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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서의 향기] 설령 결혼해도 모여살지는 못해

長興郡에 거주하는 白日春의 호구단자에 기재된 노비들. 노비 누구 소생의 노비인지, 매득한 노비인지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desk@jjan.kr)

조선시대의 노비들은 양반이나 평민처럼 결혼을 하고 가족도 구성하고 살았다. 그러나 그들의 사회경제적인 처지가 열악하였기 때문에 결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또 가족들이 온전하게 모여 사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우선 원하는 상대를 만나 결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만큼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조선시대는 요즈음과 달랐기 때문에 양반들조차 자신의 자유의사대로 결혼을 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노비들은 이와는 크게 달랐다. 상전에 메인 몸이었기 때문에 결혼을 할 때에도 상전의 허락이나 묵인이 있어야 하였다. 상전의 의사나 이익에 반하는 결혼은 아예 할 수도 없었다.

 

가령 나의 집 사내종이 이웃집 계집종과 결혼을 할 경우, 그들 사이에 낳은 자녀들은 종모법(從母法)에 따라 모두 계집종의 상전 즉 이웃집의 소유가 될 뿐만 아니라 나의 집 사내종이 처나 자식을 본다는 이유로 이웃집에 가서 붙어 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나로서는 사내종까지 빼앗기는 결과가 되니 이를 극력 저지할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노비의 결혼은 그들 상전의 이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노비들의 자유의사에 의할 수가 없었다.

 

결혼한 후 단란하게 가족끼리 모여 사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상전의 생활이 어려워지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토지와 노비를 타인에게 매매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럴 경우 노비 가족이 각자 다른 상전에 팔려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았으며 그 결과 생이별을 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또 상전이 그들의 자녀에게 토지나 노비를 상속해 줄 경우, 자연히 노비 가족들은 새로운 상전을 따라 뿔뿔이 흩어질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노비 가족들이 온전히 모여 단락하게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1740년(영조 16) 경 전라도 순창군에 살았던 사내종 태봉은 정읍에 사는 자신의 상전 황우정이 자기의 처와 세 명의 딸을 팔려고 하였다. 부지런하여 상전 몰래 제법 돈을 모아놓았던 태봉은 이 기회에 처와 딸들을 사서 속량시키려고 하였다. 그런데 걱정이 하나 있었다.

 

만일 상전이 이 사실을 알면 시가보다 더 높은 가격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같은 동네에 사는 김덕명이라는 사람을 내세워 상전으로부터 처와 딸들을 사도록 하였다. 매매 가격은 17냥이었다. 물론 태봉은 이때 김덕명으로부터 자신은 가짜 매득자[假主]이며 실제 매득자는 태봉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종의 각서[다짐]을 받았다. 비록 배우지는 못했지만 주도면밀했던 사내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태봉 가족은 이와 같이 상전으로부터 풀려나 한동안 단란한 생활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가족은 그 후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팔려와 부안 우반동에 사는 김생원댁에서 다시 노비생활을 하였다.

 

1771년(영조 47)에 작성된 부안김씨 호구단자를 살펴보면 거기에 태봉의 처와 세 딸들이 매득노비(買得奴婢)로 기재되어 있다. 당시에 태봉이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사망에 즈음하여 경제적으로 급속히 어려워졌기 때문에 자매(自賣)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아무튼 태봉의 사례는 조선후기에 노비의 가족들의 생활이 그만큼 어려웠음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전경목(한국정신문화연구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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