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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양주 부활이 반가운 이유

오래전의 일이다. 겨울을 지켜낸 매화꽃 봉오리가 막 터지기 시작할 즈음이면, 지인들을 초대해 가양주를 나누는 시인이 있었다. ‘여름을 건강하게 넘기는 술’이라는 뜻을 가진 과하주(過夏酒)였다. 시인은 10월이 지나갈 무렵이면 술을 담갔다. 솜씨 좋은 어머니로부터 배운 시인의 술 담기 공력은 해를 더할수록 무르익어 그 맛을 본 지인들은 봄부터 여름이 지나는 동안 그의 부름(?)을 내내 고대하곤 했다. 지금도 시인이 과하주를 빚어 즐거움을 나누는지는 모르겠으나 기다림과 정성으로 빚어낸 과하주의 맛과 추억이 그립다. 가양주는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이었다. 집마다 대물림으로 전해진 술은 그 종류도 다양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와 근대를 거치면서 주세법이 생기자 가양주는 위축되었고 생활방식과 술 문화가 바뀌면서 가양주 전통은 멸실되거나 단절됐다. 돌아보면 술의 역사는 깊다. 나라마다 전통은 다르지만, 그 역사를 담아내는 대표적인 전통주가 있다. 가양주는 우리나라의 전통주 중에서도 대표적인 술이다. 우리나라 전통주는 서양의 술과 매우 다른데, 술빚는 방법이 다양하고 과정이 복잡해 기능을 익히기 쉽지 않다. 재료를 다루는 방법과 발효 과정이 까다로울 뿐 아니라 술마다 다른 향을 더하고 약재를 많이 넣어 약효를 높인다. 전북지역에도 오래전부터 물려온 가양주가 적지 않다. 전북의 술은 재료의 특수성이 좀 더 돋보이는 술이다. 전문가들은 그런 이유로 전북지역의 술을 가장 토속적이면서도 독특한 맛과 향기를 간직한 술로 꼽는다. 조선 시대 명주로 이름을 알린 전주의 이강주와 장군주(과하주), 완주의 송화백일주와 송죽오곡주, 김제의 송순주가 대표적이다. 이 술들은 모두 쌀 외의 부재료를 사용한다. 흥미롭게도 그 부재료들은 생강, 배, 오미자, 울금, 송순, 솔잎, 오곡 등 이 지역 특산품이거나 일상적으로 널리 이용되는 자연산물이다. 예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음주와 건강을 따로 여기지 않고 약주(약용 약주)를 즐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2000년대 중반, 전주에서는 가양주 보급 운동이 일었다. 풍류와 멋이 함께 했던 우리의 건강한 술 문화를 부활시켜 그릇된 술 문화를 바로 잡고 과도한 음주로 인한 건강의 폐해를 줄여보자는 취지였다. 우리 전통주에 눈을 뜨게 하는 강좌도 꽤 관심을 모았지만 아쉽게도 가양주 바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역의 전통주를 되살리는 움직임이 다시 활발하다. 지역성을 살리는 상품 개발에도 전통주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상품화된 전통주도 여럿, 우리 일상에 정착한(?) 맥주나 소주, 양주나 와인이 아니라 새로운 맛과 향기를 품은 가양주와의 새로운 만남이 반갑다. 그러고 보니 곧 추석이다./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5.09.30 17:31

​[오목대] 서남대와 전북대, 그리고 공공의대

7년 가까이 표류해온 ‘공공의대’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올해 안에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사실 공공의대 논란은 2018년 남원 서남대 폐교 사태가 발단이다. 지역·필수의료 위기 극복 방안이 다방면에서 논의되던 중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49명)을 활용해 공공의대를 설립하자는 주장이 급부상했다. 그리고 그해 민주당과 보건복지부가 당정협의를 통해 ‘남원에 국립공공의료대학원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하고, 남원시와 함께 부지 매입 등 실무절차를 진행했다. 남원에 곧바로 공공의대가 들어설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정부가 법률안 통과 전에 실무 절차를 급히 추진하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했다. 이후 의료계의 반발과 대한민국을 뒤흔든 의료계 파업, 정치적 혼란 속에 공공의대는 길을 잃었다. 그리고 올해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공공의료사관학교)으로 내세우면서 불씨를 살렸다. 설립 부지는 당연히 남원이 유력하다. 하지만 확정된 게 아니다. 다시 여러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의대 유치전에 나선 지자체 간의 치열한 경쟁도 불가피하다. 그런데 최근 ‘남원시가 공공의대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전북대가 남원시 소유의 옛 서남대 부지와 건물을 넘겨받아 내년 ‘남원 글로컬캠퍼스’를 개교하기로 하면서다. 당초 공공의대 설립 후보지로는 서남대가 1순위로 꼽혔다. 지역사회와 정치권에서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과 그 부지 및 건물을 활용해 공공의대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서울시립대에서 서남대 부지를 매입해 공공의대를 설립·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서남대 부지·건물을 활용한 공공의대 설립 방안이 힘을 얻었다. 이런 가운데 남원시가 애써 매입한 서남대 부지와 건물을 전북대에 넘기기로 하고, 협약까지 체결했으니 의문이 들만하다. 오해다. 남원시가 지난해 서남대 부지 및 시설을 매입한 것은 공공의대가 아닌 전북대 글로컬캠퍼스 설립을 위한 지원 절차였다. 공공의대 부지는 따로 있다. 2018년 보건복지부와 남원시가 부지를 물색할 당시 1순위 검토 대상은 역시 서남대였다. 하지만 당시 법인 청산절차가 지연되면서 매입에 걸림돌이 많다는 이유로 배제됐고, 남원의료원 인근 부지가 최종 선정됐다. 결국 지역 거점대학인 전북대가 서남대 남원캠퍼스를 품에 안았다. 이 대학 의대 정원 일부(32명)를 넘겨받으면서 생긴 뜻밖의 연결고리가 다시 이어진 셈이다. 부실·비리 사학이라는 오명 속에 문을 닫은 후에도 수년 동안 폐건물로 남아있던 서남대는 비로소 긴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게 됐다. 이제 공공의대의 향방이 관심이다. 의료서비스 지역 격차 해소와 공공의료 강화의 필요성은 부인할 수 없다. 시대적 과제다. 뚝심있게 추진해야 한다. 논란 속에서도 정부 정책을 믿고 부지 매입 등 관련 절차를 꾸준히 밟아온 남원이 길 잃은 공공의대를 끌어안는 게 맞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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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5.09.29 17:51

