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공(子貢)이 스승인 공자에게 물었다. "나라를 다스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첫째가 먹는 것(食)이고 둘째는 군사(兵)이며 셋째는 백성들의 믿음(信)이다." 자공이 또 물었다. "그 중에 부득이 하나를 뺀다면 어떤 것을 빼야 합니까?" 공자는 "군사(兵)다. 그 다음을 뺀다면 먹는 것(食)이다." 공자는 "한 조직이 마지막까지 존립할 수 있었던 건 백성들의 신뢰 때문"이라며 신뢰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쳤다(民無信而不立)다. 논어에 나오는 내용이다.
최근 정책에 대한 신뢰를 헌신짝처럼 내버린 행태 때문에 지역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충청권 입지 공약을 백지화시켰다. 대선 약속을 물거품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자 충청권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영남권에선 마치 기다렸다는 듯 유치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호남권도 마찬가지다. 광주시는 8일 오후 2시 국회의원 회관에서 '국제과학벨트 호남권 유치를 위한 국회포럼'을 연다. 전북 역시 뒤늦게 유치활동에 가세하고 있다.
MB의 대선 공약인 동남권 신공항 유치를 놓고도 지역간 갈등이 첨예화하고 있는 모양이다. 가덕도를 후보지로 밀고 있는 부산과 경남 밀양에 유치돼야 한다는 대구·울산·경북·경남 사이에 경쟁이 치열하다. 대구에는 동 단위에까지 플래카드가 걸렸고, 부산도 부산역에서 사상구의 한 사무실까지 15분 거리에 플래카드만 100개 넘게 걸려 있다. 정부는 신공항 건설 자체를 반겨하지 않는 데도 논쟁은 점입가경이다.
토지주택공사(LH) 이전 관련 전북-경남간 갈등 역시 정부의 '정책 파괴'가 불러온 대표 사례 중의 하나다. 분산배치 원칙을 깬 탓이다. 문제가 복잡할 수록 원칙으로 돌아가야 해법이 나오는 데도 정부는 오히려 원칙을 깨버렸다.
조정 역할을 해야 할 정부, 화합으로 이끌어야 할 대통령이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 꼴이니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는 권력은 강가에 꽂은 나무 젖가락과 같다. 물결이 조금만 일어도 떠내려 가는 이치다. MB 정부야 말로 경제(食)와 국방(兵) 보다도 신뢰를 왜 더 중요한 가치로 여겼는지 2500년 전의 무신불립(無信不立) 교훈을 새겨야 할 것 같다.
/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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