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도는 새천년을 맞이하여 어느 해보다도 들뜬 마음으로 지냈던 한 해였지만 의약분업의 시행과 의료 파행사태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겪었던 한 해이기도 하였다. 제도의 발전과 국민 건강의 증진을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 할 홍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상채기와 감정의 앙금을 남기고야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사람들은 얼마 전 마친 드라마에서 보여주었던 허준의 모습을 그리워했었다. 드라마에서 비춰진 허준의 모습은 다소 과장되고 극화된 것일 수 있지만 진정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인술을 베푸는 참의료인상이 현실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열망하였던 것이다.
허준 선생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상의학을 창시한 이제마 선생에 대해선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사상의학이라는게 별게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한의학을 전공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한글의 창제와 더불어 조선시대의 가장 위대한 세계적 창조 중의 하나라고 본다.
2000년 음력 9월 21일 서울에서 이제마 선생 서거 100주기 기념행사가 있었다. 선생의 유언 중에는 "내가 죽은 지 100년이 지나면 사상의학이 세상에서 널리 쓰이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있었기에 이날 행사는 더욱 뜻깊은 것이었다. 선생의 예언이 어느 정도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상의학은 2000년 이상 이어져 온 한의학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은 혁명적 의학론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하기는 힘들지만 논리구조와 체계가 정밀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임상에서 그 효용성이 증명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연구재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마 선생은 1837년 함흥에서 서자로 출생하였으며, 평생 유학자로서의 삶과 의학자로서의 삶, 그리고 일부 관리로서의 삶을 가졌고, 1894년 동의수세보원을 통하여 사상의학을 세상에 내놓았다.
양반 가문의 서출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허준 선생과 공통점이 있다. 시대상황도 조선 말기 혼란기였다는 점이 허준의 임진왜란 전후의 혼란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삶의 궤적은 달랐지만 한평생 추구한 의학정신이 서민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도 같다. 허준의 동의보감이 조선의 민중들이 조선의 땅에서 나는 약으로 쉽게 찾아 쓰게 한 것이라면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은 서민들 누구나가 자기 체질을 알아서 질병을 미리 예방하고 간단한 병은 스스로 치료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두 선생은 비싸지 않으면서도 효과가 좋은 약들을 중심으로 처방하였다.
이와 같이 허준 선생의 의학정신은 이제마 선생에게 그대로 이어져 내려왔다.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제마 선생의 동의수세보원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동의수세보원의 아주 많은 부분이 동의보감의 글을 인용한 것이며, 그는 허준 선생을 중국과 한국의 의학사에서 최고의 의학업적을 쌓으신 분이라 추앙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그분들을 한번 더 떠올리는 것은 비단 우리 민족의학사에서 위대한 점 때문만은 아니다.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의학을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분들의 인술제민(仁術濟民)의 정신과 의학정신을 잊지 않아야 되겠다는 2001년 새해의 다짐이기도 한 것이다.
/송정모 (우석대 한방병원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