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미국 대통령중 리차드 닉슨은 비교적 후한 점수를 못받는 대통령 축에 든다. 헨리 키신저 같은 훌륭한 보좌관 덕택에 중국과 국교를 트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이란 희대의 스캔들로 결국 대통령직을 사임한 그다. 스스로 진보주의 세력이나 언론들로부터 핍박받고 있다고 믿은 그는 일종의 피해망상증에 시달리면서 지식인들을 경멸하는 등 감정의 기복이 심한 지도자로 평가 받았다.
그런 그였지만 그의 명연설(?) 하나는 오늘날까지 두고두고 정치권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일명 '얼룩이 연설'이라 불리우는 30분자리 TV연설이 그것이다. 1952년 미국 대통령 선거때 아이젠하워의 러닝 메이트로 출마한 닉슨은 한 기업단체로부터 1만8천달러의 불법 선거자금을 받았다. 뉴욕 포스트지가 이런 사실을 폭로하자 여타 신문들도 사설등을 통해 이를 집중공격하며 그의 후보사퇴를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궁지에 몰린 닉슨이 TV에 나와 한 연설이 바로 '얼룩이 연설'이다.
닉슨은 '내가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만 그 돈을 나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았다'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재산과 부채내역을 상세히 공개했다. 당시 정치인들에겐 전례가 없던 일종의 회계보고서를 내놓은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나온것이 예의 '얼룩이 연설'이다. 그는 한 지지자로부터 얼룩이라는 이름의 강아지 한 마리를 개인적으로 선물받았지만 남들이 뭐라고 하든 우리는 그 강아지를 소중하게 간직할것이라고 말을 맺었다. 법과 선의(善意)의 경계를 감성에 호소한 그의 연설은 매우 감동적이었다는게 시청자들의 평이었다.
노무현대통령의 재신임 제의로 나라안이 요동치고 있다. 측근중의 측근인 최도술씨의 SK비자금 수수혐의가 그 진원이다. 닉슨의 경우처럼 노대통령이 직접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 돈의 성격은 선의의 '얼룩이'를 넘어 정경유착 비리의 표본처럼 비쳐지고 있다. 도덕성을 정치새명으로 정상에 오른 노대통령이 국민의 감성에 호소하는듯한 국민투표 제의로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기자간담회나 국회 시정연설에서 보인 그의 직설적 호소기법은 얼핏 '얼룩이 연설'을 연상시킨다. 물론 그의 그런 호소가 감동으로 작용할지 한갖 변설(辯洩)로 그칠지는 검찰의 엄정한 수사결과가 나와 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국민투표의 표심은 그 다음에 향방이 좌우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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