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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빛

「…빚으로 소 사서 빚지고 파니 빚이요, 빚으로 돼지 사서 빚지고 파니 또 빚이라, 빚내서 빚갚고, 빚으로 농사지어서 또 빚지고 또 빚지니 또 빚이요 도 빚이라, 빚위에 빚지고, 빚위에 빚 얹으니 또 빚이라, 빚위에 빚이어서 빚천지…」김용택 시인이 ‘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는 책에서 빚에 대한 묘사를 한 대목이다. 시인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빚을 지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 또 무심코 진 빚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가 암시하고자 했던 것 같다.

 

전 국민의 8할이 농사를 짓던 시절, 미리 품삯을 주고 노동력을 담보해 놓는 ‘일 빚’제도가 성행을 했다. 이른바 고지(雇地)라는 것이다. 대부분 논밭뙈기 하나 없는 빈농들이 춘궁기를 앞두고 호구지책으로 노동력을 선매하는 것인데, 어찌나 그 구속력이 엄했든지 계약을 어긴 사람은 다시는 상대를 해주지 않는 도덕적 제재까지 뒤따랐다. 오죽했으면 무슨 일을 강요하는 사람에게 “내가 네고지 먹었냐”고 핀잔을 주는 말이 생겨났을까.

 

동서고금을 통해 보더라도 빚처럼 사람의 몸과 마음을 속박하는 것은 없는것 같다. 우리 속담에 ‘빚진 죄인’‘빚 보증 서는 자식은 낳지 마라’‘빚지고 죽으면 그 집 송아지로 태어나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빚은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공포의 대상이다. 아랍인들은 빚지고 약속을 어긴 사람은 바로 그날 노예로 삼는 것이 전통적 관습이고, 북방 기마유목민족은 빚을 갚지 않으면 코나 귀같은 신체의 일부를 잘라내 버리기까지 한다.

 

신용불량자가 4백만명에 육박하는 가운데 곳곳에서 채무자와 금융기관 또는 채권추심업체 직원간에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추심요원이 아침 저녁으로 전화를 걸어 협박을 하거나, 채무자 가족에게 욕설을 하며 모욕을 주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극단적인 심경을 토로할 정도다.

 

국회가 폭행이나 협박으로 공포감과 불안감을 조성하는 과도한 채권추심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대부업 등록 및 금융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하여 9월부터 시행키로 한 것이다. 빚이 아무리 무섭다고 하지만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야만인처럼 빚을 받아내려 해서야 되겠는가. 더구나 이세상 누구도 채무자가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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