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렬한 음악애호가였던 박성용 이사장은 열렬한 음악후원자였습니다. 그는 금호문화재단을 만들어 악단을 운영하고 콘서트홀을 지어 음악보급에 힘썼습니다. 한국의 음악신동들에게 명품 고악기를 빌려줘 국제무대에서 악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게 했고, 한국 출신의 세계를 빛낸 몇몇 음악가들에게는 항공기 탑승권을 무료로 주기도 했습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지낸 그는 음악감상 스타일에서도 다분히 귀족적이었습니다. 간혹 자신의 집에서 지인 몇 명만 초청한 하우스 콘서트를 개최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악단이나 연주자들이 한국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줬습니다.
장영주와 함께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을 제2회 통영국제음악제(2003년) 무대에 세운 이도 박성용 회장이었습니다. 하지만 통영처럼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성격의 음악제에 빈 필은 썩 어울리는 악단은 아니었습니다. 이 악단의 규모나 음악적 색깔을 보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빈 필이 8백여 석 규모의 통영시민문화회관 무대에 섰다는 사실은 국제음악계 토픽이었습니다. 통영은 음악제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세계 일류 음악가들이 선망하는 무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국제적인 음악도시 ‘통영’의 토대을 마련해줬다는 의미에서 빈 필 초청의 가치를 인정해야겠습니다.
반면에 그의 일류음악가 지원 편력은 상대적으로 그 대열에 끼지 못한 다수의 음악가들을 서운하게 만들어놓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에는 한 바이올리니스트의 독주회를 후원해주고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평했다가 감정적인 소송에 휘말리기까지 했습니다.
그가 음악에 밝은 귀를 가졌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연주회장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그를 몇 차례 본 적 있습니다. 그의 모습은 언제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훌륭한 연주에 대하여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며 경의를 표하는 광경과 어떤 때 시시한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객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입니다. 참 솔직한 감상 스타일 아닌가요?
두 달 전, 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와 친분있던 음악인이나 음악단체 사람들은 아쉬움과 함께 금호문화재단의 앞날을 걱정했습니다. 아마 박성용 이사장 없는 금호문화재단을 상상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염려는 금방 씻겨졌습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이 새 이사장직을 승계한 것입니다. 알고 보니 금호문화재단은 그들의 선대이자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 회장의 유업이었습니다. 오늘날 기업이 있게 한 출발지와 그 지역주민들에게 이윤의 일부를 돌려주자는 창업주의 경영이념에서 설립되었더군요.
어쩌면 박삼구 이사장은 열렬한 음악애호가가 아닐지 모릅니다. 따라서 고인처럼 열렬한 음악후원자가 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점을 환영합니다. 재단이 오너(?)의 취미 생활을 위한 조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임 이사장은 지난 주 기자간담회에서 문화사업도 기업경영의 하나라고 얘기했습니다. 금호문화재단이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는 몇몇 특정 음악가들만의 친구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배석호(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예술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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