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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전주도 서울같이...

단골로 다닌 서울의 몇몇 콘서트홀에서 자주 마주치는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대구에서 내과의(內科醫)로 일하는 K선생, 몇 개월 동안 서울의 공연장에 가질 못해 뵌 지 꽤 됐습니다. 정읍의 L선생도 서울에선 한달이 멀다하고 뵐 수 있었는데, 가까운 전주에 있으면서도 아직 인사조차 못 드렸습니다. 이 분들 외에도 특별한 약속 없이 공연장 로비에서 자주 마주치는 콘서트고어(Concertgoer) 중에는 상당수가 거리를 마다않고 멀리서 온 분들이었습니다.

 

K선생은 병원 문을 닫자마자 대구서 비행기 타고 왔다가 공연을 보고 고속버스 막차를 타고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L선생은 자동차를 운전해서 늘 부인과 함께 왔었지요. 두 분 다 클래식음악을 어찌나 좋아했는지 웬만한 곡은 달달 꿰고 있었죠. 그 많은 음반을 모아서 언제 다 들을 거냐고 물으면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진다고 했어요. 당시 저는 그들의 ‘대단한 열정’에 감복하고는 세계의 유명 콘서트가 연일 열리고 있는 서울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곱씹어보곤 했습니다.

 

그러던 저도 이젠 전주생활 8개월째 접어들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가장 먼저 피부로 느낀 공연문화 양상은 잘 알려진 유행가수들의 공연이 무척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 방송에서 한창 뜨고 있는 스타부터, 흘러간 스타들 과거 TV에서나 본 적 있는 가수들을 매월 한 두 차례는 지역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서울의 아트센터에서도 이런 공연들을 볼 수 있었던가? 생각해보니 거의 없었습니다. 소위 밤(?)무대라는 곳과 가끔 신문광고를 통해 호텔에서 유명 가수들이 출연해 디너쇼를 한다는 것은 보았지만... 대체로 대중음악은 홍대입구나 대학로 근처의 카페나 소극장 같은 데서 매니아(mania) 중심의 장르별로 공연되는 게 다반사였습니다.

 

비단 전주뿐 아니었습니다. 전국 각 지방의 공공 공연장에서는 대중음악 쇼가 생각보다 많이 열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경북 상주에서 일어난 참사를 다시 기억해봅니다. 역시 전국어디서나 치러지고 있는 행사 중 하나였을 겁니다. 그날 수많은 군중들은 K나 L선생처럼 음악에 대한 ‘대단한 열정’ 때문에 공설운동장에 밀려들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고급예술을 접하기 어려운 지방 여건상, 그것이라도 봐서 공허한 영혼에 꽃을 피워보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요? 그렇다면 그들의 공허한 가슴을 채워줄 ‘꽃’은 무엇일까요? TV에서 늘 보고 있는 얼굴의 대중스타들을 지역에 불러들여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대면케 해주는 걸까요?

 

그것은 잠깐의 공허감은 메워질지언정 정신의 심연까지 뒤흔들어 무한한 이상의 세계까지 보여주진 못합니다. 8개월 전, 고속도로를 달려 전주로 내려오는 길은 아직 푸르지 않은 봄이었습니다. 자동차는 새벽안개를 아주 낭만적으로 헤엄치듯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운전을 하며 저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전주도 서울같이, 매일 저녁 클래식음악의 황홀에 빠뜨리자...’

 

/배석호(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예술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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