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혁일(전라북도체육회 前 사무처장)
소외와 천대의 대명사로 불리워지던 60~70년대의 전북...
먹고 살길이 막막해 무작정 상경해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공장 노동자로...
식당종업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고, 심지어 서울에서 도내 출신의 지체 높으신
분들을 찾기란 기껏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여간 어려운 시절이 아니었다.
이런 가운데 체육은 상처 입은 도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가져다 준 유일한 요소였다.
도세의 열약함에도 불구, 전북은 제55회 전국체전에서 종합2위라는 성적을 거두게
된다.
그후 전북은 꾸준히 중상위권을 유지하다 최근엔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수모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전북체육이 최대 위기라고들 한다. 이제는 체육강도의 명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공허한 메아리로만 다가오고 있다.
어느 누구도 옛 영광을 재현할 뾰족한 방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게 지금의 실정이
다. 이제 전북체육회가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이했다.
숱한 사연들이 담긴 전북체육의 역사를 되돌아 보기로 한다.
60주년 맞이하는 전북 체육회
한국 근대 체육의 태동은 선교사에 의한 조선기독교청년회와 일본 유학생들이 귀향활동을 하면서 전국에 전파됐다. 이후 신학문의 유입과 학교가 설립되면서 근대체육의 보급이 탄력을 받게 된다. 도내에서는 1910년경 전주 백호축구단이, 1920년에 전주초등학교에 다이아몬드 야구팀이, 같은 해 5월 군산에 평화축구단이 창단되어진다. 따라서 전북체육의 태동은 1910년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던중 1919년 3월1일에 봉기된 독립운동은 우리 체육계에도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3.1운동 다음해인 1920년 7월13일에 조선 체육회가 역사적인 창립을 갖게 된다. 이런 가운데 지방체육회도 서서히 결성되기 시작했으며, 전북체육회는 전주 축구단 창설을 시초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후 일본의 간섭과 억압으로 각 체육단체가 줄줄이 해산되어지는 아픔을 겪는다. 해방후 전북체육회는 일부 체육인들을 중심으로 재결성되어진다. 그 때가 1947년 3월13일이니 올해로 60이 되는 해다. 전북체육회의 결성은 전북체육의 활성화를 가져다 주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전북체육은 서울에서 개최된 제28회 전국체육대회(1948년)에 일부 종목을 출전 시키게 된다.
숱한 사연 담겨진 전북체육
전북체육은 긴 역사만큼 수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전북체육의 역사는 흥분과 감격, 좌절과 고난의 역사였다. 바로 굴곡의 역사인 셈이다. 전북은 한 때 학교체육과 사회체육의 갈등으로 인해 전국체육대회를 따로따로 출전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전북체육은 전북체육사상 처음으로 1963년 제44회 전국체육대회를 유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 때 전주 덕진 일대에 종합경기장이 들어섰고, 전주의 대동맥인 팔달로가 만들어지게 된다. 전북이 종합 2위에 오른 제55회 전국체육대회(1974년)에선 그 열기를 맘껏 느낄 수 있는 대회였다. 전북선수단이 서울역에 도착하자 재경 도민은 물론이고 구두닦이와 넝마주이가 현수막을 들고 나와 선전을 기원하기도 했다. 또 이들은 경기장을 찾아 깡통과 구두통을 두드리며 응원을 벌였다. 전북이 종합 2위를 차지하는데에는 고향을 떠난 전북인들의 열렬한 응원덕택이었다. 전북체육은 체육기금 남용문제로 사법당국의 수사를 받게된다. 특히 군부는 사회정화의 이름으로 체육임원에 대해서도 정화에 나서 체육인들의 위기감을 불러오기도 했다.
전북체육 전성기 80~90년대
매년 전국체전에서 중상위권을 유지해오던 전북체육은 국제무대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우리 전북출신 선수들이 아시아게임과 올림픽 등 굵직굵직한 대회에서 메달을 따내며 전북의 위상을 드 높인 것이다. 1980년 제61회 전국체전을 전주와 군산, 익산에 분산개최해 전북의 맛과 멋을 전국 곳곳에 알리기도 했다. 이후 전북은 1991년에 전북체육사상 세 번째로 전국체전을 도내에 유치하게 된다. 1983년에는 소년체전도 열리게 된다. 그리고 1997년에는 무주와 전주에 동계유니버시아드를 유치,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르게 되면서 동계종목의 중심지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72회와 74회 3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해 몇몇 해만 제외하고는 5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을 정도니 가히 ??체육강도??라 불리워도 손색이 없다 할 것이다. 전북이 전국 최강의 전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선수들의 끊임없는 의지와 지도자들의 부단한 노력등이 한 몫을 톡톡히 했다. 여기에다 전북도민들의 관심과 응원은 전북 체육이 성장하는데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전북체육 다시 희망을 쏘아 올린다.
한 때 다른 시도로부터 부러움을 샀던 전북체육. 이런 전북체육이 최근 몇 년간의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4년 충북 전국체전 12위, 2005년 울산 전국체전 14위, 2006 경북 전국체전 12위, 부끄러운 성적표의 연속이었다. 전북체육이 부진한 원인으로는 학교체육의 붕괴, 실업팀의 고갈, 도민들의 무관심 등이었다. 다행히 전북체육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 체육중 개교로 학교체육 활성화에 기대를 걸게 하는가 하면, 또 도내 각 시군 자치단체별로 팀 창단을 추진중이라 한다. 고무적인 분위기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다 전북체육회관 건립이 추진되는 등 전북체육인들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도 펼쳐지고 있다. 이런 변화가 거듭하면 거듭할 수록 전북체육은 옛 명성을 회복할 것으로 믿는다. 올해로 전북체육회 창립 60주년을 맞이하는 2007년을 전북체육 재도약으로하기 위한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전북체육이 도민이 어려울 때 화합과 단결을, 꿈과 희망을 갖게 했듯이 다시 한번 그런 역할을 해줘야 한다. 이제 민선 4기 도정을 맞아 우리 전북이 소외받는 지역에서 탈피, 희망과 용기가 넘치는 곳으로 발전하길 기대해본다. 바로 그 중심에 우리 전북체육이 우뚝 서있길 바란다.
/나혁일(전라북도체육회 前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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