[오목대] 귀하신 몸 민주당원

세상이 급변한다. 바둑왕 이세돌이 AI 와 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5번 대국에서 한판만 이기고 4판은 졌다.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 이후 AI가 빠르게 발전해 지금은 세상을 바꿔 놓은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산업혁명을 통해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었지만 지금은 산업현장에서 피지컬 AI가 만능일 정도로 생산까지 척척 도맡아서 해내 다시 쫓겨날 신세다.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면서 AI 때문에 사라질 직업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처럼 사람 사는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유독 우리 정치판은 아직도 철 지난 낡은 철밥통이다. 깜냥도 안 되는 사람이 선출직에 나서겠다고 용기백배 나서, 제 정신이 든 사람이냐고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전북은 대선 때 이재명 대통령이 82.65%를 차지해 민주당 지지세가 더 견고해졌다. 이 바람에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는 것이나 다름 없어 출마를 저울질하는 사람들이 더 기를 쓰고 달려든다. 특히 당 지도부가 당원주권시대를 열어 나가겠다고 강조하면서 당비를 낸 유급당원들의 몸값이 치솟았다. 예전 같으면 친소관계에 따라 입당원서를 쉽게 써 줬지만 지금은 귀하신 몸이 되어 호락호락하지 않는다는 것. 공천 때 일반시민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보다는 당원한테 더 많은 비중을 두기 때문에 누가 뭐래도 존재감이 커졌다는 것. 지구당 위원장인 국회의원 말이면 당심으로 통했지만 지금은 그게 통하지 않아 자기 편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드러나듯 현직 단체장들이 두각을 크게 나타내지 못한 것도 이 같은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당원들의 지지를 받으려고 신줏단지 모시듯 예우를 갖춰 가며 온통 신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시민들의 욕구가 다양해지면서 갈수록 행정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판인데 별다른 전문성 없는 사람이 단체장에 나서겠다는 것은 무리수라면서 단체장은 상당 수준의 전문성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지방의원도 갈수록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라서 전문가로 채워져야 한다. 자연히 민주당 공천 방식도 변해야 하지만 아직도 아날로그 방식에 머물러 젊고 유능한 새 피 수혈이 안 되고 있다. 더군다나 당원 모집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금품이 오가는 구조라서 자칫 선거판이 돈선거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1995년부터 주민들이 직접 단체장을 뽑았지만 전문성 없는 사람들이 아마추어식 인기영합주의로 행정을 이끌어 퇴임 후에도 지역발전을 못 했다는 비난을 사 왔다. 아무튼 전북을 이끌어온 민주당은 운동권 출신들이 공천을 받는 것을 마감하고 전문성 있는 인물들이 대거 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당원들도 깜냥이 되는지 매의 눈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연줄에 따라 돈 몇 푼에 양심을 파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내년 선거는 전북이 발전하느냐 아니면 나락으로 빠지느냐의 기로에 놓여 있어 중요하다. 4지(知)란 말처럼 세상엔 영원한 비밀이 없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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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5.09.28 18:09

[오목대] '황혼의 덫' 치매

매년 9월 21일은 정부가 정한 ‘치매 극복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알츠하이머협회가 지정한 ‘세계 알츠하이머의 날’에 맞춘 것이다. 치매는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질병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존엄성마저 잃기 때문이다. 치매 극복의 날? 과연 치매를 극복할 수 있을까. 우선 실태부터 보자. 중앙치매센터에 의하면 지난해 65세 이상 전국 추정치매환자는 91만8981명으로 집계됐다. 올해는 약 97만명, 내년엔 100만 명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환자다. 이것도 나이가 올라갈수록 급증해서 80대는 3명 중 1명 꼴이다. 이로 인한 치매 관리비용은 24조원으로 1인당 2699만원이 쓰였다. 성별로 보면 여성이 58.57%로 남성 41.43%보다 훨씬 많다. 치매는 후천적인 다양한 원인으로 기억력을 비롯한 여러 인지기능의 장애가 나타나 일상생활을 혼자 하기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인지기능 장애는 건망증, 경도인지장애, 치매 등 3단계로 나뉜다. 건망증은 정상 노화로, 나이에 따른 기억 감퇴 증상이다. 예를 들어 옛 친구의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다든지 약속을 깜빡 잊는 정도다. 힌트를 주면 잊었던 것이 다시 기억나는 수준이다.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는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이 떨어졌을 뿐 아직 모든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상태다. 치매와의 차이는 일상생활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지 여부다. 치매는 크게 노인성치매로 불리는 알츠하이머병과 중풍 등으로 발생하는 혈관성 치매로 나뉜다. 이 중 알츠하이머병이 전체 치매의 55∼70%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유형이다. 치매 여부를 알아보는 검사는 한국형 치매선별검사(KDSQ)가 흔히 쓰인다. △오늘은 몇 월이이고 무슨 요일인지 잘 모른다 △자기가 놔둔 물건을 찾지 못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한다 △물건이나 사람의 이름을 대기가 어려워 머뭇거린다 △예전에 비해 성격이 변했다 등 15개 항목에 이른다. 이 검사에서 경도인지장애 이상이 나오면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 그러면 치매는 치료가 가능할까. 지금까지 치매는 늦추기만 할뿐 완치는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의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치료제들이 속속 개발돼 임상에 쓰이고 있다. ‘레켐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예방이다. 의료계의 의견을 종합하면 적절히 운동하고 흡연과 과도한 음주를 지양하며 고혈압·고지혈증을 조절해 건강한 신체를 유지해야 한다. 또 안경이나 보청기 등을 통해 시력과 청력을 최대한 보존하고 고립돼 우울감에 빠지지 않도록 주변과 늘 교류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교육을 통해 인지기능을 끊임없이 자극하면 치매 발생을 늦출 수 있다. 치매가 ‘황혼의 덫’이 아니었으면 싶다.(조상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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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진
  • 2025.09.25 17:51

[오목대] 아침을 먹는 사람들

우리나라 최초의 근린공원은 바로 서울 종로에 있는 탑골공원이다. 원각사지 10층 석탑이 있었기에 ‘파고다 공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1919년 3월1일 만세운동이 일어난 독립운동의 상징적 장소다. IMF 외환위기를 즈음해서 주변 무료급식소를 찾아 점심 한끼를 해결하려는 노인들이 탑골공원으로 몰려들면서 이곳은 노인문화가 자리잡았다. 꼭 무료급식소가 아니더라도 탑골공원 주변엔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이들이 아침이나 점심을 때우는 저렴한 식당이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다. 요즘 웬만한 식당에서 점심 한끼를 해결하려면 1만원이 훌쩍 넘는 경우가 많다. 비단 노인뿐만 아니라 젊은 청년들도 아침이나 점심 식대가 상당한 부담이라고 토로한다. 더욱이 시간에 쫒기는 청년들은 경제력 여하를 떠나서 아침을 굶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의 53%가 아침식사를 거르고 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이러한 문제의식에 착안해서 이곳저곳에서 간헐적으로 천원의 아침밥을 지원하기도 했는데, 4년전부터 전북대 총동창회에서 십시일반 뜻을 모아 본격적으로 '천원의 아침밥' 지원사업을 펼쳤다. 전북대 총동창회 정영택 전 회장과 최병선 현 회장이 적극 앞장서서 후원하면서 결실을 맺었다. 올해의 경우 3000만원을 후원해서 후배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전북대는 올해로 4년째 천원의 아침밥 사업을 이어오며 학생 복지와 지역 농업의 상생 모델을 정착시켰다. 전북대는 올해 총 120일간 3만명의 학생에게 아침식사를 제공한다.단돈 1천원으로 아침을 해결하게 되자 그동안 아침을 거르던 학생들도 줄을지어 식사를 하려고 몰려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그런데 이게 예상밖으로 인기몰이를 하면서 이젠 전북대뿐 아니라 대한민국 상당수 대학으로 널리 확산됐다. 2023년에는 정부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지금은 전국 2백여 개 대학으로 확산됐다. 급기야 일선 산업현장에서도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아이디어 하나가 이처럼 식사 문화를 확 바꾼 것이다. 이젠 정부에서도 젊은 층의 조식 습관화와 쌀 소비 촉진에 나서고 있다. 지난 18일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전북대학교와 국가식품클러스터 산업단지를 방문했다. 송 장관은 '천원의 아침밥' 운영 현장을 둘러보고 학생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정부는 '천 원의 아침밥'을 인구감소지역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도 확대 추진할 계획이다. 사실 요즘엔 돈이 없어 밥을 굶는 경우는 많지않다. 하지만 저렴한 비용으로 제때 식사할 수 있다면 개인은 물론,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서도 퍽 다행스런 일이다. 그런점에서 청년, 중년, 노년 할것없이 부담없이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물론, 각 기관, 단체가 십시일반 뜻을 모았으면 한다. 식대가 1천원 짜리가 됐든, 10만원 짜리가 됐든 각자에겐 한끼 식사가 동일한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5.09.24 18:41

