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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디지털 민주주의

아무래도 컴퓨터엔 별로 자신이 없다.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 기술이 시공간을 비약적으로 압축시키고 있는 이른바 '디지털 시대'에, 어쩐일인지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주눅부터 드는게 사실이다. 컴퓨터와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직은 컴퓨터 모니터보다는 텔레비전이, 키보드보다는 리모콘이, 인터넷보다는 신문이 더 익숙하다.

 

최근, 큰마음 먹고 새집을 하나 장만했다. 문패도 반듯하게 달고, 현관도 예쁘게 꾸미고 몇 개의 방엔 나의 생각과 계획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놓았다. 그럴듯한 주소도 받았으니 이제 집으로서 갖출 것은 모두 갖춘 셈이다. 사이버 공간의 네티즌 모두에게 개방된 이 집에 손님이 하나 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들은 돌아가는 길에 따뜻한 격려의 말이나 호된 질책 혹은 그들의 바람과 걱정을 잊지 않고 남겨두고 있다.

 

텔레비전보다 컴퓨터를 먼저 켜고, 리모콘 대신 마우스를 잡은 것은 사이버 공간에 새집을 마련하고 부터이다. 어렴풋이 생각되던 전자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해서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된 것도 아마 그 이후부터라고 생각된다.

 

텔레데모크라시, 전자민주주의 혹은 E-폴리틱스 등의 신조어는 어느새 새로운 세기, 새로운 정치를 상징하는 용어로 자리잡고 있다.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 나날이 복잡해지는 정치구조 하에서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생각되던 대의민주주의가 국민의 참여부족이나 투명성의 미흡으로 인해 그 한계가 지적되면서 전자민주주의가 이러한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인터넷 혁명'이라고 일컬어지는 정보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전자민주주의는 그 동안의 정보독점 문제나 정책 형성 및 집행과정의 폐쇄성 문제를 보완·해결해 줄 수 있는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물론, 아직은 기존의 대의민주주의를 완전히 대체하는 전자민주주의의 출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의제의 개선과 개혁을 위해 전자민주주의가 기능할 수 있는 기반은 이미 충분하게 조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인은 온라인 상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유권자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사이버 공간에서의 항시적인 접촉은 정치인으로 하여금 국민의 요구에 더 충성스럽게, 더 빨리 응답하도록 하고 있으며 국민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인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입장에서도 국민에게 정부가 가진 정보를 전자적으로 신속·정확하게 공개함으로써 투명한 정부를 실현할 수 있고, 원거리에 흩어져있는 일반 시민들이 디지털화한 통신매체를 이용해 정부와 대화하고 공적 토론에 참가하며 직접 공공정책 결정에 참여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정부의 신뢰성을 제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전자민주주의의 미래 역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보통신 기술의 급격한 발달은 그 한편으로 지식과 정보의 격차가 소득의 차이를 만들어 정보이용능력이 없는 디지털 빈곤계층을 양산함으로써 소위 '정보양극화 사회'를 출현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기본적으로 익명성과 개방성을 원칙으로 하는 인터넷상에서 거친 욕설과 인신공격, 근거 없는 비방이나 여론조작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자민주주의의 미래를 그저 낙관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이버 공간의 비민주성을 적극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전자민주주의의 밝은 미래상을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의 쌍방향성'은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크다.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제안하되 타당한 비판은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보다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커뮤니케이션 문화가 정착될 때, 전자민주주의는 미래학적인 꿈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사이버 공간을 민주적으로 만드는 열쇠는 바로 사이버 공간의 주인인 네티즌이 쥐고 있다. 네티즌의 자율성과 책임성만이 전자민주주의의 꽃을 활짝 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 정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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