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이 있다.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 우리는 예전의 일을 너무 쉽게 잊는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반복되면 쉽게 같은 돌부리에 두번 넘어지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25년전 있었던 12·12사태는 아직 잊혀져서는 안될 일 중의 하나이다.
12·12 사태가 일어난 때는 1979년 12월12일. 이 사태는 1964년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만들어 활동해 온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이 당시 계엄사령관이자 육군참모총장 정승화 대장을 체포함으로써 계엄사령부와 육군본부 등을 장악하는 군사반란사건으로 규정된다.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이 정승화 대장을 체포한 표면적인 사유는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았으며 10·26사건 수사에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의 이유가 권력찬탈이라는 사실은 이제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계엄사령관 정승화 체포는 주도면밀한 계획에 따라 진행되었다. 그 해 11월 중순 전두환 합수부장은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정 총장의 체포를 사전에 모의하였다.
이들은 또한 20사단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박희도, 3공수여단장 최세창, 5공수여단장 장기오 등과도 사전에 접촉한다. 그리고 12월 초순 전두환 합수부장은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과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에게 정승화 연행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하게 된다.
허삼수·우경윤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병력 50명은 사전에 모의한 대로 12일 저녁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남입한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총장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무력제압 과정을 거쳐 정승화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하는데 성공한다.
이러한 정 총장의 체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이들은 최규하 대통령을 협박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 결과 최 대통령은 13일 새벽 정승화의 연행을 사후 재가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신군부세력은 제5공화국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우리 옛 속담에 “기둥을 치면 보가 울린다”고 했다. 12·12 군사반란은 이미 5·18 민주항쟁을 예고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일너사너는 안 될 일이었다.
물론 “열 사람이 지켜도 도둑 하나를 못 잡는다”는 말처럼, 계획적으로 저지른 신군부의 군사반란을 막기는 쉽비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군사반란을 막지 못해서 입은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금도 아쉽고 잊을 수 없는 역사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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