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초는 졌으나 길가에 코스모스는 활짝 피었다. 아침 저녁으로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제법 쌀쌀하다. 귀뚜라미 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힌다. 점심 먹고 소슬바람 맞으며 정자에서 잠깐 시들기에는 제격이다.청량감이 넘쳐난다. 홑이불이 생각난다. 한낮에는 뙤약볕이 내려 쪼이지만 더위도 한풀 꺾인 기세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 선다는 입추와 말복도 지났다. 계절의 변화가 실감난다.
한들 한들 길가에 나부끼는 코스모스. 한번 씨를 뿌려 놓으면 해마다 알아서 꽃이 핀다. 꽃이 지면 그 자리에 씨가 떨어져 이듬해에도 꽃을 피운다. 개화기도 길다. 7월에 꽃을 피워 뜨거운 태양 볕을 견대내고 늦가을 까지 나부낀다. 생명력이 이렇게 강하건만 겉으로는 한없이 여린 모습을 내비친다. 더위에 지친 심신을 신선한 바람으로 달래 주는 가을에 어울리는 꽃이다.
코스모스는 서로 다른 각색의 꽃들이 한데 어울릴 때라야 제대로 된 맛이 난다. 한 송이로는 고작 가냘프고 연약한 들꽃에 지나지 않는다. 빨간 것은 검붉을 만큼 빨갛고, 노란 것은 밀감껍질처럼 짙게 노랗고, 햐얀 것은 파스텔이 묻어날 것 같이 하얄때, 그리고 그 선명한 색깔들이 잘 섞여 있을 적에야 코스모스답다. 조화와 질서를 뜻하는 희랍어 코스모스(Kosmos)를 제 이름으로 얻은 것도 각색의 꽃들이 어울려 빚어내는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70년대 이후 귀향길의 설렘을 잘 표현하기로는 나훈아가 불렀던 '고향역'만한 것이 없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으로 시작하는 노랫말이 다가온다. 김상희가 불렀던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도 감흥을 돋군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중략/길어진 한숨이 이슬에 맺혀서 찬바람 미워서 꽃속에 숨었네"라는 노랫말이 가을의 정취를 풍겨나게 한다.
코스모스는 '소녀의 순정'이라는 꽃말을 갖고 있는데 비오는 날 수줍은듯 피어 있는 자태가 정말 소녀의 발그스레한 볼같아 보인다. 이름 있는 꽃들은 대개 전설이나 설화가 있게 마련이지만 코스모스는 그렇지 못하다.다만 신이 가장 먼저 습작으로 만든 꽃이 코스모스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화합과 통합을 시대정신으로 남기고 홀연히 떠난 DJ의 삶이 사즉생 (死卽生)으로 다가선다. 자신을 죽이려했던 원수까지 사랑했던 그의 삶이 벌써 코스모스로 활짝 피어난 느낌이다.
/백성일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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