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촐한 외식에도 이야기 '술술'
"어이, 배여사, 이제 오시는가?"
나는 아내가 집에 돌아오면 이렇게 농을 건다. 결혼한 지 30년이 지났건만 나는 아직도 아내가 반갑다. 나이는 들었지만 아직도 내 눈에는 투명한 피부에 동그란 눈이 귀엽고 목소리는 낭랑하다. 솔직히 아이들보다는 아내 사랑이 더 큰 편인 것이다. 사람들은 아내 자랑을 하면 모자란 사람쯤으로 취급한다. 나 역시 옛날 사람이라서 아내에게 낯간지러운 애정표현 한 번 해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외식을 자주 한다. 살림에 큰 취미가 없는 아내 탓이 크다. 그러나 나는 그런 아내에게 큰불만이 없다. 나 역시 변하기 어려운 만큼 아내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오랜 결혼 생활 속에서 얻은 교훈이라면 교훈인 셈이다. 지인들과 어울리다 맛이 좋은 음식점을 만나면 며칠 내에 아내와 함께 다시 찾는다. 두 사람 모두 고급음식보다는 서민적인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계에 큰 부담이 되지도 않는다.
가기 전에 "무얼 먹을까?" 하고 의논하는 단계부터 식당을 정하고 주문 후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나이를 먹으면 이심전심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우리 부부는 화젯거리가 끊이질 않는다.
집에만 있는 걸 못 견뎌 하는 아내는 무용학원 운영을 접은 후에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왔다. 한 여성단체에서 조용히 자원봉사를 시작해서 현재는 그 단체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매일 무슨 일을 모색하는지 사람 만난 이야기, 앞으로 할 일과 그 일을 위해 지금 궁리하고 있는 일을 끊임없이 풀어놓는다. 그것도 모자라 동사무소의 주민자치센터에서 돈 안 되는 무용강습도 매우 즐겁게 하고 있고 그래도 시간이 나면 '여행을 가겠다' 며 가방을 꾸리느라 수선이다. 해외 여행도 고급 답사 여행도 아니다. 신문 사이에 끼어들어오는 당일치기 단풍관광 전단지에 눈을 반짝이는 것이다. "세상에! 이 좋은 구경을 가는데 2만원도 안 드네. 이번에는 누구랑 갈까?" 하며 자연스레 여행에 동의를 구한다. 물론 바쁜 나와 함께 가자는 뜻이 아니다. "여행 다녀올 테니 그리 알아두시라" 는 통첩이다. 나야 그저 "네, 네" 하고 알아모실 일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도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매우 즐기는 편이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단아한 몸집에 여전히 소녀 같은 아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깜빡이며 열심히 내 얘기를 듣는다. 동행이라도 있을라치면 "얘기를 참 재밌게 해. 그쵸?"하며 간접적으로 칭찬을 해준다. 그럴 때면 나는 못들은 체 그저 빙긋이 웃을 뿐이다.
물론 처음부터 우리 부부가 완벽하게 아귀가 들어맞은 것은 아니다. 허름한 산동네 단칸방일지언정 처음 그녀와 살림을 차렸을 때는 마냥 기뻤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녀가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가득 충만감에 젖을 때가 있었다. 물론 그로부터 머지 않아 우리도 남들과 똑같이 부부싸움을 시작했다. 그건 바로 살아온 삶과 사고방식의 차이였지만 대개 그것은 '돈' 에서 불거지기 마련이었다.
"당신, 정말 돈 없어요? 어쩌지? 큰일이네. 진짜 진짜 없어요? 어떻게 해…." 첫 집들이하던 날, 돈 귀한 줄 모르고 겁 없이 생활비를 모두 써버린 아내가 내게 돈을 달라고 하면서 우리는 처음으로 언성을 높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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