[오목대] 낙죽장 이신입 명장, 그 이후

우리의 전통 공예는 대부분 숙련된 기법으로 가치를 품는다. 낙죽(烙竹)도 그중 하나다. 낙죽은 불에 달군 인두(烙鐵)를 사용해 대나무의 겉면을 태워 글씨와 그림, 문양 등을 새기는 전통 공예 기법이다. 합죽선이나 참빗, 붓대 같은 소품과 문방구 등 대나무를 재료로 한 공예품에 다양하게 활용되어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높이지만, 그중에서도 낙죽 기법으로 품격과 완결성을 제대로 갖추게 되는 것은 합죽선이다. 기법으로만 보면 낙죽은 대나무에 문양을 새기는 단순한 과정이다. 그러나 대나무의 단단한 마디까지 품어 다양한 문양을 새기는 작업은 그리 간단치 않다. 손에 의한 공예 기능이 대부분 그렇지만 낙죽은 특히 오랜 경험과 반복된 훈련 과정을 거쳐야만 숙련된 기능을 얻을 수 있다. 낙죽 장인들이 많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낙죽장은 1969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됐다. 역사는 짧지 않으나 그동안 지정된 기능보유자는 세 명뿐이다. 그중 두 명은 해제되어 현재 국가 차원의 보유자는 한 명이다. 다행히 전북에서도 지난 2013년 낙죽장 종목이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보유자는 이신입 명장이다. 그는 합죽선으로 전주 부채의 명맥을 이었던 선자장 고 이기동 명장의 아들이다. 덕분에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부채 만드는 기능을 익혔으나 아버지는 아들에게 선자장 맥을 잇게 하는 대신 낙죽을 배우라고 권했다. 스무 살 무렵부터 낙죽 기법을 배워 익힌 그가 아버지의 뒤를 잇는 선자장 이수자이면서도 낙죽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50년 가까운 합죽선의 역사를 지켜오게 된 배경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낙죽에 쓰이는 인두는 전기인두로 변화했다. 편의성을 높인 셈이다. 그러나 그는 현대적 방식에 마음을 주지 않고 오직 화로에 숯불을 피우고 달궈진 인두로 문양을 새기는 전통 방식을 고집해왔다. 자신만의 기법으로 낙죽의 세계를 넓혔던 이신입 명장이 지난 9월 초 세상을 떠났다. 지병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대중의 관심을 저버리지 않았던 그는 자신을 찾는 낙죽 실연 요청에도 가장 성실하게 응했던 장인이다. 그만큼 낙죽 기법의 대중화를 향한 그의 바람은 컸다. 고된 삶에도 전통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던 장인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들이 떠난 후 전통 공예의 명맥은 잘 이어지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돌아보니 환경이 녹록지 않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젊은 세대의 진입은 적고 기능보유자들을 지원하는 제도적 한계는 크다. 후계자는 있으나 기능보유자 지정이 늦춰져 단절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한국문화에 세계가 환호하고 있지만, 여전히 보존과 전승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전통문화의 현실. 안타깝다./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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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5.09.23 17:23

[오목대] 수몰 60년, 섬진강댐과 계화도

추석이 낼모레다.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해마다 풍년이다. 올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안정적인 농업용수 공급체계가 큰 몫을 했다. 한반도 최대 곡창 호남평야의 수원(水源)은 섬진강댐이다. 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숱한 우여곡절 끝에 건설된 이 댐이 올해 준공 60주년을 맞았다. 한국수자원공사가 이를 기념해 9월 한 달 다양한 행사를 연다. 댐 주변 주민들과 함께 과거 댐 건설로 삶의 터전을 잃은 수몰민들을 기억하고, 댐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자는 취지다. 섬진강댐 수몰민의 애환을 들춰내자면 부안 계화도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댐인 섬진강댐과 이 댐이 만들어놓은 옥정호(玉井湖), 그리고 20세기 중반 국내 최대 간척사업(1963~1978년)으로 기록된 부안 계화도. 내륙 산간지대 다목적댐과 서해안 간척지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정부가 섬진강댐 건설로 삶터를 잃게 된 임실 운암·강진면, 정읍 산내면 일대 수몰민 2786세대의 이주·정착과 식량 증산을 목적으로 조성한 땅이 바로 계화도 간척지구다. 이 대규모 간척지에 필요한 농업용수는 섬진강댐에서 끌어왔다. 유역변경식 발전소인 정읍 칠보수력발전소에서 방류한 옥정호의 물을 길이 67km의 동진강도수로를 통해 부안 청호저수지로 흘려보내 농업용수로 사용한 것이다. 계화간척지를 국내 최고 품질을 자랑한 ‘계화미’의 산지로 탈바꿈시킨 농민들이 바로 섬진강댐 수몰민이다. 그렇다고 수몰민들이 순조롭게 계화도에 정착한 것은 아니다. 계화도 이주단지 조성사업이 늦어지면서 갈 곳을 잃은 수몰민 중 상당수는 고향을 물속에 넣은 대가로 받은 ‘계화도 이주증서’를 헐값에 처분하고, 경기도 등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 중 일부는 계획과 달리 물이 차오르지 않은 임실 운암면 옥정호 인접 마을에 재정착했다. 하지만 이들은 수십년 후 추진된 ‘섬진강댐 재개발사업(2007~2018년)’으로 댐의 물그릇이 커지면서 다시 삶터를 옮겨야 했다. 그야말로 통한의 이주사다. 새만금사업으로 계화도는 간척지 속의 간척지로 전락했다. 이주 역사와 주민 애환은 새만금 논란에 묻혀 빛을 잃었다. 쌀이 남아도는 시대, 간척지의 위상도 찾을 길이 없다. 게다가 수몰의 아픔을 함께 겪은 임실과 정읍은 옥정호 수질을 놓고 분쟁을 거듭하고 있다. 옥정호를 식수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정읍과 옥정호 개발사업에 나선 임실의 입장차가 뚜렷하다.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섬진강댐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 주변 지자체들 간에는 분쟁의 대상, 지난 2020년 여름 발생한 대규모 수해의 원인을 ‘댐 관리 부실’로 지목한 댐 하류 주민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 됐다. 우리나라 근현대 농경사와 댐 건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한국 최초의 다목적댐, 섬진강댐의 현 상황이 안타깝다. 준공 60주년을 맞아 수자원 개발의 역사를 돌아보고, 댐의 역할과 주변 지역 상생 방안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09.22 18:46

