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6-03-25 03:56 (수)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경제 chevron_right 경제일반
일반기사

[동진강] 제방.방조제




 

비옥한 충적평야를 굽이치는 자유곡류 하천이었던 동진강은 직강공사등 대규모 치수사업이 실시되면서 그 모습이 크게 바뀌었다.

 

식량수탈 목적으로 미곡증산 계획을 추진한 일제는 1920년대 중반부터 동진강 일대 치수사업을 본격화, 인공제방을 쌓고 강 하구에는 방조제를 축조했다.

 

또한 해방 이후에도 제방축조와 하안정비 공사가 지속돼 곡선형 수로였던 동진강은 자연하천의 모습을 잃고 인공하천에 가까운 형태로 변모됐다.

 

1920년대 후반 운암제가 준공되고 김제·정읍 용수간선등 대규모 수리시설이 들어섰으며 섬진강수력발전소의 방류수가 흘러나오는 정읍 칠보면 시산리에서부터 강의 거의 모든 유로를 따라서 인공제방이 축조됐다.

 

그러나 동진강의 제방마루는 일부구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포장상태로 노면이 불량한데다 그 폭도 차량 한대가 겨우 지날 정도에 불과, 제방의 활용도는 낮은 편이다.

 

상류에서부터 하류까지 거의 전 구간이 포장돼 있고 차량 2대가 교행할 수 있을 정도로 폭도 넓어 인근 주민들의 교통로 역할까지 해내고 있는 만경강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동진강에서 장마철 집중호우시 고수부지 농경지는 종종 침수됐지만 제방을 위협할 정도의 유량증가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단지 김생기(75) 정읍향토문화사료관장의 설명에 따르면 1973년 8월 정읍 칠보면 일대에 약 2시간동안 2백30mm가량의 집중호우가 내려 최악의 물난리가 발생,일제시대 축조된 강 제방이 모두 유실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의 제방은 당시 현지를 시찰했던 김종필총리가 수해복구비를 지원, 재축조된 것이라는 게 김관장의 설명이다.

 

직강공사로 예전의 물길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지만 신태인 화호(禾湖)리와 신덕(新德)리,감곡면 삼평(三坪)리, 부량면 신흥(新興)리 등에서 아직도 곡류하천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하천 제방공사를 맡고 있는 익산지방국토관리청에서는 현재도 원평천등 동진강 지류에서 하천 개수사업의 일환으로 제방축조와 호안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강폭이 급격하게 넓어지면서 바다와 접하게 되는 23번국도 동진교 인근에서부터는 방조제(防潮堤)가 나타난다.

 

바닷물로부터 간척농지의 염분피해를 막아내고 있는 동진강하구 방조제는 일제시대 공유수면 간척에 의해 축조됐으며 이후 농장보호를 위해 개인이 관리하다 1963년 12월 방조제 관리법이 제정됐다.

 

동진강 하구에 접해있는 방조제는 광활방조제와 대창·서포·도선장·계화방조제등이 있다.

 

김제시 광활면 은파(銀波)리에 위치한 광활(廣活)방조제는 1924년에 준공됐으며 9.5km길이에 5개의 갑문이 설치돼 있다.

 

또 1927년 완공된 대창(大倉)방조제는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 일대 원평천과 신평천 하구 3.7km구간을 잇고 있으며, 길이 5.3km에 이르는 서포(西浦)방조제는 1929년에 준공됐다.

 

행정구역상 부안군에 위치한 방조제로는 동진면 동전(銅田)리와 장등(長登)리 안성(安城)리 6km구역에 설치된 도선장(渡船場)방조제와 계화방조제가 있다.

 

특히 계화지구농업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62년 착공, 1968년 10월에 준공된 계화(界火)방조제는 길이 12.8km에 이르는 대규모 제방으로 계화도 간척사업의 토대가 됐다.




동진강 제수문

 

동진강은 만조때 바닷물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 감조(感潮)하천으로 하구에 넓은 간석지가 분포돼 있다.

 

하천이 인위적으로 정비되기 이전에는 정읍천 합류지점인 신태인 근처까지 바닷물이 밀려들었다고 한다. 즉 19세기말 만석보가 있었던 이 지점의 해발고도가 4∼5m에 불과, 홍수와 사리가 겹치는 때면 염분피해가 심각했다.

 

예전에는 어선들이 바닷물을 따라 정읍 이평면 부근까지 들어와서 배가 떠다니는 평야라는 뜻에서 ‘배들평야’라 불렸다는 게 농업기반공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즉 ‘이평(梨坪)’이라는 현 지명은 우리말을 한문으로 옮기면서 착오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감조구간이 넓은 동진강에서 유역 평야지대를 관개(灌漑)하기 위해서는 밀물의 유입을 막는 제수문(制水門) 설치가 필수적이다.

 

이에따라 농업기반공사 동진지부(당시 동진농조)에서는 29번국도와 30번국도가 만나는 부안군 백산면 용계(龍溪)리 시기마을에 지난 1979년 동진강제수문을 설치했다.

 

폭 10m 높이 3.85m의 수문 8개로 구성, 총연장 1백m인 이 제수문은 배수량이 초당 1천2백16㎥에 이른다.

 

강을 가로막고 있는 제수문은 염분의 유입을 차단하는 동시에 농업용수를 저장, 공급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즉 조수간만의 차이에 따라 수문 개폐를 반복하지만 영농기에는 인근 부안과 정읍지역 3천여ha의 평야지대에 공급할 농업용수를 저장하게 된다.

 

한편 동진강 하구로 유입, 바닷물과 직접 만나는 원평천과 고부천·신평천등의 지류에도 제수문이 설치돼 주변 농경지의 염분피해를 막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종표 kimjp@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경제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