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30 04:25 (Tue)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일반기사

[오목대] 사수강과 사호강

한 전라도 청년이 미국 유학을 갔다. 그런데 기숙사를 같이 쓰게 된 동료는 미국인이었다. 나름대로 영어를 한다고 하는 그 청년이 버리지 못하는 말투가 하나 있었다. 전라도 특유의 ‘∼잉’이었다. 이런 말투는 영어 사용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말 끝에 곧잘 ‘∼잉’을 쓸데 없이 붙이곤 하였다. 같은 방을 쓰던 미국인은 당연히 이런 말투가 거슬렸는데 어느 날 문득 그런 말투를 쓰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의 사례가 있다. 두루마리 화장지가 식탁에 놓여 있는데도 아무런 느낌이 없을 때 외국인들은 자신이 한국 사람이 다 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 한다.

 

문화를 거창하게 이야기할 것도 없다. 가랑비에 옷 젖듯 하는 것이 바로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접촉하게 될 때에는 말하지 않아도 그 우열이 정해지기 마련이다. 서양 사람들 앞에만 서면 우리나라는 금새 ‘저희 나라’로 바뀌곤 한다. 문화적 열패감(劣敗感)때문이다. 반대로 동남 아시아 등의 나라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 지나칠 만큼 우쭐해지는 한국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문화는 풍토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나름대로의 습속이다. 그러니 어느 문화가 우월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섣부른 일이다.

 

얼마 전 문화관광부와 광복60주년 기념 문화사업 추진위원회가 공동으로 주관한 ‘일제문화잔재 바로알고 바로잡기’시민제안공모 심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총 606건의 시민제안 중에서 으뜸상은 우석대 조법종 교수의 제안이 선정됐다. 조법종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만경강과 영산강은 일제의 식량기지정책 시 본래의 사수강과 사호강이라는 이름을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바꿔 불렀다는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여기에도 유효하다. 일제의 잔재를 지우기 위해서 노력하고는 있지만 이미 일상이 되어 버린 만경강과 영산강이 사수강과 사호강으로 불리기까지는 한참의 세월이 또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바로 잡는데도 상당한 노력이 전제된다. 그렇지 않으면 일회적인 광복기념 행사의 하나로 묻혀 버릴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부여에 가 보면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나이 든 일본 관광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일제 시대의 흔적을 찾으려는 이들이 헛걸음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일보 desk@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