[오목대] 싸구려 여론조사

소슬바람이 불어오면 가을이 온 것을 알 수 있듯 각 가정이나 개인 휴대폰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벨이 울리면 지방선거가 다가온 것을 안다. 한국 여론조사는 언제부턴가 만능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후보까지도 여론조사로 뽑기 때문에 여론조사가 일상의 주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된 여론조사는 무속인들이 점치는 것과 달리 데이터에 의존하므로 신뢰도를 중시한다. 이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표본수, 조사기법, 문항, 표본오차 등을 객관적으로 만들어야 함에도 꼭 그런식으로 여론조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자연히 주문자 입맛대로 결과를 도출하려고 하다보니까 기본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여론조사를 실시,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공표해 혹세무민한다는 비판이다. 최근 이름도 없는 매체들이 제대로 된 여론조사를 하지 않고 마구 특정인을 띄워주려고 일방적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게재해 여론을 왜곡시키고 있다. 심지어 조사기관과 사전에 짜고 조사일자 등을 알려줘 지지자들로 하여금 답변토록 유도하는 등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는 여론조사가 판치고 있다. 주문자 생산방식(OEM)처럼 조사의뢰자의 구미에 당기게끔 설계해서 그 결과물을 일방적으로 내놓아 신뢰도 저하로 유권자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은 비용을 적게 들이려고 자신이 직접 ARS 방식으로 문항을 기계음에 담아 샘플수를 적게해서 마구 돌려 여론조사의 근본 취지를 왜곡시키고 있다. 특히 조사결과를 놓고 1등 위주로 경마식 보도를 하는 바람에 유권자들이 식상해 한다. 선관위에서 원칙적으로 여론조사를 할 때 기본수칙을 제대로 지키도록 계도하지만 제대로 안된 경우가 있다. 사실 여론이란 것은 그 시점에서 다수의 생각을 수치화해서 그 경향을 알아 보는 것인데 마치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인지도와 지지도는 분명하게 개념이 다른데도 그것을 같은 개념으로 확대해서 발표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그 같은 이유는 유권자들이 숫자화 해서 발표하는 것을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유권자의 머릿속에 여론조사를 어느 정도 신뢰하기 때문에 아니면 말고식으로 홍보라도 하겠다는 식이다. 아무튼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판치는 세상에서 너나 할 것없이 여론조사를 맹신하면서 하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무척이나 혼란스러워 한다. 그간 선거 때마다 홍보 업체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 돈만 주면 여론조사부터 맞춤형 선거운동까지 해주겠다고 꼬드기는 바람에 여론조사가 더 불신을 산다. 사실 질문항목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편차가 나는 것인데 가장 맨 앞에다가 홍보할 요량으로 자신의 이름을 올려 놓고 그 뻔한 결과를 유권자에게 믿도록 하는 게 여론왜곡이어서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매체난립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싸구려 여론조사를 여과없이 유포시키는 것은 정보의 왜곡을 가져오므로 제재를 가해야 한다. 가짜뉴스 때문에 옥석구분이 안되면 선거는 결국 망치게 된다. 유권자들도 여론조사라 해서 여과없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내용을 잘 살펴봐야 할 때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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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5.09.21 18:46

[오목대] 반려동물의 노후

지난 여름, 무더위를 피해 아침 일찍 산책에 나섰다 미니 선풍기를 단 개모차를 보았다. 주인은 땀을 흘리면서 개모차를 밀고 있는데 앉아있는 반려견은 시원한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었다. 노후 반려견을 위한 배려였다. 반려동물도 나이 들면 걷지 못하거나 걷는 것을 힘들어 한다. 이때 전용 유모차가 유용하다. 보다 수월하게 산책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KB금융지주가 지난 6월 발표한 ‘2025 한국 반려동물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말 우리나라 반려가구는 591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26.7%, 반려인은 1546만명으로 29.9%에 이른다. 국민 3명 중 1명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셈이다. 또 반려동물은 반려견 546만 마리, 반려묘 217만 마리로 집계됐으며 금붕어, 토끼, 거북이, 파충류 등 다양한 종이 있다. 이들 중 10세 이상의 노령견을 양육하는 가구도 20%를 넘었다. 반려동물은 노인들에게 정서적 안정과 행복을 주고 우울증을 덜어주는 등 자식보다 나은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키우는데 경제적인 비용과 세심한 돌봄이 필요하다. 사람과 똑같이 생로병사 과정을 겪기에 건강관리와 작별까지 감안해야 한다. 건강할 때는 재롱과 친근감으로 기쁨을 주지만 노후에는 신경써야 할 일이 적지 않다. 최근에는 70대 자식이 90대 부모를 돌보듯 노인이 노후 반려동물을 돌보는 ‘노(老)-노(老) 케어’가 흔하다. 그럼 반려동물의 노후 대비는? 개와 고양이의 수명은 평균 15년이며 생애 주기상 8-10살이 넘어가면 고령으로 분류한다.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할 것은 건강이다. 일본의 경우(2022년 가전업체 파나소닉 조사) 노후 반려견은 모질(毛質), 즉 털의 상태가 나빠진 것이 가장 큰 걱정이라고 한다. 털의 양이 줄고 윤기가 없고 가늘어진다는 것이다. 또 배설 트러블도 문제다. 정해진 장소에서 배설을 하지 않거나 배설 빈도가 늘고 집 곳곳에 소변을 뿌리기도 한다. 반려묘는 식사 구토가 심해진다. 사람이 나이 들면 ‘노인 냄새(加齡臭)’가 나는 것처럼 반려동물도 마찬가지다. 개나 고양이 모두 노화하면서 악취기 심해진다. 이와 함께 치주질환, 비만, 만성귓병과 피부알러지, 백내장, 방광염과 결석, 퇴행성 관절염, 만성췌장염, 치매 등도 뒤따른다. 이를 조기에 치료하기 위해 6개월마다 건강검진을 권한다. 또한 반려동물과의 이별도 대비해야 한다. 현행법상 반려동물 사체는 폐기물로 분류된다. 따라서 매장은 허용되지 않고 사체를 종량제 봉투에 담아 생활폐기물로 배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물병원에 맡겨 의료폐기물로 처리하거나 장묘업체를 통해 장례를 치러야 한다. 반려동물 상실로 인한 정신적 어려움(펫로스 pet loss)도 오래 가는 경우가 많아 극복 과제 중 하나다.(조상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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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진
  • 2025.09.18 16:54

[오목대] 개발과 보존 한복판에 선 전북

며칠전 대한민국에서는 아주 사소한 일이겠으나 전북에 국한할때 경천동지할만한 판결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새만금국제공항건설 사업이 법원의 기본계획 취소 판결로 중단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기본계획 취소 판결에 이어, 환경단체가 기본계획 집행정지 가처분까지 신청하면서 만일 소송전이 길어질 경우 최소 3년이상 지체되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일시적 중단이 아닌 무산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됐다. 2036 올림픽 유치나 RE100 산단 등 대도약을 향한 걸음마를 떼던 전북으로선 초대형 악재를 만난 것이다. 전북도의 1심 패소 사유는 여러가지가 꼽히는데 그중 조류와의 충돌 우려가 크다는 지적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임은 분명하다. 급기야 지역사회 일각에서는 ‘돌고돌아 김제공항 카드’까지 급부상하는 분위기다. 이쯤되면 20여년 전 김제공항 데자뷔가 떠오른다. 1995년 첫 민선단체장 선거 이후 김제공항은 급발진을 했으나 공덕, 백산 주변 일부 주민들의 반대, 인접한 벽성대나 지역 정치인들의 반대, 일부 시민사회단체의 반대가 이어지면서 결국 무산됐다. 부지 매입과 건설사 선정까지 이뤄졌으나 결국 감사원 감사 등으로 무산된 바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일 그때 뚝심있게 밀어부쳐 완공됐더라면 김제공항은 오늘날 새만금의 발전을 견인하는 한편, 청주공항보다 더 활성화 됐을 수도 있기에 아쉬움이 크다. 지역 사정에 밝은 이들은 잘 알겠지만 사실 김제시 용지면 일대에는 ‘비행장’으로 일컬어지는 곳이 있다. 일제시대 비행장 건립을 위해 용지 일대에 50만평 이상이 평지를 확보했다고 한다. 일제의 패망으로 비행장 건립은 무산됐으나 지금도 그 일대는 비행장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된다. 전북은 항상 개발과 보존논쟁의 한 복판에 서곤했다. 이번 새만금공항 중단의 결정적 배경도 사실 일부 환경단체나 시민단체의 반대가 자리잡고 있다. 앞서 새만금사업의 중단 배경도 사실은 개발과 보존 논쟁의 한 중심에 전북이 끼면서 결국 유탄을 맞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삼보일배로 상징되는 반대 운동은 너무나 생생하다. 부안 방폐장 유치 실패도 사실은 개발과 보존 논쟁의 와중에 정작 전북 도민들은 뒷전으로 밀린 상태에서 전국적인 운동가들이 반대활동을 벌인 때문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같은 논리를 들이댄다면 세계문화유산을 여러개 가진 유서깊은 고도 경주에 방폐장이 들어설 이유는 찾기 힘들다. 사실 “개발이 좋은가, 보존이 옳은가” 하는 논쟁은 훗날 어느게 바른 판단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개발과 보존 논쟁이 일어날 때마다 그 중심엔 항상 동네북 신세인 전북이 있고, 결과적으로 개발이 아닌 보존 논리가 이긴 경우가 많았다는 거다. 문제는 가덕도 신공항을 비롯, 대구경북 신공항, 서산공항 등 전국적으로 총 8개 신공항 사업이 추진중인데 하필이면 새만금공항만 동네북신세가 돼 맨 먼저 매를 맞고 있다는 거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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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5.09.17 18:14

