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29 07:53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일반기사

[오목대] 소리가 있는 퇴임식 - 이경재

며칠 전 전주 썬플라워 웨딩홀. 정년퇴임식이 열린 이 곳에서는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무슨 무슨 전달식 등의 헐렁한 의식이 진행된 뒤엔 단가와 아리랑 곡조가 어울어진 흥겨운 소리판이 벌어졌다. 여자 명창은 전라도 사투리로 분위기를 띄운 뒤 고수의 북 장단에 맞춰 단가 '사철가'와 '쑥대머리'를 불렀다. 하객들이 추임새를 넣지 않으면 혼도 내고 가르쳐 주기도 하면서 흥을 돋궜다.

 

그런 뒤엔 '진도아리랑'을 불러 하객들을 소리판에 끌어들였다. 하객들은 자연스럽게 아리랑 가락에 맞춰 박수치고 명창과 함께 노래하면서 분위기를 즐겼다. 소리판은 명창과 150여명의 하객, 정년퇴임하는 주인공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다.

 

단가는 본격적인 창을 하기에 앞서 부르는 짧은 노래다. 목을 푸는 예비적 기능도 하지만 청중을 소리판에 주체적으로 끌어들이는 역할도 한다. 단순히 남의 놀이를 구경하는 게 아니라 바로 자신이 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또 사설의 이면에는 인생무상과 풍류적 정서가 깔려있다. 이런 걸 보면 정년퇴임식장의 메뉴로 딱 좋다. 퇴임식장에서 소리가 흘러나오게 만든 건 탁월한 식견이다.

 

또 하나는 맛보기일 망정 소리의 고장다운 걸 보여준 것도 효과다. 이 자리에는 지역 인사들 외에도 마산 출신으로서 전북에서 행정부지사를 지낸 이성열 대한지적공사 사장과 전국의 각 지역본부장들이 참석해 있었다. 이들은 "소리가 있는 퇴임식은 처음"이라며 "소리의 고장의 참 멋을 느낄 수 있었다"고 뿌듯해 했다고 한다.

 

퇴임식이 끝난 뒤 각 지역본부장들은 본사가 들어설 전주혁신도시 예정지와 새만금을 시찰했다. 동료의 이색 퇴임식도 구경하고 본사 신축부지도 둘러보고 전국적 이슈인 새만금도 둘러봤으니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동전 주은 격'이다.

 

정년퇴임의 주인공은 권영길 지적공사전북본부장이다. 익산부시장과 두차례 전북도 건설교통국장을 지내고 노조 추천으로 공사에 임용됐다. 퇴임식장에 소리판을 벌인 것도 그다. 자비를 들였다. 마음 먹기에 따라선 일석삼조의 효과도 거둘 수 있는 좋은 사례여서 소개했다. 매년 퇴임식이 열린다. 이제는 정년퇴임식 하면 연상되는 엄숙주의와 고답적인 의전을 깨뜨려보자.

 

/이경재 논설위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일보 desk@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