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자치단체장은 정치인인가 행정가인가, 이에 대한 답을 딱 부러지게 하기는 곤란하다. 선거를 통해 당선될 때까지의 과정을 보면 정치인인데 당선후 수행해야 할 의무는 행정가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초자치단체장은 주민들로부터 위임받은 지방행정에 대해 정치적인 명운을 걸고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반은 정치인이요 반은 행정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 문제가 늘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정당정치의 역사가 깊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단체장을 선출할 때 지방의원중에서 호선을 하거나 간접선거 방식을 택하기 때문에 직접선거를 실시하는 우리와 선거방식이 크게 다르다. 단순비교를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이웃 일본에서도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무소속후보의 단체장 당선률(2000년)이 무려 95%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에 정당공천이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지방자치제가 오래 전에 정착된 미국은 통일된 지방선거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주마다 주법에 따라 지방선거를 실시하고 있다. 78.8%는 정당공천을 배제하고 있고 21.2%는 정당참여를 허용하고 있다.
기초자치단체장 정당공천문제가 또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정당공천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만약 공천을 배제하는 선심행정이 남발되고 정당이 할일이 없게 된다고 강변한다. 이에 반해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지역살림을 할 일꾼을 뽑는데 인물과 무관하게 정당에 의해 좌지우지되면 지방행정이 정치적도구로 전락하게 된다며 성토하고 있다.
각자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서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정당공천찬성측의 논리는 궁색해 보인다. 지금 우리나라 정당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민주정당이 아니라 지역으로 나뉜 지역정당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그렇다.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정치풍토에서 정당공천을 계속 고집한다면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는 언제 꽃을 피우게 될지 막막하다.
마침 임채정 열린우리당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기초단체장 공천제도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히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정당공천배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화답을 해 모처럼 정치권이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다. 이번에는 꼭 다수국민의 뜻으로 받들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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