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逝去)하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살아생전에 많은 오해를 받었다. 그중의 하나가 그분은 지역감정의 최대 피해자요 동시에 지역감정의 최대 수혜자(受惠者)라는 것이다. 지역감정의 최대 피해자라는 말은 맞지만 지역감정의 수혜자라는 것은 사리(事理)에 어긋난다.
지역감정의 수혜자라는 표현은 주로 영남 사람들 입에서 나왔다. 김 전 대통령이 호남에서 종교 교주처럼 절대적 지지를 받아 정치적 위기를 벗어났다는 것을 빗댄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만약 영남인이었다면 대권 4수(修)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마도 그분이 영남인이었다면 그분의 인격으로 그런 험난한 고생 없이 오래전부터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호남인의 판단이다.
지역감정의 수혜자라고 하는 것은 억지주장이다. 우리의 지역의식은 옛날부터 남달랐는지도 모른다. 우리 조상들은 고향에 대해서 뿌리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벼슬을 하러 객지에 나갔다고도 벼슬이 끝나면 고향으로 귀향(歸鄕)하고 장사꾼도 객지에서 명절이면 고향을 찾는다.
우리나라의 옛 노래 중, 상당부분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가사로 엮어져 있다. 심지어 고향에서 죽지 않고 객지(客地)에서 죽는 것을 불행한일로 보고 "객사(客死)할 놈"이 욕이 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고향에서 죽어 가까운 혈족(血族)옆에 눕기를 원했다. 서양 사람들이 죽으면 끝이라는 생사단절(生死斷絶)의 문화라면 우리 조상들은 죽어도 후손(後孫)에 살아있는 생사연결형(生死連結形) 문화라고나 해야 할것이다.
그러니 자기 고향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서양 사람들의 생업(生業)은 유목적, 상업적이어서, 이지역 저 지역에 떠돌아다니며 살았기에 고향이라는 절대적 애착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몬순지대의 벼농사는 생업 중에서도 가장 노동 집약적 이면서 토지 정착적이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서 산다는 것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역의식이 자기 고향에 대한 애착 수준을 넘어 다른 지역에 대한 배타의식, 심지어 적대의식(敵對意識)로까지 갔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이제 우리는 농업국가가 아니다. 지역감정은 퇴물(退物)이 되어야한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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