[오목대] 도시의 힘이 된 건축물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알미르(Almere)는 암스테르담 동쪽에 있는 간척 도시다. 암스테르담과 주변 도시의 인구 과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립을 시작, 1975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으니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당초 네덜란드 정부는 알미르를 25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로 계획했다. 세계 대부분 도시가 ‘인구 감소’ 위기에 처한 환경에서 인구 25만 명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이 야심찬(?) 계획은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알미르는 2005년, 목표 인구를 40만 명 규모로 다시 늘렸다. 암스테르담의 배후도시에 머물지 않고 자급자족 도시로 거듭나면서 인구증가에 대한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2006년 말, 인구 18만 명을 넘어선 알미르는 2023년 기준, 20만 7천 명으로 플레볼란트주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도시가 됐다. 게다가 지속적인 개발과 경제적 성장으로 인구가 점진적으로 늘고 있으니 부러울 따름이다. 간척 도시이면서도 대단위 녹지 공간으로 ‘숨 쉬는 창조도시’가 된 알미르는 이제 관광도시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기존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개발 속도와 내용을 조절하면서 수요에 따라 도시를 개발하는 독특한 방식이 주효했던 덕분이지만 관심을 끄는 것은 또 있다. 관광객을 부르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알미르에는 스터드 극장, 신공공도서관 등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축가들이 설계한 혁신적 건축물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건축물이 더 있다. 집단으로 들어서 있는 이 건축물들은 디자인과 형식이 매우 독특하고 실험적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1980~90년대, 네덜란드 정부는 렐리스타트 등 간척으로 얻은 대규모 땅을 개발하는 데 집중해있었다. 자연히 알미르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건설이 본격화되자 이미 대단위 사업에 참여하고 있던 세계적 건축가 대신 ‘경험은 없지만, 의욕 있는’ 젊은 건축가들을 주목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세계 각국의 젊은 건축가들은 ‘보다 인간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한 열망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지만, 자신들의 실수에서 스스로 배우며 경험을 쌓았고, 장단점을 발견해 계획을 수정하는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들이 남긴 알미르의 건축물은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실수를 통해 얻는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생 도시 알미르가 아니고도 아름답고 서사가 있는 건축물이 그 자체의 힘으로 도시를 성장시키는 선례는 얼마든지 많다. 우리 지역에도 크고 작은 새로운 건축물이 뒤를 잇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도시를 알리고 성장시키는 건축물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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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5.09.16 18:49

[오목대] 다시 외친 ‘균형’, 이번엔 다를까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는 수도권 집중에서 비롯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균형발전의 당위성을 역설하며 꺼낸 화두다. 이 대통령이 그동안 밝혀온 균형발전 의지를 재차 확인한 것이다. ‘향후 모든 정책 결정 과정에서 균형발전 영향평가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정책 방향도 소개했다. 수도권 1극 체제 속에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 도시들이 큰 기대를 걸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반응이 미지근하다. 왜일까? ‘지역이 강한 나라, 균형 잡힌 대한민국’,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문재인, 그리고 윤석열 정부가 잇따라 외친 균형발전 비전이다. 우리 헌법(제123조 2항)도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했다. 2004년 노무현 정부가 ‘지방화와 균형발전 시대’를 선포한 이후 역대 정부가 하나같이 균형발전을 외쳤다. 그렇게 20년 동안 ‘균형’은 국가 성장의 이정표가 됐다. 다양한 정책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참담하다. 오히려 불균형만 키웠다. 헌법 조항은 구속력이 없는 ‘선언적 규정’에 불과했고, 역대 정부의 외침은 공허했다. 수도권 블랙홀은 갈수록 거대해졌고, 지방은 더 쪼그라들었다. 주택 문제 등 수도권 과밀의 폐해를 수도권 확장으로 해결하려는 부동산정책, 교통정책이 계속됐다. 문재인 정부는 지방소멸 위기 앞에서도 서울의 부족한 주택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신도시 정책에 집중했다. 또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외친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을 거리낌 없이 추진했다. 고작 110km 길이의 서해안철도 단절 구간(군산~목포)을 연결해달라는 호남권 지자체와 주민들의 요구는 외면한채 ‘수도권 출퇴근 30분 시대’를 열겠다며 천문학적 예산이 들어가는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조기 개통에 몰두했다. 늘 이런 식이었다. 위정자들이 수도권 중심의 국가 운영 기조, 우리 사회 기득권 카르텔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국가 생존에 관한 문제다. 아직도 균형발전 정책이 지방에 대한 배려나 시혜라는 인식이 남아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비정상이 고착된 수도권공화국 대한민국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접근과 과감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껏 지방을 얕잡아보며 중심의 위치를 누려온 수도권에서 상대적 불이익과 불편, 그리고 역차별까지도 감내해야 한다. 지방이 무너지면 국가도 무너진다. 균형발전 정책의 당위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지금껏 비전과 구호만 난무했다. 그 사이 지방소멸 시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중앙정부와 정치권의 대승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서 이재명 정부가 수도권 집중의 한계를 짚으며 다시 ‘균형’을 역설했다. 정책적 의지도 거듭 천명했다. 이번엔 다를까? 그래야만 한다.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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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5.09.15 17:57

[오목대] 국가예산과 피지컬 AI

이재명 대통령 취임 1백일 맞아 전북 도민들은 기대반 걱정반이다. 자원이 빈약하고 산업체 수가 적은 전북은 국가예산에 큰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다. 지난 윤석열 전 정권에서 3년간 죽을쑨 관계로 이재명 정부에 나름은 큰 기대를 걸었으나 현실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내년 국가예산 확보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국가예산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해마다 늘어나게 돼 있다. 전북도가 밝힌 내년도 국가예산 규모가 역대급이라면서 9조4585억이 반영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보다 4.3%인 3923억이 늘어났다. 하지만 내년도 정부예산은 올보다 54조 7000억이 증가한 728조 규모로 편성됐다. 전년보다 8.1%가 늘었다. 국회예산 심의단계가 남아 있어 낙심할 단계는 아니지만 광주 8.1% 전남과 대구 6% 충북 5.5%에 비하면 부끄럽고 창피스런 수치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서 재정규모를 늘린 것은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였다. 이 대통령은 엉망진창이 된 외교문제를 정상화시키면서 경제발전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해서 수도권 일극체제가 아닌 5극 3특체제를 균형있게 발전시키겠다는 국가발전 전략을 밝힌바 있다. 다행히도 전북은 통일부장관인 정동영의원의 맹활약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던 피지컬 AI 관련예산을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다. 과방위에 속한 정의원이 피지컬 AI 실증단지 구축을 위한 예산을 확보함으로써 전북이 피지컬 AI수도로 발전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전북의 산업생태계를 바꿀 수 있는 신산업혁명을 일으킨 것이나 다름 없어 앞으로 후속대책에 더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DJ 대선 후보시절 대변인을 맡았던 정의원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DJ가 재일교포 3세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창업자를 면담하는 자리에서 손회장 한테 환란에 처한 대한민국이 제일 먼저 해야 할일이 뭣이냐고 묻자 손 회장은 전국민이 컴퓨터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 그 이후 DJ는 손 회장 말대로 그가 제시한대로 컴퓨터를 싼 값에 국민에 보급한 것이 결국 오늘날 정보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번에 정의원이 피지컬 AI라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면서 전 도민이 피지컬 AI를 가장 잘 아는 도민들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원이 중국 화훼이를 직접 방문해서 피지컬 AI의 발전속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우리 전북이 피지컬AI의 본향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도와 기업체 그리고 정치권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무튼 전북은 역대 정권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4명이나 장관으로 발탁해준 것을 계기로 국가예산도 함께 늘려나가야 할 형편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북도가 예산확보를 위한 논리개발을 꾸준히해서 10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10조원이 넘는 국가예산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이재명정부가 막 스타트 했기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윤석열 전정권 때 확보 못했던 국가예산까지 확보해야 할 것이다. 최소 11∼12조는 되어야 도민들의 자존심을 세워 나갈 수 있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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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5.09.14 16:48

