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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왕궁 축산단지 - 조상진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중략)…//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익히 알려진 한하운의 '전라도 길'이라는 시다. 함경도 출신인 시인은 이리농림학교와 중국 북경대학을 나온 엘리트였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병에 감염, 문둥이가 되었다. 이 시에는 문둥병 환자의 고통이 절절히 배어 있다.

 

문둥병은 노르웨이의 의학자 한센이 1873년 바이러스를 발견하면서 한센병(Hansen'disease)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우리는 옛부터 나병(癩病) 또는 하늘의 형벌(天刑)이라고 했다. 그만큼 낫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1941년 특효약이 발명되면서 완치가 가능해졌다.

 

일제는 1931년 '나예방법'을 만들어 한센인을 강제 격리시켰다. 일본과 대만에서도 그랬다. 대표적인 곳이 소록도다. 이곳에서는 강제노동과 감금, 낙태 등이 자행되었다. 인권의 무풍지대였다. 해방후에도 계속되다 1963년에야 풀렸다.

 

전국 등록 한센인은 1만4200명으로 이중 4900명이 89개 정착촌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익산 왕궁 축산단지도 그 중 하나다. 1949년 조성된 이곳에는 60년 넘게 한센인의 한과 눈물이 서려있는 셈이다. 70-80년대는 3000명까지 늘었으나 2-3세대가 나가면서 그 수가 줄었다.

 

지금은 280만㎡ 면적에 1800명이 거주하며, 570여 농가가 돼지 12만 마리와 닭 10만 마리를 키우고 있다.

 

이곳이 세인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새만금사업 때문이다. 하루에 배출되는 오수및 가축분뇨 1170t이 15-20㎞ 떨어진 만경강에 흘러 들어 새만금 수질악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부터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다녀갔고, 지난 1월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도 다녀갔다. 이 위원장은 "새만금 수질뿐아니라 한센인의 인권 차원에서 범정부적인 해법을 찾겠다"고 밝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며칠전 이곳을 방문한 실사단은 공영개발에 필요한 2000억 원의 재원 마련에 난색을 표했다.

 

이 사업은 정부가 4대강 사업에 20조 원 이상을 쏟아 붓는다는 점과 한센인 인권개선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다는 점에서 접근했으면 싶다.

 

/조상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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