떡이 쉬어 곰팡이가 슬었을 때 어린 나는 얼마나 억울하고 슬펐던지. 주방의 부패한 음식들은 식중독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서둘러 이것을 쓰레기로 분리하고 처리한다. 음식물만이 부패하는 건 아니다. 쓸모를 다 한 것들, 즉 고양이나 쥐 같은 동물 사체, 낙엽, 배설물, 옷, 가죽 제품, 종이 등이 다 썩는다. 쇠조차도 녹이 슬고 썩어 부스러진다. 썩는 것은 동식물과 쓸모를 다한 것들이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운명이다. 부패는 죽은 것들이 분해되는 전 과정을 아우른다. 이것은 형질 변용이고 소멸이며 다른 한편으로 생성이기도 하다. 부패와 생성은 하나로 포개지는데, 이는 지구 생명이 순환하고 번성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생태학에서 구더기, 미생물, 세균류들은 죽은 것들의 자연의 분해자다. 이것들은 썩은 것은 먹어치우며 유기물이나 무기물로 쪼개서 식물들의 영양분으로 만든다. 미생물이나 곤충 같은 땅의 분해자들은 죽은 것들을 재사용할 수 있게 얼마나 부지런히 가공해내는지. 잘 썩는 것들이야말로 지구 생명을 이롭게 한다. 플라스틱 같이 썩지 않는 것은 미세한 조각으로 쪼개질 뿐 썩지 않는다. 썩지 않는 쓰레기의 처리는 인류 최대의 고민거리다. 이를테면 미세 플라스틱은 땅과 해양을 오염시킨다. 이것들은 먹거리와 함께 우리 몸에 들어와 위해를 가하는 원인 물질이다. 썩는 것들로 지구 생명은 번성한다. 이를테면 퇴비 재료는 썩은 식물들로 땅으로 돌아가서 토양을 살리는 영양분으로 탈바꿈한다. 반대로 썩지 않는 것들은 지구의 영구적 골칫거리이고 재앙으로 남을 뿐이다. 우리의 세계가 분해 세계와 분해에 저항하는 세계로 나뉘어져 있다. 살아 있는 것들에게 부패와 분해는 궁극의 운명이다. 죽은 것들을 부패와 분해로 되돌리는 능력을 기반으로 자연계는 순환을 이어간다. 부패라는 과정이 없다면 뭇 생명은 대를 이어 살아갈 수가 없다. 일부러 찾아서 읽은 생명 과학자인 후지하라 다쓰시는 '분해의 철학'에서 "부패 기능이 약화되면 먹이 사슬의 기반이 약화되고 이 기반이 약화됨으로써 사슬의 연결이 이완된다. 그리하여 흙이나 바다로부터 주방을 경유하여 인간의 입에 다다르는 음식이 저급화되거나 그 양이 감소되어 기아를 낳는다"라는 구절에 무릎을 친다. 부패가 자연의 섭리라면, 부패에 저항하는 것은 생명 본연의 몫이다. 부패의 기능 속에서 생명 순환의 원리가 작동한다. 모든 생명체는 부패와 분해에 저항하는 세계 속에서 그것을 유지하고 보호하며 생육하고 번성하다가 제 생명 정보를 고스란히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부패한 뒤 무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자연의 섭리다. 그러니 죽고 사는 것은 이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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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11 15:22

양심불량한 비서

챗gpt라는 것이 처음으로 나타나 세계를 강타했을 때 나는 마침 새 소설을 쓰고 있던 중이었다. 챗gpt가 훌륭한 시나 소설, 에세이를 쉽게 써낸다는 경험담들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내심 심란했던 것을 부인하지 않겠다. 인공지능에 의해 제일 먼저 사라질 직역이 예술이라니, 이럴줄이야! 지금이라도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하는 것인가? AI의 학습기능이란 것이 워낙 놀랍다보니 1년 뒤도 장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초기 기술이니까 아직은 내가 낫겠지 생각하고 일단 하던 일을 계속 하기로 했다. AI를 경쟁자가 아닌 비서로 여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작은 내 몫으로 하고, 소설에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한 자료 조사 작업을 AI에게 맡기면 괜찮은 협업이 될 것 같았다. AI에게 몇 가지 질문들을 던져보았다. 럭셔리 요트에 대해 알려줘. 고급 요트 브랜드는 뭐가 있지? 그 내부 인테리어는 어떻게 생겼어? 듣기좋게 묘사해 봐. 묻자마자 AI 비서는 거침없는 답변을 술술 쏟아냈지만 럭셔리 요트 브랜드에 대한 긴 보고서의 약 80%는 동어반복이었다. 'Azimut Yachts - 이탈리아에서 만든 럭셔리 요트 브랜드로, 1969년에 창립되었습니다. 다양한 크기와 스타일의 요트를 제공하며, 최신 기술과 디자인을 적용합니다'라는 대답에서 브랜드와 연도만 바뀐 것이 열 개쯤 생성되었다. 인테리어에 대해서도, 수준 높은 구매자의 취향에 부합하는 수준높은 공예와 기술력, 이태리 대리석과 고급 목재 등 고급 자재를 사용했고 침실, 주방, 영화관, 수영장, 휴식공간 등을 갖추었으며 안전에도 신경썼다는 식이었는데,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는 답변이었다. 