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섭(재경전라북도민회 회장)
추석을 보냈다. 민족의 대이동, 귀성의 물결이 전국에 넘실거렸다. 고생길 마다않는 행렬, 고향과 가족을 찾는 연례행사였다. 4천만이 움직였다는 보도다. 명절 때 고향을 찾는 건 우리만이 아니다. 중추절을 맞아 고향길에 나서는 중국인의 수자 단위가 ??억??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고향과 부모를 찾는 서구의 경우도 마찬가지.
길은 막히고 짜증 나는 때도 많다. 그런데도 귀성을 중단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인간의 유전자에 고향을 찾는, 연어의 모천회귀 같은 본능이 있는 걸까? 나 역시 귀성 행렬에서 예외가 아니다. 젊은 시절부터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고향길이 고생스럽지만은 않았다. 막히는 길에 짜증도 냈겠지만, 그런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그저 반갑고 즐거웠던 추억 뿐이다.
고향, 늙은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시는 곳. 최근까지 고향은 내게 그런 곳이었다. 이제는 어머니가 기다리시지 않는다. 몇 년 전 타계하셨다. 1백2세, 그래도 좀 더 오래 잘 모시지 못한 불효자의 회한이 가슴을 저민다.
대학시절, 방학만 되면 나는 이불보따리 들처 매고 집으로 달려갔다. 가족이 보고 싶기도 했지만, 방학 두 달 동안의 하숙비 절약이라는 현실적 이유도 있었다. 방학을 마치고 이불 한 채 등에 지고 서울행 야간열차를 탈 때마다 어머니는 여러 가지를, 특히 밥 굶지 말고 꼭 챙겨먹으라고 당부하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굶지 않는 것이 최고의 가치였던 6?25 직후였다. 서울에 도착하면, 다시 하숙집 구하느라 이집 저집을 헤맸다. 이불 짐 맨 채로.
서울 인심은 야박했다. 취직을 위해 거의 무작정 상경한 친구가 하숙집으로 찾아왔다. 하숙집 주인은 매몰찼다. 밥 한 그릇 더 주지 않았다. 내 밥을 나눠먹었다. 주인아주머니가 나를 호출, 친구가 언제 가느냐고 물었다. 며칠 더 있을 것같다고 대답하니 자신에게 피해가 크단다. 그러면서 ??하숙집을 옮기라??고 한다. 밥 한 그릇 더 주는 것도 아닌데, 무슨 피해???밥 먹고 자는 건 학생 것 나눠서 하는 것이지만, 수돗물 쓰고 화장실 차는 건 생각하지 않느냐??는 핀잔이다. 수돗물 좀 쓴다고, 화장실 좀 쓴다고 시비하는 서울 인심이 야속했다. 결국 그 집을 나왔다.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후배에게 들은 얘기도 비슷한 경우다. 서울로 유학 온 한 후배가 학교 부근 술집에 갔다. 막걸리를 한 주전자 시켰는데, 주인과 후배 모두 상대방에게 인상 쓰고 있더란다. 후배는 ??막걸리 시켰는데, 왜 안주를 안주나??했고, 주인은 ??저 학생은 술만 시키고 왜 안주를 안시키나??하고 있더란다. 이게 전주와 서울의 차이다. 술 시키고 안주 따로 시키는 서울 인심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자취하던 어느 날 새벽, 느닷없이 장정들이 방에 들어오더니 내 짐을 길바닥에 들어내놓는다. 집주인이 부도를 내 강제명도하는 과정. 전세금이 날아갔다. 벼락 맞았다는 표현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야박한 서울,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그 서울은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성공의 기회를 찾기 위해 오늘도 서울로 사람이 몰린다. 재경 향우들 수자가 도민들보다 많은 연유이다. 우리 집안도 그랬다. 나를 따라 가족들이 서울로 올라왔다. 이제는 5대 180명이 서울에 산다. 식구들이 많다고 ??케네디가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이제 고향에서 산 기간보다 몇 배의 긴 시간을 서울에서 보냈다. 그렇지만 마음 속에서는 고향에서 산 기간이 길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행복이다. 마음 속의 희망뿐일지라도.
우리 아이들은 서울 사람이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이 우리 세대와 같을 수 없다. 그리워해야 할 것도 적다. 그들에게 뿌리가 전라북도임을 가르치는 일이 우리의 과제다. 돌아갈 곳을 만들어주는 것, 그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고단한 귀성길이 그런 교육의 한 현장이다. 귀성의 물결은 그래서 오늘도 아름답다.
/ 송 현 섭(재경전라북도민회 회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