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일(전주보훈지청장)
“어머니,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이 글은 포항의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는 빛바랜 편지의 일부다. 포항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이 있는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전승기념관을 찾고 있으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 편지를 보고 눈시울을 적신다고 한다. 편지의 주인공은 안타깝게도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다시 편지를 쓰지 못하고 포항전투에서 한 송이 꽃잎처럼 스러져 갔다.
갑작스런 북한공산군의 침략으로 전 국토가 한순간에 유린되자 당시 16~18세의 꽃다운 학도병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책과 연필대신 총칼을 손에 들고 나섰다. 학도병들은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에서 3주일 가량의 훈련을 받은 뒤 소총 한 자루와 담요, 몸에 맞지도 않는 군복을 지급받고 전방 부대에 배속됐다. 그들에게는 군번도 없었다. 학도병들은 개전 사흘째인 6월 27일 한강 방어전투를 시작으로 25만명이 전선을 누비며 싸웠고 7000여명이 전사했다. 학도병들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공산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용전분투했고 그런만큼 희생 또한 컸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학도병을 비롯한 수많은 호국용사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전쟁이 끝나고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흐르자 학도병 이야기는 먼 옛 이야기로만 남아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난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실시한 한 여론 조사에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과반 수 이상이 6.25전쟁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6.25가 미군이 침략한 전쟁으로 알고 있는 학생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6월 25일, 전북재향군인회 주관으로 거행된 제 57주년 6.25기념행사에는 많은 시민, 학생들이 참가하였는데“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로 시작되는 6.25노래를 따라 부르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6.25노래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마음이 착잡하였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학생들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우리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을 규탄하면서도 정작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는데 소홀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러한 때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화개장터 일대에서 6.25학도병 유해 10여구를 발굴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유골은 10대 청소년들의 것으로 감식되었는데 학생임을 알려주는 혁대버클, 손거울, 학생복 단추, 십자가 등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꽃잎처럼 스러져간 학도병, 가슴 아픈 우리의 현대사가 아닐 수 없다.
요즈음 6.25를 이야기하고 애국심을 이야기하면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가정에는 효심이 필요하고 회사에는 애사심이 필요하듯이 애국심은 한 나라를 지탱하는 근본이라고 본다. 만약에 국민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나라의 장래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애국심은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애국심은 가정에서, 사회에서, 교육현장에서 가르쳐야 한다.
애국심의 근원은 나라를 위해 헌신 희생하신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지금도 북한에 수백만 달러를 지불하면서까지 6.25전쟁 때 전사한 북한군 유해를 찾아내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이와 같이 국가를 위하여 희생한 사람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을 지는 정신이 있기에 다민족 국가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설 수 있는 것이다. 학도병 유해발굴을 계기로 우리 민족사의 최대의 비극이었던 6.25를 바로 알고 나라를 지키려다 한 송이 꽃잎처럼 스러져간 학도병들의 명복을 빌어드리자, 학도병, 조국은 그대를 영원히 기억하리라.
/김대일(전주보훈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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