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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호남정맥] 둘째구간, 수분치∼710봉 지나 1㎞

지난해 11월1일, 자동차를 하산예정지인 옥산동고개에 두고 원수분으로 향했다.

 

아침 6시30분 수분치에 도착하니 부산 명산산악회 호남정맥 2차종주대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하여 이미 종주에 들어섰고 관광버스 기사 홀로 깊은 잠에 빠져있다.

 

수분치 절개지 왼쪽으로 두번째 구간의 시동을 걸었다. 무덤 2기를 지나 8분여쯤 나아가니 송전철탑이 웅웅거리며 정맥을 차지하고 있다. 송전철탑을 마주칠 때마다 그 흉물스러운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우리 산하와의 완벽한 -부-조-화-.

 

밤내재라 불리는 임도에 서니 오른쪽 산등성이에는 굴삭기 두 대가 산을 깎고 있고, 트럭들도 분주히 오간다. 어느 곳이든 훼손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밤내재를 지나 잘 조림된 전나무숲에 들어섰다. 깊은 잠속에 빠져있던 비둘기들이 갑작스러운 침입자의 발소리에 놀라 둥지를 털고 달아난다.

 

전나무숲을 지나 나란히 있는 묘 2기를 옆으로 오른쪽 희미한 길로 드니 진달래 나무같은 잡목이 쪄들어 있어 길을 뚫는데 무척 힘이 든다.

 

35분을 헤맨 끝에 겨우 정맥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안부에서 아래를 보니 밤내재 임도를 따라 오르면 정맥은 놓칠지라도 편히 오를 수 있을 듯 하다. 7시52분 빨간 깃발이 달린 삼각점이 있는 신무산에 올랐다. 여기에도 곳곳에 헤맨 흔적이 있으나 정맥은 왼쪽으로 이어진다. 급경사를 내려서면 오른쪽 대축목장 울타리를 몇차례 넘나들어야 한다.

 

일정이 바빠 발걸음을 서두는 우리와는 달리 한가로인 햇살을 즐기는 우공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신무산을 떠나 35분여 가면 대성고원 표지석이 있고 장수와 산서를 잇는 719번 지방도로가 포장돼 있는 차고개와 만난다. 절개지를 오르면서 표지를 달고 20여분 운행을 하니 합미성이 맞이한다. 후백제 시대 군량을 모아두던 성이라 하여 그 이름이 ‘합미성(合米城)’. 전북기념물 제75호라는 안내판을 읽어보니 합미성에는 지금도 지하수를 끌어 올려 사용했던 수도관이 남아있고, 수군지(守軍地)라는 말이 와전되어 쑤구머리로 불려지기도 한단다. 이곳에서 3㎞ 남짓 떨어진 신무산에 허수아비로 적을 유인하여 물리쳤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성터를 내려섰다.

 

오른쪽은 정상, 왼쪽은 금평마을과 갈리는 사거리가 나온다. 정맥은 직진하여 된비알(험상궂은 비탈)을 쳐야 한다. 된비알을 오르면 다리쉼이 편한 전망대 바위다. 오른쪽으로는 장수가, 왼쪽으로는 산서와 오수가 발 아래에 보인다. 다시 고스락에 올라서면 케른이 있고, 산 아래 석재공장에서 들리는 돌 깎는 기계음이 안타깝게 들린다. 여기서도 자연은 멍들고 있다.

 

10시20분, 중계소 송신시설·콘테이너 박스등 요란한 시설물이 정맥을 깔고 앉아 정상을 비켜주지 않는 팔공산을 지난다. 정상을 지나면 곧 헬기장이고, 30여분이면 팔공산 정상 2.8㎞, 서구리재 0.2㎞, 백운면 신암리 2㎞라는 이정표가 있다. 신무산에서부터 서서히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 정맥은 팔공산에서부터 백두대간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북쪽을 향한다. 팔공산에서 40여분이면 서구리재에 도착한다. 장수군쪽은 도로포장 공사가 마무리돼 있지만 진안군쪽은 길이 막혀있다. 서구리재 해발 8백50m라는 안내판과 짓다 만 주택 한 채, 그리고 샘도 하나 있다. 잠시 다리쉼도 하고 간식도 챙겼다.

 

11시35분, 1070봉에서 점심을 먹었다. 도통 식욕이 돌지 않아 적당히 시장기만 때우고 12시10분 다시 출발. 오른쪽 가까이에 봉황산이, 왼쪽에는 임실 성수산과 진안 선각산이 우뚝 서있다. 오른쪽 장판리(판둔) 2.0㎞ 이정표를 지나 15분여 운행을 하니 ‘오른쪽 휴양림 0.5㎞, 왼쪽 백운신암리 1㎞, 삿갓봉 3㎞’라 쓰인 이정표가 서있는 오계치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신암마을 쪽으로 40여분 하산하면 섬진강 발원샘인 대미샘이 있다.

 

오계치에서 30여분 급경사를 오르면 조망이 탁트인 전망대 바위가 있고, 고스락을 내려서 휴양림으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지나면 정맥은 왼쪽으로 돈다. 팔공산에서 여기까지는 등산로도 잘 닦여져 있고, 이정표도 곳곳에 서있다.

 

하지만 지금부터 고단한 행군이 시작된다.

 

1070봉을 오르는 길은 지독한 잡목숲을 지나야 한다. 오계치를 떠나 1시간20분이면 홍두괘치를 지나고 다시 30여분후면 헬기장이 나타난다. 백운 덕태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있지만 덕태산은 오르지 않고 지났다.

 

16시10분, 주변이 온통 고랭지 채소밭으로 변해버린 신광치에 도착했다. 신광치는 진안군 백운면과 장수군 천천면을 잇는 비포장도로이다. 신광치 왼쪽의 인가에서 물을 보충했다.

