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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농촌 빈집

"…때묻은 기둥/ 썰렁한 무언인가/ 익모초가 기둥된/ 빈 항아리만. 안개로 피어나는/ 다가서는 얼굴들/ 삭막한 빌딩 그늘/ 고향달 술잔에 띄워/ 향수를 비우고 있는가. 참다못한/ 이그러진 초가지붕/ 잡초만 외로이 지키고/ 도란도란 옛 이야기 자리에/ 해묵은 먼지만/ 쌓였네.

 

시인 진상순(陳相順)의 시 '빈집'은 고향을 떠난 도시인들이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느끼는 애틋함과 향수를 담고 있다. 옛날을 그리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 투영돼 있다. 농촌 마을의 상처가 출향인의 눈에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지난 추석 연휴 고향을 찾아 마을 한바퀴를 둘러보았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다'는 싯귀가 어울릴 만큼 집과 고샅길의 공간구성은 옛날 그대로인데 당시의 떵떵거리던 사람들은 찾기 어려웠다. 추억만 거짓말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리고 텅 빈 집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놀랐다. 60여 가구 중에 30% 정도가 빈집이었다. 30여년 전 당시 마을의 상징이자 고유명사가 돼 버렸던 '이층집'도 텅 비었고 말 마디 깨나 하던 집, 형편이 어려워 눈치 보며 살던 집도 비어 있긴 마찬가지였다. 아마 어느 농촌이나 산촌 어촌마을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젊은이들의 농촌이탈과 공동주택 선호 때문이지만 결국엔 엉터리 농촌정책 탓이 크다.

 

진상순의 시처럼 들락거리는 사람이 없이 방치된다면 잡초가 무성하고 해묵은 먼지만 켜켜이 쌓인다. 지붕은 내려앉고 헛간과 부엌, 흙담부터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집들이 흉물처럼 수도 없이 방치되고 있는 게 문제다.

 

농촌 빈집은 그리움 때문에, 또는 언젠가는 돌아가야지 하는 미련 때문에 놔두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처치 곤란해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석면 덩이 슬레이트는 처리하기도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든다.

 

도내에는 농촌 빈집이 6300여 가구에 이른다. 전북도는 올해 25억원을 투입, 2500채를 정비할 계획이다. 한 집당 100만원 이내에서 철거비를 지원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이 돈으로 빈집을 처리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돈 몇푼 지원해 주면서 불법 투기만 조장하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보다 현실적인 지원정책과 함께 행정기관의 적극성이 뒤따라야 할 문제다. 빈집 수요자를 위한 정보사이트도 생각해볼만 하다.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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