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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현의 명창이야기] (18)근대 문물이 만든 명창 임방울(1)

매일신보 주최 내청각 공연이 첫 무대…여러 레코드회사 전속되어 음반 취입

임방울은 우리나라 판소리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판소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 치고 임방울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임방울과 관련된 일화도 많다. 그래서 임방울을 빼버린다면 우리나라 판소리사는 허전함을 면치 못할 것이다.

 

임방울은 1905년생이다. 1905년은 을사늑약에 의해 우리나라가 외교권을 일제에게 빼앗긴 해이다. 사실상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이때부터 우리나라에 근대 문물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임방울은 망국의 설움을 안고 태어나 일제에 의해 강제로 근대 문물을 이식되던 해에 출생한 것이다. 그런데 임방울은 일제에 의해서 강제로 이식된 근대 문물에 의해 명창이 된 사람이다. 우선은 그의 데뷔부터가 그러하다.

 

임방울은 1956년 6월 28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나와 창극> 이라는 글에서 14세에 창에 취미가 있어서 명창 박제실('박재실'의 잘못)로부터 <춘향가> 와 <흥보가> 를 배우고, 다음에 유성준으로부터 <수궁가> <삼국지(적벽가)> <심청전> 을 배우고 난 다음에 25세 때까지 독단적으로 공부하였으며, 25세 때 서울에서 박람회가 있어 단체로 서울에 올라와 박람회에 참가했는데, 이때 외숙인 김창환의 소개로 동아일보에서 개최한 명창대회에 나갔다가 그날부터 출세가 되었다고 하였다.

 

임방울이 출세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박람회였다고 했는데,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박람회는 무엇인가? 임방울의 나이와 출생년도를 고려해 볼 때 1929년에 열린 조선박람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박람회는 조선공업협회가 제창하여 1929년 9월 12일부터 1929년 10월 31일까지 경복궁에서 열렸다. 아마도 일제가 자신들의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획한 행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임방울은 서울서 박람회가 있어 단체로 서울에 올라와 박람회에 참가하였다고 하였다. 이 박람회장에는 야외공연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야외공연장은 구경꾼을 모으기 위해 개설한 공연장이 아닌가 생각된다. 임방울은 여기서 공연을 하기로 하고 올라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임방울이 상경한 시기는 바로 조선박람회 개장을 전후한 시기, 곧 1929년 9월 12일 전후가 된다.

 

그런데 임방울은 1929년 9월 14일 22시 20분부터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여 <남도 단가(독창)> (고수 한성준)를 불렀다. 10월 22일에도 또 한 차례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여 13시부터 <남도 단가(독창)> (고수 한성준)를 불렀다. 임방울은 서울에 올라온 지 2~3일만에 방송에 출연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이때 이름은 본명인 임승근으로 되어 있다.

 

임방울이 처음으로 무대 공연에 나선 것은 외숙인 김창환의 소개에 의해서였다. 그렇다면 그 때가 언제 쯤일까? 임방울은 동아일보에서 주최한 명창대회에 출연하면서 출세가 되었다고 했지만, 1929년 9월 김창환이 출연한 공연은 1929년 9월 12일과 13일 광무대 공연과 9월 15일과 16일의 매일신보사의 내청각에서의 공연이다. 임방울이 데뷔한 무대가 동아일보사가 주최한 명창대회가 아니고, 매일신보가 주최한 명창대회라면 9월15일과 16일 양일간 펼쳐졌던 매일신보사 내청각에서의 공연이 임방울의 데뷔 무대가 된다.

 

서울에 입성하자마자 방송에 출연하는 등 활동의 폭을 넓혀가던 임방울은 곧바로 레코드사에 발탁되어 음반 취입을 하게 된다. 11월 9일에 취입을 위해 오사카로 출발한다는 가시가 실린다. 그리고 그때의 이름은 임승근이 아니라 임방울이다. 두 달 사이에 본명에서 예명으로 변화했다는 것은 그 사이에 임방울의 신상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간접적인 증거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임방울이 판소리 명창으로 명성을 얻어가는 과정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최동현(군산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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