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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우리 고향 구불길 마실터 - 문효치

문효치(시인·계간 미네르바 발행인)

 

 

길은 사람 차 따위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을 말한다. 사전에는 길을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해 놓고 있다. 그러나 길은 단순히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시설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길은 자연공간과 자연공간, 문화공간과 문화공간, 문화공간과 또 다른 문화공간을 연결해 주는, 우리 삶의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다시 말해서 길은 자연과 문화를 거느리거나 발상케 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가진다. 세계의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로마의 문화 정치 경제 등의 영향이 세계에 미침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기실 길 위에서 이루어지고 길 위에서 번영을 한다. 60년대 이후 우리가 고속도로 혹은 산업도로를 닦는 일에 그렇게 열을 올려 온 것도 길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경제부흥을 최대의 목표로 매진해 왔다. 그 결과 이제는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발돋움했다.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 풍요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참다운 행복은 그것과 더불어 정신적 위안과 풍요에서 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길도 산업도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제주도의 올레길이요 우리고향의 구불길이다. 구불길은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으로 들기도 하면서 내 고향의 삶과 문화의 현장을 누빈다. '구불길'이라 명명한 것도 어느 한 지점을 빠르게 만 갈 수 있도록 직선으로 넓게 뻗은 길이 아니라 천천히 둘러 볼 것을 세세하게 보면서 사색과 명상을 하자는 뜻이리라. 많은 철학자들은 길을 걸으면서 사색하고 높은 철리(哲理)를 터득했다지만 우리는 그런 철학자가 아니라도 때때로 여유를 가지고 생각에 잠기는 삶이 필요하다.

 

구불길은 국토의 속살에 숨어 깃들어 있는 우리의 문화재를 비롯해서 전통적 향토적 삶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준다. 시간을 초월해서 과거로 가면서 많은 이야기거리도 만날 수 있게 해 준다. 이것들을 만나면서 우리는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정서적 유대와 긍지를 갖게 해 준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인의 삶의 특징 중의 하나가 고립감 또는 고독감에 젖어 있는 것이다. 수평적으로는 횡적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수직적으로는 전통 또는 역사와의 연대가 끊겼기 때문이다.

 

구불길은 이 두 가지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여기에 덧붙여 '마실터'를 조성한다고 하니 금상첨화다. 마실터는 구불길의 어느 지점에 마련하는 쉼터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쉼터가 아니다. 이것을 추진하는 분들의 말을 들으면 나눔과 소통의 활성화로 마을이라고 하는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한다. 부근에 방치되어 있는 소중한 자연과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정비하여 가치화시키고 생명화 시킨다고 한다. 메꿔진 연못을 준설하고 모정도 세운다고 한다. 청국장, 한과등 먹거리와 그네, 널뛰기, 투호, 제기차기 등 민속놀이 체험장도 마련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자칫 도시화, 문명화의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 갈 뻔한 우리의 고향은 잘 보전되어질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일을 착상하고 추진하는 주민들과 관계행정 담당자들께 감사와 함께 치하를 드리고 싶다.

 

문득 김광섭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 오른다. '바다로 가는 길이 있으니/거기는 내 동무 갈매기 한 마리 숨어있습니다// 산으로 가는 길이 있으니/거기는 내 동무 함박꽃 한 떨기 숨어있습니다// 마을로 가는 길이 있으니/거기는 나의 집 순박한 꿈이 숨어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구불길'은 이 시 속의 길임에 틀림없다. '갈매기', '함박꽃', '꿈'으로 표상화된 우리의 높은 가치가 이 길에는 있기 때문이다.

 

아들아, 우리 고향 옥산엔 구불길과 마실터가 있단다.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문효치(시인·계간 미네르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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