[오목대] 밤새 잘 주무셨습니까?

‘밤새 잘 주무셨습니까?’ 예전부터 흔히 하는 인사말이다. 상대의 편안함과 안전을 묻는 일상적인 말이지만 의미심장하다. 저녁 동안 죽지 않고 무사했는지 확인하는 뜻이 내포돼 있어서다. 자식이 부모에게 묻는 경우 부모님의 컨디션과 건강상태를 점검하는 말이기도 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연령별 권장 수면시간은 신생아(0~3개월)가 14~17시간으로 가장 길다. 성인이 될수록 점점 짧아져 65세 이상 노인은 7∼8시간이다. 그런데 대한수면연구학회가 발표한 ‘2024년 한국인의 수면실태’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 58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18% 부족하다. 만성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셈이다. 더욱이 노인들은 밤낮이 바뀌는 등 숙면(熟眠)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침에 일찍 깨고 낮에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일찌기 중국 남송의 문인 주필대(周必大 1126-1204)는 ‘이로당시화(二老堂詩話)’에서 밤잠을 자지 않고 낮잠을 자는 것(夜不睡日睡)을 노인에게 나타나는 10가지 형태(老人十拗) 중 하나로 꼽았다. 우리나라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도 성호사설(星湖僅說)에서 대낮에 꾸벅꾸벅 졸음이 오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 것을 노인의 열가지 좌절 중 하나로 들었다. 노화는 인간의 수면 패턴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65세 이상 노인의 50% 가량이 수면장애를 앓고 있다. 불면증이나 일주기리듬 수면장애가 가장 흔하고 과면증(수면과다증)과 기면증(嗜眠症),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렘수면(REM) 행동장애 등이 이에 해당한다. 수면장애는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촉진해 혈당을 높이고 몸속 염증반응을 악화시킨다. 만성염증은 노년기 우울증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치매 발병 위험율을 높인다. 원인은 복합적이나 노화로 인한 퇴행성 변화가 근본적인 이유다.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노인의 86%가 6개 이상의 약제를 복용하고 있어 약물 부작용도 수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 노년기 건강한 수면을 위한 방법은 뭘까. 분당서울대병원 윤창호 교수는 9가지를 추천한다. ①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난다 ②불규칙하고 과도한 낮잠을 없앤다 ③규칙적으로 식사하는 습관을 들인다 ④낮에 적절한 활동과 운동으로 몸을 움직인다 ⑤자기 전에 자극요인(과식, 카페인, 음주, 흡연, TV시청, 휴대전화 사용)을 피한다 ⑥더운 물 목욕이나 명상, 스트레칭 등을 통해 몸을 이완한다 ⑦공복이 심하면 가벼운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다 ⑧안락하고 따뜻한 침실을 만들고 소음을 차단한다 ⑨침실에서 시계를 감춘다 등이다. 수면의 질은 삶의 질을 좌우한다. 잠은 밥이요 보약이다.(조상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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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진
  • 2025.09.11 18:47

[오목대] F1그랑프리와 군산의 추억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스포츠인 F1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F1 현역 수퍼스타 루이스 해밀턴이 제작에 참여한 영화 ‘F1 더 무비’를 통해 경주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의 눈이 트였기 때문이다. 노장 브래드 피트가 신인과 팀을 이뤄 F1 우승을 쟁취하는 감동 서사인 이 작품은 지난 6월 개봉해 현재 한국에서만 동원 관객 500만명에 육박했다. 올해 국내를 포함해 전 세계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F1은 국제자동차연맹(FIA)이 주관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포뮬러 자동차 경주 대회다. 하계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대회로 꼽힐만큼 유명세와 권위를 자랑하는데 전북과는 매우 특별한 인연이 있다. 20여 년전 군산에서 이 대회를 개최하려다 실패한 아픈 경험이 있고, 그 와중에 굴지의 기업이었던 세풍이 없어지고, 당시 유종근 지사와 김길준 군산시장의 정치 역정에도 매우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킨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인기나 대회 규모에 비해 한국에서는 F1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지난 2010년부터 4년간 전남 영암에서 F1 그랑프리 대회가 열렸으나, 기반 부족으로 실패했다. 특이한 것은 인천시가 최근 F1 그랑프리 대회 유치에 적극 나서면서 이의 성사여부가 주목된다. 때마침 내달 12일 서울 도심에서 초고속 자동차 경주 ‘F1’을 경험할 수 있게 됐다. F1을 도심에서 시연하는 이벤트 ‘F1 쇼런(Show run)’은 메르세데스 레이싱팀이 초청돼 굉음의 질주를 선보일 계획이다. 인천시가 F1 그랑프리를 유치하려는 것은 잘만하면 경제 효과가 수조 원에 달할만큼 대박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군산시의 F1그랑프리 자동차 경주장 건설은 ㈜세풍월드가 준농림지역인 염전부지를 활용해 자동차 경주장과 골프장, 요트장 등을 건설하려던 것으로 지난 98년 7월 이 회사가 워크아웃 되면서 전면 중단됐다. 시간이 지난뒤 이 부지는 경매 절차를 밟아 211억 원에 광주에 본사를 둔 금광기업과 전북환경영농법인에 낙찰됐다. 앞서 세풍건설은 폐 염전 167만평을 용도변경해 자동차 경주대회를 하자는 제안을 하면서 전북의 F1 그랑프리는 시작됐다. 당시 공시지가가 1만원 수준이던 폐 염전 부지는 준공업지역으로 용도변경하면 10만원으로 올라가는데 결국 167만평 중 10만평을 기부체납하되 대회 개최를 조건으로 용도변경을 해줬다. 이후 세풍건설은 용도변경된 부지를 담보로 은행에서 997억원을 대출받았는데, 결국 공사는 시작도 하지 못해 군산시는 용도를 본 상태로 돌렸다. 담보가치가 없어지자 은행은 세풍에 압력을 가했고, 결국 당시 유종근 지사는 유탄을 맞으면서 5년형을 선고 받았다. 지역발전에 대한 광풍이 몰아치던 시절 F1 그랑프리가 장미빛 청사진에 그치지 않고 만일 성공리에 실현됐더라면 오늘날 전북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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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5.09.10 18:45

[오목대] 시진핑과 푸틴의 꿈 '생명 연장'