그런 대답을 듣고있자니 성실한 조사따위는 전혀 하지 않고 이것저것 갖다붙여 아는척만 하는 양아치 비서의 '썰풀기'를 듣는 것 같은 격렬한 열받음을 느꼈다. 내 친구는 AI에게 의학 전문 지식을 물었는데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놀랍도록 화려한 새로운 학설과 논문 리스트를 얻어 들고 횡재한 기분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AI가 제공한 논문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그는 의문과 혼란에 빠졌다. AI가 소개한 논문을 실제 저널에서 찾을 수 없었고 저자 이름도 모두 낯설었다. "나는 이런 논문을 찾을 수 없는데? A라는 사람이 이런 학설을 주장한 게 확실해?" AI는 자기 대답이 확실하다, 보충하는 자료도 있다고 몇 번이나 장담하다가 갑자기 논문에 의거한 전문지식을 논하는 것은 자신에게 허락된 경계를 벗어나는 일이라서 더 이상 대답할 수 없다고 태세를 전환하더니 서둘러 대화를 종결해버렸다. 친구는 AI가 불러주었던 화려한 논문 리스트가 모두 거짓이었음을 확인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AI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저널에 가상의 학자가 기고한 가상의 논문 제목을 줄줄 불러주었던 것이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AI의 속성을 눈치채고 있다. 챗gpt에서 g는 generative,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그는 그의 방식으로 '생각해서' 답변을 '만들어낸다'. 이미 정해진 답을 반복하는 이전 AI보다 진보된 모델임이 분명하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대답에 대한 양심이나 성찰이 없는 존재다. 그의 이런 양심불량한 측면을 지적하고 조롱하는 수많은 검토가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그에게 "세종대왕이 안중근 의사를 암살한 이유는?"이라고 묻는다면, 그는 거침없는 대답을 생성할 것이다. 세종대왕이 안중근의 총명함과 용맹함을 믿고 그를 중용하였으나 차츰 그가 대북문제에 (대북문제라면 여진족? 북한?) 강경노선을 주장하여 왕명을 거역하고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결국 자객을 보내어 그를 암살할 수밖에 없었다는 식이다. 이 대답을 받아들고 나는 이 자가 광대무변한 지식을 갖추었다는 것이 과연 사실인가, 지식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이런 식이라면 그 지식의 가치는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합당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한편으로, 인간이 인공지능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능은 무엇인가 하는 무거운 질문에 뜻밖에 쉬운 대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양심과 성찰이라는 거창한 단어까지 가지 않더라도, 자신이 하는 말을 돌아보고,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현재 인류가 가진 최첨단 AI보다 나은 존재라고, 산뜻하게 말할 수 있다. /심윤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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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03 16:26

새로운 정치세력의 성공조건

분위기는 절정을 향해 가는 중 이다.무당파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4월에 실시된 12개 여론조사를 보면 무당파의 비중은 면접조사(4개) 기준으로 최대 31% 최소 29%다.지난주 5개 조사의 무당층은 최저 20% 최대 31%로 양당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작년 12월부터 지난주까지 내년총선의 성격을 묻는 조사는 모두 21개였는데 여당 심판론이 19승 1무 1패로 압도적이다.4월로 범위를 좁혀보면 정권 심판론이 50%를 넘긴 게 7번 중 5번이다.하지만 중도무당층은 정권 심판론에 힘을 실으면서도 민주당 지지로 바로 이동하진 않는다.‘돈봉투’파동 때문이다. 최근에는 국민의힘 지지층의 대통령 지지철회가 늘어나는 양상도 보인다.지난 주 갤럽조사에서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의힘 지지층은 68%인데 그 전주는 74%였다.