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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삭발(削髮)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불의와 마주쳤을 때 항심(抗心)이 끊어오르는 것은 당연지사다. 더구나 상대의 힘이 워낙 강해 대적할 방도를 찾을 수 없을 때는 그 힘에 비례해서 저항감도 증폭된다. 그리하여 인내의 한계점에 도달하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폭발을 하게 된다. 억압의 강도가 높거나 오래 참았던 일일수록 폭발력이 강하다는 것은 정해진 이치다.

 

저항의 수단은 약자가 강구할 수 있는 방법이 모두 동원된다. 대개 자신의 굳은 의지를 강하게 표출하는 선에서 타협이 되지만, 때로 목숨까지도 초개와 같이 버리면서 극한 투쟁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자살폭탄테러와 할복 분신자살 같은 경우가 후자에 속하고 단식 혈서 삭발투쟁 등이 전자에 속한다 . 투쟁의 강도 면에서는 삭발이 가장 약한 단계라 할 수 있다.

 

언제부터 삭발이 투쟁과 항거의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길이 없다. 다만 불교 경전에 '석가세존께서 출가를 결심하고 "지금 나는 사람들과 더불어 고(苦)에서 해탈할 것을 서원하는 뜻으로 삭발을 하겠다"고 말했다'고 쓰여있는 것으로 보아 일단 수행자들이 번뇌와 잡념을 벗어던지고 수행에만 전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삭발을 시작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서슬이 시퍼렇던 군사독재시절에 삭발투쟁을 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자칫하가다 선동꾼이나 요주의인물로 몰려 치도곤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삭발투쟁은 의협심이 강한 종교계인사나 사회운동가 또는 정계인사가 아니면 쉽사리 시도를 하지 않았다

 

한데 근래에는 도처에서 시도때도없이 삭발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삭발투쟁의 양태도 다양하다. 직업과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때로는 혼자 때로는 집단이 참가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굳은 표정으로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삭발을 한다. 마음속으로 결연한 의지를 다지면서.

 

교원평가제 시행을 놓고 전교조와 학부모 단체가 한치의 양보없이 맞서고 있다. 양측 대표들 모두 삭발을 했다. 대개 억울한 쪽이 삭발투쟁을 하는 것인데 양쪽 다 삭발을 했으니 누가 더 억울한지 국민들은 헷갈린다. 이쯤되면 삭발이 투쟁의지를 확인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이제 삭발투쟁을 한다고 해서 신선하게 받아들일 국민이 많지 않다는 것쯤은 알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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