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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빨치산

빨치산은 본래 프랑스어 partisan (혹은 러시아어 partizan)에서 유래했다. 당원 동지 당파 등을 뜻하는 말이나 현재는 비정규 유격대원을 가리킨다. 적의 배후에서 신속한 이동과 기습을 통해 적에게 피해를 입히는 소규모 전투부대다. 따라서 그 지방의 지리에 밝아야 하고 인근 주민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에스파냐에서 나온 게릴라도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빨치산은 대개 구(舊)빨치와 신(新)빨치로 나뉜다. 또 구빨치는 8·15 이전의 항일 구빨치와 6·25 전쟁 이전의 공산 구빨치로 가를 수 있다. 1945년 이전인 일제 강점기에는 징용이나 징병 학병을 거부한 조선 청년들이 산(山) 사람으로 변신했다. 화전민처럼 초막생활을 하던 일단의 민족주의자들이었다. 6·25 이전의 공산 구빨치는 남로당 지령에 의한 것으로 '대구 폭동'과 관계가 깊다. 당시 경찰 수배를 받던 사건 관계자들이 태백산맥 소백산맥에 숨어 들어 야산대(野山隊)를 조직한 것이다. 대표적 인물이 남부군사령관 이현상이다.

 

그리고 1950년 9·28 수복으로 쫓겨 입산한 사람들이 신빨치다. 연합군의 북진과 인민군의 패퇴때, 인민군 전선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대규모 빨치산 병단을 재구성했다. 2-15만명으로 추산되며, 1953년 말경 군경토벌대에 쫓겨 활동무대를 지리산으로 옮겼고 이후 궤멸되었다. 당시 빨치산으로 입산했거나 피해가 많았던 지역은 전남북 충남 강원 경상도 일부였다. 그 중에서도 지리산 회문산 일대 주민의 피해가 가장 심했다.

 

그런데 요즘 빨치산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50년의 세월을 건너'국민여동생 문근영'의 기부를 둘러싸고 터져 나왔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2003-2008년 6년동안 개인 기부자중 문씨가 최고액인 8억5000만 원을 익명으로 기부했다고 밝힌데서 비롯되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은 배우 문근영을'기부천사'라며 칭송했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이 악플을 달았다. 문근영의 기부는 "빨치산 심리전"이라는 이념적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군사평론가 지만원씨는 문근영의 외할아버지가 한국전쟁 직후 지리산 빨치산으로 활동한 비전향 장기수라는 점을 거론한다. 기부천사를 빨치산과 연결시켜 이미지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칭찬은 못할망정 한국 현대사의 아픔에 다시 소금을 뿌리고 있다는 점에서 야비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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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cho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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