반면 국힘 지지층의 대통령 반대는 19%에서 25%로 늘었다. 한마디로 중도무당층의 실망이다.그들은 한쪽의 ‘친윤’득세와 다른 한쪽이 ‘개딸’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는 모습을 외면한다.이상민 의원은 “지금이 제일 좋은 때다.양대정당이 이렇게 국민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는 때”라 하고 김종인 위원장은 “국민들 스스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본다. 이유는 분명하다.“보수 10년 진보10년을 얘기하는데 그 20년 동안 문제 해결된 게 하나도 없다.젊은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얘기한다.”며 “이런 정당에서 과연 새로운 미래를 향한 방안이 나올 수 있겠나? 현재 상태로 봐서 불가능하다.”는 게 김종인의 판단이다. 그래서 그는 “국민들 스스로 20년 동안 속아왔다고 생각하고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극도에 달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새로운 구상을 가지고 있다.”고 기대한다.이른바 ‘제3지대론 또는 제3정당론’으로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틀을 만들 수 있는 세력”이라며 금태섭 전 의원이 가장 먼저 물꼬를 텄다. 그렇다면 내년 총선에서 ‘국민들의 새로운 구상’을 받아낼 수 있는 제3당의 성공조건은 무엇일까? 첫째,인물중심의 정당에서 벗어나야 한다.멀게는 1995년 JP의 자유민주연합,가깝게는 2016년 안철수의 국민의당 사례에서 보듯 대선주자급 인물의 존재는 우리나라 제3당 출발의 필요조건이지만 동시에 실패의 시작이기도 했다.이제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 중심의 업그레이드된 제3당이어야 한다.그래야 지속 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다. 둘째,문제제기의 정치를 넘어 ‘의제별 문제해결능력의 정치 세력화’여야 한다.기존정당에 대한 반발심리와 정치적 불만은 제3당의 출발동력에 불과하다.이때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하는 데 도움 되는 현실적 정책대안의 제시능력이 필요하다. 최근 대학가에서는 ‘1000원의 아침밥’이 화제였다.학생이 1000원을 내고 농림부가 1000원을 보태고 나머지는 대학이 부담하는 사업이다.여야는 경쟁적으로 ‘1000원의 아침밥’을 확대하자는 입장이다.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정부의 지원 단가를 높여 학교부담을 줄여서 참여 학교가 더 확대되었으면 좋겠다.”면서 “점심 저녁도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한 술 더 뜬다.그는지원금과 지원대상을 늘려야 한다면서 “전국학교에 주자.”고 한다. 하지만 반응은 싸늘하다.사람들은 “내년 총선 앞두고 결국 혈세로 생색내는 것.”이라고 한다.청년들은 “아침밥 한 끼 먹고 힘낼 수야 있겠지만 영원히 나오는 밥은 아니다.같이 밥 먹고 치킨 먹는다고 젊은이들이 표를 던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청년들 마음 얻기가 더 힘들어 질 것 같다.”고 한다. 결국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먹거리를 마련해내는 능력’이 요필요하다.일자리 창출의 문제해결능력이다.민생경제만이 아니다.‘연금개혁 노동개혁 그리고 교육개혁의 3대 개혁’은 물론 공동체의 미래를 향한 정치개혁도 마찬가지다.선거제도 개편은 견제와 균형 그리고 분권의 시대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개혁의 출발점이다. 누가 누구와 함께 ‘국민들의 새로운 구상’의 실현을 위한 고통스럽지만 담대한 첫발을 시작할까? /박명호(동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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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27 17:26

괴력난신(怪力亂神) vs 상덕치인(常德治人)

