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師道確立’, 80년대 중반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 교무실 등에 걸려 있던 글귀 내용이다. 말 그대로 스승의 자세와 몸가짐 등을 바르게 하자는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 말의 가치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가르치는 이로서의 태도를 바르게 하자는 데 이의가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항상 그렇지만 반어(反語)와 역설(逆說)은 존재한다. 시도를 확립하자는 말은 사실 사도가 제대로 확립되지 못했음을 역설적으로 말해 준다. 사도립확립과 더불어 기억에 남는 표어 중 하나가 ‘새 시대 새 경찰’이다. 가는 곳곳마다 파출소 앞에 그 글귀는 있었다. 새로운 모습의 경찰이 되자는 내용에 딴지를 걸 사람은 없겠으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비교해 봤을 때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다는 느낌이 남아 있다.
당시 사도(師道)를 확립(確立)하자는 이야기 역시 역설적이었다. 사회 구성원들의 입장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교사의 잘한 면보다는 잘못된 면에 더 주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점이 드러나고 이를 개선하는 과정은 반복적이다. 개선하면 또 개선한 대로 문제점은 불거지기 마련인 것이다. 이런 반복 과정을 통해서 사도가 확립된기는 커녕 그 권위만 땅에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교사들은 자신들의 철학과 양심에 따라 교육활동을 하기 보다는 사회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하는 데 더 신경을 쓰는 형편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진짜 역설적인 것은 교사들의 눈에 이런 사도확립이 성적 지상주의를 대변하는 상징으로 비쳤다는 사실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한자(漢字)로 쓰인 ‘사도확립’은 가로쓰기 순서로 읽은 ‘립확도사’가 되어 취음(取音)은 ‘입학도사’와 다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시 대입열풍을 쉽게 떠올리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사도확립’하자는 구호가 교육 현장을 지키는 교사들에게는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 즉 명문대학에 몇 명을 합격시키느냐 하는 문제로 겹쳐 보였다는 점이 역설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입학도사’를 원하는 분위기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것 같다. 요즈음에는 논술시험의 내용은 이러해야 된다고 해서 또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좋게 표현하면 우리는 에너지가 넘치는 민족이다. 좋은 대학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서는 금전적인, 시간적인 부담을 아끼지 않는 것을 보면 쉽게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쯤이면 자녀를 편히 놔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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