550년에 걸친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한 이는 진시황제(秦始皇帝)다.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며 중국 최초의 황제가 된 그는 강력한 통일국가를 만들기 위해 봉건제를 폐지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했으며, 문자와 화폐를 통일해 사회적 통합을 이끌어내고 도로망을 건설해 경제적 기틀을 다졌다. 그러나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통일 정책 등 개혁적 이면에 자신의 통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동원했던 가혹한 통치와 강제 노동 등 인권 탄압이 있기 때문이다. 독재자로서의 비판을 받는 정책은 여럿이다. 특히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 실용서를 제외한 각종 서적을 불태우고 유학자 수백 명을 생매장한 <분서갱유> 사건은 학문 발전을 200년이나 후퇴시킨 ‘가장 큰 죄악’으로 기록되어 있다. 역사가 기억하는 부정적 행적은 또 있다. 진시황제는 불로장생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중국을 통일하기 위해 끊임없는 전쟁을 벌여야 했던 그는 황제가 된 이후에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권력을 잡고는 불로장생에 대한 열망이 더 커졌다. 통치 후반에 들어서면서 그는 ‘늙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온갖 노력을 다 쏟았다. 연금술사들에게는 불로약을 만들게 하고, 신하들을 한반도와 일본까지 보내 ‘불로초’ 찾게 했다. 그러나 진시황제는 결국 ‘장생’하지 못하고 49세에 죽음을 맞았다. 후대의 역사가나 의학자들은 그가 수은이 들어 있는 ‘불로약’을 오랫동안 복용하면서 생명을 단축했다고 추정하고 있으니 그의 집착이 가져온 결말이 아이러니하다. 불로장생을 위해 노력했던 역사적 인물은 적지 않다. 그리스를 정복하고 인도까지 진출하며 불로장생의 비밀을 찾으려 했던 알렉산더 대왕, 신선의 섬을 찾기 위해 함대까지 보냈다는 한나라 황제 한무제, 연금술사들에게 불로장생약을 만들게 했다는 네로 황제, 태아나 어린아이의 피까지 마셨다는 청나라 말기의 서태후 등 영생을 갈망했던 권력자들은 뒤를 잇는다. 호르몬 치료, 방사능 요법, 인공 장기 등 의학적 실험에 앞장섰던 아돌프 히틀러도 있다.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생명 연장’을 주제로 나눈 비공식 대화가 공개돼 화제다. ‘장기 이식으로 불멸이 가능해진다’는 푸틴 대통령의 말에 ‘이번 세기 안에 인간이 150세까지 살 수 있다는 예측이 있다’는 시진핑 주석의 답은 대화의 절정이다. 장기 집권 중인 두 정상의 ‘영생에 대한 꿈’에 정치적 해석이 더해지지 않을 리 없다. 결코 함께 가지 않는, 갈 수도 없는 권력과 영생의 관계가 더 새삼스러워진다./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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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5.09.09 17:41

[오목대] 독서의 계절, 종이책의 귀환

그래도 계절은 바뀐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9월 초까지 이어진 극한 폭염 속에 집중호우가 더해지면서 여름 탈출이 쉽지 않다. 기다리던 가을 소식은 ‘책 축제’가 전했다. 독서의 계절, 축제의 계절을 알리는 책 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서울도서관이 기획한 ‘세계 최대 독서 릴레이(Largest Reading Relay)’ 기네스북 도전이 관심을 모은다. 행사는 오는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다.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전문을 시민들이 한 문장씩 이어 낭독하는 방식이다. 기네스북 도전 목표 인원은 3180명이다. 현재 기네스북에 등재된 독서 릴레이 세계 기록은 인도에서 ‘간디 자서전’을 낭독한 3071명이다. 올 전북지역 책 축제는 군산에서 신호탄을 올렸다. 군산시가 지난달 30·31일, 군산회관에서 개최한 ‘군산 북페어(BOOK FAIR) 2025’다. 지난해 첫 행사에 이어 올해 2회째를 맞은 군산 북페어에는 1만명에 가까운 방문객이 몰려 문전성시를 이뤘다. 가을의 길목에서 작가와 독자, 책과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이번 행사는 책과 함께하는 특별한 문화축제로, 책의 도시 군산의 새로운 이미지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군산의 책 열기는 곧바로 전주로 이어졌다. 독서의 계절을 맞아 전주한벽문화관과 완판본문화관에서 ‘제8회 전주 독서대전’이 열렸다. 9월 5일부터 7일까지 열린 올 행사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평산 책방지기’ 자격으로 책의 도시를 찾아 눈길을 끌었다. 또 이번 독서대전은 9월과 10월, 두 달 동안 지역의 대표 축제들이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전주페스타 2025’의 문을 여는 첫 잔치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디지털 시대, 일찌감치 종말을 예고했던 종이책이 ‘텍스트 힙(Text Hip)’ 열풍을 타고 다시 MZ세대의 손에 들리고 있다. 텍스트 힙은 ‘책의 본문’을 뜻하는 텍스트(Text)와 ‘멋있다, 개성 있다’는 뜻의 힙(Hip)이 결합된 신조어로 독서 활동이 개인의 개성과 멋으로 인식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지루하고 따분하게 인식됐던 독서가 남과 다른 나만의 독특한 취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젊은층에게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면서 책의 도시를 선언한 전주와 군산이 MZ세대의 감성 여행지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책을 매개로 한 감성 여행 트렌드는 세대를 초월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다시 독서의 계절이다. 책의 도시 시민으로서 소통과 공감을 중시하는 새로운 독서 문화, ‘텍스트 힙 열풍’을 외면할 수는 없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잠시 꺼두고 손때 묻은 종이책 한 권씩 들고 아이들과 함께 독서 삼매경에 빠져 보면 어떨까. 디지털 매체에 더 익숙해진 우리 아이들에게 이번 주말 종이책을 읽고 원고지에 손글씨로 독후감을 써보는 특별한 기회를 선사하면 어떨까.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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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5.09.08 18:29

[오목대] 정동영 화이팅

국회의원 등 선출직을 뽑을 때 그 사람의 역량을 우선적으로 살펴서 뽑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당원주권시대를 맞아 누가 유급당원을 많이 확보하느냐가 판가름 하기 때문에 내년 지방선거에 나설 선출직들은 지난 8월말까지 당원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사실상 당원을 모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자진해서 당비내서 입당하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대납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돈이 선거판을 좌우하는 금권선거가 그래서 판친다. 지역정서상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떼논 당상이나 다름 없어 국회의원 단체장 지방의원이 될려는 사람은 일찍부터 당원모집에 올인하면서 선거운동을 한다. 이런 식으로 선출직이 뽑히다보니까 한마디로 지역발전은 뒤전인채 입신영달하기에 급급했다. 운좋게 일부 명망가들은 낙하산 전략공천으로 국회의원이 된 경우가 있었다. 특히 운동권 출신들이 민주화에 기여했다고해서 정치에 입문,국회의원이 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세상이 빛의 속도로 발전해 가는데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되물을 수 있다. 갈길이 먼 전북은 그간 국회의원 등 유능한 인물을 뽑지 못해 뒤처지고 낙후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자신을 국회의원이나 지사 시장 군수 지방의원으로 뽑아주면 하늘에 있는 별이라도 따올것처럼 사자후를 토해냈지만 임기가 끝나면 아니올씨다로 끝난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정치인은 목소리만 크다고해서 똑똑하고 유능한 게 아니다. 전문성을 확보하고 중앙정치무대에서 인적네트워크를 갖춰야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학연관계와 전문성 여부에 따라 그 사람의 정치력이 좌우되기 때문에 유권자들도 껍데기보다는 내면의 세계로 판단해야 할 때다. 요즘 전북사회가 이재명정권을 탄생시켜 기대가 크면서 내심 걱정도 많다. 4명을 장관으로 발탁하면서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법사위원장이었던 이춘석의원이 주식차명거래로 민주당을 탈당,경찰수사를 받으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 같은 어수선한 상황속에서 희망의 빛을 통일부장관인 정동영의원이 높게 쏘아 올렸다. 5선인 정의원 만큼 영욕이 엇갈린 전북 출신 정치인은 없었다. DJ정권시절 재선 때 당내 정풍운동을 일으켜 일약 대선후보까지 오른 정 의원은 정치적 고향인 어머니 같은 전주에 항상 큰 빚을 졌다고 여겨왔다. 중앙정치를 하다보니까 자연히 지역구 관리에 소홀, 5번이나 당선시켜준 시민들 한테 비판도 받았지만 국회 과방위에 속해 있으면서 피지컬 AI에 천착,최근 테스트 베드 관련예산을 확보하는 등 1조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를 유치하고 예타까지 면제받게 했다. 그가 이렇게 큰 성과를 얻은 것은 중국이 그 분야에 매진한 것을 보고 보좌진 관계자등과 함께 줄기차게 공부해서 전문성을 확보한 것이 주효했다. 전주 완주의 산업 생태계를 바꾸는 동시에 전북을 피지컬 AI의 본향으로 만들어 놓았다. 과거 대선 후보 시절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당 대표가 비서진으로 있었지만 그에 아랑곳 않고 몽골기병처럼 앞만 보고 가는 그의 모습이 더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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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5.09.07 16:43

