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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외국인근로자 의료보장 시급

 

 

 

만약 누가 내게 최근 맡고 있는 일 중에서 가장 보람있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외국인노동자 의료공제회 활동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 나라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지난해에 50만 명을 넘어섰다. 작년 법무부 발표에 따르더라도 그 중 20만명 이상이 불법체류자이며, 이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기피하는 전형적인 3D 업종에 종사하면서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환경 속에서도 '코리안 드림'을 일궈가고 있다.

 

 

자본에 국경이 없는 세계화의 시대에, 노동시장 역시 국경이 있을 수 없으며 시장논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명제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하여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하면서도 이들에 대한 신분적, 법적 보장 조치는 전혀 취하지 않고 있다.

 

 

이들 불법체류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매우 크지만, 실제로 외국인노동자들을 만나보면 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임금체불이나 열악한 근로환경이 아니다. 자신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고 저개발 국가에서 수입된 값싼 노동력, 즉 뭔가 우리보다 저급한 족속으로 취급하는 데 대한 모멸감이고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에서 오는 불안감과 정체성 상실이 더 큰 고통인 것이다.

 

 

나의 사촌 형님 중 한 분은 60년대 후반 독일로의 인력송출이 한창일 때 광부로 들어가, 지금은 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지만, 아직 그곳에서 살고 있다. 형수도 당시 취업을 위해 독일로 온 간호사였고, 이들 부부의 두 자녀는 현재 베를린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사촌형님을 만나기 위해 내가 10년 전쯤 독일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교민들에게 60년대 말과 70년대 초 독일로 이주한 한국인 노동자들이 3D 업종에 종사하면서 느꼈던 그 고통과 외로움에 대해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 학살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독일 사람들은 그 죄과를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이방의 노동자들에게 자국 노동자와 동일한 대우를 해 주었다. 물론 의료혜택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어떤가? 과연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그렇게 잘 살게 되어서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외국에 이주한 노동자로 나가 외화벌이를 하였던 과거를 잊고 이제는 이 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학대하거나 착취한단 말인가?

 

 

이는 정말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세계화의 구호가 소리높이 외쳐지고 영어를 잘하는 것이 생존의 본질처럼 추앙받는 시절에, 나는 그 세계화의 출발이 이 나라에 들어 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생존권 문제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사람이 아프거나 중병에 걸리는 것을 어찌 사람의 뜻으로 통제할 수 있겠는가? 전장에서도 부상자는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 것이 의료의 본질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 들어 온 이들 외국인노동자, 특히 불법체류자들은 완전히 의료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고,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이들에게 병원의 문턱은 너무나 높다.

 

 

외국인노동자 의료공제회는 이러한 현실을 자력으로 타개하기 위해 지난 1999년 9월에 출범했다. 현재 뜻을 같이한 300여 협력 의료기관이 참여하고 있고, 5000여명의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공제회는 외부의 후원금과 조합원들이 매달 5000원씩 내는 회비로 입원 및 외래 환자에게 재정 지원을 하고, 외국인노동자에게 병원의 문턱을 낮춰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궁극적 해결을 위해서는 이들의 신분적 조건을 바꿈으로서 사회적 차원에서 인권을 보장할 국가적인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언제까지 지금처럼 불법적 영역에 방치한 채 민간에서 알아서 책임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이왕준 (인천 사랑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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