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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우울한 세밑

 

어느 해라고 다사다난(多事多難)하지 않았던 해가 있었겠는가 마는 올해는 유독 맥풀리는 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아니었는가 싶다. 날만 새면 싸움질만 해대는 정치권이 그렇고, 이에 질세ㅏ 내 몫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며 극한투쟁만 일삼은 민심이 그렇고, 불황으로 시작해서 불황으로 끝난 경제가 그렇다. 어느 것 하나 속시원히 뚫리는 것은 없고 온통 맺히고 헝크러지는 것들 뿐이다.

 

정치하는 사람들 부터 제정신이 아니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턱이 없다. 내년 총선에만 정신이 팔려 경제가 망가지든, 나라가 갈갈이 찢겨지든 정치놀음에만 몰두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이 성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장기 불황의 여파로 법원에 접수되는 가압류와 가처분 신청이 사상 최대치(전년 대비 2배)를 기록하고, 체불임금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 전년보다 44%나 증가했다. 가계대출 또한 5백조원대를 육박하여 가구당 평균 3천1백만원의 빚을 지고 있고, 청년실업률이 7%대를 넘나들어 이태백(2십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신조어가 떠돌아다니고 있다. 그뿐인가. 카드빚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부지기수고, 거리에는 노숙자들이 넘쳐 나고 있다. 그래도 정치인들은 눈하나 깜박하지 않는다. 인터넷 사이트에 '한 탕 하자'는 글들이 스스럼없이 올라오는 세상인데도 정부는 도대체 딴전이나 피우고 있으니, 이나라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올해는 유난히 많은 고승들이 입적을 했다. 3월말 서암스님의 입적을 시작으로 9월에 고송스님, 11월에 청화·정대·덕암스님, 12월에 덕명·월하·서옹스님이 차례로 열반에 들었다. 어느 칼럼리스트는 "세상이 얼마나 더 험악해지려고 덕이 높은 스님들이 서둘러 저 세상으로 가시는지 두려움이 앞선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임종계(臨終係)를 남겨달라는 제자들의 간청에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하라”는 말을 남긴 서암스님의 높은 경지가 더 경외스럽게 느껴지는 세밑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지만, 올해는 기업들조차 불법 정치자금 대느라 거덜이 났는지,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한다.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어느 소녀의 보도사진 한 장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정말 우울한 세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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