[오목대] 트럼프가 탐낸 모나미 서명펜

10여년 전, ㈜모나미 창업자인 송삼석(1928∼2022) 회장을 인터뷰했다. 서울 강남에 있는 항소(恒笑)에서다. 항소는 ‘항상 웃는다’는 뜻으로 그의 호(號)를 따서 만든 고급 필기구 수입·유통 회사였다. 당시 85세의 송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경기도 용인에 있는 모나미 공장과 이곳을 오가며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호처럼 웃음을 띠었다. 그러나 그가 한국 문구의 전설인 ㈜모나미를 일구기까지 웃음보다는 역경의 연속이었다. 군산에서 태어나 완주 삼례에서 자란 그는 전주북중과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6·25 때는 의용군으로 붙잡혔다 탈출하는 등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부산 피난시절 무역회사인 삼흥사를 거쳐 1955년 광신화학에 지분 10%를 받고 상무로 스카우트됐다. 송 회장이 볼펜을 처음 접한 것은 1962년 서울에서 5·16 군사쿠데타 1주년을 기념해 열린 국제박람회에서였다. 이때 광신화학의 문구류 수입처인 일본의 우치다요코(內田洋行)회사에서 파견나온 직원이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쓰는 걸 봤다. 그게 볼펜이었다. 당시 우리는 펜에 잉크를 찍어 쓰거나 만년필을 사용했다. 신기했다. 바로 ‘저걸 우리가 생산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계산기 10대(1대당 2000달러)를 사주는 등 호의를 베풀고 설득했다. 이 직원은 본사에 보고했고 일본 볼펜 시장의 90%를 차지하던 오토볼펜과 닿았다. 즉시 일본으로 날아가 볼펜 팁과 볼을 수입해 쓰기로 하고 잉크 제조기술을 전수받았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게 1963년 판매를 시작한 모나미153이다. 이 볼펜은 62년동안 36억 자루 넘게 팔렸다. 한 줄로 세우면 지구 13바퀴를 돌고도 남는다. 하지만 초창기는 판매가 부진해 사무실을 돌며 볼펜 나눠주기 판촉을 벌였다. 또 간혹 성분배합이 잘못돼 잉크가 새는 바람에 흰 와이셔츠를 못입게 돼 변상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했다. 공장에 불이나 폐허가 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각종 볼펜과 사인펜 매직펜 플러스펜 샤프펜 등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모나미 제품이 지난 25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韓美) 정상회담에서 화제가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명록에 서명한 이재명 대통령의 펜에 눈독을 들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 펜을 들고 “어디서 받은 것인가” “정말 멋지다(nice pen!)”며 “(다시 한국으로) 가져갈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즉석에서 이 펜을 선물했고 트럼프는 “영광으로 소중히 간직하겠다”고 웃었다. 이 펜은 한국 장인이 두 달간 원목을 깎아 만든 것으로 모나미 자회사인 플라맥스 펜촉을 장착했다. 전북에 연고를 둔 기업이 한미 정상회담을 부드럽게 이끄는데 도움을 준 것 같아 흐뭇하다. (조상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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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진
  • 2025.09.04 18:10

[오목대] 안미경중과 전북책략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대한민국은 판단 한번만 잘못하면 백성들이 죽어나가고 나라가 거덜나기 일쑤였다. 특히 중국이나 일본이 내부갈등으로 분열돼 있을 때는 한반도는 잠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대륙이나 섬이 통일되면 곧바로 이 땅은 가혹한 침탈의 대상이 되곤했다. 한번 피눈물을 흘렸으면 만사불여튼튼의 자세로 대비하는게 맞지만 한동안 평화가 찾아오면 쓰라린 예전의 기억을 잊고 또다시 방심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1636년 조선 인조때 겪었던 병자호란이다. 국운이 다해가던 명나라와 욱일승천의 기세로 떠오르던 청나라가 명운을 건 대회전을 앞둔 상황에서 조선은 광해군의 중립 실리외교, 줄타기 외교를 통해 간신히 예봉을 피했으나 정통 사대부들이 중심이 된 인조반정으로 인해 확실하게 명나라 편에 서면서 결국 이땅의 백성들은 청에 의해 무참히 도륙을 당했다. 실로 가슴아픈 일이다. 그런데 말이 중립외교, 줄타기 외교이지 고래싸움이 격화하면 격화할수록 결국 새우는 중립을 지킬 수 없고, 누구 편에 설것인지 확실한 선택을 강요당하게 된다. 구한말 이 나라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직면했다. 종주국인 청나라는 말할것도 없고, 명치유신을 통해 빠르게 부상하는 일제,그리고 서양세력인 미국, 러시아,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열강들은 침을 흘리며 이 땅을 노렸다. 마치 매미 잡으려는 사마귀를 참새가 노려보는 형국이었다. 때마침 1880년께 일본 주재 청국공사관의 황준헌은 조선책략(朝鮮策略)을 제시했다. 쉽게말해 조선이 살아남으려면 '친중결일연미'(親中結日聯美) 해야 한다는 거다. 결과적으로 조선은 친중도, 결일도, 연미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나라를 잃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 '안미경중(安美經中)'에서 탈피하는 외교노선을 공식화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선택이 과거에는 가능했지만, 현시점에서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형태가 됐다며 사안에 따라, 정세에 따라 전략적 역할을 하겠다는 '실용외교' 노선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3일 열린 중국의 80주년 전승절 기념식은 향후 미국과 중국의 강렬한 맞대결 양상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잘 보여줬다. 북한이 안보는 러시아, 경제는 중국이라는 소위 ‘안러경중’의 입장을 피력하면서, 대한민국은 미국과도 잘 지내고, 중국과도 잘 지내려는 중립외교, 줄타기 외교가 이젠 확실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비단 한 국가의 외교문제만 그런게 아니다. 가뜩이나 세력이 약한 전북으로서는 강원, 충청, 영남 가릴 것 없이 철저히 실용외교에 바탕을 두고 우군을 늘려나가야만 지금의 어려움을 해쳐 나갈 수 있다. 그게 바로 앞으로 추진해야 할 전북책략의 가장 핵심이다. 정치적, 문화적 이유로 우군을 줄이면 줄일수록 전북엔 미래가 없다. 배타성을 강화하면 강화할수록 우군은 줄어든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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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5.09.0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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