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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프랑스월드컵 (上)

프랑스가 월드컵 개최지로 결정된 것은 1992년 7월 2일 취리히 FIFA 집행위원회에서 였다.

 

모로코와 경쟁을 벌인 프랑스는 1938년 제3회 월드컵대회를 주최한 이후 60년만에 두번째 대회를 갖게됐다. 멕시코와 이탈리아가 이미 두 차례씩 월드컵을 치른데 이어 프랑스도 월드컵을 두번 개최하는 세번째 나라가 됐다.

 

98 프랑스 월드컵대회는 종래 24개국에서 32개국이 본선에 출전하는 첫 대회였다. 그만큼 문호가 넓어지기는 했지만 실력이 향상된 축구 후발지역들 중에서 특히 아프리카 지역의 축구수준이 크게 향상됐고 아시아 국가들도 이에 버금가는 발전을 했다. 예선에 참여하는 나라의 수가 대폭 증가해 본선으로 가는 길은 더욱 험난하고 좁아졌다.

 

FIFA의 2백여 회원국중 1백72개 나라의 대표팀들이 참여한 프랑스 월드컵예선은 96년 3월 1일부터 97년 11월 30일까지 벌어져 주최국과 전 대회 우승국을 제외한 30개의 본선진출국이 결정됐다. 1997년 6월 2일 아시아 2조의 이란은 몰디브를 무려 17-0으로 이겨 월드컵 사상 최다골의 기록을 낳았다.

 

한국은 홍콩과의 어웨이 경기로 1차예선을 시작했다. 홍콩은 1997년 7월 1일자로 영국으로부터 임차가 종료돼 중국에 반환될 예정이어서 독립팀으로서의 마지막 월드컵예선이 될 상황이었다. 그들은 월드컵에 한번도 나가보지 못하고 예선에 참가하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한국과의 첫 경기에서는 많이 발전한 축구실력을 과시했다.

 

태국과의 어웨이 경기에서는 한국프로팀 안양LG에서 훌륭한 선수생활을 했던 피아퐁에게 한골을 내 주긴 했으나 가볍게 이겼다. 홈 앤드 어웨이로 태국과 홍콩을 물리친 한국을 비롯한 10개 조 1위팀들은 원래 제3국에 모여 마지막 예선을 치를 예정이었으나 중동과 극동의 몇몇 국가들 사이에 지역적 이점을 이용하려는 의견이 상충됐다.

 

그래서 조별 홈 앤드 어웨이방식으로 결정됐다. 한국은 중동국들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조편성에서 유리하게 배치됐다. 지난 미국대회에 출전했던 한국과 사우디가 시드배정을 받아 A조에 사우디, B조에 한국을 놓은 다음 다른 팀들은 추첨으로 나눴다. 한국과 겨룰 나라는 일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아랍에미리트로 편성돼 걱정은 다소 덜었다.

 

최종예선에서 한국의 최대 난관은 일본과 아랍에미리트로 예상됐다. 한국은 첫 경기에서 카자흐스탄을 3-0으로 가볍게 물리쳐 좋은 출발을 보였다. 최용수는 이 경기에서 아시아 최고 스트라이커 답게 폭발적인 득점력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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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춘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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