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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철의 건축이야기] 기둥에게서 배우는 지혜

주춧돌과 하나되기 위한 헌신

철근콘크리트구조나 철골구조의 기둥은 보통, 기초에 단단하게 정착되어 있다. 시쳇말로 기초와 기둥은 죽어도 같이 죽고, 흔들려도 같이 흔들리는 운명공동체인 것이다. 그런데 한옥은 그렇지가 않다. 기초가 되는 주춧돌은 말 그대로 석재고 기둥은 목재이다 보니, 이게 구조적으로는 도저히 한 살이 될 수 없는 처지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기둥을 주춧돌 위에 얹혀놓자니 넘어질까 불안하고, 그 둘을 강하게 결박하자니 딱히 묘수가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래서 생긴 게 「그렝이질」이라고 하는 전통적인 결구(結構)방식이다. 어떻게 보면 그렝이질은, 기둥이 주춧돌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기둥은 그렇게 염치없는 존재가 아니었나 보다. 그냥 부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 몸의 일부를 주춧돌의 형태에 맞게 도려내는 아픔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오니 주춧돌도 차마 거절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주춧돌 윗면의 형태에 따라 금을 그리고, 그 그려진 금대로 목수가 「기둥밑 부분」을 도려내 놓으니, 자연적으로 주춧돌의 윗면과 기둥뿌리는 마치 찰떡궁합처럼 잘 맞아떨어지게 된다. 이것을 「그렝이질」이라고 한다. 알고 보면 뭐 별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게 그 육중한 기와지붕과 대들보, 도리, 그리고 서까래 등의 주요부재를 흔들림 없이 지탱해주는 비밀이 된다.

 

그러나 그런 주춧돌도 형태가 모두 제각각이다. 그래서 「그렝이질」하는 과정을 보면, 목수가 일일이 주춧돌의 모양에 따라서 본을 잘 뜨는 게 첫째다. 그리고 그 그려진 본대로 기둥밑 부분을 끌과 칼로서 정성스럽게 파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기둥 하나도 그 「기둥뿌리」가 똑같은 게 없다. 그래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래야 건축물이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서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우리 세상살이하고 비슷하다. 서로 자라온 환경이나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한 가정을 세워나가는 과정과 너무나 흡사하다. 물론 다른 점도 적지 않다. 기둥과는 달리 우리 사람들은 정말 「하나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헌신하지는 않는다. 또 과감하게 제 몸을 도려내지도 못한다. 아니, 제 몸을 도려내기는커녕, 반대로 주춧돌이 반듯하게 다듬어지지 않았다고 책망하기 일쑤다. 심지어 주춧돌을 바꾸어 오라고까지 한다.

 

이렇게 되면 황당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때로는 양보할 때 양보할 줄 알고, 또 덜어내 줘야 할 때가 되면 조금도 망설임 없이 쉽게 덜어내 버리는 저 무심한 기둥에 그렇게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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