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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다시보는 백제 - 장세균

문화재청이 익산·부여·공주 역사 유적지를 통합한 가칭 '백제 역사유적지구'를 세계문화유산 등재 우선 추진대상에 선정함으로써 익산을 중심으로 한 백제문화 가치를 재평가 할 것 같다. 사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 백제역사는 의붓자식 취급을 받어 뒤편에 간단히 약술되었다. 그러나 백제의 역사는 그렇게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백제를 다시 보자는 연구가 많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백제의 강역을 한강 이남으로 국한시켰다. 그러나 백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중국 사서(史書)들을 통해서이다. 중국 사서인 '송서(宋書)'에 의하면 '백제국은 고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 1000리에 있었다. 그후 고려가 요동을 차지하니 백제는 요서를 차지했다. 백제가 통치한 곳은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고 되어있다.

 

여기에서의 '고려'는 '고구려'를 말하고 '요동'이나 '요서'는 지금의 중국 북경 주변을 가르킨다. 중국 사서인 '남사(南史)'에 의하면 '백제는 본래 구려(句麗)와 함께 요동의 동쪽 1000여리에 있었다. 진대(晉代)에 구려가 이미 요동을 차지하니 백제 역시 요서(遼西 )와 진평(晉平)의 두군(郡)을 차지하여 스스로 백제군(百濟郡)을 두었다'고 하고 있다.

 

중국 사서인 통전(通典)에 따르면 '처음 백가(百家)로써 바다를 건넜다고 하여 백제라고 한다. 진대(晉代)에 구려(句麗)가 이미 요동을 차지하니 백제 역시 요서와 진평의 두 군을 차지했다.'고 되어있다. 또 '자치통감'에 의하면 488년과 490년에 백제가 북위(北魏)와 전쟁을 벌여 크게 승리했다는 기록도 있다.

 

'남제서(南薺書)'에도 '490년에 위군(魏軍)이 다시 수십만의 기병들로 백제의 지경을 공격했다. 백제 모대(동성왕)는 장군 ,사법명,해례곤, 목간나 등 4명으로 하여금 위군을 습격하여 크게 격파했다.' 중국의 사서인 '신당서(新唐書)'와 '구당서(舊唐書)'에서는 백제의 서쪽 경계를 월주(越周), 즉 지금의 절강성 소흥시 부근이라고 했다.

 

삼국사기 '최치원전'에도 나오길 '고구려, 백제가 강성할 때 군사가 백만명이나 되어 남쪽으로는 오(吳), 월(越)을 침략하고 북으로는 연(燕),제(薺),노(魯)국을 괴롭혀 중국의 큰 우환거리였다'고 적혀있다. 이상이 백제는 대륙에도 있었다는 '대륙백제설'이다.

 

/ 장세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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