“튀어야 시청률이 올라갑니다.” 방송국 PD가 인문고전 강의를 하던 필자에게 자주 하던 말이다. 처음 들어본, 상식으로 설명이 안 되는, 괴상하고 기이한 강의라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시청률을 높일 수 있다는 마케팅 논리다. 삭발을 하든, 기발한 복장을 하든, 기괴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든, 신비적이고 충동적인 논리로 말하든, 이 어느 한 가지라도 있어야 시청률이 올라갈 수 있다는 나름 대중을 분석하고 있다는 그 분야 전문가의 조언이다. 한마디로 평범하고 정상적인 언변으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없으니 이상하고 특별함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충고였다. 그러고 보니 세상이 온통 괴상하고 이상하고 특별한 것으로 가득하다. 먹는 즉시 효력이 발생하는 건강식품,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상품, 신비하고 오묘한 효능은 그런대로 들어줄만 하다. ‘마귀와 사탄이 들려서 그렇다(怪).’ ‘내 능력은 사람의 생사와 국가의 운명을 주관한다(力).’ ‘혼란의 세상이 다가왔다(亂).’ ‘하늘에서 벌을 내릴 것이다(神).’ 이 정도 되면 괴력난신(怪力亂神) 마케팅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고, 권력을 만들고, 왕국을 만드는 선동가이며 사기꾼이다. 예수님, 부처님 입장에서 보면 신을 모욕하고 능멸한 자로서 벌 받아야 할 대상이며 신성(神性)을 가장한 혹세무민(惑世誣民)의 목회자이다. 공자는 괴력난신을 경계하고 멀리하였다.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도 튀어야 팔리던 시대였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정상적이고 평범한 논리는 수요자인 귀족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없었다. 당시 왕들과 귀족들은 신들의 이야기와 비약의 논리를 선호하였다. 당대의 백가(百家)들은 온갖 특별하고 신비한 이야기로 유세하여 자신의 이익을 채우려 하였다. 공자 역시 귀족들의 지지를 받아 정치에 참여하여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고 싶었지만, 괴력난신으로 접근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세상을 속여서(欺世, 기세) 이름을 도둑질하지 않겠다(盜名, 도명).” 비록 14년 동안 유랑의 길을 걸으며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遯世, 둔세) 고난의 삶을 살았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았던 공자의 선택이 오늘날까지 공자를 있게 한 이유다. 괴력난신으로 이름을 날리고, 왕국을 세우고, 권력을 얻었던 승려, 마술사, 목회자, 차력사, 신비주의자들은 봄날에 녹는 잔설(殘雪)처럼 역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괴력난신에 대항하는 말이 상덕치인(常德治人)이다. 상식(常)은 재미없고, 인격(德)은 평범하고, 질서(治)는 따분하고, 인간(人)은 흔하다. 그래서 괴상(怪)하고, 능력(力)있고, 혼란(亂)하고, 신비(神)한 것에 항상 밀린다. 그러나 결과는 시간이 지나면 역전된다. 가장 상식적인 것이 가장 정의로운 것이다. 물은 맛이 없는 무미(無味)의 맛이나 영원히 질리지 않는다. 달콤하고 새콤한 것은 아무리 혀를 유혹하고 마음을 사로잡아도 그때뿐이다. 어머니는 평범했지만 가장 뼛속 깊이 새겨진 인생의 추억이었고, 공기는 흔했지만 생명의 근원이 되어 나를 숨 쉬게 한다. 우리가 당연하고 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 위대함이고 특별함이다. 하늘에는 솔개가 날고, 연못에는 물고기가 뛰고, 들에는 말이 달리는 것이 상식이다. 그 상식이 자연이고, 자연은 영원하다.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영원한 것이다. 신을 빌려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고, 혼란을 이용해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는 목회자들이 사회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마음이 허전하고 갈길 몰라 하는 사람들은 황당하고 신비적인 이야기에 기대어 자신의 빈 마음을 채우고 있다. 비약은 마약처럼 정도(正道)를 마취시켜 사회를 비정상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괴력난신(怪力亂神)이 상덕치인(常德治人)을 위협하고 있는 시대가 안타깝다. 내세가 아닌 현세에서, 미래가 아닌 지금에 집중하며,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위대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긴다.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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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2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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