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북대학교가 발표한 ‘연간 6조 원을 상회하는 경제적 가치’ 분석은 지역대학을 둘러싼 논의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다. 이 수치는 전북대가 보유한 토지나 건물, 예산 규모 같은 단순한 자산가치가 아니다. 대학과 병원의 운영을 통해 발생하는 직접적 경제 효과, 연구 활동과 산학협력으로 인한 생산 유발 효과, 학생과 교직원의 소비 지출, 그리고 졸업생들이 사회에 진출해 평생에 걸쳐 창출할 미래 소득까지 포함한 종합적 경제 파급효과를 계량화한 결과다. 즉 전북대는 하나의 교육기관을 넘어, 전북 사회와 경제 전반의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을 떠받치는 핵심 공공 인프라임을 수치로 입증한 셈이다.
이러한 관점은 전북대 하나에만 적용될 문제가 아니다. 원광대, 전주대, 우석대를 포함한 전북지역 대학들 역시 각자의 영역에서 같은 의미의 가치를 축적해 왔다. 원광대는 의·치·한과 생명윤리, 보건의료 분야를 중심으로 전주대는 문화·관광·콘텐츠와 실용 학문을 기반으로 우석대 또한 보건·복지, 체육, 지역 밀착형 학문을 중심으로 인재양성에 힘써 왔다. 이처럼 각 대학의 기능은 서로 다르지만, 이들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전북 전체의 사회적·경제적 자산으로 축적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형성 과정은 지역대학의 이러한 역할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실리콘밸리는 애플이나 구글 같은 기업이 우연히 모여 생겨난 공간이 아니다. 그 출발점에는 스탠퍼드대와 UC버클리를 중심으로 한 대학 주도의 혁신 생태계가 있었다. 스탠퍼드대는 교수와 학생의 창업을 적극 장려하고, 연구 성과가 논문에만 머물지 않고 기업과 산업으로 이전되도록 제도와 문화를 설계했다. UC버클리는 공공기관과 지역 산업,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해 대학의 지식이 지역 문제 해결로 이어지도록 했다. 대학은 지역의 문제를 연구 주제로 삼았고, 지역사회는 대학의 실험을 산업과 정책으로 확장했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와 장기적 관점의 투자가 결합되면서, 실리콘밸리는 세계 최고의 혁신 공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농생명·바이오, 공공의료, 재생에너지, 문화콘텐츠, 스포츠·복지 등 전북의 핵심 분야는 대학의 연구 역량과 인재 양성 없이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전북대는 연구중심 국립대로서 국가 전략 산업과 대형 연구 과제의 중심축을 담당하며 전북의 기술적·지식적 위상을 높여야 한다. 원광대는 생명·의료와 윤리 영역에서 지역 공공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맡고, 전주대는 문화·관광과 실용 교육을 통해 지역 산업과 청년 일자리를 연결해야 한다. 우석대는 지역 밀착형 보건·복지와 생활 체육, 공동체 기반 교육을 통해 생활권 단위의 문제 해결 모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역할 분담과 연계가 이루어질 때, 전북의 대학들은 경쟁이 아닌 협력의 구조 속에서 지역사회를 이끄는 집단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지역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이다. 대학을 재정 부담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지역의 미래에 대한 장기적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 전북대의 ‘6조 원 가치’ 논쟁은 계산 방식의 정확성 여부를 떠나, 지역대학을 어떻게 평가하고 활용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방정부는 대학을 정책의 수동적 수혜자가 아니라 공동 설계자로 대해야 하며, 산업계는 대학을 인력 공급처가 아닌 연구와 혁신의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 시민사회 역시 대학을 지역 문제 해결의 주체로 끌어안아야 한다.
지역의 지속가능성은 도로와 공장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지식과 인재,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전북대·원광대·전주대·우석대 등 지역대학이 각자의 전문성과 공공성을 바탕으로 전북사회를 리드할 때, 전북은 쇠퇴하는 지역이 아니라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는 지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지역의 미래는 결국, 지역대학이 얼마나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지역사회가 그 가능성을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다. /백승우 전북대 농경제유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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