 

인가에서 11시방향으로 채소밭을 지나 능선에 오르면 주능은 이어지고, 주변은 또 온통 채소밭이다. 채소밭 가운데로 번호표를 단 채 식사에 열심인 우공 일곱마리가 보인다. 불청객에게는 관심도 없는지 도통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밭 가운데 만들어져 있는 헬기장을 지나 힘든 오르내림 끝에 17시27분 진안 성수산에 올라 삼각점을 확인했다. 이 구간은 잡목이 심하여 작은 생채기가 몸 여기저기에 생겼다. 좋아서 하는 일 누구를 원망하랴.

 

성수산을 내려서면 헬기장이고 그만한 오르내림을 계속하는 동안 환상의 낙조를 구경했다. 서쪽 하늘에 저녁노을을 만들며 해는 서산 마루를 넘는다. 18시에 헬기장이 되어버린 710봉을 지나 30여분 운행을 하고 보니 산속은 완전한 어둠이다. 열사흘밤의 곱디 고운 달빛은 이내 숲에 가려지고 헤드렌턴을 밝혀 보지만 독도(讀圖)는 불능이다.

 

선인동 근처의 능선에서 무덤을 단장하기 위해 만든 길을 따라 왼쪽 선인동으로 탈출했다. 진안으로 나가는 경운기를 얻어타 그나마 다행이었다. 차를 세워둔 옥산동 도로에 도착하니 벌써 19시이다.

 

산행표(21㎞, 11시간50분)

 

수분치 1.7㎞ - 신무산 1.5㎞ - 차고개 2.5㎞ - 팔공산 5.7㎞ - 오계치 5.1㎞ - 신광치 2.1㎞ - 성수산 2.4㎞ - 선인동 탈출지점

 

---성수산(8백75m) ---

 

▶개요 및 조망

 

백두 대간이 장안산 근처의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으로 갈리어 북직하며 마이산,부귀산까지 뻗어 가는 중간지점에 성수산을 솟구쳐 놓았다. 성수산(875m)은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지만 고려와 조선조의 건국 설화가 얽혀있는 명산으로 정상에 오르면 시야가 탁트여 사방으로 전망이 빼어난 곳이다.

 

험준한 산세는 건국설화 뿐만 아니라 이석용 의병장의 의병활동의 근거지로 또는 6.25때 수난을 겪은 애환이 서린 산이다.

 

 

▶문화유적

 

[용암리 석등/보물 제267호]관촌에서 옥정호 쪽으로 8km 정도 내려가면 신평면 용암리 북창마을로 들어가면 중기사가 있고 그 아래 거대한 석등이 있는데, 높이가 무려 5.18m나 되는 이 석등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크며, 신라시대 석등과 같은 양식으로 약 1,200여년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상이암과 사적]성수산 휴양림 위로 1.5km를 오르면 상이암이 나온다. 한말에 호남의병대장 이석용 휘하의 의병들이 절에 주둔하자 왜군들이 불태웠다.

 

[신흥사/유형문화재 제112호]관촌소재지에서 방수리쪽으로 8km즘 들어가면 신흥사가 있는데, 사자산(522m)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이 절은 백제 성왕때 진감국사가 창건한 고찰이며, 4백평의 사찰 건물과 3백여명의 신도가 있었던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오수리 석불/유형문화재 제89호] 오수면 관월리 뒤쪽에 절터도 아닌 이곳에 쓸쓸히 마을을 지키고 있는 이 석불은 조성연대나 내력에 대한 기록은 없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마을 아낙네가 뒷산에서 굴러오는 바위를 보고 [저것 봐라]고 소리지르자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이것이 석불인 것을 알고 마을사람들이 정성껏 불공을 드렸다. 그 뒤 1백년 후 최경태가 움막을 지어 봉안하였으며, 80년전에 마이산에서 석탑을 쌓고 있던 이갑용처사의 꿈에 '옷을 벗고 있으니 집을 지어 달라'는 계시를 받고 개축하여 주었다고 한다.

 

[소충사와 이석용 의병장]임실역에서 님원쪽으로 1.5km지점 신촌마을에서 동쪽으로 3km를 가면 성수면 소재지에 소충사가 나온다. 소충사는 의병장인 이석용을 비롯 28명의 의사들의 우국충정을 추모하기 위해 학당마을에 세운 사당이다.

 

[의견비와 오수] 전주에서 남원쪽으로 40km 가면 오수면소재지가 나온다 오수(獒樹)라는 지명은 1천여 년전 신라때 지사면 영천리의 김개인 개를 몹시 사랑하여 출타할 때마다 데리고 다녔다.

 

어느날 주인이 장에 다녀오면서 술이 취해 잠이 들었다. 때마침 산불이 나서 주인의 근처로 타오자 주인을 깨울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나, 소용이 없자 물속에 뛰어 들어가 온 몸에 물을 묻혀 불길을 겨우 막고 쓰러져 죽고 말았다. 잠에 깨어난 주인이 모든 상황을 짐작하고 개의의리에 감탄하여 개를 묻어 주고 무덤에 지팡이를 꽂아 놓았다. 그 뒤 지팡이가 싹이 트고 큰 나무로 자라서 개나무[개오 獒자, 나무樹자] 오수라고 불렀고, 지금도개의 무덤과 나무가 있는 곳이 '원동산'이다. 도로변에 의견비를 세우고 작은 고원으로 조성하였고, 해마다 '의견제'를 지낸다.

 

[운서정/유형문화재 제135호] 관촌 사선대 오원천을 감돌면서 깍아 세운 듯한 절벽위 40m의 높이에 우뚝 세워진 운서정은 이 주변의 풍광과 어울려 운치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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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곤 baikkg@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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