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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이삼만 재평가 - 조상진

"무릇 글씨를 씀에 있어서는 첫째는 모름지기 인품이 높아야 하며(人品高), 그 다음으로는 옛날의 법도를 스승으로 삼아야 하되(師法古), 다만 온 힘을 다 바쳐 공부를 하지(極工) 아니하면, 신령한 경지에 통할(通靈) 수가 없다"

 

창암(蒼岩) 이삼만(1770-1847)이 60세 되던 해, 남긴 말이다.

 

창암은 조선 후기 서울의 추사(秋史) 김정희, 평양의 눌인(訥人) 조광진과 함께 당대'삼필(三筆)'로 불렸던 인물이다. 전주 정읍 등에서 평생 붓 하나로 서예 외길인생을 살며 물처럼 바람처럼 흐르는 유수체(流水體)로 이름을 떨쳤다. 그의 글씨 산광수색(山光水色·산의 빛과 물의 색, 즉 경치가 좋음) 임지관월(臨池觀月·연못에서 달을 바라보다) 등은 유수체의 정수다.

 

그의 글씨에는 유장한 판소리 가락과 흐르는 물소리가 배어있다. 판소리는 정인(情人)이었던 심녀(沈女)와의 사랑이, 물소리는 한벽당을 휘감아 돌던 전주천과 닮았다. 어찌 보면 산과 바람, 물 등 자연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전주 인근에는 창암과 관련된 일화들이 많다. 붓으로 한약재 이름을 써주었는데 어찌 어찌하여 중국 북경의 한약방 주인이 그것을 보게 되었다. 깜짝 놀라 "대체 어느 명필이 썼느냐?"며 "약을 얼마든지 줄테니 그 종이를 달라"고 했다는 얘기도 그 중 하나다.

 

또 부친이 뱀에 물려 죽자 뱀을 보는 족족 죽였다는 얘기도 전한다. 이는 서정주의 시집 '질마재 신화'속에서 '이삼만 이라는 신(神)'으로 승화된다. 징그러운 뱀을 쫓아내기 위해 李三晩이라는 석 자(字)를 기둥에 붙이면 뱀들이 기어 오르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축사(逐蛇)의 신화로 그의 신필(神筆)이 호남 민중 사이에 깊숙히 뿌리 내렸음을 뜻한다.

 

하지만 창암은 그동안 추사라는 걸출한 인물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중앙 정계에서 머리 좋고 잘 나가는 추사와 시골에 묻혀 글씨나 쓰며 연명하는 창암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 차이만큼 대접도 소홀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재평가의 바람이 거세다. 이삼만선생서예술문화진흥회(이사장 조인숙)가 중심이 돼 작품을 발굴하는 등 재조명의 깃발을 높이 든 것이다.

 

그 결실로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창암 탄생 240돌 특별전'이 열리고 있고, 22일에는 학술대회도 갖는다. 창암이 제대로 평가되는 기회였으면 한다.

 

/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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