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숙희(서남대 교육대학원 강사)
우리사회의 진정한 주춧돌은 교육을 바로세우는 일이다. 가랑비 옷 젖듯, 지독한 모순과 혼돈 속에 능청스럽게 살아가는 일그러진 나의 머릿속에 현 정부의 자율형사립고 확대의 현실이 똬리를 틀었다. 소모적인 경쟁으로 얼룩진 우리 아이들은 '레밍의 딜레마'처럼 과도한 질주를 하고 있다. 이제는 앞에 보이는 것만을 위해 달리지 말고, 삶에 여유를 가지고 교육의 정체성을 찾아야한다. 다시 말해서 성적순 '대입 경쟁이데올로기'를 혁파하고 '경쟁패러다임 전환'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 개혁이 이뤄져야한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 방문한 맥킨지 컨설팅 아?태 대표 도미니크 바튼은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는데 교육자들은 산업 시대와 동일한 방식으로 가르치고 있다"라고 하였다. 또한 한국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석기시대(stone age)수준이라고 비판하였다.
미래사회는 장소 지향에서 시간 지향으로 전환되고, 규모의 경제에서 속도의 경제로 바뀌게 된다. 또한,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먹는 세상이다. 3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쟁기문명의 농경사회는 키우는(growing)는 능력이 필요하였으며,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는데서 부를 창출하였다. 또한, 300년의 공장굴뚝 문명의 산업사회는 만드는 것(making)이 최고였으며, 대량화의 공장조립 라인으로 부를 창출하였다. 그렇지만 지식정보화 혁명의 현대사회는 생각하는 것(thinking), 아는 것(knowing)이 힘이고, 컴퓨터와 지식으로부터 부를 창출한다.
우리나라 교육이 진정 현대 정보화 사회에 걸 맞는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하기 불가능한 현대사회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 전환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융합(convergence)적 사고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이 진정 수렴적이고 기계적인 사고만을 하는 아이를 만들지나 않나 진진하게 생각해 보아야한다. 미래사회는 확산적 사고를 필요로 한다. 이는 미리 예측되지 않은 또는 정해져 있지 않은 다양한 해결책이나 답을 모색하는 사고로써 창의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지난 봄 나는 선산에 있는 작은 소나무를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작은 화분에 옮겨 심었다. 무성하게 성장 할 수 있는 나무를 분재로 만들었던 것이다. 아주 큰 나무의 좋은 씨앗을 작은 화분에 심으면 모양은 같아도 훨씬 작은 나무가 된다. 씨앗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화분이 부적절했기 때문이다. 그렇듯이 교육적 환경은 그만큼 중요하다. 세계는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여전히 우리 사회는 '줄세우기'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엘빈 토플러가 "강한 교육이 강한 국가를 만들 수 있다"라고 말했듯이 우리나라 교육시스템도 바뀌어야 하고 개혁되어야 한다.
시멘트에 최선의 방법으로 구멍을 뚫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망치는 시멘트를 부서뜨리지만 처마 밑에 낙숫물은 상처내지 않게 구멍을 뚫을 수가 있다.
교육 개방에 따라 '시장'과 '따뜻함'의 쉽지 않은 융합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상상력의 에너지와 창의성을 발휘 할 수 있게 교육여건을 적극적으로 마련해 주어야 한다.
/나숙희(서남대 교육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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