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17 13:37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주말 chevron_right 향기있는 주말
일반기사

[향기있는 주말] 이지현 전주전통술박물관 연구팀장

"빚은 술만 마시다보니 이제, 다른 술 입에 안대"

전통술박물관 숙성실에서 이지현 팀장이 술 익은 정도를 확인하고 있다. (desk@jjan.kr)

"소주 1병에 375ml. 7잔 정도 나오니까, 제가 만든 청주는 500ml, 한 10잔 정도는 마실 수 있는 것 같아요. 소주나 맥주처럼 시중에서 파는 술이 저하고 안맞는 것도 있지만, 빚은 술만 마시다 보니 혀가 예민해져서 이제 다른 술은 못 마셔요."

 

다른 사람에 비해 알콜 해독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던 그녀가 술독에 고개를 처박았다. 술이 잘 익어가고 있는지 살피는 중이라고 했다.

 

스물다섯. 한창 꾸미고 싶을 나이. 그러나 그녀는 진한 화장을 할 수도, 매니큐어를 바를 수도 없다. 행여 술에 화장품 향이 배일까봐서다.

 

전주전통술박물관의 이지현 연구팀장. 기전여대 관광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 2월 술박물관에 들어온 그는 나이는 어리지만, 술 빚는 경력은 벌써 4년 째에 접어든다.

 

전통주에 대한 관심 보다는 전공을 살리고 싶어 택한 문화시설. 그러나 2005년 한국전통주연구소 연수를 받으면서 생각은 바뀌었다. 술 빚는 태도도 달라졌다.

 

요리를 하다 맛이 나지 않으면 무엇인가를 첨가하면 되지만, 술은 다르다. 담글 때부터 그 맛을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더 조심히 다뤄야 한다. 이전에는 이스트를 넣어 인위적으로 강제 발효를 시켰다면, 지금은 모든 발효식품이 그러하듯 하늘과 땅과 바람과 햇빛, 즉 자연이 술을 만든다고 생각하게 됐다.

 

"똑같은 누룩으로 빚어도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지죠. 성격 급한 사람은 독한 술을, 차분한 사람은 부드러운 술을 만들어요. 장점으로 보자면 세상에서 유일한 술인 거고, 단점으로 보면 대중주로는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거죠."

 

술을 빚어서 먹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3∼4주. 술을 만드는 수고로움에 비해 사람들은 한 잔 술을 쉽게 생각한다. 이씨 역시 실패도 많았다. 달고 쓰고 맵고 시고 떫은, 다섯가지 맛이 어우러져 감칠맛이 나야하는데 한가지 맛이 도드라져 버리기를 반복했다. 그는 "술을 빚을 때면 잘 익어달라고 부탁하며 대화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웃었다. 맛은 놔두더라도 술 빚는 일은 모든 공정을 사람이 해내야 하는 만큼 육체적으로도 힘이 든다.

 

서울을 제외하고 술박물관은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술 강좌가 개설돼 있는 곳. 전주를 비롯해 진안, 남원, 익산, 부산, 대전에서도 강의를 듣기 위해 찾아온다. 농촌 마을을 다니며 농민주 관련 강의를 진행하고, 향토주를 발굴하기 위한 술자원조사도 그가 속해있는 연구팀의 중요사업. 고문헌 연구도 당연한 일이다.

 

오는 11월 처음 열리는 '전주전통주대향연'에서 '국(麴)선생 선발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그는 "전통주(전통기법으로 만든 술)와 가양주(집에서 빚어마시는 술)의 개념도 모호하고, 아직 관능 기준(술의 품질 평가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무엇보다 주질 개선이 우선이겠지만, 젊은 사람들이 전통주를 피하는 건 맛이나 색, 향에서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에요. 시중에서 판매되는 개량주를 전통주로 알고 있는 젊은이들도 많다니까요. "

 

지난해 열린 술박물관 개관파티에 시음잔으로 도자기잔 대신 와인잔을 내놓은 것도 그 때문. 이씨는 "잘 빚은 전통주는 불순물이 없어 맑고 과일향이 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며 "전통주도 먹는 사람의 취향에 맞춰 다양하게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누룩 종류만 해도 50여종이죠. 쌀 알곡도 튼실해야 하고 물도 좋아야 하지만, 술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쌀과 물과 누룩을 혼화(混化)하는 작업입니다."

 

쌀과 물과 누룩의 성질을 똑같게 하는 혼화 작업. '치대기'라고도 부르는 이 작업은 도공이 도자기 빚을 흙을 만지는 것과 같다.

 

"법주, 호산춘, 부의주, 이 술 저 술 많이 만들어는 봤어요. 하지만 아직도 저만의 특기주를 찾지 못한 것 같아요. 10년, 20년이 아닌 100년, 200년, 전통주 맥이 잘 이어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은데, 그럴러면 공부도 많이 해야되겠죠?"

 

전통주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된 게 없다보니 '전통주 1세대'나 마찬가지인 이씨. 그는 우리 삶에 흥취를 더해줄, 우리 몸과 가까운 전통주를 빚고 싶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도휘정 desk@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