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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한옥마을과 선비 - 조상진

선비는 '어질고 학식있는 사람'을 말한다. 특히 유교적 이념을 사회에 구현코자 하는 사람을 일컬었다. 그 중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는 경우를 처사(處士)라 했다. 또 학문에 조예가 깊어 후생을 가르치면서 바른 도리를 제시하는 사람을 선생(先生)이라 했다. 선생은 벼슬에 나간 '공(公)'보다 더 높은 존경을 받았다.

 

선비는 두가지 방향을 지향했다. 하나는 스스로 도(道)를 연마하는 것이다. 도의 수행을 통해 행동과 예절을 바르게 하고 의리와 원칙을 지키며 관직과 재물을 탐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세상을 바로 잡는데 앞장섰다. 또 하나는 후세에 말씀을 내려주고 가르침을 베푸는 일이다. 자신의 학문을 제자들에게 전하고 저술을 통해 도를 세우고자 한 것이다.

 

물론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약점괴 한계가 없지 않다. 봉건질서의 기반이 되었기에 불평등한 신분구조에 이바지했다. 또 명분만을 중시해 실용적이지 못했다. 이러한 유학이나 선비정신이 벽에 부딪친 서양학문의 대안으로 떠오른지 꽤 되었다.

 

이와 방향이 같진 않으나 전주에서도 한옥마을의 선비정신을 되살리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선비의 길 조성을 위한 학술대회' 등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전주 한옥마을은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관광산업 차원에서 인기를 끌었다. 도시와 인접한 700여 채의 한옥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 자체가 볼거리였다.

 

하지만 '콘텐츠'내지 '정신'이 빠져 있었다. 겉만 그럴싸 했다. 이제 그 '정신' 즉 내실을 다지는 작업이 본격화된 것이다.

 

한옥마을은 조선시대 말부터 선비들의 집합소였다. 일제의 유학자들에 대한 탄압이 본격화되면서 전주 인근의 선비들이 모여들었다. 기호학파의 정통을 잇는 간재(艮齋) 전우의 제자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흔히 '3재'라 불리는 터줏대감 금재(欽齎) 최병심과 고재(顧齋) 이병은, 유제(裕齋) 송기면이 대표적이다. 또 대대로 오목대 아래 살아온 목산(木山) 이기경의 후손을 비롯 김교준 박인규 이종림 이주필 등 유학자들이 모여 선비촌을 이루었다.

 

이들은 학문을 연마하고 지조를 지키며 일제에 항거하는 등 선비 본연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지금 이들의 자취는 묻혀지거나 크게 훼손되었다. 이들의 정신이 새롭게 조명돼, 한옥마을이 명실상부한 명소로 발돋움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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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cho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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