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삶 녹아들었으나 이젠
지금은 남자도 주방에 들락거리고 전업주부가 되는 세상이 되었지만, 옛날 부엌은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그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여성만의 전용공간이었다. 구들방의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낮게 만들어진 부엌 흙바닥에서 우리 한국의 여인들은 부엌 빗장을 걸어 잠그고 고된 일상을 스스로 위로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때로 부엌은 시집살이 설움에 남모르게 눈물을 훔치는 위로의 공간이 되기도 하였고, 부뚜막에 맑은 정화수를 떠놓고 먼 길 떠나는 자식을 위해서 조왕신에게 정성을 다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였으며, 목욕탕이 따로 없었던 그 옛날에는 이슥한 야밤을 골라 여인들이 부엌문을 닫아걸고 목욕하는 은밀한 공간으로 변신하기도 하였다.
또 아궁이에 불을 지피다가 부지깽이로 바닥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배우지 못한 한을 달래던 공간도 부엌이었고, 요즘같이 농사일이 바쁜 시절에는 그냥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허겁지겁 밥을 삼키던 공간도 다름 아닌 부엌이었다.
울퉁불퉁하게 생긴 흙바닥과 시커멓게 그을린 벽면을 따라 대충 얽어 만든 살강 때문에 어떤 때는 비위생적이라고 핀잔을 받기도 하고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하였지만, 부엌은 옛날 우리 살림집에서 여성만의 전유공간이었던 것이다.
옛날 그 부엌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는 번듯한 싱크대와 둥그런 식탁으로 대체되었다. 또 장차 미래주택은 홈오토메이션으로 무장을 하게 된다고 한다. 전화선을 이용하여 각종 기기들을 제어하는 원격관리시스템으로 설계의 초점도 변화해가고 있다. 어느 광고에서처럼 정말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시간에 맞춰 전기밥솥이 취사를 해주고, 그날 분위기에 따라 옷도 입혀주고, 씻어주기까지 할 것이다.
그 결과 이제 주방은 가사노동의 해방구가 되었고, 취사와 식사를 하는 단순한 공간으로 변질되었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처럼 가족을 위해서 정성을 드리고 고단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스스로 위안을 받던 그런 여성 전용공간은 이제 우리 곁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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